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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스위프트, 인기 이유, 타임, 올해의 인물, 싱어송라이터, 타블로이드, 미스 아메리카나

Jobs 9 2024. 3. 1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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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스위프트 인기 이유

테일러 스위프트는 분열된 세계에 남은 유일한 단일 문화입니다.
She's the last monoculture left in our stratified world.
- 2023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


테일러 스위프트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2006년 데뷔한 이래 17년차가 된 2024년 현재까지 꾸준히 최정상의 위치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있는 가수이다. 1집부터 10집에 이르기까지 단 한개의 앨범도 실패한 적이 없다. 1~3집에서는 컨트리 뮤직을 하는 미국의 국민 여동생 느낌으로 사랑받았다면 4집부터는 팝 음악으로 전향해 월드와이드로 주목받기 시작해 5집 1989로 세계적 팝스타로서 인기를 누렸다. 그렇게 정점을 찍을것으로 예측되었으나 그 이후에도 꾸준히 롱런하더니 지금은 10집 Midnights부터 그후에 이어지는 The Eras Tour에 이르기까지 가히 엄청난 반응과 1989 시절을 뛰어넘는 신드롬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 테일러가 투어를 다니는 도시마다 엄청난 경제적 효과가 나타나 스위프트노믹스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으며 이러한 테일러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 단독 인물로는 최초로 타임지 올해의 인물까지 선정되었다. 또한, 테일러 스위프트는 가수 최초로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4번 수상한 가수이다. 

보통 일반적인 가수들이 음원, 앨범, 평단, 투어 등에서 특정 부분에만 강세를 보이고 다른 부분들은 약세인 경우가 많은데 테일러는 모든 부분에서 강세이며 균형잡힌 커리어를 보유 중이다. 당장 음원부분에선 Midnights 앨범으로 빌보드 핫 100 탑10을 모두 자신의 곡으로 채웠고, 스포티파이 역사상 가장 많이 재생된 가수이며, 현재까지 2억장 이상의 앨범세일즈를 기록하고 있다.  

데뷔 이래 모든 곡을 본인이 단독, 혹은 공동작업하며 평론 쪽에서 항상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고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4번 수상한 최초의 아티스트다. 투어 부분에선 2023년부터 진행중인 The Eras Tour가 일정 중 절반 이상이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역대 가수 최초로 투어 수입 10억달러를 달성하였다. 심지어 투어 실황 영화인 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까지 엄청난 수입을 거뒀다. 2018년까지 발매한 단 6개의 앨범으로 역대 빌보드 아티스트 8위를 기록하였으며 이후에 그녀가 낸 앨범들과 그 성과들을 생각했을때 현재는 훨씬 높은 순위가 예상된다. 

 

데뷔 전
펜실베이니아 주 레딩에서 메릴린치의 재정 자문가로 일하는 금융 전문가인 아버지 스캇 스위프트와 광고대행사의 마케팅 매니저였던 어머니 앤드리아 스위프트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경제와 경영분야 전문가인 스위프트 부부는 원래 테일러가 사업가가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중에 사업가 생활을 할 때 여성이라고 무시당할 여지를 없애려고 그녀의 이름을 중성적인 느낌의 테일러(Taylor)로 정했다.

그러나 테일러는 어려서부터 학교 뮤지컬 무대에 서거나 부모님을 졸라 뉴욕에 가서 보컬 레슨을 받는 등 가수로서의 진로에 대해 진지한 야망과 열심을 보였고 테일러의 부모는 자신들의 계획과는 매우 다른 딸의 꿈에 대해 적극적인 공감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테일러는 12살부터 컴퓨터 수리기사이자 뮤지션인 로니 크레이머로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기타를 배우면서 테일러는 샤니아 트웨인에게 매료되어 컨트리 음악을 하고자 했고 테일러는 가족의 도움으로 컨트리 음악의 성지인 내슈빌 중에서도 음반사, 스튜디오, 라디오, 작곡가들이 밀집한 Music Row에 커버곡과 자신의 자작곡이 담긴 데모 CD를 돌리기 시작한다. 

