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선출
콘클라베(Conclave)
가톨릭의 수장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들로 이루어진 선거인단과 그 선거를 뜻한다. 어원은 '열쇠로 걸어 잠글 수 있는 방'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쿰 클라비'(Cum Clavis)이다.
교황이 되는 법.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가톨릭 신자인 남성이 신부→ 주교 → 추기경 코스를 거쳐 교황이 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새 교황은 전임 교황의 사망(또는 사임)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후 15일~20일 이내에 선출된다. 교황의 선출은 세속 선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될 뿐 아니라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세계 곳곳에 널리 알려진다. 라틴어로 '닫힌 공간'이라는 뜻의 콘클라베라 불리는 교황 선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스티나 경당에서 이루어지며 국적이나 출신 등에 관계없이 80살 이하 전 세계의 모든 추기경들이 투표에 참석한다. 외부와의 소통이 일제히 단절된 채 추기경들은 매일 2번의 비(非)공개 투표를 하며, 그 결과는 전통적으로 짚이나 종이를 태워 알리게 되어 있다. 짚은 검은 연기(선출 불발)를 내고 종이는 하얀 연기(새 교황 당선)를 내는데, 연기는 시스티나 경당 내부의 작은 굴뚝을 통해 경당 정면 오른편에 있는 박공 앞의 한 지점으로 뿜어져 나온다.
교황으로 선출되면 새 이름을 정하게 되는데, 보통 존경해 온 전임 교황과 내면적 관계를 연결 짓거나 그의 사목 방향을 지지하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가문에서 배출된 선임 교황 이름을 이어 쓰기도 하며, 교황으로 선출된 그날이 축일이거나 존경하는 성인의 이름을 따서 짓는 경우도 있다. 교황명 개칭 관습에는 "베드로좌에 오른 새 교황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 지상 최고의 다리를 놓는 새 사람이 됐다"는 뜻이 함축돼 있다. 아울러 로마 주교의 수위권이 강화되고 교황 직무가 강조되면서 다른 교구장 주교와 차별을 두려는 취지도 담겨 있다.
이렇듯 교황의 교체는 대부분 전임 교황의 사망으로 이루어지는데, 교황이 선종했을 때 그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선 수석 추기경이 교황의 본명을 3번 부르며 은망치로 이마를 3번 두드리는 방법을 취하고 있으나 실제로 이 방법이 사용된 적은 없고 의사의 과학적 소견을 받아서 하며 선종이 확인되면 수석 추기경이 교황의 오른손에서 어부의 반지를 떼내 은망치로 표면에 2개의 깊은 십자 흠집을 내어 기능을 정지시키는 의식을 치른다. 베네딕토 16세는 퇴위하기로 한 날인 2013년 2월 28일 20시에 스위스 근위대가 철수하고 반지를 처리했다.
교황이 새로 재임할 때 같이 새로운 추기경들을 임명하곤 한다. 이 추기경 목록엔 '비공개' 처리된 사람이 최소 1명씩 있다. 추기경 문서의 인 펙토레 추기경 참고. 어디서 사는 비밀 추기경인지 공산당에 의해 가톨릭이 통제되는 중국 혹은 구소련 지역이자 정교회가 뿌리 깊은 러시아 지역 추기경이라는 설이 있지만 언제나 떡밥만 무성하다. '예전에 비해 말도 안 될 빈도로 언론에 노출될 정도로' 규모 확대일로에다 아예 조직 스스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엑소시즘 파트 담당자라는 소문도 있다.
선입견과는 달리, 교황이 될 자격은 원칙상으론 가톨릭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받은 남성 누구에게나 있다. 사전에 입후보 인사를 미리 선출하지도 않으며, 그 전에 추기경일 필요조차 없다. 콘클라베가 열릴 때 언론에서 선정하는 '유력 후보'는 그때까지의 경력이나 직위, 활동 면에서 교황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인사들을 임의로 선정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아예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인사가 교황으로 깜짝 등장 하는 일도 있다. 실제 역사에서는 아예 일개 수사가 교황청에 빨리 새 교황을 뽑으라고 독촉하는 편지를 보냈다가, 그걸 본 추기경들이 이런 인물이야말로 교황이 되어야 한다고 표를 던져서 즉위한 사례까지 있다.
