잡스 국어/현대문학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김남주 [현대시]

Jobs 9 2022. 5. 3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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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김남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 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하고 가자.
투쟁 속에 동지 모아 손을 맞잡고 가자.
열이면 열 천이면 천 생사를 같이 하자.
둘이라도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 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고개 너머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가자.
서산 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 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 주고,
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 할 길 시련의 길 하얀 길
가로질러 들판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길 하얀 길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개관

- 성격 : 현실 참여적, 의지적, 선언적
- 표현
* 4음보의 전통적 율격을 적절히 변형시키면서 대구를 이용하여 시의 주제를 형상화함.
* 민요나 유행가 가사와 같이 민중에게 친숙한 구절들을 삽입하여 독자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함.
* 조국의 해방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는 강렬하고 명료한 남성적 어조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어순을 도치하여 '함께 가자'는 당위성과 필요성을 역설함.
* 산, 바다 → 화자의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사물로, 시련과 역경을 함축한 말
* 마을 → 화자가 잠시 동안 쉴 수 있는 곳
*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 협력의 태도가 강조된 말.  민간에 널리 알려진 노래를 차용하여 독자에게 친근감을 줌.
* 가시밭길 하얀 길 → 해방과 통일이 시련과 고통의 길임을 암시
*'길'의 함축적 의미
    : 시련과 고난의 길 → 통일과 해방의 길 → 모두가 함께 가야 할 길 → 삶의 지향점(목표)

- 제재 : 분단과 통일
- 주제 : 분단 조국의 완전한 해방과 통일의 길에 동참할 것을 권유함.

 

시상의 흐름(짜임)
- 1 ∼  8행 : 모두 같이 가는 길(통일의 길에의 동참)
- 9 ∼ 15행 : 서로 도우며 갈 길(협동과 동지애)
- 16∼20행 : 모두가 반드시 가야 할 길(시련의 극복)

 

이해와 감상
우리 민족의 가장 절실한 관심사는 완전한 통일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한동안 일반인의 화제에 오르는 것이 금기로 여겨졌다. 이런 불행한 시대에 시인은 통일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역설하고, 그것은 순수한 열정과 희생이 따라야만 가능하다는 점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에서 추구하는 '길'은 마지막 부분에 '해방의 길 통일의 길'로 뚜렷이 제시되어 있다. 시적 화자는 이 길을 반드시 가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제시되어 있지 않으나 그것이 가치 있고 올바른 삶의 방법이기 때문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시적 화자는 그 길을 가는 방법으로서 모두가 함께 가야 함과 서로 도우며 가야 함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함께 가는 사람들이 '동지'이며, 그들은 생사를 같이하는 사람들, 서로 넘어질 때 일으켜 줄 사람들이다. 시적 화자는 이러한 생각을 선언의 형식이 아닌, 친근한 말투의 이야기로 풀어 내고 있다. 그것은 이 노래를 듣고 이 길을 가야 할 사람들이 분단된 한국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지배 계층이나 지식인들이 아닌 민중임을 보여 준다. 
이 시를 통해 드러나는 시인의 육성은 대단히 명료하다. 그것은 '해방의 길, 통일의 길'을 '우리 함께 가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 민족에게 가장 긴급한 과제가 분단의 벽을 허물고 완전한 통일을 이루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자체가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통일에 대한 논의가 일종의 금기로 여겨져 왔던 것은 사실이었다. 이 시의 화자는 마치 어린 동생이나 정다운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혹은 나이 많은 어른이나 배운 것 부족한 노동자들과 대화하듯 쉬우면서도 힘있는 어조로 통일의 당위성과 그 길에 동참할 것을 역설하고 있다. 
이 시의 또 하나의 특징은 통일을 방해하는 적대 세력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와 현상을 이해하는 이분법적 도식주의가 김남주 시의 문제로 제기되기도 하였지만, 이 시에서는 그런 도식성과 적의(敵意)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통일의 길에 어떠한 반대의 시어가 통일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읽힐 수도 있지만, 이와 같은 고난과 시련은 어느 상황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또, 그러한 어려움이 없었다면 통일은 이미 오래 전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 김남주의 작품 세계
유신 시대에 대학(조선대 영어영문학과)을 다닌 김남주는 암울한 정치 현실과 도시화로 인한 농촌 사회의 붕괴라는 환경 속에서 창작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의 초기 시의 분위기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자괴감과 허탈함, 넋풀이의 분위기가 짙으며, 그 밑바탕에는 김수영의 '자유'와 '죽음'의 개념 및 형식들이 깔려 있다. 1980년대에는 첨예한 의식과 혁명적 정신을 열정적으로 단호하게 때로는 냉정하게 단순화시켜 노래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80년대 한국 민족문학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80년대 사회변혁운동의 이념과 정신을 온몸으로 밀고나간 '전사(戰士)시인'이며, 혁명적 목소리로 한국문단을 일깨운 '민족시인'이다. 또한 청춘의 10년을 감옥에서 보내는 등 반독재 투쟁에 앞장선 혁명시인이었다. 1946년 전남 해남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호남의 명문 광주일고를 입학하였으나 입시 위주의 교육에 반대하여 자퇴하였고, 이후 검정고시로 전남대 영문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재학 중 '3선개헌반대투쟁'에 참여하는 등 반독재  학생운동에 투신한 그는 1972년과 이듬해에 전국 최초의 반유신투쟁 지하신문 '함성'과 '고박'을 제작 · 배포하여 징역 8개월의 옥고를 치렀고, 이후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1974년 '창작과 비평'에 「진혼가」등으로 문단에 얼굴을 내민 김남주 시인은 이후 작가 황석영 등과 함께 '민중문화연구소' 등을 결성하기도 했다. 1978년 가장 강력한 반유신 투쟁 지하조직 '남민전'의 전사로 활동하다가 이듬해 10월 4일, 80명의 동지와 함께 체포 · 구속된 김남주 시인은 이 사건으로 징역 15년 형이 확정되어 광주교도소 등지에서 복역했다. 그는 옥중에서 교도관 몰래 수많은 옥중시를 써서 극비리에 유출했는데, 이 시들은 80년대 우리 사회 변혁 운동에 일대 도화선이 됐다. 또한 김남주 시인은 1988년 12월 21일 9년 3개월의 옥고 끝에 석방되기까지 80년대 한국문학의 빛나는 정점이자 큰 별이었다. 
석방 이후 각종 재야 집회에서 시낭송을 했는데 이는 만인의 심금을 울린 뜨거운 절창이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 이사, 민예총 이사 등을 역임했고, 단재상 · 윤상원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서거 이후에 민족예술상이 수여되었다. 옥중 투쟁에서 얻은 지병으로 투병하다가 1994년 2월 13일, 불과 마흔 아홉의 나이로 그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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