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Soup
고기, 해물, 채소 등의 재료를 물에 넣고 간을 적당히 맞춰 푹 끓인 액체 요리를 말한다. 서구권의 수프와 비슷한 개념의 요리.
보통 국물을 낼 때에는 고기, 무, 멸치, 다시마 등을 사용하는데 각각 재료마다 특유의 맛이 난다.
한국의 국
한국인은 반상의 반찬(첩) 개수를 셀 때 식단에서 밥, 국, 장류, 찌개, 김치 등을 제외한 나머지 요리만 따질 정도로 국물 요리는 한국인의 식사에 필수적인 존재였다. 심지어 그나마도 전통밥상의 경우 첩수가 늘어나면 김치랑 국, 찌개도 두가지 이상이 올라가서 첩에서 제외되는 요리 숫자도 그만큼 늘어났다. 식습관이 서구화된 현대인들은 비교적 덜하지만 나이 든 사람들, 특히 있는 집안 자제들은 상에 국이 없으면 수저 뜰 생각도 안 할 정도. 사실 현대 한국인들도 식사에 국물요리를 잘 안올리는 사람을 보면 특이하게 보는 경우가 있다. 밥을 말아먹는 경우도 많아 국밥이라는 명사도 흔히 쓰인다. 더 나아가 국(탕), 찌개, 전골 등 같은 국물 요리도 여러 수준으로 분류가 되어 있다.
면 요리도 국물이 있는 면의 경우 한국은 면보다는 국물에 초점을 둔다. 라면을 만들 때 "라면을 삶는다"라는 표현보다 "라면을 끓인다"라는 표현을 더 흔하게 쓰는데, 이는 라면이라는 음식을 면을 삶는, 면 위주의 요리가 아닌 라면 국물을 끓이는, 국물 위주의 요리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우동을 평가하는 기준에서도 한국인은 국물을, 일본인은 면을 따진다고 한다. 물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라면을 삶는다고 표현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기본적으로 그릇을 들고 먹거나 마시는 것을 무례하게 여기는 정서가 있고, 건더기도 국물과 같이 건져서 먹기 위해 숟가락으로 먹는다. 숟가락의 활용이 제한된 중국이나 숟가락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일본과는 대조된다. 이 때문에 숟가락이 크고 깊거나 넓은 중국 및 일본에 비해 한국은 숟가락이 작고 얕으며 입에 넣기 편한 모양을 갖춘다. 이는 서양의 스푼과 비슷하다.
전반적인 형태가 액체이므로 물과 재료만 있으면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으며, 그렇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쉽게 나누어 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특히 국은 적은 재료로 많은 양을 만들 수 있었기에 과거 가난한 평민들의 주식, 부식으로도 애용되었다. 갖가지 기록이나 창작물에서 빈민의 식사를 묘사할 때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야채 한두 종류에 소금만 넣고 끓였다는 건 예사다. 쌀뜨물, 면 삶고 버리는 물(전분이 섞여 끈끈하다), 맹물에 소금 넣고 끓여 국이랍시고 먹었다던가.
한국에서 국물 요리가 발달한 이유
한국은 온돌로 난방문화가 발전하였고 구들장을 데우기 위한 열이 항상 있었으므로 이 난방열을 아궁이에서 조리열로 이용하여 국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한국 음식에서 국 요리가 발전한 가장 큰 이유는 오래 전부터 국 요리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마실만한 물, 즉 단물을 구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한반도 외의 다른 지역들에선 일단 별다른 처리 없이 먹을 수 있는 깨끗한 물을 구하는 것 자체도 어려웠다. 게다가 현시대 상수도 시설이 전국에 완비된 선진국가 중에서도 석회암질 토지위에 세운 유럽 나라들은 광물질(칼슘, 마그네슘 등)이 많이 함유된 물 즉, 센물이 나와서 마실 수는 있어도 요리의 메인으로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었고, 비누가 잘 풀리지 않는 탓에 빨래조차 힘들어 가정에서 연수기가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는 판이었다. 이런 문화권에서 고기,채소를 우려낸 육수(broth)는 조미료처럼 맛을 내기 위해 쓰거나, 소스의 베이스로 쓰는 게 대부분이다. 반면에 한반도는 그런 수질관리의 개념이 없던 전근대시대에도 국물요리를 잘만 먹었고, 상수도의 현대화가 이뤄진 국가중에서도 웬만큼 관리 잘 된 상수원의 수돗물을 그대로 찬물 원샷해도 되는 나라는 전세계에 한국, 일본 외에 몇 없다. 그만큼 한반도땅이 수질, 음용수의 경도면에서는 이득이었던 셈이다. 한반도가 화강암지대라 지하수에 석회침전이 상대적으로 적고, 원래도 빗물이 그대로 강에서 바다로 쓸려내려가는 지형이다보니 빗물을 그대로 식수로 쓸 수 있을만한 환경이었던 것.
