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에 대한 비판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반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학일 수 없다고 보았다. 아돌프 그륀바움은 정신분석학은 반증가능하며, 사실상 틀렸음이 증명되었다고 주장한다. 비판자들과 옹호자들 간의 논쟁은 때때로 매우 격렬해져서, 이러한 논쟁들은 프로이트 전쟁으로 보였다.
한편 알프레트 아들러나 칼 융의 경우는 프로이트와는 다른 관점에서 무의식의 개념을 다룬 바 있다. 또한 행동주의 심리학의 초기에는 정신분석학이 클라이언트에 대한 심리적 접근에서 절대적으로 보다 효과적일 수 있는 근거는 찾을 수 없었다는 맥락의 보고를 한 바 있다.
그러나 많은 심리학자들은 프로이트가 개척한 인간의 무의식 영역과 본능에 대한 깊은 이해의 결과물들이 논리적이지 않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데에도 동의한다.
포퍼의 반증주의에 기초한 프로이트의 심리학 비판 - 정신분석 이론은 과학일까?
과학의 정의에 대해 다루는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다.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과학철학자들의 답변이 궁금하다면 꼭 읽어 봐야 할 좋은 개론서이다. 칼 포퍼는 '반증주의'로 이름을 알린 학자인데 그의 이론에 입각해서 프로이트의 심리학이나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 점성술을 바라본다면 이들은 '과학'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이 책에서는 특정 학자의 정의가 '과학의 참 정의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양한 학자들의 견해가 소개되어 있으며 저마다의 정의가 지닌 독창성을 중립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과학을 정의하는데도 이와 같이 단일한 결론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과학의 구체적인 내용들에 있어서는 더더욱 많은 논의와 수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포퍼는 자신의 반증주의에 기초하여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과학이라 믿었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을 사이비라고 비판했다.
예를 들어 어린이를 익사시키려고 물속에 집어던지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어린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물속에 뛰어드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두 행동에 대해서 프로이트는 첫 번째 사람의 행동은 억압 본능으로 인한 고통에 그 원인이 있다고 설명할 것이다.
반면 두 번째 사람의 행동은 억압 본능이 '승화(sublimation)'된 것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프로이트를 이은 정신분석학자 아들러도 이렇게 서로 상반된 행동을 똑같은 원리로 설명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에 따르면 첫 번째 사람은 열등감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죄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증명할 필요가 있었던 반면, 두 번째 사람은 열등감 때문에 고통은 받고 있었지만 자신이 그 아이를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용감하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보일 필요가 있었다. 즉 프로이트와 아들러 모두 상반된 행동을 동일한 원리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포퍼는 바로 이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신분석학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설명하기 때문에 어떤 개별 사례들과도 양립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 이론을 반박할 수 있는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반박할 수 없는 이론이라면 그것은 진짜 과학이 아니다. 사이비요, 짝퉁이다. 포퍼는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한때 아들러 밑에서 방치된 아이들을 위한 사회사업을 펴기도 했지만 정신분석학을 사이비로 규정하고 그들과 결별했다.
포퍼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도 반증 불가능한 사이비 과학이기는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가령 19세기 영국에서 노동자의 안전과 복지를 위한 정책이 도입되었는데 이는 자본주의의 지배 계급은 빈민 계층의 후생 복리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마르크스 이론과 상충되어 보였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오히려 그런 사례가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우겼다. 그런 정책의 도입이야말로 자본가들이 곧 일어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저지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한 당근에 불과하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주의가 꽃을 피우지도 않은 러시아에서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 것은 마르크스 이론의 명백한 반증 사례인데도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얼버무렸다.
포퍼는 대학 시절 사회주의 학생연맹에 가입하여 한때 마르크스주의자로 살기도 했지만, 마르크스 이론이 갖는 경직성 때문에 그 이론을 사이비 과학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었다.
포퍼가 사이비라는 딱지를 붙인 또 한 가지는 점성술(astrology)이다.
별의 위치, 모양, 밝기 등을 통해 국가의 안위나 개인의 운명을 예견하는 점성술은, 서양에서는 아주 오래된 전통이다. 지금 우리로 치면 생시로 사주팔자를 보는 것과 비슷한 경우이다. 서양의 점이든 동양의 점이든 개인의 운명을 예견하는 방식은 비슷하다.
포퍼는 점성술은 너무나 일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반박할 수 있는 사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가령 '올 한 해 운수 대통할 팔자야'라는 점괘가 나왔다고 하자. 이 점괘가 정말로 맞는지 틀린 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그 점괘를 받은 사람이 1년 내내 힘겨운 삶을 살다가 연말에 다시 점성술사를 찾아가 점괘가 틀렸으니 환불해 달라고 따진다면 점성술사는 어떻게 대응할까? "올해 큰 사고를 당할 뻔했는데 그걸 막은 게 운수대통이지 뭐냐?"라고 발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의 변명이 가능한 이유는 점성술 체계가 반증 불가능한 진술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포퍼는 점성술이 사이비 과학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마르크스 정치경제학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비판으로부터 닫혀 있기 때문에 그것들은 사이비 과학일 수밖에 없다."는 포퍼의 주장은 그 이론들을 신줏단지처럼 떠받들던 당대 지식인 사회를 향한 큰 도발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포퍼가 처음(1940년대)에는 진화론도 사이비 과학이라고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어떤 개체가 살아남느냐고 물으면 진화론은 적응을 잘한 개체가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적응을 잘한 개체는 무엇이냐고 물으면 더 잘 살아남은 개체라고 답한다. 이런 식의 진화론은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으며 반증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진화론은 사이비 과학이다.
