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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레디, Haredi, 높은 출산율, 병역 면제, 유대교, 초정통파 유대교인(Ultra-Orthodox Jews), 대법원 징집 판결

Jobs 9 2024. 7. 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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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레디는 일반적으로 유대교의 근본주의 단체로 알려진 유대교의 한 종파다. 극보수주의 유대교 종파를 믿는 유대인 집단을 일컫는 말로 일부 종파를 제외하면 대개 폐쇄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성향을 보인다.

이스라엘에는 메아 셰아림, 벳 이스라엘, 게울라, 하르 노프, 라못, 라맛 슐로모, 산헤르리아, 네베 야아콥, 말랏 다프나, 라맛 에슈콜, 에즈랏 토라, 그리고 텔아비브 인근의 브네이 브락 등의 지역에 하레디 공동체가 존재한다

현대 유대인들의 생활 양식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뉘는데 세속화되어 유대교 종교 양식을 어느 정도만 따르는 수준으로 끝나는 세속 유대인들, 세속주의를 거부하지는 않지만 유대교 종교적 생활 양식을 나름대로 철저히 따르는 현대 정통파 유대교, 그리고 흔히 하레디로 불리는 초정통파 유대교인(Ultra-Orthodox Jews)이다.

하레디란 명칭은 히브리어로 두려움 또는 경외를 의미하는 '하레드(חָרֵד‎ / kharéd)'라는 단어에서 나왔고 복수형은 '하레딤'이라고 한다. 한국과 서구에선 초정통파/극정통파(Ultra-Orthodox)라는 명칭을 쓰기도 한다. 하레디는 처음부터 하레딤이란 이름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며 일부 정통파 유대교들이 현대에 와서 그렇게 분류되는 것이다.

 

기원


하레디의 대부분은 아슈케나짐에 속해 있다. 세파르딤 사회에서는 중세 세파르딤 출신 의사이자 신학자였던 마이모니데스의 영향으로 근본주의-신비주의 계열 분파들과 합리주의-이성주의 계열 분파들 사이의 갈등을 조화할 여지가 있었다면 아슈케나짐 사회에서는 이런 중재 역할을 할 만한 구심점이 부족했다.

18세기까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서 좋은 대접을 받고 살던 유대인들은 18세기 말 폴란드 분할로 자신들을 지켜주던 폴란드가 무너지자 러시아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 오스트리아 제국 각지에서 탄압을 받게 되었다. 과거 폴란드 영토를 중심으로 거주하던(폴란드,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폴란드 유대인들은 근현대 두 개의 그룹으로 갈라졌는데 레베와 혈통 세습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하시딤과 그렇지 않은 아쉬케나지 집단인 리타임이 그것이다. 리타임은 합리주의, 이성주의 성향이 강했다면 하시딤은 신비주의 성향이 강했고 하시딤 중에서 근본주의화된 그룹이 하레디의 기원이 되었다. 

종교적인 하시딤은 모스크(이슬람 성원)에서 기도하는 것이 허용되고 무슬림과 겸상하는 것이 허용되지만 기독교인들의 집에는 방문도 안 되고 기독교인들의 집에 초대받아 갔을 때 겸상도 불가하며 성가를 듣지 못하고 기독교 교회에는 발도 붙일 수 없다는 점에서 기독교에 더 부정적이라는 점을 기독교인들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는 유대인들이 후우마이야 왕조 치하의 스페인에서 상당히 번영하며 무슬림과는 잘 지냈지만 기독교인들은 절대 주류가 될 수 없었고 튀르키예에서도 유대인들보다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이 더 많이 학살당한 점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즉 이슬람과 유대교는 공존 가능한 종교지만 이 두 종교는 모로코, 튀르키예 등의 하나피파나 온건한 이슬람 혹은 유대교 종파를 제외하고 기독교와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런 현상의 이유는 의외로 간단한데 유대인들의 생존 역사와 관련이 있다. 과거 하시딤이 정체성을 지켜가며 살아야 했던 환경이 기독교 국가였기도 했고 온건한 개종이 거의 불가능한 이슬람과 유대교와의 관계와는 달리 유대교에서 기독교로의 개종은 의외로 빈번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는 유대교 전통을 유지하며 신약을 받아들인 메시아주의 유대교(Messianic Jew)도 꽤나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와의 소통을 금지하는 것은 하시딤이라는 정체성을 보호하고 후대에 승계시키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도입된 측면이 있다. 