혹자는 국물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방법 중 하나로 자포니카 쌀을 꼽는 경우가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주로 먹는 자포니카 쌀은 전분이 많아서 끈기가 많기 때문에 먹다 보면 목이 막히므로, 끈기를 씻어내기 위해 국물이 필요하다는 것. 국 없이 마른 반찬만으로 밥을 먹다 보면 국물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이건 그냥 국물을 먹어버릇하는 식습관 때문이다. 일본 역시 전통적인 일식 상차림에는 설령 가짓수는 적을 지 몰라도 항상 국물 종류가 포함된다.그러나 이 가설의 경우 똑같은 종류의 쌀을 먹어도 국물요리가 일본에 비해 더 많은 이유까지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중국의 경우에는 국물 요리의 가짓수는 많으나 한국과는 정반대로 '국물에는 재료의 나쁜 것들이 녹아있다'는 인식으로 국물은 마시지 않는게 보통이다. 오죽하면 중국 요리인 마라탕을 두고 '마라탕 국물도 먹을 놈'이라는 말까지 있을 만큼, 국물을 마시는 것을 나쁘게 본다.
한국의 기후, 경제상황과도 관계가 있다. 섬나라인 덕분에 한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드문 일본이나 국토가 넓어서 다양한 기후를 지닌 중국에 비해 한국은 겨울에 한랭건조하며, 게다가 동위도 지역 중에서도 추운 편에 속한다. 그래서 그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주택의 난방에 크게 신경썼고 그렇게 난방에 공을 들인 부산물인 뜨거운 국물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혹한기에 뜨뜻한 흰쌀밥을 오이냉국과 먹는다고 한다면 생각만 해도 춥고 안 어울리지 않는가? 뜨끈하고 짭짤한 국물은 탄수화물인 밥과 잘 어울리니 국을 선호하는 것은 결국 한국의 기후와 큰 연관이 있다. 마침 온돌 문화도 발전해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은 기후상 조선 후기에야 이모작이 가능해지는 등 이웃 중국, 일본에 비해서는 식량 생산량이 적은 편이었다. 그런 면에서 국물 요리는 양을 불리기에 적합한 방법이다. 실제로 국물요리 문화는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의 보르시, 중국 북동부의 훈툰과 같은 만둣국류 요리 등 춥고 비교적 식량생산이 힘든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중국, 일본에 비해서 국물 요리가 발전할 가능성이 더 높은게 아닐까하는 추정이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로 단순히 많이 먹기 때문을 들기도 한다. 한민족의 식사량 문서대로 고대 시절부터 현대까지도 한국인은 적어도 주변 국가에 비해 많은 식사량을 갖고 있는데, 식량 생산량이 주변보다 높지는 않고 같거나 오히려 낮은 판국이였으니 자연스럽게 많이 먹으려면 재료의 양을 불리는 조리법이 필수적이였으니만큼 이것이 자연스럽게 국물 요리의 발전으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가설. 거기에 더불어 일반적으로 기근을 겪는 민족이나 국가의 경우 식사량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는데 조선시대의 기근들 뿐만 아니라 6.25 전쟁등 근현대까지도 여러 이유로 식사량이 부족했던 시기를 겪은 한민족은 마찬가지의 이유로 식사량이 더욱 증가했고, 이것이 더욱 국 요리의 확산을 가속시켰다는 가설이다.