하지만 포퍼는 진화론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얼마나 모자랐는지를 금방 깨닫고 진화론을 사이비 과학으로 규정했던 것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했다.
심지어 말년에는 생물 진화론과 지식 변동론을 결합시킨 이른바 진화 인식론(Evolutionary Epistemology)을 발전시켜 [객관적 지식:진화론적 접근](Objective Knowledge: An Evolutionary Approach)(1972)을 출간하기도 했다.
지식 성장의 원리인 '대담한 추측과 혹독한 반증'은 생물 진화의 원리인 '맹목적 변이와 선택적 보존'(blind variation and selective retention)을 빼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포퍼가 일평생 화두로 삼았던 '합리성'은 비판에 직면하여 반증의 시도에 눈을 감지 않는 지식인의 정직성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이것은 비단 과학 지식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포퍼는 그의 반증주의에 입각하여 자유로운 비판이 가능한 열린 사회를 꿈꿨다.
포퍼의 과학철학과 정치철학을 꿰뚫고 있는 중심 원리는 바로 반증주의였다.
이런 포퍼의 사상을 사람들은 '비판적 합리주의'(critical rationalism)라고 한다.
칼포퍼의 정신분석학 비판 : 해석학(hermeneutic)과 정신분석학(psychoanalysis)의 만남
칼 포퍼(karl popper)는 과학철학의 영역에 빠져서는 안 될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과학을 공부하는 자로서 칼 포퍼를 들어보지 못했다면 말이 안 될 정도이다. 그는 별다른 통찰 없이 유지되어 오던 몇 가지 과학의 파라다임에 제동을 걸었으며 특별히 정신분석학을 일컬어 사기과학(pseudo-science)이라고까지 혹평했다. 참고로 그가 사기과학이라고 언급했던 이론들을 말하자면 개인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 마르크시즘, 별자리점등이 있다. 그런데 포퍼는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이런 이론들을 과학적인 이론에서 제외시킨 것일까?
현재의 초중고 공립교육과정에서도 누누이 강조하는 과학의 ABC는 바로 관찰이다. 실험실 안에서 반복, 복제가능한 자연현상들을 통해서 과학적 이론의 정당성이 획득되는 것이며 이런 방법만을 통해서 과학이라는 방법론이 그 가치를 얻게 된다. 가장 잘 알려진 예가 바로 뉴톤의 만유인력의 법칙이다. 떨어지는 사과를 관찰하고 이론을 성립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자료수집을 통한 이론설립, 즉, 귀납법(induction)을 포퍼가 비판했다. 그는 아무런 관찰과 자료수집 없이도 과학적인 이론이 성립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위의 진술에는 반드시 한 가지 단서가 붙게 된다. 방 안에 앉아서 이론을 만들 때 반드시 그 이론이 그릇됨(falsification)을 증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두란 것이다. 관찰을 배제하고도 지극히 과학적인 이론이 이렇게 탄생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쉬운 예를 들자면. 당신이 이 세상에서 관찰한 백조는 모두 하얀색이었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런 결론을 내린다. 모든 백조는 하얀색이다! 하지만 포퍼에 의하면 당신은 방 안에서 한 번도 백조를 보지 않고도 이런 이론을 세울 수 있다. 모든 백조는 하얀색이다!라고. 그리고 과학적인 이론이 되기 위해서 이론에 근거한 정확한 예측을 한다. 만약 하얀색이 아닌 백조를 보게 된다면 나의 이론은 틀린 것이라고.
포퍼는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을 예로 들면서 전자는 비과학적 후자는 과학적이라고 말한다. 아인슈타인은 이론을 내세우면서 어떤 예측을 내놓고 이런 예측이 빗나갈 경우 자신이 틀렸다고 말한 반면 프로이트의 이론은 단순히 말해서 거짓임을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중 어떤 부분이 공격을 당하게 되면 다른 부분의 이론이 등장하여 그 이론을 구하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과학적인 이론의 척도는 바로 스스로를 거짓으로 증명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falsifiability) 그리고 포퍼는 정신분석학이 이런 측면에서 과학이 아님을 주장한다. 그렇지만 포퍼가 정신분석학이 거짓이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진실일 수도 있으나 다만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이 과학이라고 주장한 것과는 달리 과학이 아님을 역설한 것이다.
칼포퍼의 비판이 정신분석학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많은 분석자들이 포퍼의 비판에 대항하고 분석학을 옹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두 가지 설득력이 있는 대안이 도출되었다.
첫째는 정신분석학이 스스로를 거짓이라고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룬바움(Grunbaum)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차후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재미난 것은 그룬바움은 정신분석학이 과학이기는 하나 대부분의 이론이 거짓이라고 말한다.
둘째는 정신분석학이 인간이라는 자연의 물질과는 다른 차원의 대상을 탐구하기 때문에 자연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과학의 영역이며 그러므로 해석학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하버마스(habermas)의 주장을 통해서 시작되었다. 그는 인간과학의 전형적인 예로 정신분석학을 들었다. 프로이트가 인간을 바위와 같은 물질로 취급한 것은 결정적인 실수였고 자연과 구별된 인간적인 특성을 간과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