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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筆寫, 깊은 독서, 고행, MZ세대 필사 열풍

Jobs9 2024. 9. 7.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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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筆寫, 깊은 독서, 고행, MZ세대 필사 열풍

 

필사(筆寫)는 책을 손으로 직접 베껴 쓰는 일을 말한다.

인쇄술이 제대로 상용화되기 전까지는 동일한 책을 만들려면 당연히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직접 베껴 써야만 했다. 그런데 필사는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작업량도 많아 이 당시에는 책 값이 상당히 비쌌다. 그래서 수도원의 고행 과정에도 성서 필사가 있었을 정도.

동양에서도 불교의 불경을 필사하는 사경이 단순히 인쇄술의 미발달을 넘어 옮겨쓰는 행동 자체가 중생과 내세를 이롭게 하려는 공덕 행위의 일종으로 간주되어 권장되었다. 현존하는 고려시대의 사경을 보면 색지나 비단에 금가루를 섞은 먹으로 글자를 쓰고 불경에 등장하는 장면을 삽화로 그려 넣는 등 지금 기준으로도 화려하기 그지없는 수준 높은 작품이 상당히 많으며, 현대에도 사경 자체를 전문으로 하는 예술 분야도 있다. 일본에서도 다이라노 기요모리가 일족의 번영을 기원하면서 一門의 사람들과 함께 사경해 이쓰쿠시마 신사에 봉납한 헤이케 노쿄(平家納経)가 현존하는데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었다.
몇 개월에서 몇 년간에 걸친 필사는 힘든 작업이었다. 말 그대로 밭갈이에 비유됐다. 심지어 천국에 들어가려는 참회의 방법으로서 간주할 정도였다. '어느 정도 필사하였는가'로 천국으로 가는 길을 계산하기도 하였다나.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문헌 자료를 인쇄하거나 촬영하기가 어렵다면, 학자들이 직접 필사해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내용을 왜곡하거나 첨삭하는 등의 필사자의 주관이 들어가거나 오자, 탈자와 같은 실수가 있을 수 있으므로 교차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모작 항목에도 서술되었지만, 고대의 서적이나 서예 미술품 가운데 원본은 소실되어 사라지고 필사본이나 모사본이 유일하게 현대에 남아있는 예가 잦다. 이런 작품은 비록 베껴 만든 것일지라도 매우 높게 평가받고 희귀한 자료로서 취급된다. 그 대표로 왕희지의 난정서도 원본은 소실되었고 모사본만이 현대에 존재한다.

 

소설 훈련법
작가 지망생이 훈련하는 방법으로 기존의 창작품을 베껴쓰는 훈련이다. 필사의 효과는 다음과 같다.
더욱 깊은 독서를 경험한다.
글쓰기 경험을 간접으로 경험한다.

필사는 깊은 독서이다. 필사하다 보면, 어떤 문장은 외울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라는 격언처럼, 작가에게 끈기는 매우 중요하다. 집중력을 발휘해 오래 앉아 많이 써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필사는 집중력을 키우고 글쓰기 경험을 대리 경험하는 효과가 있다.

워드프로세서로 베껴 써도 무방하지만, 보통은 필기구로 쓰기를 추천한다. 그 이유는 아날로그의 장점 때문이다. 종이를 볼때의 눈의 피로도는 모니터보다 덜하고 글쓰기 속도가 타자기보다 느린 만큼, 쓰는 문장을 더욱 많이 느끼고 더 느리고 깊게 생각할 수 있다. 문장을 오래 쓰면 손이 피곤해지므로 간결체로 쓰는 버릇을 들이기 쉽다는 장점도 있다. 

작법을 훈련하려고 워드프로세서로써 필사하고자 한다면,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어 가면서 천천히 해야 한다. 필사는 또다른 독서일 뿐, 백지에 자신의 소설을 쓰는 일과는 다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절대 기계처럼 정신줄 놓고 받아쓰기하는 막노동이 되지 않도록 순간순간 흩어지는 집중력을 되잡는 일이 중요하다. 

필사하다 보면 자신의 작품이 필사해 본 다른 작품에 매우 많이 영향받으므로 어떤 작품을 필사할지는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한다. 