건강
의외로 칼로리 자체는 높지도 않고, 많은 재료를 오래 끓인 국일수록 재료의 영양분이 국물에 풍부하게 녹아들기 때문에 서양의 수프와 마찬가지로 소화가 편하게 영양을 보충할 수 있는 음식이다. 귀한 재료를 사용하여 우려낸 국 요리는 예로부터 보양식으로 취급되었다. 또한 찬 음식이나 날 음식에 쉽게 탈이 나는 사람이라면 끓인 국물요리가 안전하여 선호된다. 날이 차서 위장이 약해지거나 반대로 더워서 식재료가 쉽게 변질되는 계절에도 마찬가지로 끓인 국 요리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선택지가 된다.
단, 높은 나트륨 함유량이 문제가 되고 있다. 요리를 좀 해본 사람이라면, 보통 4인분의 국의 간을 맞추는데 소금을 거의 두숟갈 정도 사용한다. 하지만 4인분의 스테이크를 굽는다고 생각해보자. 4인분 다 양념하는데 쓰는 소금이 한두 티스푼이면 충분하다는 걸 감안할 때, 국에 소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 국물 라면의 경우 스프를 다 넣었을 시 한 봉지에 나트륨이 1700mg를 초과한다. 하루 나트륨 권고량은 2000~2300mg인데 라면 한 봉지에 국물까지 다 먹으면 하루 나트륨 섭취 권고량을 거의 다 소비하는 셈이다. 다만 국물을 먹지 않으면 나트륨 섭취량은 1/3 정도로 줄은다고 한다. 면만 먹으면 통상적으로 400~600의 나트륨만 섭취하는 셈.
그래서 한식에서의 나트륨 문제는 거의 전적으로 국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한식은 전반적으로 맛과 향이 세서 생각보다 소금이 적게 들어가 음식이 의외로 싱거운 편이라, 개발도상국은 물론이고 웰빙 문화가 발전한 선진국들도 전반적인 음식의 간은 한국인이 한입만 먹어도 질겁할 정도로 훨씬 짠 경우가 많다. 그런데 국 만큼은 어떤 외국 요리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나트륨 함량을 자랑한다. 국물로 농도가 희석되기 때문에 짠맛이 크게 느껴지지 않더라도, 양이 많아지므로 소금을 많이 먹게 되는 것이다. 바꿔말해서 국에서 짠맛이 적절히 느껴지게 하려면 들어가는 소금의 양이 다른 형태의 음식보다 더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국물 때문에 한국인의 나트륨 섭취가 전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말도 많이 돌아다니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과거부터 세계 나트륨 섭취량 1위는 언제나 중국이 차지하고 있었고 한국이 이를 넘어선 적은 없다. 2000년대 까지만 해도 꽤 높은 순위였던건 맞지만 점차 섭취량이 줄어서 2020년대 기준으로는 보통 수준에 머무른다. 물론 한국도 WHO의 권장 섭취량은 상회하고 있지만, 이 기준을 잘 지키고있는 나라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좋다.
아무튼 음식을 전체적으로 싱겁게 먹는 편인 한국인들의 나트륨 섭취량을 다른 국가만큼 확 끌어올리는 것이 국물 문화의 영향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국물 요리에는 소금만 많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설탕도 엄청나게 들어간다. 한국인의 나트륨 섭취량은 2010년대 이후로 오히려 줄어든 대신 당류 섭취량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국물 요리는 어느쪽으로도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국을 끓인다면 염분과 설탕의 인위적 첨가는 줄이고 재료 자체를 듬뿍 넣고 오래 끓여 되도록 재료 본연의 맛과 영양이 우러나게 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건강상의 이유나 다이어트로 식단을 조절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국류를 비추천한다. 일부 학교, 회사, 군대 등 급식을 실시하는 곳에서는 '국 없는 날'을 시행하기도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나트륨 섭취를 줄이기 위해 권장한 제도다. 이 날은 짜장밥, 카레, 하이라이스, 면류, 빵류, 볶음밥, 비빔밥 등 별도의 국이나 찌개 없이도 먹을 수 있는 메뉴를 배식하며 잔반 없는 날과 함께 시행하기도 한다.
또한 수프나 국류 자체는 환자식으로도 선호될 만큼 소화 자체는 쉬운 음식이기는 하나, 물기가 많은 식사만을 고집할수록 소화액이 묽어지기에 ‘소화력’에는 좋지 않고, 지나치게 뜨거운 국물은 구강 상피나 식도, 위장 등의 조직을 손상(변성)시켜 심하면 궤양이나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뭐든지 적당히가 좋은 것이다.