그 결과 테일러는 14살이 되던 해인 2003년, 내슈빌에서 RCA 레코드가 주최한 쇼케이스에 참가해 자신이 만든 곡으로 무대를 펼쳐서 RCA 레코드사와의 계약에 성공했다. 그러나 RCA 레코드사에서는 테일러에게 자작곡이 아닌 커버곡을 부르게 한데다가 테일러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데뷔 앨범 제작을 계속 늦추었고 결국, 테일러는 RCA 레코드사와의 계약을 해지한다. 

이 즈음 테일러의 아버지는 직장을 아예 메릴린치 내슈빌 지점으로 옮기고 딸을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테일러의 가족은 매사추세츠 주에서 테네시 주 내슈빌로 이사하였다. 이후 테일러는 내슈빌의 여러 카페나 펍에서 공연하며 동료 뮤지션들과 친분을 쌓는데 특히, 먼저 가사를 짓고 악기를 연주하며 이와 어울리는 멜로디를 붙이는 방식으로 곡을 작곡하던 여성 싱어송라이터 리즈 로즈의 작곡법에 큰 영향을 받는다. 또한, 테일러는 어릴적부터 비틀즈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하며, 비틀즈와 폴 매카트니의 구할 수 있는 모든 테이프와 음반을 구매해서 들으며 비틀즈의 작곡 방식을 공부했다고 한다.

2005년, 내슈빌의 블루버드 카페에서 레코드 관계자들이 모여 신인 아티스트 발굴을 위한 쇼케이스를 연다는 소식을 접한 테일러는 자작곡으로 쇼케이스에 참가했고 이런 테일러를 눈여겨 본 인디 레이블 빅 머신 레코드의 사장 스콧 보체타의 제안으로 테일러 스위프트는 빅 머신 레코드와 계약하면서 본격적으로 데뷔 앨범을 준비하게 된다. 이때 테일러의 아버지는 빅 머신 레코드의 주식 일부를 사들여서 레코드사의 주주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음악적 성향
테일러의 가장 두드러지는 음악성은 단연코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를 꼽을 수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자신의 곡 모두를 자신이 단독으로 또는 공동 작사, 작곡 및 프로듀싱한다. 2006년에 발매한 데뷔 앨범 때 부터 크레딧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놀랍게도 이 때 나이가 17세이다. 테일러는 데뷔 앨범에 자신의 청소년기에 있었던 사랑과 이별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노래에 담아냈으며, 이걸 컨트리 뮤직으로 풀어냈다. 그리고 정규 2집 《Fearless》 앨범으로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다. 이 이후 테일러가 진짜로 작곡을 했는지 의심하는 이들이 나타났고, 테일러는 정규 3집 《Speak Now》의 전곡을 자신의 자작곡으로 채우며 논란을 종식시킨다. 이는 한 곡에 5~6명씩, 많으면 10명 이상이 달라붙어서 공동작업을 하는 경우가 태반인 팝 음악계에서는 실로 대단한 것이다. 또한, 송라이팅 과정을 기록한 영상들과 공동 작곡가들의 증언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에 완성된 곡에 가사 몇 소절 적고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는 싱어송라이터 마케팅 논란으로부터 자유롭기도 하다.

테일러는 1990년대 중반부터 급부상한 컨트리 팝의 계보를 이으며 커리어를 시작했다. 초기에는 1990년대의 샤니아 트웨인과 여러 면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테일러 본인 역시 샤니아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다만 정통 컨트리를 애호하는 사람들이나 안티들은 스위프트가 추구하는 음악 노선이 컨트리와 맞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데 4집 이후부터는 컨트리보다는 팝 위주로 노래를 내고 있어 더 이상 컨트리 가수라고 분류하지 않는다. 팝으로 전향한 이후로부터는 마돈나 등의 가수에게 영감을 받았음을 드러냈다. 팝으로 전향하자마자 두번째 그래미어워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다. 

2020년 포크 색채가 짙은 《folklore》와 얼터너티브 록 장르의 《evermore》로 컴백해 더욱 넓어진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2021년의 두개의 컨트리 음반 재녹음 앨범를 발매, 2022년에는 다시 팝 앨범으로 컴백, 2023년에는 다시 컨트리 재녹음 앨범을 발매하면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음악성을 보이고 있다. 주요 매체에서는 테일러의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매번 높은 평가를 하고 있으며 역사상 단 4명뿐인 그래미상 올해의 앨범상 3회 수상자라는 타이틀까지 획득했다. 