필사하는 몇몇 지망생은 문장에만 집착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망하는 분야가 '시'가 아니라 '소설'이라면 이야기가 더욱 중요하므로 문장의 질만 올리는 필사는 효율이 나쁘다. 이 점을 극복하고자 한다면, 문장을 베껴쓰되, 그 문장이 나온 맥락, 화자의 의도, 청자가 취할 만한 행동,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뒤에는 무슨 내용이 이어질지 등등을 조금씩 상상하면서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보자. 

시를 지은 윤동주는 시인 백석의 시집을 필사했다고 한다. 신경숙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필사하면서 문체를 만들었다고 한다.

 

 

필사 훈련의 문제점
신경숙은 다른 작가의 문장을 여러 차례 표절했는데 그것에는 필사가 악영향을 끼쳤다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다. 국내 문단은 유난히 아름다운 문장(美文)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런 경향을 현대 독서인이 원하는지는 의문스럽다. 미문이 추앙받던 때는 소설을 읽을 만큼 사람들의 시간이 넉넉하던 시절이다. 하지만 현대는 속도감 있는 문장과 좋은 이야기를 더욱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필사에는 문장력을 향상시키는 장점이 있지만 구성력은 떨어지게 하는 단점도 있다. 문장을 오래 붙잡기 때문이다. 손은 움직이는데 머릿속은 움직이지 않는 셈이다. 어쨌든 유난히 한국에서는 필사가 중요한 소설 공부 방법으로 여전히 통용된다.  

그림 연습의 트레이스와 위치가 비슷하다. 트레이스 역시 초보자에게 유효하지만, 중급자에게는 무효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초보자에게도 별로 좋지 않다고 보기도 하는데 다른 사람의 창작품 베끼기를 반복하면 개성을 잃기 때문이다. 이것을 필사에도 적용한다면, 이런 공부법을 마냥 추천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개선된 필사법
필사 과정에 교정을 추가한다. 작가는 기자나 편집자 출신이 많다. 마르케스ㆍ헤밍웨이ㆍ김훈은 기자 출신이며, 편집자 출신은 셀 수 없이 많다. 마루야마 겐지는 텔렉스 기사로 일하면서 문장을 익혔다고 한다. 이들은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 소설이 아닌 글을 보고 고치며 기술을 익혔다. 소설이 아닌 전문영역에서도 글쓰기를 익힐 수 있다는 반증이다. 즉, 이들이 문장을 익혔던 방식을 공부법에 반영하는 것이다.

교정 과정이 추가된 필사는 훨씬 어렵지만 문장과 맞춤법을 더 정확하게 익힐 수 있다.

 

오래된 번역서를 필사하며 교정한다
80년대 전후 번역서를 살피자. 원작은 분명히 훌륭하지만, 기존 번역서는 문장력이 형편없는 예가 잦다. 일부는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전자 출판이 없던 시기인지라 번역과 편집력이 지금보다 심각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인터넷이나 SNS가 없어서 대충 번역해서 내도 불평을 덜 들었고 호황이던 시기인지라 번역 수준이나 문장 수준이 엉망이어도 잘 팔렸다. 독자 피드백이 활발한 현재에는 출판을 이처럼 엉터리로 하기는 어렵다

고로 헌책방에서 非영어권·非일어권 출신으로서 좋은 작가의 책을 찾자. 스페인·중국 번역본 등은 중역이 많아 더욱 엉망이다. 순수문학이 아닌 SF나 로맨스, 추리소설 등 장르문학도 좋다. 무엇이든 문장이 엉망진창이어야 한다. 이들을 읽을 만한 물건으로 만든다는 생각으로 문장을 고치면서 필사하자. 개판으로 해놓은 오역 탓이므로 선배 작품을 난도질한다는 죄책감을 품지 않아도 된다. 장편은 손이 많이 가므로 단편을 고르자. 영화 자막을 고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작가가 사망하고 70년이 지나면 저작권이 만료되므로, 이런 작품을 교정하여 블로그 등지에 공개해도 좋다.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외국어 필사
필사할 지문만 잘 선택하면 좋은 공부법이다. 하지만 외국어를 한국말로 옮길 때 주의하지 않으면 번역체를 배울 수도 있다.

