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쿤
Thomas Kuhn
출생
1922년 7월 18일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사망
1996년 6월 17일 (향년 73세)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미국의 과학사학자, 과학철학자, 물리학자.
옛날부터 서양 학생들을 괴롭혀 온 외국어 문법 암기사항을 가리킬 때 쓰이던 단어 “패러다임(Paradigm)”에 새로운 뜻을 부여함으로써, 상황이나 생각이 혁명적으로 바뀔 때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만든 인물이다. 반증주의를 내세웠던 칼 포퍼와 대립되는 입장에 서 있다고 평가된다. 과학철학에 있어 과학사적 연구를 중요시했다.
쿤은 1922년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유대인 가정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새뮤얼은 반전 평화주의자로서 하버드 대학교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을 졸업한 우수한 인재였으며, 어머니 미네트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쿤이 어렸을 때 그의 가족은 자주 이사를 다녔기 때문에 쿤은 전학을 자주했는데, 부모님은 쿤이 규모는 작지만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주의적인 사립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다만 대학 진학을 앞두고는 비교적 규모가 큰 태프트 사립고등학교를 다녔으며, 쿤은 과학과 수학에서 최고의 성적으로 그 학교를 졸업했다.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쿤은 1940년 하버드 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정작 쿤의 관심분야는 문학과 철학에 있었고 그래서 쿤은 강의도 그런 쪽으로 들으려고 했다. 그러나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하버드 대학교는 전시 체제로 운영되었으므로 쿤은 그 계획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에 쿤은 조기 졸업을 위한 전자학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3년 만에 최우수 성적으로 물리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럼에도 관심 분야에 손을 완전히 놓지는 않아서, 학부 2년차에는 학부 신문인 《하버드 크림슨(Harvard Crimson)》지의 편집 기자로 활동했으며, 학부 문학회인 시그넷 소사이어티(Signet Society)의 회원도 되었고, 학부 3년차에는 자연계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크림슨》의 편집장으로 뽑혀서 활동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후, 학교 내의 라디오파 연구소에서 군 복무를 시작해서 군에서 제대할 때까지 프랑스와 영국 등지의 연합군 레이더 기지들을 옮겨다니며 근무했다. 이 시절에 쿤은 다시 과학, 철학, 교육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여가 때에도 여러 철학자들의 글을 읽는데 시간을 썼다. 2차 대전이 끝나고 1945년 쿤은 다시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물리학과에 진학하긴 했지만, 그는 전쟁 수단으로 동원되는 과학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말았고, 그래서 자신이 뛰어난 물리학자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물리학과에 양해를 구하고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철학 과목을 한 학기 수강한다. 물론 자신의 나이와 여건을 고려해 일단 물리학을 계속하기로 결정했지만, 이후 쿤에게 철학은 계속해서 강력한 관심사로서 남게 된다. 아무튼 이런저런 일 끝에 쿤은 1946년에 석사 자격 시험에 통과했고 박사 과정으로 고체 이론 물리를 전공한다.
제임스 코넌트와의 만남
쿤이 대학원 시절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때 그의 일생을 바꾸어 놓을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의 평생 스승인 제임스 코넌트 하버드 총장을 만나게 된 것이다. 코넌트 총장은 미국 고등 교육 개혁을 위한 프로젝트를 맡고 있었으며, '자유 사회에서 교양 교육의 목표 설정을 위한 하버드 위원회'를 발족하고 인문학도들에게 과학사 중심의 과학 교양교육이 필요함을 주창하고 있었다. 쿤은 이에 대해 '방향은 맞지만 그걸 가르칠 교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식의 논평을 《크림슨》에 게재하였는데, 이 논평이 코넌트 총장의 주목을 끌게 되었고 총장은 쿤에게 '그럼 자네가 이 프로젝트를 도와주게나'라고 권유하기에 이르렀다. 쿤은 이를 계기로 순수 물리학자가 되는 길을 접고, 본격적으로 과학사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물론 쿤에게 있어서 과학사는 철학으로 가는 중간 단계였음은 분명하다.
