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감작현상(pain sensitization), 만성통증, 고통
통증은 다른 모든 감각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는 참으로 이상한 감각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뜨거운 목욕탕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뜨겁게 느껴지던 온탕에 한참을 머무르면 오히려 따뜻하고 좋은 감각으로 변하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것은 온도감각에 인체가 적응(adaptation)한 것이다. 통증 이외에 모든 감각(진동각, 위치감각, 차가운 감각, 만지는 감각, 온도각, 압력 감각 등)은 모두 적응현상을 보인다. 즉 감각이 주어지면 주어질수록 그 역치가 높아지면서 그 감각에 무뎌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통증은 이러한 감각과 정반대로 통각이 주어지면 주어질수록 그 역치가 낮아지면서 통증에 예민해진다. 이러한 기전을 통증 감작현상(pain sensitization)이라고 한다. 즉 처음에는 주먹으로 내리치는 강한 자극일 때만 발생하던 통증은 통각이 지속적으로 주어지면 나중에는 살짝 때리는 감각에도 통증을 느끼고, 심하면 만지기만 해도 통증을 느끼는 것이다. 아주 드물게는 선풍기 바람만 불어도 아프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이렇게 진행되는 통증의 만성화는 실로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좋은 신호인 통증이 사람의 영혼까지 괴롭히는 고통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고통
아픔을 뜻하며, 통증(痛症)이라고 하기도 한다.
흔히 신체의 일부에 피해가 생겨 느끼는 육체적 고통과, 불쾌감과 우울함 등의 부정적 감정으로 '괴롭다'고 여기는 정신적 고통으로 나뉜다.
신체적 고통은 감각 중 통증감각(痛症痛覺), 즉 통각(痛覺)을 통해 느낀다.
신경이 어느 정도 발달한 동물의 대표적 방어기제로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거의 모든 동물은 고통을 강하게 회피한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통이 심하면 움직이지도 못한다. 아프다, 아프다 하고 아픈 걸 싫어하지만 바로 그렇게 아픈 것을 피하려는 본능이 생명을 지켜 주는, 방어 작용의 일부인 것이다. 신체에 해가 올 정도의 손상이 임박했음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증이 없다면 생명체는 위험을 감지하고 피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일례로 간은 주변에 신경이 별로 없어 통증을 잘 느끼지 못하는데, 간암은 발견이 어려워 대한민국 성인 사망율 2위에 이른다.
시각(빛의 자극)/청각(고막의 진동)/후각/미각(화학물질의 자극)/촉각/압각/냉온각 등 다른 감각도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신경 말단을 자극해 고통으로 변한다. 역치값이 매우 작아 미세한 변화도 쉽게 느낄 수 있으며, 일정 시간 이상 자극받으면 순응하는 다른 감각과 달리 신경에 손상이 없는 이상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순응이 없다. 같은 강도로 통증을 가해도 통증에 무뎌지진 않는다는 뜻. 당장은 고통도 점점 무디게 느껴지는 게 좋을 것 같지만 만일 고통에 순응이 적용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진다면 생명체는 심각하게 생존을 위협받을 것이다. 어떠한 생명체가 육체적 손상을 입었는데 고통이 무뎌져서 그에 따른 대처를 하지 않는다면 그 생명체의 평균 수명은 뚝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작은 상처에도 신경을 너무 날카롭게 만들어 판단력을 흐리고 몸에 박힌 작은 이물질의 제거조차 어렵게 하며 빠른 수술이 필요한 상황에서 일단 마취부터 해야 하는 등등의 문제도 상당히 많다.
통증은 크게 수용성(Nociceptional), 신경성(Neuropathic), 가소성(Nociplastic), 심인성(Psychogenic) 통증 4가지로 분류되며, 이 중 수용성 통증은 열적(thermal), 기계적(mechanical), 화학적(chemical) 통증 3가지로 다시 세부적으로 분류된다. 열적 통증은 온도 수용체 TRPV1, TRPV2, 기계적 통증은 압각 수용체 PIEZO1, PIEZO2 그리고 화학적 통증은 이 두 수용체들의 복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최근에 밝혀졌다.