폴란드와 이웃한 헝가리에서는 1869년부로 유대교 진보파와 보수파가 서로 완전히 갈라섰는데(영어 위키백과 문서) 1848년 헝가리인들이 오스트리아 제국에 맞서 대대적으로 봉기하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세속주의 성향 유대인들이 헝가리인에 동화되어 헝가리 민족주의 측에 합류하였기 때문이다. 한때 서로 사이가 좋았던 헝가리 기독교인들과 헝가리 유대인들은 20세기 들어 다시 서로 원수 관계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민족 자결주의 원칙에 의해 분할되는 과정에서 헝가리가 엄청난 양의 영토를 잃어버렸고 이러한 연유로 민족적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헝가리인들이 분풀이로 자국 내 소수자 집단인 헝가리 유대인들을 공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은 유대교 근본주의자들에게 유리한 판도를 만들어주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헝가리 유대인들은 유럽의 유대인 그룹 중 가장 현지인들과 동화된 정도가 높았을 뿐만 아니라 헝가리의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 비율이 많아서 헝가리의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공격이 세속주의 유대인에게로 향했기 때문이다. 헝가리 유대인들은 헝가리 왕국 시절에 심각한 차별을 받은 것은 물론 홀로코스트 당시 엄청난 수가 희생당하는 대재앙을 겪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헝가리의 보수파 사트마르(Satmar) 유대인은 홀로코스트가 세속주의 성향의 유대인들의 이방인과 섞여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린 고난이자 징벌이라고 생각하고 더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교리를 내세우게 되었는데 이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오늘날 하레디의 직계 기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트마르 유대인들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을 전후하여 대거 미국이나 이스라엘로 망명하였다.  

하레디 본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고대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랍비 유대교의 적장자라고 주장하지만 오늘날 비교 종교학계에서는 하레디의 직계 기원을 20세기 초반의 유대교 근본주의 운동에서 찾고 있다.참조 아닌 게 아니라 하레디의 복식이나 식문화 등 전통 문화는 근현대 갈리치아 지방이나 상술한 사트마르 유대인들의 근거지였던 사투마레 지방의 것을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는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부터 예루살렘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살던 사람들도 있고 나중에 해외에서 들어온 사람들도 있다.

높은 출산율과 영향력
평균 출산율 2.5명인 다른 이스라엘인들에 비해 평균 6.~7명대라는 후덜덜한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고 인구 증가율은 연평균 4%대에 달하는 수준으로 2009년에 75만이었던 것이 2022년에는 122만 명이 되었다. 

대부분 10대 후반에 결혼하며 아무리 늦어도 20대 중반을 넘기지 않는다. 다만 20대 중반을 넘어도 결혼을 못 하거나 안 하는 경우도 아예 없지는 않다. 일부 하레디 공동체가 이런 성향을 보인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전체 하레디가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연애결혼도 간간히 존재한다. 