코넌트 총장의 프로젝트에 참가한 1947년은 쿤에게 여러 가지로 중요한 해였다. 그해 여름, 쿤은 학부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론을 탐구하던 중에 자신의 연구의 출발점이 된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쿤이 보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끔찍할 정도로 역학에 무지할 뿐만 아니라 그의 글은 논리이든 관찰이든 지독한 오류들로 가득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쨌건간에 고전 논리학의 창시자로 칭송받았고 경이로울 정도로 꼼꼼하게 자연을 관찰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놀라운 재능이 어째서 운동학과 역학에 관해선 이다지도 발휘되지 않았던 것일까? 이런 의문에 쌓인 어느날 쿤의 머리 속에서 다음과 같은 생각이 불연듯 스쳐지나갔다.
책상 위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을 펼쳐 놓고 손엔 4색 연필을 쥔 채 책상 앞에 앉아있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멍하니 창문 밖을 내다 보았다 – 그때 내가 본 광경은 여전히 뇌리 속에 남아있다. 갑자기 머릿 속의 파편들이 스스로 새롭게 짜맞추어지며 탁탁 들어맞기 시작했다. 입이 떡 벌어졌다. 그 순간 아리스토텔레스가 대단한 물리학자로 보이기 시작했고, 이는 내가 상상조차 못했던 방식이었다. 그제서야 난 그가 말했던게 무엇이었는지, 그의 권위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이해했다. 이전엔 지독한 착오인 것 같았던 진술들이 이젠 아무리 나쁘게 본들 강력하고 일반적으로 성공적인 전통 하에서의 아까운 실수로 비추어졌다.
즉, 쿤의 깨달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을 이해하려면 먼저 아리스토텔레스가 활동했던 지적 전통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 시대의 과학을 이해하려면 그 시대의 과학자들이 작업하는 '지적 틀'을 우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운동"이라는 용어는 우리 시대가 정의하듯 '사물의 위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았던 시대의 정의인 '일반적인 변화 전반'을 의미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그의 논리가 지독한 착오는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이런 번뜩이는 통찰에서 이미 쿤의 그 유명한 개념, '패러다임'에 대한 단초가 보여지고 있다.
쿤은 코넌트 총장의 후원 아래 1948년 펠로 소사이어티(Fellow Society)의 주니어 회원이 되었다. 쿤은 회원 자격으로 3년간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었다. 그해 쿤은 물리학 박사 학위 논문을 썼으며, 캐서린 머스와 결혼했다. 이후 1년 반 동안 역사책을 포함해 많은 책들을 읽었다. 쿤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읽은 책들 중에는 과학사가 알렉상드르 쿠아레, 인지 심리학자인 장 피아제, 철학자인 윌러드 콰인, 루트비히 플렉의 책들이 포함된다. 1950년에는 코넌트를 도와 교양과학 과정인 '자연과학4' 강좌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회원 자격 마지막 해인 1951년 초에 쿤은 연구를 위해 유럽에서 가스통 바슐라르를 포함한 여러 학자들을 만나고 돌아와 보스턴 공공 도서관에서 로웰 강의로 알려진 강의를 8회에 걸쳐 진행했다. 당시 쿤은 3회까지의 강의를 바탕으로 과학혁명의 구조를 쓰려고 구상했다. 그러나 과학사를 통해 철학적 함의들을 이끌어 내려는 그의 구상은 1956년까지 과학사 연구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에 따라 연기되었다.
과학혁명의 구조가 나오기까지
1952년부터 1956년까지 쿤은 코넌트 프로젝트의 강사로서, 그리고 과학사 조교로서 하버드에 남아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하버드 주변을 맴돌았다는 비판이 있을 정도로 쿤은 오랜 기간 하버드에 머물렀지만 정작 정규 교수직으로 승직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그간 그의 연구에 진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53년에는 『통합 과학의 국제 백과사전』의 과학사 부분을 저술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며, 1956년까지 구겐하임 재단으로부터 연구비를 받고 활동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같은 해에 그의 첫 저서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출간했는데, 쿤은 이 연구를 토대로 하버드 사학과에 정규 교수직 승진 심사를 신청한다. 지금이야 쿤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이 명저로 인정받지만, 당시 하버드 사학과는 그 책이 교육용으로는 적당하나 학문적으로는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평가를 내렸고, 그렇게 쿤은 정규 교수직 승진 심사에서 떨어졌다.