이러한 테일러의 싱어송라이터 면모들은 거대한 팬덤 형성에 가장 큰 기여를 한다고 볼 수 있다. 테일러가 현재도 대중들의 응원과 팬덤이 받쳐주는 것은 테일러가 갖고 있는 아티스트로써의 면모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이 겪은 일을 작사를 통해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고, 또한 이를 대중들에게 공감성 있게 보여주는 것이 테일러의 가장 큰 장점이자 능력인 것이다. 

테일러의 가사들을 자세히 보면 연결되는 곡들이 많은데, 이러한 점을 찾는 것도 소소한 재미 중에 하나이다. 아래 목록은 직접적으로 대응되는 가사의 일부로 실제로 더욱 많으며 간접적으로 다른 곡을 레퍼런스하거나 소재를 공유하는 곡은 엄청나게 많다. 10개에 이르는 정규앨범과 2개의 재녹음 앨범에 추가된 곡[까지, 끊임없는 변주를 통해 본인의 삶과 경험을 엮어나가 수많은 팬들의 공감과 평단의 높은 평가를 지속적으로 얻어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가사는 자신이 직접 인정했듯이 초기에는 굉장히 동화스러운 이미지를 물씬 풍겼다. 아예 2집의 수록곡 "White Horse"는 백마를 탄 왕자님으로 자신의 전 남자친구를 비유하며 곡을 이끌어 나갈 정도로, 앨범 프롤로그에도 "자신은 동화 속 이야기를 굳건히 믿는다" 하며 공주님 같은 깨끗한 이미지를 유지해왔다. 이 때문에 노래가 유치하다는 평도 존재했다. 테일러의 대표곡 Love Story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노래들을 작사,작곡 했을 때 그녀는 10대였다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0대가 10대의 사랑 이야기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말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 발매한 3집부턴 가사에 대한 호평이 눈에 띄게 늘어났으며, 특히 그녀의 나이 22세에 발표한 4집의 수록곡 "All Too Well"이 그 수려한 가사로 여러 매체로부터 스위프트의 작사 능력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곡이라는 찬사까지 받았을 정도로 송라이터 테일러 스위프트는 뛰어난 성장을 보여주었다. 

컨셉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17년 공개된 뮤직 비디오 "I Don't Wanna Live Forever"에서는 란제리를 입고 침대에 드러누워 버리고 6집 앨범 reputation 앨범에서는 과격하면서도 노골적인 디스트랙인 "Look What You Made Me Do"를 리드싱글로 내세워 컴백했으며 2020년 발매한 folklore 앨범부터는 가사에 F-Word가 등장하는 등 과거의 그녀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파격적인 변신을 보여 주었다. 데뷔 초와 달리 현재의 테일러는 나이도 30살이 넘었고 몸도 마음도 다 성숙해진 상태이니 이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싱어송라이터
테일러는 항상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연애사나 경험담을 직접 가사로 쓴다. 2006년 데뷔 앨범부터 10집까지 전부 작사, 작곡, 프로듀싱에 참여했다. 커리어 초반 십 대 때는 컨트리 팝송을, 4집부터는 팝 장르로 스펙트럼을 넓혔다. 다양한 컨셉을 시도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음악으로 대중과 평단에 높은 평가를 받는다. 최초의 4회 그래미 어워즈 ‘올해의 앨범상’ 수상자, 스포티파이 역사상 가장 많이 재생된(216억회) 여자 가수, 2억장 넘는 앨범 세일즈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디 에라스 투어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이 한국에서 열 수 없어 아쉬워 한 그 콘서트다. 이달 도쿄에서 디 에라스 투어가 열렸다. 올해는 전 세계의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예정이다. 10집의 가수답게 3시간 동안 40여곡의 공연을 펼친다. 즐길 거리가 많으니 계속 좋아할 수밖에 없다. 작년 미국 투어 당시 1조 3천억원의 흥행 수익이 났고 경제효과는 13조가 넘었다. 시애틀 공연 진동으로 2.3의 지진이 발생한 일도 있었다. 지질까지 흔드는 당신은 대체. 