 


삼국지의 감택이 필사를 직업으로 삼았다. 그는 이 일로 학비를 벌었는데 필사를 하는만큼 지식이 쌓여 다양한 학문에 능통해지자 손권에게 등용된다.
로그 호라이즌의 등장인물 시로에의 서브 직업이 필사사이다. 작중에서도 필사사로서의 능력을 이용해 활약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정조의 후궁 의빈 성씨와 정조의 누이 청연공주,청선공주는 필사 시기가 알려진 소설 중 가장 오래된 필사소설 곽장양문록을 1773년 봄에 필사하였다
초대 그리스도교에선 당연히 인쇄술이 없었기 때문에 성경을 하나하나 전부 손으로 베껴, 즉 필사를 해야했다. 그런데 문제는 필사를 하는 과정에서 원래 성경 원문에 없던 내용을 필사꾼들이 멋대로 만들어서 집어넣거나 혹은 원문에 있는 내용을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일부러 빼버리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4세기의 어느 성경 필사본을 보면, 가운데 부분에 "어리석은 무뢰한이여! 옛 구절을 빼거나 더하지 말고 그대로 놔두시오!"라는 경고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또한 성경의 맨 마지막 부분인 요한의 묵시록에서 "이 글에서 문구를 빼버리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생명책의 명단에서 그 이름이 빠질 것이고, 문구를 더하는 사람은 지옥에 떨어져 받을 형벌의 갯수가 늘어날 것이다."라는 글귀가 있는 이유도 묵시록을 필사하면서 문구를 빼거나 더하지 말고 원문 그대로 놔두라고 필사자들에게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MZ세대 필사 열풍


마른 향내 나는 연필로 글을 써본 적이 언제였던가. ‘사각사각’ 부드럽게 써지는 연필 대신 컴퓨터 자판이 글을 쓰는 손도구가 되고, 퀴퀴한 냄새 나는 종이 대신 매끈한 전자기기가 책을 대신한다. 눈이 번쩍 뜨이는 문장에 연필로 밑줄 긋는 즐거움은 언젠가 사라질지 모른다.
하물며 손글씨 쓰는 즐거움은 말해 무엇할까.
그러나 디지털 시대가 왔다고 글쓰기의 힘이 약해지진 않았다. 메일, 블로그, 미니홈피에 이어 140자로 글을 쓰는 트위터 등에서 일상적인 글쓰기가 이뤄지면서 글을 잘 쓰는 기술을 배우려는 이들이 역으로 늘었다. 종이와 연필이 아닌 컴퓨터로 글을 쓰는 시대가 됐을 뿐 좋은 글을 읽고 쓰고 싶은 열망은 더 커졌다.
소규모 출판이나 1인 미디어에 빠진 사람들이 늘고 있는 흐름이 이를 증명한다. 바야흐로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다.


글쓰기의 시작은 책을 잘 읽는 것부터 시작한다. 소리 내 읽고 듣는 낭독이 최근 책 읽기의 흐름이라면 글쓰기의 영역에서 오랜 시간 주목해온 독서법은 책을 베껴 적는 ‘필사’(筆寫)다. 손으로 한 자 한 자 글을 베껴 적다 보면 눈으로 읽을 때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경전, 소설, 기사, 영화 등 필사의 대상도 여러가지다. 필사로 책을 읽는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누군가의 문장, 작품, 생각을 닮고 싶어 필사에 집중한다. 중독되면 필사(必死)적인 필사로 이어진다. 손글씨가 사라지는 시대, 눈이 아닌 손으로 읽는 필사의 맛은 무엇일까. 

전북 전주에 있는 최명희문학관은 작가의 작품을 기리기 위해 지난 2월부터 <혼불> 10권을 일반인들이 한 장씩 옮겨 적는 이벤트를 열었다. 문학관 방문객과 인터넷 신청자들이 필사에 참여했다. 애초 11월까지 열 계획이었던 필사 이벤트는 호응이 뜨거워 10월 중순에 종료됐다. 필사 참가자는 모두 658명.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로 시작한 글이 ‘온몸에 눈물이 차오른다’에서 끝이 난 <혼불>은 원고지 분량으로는 대략 1만2000여장에 이르지만 미숙한 원고지 사용자들이 있어 본래 분량보다 많은 원고지 1만2500여장이 쓰였다.  