쿤에게 새로운 기회를 부여한 학교는 UC 버클리였다. 1956년에 버클리의 철학과와 사학과는 쿤에게 과학사 수업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이를 받아들였다. 여기에는 쿤이 철학을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UC 버클리가 그를 초청한 숨겨진 이유가 있었다. 냉전시대에 소련과의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는 국가적인 정책의 일환으로 과학적 발견의 방법을 모색하는 프로젝트가 추진 중에 있었는데, 쿤의 연구 경력이 그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하에서 쿤을 초청하는 모험을 감행했던 것이었다. 쿤은 날씨 좋은 이곳 캘리포니아에서 학생들에게 과학사를 가르쳤으며, 남는 시간에는 자신의 연구가 품고 있는 철학적 문제에 매달리면서 그 생각을 바탕으로 《과학혁명의 구조》를 빠르게 써 내려갔다.
그러나 과학혁명의 구조가 단행본으로 출간되기 1년 전인 1961년에, 쿤의 말을 빌리면, "에덴 동산으로부터 추방"되는 충격적인 일을 겪는다. 승진할 것이 유력했던 UC 버클리 철학과 정교수직 승진 심사에서 충격적이게도 탈락한 것이다. 더군다나 쿤은 그 무렵 존스홉킨스 대학교로부터 좋은 조건의 교수직을 제안받았지만, 쿤이 버클리에 남아 있기를 바랬던 학과장이 이를 말리면서 심사를 기다려달라고 요청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대하는 바도 있었다. 그러나 심사에서 철학과의 노장 철학자들이 쿤의 철학과 정교수직 승진은 모두 반대하면서 단지 사학과 정교수직만 승인해주었고, 결국 쿤은 사학과 교수만 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는데, 존 설은 후일 어느 대담에서 자신을 포함해 소장 학자들이 이 사실을 알았으면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술회했을 정도로 부당한 일이었다. 불과 2년 후인 1963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과학사 및 과학 철학 교수직을 쿤에게 제안하자 쿤이 그것을 바로 승락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아무튼 이 사이인 1962년에 쿤은 그 유명한 책 《과학혁명의 구조》를 낸다. 사실 이 책은 초반에는 그렇게 잘 팔리는 책이 아니었다. 1962/63년에는 919부, 1963/64년에는 774부 밖에 팔리지 않았다. 그런데 곧 이 책이 유명해지게 된 계기가 찾아왔다. 이 책이 각 학문 분야로 파급되면서 실질적으로 철학계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바로 그 계기는 1965년 런던정경대학에서 열린 한 과학철학국제학회에서였다. 이 학회의 심포지엄은 원래 칼 포퍼의 과학철학의 의의를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쿤의 과학철학을 포퍼, 라카토슈, 툴민, 파이어아벤트 등 대부분의 발표자들이 논박하는 과정에서, 칼 포퍼를 위한 심포지엄이 사실상 쿤을 위한 심포지엄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 회의의 토론 결과물인 『비판과 지식의 성장』은 본래 그 의도와는 다르게, 쿤 이론에 대한 철학자들의 반응을 모은 책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패러다임과 과학혁명을 이용하여 과학의 발전 과정을 설명한 이 책을 주제로 한 학회가 여러 곳에서 열리게 되었고, 각종 매체에서 이를 언급함에 따라서 과학사와 과학철학 분야 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다른 분야에서도 곧 쿤의 이론을 수용하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한참 동안 이 책은 모든 책들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책 중 한 권이었고, 그에 비례하여 《과학혁명의 구조》도 덩달아 불티나게 팔렸다.