다만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사람이 주교일 경우, 선출된 사람이 이를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교황이다. 설령 어떠한 사정으로 즉위식을 거행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교황으로서 정통성에 지장이 생기지 않는다. 만약 선출된 사람이 주교가 아니라면, 그가 결정을 받아들인 뒤 주교로 서품되어야 한다. 주교품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교황이 되며, 만약 주교로 서품되지 않으면 교황이 되지 못한다. 이는 교황이 원칙적으로 '로마의 주교'이기 때문이다.
사도좌 공석
교황이 사망하거나 생전 퇴위하여 라테라노 대성당의 주교좌가 공석이 된 기간 동안 성좌는 추기경단의 관리 감독 아래 놓이게 된다. 이를 라틴어로 "Sede vacante(사도좌 공석)"라고 한다.
이 기간 동안 교황청과 가톨릭 교회의 모든 행정은 추기경단이 맡지만 매우 제한적으로, 로마 교황청의 모든 부서장들은 직무 수행을 중단한다. 다만 교황청의 재정을 관장하는 궁무처장의 업무는 지속된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교황청 대사들은 외교 업무를 지속하며, 로마 교구 대리주교와 바티칸 시국 대리주교 역시 사목 활동을 계속한다. 또한 이 기간동안 바티칸 우체국에선 사도좌 공석 기념 우표를 발행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일시적으로 교황청의 문장이 삼중관에서 위의 움브라쿨룸(Umbraculum)으로 대체되며, 이는 교황이 부재와 추기경 시종이 교황청의 세속적 업무를 관장함을 상징한다.
또한 사도좌가 공석이 된 기간을 공위기(Interregnum)라고 하며, 콘클라베 개최까지 최소 15일에서 최대 20일까지 주어진다. 이는 추기경단이 바티칸에 모이기 위한 시간으로, 20일이 넘어가면 도착하지 못한 추기경이 있어도 반드시 콘클라베가 개최된다. 만일 교황이 선종하여 사도좌가 공석이 되었다면 이 기간동안 선종한 교황의 장례미사가 거행된다.
콘클라베(Conclave)는 가톨릭의 수장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들로 이루어진 선거인단과 그 선거를 뜻한다. 어원은 '열쇠로 걸어 잠글 수 있는 방'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쿰 클라비'(Cum Clavis)이다.
가톨릭 교황직을 처음부터 콘클라베로 선출했던 것은 아니다. 아직 동서 로마 제국이 모두 건재했던 3세기 이전에는 로마 주교의 선출이 다른 지방 주교들의 경우와 크게 차별화되는 부분은 없었고 로마 교황도 처음엔 다른 지역의 주교들과 마찬가지로 로마 내부의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에 의해 선출되었다. 물론 클레멘스 1세 교황의 「코린토 교회에 보내는 편지」 사례에서 보듯 로마 지역 교회가 특별하다는 인식 자체는 있었지만1 박해 받는 처지에 오늘날과 같은 콘클라베를 한다는 건 당연히 현실성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가 공인되면서, 로마 주교는 좁게는 라틴 교회의 대표자이며 넓게는 세계 주교단의 수장이라는, 로마제국 정치의 최중요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서로마 제국이 공중 분해되자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위상이 기존의 2위이던 알렉산드리아를 추월하면서 수위권 분쟁의 조짐이 점차 일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탈리아를 일시적으로 동로마 제국이 수복하고 그에 따라 동로마 황제의 압력이 강해지면서, 로마의 주교 선출은 반드시 라벤나 총독부에 보고되어야 했다. 이렇게 로마 주교직의 선출은 점점 정치적인 문제에 시달리게 된다.