오히려 통증의 경우 통증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통증을 수용하는 감각기가 순응과는 반대되는, 같은 강도의 자극에 대해서 역치가 낮아져서 더 크게 통증을 느끼거나 자극이 없음에도 자발적인 활동전압이 나타나 통증전도가 증가하는 감작(sensitization)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염증 부위로부터 나오는 통증유발물질(substance P, prostaglandin, bradykinin 등)에 의하여 발생하거나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의 가소적 변화로 인해 발생한다. 전자의 경우는 염증대사산물인 통증유발물질이 통각감수기를 감작시킴으로써 나타난다. 후자의 경우 신경 손상으로 인하여 발생하며, 이런 경우에는 자극이 없이도 활동전압이 유발되어 자발적인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신경병증성 통증이라고 한다. 신경병증성 통증의 대표적인 질병으로 삼차신경통이 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통증이 수개월 이어지면 우리의 말초신경 뿐만 아니라 척추 척수 뇌에 이르는 중추신경계까지 그 통증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게 입력이 되어 작은 자극에도 고통스러웠던 통증이 인출되며 그것이 더 큰 통증을 유발하는 사이클이 돌아가버린다. 자전거를 배우다가 잘 타게 되고, 더 잘 타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를 말초 감작과 중추 감작이라고 하고 동물에게는 1983년, 인간에게는 1990년대에야 이런 것이 있다고 알게 되었다.######
과거 이런 통증의 감작을 모를 때는 의사들이 아파도 이제 다 나았으니 참아보세요로 해법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결과가 현재 의료 쇼핑을 한다고 비난을 받으면서도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채우고 있는 노인들이다.
1990년대 이후 의료계는 이런 통증 감작을 알게 되었고, 통증 그 자체를 신경계에 미치는 질병으로 보게 되었다.# 해결 방법은 마취통증의학과에서 주로 행해지는 다양한 신경블록과 TPI 주사와 같은 시술이고 나머지 하나는 진통제이다. 그런데 심한 통증에 쓸만한 진통제는 항우울제 정도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아편계 진통제만큼 강한 진통제를 찾지 못했다.
촉각은 통증의 인식을 돕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통점의 세포에서 인식한 통증이 대뇌로 전달되는 통각 신경의 경우 다른 감각 신경에 비해서 신호를 매우 느리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촉각이 초속 70m로 전달되는 데에 비해 통각은 초속 0.5~30m 정도이다. 이는 달리는 속도와 비슷하며 반응 속도도 빨라야 0.2초다. 즉 만약 뜨거운 냄비나 불처럼 극심한 고통을 유발할 수 있는 요소에 손가락을 잠깐 댔다 떼면 떼고 나서야 고통이 느껴진다. 분명 만지는 느낌이 드는 건 대자마자 일어나지만 말이다. 대신 통각 신경의 이러한 느린 속도는 촉각 신경이 보완한다. 통증이 일어날 때 대부분 촉각도 함께 인식되는데, 몸은 경험을 통해 촉각에 반응하여 통각의 느린 속도를 보완하게 된다. 예를 들어, 뾰족한 것이 닿았을 때 순간적으로 손을 떼거나, 등 뒤에서 누군가 건드리면 휙 돌아보거나 하는 반응에서 촉각 신경은 통각 신경을 보완해 몸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회적 고통도 신체적 고통과 같다. 물론 완전히 똑같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뇌의 관점에서는 같다.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다는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닐수도 있다.