프린스턴 대학교에 있었던 1978년까지 쿤은 대중적인 명성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1960년대에 쿤은 찬사와 비난을 한 몸에 받았는데, 이는 사람들이 쿤을 오해한 탓도 크다. 샌프란시스코의 학생들은 쿤을 이렇게 찬양했다. "마르쿠제와 쿤은 샌프란시스코의 영웅이다. 혁명에 대해 책을 쓴 분들이 여기 있다." 쿤은 조교들을 통해 자신의 책이 그렇게까지 급진적인 것은 아니라고 설명해야 했다. 극단적인 비난도 있었다. 쿤과 친분이 있었던 과학철학자 카를 헴펠은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쿤의 책은 비합리적이고 상대주의적이므로 모조리 불살라야 한다." 그러나 이 양극단의 평가는 실제 쿤의 사상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쿤은 프린스턴 대학을 떠나기 전, 두 권의 책을 저술했다. 1977년에 그동안 발표했던 논문들을 묶어 《본질적 긴장》을 출간했으며, 1978년에는 《흑체 이론과 양자 불연속성》을 출간했다.
보스턴으로의 귀향
1977년 쿤은 프린스턴 대학을 떠나 한 해 동안 뉴욕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후, 1979년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의 과학사 및 과학철학 교수로 재직한다. 이로써 쿤은 정신적 고향인 보스턴으로 돌아온 셈이다. 귀향 후 쿤은 여러 가지 상을 받기도 하고 몇 번의 학회 회장도 역임하였다. 귀향 전 1968년에서 1970년까지 미국 과학사학회 회장을, 그리고 귀향 후 1988년에서 1990년까지 과학철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1982년에는 과학사학회 최고상인 조지 사턴 상을 받았고, 1983년에는 과학사회학회의 존 데스먼드 버날 상을 받았다. 1983년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철학과의 첫번째 록펠러 석좌교수로 임명되었고, 1991년 그 대학에서 은퇴했다. 쿤은 미국 학술원 회원으로서 10개 이상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시기 쿤의 삶은 철학자들과의 대담에도 잘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시절의 논문들을 보면 그가 과학사에서 완전히 벗어나 언어 철학적인 문제로 집중했던 시기임을 알 수 있다. 1970년대까지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제기했던 패러다임의 문제를 해소하고 의미를 명료화하려고 노력했다면, 귀향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는 공약불가능성에 대한 당대 미국 철학자들의 비판에 답하면서 자신의 이론에 수정을 가하기도 하고 다른 표현들을 사용해 이를 구체화시켰다. 공약불가능성에 대한 비판들 중에서도 특히 도널드 데이비드슨과 힐러리 퍼트넘의 비판에 대응하려고 애썼다. 데이비드슨의 비판에 대해서는 국소적 공약불가능성의 개념으로 대처했고, 퍼트남의 인과적 지칭이론을 반박할 때에는 공약불가능성의 전체적 특성을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쿤은 패러다임의 변화, 즉 과학혁명을 '과학종(scientific kind)의 사전적 분류 체계의 변화'로 설명하고 있으나, 이러한 설명은 아쉽게도 설득력을 갖지 못했고, 자신의 철학을 제대로 마무리 하지 못한 채 쿤은 1996년 6월 17일 기관지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과학혁명의 구조 이후
과학혁명의 구조 출판 이후 쿤은 프린스턴 대학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등에서 과학사 및 과학철학 교수로 재직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그는 후기로 갈 수록 ‘공약불가능성’ 개념을 보다 정교화하는 등 과학철학적 주제에 관해 주안점을 두었다.
20세기 후반 내내 쿤은 파울 파이어아벤트 등과 묶여 '합리주의적 과학관'에 반하는 입장의 대표적인 인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쿤은 자신이 ‘비합리주의’의 전형으로 간주되는 것을 불쾌하게 여겼으며 상기한 사회 구성주의와 과학지식사회학 옹호자들과 철저히 거리를 두었다.
쿤의 이론중 공약불가능성은 후에 그의 후계자라 할수 있는 피터 갤리슨에 의해 반박된다. 갤리슨은 크리올어의 사례를 들어 설명했는데, 분명 사용하는 단어와 제반 문화가 다름에도 언어가 피진어, 크리올어를 통해 소통가능하듯이 과학의 패러다임도 일종의 피진어 형성을 통해 공약불가능성을 극복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과학자를 이론/실험/기구 연구자로 나누고 실험,기구연구자들이 피진어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여 실험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주요 저서
코페르니쿠스 혁명
The Copernican Revolution
1957년
과학혁명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1962년
본질적 긴장
The Essential Tension
1977년
흑체 이론과 양자 불연속성
Black-Body Theory and the Quantum Discontinuity
1978년
구조 이후의 길
The Road since Structure
2000년
2024년 기준, 『코페르니쿠스 혁명』과 과학혁명의 구조는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으나, 나머지 책은 아직 번역되어 있지 않다.