산업디자이너 조성휘(36)씨도 <혼불> 필사에 참여했다. 전권을 다 읽지 못했지만 평소 <혼불>의 글을 좋아했던 그는 필사 이벤트에 회사 동료 7명과 아내까지 참가시켰다. 5권 ‘자시의 하늘’ 중 일부를 아내와 이어달리기하듯 써내려간 필사는 2월부터 4월까지 꼬박 두 달여의 시간이 걸렸다. “당시 임신중이던 아내가 필사를 하며 태교를 하면 좋을 것 같았어요. 처음엔 왜 해야 하는지 의아해하던 아내도 필사를 마칠 즈음엔 잘한 것 같다며 좋아하더군요.” 

아내와 함께 태교 삼아 처음 해본 필사는 그에게도 만족감을 줬다. 인터넷만 사용하다 오랜만에 편지 쓰듯 손글씨를 써보니 몸과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숙제하는 기분이었지만 쓰기 싫거나 힘들지 않았다. “필사가 아날로그의 맛”이라는 조씨는 이제 태어난 지 50일이 된 아이가 크면 적극적으로 필사를 권할 참이다. “아이가 글을 배우고 쓸 때쯤이면 세상은 더 디지털화가 됐을 텐데 아날로그의 따뜻한 정서를 아이도 느끼게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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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문장을 잘 쓰려면 문장력이 좋은 작가의 작품을 모방하며 공부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시인이나 소설가를 꿈꾸는 문학지망생들치고 필사 경험이 없는 이들을 찾기 어렵다. 신경숙, 안도현, 최명희 등 유명한 문인들도 그 길을 따라 걸었다. 필사를 하며 소설가로서의 삶에 눈을 떴다는 신경숙은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에서 필사의 경험을 풀어놓았다. “그냥 눈으로 읽을 때와 한 자 한 자 노트에 옮겨 적어 볼 때 그 소설들의 느낌은 달랐다. (…) 필사를 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것이다. 나는 이 길로 가리라. 필사를 하는 동안의 그 황홀함은 내가 살면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각인시켜준 독특한 체험이었다.” 

지난해 한 신문사의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면서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된 황지운(27)씨도 신경숙 작가를 보며 호기심에 필사를 시작했다. 오랜 습관이 버릇이 된 듯, 소설가가 된 지금도 좋은 글을 만나면 어김없이 노트에 옮겨 적는다. “평소 책을 빨리 읽는 편인데 대신 꼼꼼하게 보진 못하더라고요. 필사를 하면서야 책을 세세하게 읽게 됐어요.” 무엇을 필사하느냐에 따라 배우고 느끼는 것도 달랐다. 소설에선 묘사하는 방법이나 문단 구성법 등을, 시에선 시의 분위기나 시인의 감각을 배웠다. 필사를 통해 받는 느낌이 좋아 소설 한 편을 쓰기 전 시 한 편을 필사해보기도 한다. “어린 시절 오답노트를 만들어 공부하면 자신이 틀린 부분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게 되잖아요. 필사를 해보니 내가 쓴 글의 문제점이 뭔지 알게 되더라고요. 그 맛에 필사를 계속하는 것 같아요.”

글쓰기 강사 백승권(44)씨도 문학지망생이던 고등학생 때부터 필사를 시작했다. <정지용 시집> <백록담> <금강경> 등을 필사하며 작가와 동일시되는 체험을 했다. “한지를 잘라 책을 만들고 펜에 잉크를 묻혀가며 정지용 시인의 시를 한 편씩 적었어요. ‘유리창’ ‘카페 프란스’ ‘해협’ 등의 시를 읽으며 시인의 서정에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던 기억이 새롭네요.” 백씨에게 필사는 단순히 베껴 쓰기가 아니다. 마치 내가 그 책의 작가가 된 양 글을 쓰는 고통과 희열을 함께 느끼는 체험이다.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 외에 필사의 단점을 찾을 수 없다는 백씨는 필사에서 종교적 경건함마저 발견한다. “불교에선 경을 베껴 쓰는 것을 ‘사경’이라고 해요. 사경은 붓다가 말한 진리를 눈과 머리로만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손을 비롯한 온몸으로 느낄 수 있죠. 처음 필사하는 분들도 꾸준히 해보면 그 경지에 닿을 수 있어요.”  