미스 아메리카나
테일러 스위프트의 여성으로 사는 삶을 담은 넷플릭스 영화다. 성평등과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노래로 전하고 미투 운동 참여, 팔레스타인 모금 행사 등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면서 젊은 여성층의 지지도가 특히 올라갔다. 계약상 이유로 빼앗긴 6장의 앨범을 되찾을 때는 4장을 재녹음해 ‘테일러 에디션’으로 발매했다. 불합리함에 맞서는 당찬 여성으로 업계의 재조명을 받은 사건.  

팬 사랑
안티들도 인정하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팬 사랑. 아픈 팬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고 자필 편지, 학비,용돈, 각종 선물을 보내거나 심지어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주는 팬서비스 미담이 많다. 팬덤 충성도가 상당히 높다. 

사회적 현상
아이콘을 넘어 문화 현상이 됐다. 테일러의 팬이 되는 게 하나의 트렌드다. 2023년엔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분열된 세계에 남은 유일한 단일 문화입니다’ 타임지 기사의 전문을 번역하자면 이렇다. 전 세계 경제학자, 문화학자들은 그녀를 연구한다. 하버드에서는 테일러 스위프트 강의를 개설하고 미 대선판은 테일러의 트윗 하나로 흔들린다. 도쿄 공연이 끝나고 달려간 남자 친구 트래비스 켈시의 슈퍼볼 경기에서 입맞춤하는 장면은 1억 2천만명이 시청했다. 아폴로 달 탐사 이후 최고 시청률이며 미식축구의 여성 팬덤을 만들었다고.

 




테일러 스위프트는 21세기 최고 흥행 미국 여가수입니다. 미국 바깥에서는 인기가 없다시피 한 가수이기도 하지요. 비욘세(Beyonce)나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와 같이 어마무시한 가창력으로 무장하고, 끊임없이 가수 지망생들이 선택하는 명곡을 부른 여가수들과는 다릅니다. 

그녀가 구사하는 음악 장르는 컨트리 팝입니다. 대중성을 강조해 컨트리로서 두드러지지는 않지요. 가창력도 대단하지 않습니다. 작곡 실력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요. 어떻게 최고 스타가 되었을까요?

여성 컨트리, 여성 팝록은 꾸준한 인기 장르입니다.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ne),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 초기의 케이티 페리(Katy Perry), 힐러리 더프(Hilary Duff) 등이 이 장르의 스타였죠. 21세기를 지나 힙합과 흑인음악이 대세를 점령하면서 이 장르 가수들은 대부분 인기를 잃거나 일렉트로니카로 선회합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런 흐름을 거스르는 컨트리 팝 디바입니다. 보수적 취향의 음악으로 슬픈 사랑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수수한 외모의 백인 여성에게 보수적인 미국 음악 평단은 열광했습니다. 그의 2집 앨범 ‘피어리스(Fearless)’와 최근작 ‘1989’ 모두 아티스트 최고의 영광인 ‘올해의 앨범’ 상을 받았습니다. 보수적인 백인 기성세대가 마음 놓고 지지할 수 있는 안전한 가수인 셈이죠.

성공의 최대 공신은 ‘달콤한 소녀 취향의 동화적 사랑’을 무겁지 않게 풀어내는 특유의 능력 덕분이었습니다. 그녀는 스위프티(Swiftie)로 불리는 10대 여성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습니다. 이들 덕분에 스위프트는 10~20대 젊은 여성의 감성을 건드리는 사랑 노래들로 승승장구했습니다.

또 하나의 비결이 있습니다. ‘타블로이드지에 최적화된 작사 방식’입니다. 그는 숱한 연애사로 화제를 몰고 다닙니다. 타블로이드지에서 화제가 된 본인의 경험을 그대로 담은 노래를 만듭니다. 이런 노래는 엄청난 화제가 되지요.


테일러 스위프트의 ‘베터 댄 리벤지(Better Than Revenge)’.