어록
역사를 일화나 연대기 이상의 보고(寶庫)로 간주한다면, (역사는) 현재 우리가 사로잡혀 있는 과학의 이미지에 결정적인 전환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과학혁명의 구조 2판 1장의 첫 구절.
당신이 얻으려는 해답은 당신의 질문에 달려있다.
과학혁명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토머스 쿤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는 흔히 20세기 중반 과학적 방법론 논쟁의 역사 이후 주류 방법론이 된 칼 포퍼의 반증주의에 관한 막대한 위협을 가한 이후 현재까지도 과학적 실재론을 반대하는 입장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문헌 중 하나로 평가된다. 진영을 막론하고 과학철학에 있어 과학사 연구의 비중이 확대되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쿤과 같은 이공계 학위 소지자들이 과학철학 및 과학사 학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해당 저서를 통해 쿤은 논리 경험주의 등 논리학적인 형식에 방점을 둔 전통적인 과학철학적 입장 혹은 과학적 실재론을 지지하는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의 많은 반발을 낳았다. 반면 과학혁명의 구조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진영은 ‘과학이 사회적인 요소로부터 독립적인 객관적 활동이다’라는 주장을 반대하는 진영이었으며, 이는 곧 과학에 대한 사회 구성주의social constructivism, 그리고 과학기술사회학에서는 스트롱 프로그램Strong programme으로 대표되는 과학지식사회학SSK을 낳는데 기여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선 급기야 포스트모더니즘과 결합하여 종국엔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과 과학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주요 내용
과학의 발전 단계
전과학 (prescience)
학문 공동체가 일반적으로 합의하는 패러다임이 출현하지 않은 시기, 즉 아직 미성숙한 단계의 과학이다. 공통된 패러다임이 출현함에 따라 정상과학으로 발전한다.
eg. 1740-1780년대 벤저민 프랭클린 이전의 전기기학
정상과학 (normal science)
패러다임이 확립됨에 따라 공통된 이론적 기반/방법론이 받아들여지는 시기. 이 시기 과학적 탐구는 '퍼즐-풀이' 같은 성격을 지니며, 그 탐구의 성과는 차곡차곡 쌓인다.
eg. 실험을 통한 물리상수 값의 정밀한 계측
위기 (crisis)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이상 현상anomaly이 점점 많이 보고됨에 따라 정상과학에 대한 불신이 나타나는 단계. 새로운 패러다임이 받아들여질 여지를 제공한다.
eg. 코페르니쿠스 시기의 천문학
과학혁명 (scientific revolution)
위기 끝에 기존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확립되는 단계. 이는 기존 정상과학 단계에서 쌓인 성과들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상과학을 낳는다.
결론 및 함축
과학 활동은 계속 지식을 쌓아가는 것만은 아니다. 과학혁명은 기존의 정상과학의 성과를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기존 패러다임에선 설명할 수 있었던 현상 전부가 그 다음 패러다임에서도 쉽사리 설명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이렇듯 기존엔 멀정히 설명할 수 있던게 오히려 패러다임의 교체 이후 설명할 방법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논지는 많은 논란을 낳았으며, 이는 흔히 Kuhn-loss 문제라고 불린다.
과학 활동을 어떤 객관적인 진리에 접근해가는 것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이는 생물체의 진화가 어떤 이상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닌 점과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쿤은 새 패러다임이 옛 패러다임보다 더 많은 문제를 풀 수 있으며, 곧 과학적 진보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패러다임” 개념
그리스어 “παράδειγμα”에서 유래한 영단어 “Paradigm”은 본래 외국어 문법을 학습할 때 동사의 변화 패턴을 외우는데 쓰는 범례를 가리킨다. 쿤은 재판관이 관습법 상의 판례에 준거해 판결을 내리는 것을 과학 활동과 견주어 연상하고는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차용했다.