불교의 사경처럼 종교에서 필사는 신앙심을 고취하는 방법으로 쓰인다. 다양한 종교인들이 기도하듯 경전을 필사하며 믿음을 쌓는다. 천주교 신자인 주부 강옥수(63)씨는 구약성서의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성경을 순서대로 모두 써봤다. 성경 필사를 시작한 건 약 3년 전. 공무원 퇴직 뒤 소일 삼아 썼다. 필사는 처음이었지만 주변에 성경 필사를 하는 가톨릭 교인들이 많아 시작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성경을 읽으면 머리에 안 들어오고 스쳐지나가니까 한줄 한줄 머릿속에 들어오게 하려고 필사를 시작했어요. 하다 보니 잡념도 없어지고 머리가 맑아져서 성경에 적힌 이야기에 더 몰두하게 되더라고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에겐 ‘영상 필사’ 추천
필사는 시나 소설, 시나리오 등 주로 글쓰기 분야의 입문기에서 거친다. 백석의 시를 많이 필사했다는 안도현 시인은 필사를 “손가락 끝으로 고추장을 찍어 먹어 보는 맛”이라고 표현한다. 문장을 베껴 써 보는 것은 작가의 숨결을 따라 내쉬고 들이쉬는 것과 같은 것으로 글도 고추장을 찍어 먹듯 손맛을 봐야 맛을 안다는 의미다. 평소 시를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학기마다 약 100~200여편의 시 필사를 과제로 낼 만큼 그에게 필사는 무결점 공부법이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 심산도 자신이 가르치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들에게 필사를 과제로 낸다. 글이 아닌 영상 필사다. “영화를 배우는 가장 빠른 방법이 영상 필사”라고 말하는 그는 “영화를 베껴 적는 건 구조를 파악하고 미장센을 배우고 편집을 배우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영상 필사는 시나리오를 펼쳐놓고 필사하는 것과 다르다. 영상을 자주 정지하면서 보고, 시퀀스를 나눠서 보고, 보지 않고 대사를 외워서 쓰고, 본 뒤에 필사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영화 한 편을 완벽하게 필사하려면 10번 이상을 보니 이만큼 빠른 영화에 대한 이해와 암기가 없다. “작가, 감독 할 것 없이 할리우드에서도 자주 하는 영화 공부법”이라는 게 심산 작가의 설명이다. 

기자를 꿈꾸는 언론고시생들도 필사로 문장 공부를 한다. “필사는 글을 몸에 새기는 문신 같다”는 언론고시생 김정지훈(27)씨는 신문 칼럼을 필사해봤다. 사설은 논리적인 문장의 대표적인 것 중 하나다. 사설을 필사하다 보면 논리적인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된다. “길고 짧은 문장이나 조사의 쓰임 등을 세밀하게 볼 수 있어 글 공부를 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그는 언론인 지망생답게 신문 칼럼 필사본도 만들어 볼 계획이다.

첫 목표는 평소 글 스타일이나 사회를 보는 시선이 마음에 들어 좋아했다는 언론인 김선주씨가 쓴 <이별에도 예의가 있다>다. 

다른 언론고시생 최성희(25)씨도 필사를 통해 책을 읽고 글쓰기를 연습한다. “손은 머리보다 기억력이 좋다”는 게 그가 필사를 하며 공부한 결론이다. 수많은 작가들의 글을 필사하며 습작시절을 보냈다는 기자 출신 작가 명로진씨는 필사의 매력에 빠져 <베껴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책>을 펴내기도 했다. 명씨는 “누구의 글이 좋아지면 읽는 것만으로는 만족이 안 되는 때가 있는데 이럴 때 필사를 해보면 작가의 정신세계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의 필사법은 따로 노트를 만들지 않고 책에 바로 쓰기다. “생각보다 행간이 넓어 문장 바로 아래에 따라 쓰기 좋다”는 그는 책이 더러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풀어내는 일이다. 더불어 단어와 문장을 끊임없이 매만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조정래 작가는 “필사는 책을 되새김질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단순히 글자를 쓰는 데 끝나지 않고 통독을 하면서 옮겨 쓰는 것이기 때문에 책을 백번 읽는 것보다 한번 필사하며 읽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했다. 