테일러 스위프트는 ‘조나스 브라더스’의 멤버 ‘조 조나스’와 3개월간 교제했습니다. 헤어진 후 조 조나스는 배우 커밀라 벨과 사귀었습니다. 그리고 나온 곡이 베터 댄 리벤지입니다.

she’​s not a saint and she’​s not what you think she’​s an actress, whoa
그녀는 성자가 아냐. 네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지. 그녀는 배우야. 워어

 

she’s better known for the things that she does on the mattress, whoa
그녀는 침대에서 하는 일로 더 유명하지. 워어

 

soon she’s toys on the playground s gonna find stealing other people's toys on the playground 
그녀는 곧 다른 사람의 장난감을 빼앗으면

won’t make you many friends
친구가 없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야.

she should keep in mind, she should keep in mind
그녀는 깨달아야 해. 그녀는 깨달아야 해.

there is nothing I do better than revenge, ha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건 복수야. 하!

이 노래가 나오면서 커밀라 벨과 조 조나스의 관계가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팬들이 커밀라 벨에게 악플을 남기기도 했지요. 커밀라 벨은 이후 뚜렷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실패한 배우가 됩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후 본인이 미숙했다며 후회했습니다. 사생활을 적극 활용한 이 곡은 가십거리를 소비하는 대중에게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백 투 디셈버(Back To December)’.

테일러 스위프트는 영화 ‘트와일라이트’ 시리즈의 ‘제이콥 블랙’ 역으로 유명한 테일러 로트너와 사귀었던 적이 있습니다. 테일러 로트너는 영화를 찍을 때 상대 배우와 연애하고 개봉 후 헤어지는 연애 패턴으로 유명한데요. 테일러 스위프트와도 ‘밸런타인데이’라는 영화에 함께 출연하며 사귀었습니다. 영화 개봉 후에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헤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사를 보면 테일러 스위프트에게는 그에 대한 미련이 남았나 보네요.
 

It turns out freedom ain’​t nothing but missing you
(싱글의) 자유란 너를 그리워하는 일일 뿐이었어.

Wishing i’​d realized what i had when you were mine
네가 내 것이었을 때 깨달았으면 좋았을 걸.

I’​d go back to December turn around and make it alright
나는 12월로 돌아가서 모든 걸 바꾸고 싶어.



테일러 스위프트의 ‘디어 존(Dear John)’.

테일러 스위프트는 존 메이어(John Mayer)와도 사귀었습니다. 당시 존 메이어는 복잡한 연애 관계로 유명했던 ‘나쁜 남자’였는데요. 둘의 관계는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둘의 관계는 이후 ‘디어 존’이라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곡으로 비로소 알려졌습니다.

Well maybe it’​s me And my blind optimism to blame
나와 내 멍청한 낙관주의를 탓해야 하나?

Maybe its you and your sick need To give love then take it away
아니면 너와 사랑을 줬다 뺏어버리는 네 역겨운 버릇을 탓해야 하나?

And you’​ll add my name To your long list of traitors
너는 내 이름을 너의 긴 ‘배신자 목록’에 추가하겠지.

Who don’​t understand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And I’​ll look back in regret
나는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하겠지

How I ignored when they said Run as fast as you can
다른 사람들이 ‘빨리 도망쳐’라고 경고한 사실을 왜 듣지 않았는지.


존 메이어는 테일러 스위프트에게 맞 디스하는 곡 ‘페이퍼 돌’을 발표합니다. 둘 사이의 짧은 관계는 그렇게 긴 여운을 남기며 끝났습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위 아 네버 에버 게팅 백 투게더(We Are Never Ever Getting Back Together)’.

지금까지의 노래는 모두 테일러 스위프트의 ‘스피크 나우(Speak Now)’ 앨범에 수록된 곡인데요. 이후 발표한 앨범 ‘레드(Red)’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배우 제이크 질렌할입니다.

둘의 관계는 3개월 정도였습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그에게 깊게 빠져 있었던 듯합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 속에서 ‘이제 정말 끝이다’라는 심정으로 ‘위 아 네버 에버 게팅 백 투게더’라는 곡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When you said you needed space - what?
너는 너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지 -뭐?

Then you come around again and say
그러더니 넌 다시 나에게 와서 말했어.

Baby, I miss you and I swear Im gonna change
자기야. 난 너를 그리워하고 있어. 변한다고 약속할게.

Trust me, remember how that lasted for a day
세상에, 고작 하루 동안 그랬지.