투표율도 높아 이를 바탕으로 이스라엘 국회의원 120명 중 20명을 차지하여 정치적 영향력도 막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보조금 문제와 더불어 정치적 영향력을 넓혀가는 하레디들에 대한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다. 하지만 보조금을 끊을 수 없는 이유도 있다. 그 이유는 민주 국가이며 유대인 국가인 이스라엘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스라엘인은 유대인 600만 명, 아랍인 300만 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영토 내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시민권이 없는 팔레스타인인만 440만 명이다. 일국 방안이 거론조차 안 되는 이유가 인구 차이 때문인데 정말 팔레스타인까지 통합해서 선거하면 이스라엘은 그날로 이슬람 국가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레디가 현재와 같은 어마어마한 출산율을 딱 두 세대만 더 유지해 주면 팔레스타인을 인구로 짓눌러 버릴 수 있기 때문에 그냥 합병하고 시민권을 줘도 유대인 주도의 정치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하레디를 제외한 유대인들은 출산율이 2.5 수준인데 낮다고 할 수는 없는 수치지만 문제는 군 복무를 마친 후 이스라엘을 탈출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점이다. 유럽에도 예전처럼 유대인이라고 못살게 구는 국가는 거의 없으며 중동이나 북아프리카계 이민자들보다는 오히려 백인이라고 우대해 주는 경우가 더 많고 미국에 가서 살아도 되는 데다 어디에서나 유대계 커뮤니티가 활발해서 이주해서 살기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잊을 만하면 머리 위로 까삼 로켓이 날아오거나 테러로 사람이 죽고 언제 온 가족이 전쟁의 참화에 휩쓸릴지 모르는 땅에는 고등 교육을 이수한 "깨어있고 진보적인 유대인"일수록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레디는 이념상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으며 어차피 다른 나라에서 먹고살 능력도 없기 때문에 떠날 수도 없다. 이들의 출산율은 타 아랍 국가는 물론이고 이스라엘 무슬림까지도 압도하는 수준이다. 거기다 이미 인구가 굉장히 많이 불어나서 이들의 표심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됐으니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이들에 대한 지원을 끊을 수 없다. 물론 이스라엘 정부도 이게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어서 하레디가 생산성 있는 유대인 구성원으로 거듭나게끔 교육하고 계도하는 건 이스라엘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지만 교육과 계도를 함에 있어서도 하레디의 압도적인 출산율 때문에 이들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는 강압적인 정책을 동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인데 유대인들의 민주 국가로서 이스라엘을 남기기 위해선 이들이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레디가 거의 기생충 수준으로 세금을 빨아먹음에도 이들에 대한 지원을 찬성하는 여론이 결코 적지 않다. 하레디 징집론에 대한 찬반이 많자 먼저 시범적으로 모병 부대를 만들어봤는데 군대에 지원할 경우 하레디 청년들에게 코딩 교육 같은 걸 시켜준다고 광고했는데 많은 사람들의 편견과 다르게 제대로 된 일을 배우고 싶은 하레디 청년들이 꽤나 많이 지원했고 군에서 이들을 IT 기업에 재택 근무로 소개, 채용하는 정책이 꽤나 성공적으로 시행 중이다. 하레디들은 하레디들의 가게만 이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들 중 일부만 월급을 받아도 나름 하레디 마을에서 선순환 경제가 돌아가서 하레디들의 군 복무에 대한 반응도 점차 개선되고 있다. 

하레디의 출산율이 높은 이유는 가정을 위해 독립을 매우 일찍 시키는 풍조 때문이다. 세속적인 교육 수준은 경전만 공부하는 남성보다 차라리 경전을 공부하는 남편을 먹여 살려야 하는 여성이 높다. 오히려 여성의 직업 참여율이 남성보다 높은, 동북아시아보다 여성 노동 참여를 많이 하는 서구에서도 보기 드문 집단이다. 2020년대 기준 한국 남성 노동 참여율과 이스라엘의 하레디 여성 노동 참여율은 엇비슷 하거나 하레디 쪽이 더 높으며, 하레디 남성 노동 참여율은 한국 여성 노동 참여율보다 낮다. 아내가 문지방을 넘나들지도 않고 '안일'을 하라던 조선시대나 과거 한국의 보수적 가정, 남성이 일을 많이 하는 아랍계와 달리 어머니가 유연한 근무를 택하거나, 조부모나 친척이 키워주거나, 보육을 전담하는 기관에서 키워주거나, 짬이 나면 남편이 돌보는 식으로 해결한다. ## 남성의 종교적 지식이 여성의 세속적 지식보다 권위가 높으므로 여성의 권리가 높은 게 아니다. 어머니가 양육에 주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라 많은 부분에서 이를 악물고 어머니가 키우고는 한다. 