고통은 주로 척수시상로(spinothalamic tract)을 통하여 전도된다. 통증을 전도하는 구심성뉴런은 A-delta fiber 혹은 C fiber 이다. A-delta 신경섬유는 유수신경으로 직경이 C 신경섬유에 비해 두껍고 도약전도를 통해 전도속도가 빠르며, 날카롭고 빠른 통증(sharp pain)을 전달한다. 반면에 C 신경섬유는 무수신경으로 직경이 얇아 전도속도가 느리며, 둔한 통증(dull pain)을 전달한다. 이 구심성 신경섬유들은 척수 회색질의 후각(dorsal horn)에서 시냅스를 한다. 척수 후각의 시냅스 후 뉴런인 투사세포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주로 광역동범위신경세포(wide dynamic range neuron, WDR)와 통각수용특이신경세포(Nociceptive specific neuron, NS)가 있다. WDR은 주로 척수 후각의 심부에 위치하여 체성감각과 통증에 모두 반응하며, NS는 주로 척수 후각의 표층에 위치하여 통증을 주로 전달한다. 체성감각을 동시에 전달하는 WDR의 경우, 체성감각과 통증이 동시에 전달되면 두 자극이 서로 경쟁하여 통증을 억제하는 현상을 나타내기 때문에 물리치료에서 온찜질같은 온각요법이나 냉찜질 같은 냉각 요법에서 통증완화의 원리로 이용된다(관문조절이론). 이 투사세포들은 척수에서 교차한 후에 시상의 복후외측핵(ventral posterolateral nucleus)에서 3번째로 시냅스를 이룬다. 이후 이 통증 신호는 대뇌피질로 투사되면서 우리가 통증을 인지하게 된다.
고통이 있을 때에는 육체적인 스트레스에다가 정서적인 긴장감도 합쳐져 자율신경계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흥분하면서 신체적인 조절이나 감당이 어려워진다. 두뇌회전이 느려지고, 판단력이 떨어지고, 심장이 평소보다 더 두근거리고(빈맥), 숨을 가쁘고 거칠게 몰아쉬게 되고, 다리에 힘이 풀리고, 구역질이 나고, 신음(앓는 소리)을 하게 되고, 식은땀이 나고, 열이 나고 추위를 느껴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와들와들 떨리고(오한), 동공이 흔들리고, 손, 발이 차가워지게 된다. 또한 과도한 고통에 반응해 눈을 보호하기 위해 눈물이 나온다. 이 경우 끔찍한 고통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져 정상적인 사고가 힘들어진다. 병원에 간다면 구급차에 어떻게 실렸는지 내렸는지 기억도 안 나고,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자기도 모르게 병원 등 자신이 있는 곳이 떠나가게 비명을 지르고, 진통제 달라고 하며 욕을 퍼붓기도 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심각한 고통을 느끼면 엔도르핀(보통 엔돌핀으로 알려진)이 분비된다. 엔도르핀이 폭발적으로 분비되는 대표적인 경우 세 가지가 있는데, ①사망 직전 ②분만 ③심각한 부상이다. 총을 맞았는데 아프지 않고 축축한 느낌만 들었다든가, 아기를 낳은 후 산모가 웃는 경우가 많다[11]는 이야기들이 엔도르핀의 효과다. 그 외에 소소하게 분비되는 경우도 있긴한데 필연적으로 겪긴 해야해도 바람직하진 않다. 엔도르핀은 장시간 고강도의 유산소운동으로 근육과 힘줄 조직이 파괴되어도 계속 움직일 수 있도록 통증을 없애기 때문에 까딱하면 오버트레이닝을 일으키고 심하면 러너스 하이(운동중독)를 일으킨다. 그 외에 모기 물린 곳이 가려워서 긁을 때 피부가 까지고 피가 나는데도 나중에서야 쓰라린 걸 깨닫는 이유도 엔도르핀의 진통 효과 때문이다. 모기에 물렸거나 해서 가려움증이 느껴질 때 그 부분을 긁은 강도를 기억해 뒀다가 생살에다 똑같이 긁어 보면 엔도르핀의 진통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몸소 느껴볼 수 있다. 다급한 상황에서 사람이 인간을 초월한 힘을 발휘했다는 사례도 이 엔도르핀의 작용으로 일부 설명할 수 있다. 뇌내마약의 분비로 인해 육체가 보내는 비상신호인 통증을 무시하고 신체조직이 손상될 정도로 운용된다는 것이다. 엔도르핀이 나올만한 상황에서는 아드레날린도 거의 같이 분비되기 때문. 비상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생존/도피하기 위해서 엔도르핀으로 통증을 차단해버리면 몸이 근육과 관절의 한계를 체감하지 못하게 되고 여기에 아드레날린의 효과가 더해져 폭발적인 근력 출력을 내는 것. 물론, 감각만 차단할 뿐 조직의 손상을 막는 건 아니기 때문에 다치고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엄청난 고통이 갑자기 느껴지면 충격으로 심장마비가 올 수 있다.