뜨거운 국물요리, 특히 마라탕같이 맵고 자극적이고 기름진 국물 요리는 충치를 유발할 확률이 높다. 대부분의 국물요리는 자칫 잘못하다간 2도 화상을 입을 수 있는 60 ~ 100°c 정도 되는데, 치아는 섭씨 50°c 이상이 되면 국물 안에 있는 소금, 설탕, 기름 등의 물질과 함께 반응하며, 이 온도를 훨씬 상회하는 국물 요리는 충치를 유발하기 좋은 조건이다. 구내 화상까지 입었다면 세균 감염으로 충치가 가속화 될 수 있다. 찌개, 탕도 마찬가지.
유사 국물 요리
한자로는 탕(湯), 갱(羹)이라고 부른다. 찌개와 혼동하기 쉬운데 찌개는 국보다 건더기를 많이 넣고 국물을 진하게 만든 것이다. 건더기가 더 많아지고 물의 양이 줄면 전골이다. 전골보다 물이 더 적어지면 조림 아니냐고 볼 수도 있는데, 국과 찌개와 전골은 많은 건더기들과 그 건더기들이 한데 조화롭게 우러나온 국물을 같이 먹기 위한 음식인 반면 조림은 단순히 재료를 익히기 위한 수단으로서 적은 양의 물을 사용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전골같은 경우엔 그냥 육수 국물에 조리하지 않은 생 재료를 넣어 끓여먹는 요리로 조리한 상태로 바로 나오는국과 다르다. 거기다 국물과 건더기를 따로 먹기도 한다.
서구 요리에서는 수프, 스튜가 넓게 보면 국물 요리 범주로 속한다. 수프가 국이나 탕 포지션이라면 스튜는 찌개와 비슷한 포지션인데, 전반적으로 국물을 베이스로 만드는 보편적인 요리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조리법 역시 약한 불로 조리한다는 점에서 공통 특성을 가지며, 일부 스튜 요리는 한국의 국물 요리와 외견상으로 유사한 경우도 있다.
일본 요리에서는 국 종류 음식을 시루모노(汁物, しるもの)라고 한다. 다만 일본에서는 미소시루 같은 것이 주류고, 찌개 등 걸쭉한 국물요리 개념은 과거에는 없었다 보니, 나중에는 라멘국물을 표기할 방법이 없어서 서구 요리의 수프를 빌려다가 スープ라고 표현하게 된다.
서양의 수프, 콩소메도 넓게 보면 여기에 속한다.
튀르키예 요리에서는 초르바라고 한다.
보관
오래 놔둘 경우 건더기 재료들이 쭈그러든다는 점이나 상미기간이 짧다는 점이 있다. 종종 사람들이 상온에서도 장기보관이 가능한 음식으로 착각하는데, 실제로는 장기보관이 불가능하다. 특히 여름같이 덥고 습한 날씨면 한나절만에 쉬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어렸을 때 집에서 국 냄비를 상온에서 며칠씩 놔두는 걸 본 사람들이 많이 착각할 수 있는데, 이는 국이 상하지 않게 최소한 하루에 한두 번씩 팔팔 끓여 놓기 때문에 그나마 괜찮은 것이다. 상온에서 보관해야 할 경우는 이 점을 잊지 말자. 팔팔 끓인 후 용기에 옮겨담아 냉장고에 넣은 후 먹고 싶을 때 조금씩 냄비에 덜어 데워먹거나, 도자기 그릇 등에 옮겨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방법을 사용하면 상하지 않게 보관하여 오래 먹을 수 있다.
그래도 최선은 역시 먹을 만큼만 끓이는 것이다. 수십 년 푹푹 끓여낸다는 족발집 씨육수나 가마솥 사골도 가끔 드물게 대장균이 검출되었다고 보도되는 경우가 있기도 했다.