육아 지원금이 끊기는 17세만 되어도 부모가 딸들을 시집보내려고 안달이고 집에서 군식구 취급받는 여성들도 빨리 신랑 찾아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려 드는데 그렇게 가정을 꾸렸을 경우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만 한다. 아기를 못 낳는 아내가 소박맞는 이야기는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항상 있던 이야기인데 하레디 사이에서는 더하다. 교육 수준도 낮고 아이를 많이 키우려면 어려운 일도 하기 힘드니까 돈을 많이 벌기는 힘들고, 남편은 일도 안 하니 가족 전체가 육아 지원금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피임을 금기시하기 때문에 아이를 정말 힘닿는 데까지 계속해서 낳는데 많이 낳을수록 지원금 액수도 커지고 지원 기간도 길어진다. 자녀 지원금의 액수가 토라를 공부하지 않는 여자가 나서서라도 외벌이는 해야 할 정도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기 생각에서 먹고는 살 수 있으니 그걸 받고 낳고 보는 것이다. 가난한데 어떻게 애를 키우냐면, 한 5살 정도가 넘으면 동생을 돌보도록 시킨다든가, 종교적인 이유로 빈곤이 영혼을 정화한다고 믿는다든가, 작은 집에서 그냥 '행복하게' 산다는 식의 선택을 하며 사는 것이다. 

다만 상술한 기조가 계속 유지되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레디에 대해 교묘한 인구 공학 정책을 펼치기 때문도 있다. 그렇다고 여성도 징집하는 성평등한 비하레디 유대인들 문화에서 남성만 교육하는 학교를 지어주는 건 문화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따라서 하레디 징집론의 핵심은 남성만 징집하고 남성만 군대에서 교육하려고 하는 것이다. 약 3년간의 집중적인 교육으로 중고등학생 수준의 지식만 갖추게 해도 기본적인 산업 사회의 일꾼이자 병사로 기능할 수 있다. 이러한 하레디 남성 교육 정책이 성공하면 하레디의 출산율과 생산성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 갈수록 유대인의 인구가 밀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 처한 상황에서 레벤스보른 같은 짓을 할 수도 없는데 자발적으로 유대인들을 무한대로 찍어내는 샘과 같은 존재니 기생충이라며 온갖 욕을 먹어도 결국 하레디는 이스라엘의 희망이며 이들을 어떻게든 쓸모가 있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현재의 이스라엘의 최대 과제다

 

 

병역 면제

초대 총리인 다비드 벤구리온은 건국 이듬해인 1949년에 토라를 연구하는 하레디 400명에게 병역면제라는 특권을 주었다. 이때만 해도 하레디 인구가 워낙 적어 이들의 병역면제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해외 하레디의 유입과 높은 출산율을 바탕으로 2017년에 총인구 12%(10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이스라엘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자 얘기가 달라졌다. 이에 따라 2014년 하레디 징병법이 통과되었다. 당시 대규모의 하레디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징병 거부 무력시위를 벌였는데 이들의 패악질에 질릴 대로 질려버린 이스라엘 경찰이 곤봉으로 무차별 구타 및 줄줄이 연행한 적이 있다. 현재도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 볼 수 있는데 구타하고 있는 경찰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달려드는 하레디를 단숨에 진압봉으로 머리를 가격하여 쓰러트리는 모습을 보면 이들이 벌인 패악질에 대한 증오가 상당한 듯하다. 