“나는 일필휘지(一筆揮之)란 걸 믿지 않는다. 원고지 한 칸마다 나 자신을 조금씩 덜어 넣듯이 글을 써내려갔다.” 생전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던 최명희(1947~1998) 작가도 필사가 17년 세월을 들인 역작 <혼불>을 낳는 데 도움을 줬다고 했다. 

베껴 쓴다는 행위의 단순성에 반감을 가질 수도 있지만 필사를 하며 종이에 눌러쓴 모든 글자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힘이 됐다는 이들이 이처럼 많다. 시가 죽은 세상에서도 시 한 구절 떠올리게 하는 이 가을, 잠시 컴퓨터 전원을 끄고 펜을 쥐어보는 것은 어떨까. 

필사로 연결된 사숙관계사랑하면 닮고 싶어진다. 좋아하는 누군가의 글을 닮고 싶은 이들은 손으로 사유하는 방법을 택했다.백석-안도현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를 펴낸 안도현은 백석의 시에 반해 필사를 했다. 그가 펴낸〈모닥불〉〈외롭고 높고 쓸쓸한〉 등의 시집 제목은 백석의 시 제목과 스타일을 따라 지었다.장 그르니에-알베르 카뮈 | “나는 길거리에서 이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섬〉에 쓴 알베르 카뮈의 추천사플로베르-모파상 | 〈보바리 부인〉을 쓴 플로베르의 정신적인 양자였던 모파상은 플로베르로부터 엄격한 작가수업을 받았다. 그가 쓴〈여자의 일생〉은 객관적인 묘사와 간결한 문체가 스승을 닮았다고 평가된다. 

좋아하는 시구(詩句)를 공책에 옮겨 적고, 가을이면 단풍잎을 따다 다이어리 사이에 끼워두었던 시대의 감성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 무엇이든 빠르게 돌아가는 디지털 시대에, 책의 내용을 한 자 한 자 옮겨 적는 ‘필사’가 최근 다시 각광받고 있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책에 담긴 지혜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은 필사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다.    



 

최근 출판업계의 큰 화두는 ‘힐링 북(Book)’이었다. 주로 아이들이 즐겨 하던 색칠공부가 지친 어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작가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진 ‘필사’는 20-30대 직장인을 포함한 중·장년층의 새로운 취미활동이 됐다. 이는 무엇이든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대한 역설이자,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노출된 현대인들의 위안으로 풀이된다.  

많은 이들이 한 번쯤 시도해 보았을 ‘필사’의 형태는 책을 읽다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구절을 옮겨 적는 일이었다. 이는 본인의 취향과 의지가 반영된 지극히 개인적인 행동이다. 반면 최근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필사’는 책 한 권을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베껴 적는 형태로 변화했다. 바쁜 일상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방증이다.  

고전 또는 존경하는 인물의 자서전 등을 한 자 한 자 옮겨 적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짐과 동시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책의 내용은 온전히 내 것이 된다. 이와 함께 품격 있는 취미생활을 영위한다는 기쁨까지 만끽할 수 있다. 

지식인들이 향유한 공부법, 필사  

특정 원문을 그대로 베껴 적는 활동인 ‘필사(筆寫)’의 역사는 인류 문명이 시작되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동굴 벽에 문자를 옮겨 적는 행위가 인간의 두뇌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이는 인류 문화의 발전을 가져왔다. 인쇄 기술이 발달하기 전, 당대의 역사와 지식을 후대에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또한 필사본을 남기는 것이었다. 이렇듯 필사가 인류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반박할 여지가 없다.  

과거 지식인들이 식견을 넓히고 마음을 수련하기 위해 필사를 해온 역사 또한 깊다. 로마 제국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고전 <명상록>에는 ‘나는 또 루스티쿠스 덕분에 이픽테토스의 어록(語錄)을 알게 되었는데, 그는 자신이 가진 필사본을 나도 필사하도록 허락해주었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한 글자마다 절을 하며 부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담은 경전을 베껴 쓰는 ‘사경’은 불교의 수행법 중 하나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새벽마다 고전을 몇 쪽씩 종이에 적어 백 권의 책을 열흘 안에 공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음을 치유하고 자기를 성찰하는 필사의 힘