I say, I hate you, we break up, you call me, I love you
난 말했어. 난 니가 싫어, 우린 헤어졌어. 넌 말했지. 사랑한다고.

Ooh we called it off again last night
우 우리 어제도 헤어졌지.

But ooh, this time Im telling you, Im telling you!
하지만 우 이번에는 내가 말할게. 말할게.

We are never ever ever getting back together
우리는 절대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야.


테일러 스위프트의 ‘블랭크 스페이스(Blank Space)’.

이후 테일러 스위프트는 일렉트로닉 뮤지션 캘빈 해리스(Calvin Harris) 등 많은 남자와 사귀었습니다. 그녀의 연애담은 타블로이드의 가십거리로 소비되었지요. 사람들은 그녀가 연애를 본인 홍보거리로 사용한다고 수군대기 시작했습니다. 앨범 발표 후, 투어가 끝난 다음 기다렸다는 듯 새로운 공개연애가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캘빈 해리스는 테일러 스위프트와 헤어진 후 그녀가 투어가 끝나고, 관심이 식을 때마다 화젯거리를 던진다고 비꼬기도 했습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블랭크 스페이스’는 이전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죠. 본인의 남성편력을 스스로 놀리는 셀프 패러디 노래입니다.

So it’​s gonna be forever
그래서 이 감정은 영원하거나

Or it’​s gonna go down in flames
불타버리겠지.

You can tell me when it’​s over
이게 언제 끝나는지 알려줘.

If the high was worth the pain
이 기분이 나중에 느낄 고통을 느낄 만한지.

Got a long list of ex lovers
긴 전 남친 목록이 있어.

They’​ll tell you I’​m insane
사람들은 내가 미쳤다고 말하겠지.

Cause you know I love the players
알잖아. 나는 게이머들을 좋아하고.

And you love the game
너는 게임을 좋아해.
 

가십거리로 소모되는 본인과, 이를 놀리면서 즐거워하는 대중을 모두 놀리는 듯한 가사입니다. 남성 편력으로 화제가 되었던 셀럽의 자기고백인 셈이죠. ‘블랭크 스페이스’는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빌보드 1위에 자리에 7주간 올라 테일러 스위프트의 가장 성공한 싱글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때 미국에서 발매된 ‘셀럽 되기’를 목표로 하는 게임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이 게임에서 본업인 ‘연기’나 ‘노래’만큼이나 중요한 게 ‘연애’였습니다. 인기 많은 이성과 데이트를 하면서 ‘유명도’를 높이면 쉽게 스타가 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열애설이 터지면 아이돌의 인기가 하락하는 한국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열애설을 자기 PR로 활용하는 미국 연예계 문화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 바로 테일러 스위프트가 아닐까 합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연애 남발’은 반감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애버크롬비는 ‘모어 보이프렌즈 댄 t.s.(more boyfreinds than t.s. · 테일러 스위프트보다 남친 많음)’라는 테일러 스위프트를 놀리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만들었습니다. 남자 셀럽에게는 그런 비꼼이 없기에 여성 차별적인 문구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티셔츠 생산을 중단하긴 했지만 말이죠. 

테일러 스위프트의 앨범 ‘1989’. 컨트리를 아예 빼고 팝, 댄스음악에 집중했다. 가사적으로도 비난이 커진 ‘전 남자친구를 공격하는 사랑 이야기’에서 탈피했다. 그래미에서 ‘올해의 앨범’ 상을 2집에 이어 또 한 번 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최근 앨범 ‘1989’. 컨트리를 아예 빼고 팝, 댄스음악에 집중했다. 가사적으로도 비난이 커진 ‘전 남자친구를 공격하는 사랑 이야기’에서 탈피했다. 그래미에서 ‘올해의 앨범’ 상을 2집에 이어 또 한 번 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비난을 의식한 테일러 스위프트는 최근작 ‘1989’에서는 전 남자친구를 공격하는 행위를 중단했습니다. 대신 본인을 놀리거나(블랭크 스페이스) 혹은 케이티 페리를 공격한 ‘배드 블러드(Bad Blood)’처럼 동료 연예인을 공격했지요. 연애담은 아니었지만 또다시 그녀의 가사는 ‘비음악적인 부분’에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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