하레디/문제점 문서의 병역거부 문단에서는 이들의 병역거부로 인한 폐해를 다루고 있고 본 항목에는 하레디의 병역이 어떤 식으로 이행되는지를 다룬다.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 국가에 비해 인구가 적어 여성까지 징병하는데 인구의 12%를 차지하는 하레디의 병역 문제는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이러다가 아랍과 싸워 망하는 게 아니라 인구 대부분이 하레디가 차지하여 망할 지경이었다.

이에 따라 2014년에 이스라엘 의회는 하레디 징집 대상에 넣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레디는 징집 대상 연령층의 60%가 입대해야 하며 이후 3년 단위로 징집 비율이 증가한다. 만약 하레디 공동체가 특정 시점까지 입대 비율을 맞추지 못하면 이후에는 징집 대상 연령층은 전면 징집된다. 하레디 내부적으로 여러 파벌로 나눠져 있는데 각 파벌별 지도자에게 로비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였다. 

몇몇 하레디들은 헌법 소원을 제기했지만 이스라엘 대법원은 2017년 9월에 '하레디의 병역면제는 위헌'이라고 판결하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2012년 판결을 재확인한 것으로 전술한 징집법도 2012년 판결의 영향을 받아서 만든 것이다.

최초의 하레디 부대는 1999년에 창설되었다. 일종의 시범 부대인데 나블루스 인근에서 육군 보병 부대인 크피르 여단 소속으로 '네짜예후디(유대의 영원한) 부대'가 정식 명칭이다. 초기 부대원은 30명으로 초기까지만 해도 효용성과 운영비로 인해 여론이 안 좋았지만 이스라엘 정부 측에서는 미래가 달린 문제라 꾸준히 유지하였다.

이 부대의 최대 특징은 두 가지인데 일과 시간에 <토라> 공부할 시간을 보장한다는 것, '카셰르' 혹은 '코셔'라는 고유의 식습관을 지킬 수 있는 급식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하레디 식으로 머리를 기를 수 있다는 것 정도는 기본 옵션이다.

이렇게 하레디에 맞춰서 부대를 개선하자 2009년에는 부대원이 1,000명을 돌파하였고 하레디 징병제가 통과된 후에는 수천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스라엘 공군도 하레디를 위한 부대를 만들었다. 하레디는 생계 보조비를 받으니 탱자탱자 놀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매우 가난하다. 옷 자체가 남루하다. 이를 노리고 이스라엘 공군은 하레디 부대에 입대하면 토라 연구할 시간을 주는 것은 기본 옵션이고 추가로 전역 후 돈을 벌 수 있는 컴퓨터 기술을 알려준다고 하여 부대원을 모았다. 하레디는 하레디 공동체에서 생산한 물건만 쓰는 성향이 강해 이스라엘 공군에서 기술을 배운 하레디가 만든 IT 기업도 잘나가게 되었다.

하나 더 짚고 가자면 이들이 군 복무가 안 되는 이유는 남녀가 공동으로 군 복무를 하는 이스라엘군에서는 여자와 남자의 접촉이 많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남자들만 이루어진 부대를 만들면 상당수 입대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전투력은 장담할 수 없다. 이들은 원래 싸우는 데는 젬병인 걸로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유명했다. 세속 이스라엘군이 강군으로 유명한 것과는 사뭇 다른 사실이다.  