필사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고요하고 느리다는 점이다.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필요한 정보를 바로 찾아볼 수 있고, 무엇이든 버튼 하나로 처리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서 책을 펼쳐 읽고 이것을 내 손을 직접 옮겨 적는 아날로그적인 행동은 현실의 무게에 어깨가 무거운 중·장년층에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글자를 쓰는 사이, 책을 쓴 작가의 내면세계와 의도를 더 정확히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10여 년간 삼성의 경영 방식과 전략을 연구해 온 김종원 작가는 자신의 책 <삼성의 임원은 어떻게 일하는가>에서 경영에 관한 비약적 성장을 위한 방법으로 ‘필사’를 추천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필사가 ‘성숙한 자신을 만나는 일’이라고 말한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쓰고, 머리로 생각하면서 좋은 글의 맛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 특히 고전이나 시, 문학적 가치가 있는 소설 등은 기업 경영의 아이디어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데 큰 도움이 된다. 내 손으로 쓴 또 다른 책 한 권이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기쁨도 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글자를 옮겨 적는 행동만으로는 필사의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단순히 베껴 쓰는 것이 아닌, 문장의 숨은 의미를 음미할 시간이 필요하므로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쓰는 게 좋다. 그 일환으로 필사용 도구는 만년필을 추천할 만 하다. 날렵한 펜촉에서 나오는 잉크를 종이에 눌러 적어야 하는 만년필은 볼펜처럼 속기를 할 수 없어 자연스레 천천히 글자를 쓰게 된다. 또한 힘을 빼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적는다. 책 한 권을 다 적어도 좋고, 마음에 드는 문장 한 두 개만 골라 적어도 좋으니 이것이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도록 차근차근 시작한다. 특히 정신없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갖는 필사의 시간은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더 깊이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가져다 줄 것이다. 

 

필사를 시작하고 싶은 CEO를 위한 추천 아이템

리더를 위한 메시지, <고전필사> 

박수밀 저자의 <고전필사>는 고전에서 리더에게 필요하거나,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담은 구절 70여 편이 실려 있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자양분이 될 내용, 사람과의 관계 맺기에 도움이 되는 내용 등 주제별로 묶인 고전을 통해 선인들의 지혜를 만날 수 있다. 한 자 한 자 옮겨 쓰다 보면 자신을 성찰하고, 바쁜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인문고전 필사 다이어리북

인류의 가장 오랜 공부법인 필사와 다이어리가 함께 담긴 책으로 한쪽 매 페이지마다 텍스트와 필사공간을 배치했다. 책의 후반부에는 노트를 삽입해 다이어리 기능까지 겸비한 책으로, 가지고 다니면서 틈날 때마다 필사를 하기에 좋다. <플라톤의 대화>, <세네카의 행복론>,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등 고전을 발췌한 내용을 구성했다. 

라미, ‘알스타 차지드 그린’

독일 정통 필기구 브랜드 라미에서 2016년 새롭게 출시한 스페셜 에디션으로 라미의 인기 모델인 사파리(Safari)의 상위 버전이다. 잉크를 삽입하는 방식, 사용법 등이 간단해 초보자가 입문용으로 사용하기 좋다. 양극산화 처리된 첨단 소재 알루미늄을 사용해 스크레치 발생 위험을 낮추고 견고함을 더했으며 투명한 그립 섹션으로 잉크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몽블랑, ‘요한 슈트라우스 에디션’

‘왈츠의 왕’으로 불리는 오스트리아 음악가 요한 슈트라우스를 기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에디션(Johann Strauss Edition)으로 만년필, 롤러볼, 볼펜 등으로 구성돼 있다. 

검은 색의 깔끔한 디자인에 슈트라우스의 서명을 정교하게 새겨 넣어 가치를 더한다. 펜 판매수익 일부는 음악과 관련된 문화 프로젝트에 기부가 된다. 

워터맨, ‘엑스퍼트 3’ 

세련되고 절제된 모던함이 돋보이는 워터맨 엑스퍼트는 부담이 없으면서도 적당한 무게감으로 필기감과 그립감이 우수한 것이 특징이다.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가장 즐겨 사용했던 만년필 브랜드 또한 ‘워터맨’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엑스퍼트는 워터맨 만년필 시리즈 가운데서도 종이에 닿는 감촉이 부드럽고 비교적 가격이 저렴해 가지고 다니면서 사용하기에 추천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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