쿤은 과학이 항상 특정한 패러다임(paradigm)에 의해 조직되고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말하는 패러다임은 과학자들이 공유하는 이론적 개념, 규칙, 가정, 실험 방법론 등을 포함하는 의미의 단어이다.
쿤은 과학적 과정이 항상 특정한 이론적 틀(패러다임)에 의존한다고 보았다. 그는 앞선 노우드 러셀 핸슨과 같은 학자들의 작업을 참고하면서 과학적 활동에는 과학자가 사용하는 개념, 믿음, 실험 장치 등이 관찰의 해석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지구 중심설(천동설) 패러다임에 익숙한 과학자와 태양 중심설(지동설) 패러다임에 익숙한 과학자는 동일한 천문학적 현상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절망스러울 정도로 남용되고” “통제가 되지 않는다고” 쿤 자신이 고백할 정도로 현대 사회에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는 뿌리 깊게 쓰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러다임' 개념은 저서에서 매우 애매하게 사용되며 1판 출판 당시에 많은 비판을 받게끔 하는 요인이었다. 철학자 마가렛 마스터맨Margaret Masterman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어휘 “패러다임”이 최소한 21개의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쿤은 이런 비판을 인정하고 2판의 '후서'에서 “패러다임”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정의를 시도한다.
'후서'에서 쿤은 “패러다임”이 넓은 의미에선 기호적 일반화symbolic generalization (예. 역학에서의 f=ma), 모형models (예. 기체 운동론에서의 기체 운동 모형), 가치value (정확성, 단순성, 일관성 등), 범례exemplar로 구성된 전문분야 행렬disciplinary matrix을 뜻하며, 좁은 의미에선 오직 범례만을 뜻한다고 말한다.
이때 ‘범례’란 실제 해당 분야에서 해결한 모범적인 문제들과 그에 대한 해답들을 가리킨다: 과학 공동체의 예비 구성원들은 이런 연습 문제들을 푸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과학 공동체에 속한) 전문가들이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을 체득하게 된다.
쿤은 이렇듯 과학 가운데 실질적으로 중요한 부분은 바로 구체적인 문제 풀이이며, 과학자들의 중요한 발견 역시 기존의 문제 풀이 방식을 본땀으로써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 예시로 쿤은 베르누이의 정리 발견이 유체를 하위헌스(호이겐스)의 진자를 빗대어보는 발상으로부터 유래했다고 말한다.
공약불가능성
본래 “공약불가능하다incommensurable”, 즉 공통된(“com-”) 척도(“measure”)를 결여한다는 말은 직각이등변삼각형에서 (빗변 길이/다른 변 길이) 값이 유리수가 아니라는 성질을 가리키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쿤은 패러다임들끼리의 경쟁이 증명 문제처럼 딱딱 풀리는 것이 아니며, 다음 세 가지 의미에서 “공약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패러다임에 따라 해결해야할 ‘과학적 문제들의 목록’에 관해 의견을 달리 한다.
예. 물질 입자간의 인력을 아리스토텔레스와 데카르트 이론에서는 해결해야할 문제로 간주한 반면, 뉴턴 역학에서는 이를 있는 것으로 전제했다.
패러다임이 다르면 같은 용어조차도 의미가 달라진다
예. 뉴턴 역학에서의 “공간”과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의 “공간”
각기 다른 패러다임에 속한 과학자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활동하며 … 동일한 방향에서 같은 지점을 볼 때에도 서로 다른 것을 본다”
쿤의 이러한 ‘공약불가능성’ 개념은 <과학혁명의 구조> 가운데서도 가장 격렬한 논란을 낳은 주제 중 하나이며, 과학철학의 중요한 문제거리중 하나로 남아있다.
패러다임(paradigm)
한 시대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인식의 틀을 뜻하는 개념입니다.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를 의미
패러다임의 유래
패러다임은 고대 그리스어로 패턴, 예시, 표본 등을 뜻하는 '파라데이그마(παράδειγμα)'에서 유래한 말
미국의 과학철학자인 토머스 쿤이 1962년 저서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
패러다임 시프트: 새로운 개념과 이론이 축적에 따른 점진적 진보가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통한 혁명을 통해 발전한다는 이론
뉴 패러다임: 기존의 패러다임과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고 새로운 방식으로 행동하고 사고하는 것을 의미
패러다임의 다른 표현 이론, 사고틀, 세계관, 가치관.