참고로 이미 상하기 시작한 국 요리는 먹지 말고 반드시 과감히 버려야 한다. 끓여서 부패미생물에 열을 가해 사멸시키더라도 이미 그 부패미생물이 국에 있는 유기물을 분해하여 생성된 부산물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부패미생물이 만들어낸 부산물은 인체에 식중독을 일으키기에 아깝다는 생각을 하고 먹었다가는 자칫 큰 탈이 날 수도 있다.
'국물'이라는 말은 '국'을 이루는 물이라는 뜻이지만 근래에는 육수라는 뜻으로도 쓴다. '멸치국'은 없지만 '멸치 국물을 낸다'라고 하는 등으로 쓰는 것이 그 예.
"국물도 없다"라는 관용구가 있으며 뜻은 돌아오는 몫, 이득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국물을 내면 보통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국물은 먹을 수 있는데 그조차도 없다는 식으로 의미가 파생된 것으로 추측된다.
가끔 뜨거운 국을 담은 국그릇이 지 멋대로 움직이는 현상이 발생하곤 한다. 이건 국그릇과 그릇 바닥에 남은 물기의 온도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으로 국그릇 바닥의 물기를 닦으면 해결된다.이동국
한국어에서 국의 이름에는 따지고 고민할 것 없이 모조리 사잇소리가 들어가며 사이시옷 역시 모두 적는다. 감잣국, 김칫국, 순댓국 등등. [감자국], [김치국], [순대국]으로 발음하지 않고 모두 [감자꾹], [김치꾹], [순대꾹]으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국밥의 경우 이 현상이 없어서 '돼지국밥', '순대국밥'과 같은 것은 [돼지국빱], [순대국빱] 식으로 읽는다.
7차 교육과정 당시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요즘 젊은 것들은 국물 요리를 안 좋아해서 싸가지가 없다'는 궤변을 담은 <국물 이야기>라는 수필이 등재된 적이 있었다. 작가는 문형동(1943~2008)으로 같은 교과서에 비슷한 논지로 체벌을 옹호한 작품도 실린 바 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해당 교과서로 공부한 학생들조차 당사자들의 인권 증진에 크게 관심이 없던 시대여서 반발은 크게 없었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 아이들이 커서 어련히 알아서 국밥을 먹더라
그런데 요즈음 우리네 식탁엔 점차 국물이 사라지고 있다. 걸어가면서 아침을 먹고, 차에 흔들리면서 점심을 먹어야 하는 바쁜 사람들이 많이 생겨서인가? 아니면, 개척 시대 미국 이주민의 생활(生活)이 부러워 그것을 흉내 내고 싶어서인가? 즉석 요리, 즉석 식품이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다.
내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생선은 굽고, 닭고기는 튀겨야 맛이 있다고 성화인 것만 보아도 그렇다. 나는 그 반대 입장에 서서 국물이 있는 것으로 입맛을 챙기려 하니, 아내는 늘 지혜롭게 식탁을 꾸려갈 수밖에 없다.
기다릴 줄을 모르고, 자기욕심 자기주장이 통할 때까지 고집을 피워 대는 내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혹시 그런 성격이 서구화(西歐化)된 식탁 문화에서 빚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커진다.
국 없으면 밥 못 먹는다는 사람이 꽤 있다. 국물을 후루룩 마셔야 밥 먹은 것 같다는 게 그 이유이다. 이런 사람은 국 없으면 밥에 물 말아먹기도 한다.
프랑스에서는 국을 적은 양의 재료를 많은 것처럼 불려 먹는 가난한 자들의 요리라고 천시한다. 프랑스는 겨울에도 별로 안 춥거든 서양식 국 요리인 수프도 같은 취급을 당한다. 인정 받는 수프는 고급 재료를 넣어 고급화 시킨 것 뿐이라고. 반대로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겨울이 추운 독일, 폴란드,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는 한국 국이나 찌개에 해당하는 요리가 발전해있다. 독일의 경우 요즘은 식습관이 영미권~프랑스화되어 젊은 세대로 갈수록 잘 안 먹지만 할머니가 끓여준 아인토프(Eintopf)는 독일의 전통적인 푸근함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여긴다. 폴란드에서는 본채에 곁들이는 전식으로서 한국의 국처럼 건더기보다 국물이 중심이 되는 요리가 필수요소이며, 반대로 러시아와 독일은 찌개와 가깝게 재료들 듬뿍 넣어서 끓여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