고통은 전염된다. 누군가의 아픔을 보면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고통을 느끼는데, 이를 공감고통(Sympathy pains)이라 한다. 무언가를 보면 지각한 것을 실제로 자기가 행동하는 듯 시뮬레이트해 보는 대뇌의 '거울신경'(거울뉴런)이 잠시 활성화된다. 이 세포들은 건물 기둥 사이로 사람이 지나갈 때 기둥 뒤를 걸어가 반대편에서 다시 나오리라 예측하는 등의 고급 추리가 가능한데, 고통받는 광경에 대해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예컨대 팔이 잘린 광경을 목격했다면 내 팔이 그렇게 잘린 상황을 모의실험하는데, 이 과정에서 팔이 잘렸을 때의 고통을 실제로 느낀다. 물론 절단상과 같은 정도의 아픔을 체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랬을 때의 전류는 발생한다. 즉 그에 준하는 고통을 느끼는 수준. 이런 거울신경의 작용은 의지와 무관하므로 정상인이라면 누구나 타인의 아픔에 어느 정도씩 공감하는 능력을 지닌다. 육체적 고통은 말할 나위 없으며 정신적 고통에도 적용된다.
약물을 이용하여 얼마간 (고통과 같은)감각, 혹은 의식을 잃게 해 가역적인 중추신경계를 억제하는 것을 마취라고 한다. 외상이나 대사 문제과 같은 기타 원인이 아닌 약물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취가 끝난 후 의식이 돌아와야 하므로 비가역적이어서는 안 되며, 중추신경계의 적절한 억제가 필요하다.
철학적으로 접근하자면 인간의 기술 발전과 창조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누구도 살아가면서 고통스럽지 않았다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기술을 발전시키고 예술을 창조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삶의 부정적인 면을 논할 때 십중팔구로 고통이 지목되는 것만 봐도 인류의 발전사는 그야말로 고통과의 투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여전히 여러가지 고통에 시달리는 상태라 반출생주의 사상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트랜스휴머니즘 신봉자들의 경우엔 인류의 사이보그화로 고통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총알개미, 통풍, 과민성 대장 증후군, 요로결석, 내성발톱, 구내염, 사랑니 발치, 항문주위낭종, 그리고 고환 맞기 등은 화상처럼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현상이 아님에도 정말 끔찍하고 엄청난 고통을 느끼게 한다.
신체기관 중에서 눈, 치아, 항문, 생식기가 다른 부위에 비해 고통에 훨씬 민감하다. 일명 급소. 특히 눈과 고환을 때리는 행위가 악랄하다. 이 둘은 분명 충격에 약하지만 필요에 의해 외부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데 그 때문에 인체에서 고통에 민감한 1, 2위를 다투는 수준이다. 일단 조금만 건드려도 아픈 건 눈만 해당하지만 세게 맞는다면 느끼는 고통은 고환이 더 크다. 그리고 둘 다 세게 때리는 건 팔다리로 치면 불에 태우거나, 절단하거나, 가죽을 벗기는 수준이다. 물론 말단으로 치면 그보다 조금 작은 수위의 칼집 내기 정도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욕설이 고통을 견디게 해준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다쳤을 때나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욕을 하면 더 쉽게, 오래 참아낼 수 있다고 한다. 연구에 따르면 욕설은 불쾌하거나 고통스러울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완전한 악이 아닌 나름대로의 순기능을 갖고 있다. 또한 기발하고 창조적으로 욕설을 하면 불쾌한 기분이 더 쉽게 나아진다고 한다.
좋지 않은 뜻이지만 이 뜻을 가진 몇몇 단어를 이름으로 쓰기도 한다. 돌로레스(Dolores)는 스페인어로 슬픔, 비애, 고통 등을 의미하며, 정확하게는 성모 마리아의 호칭 중 하나인 슬픔에 잠긴 성모(라틴어: Mater dolorosa)를 스페인어로 La Virgen María de los Dolores라고 쓰는 것에서 뒤쪽의 Dolores 부분만 떼서 쓴 것이다. 이름의 어원 때문인지 창작물에서는 남에 의해 고통받거나, 남에게 고통을 주는 캐릭터로 등장하곤 한다. 아린은 한국어 아리다의 변형으로, 살갗이 찌르든 듯이 아프다는 뜻인데, 어감은 귀엽고 예쁘지만 부정적인 뜻이라 국내의 매체에서 이 이름을 쓰는 캐릭터의 배경이나 결말 등이 좋지 않은 경우가 있다.