패러다임(영어: paradigm)은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 또는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토머스 쿤이 제안하였다.
패러다임은 패턴, 예시, 표본 등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παράδειγμα 파라데이그마를 영어화하여 만들어낸 신조어이다.
토머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처음으로 제안한 패러다임은 한 시대의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이론이나 방법, 문제의식 등의 체계를 뜻한다. 예를 들어 천동설이 진리로 받아들여지던 시기에 다른 모든 천문 현상은 천동설의 테두리에서 설명되었다.
예를 들어, 화성과 같은 외행성은 천구를 지나는 특정 기간에 정상적인 공전 방향과는 반대로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기원전 3세기 무렵 고대 그리스 때부터 잘 알려져 있었고, 천동설에 부합하는 설명을 하기 위해 주전원과 이심원을 갖는 천체 모형을 고안하게 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모형은 이를 정교하게 설명하고 있다. 반면에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행성 간의 공전 주기 차이로 인해 일정기간 외행성이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한다.[
토마스 쿤은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이론 체계가 변화하는 과정을 과학혁명의 단적인 예로 제시하였다. 쿤은 이러한 과학 이론의 변화는 어느 한 이론이 그르고 다른 한 이론은 옳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당대 사회 전체가 갖는 신념과 가치체계가 변화한 것이며, 문제 해결 방법이 달라진 것이라 파악한다. 이러한 개념에 따르면 현대의 표준 모형 역시 하나의 패러다임일 뿐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과학적 패러다임
옥스포드 영어 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에서는 'paradigm'을 '패턴 혹은 모델, 전형; 무언가의 전형적인 사례, 예시(a pattern or model, an exemplar; a typical instance of something, an example)'로 정의한다. 과학사학자 토마스 쿤(Thomas Kuhn)은 어느 특정 시기 과학 지식을 정의하는 구상과 실천들을 의미하는 단어를 사용하여 패러다임의 현대적 의미를 제시하였다.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1962년 초판)에서 쿤은 과학적 패러다임(scientific paradigm)에 대하여 '어느 한 시기, 어느 한 전문가 집단에게 전형적인 문제와 해결책을 제공하는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과학적 성취(universally recognized scientific achievements that, for a time, provide model problems and solutions for a community of practitioners)'라고 정의하였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무엇'이 관찰되고 검증되는가(what is to be observed and scrutinized)
이 주제와 관련하여 질문되고 탐구될 일종의 '질문들'(the kind of questions that are supposed to be asked and probed for answers in relation to this subject)
'어떻게' 이러한 질문들이 조직되는가(how these questions are to be structured)
'어떤' 예측들이 과학 지식 속에서 주요이론을 통해 내려지는가(what predictions made by the primary theory within the discipline)
'어떻게' 과학적 탐구들의 결과가 해석될 것인가(how the results of scientific investigations should be interpreted)
'어떻게' 한 실험이 수행되는가, 그리고 그 실험을 수행하는 데 유용한 장비는 '무엇'인가(how an experiment is to be conducted, and what equipment is available to conduct the experiment.)