2024년 6월 25일 (현지 시각) 이스라엘 대법원이 "하레디의 병역을 면제할 법적 근거가 없음" 을 확정함으로써 하레디 남성도 병역의 의무를 피해갈 수 없게 되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10개월 넘게 지속되고 이스라엘군과 인질의 인명 피해가 누적되면서 하레디들에게만 병역을 면제하는 정책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반정부 시위로 나타났고 헤즈볼라와의 전쟁까지 임박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사법부가 하레디 징집의 현실적 필요성과 국민 정서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하레디들은 고속도로에 드러눕고 이스라엘 국기를 찢는 등 극렬한 반감을 표출하였다. 그러나 여성 인질과 병사들의 인명 피해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사법부의 최종판결까지 나왔기 때문에 하레디들은 징집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다만, 120명인 이스라엘 의회의 과반인 60석을 겨우 넘긴 (64석) 네탄야후 총리의 연립정부가 하레디 징집을 반대하는 극우 유대주의 정당의 지지를 잃게 되면 이스라엘은 조기 총선을 치러야 할 수도 있어 정부로서도 징집을 당장 강행하기가 쉽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대법원 '징집 판결'에 "죽더라도 입대 안 해"
돌 던지고 불 지르고 현직 장관 차량 공격
이스라엘 대법원, 병역 '마지막 성역' 타파
하레디 징병대상자, 6만7000명…24% 점유
"세속의 대중들, 하레디 병역 면제에 분노"
가자 전쟁의 장기화로 '오래된 분열' 확대

유대 초정통파 "병역 면제 없애면 연정 탈퇴"
초정통파 유대교도(히브리어 '하레디') 학생들에 대한 이스라엘 대법원의 징집 판결이 급기야 폭력 시위를 불렀다. 일요일인 30일 수만 명의 하레디 남성들은 예루살렘에 모여 징집 판결 항의 집회를 개최하고 날이 어두워지자 이 중 수천 명이 폭력 시위를 벌였다. 더타임스오브이스라엘과 AP 보도에 따르면, 시위대는 초정통파 유대교 복장인 검정 챙모자와 검은색 상‧하의를 입고 거리를 점령했다.
 
하레디 '속세 병역' 거부…예루살렘서 폭력 시위

일부 시위대는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고 길거리에 불을 질렀으며, 귀가하던 이츠하크 골드노프 주택건설부 장관의 관용차를 공격했다. 골드노프는 연정에 가담한 초정통 유대주의 정당인 토라유대주의연합(UTJ)의 대표이다. 하레디 시위대는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골드노프가 대법원의 징집 판결을 수용하되 징집 면제 연령을 현 26세에서 21세로 낮추고 징집 비율을 "아주 천천히" 올리는 절충안을 지지한 데 분노하고 있다고 더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전했다. 

이에 경찰은 물대포를 쏘며 해산을 시도했지만, 시위는 이날 밤까지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5명이 체포됐다. 일부 하레디는 "우리는 죽더라도 입대하지 않는다"라거나 "우리는 적의 군대에 입대하지 않는다"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들을 들고 있었다. 앞서 27일에는 수백 명의 하레디 남성들이 이스라엘 중부의 주요 고속도로를 2시간 동안 점거했다. 경찰이 해산을 시도하자 고속도로에 드러누워 "군대가 아닌 감옥으로"라고 외치며 저항했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지난 25일 대법관 전원일치로 하레디 학생에 대한 병역 면제 혜택은 법적 근거가 없으며, 이들도 보통의 이스라엘 청년과 마찬가지로 입대할 나이가 되면 징집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또한 병역 의무 불이행 땐 정부의 복지 지원 및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 대법원, 병역 '마지막 성역' 타파

하레디 징병대상자, 6만7000명…24% 점유

이스라엘에선 18세 이상 남녀 모두 병역 의무를 진다. 그러나 유대교 율법을 엄격히 따르며 세속주의를 거부하는 하레디 학생들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부터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다. 홀로코스트로 말살될 뻔한 유대 문화와 학문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현재 하레디는 이스라엘 전체 인구 950만 명 중 14%를 점하고 있으며, 가장 빠르게 인구가 늘고 있는 집단이다. 특히 '이스라엘 민주주의 연구소'(IDI)에 따르면 젊은 층이 불균형적으로 많아 전체 징집 연령대만 놓고 보면 24%에 이를 정도다. 현재 징병 대상자는 대략 6만7000명 수준으로 알려졌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앞서 2017년 9월 이스라엘 대법원은 하레디에 대한 병역 면제를 위헌으로 판결했다. 그러나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 등의 반발로 그동안 이스라엘 정부는 대법원의 위헌 판결에 맞춰 문제의 규정을 수정하지 못했다. 도리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연정의 핵심 파트너인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 샤스(Shas)의 요구에 따라 하레디에 대한 병역 면제 영속화한 입법을 추진했다. 

