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
Tottenham
지역
그레이터 런던 해링게이 자치구
국회의원
노동당
데이비드 래미
인구
129,237명(2011년)
영국 런던 북부에 위치한 지역.
역사
토트넘 지역에 인간이 거주한 것은 천년이 넘었다. 중세 토지조사서인 둠즈데이 북이 1086년에 편찬되었을 때, 이 지역의 장원에는 대략 70여 가구가 거주했다. 주로 장원의 영주 밑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었다. 토트넘이란 이름은 이 둠즈데이 북에서 언급된 마을의 토타(Tota)라는 농부에서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토타의 마을('Tota's hamlet', 토타스 햄릿)이 '토트넘'으로 발전된 걸로 여겨진다. 당시 둠즈데이 북에선 토트햄(Toteham)이라고 기록되었다.
1894년에, 토트넘은 준자치구가 되었고 1934년 9월 27일에는 자치구가 되었다. 1965년 4월 1일부터, 토트넘 자치구는 혼지, 우드 그린과 같이 해링게이 구를 형성했는데 행정구역상 런던에 편입된 것도 바로 이 시기며 1965년 행정구역 개편 전까지는 미들섹스 소속이었다.
리강은 토트넘 자치구와 월섬스토 간에 동쪽 경계였다. 또한 리강은 미들섹스와 에식스 사이의 옛 경계이자, 바이킹들의 지배를 받았던 데인로 지역의 서부 경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런던의 해링게이 구와 월섬포리스트 구 간 경계이다.
튜더 시대부터, 토트넘은 부유한 런던인들의 인기있는 휴양지가 되었다. 헨리 8세는 브루스궁을 방문하고 토트넘 숲지대에서 사냥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전원 지역인 토트넘은 또한 1653년에 발행된, 아이작 월턴의 저서 조어대전에 등장했다. 토트넘 지역은 이 지역의 많은 퀘이커 교도들과 학교들 (브루스궁에 있는 롤런드 힐의 학교를 포함)로 알려지게 되었다.) 토트넘은 1870년대까지 다소 전원적이고 중상층 계급들의 지역이었다.
1870년대 말에, 그레이트 이스턴 레일웨이는 새롭게 개장한 엔필드와 월섬스토 노선에 특별 노동자들의 기차와 요금을 도입시켰다. 토트넘의 저지대와 근교농원들은 그때부터 런던 시내로 저렴한 값에 통근하는 노동 계층들을 위한 값싼 거주지로 빠르게 변화되었다. 노동자들의 요금 정책은 상대적으로 일찍 토트넘이 런던 교외로 발전하는데 자극을 주었다.
1909년 1월 23일에 토트넘 폭력 사태라고 알려진 사건이 발생했다.
2011년 8월 6일 영국 폭동이 처음 시작된 곳이다.
사실 런던에서도 많이 변두리 지역이고 썩 잘 사는 동네는 아니다. 슬럼가가 몰려있는 데다 NPK라는 지역 갱단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치안이 좋지 않으며 축구 빼고는 볼거리가 전혀 없는 동네 중 하나. 이 동네 축구팀의 회장 다니엘 레비가 허구헌날 '지역 부흥'을 외치며 선수단에 쓰는 돈을 아끼고 경기장이니 호텔이니를 짓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심지어 이 축구팀의 선수들도 치안 문제로 인해 대부분 햄스테드와 같은 가까운 북런던의 다른 구역에 살고 있다. 축구를 보러 방문한 관광객이라면 너무 으슥한 곳은 피할 필요가 있다.
지명 어원
표기법으로 '토트넘'과 '토튼햄' 표기가 공존하지만, 음성언어를 중시하는 경향에 따라 현지 발음과 유사한 "토트넘" 표기가 우세를 점한다.3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 역시 '토트넘'으로 표기할 것을 권장한다.
사실 이는 여타 영국계 성씨나 도시에 들어간 'ham'을 발음 및 표기할 때도 적용된다. Birmingham을 버밍햄이 아닌 버밍엄이라고 표기 및 발음하는 것, Beckham을 벡햄이라고 하지 않고 베컴이라고 표기 및 발음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4
인구
다양한 인종들이 몰려있는 편으로, 특히 백인을 제외하면 아프리카 흑인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그리스인, 튀르키예인, 소말리아인, 필리핀인, 베트남인, 짐바브웨인 등도 몰려있는 편이다.
2011년 영국의 인구 조사에서, 토트넘 선거구의 큰 비율을 차지하는 인종 구성이다.
27.7% 게르만족 백인
26.7% 흑인
22.3% 영국계 백인
12.6% 그외/혼혈
10.7% 아시아인
스포츠
이영표, 손흥민 선수가 뛰어 대한민국에도 많이 알려진 축구단 토트넘 홋스퍼 FC의 연고지이다. 구글에 토트넘만 쳐도 토트넘 지역보단 토트넘 홋스퍼가 제목인 글이 더 많이 뜰 정도로, 사실 토트넘이란 지역명이 알려지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구단이기도 하다. 2019년 개장한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역시 토트넘의 유명지이다.