BDSM 중 성적으로 흥분될 여지가 충분한 특정 상황이 주어졌을 때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고통을 받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건 마조히즘이라고 한다. 당연히 아무 이유 없이 다짜고짜 욕을 먹거나 공격을 당하면 피학성애자라도 굉장히 불쾌해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원치 않는 상황에서 원치 않는 상대에게 피학행위를 당해봤자 성적 쾌감을 느낄리 만무하다. 그 반대는 사디즘이라고 한다.
매운맛이 중독성을 가진 이유도 엔도르핀 등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실제로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입안 세포들이 느끼는 일종의 통증(통각)이기 때문에, 그 통증에 대해 반사적으로 엔도르핀이 분비되다보니 여기에 중독된다는 것. 이런 식이면 마조히즘도 이걸로 설명 가능하다.
무통증 환자는 픽션에서 묘사하는 바와 달리 정말 고어 수준의 험한 꼴을 많이 본다고 한다. 볼펜으로 볼 살을 뚫고 논다거나…. 몸을 돌보지 않는 생물이 얼마나 위험에 빠지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예다. 반면 신체 손상을 경계할 필요가 적은 식물은 상당히 고도로 진화한 다세포 생물임에도 불구하고 고통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잘린 가지 등이 다른 개체로 자라날 수도 있으니까. 어류나 갑각류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대부분 알려져 있으며 고통을 느낀다는 연구도 있고 못 느낀다는 연구도 있어 아직 의견이 분분하여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다만 위협 회피 기작은 어류와 갑각류 모두 가지고 있다. 문제는 해당 생물들은 인간과 달리 통점이 없어서 통각의 발생만을 고통으로 보냐 통각은 물론 위협 회피 기작을 일으키는 모든 감각을 고통으로 보냐에 따라 고통을 느끼는지 느끼지 못하는지가 달라진다.
만성통증
다른 감각과는 정반대로 통증감각은 통증이 주어지면 주어질수록 통증의 역치가 낮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위에서 설명한 통증의 감작현상때문이다. 크게는 말초성 감작과 중추성 감작으로 나뉜다.
말초성 감작은 통증 수용기인 자유신경종말에서 일어나는 활동전위가 쉽게 일어나면서 발생한다. 그 결과 환자는 인체에 무해한 자극에서도 통증이 발생하고, 정상인에게서는 발생하지 않는 만지는 정도의 자극, 바람이 부는 자극에도 통증이 나타난다. 중추성 감작은 척수레벨 위 충추신경에서 일어나는 반응이다. 반복적인 통증자극이 주어지면 척수후각의 통각수용성 신경세포에서 통증을 받아들이는 수용야(receptive field)가 넓어지면서 통증의 역치가 감소한다.
둘째, 하행성 통증조절기전(descending inhibitory system)의 파괴로 인한 통증이 만성화된다. 예를 들어 다리에 총상을 맞은 이등병의 통증자극이 대뇌로 여과없이 전달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뇌는 통증으로 인한 전기신호가 가득차고 간질발작과 같은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이러한 과도한 통증이 있을 때 인체는 하행성 통증조절기전을 통해 스스로 통증자극을 줄여 대뇌로 전달한다. 이러한 하행성 통증조절기전을 활용하는 방법이 전침, 봉독약침이다. 그래서 전침치료, 봉독약침치료는 만성통증에 부작용이 없으면서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허리디스크로 통증자극이 한달 혹은 1년넘게 계속 전달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통증이 만성화된다. 만성통증은 염증에 의한 통증이 아니기 때문에 소염진통제, 스테로이드성 진통제를 투여해도 통증이 거의 줄어들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물리치료에도 별로 반응하지 않는다. 가볍게 만지는 감각을 대뇌에서 엄청난 통증으로 느끼는 이러한 인체의 비정상적인 현상앞에서 의료인들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