당연히 안팎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집권 여당인 네타냐후의 리쿠드당조차 대놓고 반대하기도 했다. 마침내 지난 4월 기존의 병역 면제 규정은 효력이 끝났다. 관련 규정이 '공백'이 된 상황에서 대법원은 하레디도 병역 의무를 벗어날 수 없다고 못 박은 것이다. 이로써 네타냐후 극우 연정이 추진해온 하레디 병역 면제 영구화 입법은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됐다. 


"세속의 대중들, 하레디 병역 면제에 분노"

가자 전쟁의 장기화로 '오래된 분열' 확대

대법원의 하레디 징집 판결은 이스라엘 보통 시민의 광범위한 불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작년 10‧7 하마스 기습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개시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가자 전쟁이 8개월 넘게 장기화하면서 이스라엘군도 600명 숨졌다. 이에 네타냐후는 병역자원 부족을 구실로 예비군 면제 연령의 상향과 복무 기간 연장 관련 입법을 추진했다. 그러자 보통 시민 사이에서 국가 위기에서도 특별 대접을 받는 하레디를 향한 분노가 분출된 것이다. 곪았던 게 터졌다. 

AP 통신은 "세속적인 대중 사이에서 이런 (병역) 면제는 오랜 기간 분노의 한 원천이었고, (세속적 대중과 하레디 사이의) 분열은 지난 8개월의 전쟁 기간에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세속과 종교 사이의 기존 긴장에 불을 붙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했고, 뉴욕타임스도 "이스라엘 사회의 가장 고통스러운 분열 중 하나를 확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갈리 바하라브-미아라 검찰총장은 정부 관리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군 당국이 내년에 최소 3000명의 하레디 학생을 징집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그것으론 일반 징집 대상자와의 군 복무 격차를 해소하는 데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자 전쟁 이후 하레디 사회에서도 징집 지지 목소리가 없지 않았지만, 거의 대다수는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 


세속주의와 유대 초정통파 동거 네타냐후 연정

유대 초정통파 "병역 면제 없애면 탈퇴" 위협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입지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6월 9일 중도성향 야당인 '국가통합당'의 베니 간츠 대표가 네타냐후의 초강경 일변도 정책과 전후 가자 통치 계획 부재 등을 비판하며 전시내각을 탈퇴하고 일주일 후 전시내각은 해체됐다. 이번 대법원의 하레디 징집 판결은 취약해진 네타냐후의 연정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하레디 징집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샤스, 토라유대주의연합(UTJ) 등 연정에 가담한 초정통 유대주의 정당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서다. 그동안 이들 정당은 하레디에 대한 병역 면제 혜택이 없어지면 연정을 탈퇴하겠다고 위협해왔다.  

뉴욕타임스는 25일 "대법원 판결로 인해 세속주의 정당과 초정통파 정당이 함께한 네타냐후의 취약한 전시 연정이 위협받게 됐다"며 "정부 지지율이 낮은 상황에서 어느 쪽이든 탈퇴하면 연정이 무너지고 새 선거를 치르게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네타냐후에겐 하레디의 반발 만이 문제는 아니다. 하마스에 납치, 억류된 인질들의 조속한 귀환과 조기 총선을 요구하는 피해 가족과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dpa 통신에 따르면, 예루살렘에서 하레디의 폭력 시위가 있던 30일 수도 텔아비브를 비롯해 이스라엘 도시 여러 곳에서 시민 수천 명이 인질 귀환과 조기 총선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17일에 이어 또다시 벌였다. 시민들은 네타냐후가 연정 내 극우파의 눈치를 보면서 인질 석방 을 위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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