콜스 파크 (Coles Park)
뉴 리버 스타디움 (New River Stadium)
토트넘 홋스퍼 FC 외에도 토트넘에는 2021-22 시즌 기준 콜스 파크 구장을 사용하는 7부 리그의 해링게이 버러 FC와 뉴 리버 스타디움이라고도 불리는 화이트 하트 레인 커뮤니티 스포츠 센터6를 구장으로 사용하는 10부 리그의 AS 런던 FC가 있다.
英 토트넘 폭동… 경찰서 공격-상가 약탈
“경찰, 무고한 흑인 청년 사살하고 거짓 발표… 진실 밝혀라”
영국 런던시내의 저소득층 거주 지역인 토트넘에서 6일 경찰에 항의하는 폭동이 발생해 경찰 26명과 시위대 수십 명이 다치고 경찰 순찰차, 버스, 상가 등이 불에 탔다.
이날 사건은 경찰의 총격으로 20대 흑인 남성이 숨진 것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집회로 시작돼 폭동과 약탈로 변질됐다. 시위대는 이튿날인 7일 오전까지 무차별로 인근 상가를 약탈했다. 시위가 과격해 ‘런던 시민의 수치’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토트넘은 런던시내의 북부지역으로 흑인과 저소득층 거주 비율이 높은 곳이다. 흑인 남성의 사망 과정에 인종적 편견이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날 폭동은 토트넘 역 인근의 페리레인 지역에서 4일 밤 마크 더건 씨(29)가 경찰관의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주민들이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우발적인 사건이지만 다문화사회에 내재된 불만이 무분별한 폭력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유럽 사회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로 주목되고 있다.
더건 씨의 친구와 친척 등 120여 명은 이날 오후 5시 반경 하이로드의 경찰서 밖에 모여 더건 씨의 죽음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는 500여 명으로 불어났고 오후 8시 반이 되자 일부 시위대가 경찰 차량 2대와 인근을 지나던 2층 버스 그리고 인근 상가 등에 화염병을 던지며 폭도로 돌변했다. 일부 시위자는 복면을 써 얼굴을 가리고 폭력을 휘둘러 주변 시민들이 공포에 떨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로 무장한 일부 청년은 토트넘 경찰서를 공격했다. 병과 부서진 보도블록을 던졌고 거리의 쓰레기통을 불태웠다. 일부 시위대는 상가에 침입해 TV나 기타를 훔쳐 나왔다. BBC TV 직원들과 위성방송 장비가 탑재된 트럭도 시위대의 돌에 맞는 등 공격을 받았다. 영국 정부는 곧바로 경찰을 대규모로 파견했고 폭동이 벌어진 시가지는 통행이 차단됐다. 경찰은 시위 현장에서 40여 명을 연행해 조사하고 있다.
시위대는 더건 씨가 숨진 정황에 대한 경찰의 조사 및 발표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경찰민원위원회(IPCC)는 “총격은 작전 중에 발생한 것”이라며 “더건 씨가 먼저 경찰관을 향해 총을 발사한 정황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목격자는 경찰이 더건 씨가 타고 가던 택시를 뒤쫓아 “멈추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더건 씨는 계속 도망갔고 이어 4발의 총소리가 연속으로 들렸다고 말했다. 곧이어 현장 인근에 헬리콥터와 경찰차 등이 대거 출동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목격자는 “경찰이 피를 흘리는 남자의 옷을 벗기려고 하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목격자들의 말에 따르면 더건 씨는 경찰관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하지 않았음에도 총을 맞고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더건 씨의 한 친구는 “그는 네 아이의 아버지로 전혀 폭력적이지 않은 사람이다. 살아오면서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은 이번 폭동이 1985년 이 지역에서 경찰이 압수수색을 하러 자택을 급습하는 과정에서 흑인 여성이 심장마비로 숨지자 지역 주민들이 폭동을 일으켜 화염병과 사제폭탄 등으로 경찰서와 경관들을 공격한 사건 이래 가장 폭력적인 것이라고 보도했다. 당시 경찰 58명과 지역주민 24명이 부상했다.
런던에서 토트넘은 인종 간 대립과 경찰에 대한 반감 등으로 폭력시위 발생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꼽힌다. 또 전 축구 국가대표 이영표 선수가 2005∼2008년 프리미어리그 구단 토트넘 홋스퍼에서 활약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곳이다.
과거 토트넘에 거주했던 런던 교민 목홍균 씨는 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런던에서는 북부 토트넘과 남부 브릭스톤이 인종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는 지역으로 꼽혀 왔다”며 “이번 약탈은 매우 터무니없는 것으로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