책에서 쿤은 과학에 대하여, 기존의 실제 모형(model of reality)이 늘어난 퍼즐 풀이 기간을 지배하면 정상과학(normal science)이 대체되며, 또한 실제 모형이 급작스러운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되면 혁명(revolution)을 겪게 된다고 보았다. 패러다임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 정상과학에서 패러다임은 복제되거나 모방될 전형 실험들을 의미한다. 둘째, 이러한 전형들을 뒷받침하는 것은 증거 수집에 앞서면서도 증거 수집에 전제가 되는 공통된 선입견(preconception)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선입견들은 쿤이 '준형이상학적(quasi-metaphysical)'이라고 말하는 숨겨진 가정이나 요소를 모두 품는다. 패러다임의 해석들은 과학자 개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쿤은 전형들을 선택하는 원리는 현실을 바라보는 특정 방식이라는 것을 말하는 데에 주력하였다. 전형(exemplar)에 대한 관점(view)과 현상(status)은 서로 보강하는 관계이다. 어느 한 특정 지식을 믿는 서로 잘 융화된 구성원들에게 있어, 패러다임은 매우 설득력이 높아서, 그것을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설득력이 없거나 반직관적인(counter-intuitive) 것이 된다. 이런 패러다임은 빛을 통과시키지 못하는 불투명한 유리 같아(opaque), 현실의 기반을 바라보는 직접적인 관점(direct view)으로 보이거나, 다른 대체 형상이 그 뒤에 숨겨져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흐리기도 한다. 현재의 패러다임이 실재라는 신념은 그 패러다임의 기반을 흔드는 증거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 결과 이는 절충되지 못한 예외(anomaly)들이 축적되게 한다. 이렇게 축적되고 강화되는 예외들은 현존하는 패러다임이 전복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되는 원인이 된다. 이러한 과정에 대하여 쿤은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하단 참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으며, 어느 한 모호한 관념(image)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뒤집히면 발생하는 인식 변화(perceptual change)에 비유하였다. (토끼-오리 착시rabbit-duck illusion는 한 예시가 된다. 토끼와 오리를 동시에 볼 수 없다.) 이는 비교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 문제와 관련하여 유의미하다(하단 참조).
현재 수용되고 있는 패러다임의 한 예시는 물리학의 표준 모델(standard model)이 있다. 과학적 방법(scientific method)은 표준 모델을 반박하거나 그것의 오류를 입증하는 현상에 대한 정통적 과학 탐구를 허용한다. 그러나 실험을 통해 테스트할 표준 모델 이론과의 편차 정도에 따라, 이러한 실험들에 들어갈 보조금 지원도 얻기 힘들다. 예증을 위해, 운동량 보존(conservation of momentum)의 법칙에 위배되는 사례를 찾거나 과거로의 시간여행(reverse time travel)을 설계하는 방식을 구상하는 실험에 비하여, 중성미자(neutrino) 질량 측정이나 양성자(proton) 자연붕괴(표준 모델로부터 약간 벗어난 것)를 입증하려는 실험이 돈을 받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쿤의 패러다임과 유사한 메커니즘들은 과학철학(philosophy of science) 이외에도 여러 학문분야에서 언급되어 왔다. 이는 다음과 같다. 주류 문화적 주제들에서의 이념, 세계관(worldview) (하단 참조), 이념(ideology), 사고방식(mindset) 등이 있다. 이들은 학문적 사고(disciplined thought)의 작거나 큰 규모의 사례들에 족용하는 유사한 의미가 있다. 또한 쿤이 사용한 원의의 패러다임 측면에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에피스테메(episteme)와 담론(discourse), 마테시스(mathesis)와 택시노미아(taxinomia)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 radical theory change) 또는 좁은 의미에서의 과학혁명은 토머스 새뮤얼 쿤(Thomas Kuhn, 1922~1996)의 《과학 혁명의 구조》에 처음 등장한 말로서, 과학 활동에서 새로운 개념과 이론은 객관적 관찰을 통해서 형성되기보다는 연구자 집단이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형성된다는 것이다. 즉, 과학의 역사는 연구자들의 객관적 관찰에 의한 진리의 축적에 따른 점진적 진보가 아니라 혁명 즉 단절적 파열에 의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통해서 과학이 발전한다는 이론이다. 여기서 패러다임이란 과학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믿음, 가치, 기법 등의 총체로서 상대주의적이다.
패러다임의 전환 과정은 이른바 '정상과학' 즉 많은 패러다임 중 가장 지배적인 패러다임 하나가 존재하다가, 그 패러다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지고, 그래서 기본 가정들이 도전을 받게 되면 기존의 정상과학에 위기가 찾아온다. 이런 과정 속에서 다른 여러 패러다임들과 경쟁을 하게 되고, 그러다가 어느 패러다임이 새롭게 득세하고 수용되면서 과학혁명이 발생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과학혁명을 통해서 새로운 정상과학으로 인정받고 수용되는 이러한 패러다임들의 전환 과정을 통해서 과학은 주로 발전한다고 보는 쿤의 과학철학 이론을 '패러다임의 전환'이 대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