769년에 행해진 시노드에서 정식으로 로마인 평신도에 의한 승인이 폐지되었지만, 862년의 로마 시노드에서는 귀족에 한해서만 그 권리를 부활시켰다. 1059년 교황 니콜라오 2세는 교령을 발표하여 추기경으로 승격되려면 로마의 성직자와 평신도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교황 선출은 추기경단으로부터 선택되는 것으로 변경했다. 이것이 바로 콘클라베의 시초다. 당시에는 주교급 추기경들이 최초로 모여 누가 다음 교황 자리에 어울릴까 하는 문제를 토의하여 결정되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제급 추기경과 부제급 추기경도 동참하여 투표하는 형태로 변모했다.
국력 약화와 성상 파괴 위기를 겪고 비틀거리던 동로마가 라벤나 총독령의 절반을 상실해 교황좌에 대한 압력을 상당 부분 상실한 이후에도 이 문제는 여전했으며,3 9세기부터는 온갖 권력자들의 정치적 압력에 의해 의해서 마구 갈아치워지는 지경이었다.4 이에 1059년, 교황 니콜라오 2세가 '교황 선거권은 추기경만이 가진다'라는 원칙을 세운다. 그리고 이 규정은 1378년 이후에 활발한 논의를 거쳐 다시 제정된다.
1139년, 제2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교황이나 추기경의 선출에서의 평신도와 하급 성직자의 동의가 완전히 폐지되었다.
초대 교회의 주교들은 각자의 공동체 창시자에 의해 지명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윽고 로마나 다른 지역에서 사제와 평신도, 이웃 교구의 주교들이 모이고 주교를 결정하는 방법이 취해지게 되었다. 교황으로 선택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은 성직자뿐이었지만, 그들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았다. 그 대신에 그들에게는 교황을 결정하여 승인할 권리를 주었다. 주교는 보좌 및 감시 임무를 맡고 있었다. 교황 후보자가 결정되면 평신도의 동의가 요구되고 동의를 받으면 교황이 되었다. 민중이 큰 소리로 동의(또는 거부) 의사를 표하는 것은 고대 이래의 로마의 관습이었다. 선출 과정에서 불투명한 부분이 있으면, 후보자들끼리 분란이 일어나 대립 교황이 생기는 일도 자주 있었다.
프랑스 출신의 교황 그레고리오 11세의 사망 후 로마 시민들은 이탈리아 출신의 교황을 요구하며 폭동을 일으켰으며, 추기경단은 압박을 참기 어려워 이탈리아 출신의 교황 우르바노 6세를 선출했다. 나중에 선거에 부당한 압력이 가해졌다고 생각한 추기경단은 같은 해, 로마에서 다소 떨어진 폰디로 이동하여 다시 선거를 개최하여 대립교황을 선출했다. 이 혼란을 수습하고자 1409년에 피사 공의회가 열렸지만, 결국 교황이 3명으로 늘어나는 등 사태만 더욱 악화하였다. 결국, 1411년부터 1418년에 걸쳐 열린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2명을 폐위시키고 남은 1명이 자진 퇴위하는 것으로 혼란을 수습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후, 추기경단만이 교황 선거권을 가지는 것이 재차 확인되어 공의회는 교황의 권위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13세기까지 불과 7명에 불과했던 추기경단은 16세기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확대되어, 1578년까지 인원이 놀라운 증가 추세를 보였다. 이를 우려한 교황 식스토 5세는 추기경단의 인원을 70명으로 제한했다. 20세기까지 이 관례가 지켜지고 있었지만, 교황 요한 23세가 이 제한을 철폐했다. 후임 교황 바오로 6세도 교황 선거 제도의 개혁을 단행해 80세 미만의 추기경까지만 교황 선거에 참가할 수 있다는 제한을 걸어 두었다.5 바오로 6세는 투표권을 가지는 추기경단의 인원을 120명으로 지정했지만, 요한 바오로 2세 시대에는 한때 이 인원수를 넘은 적도 있었다.
1179년까지는 투표자의 과반수의 지지를 얻으면 교황으로 선출되었지만, 제3차 라테란 공의회에서는 투표의 3분의 2 이상의 득표를 얻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교황 선거에서는 본인에게 투표하는 것은 인정되지 못한다. 교황 선거에서는 투표자의 익명성을 지키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한 투표를 막는 교묘한 시스템을 만들어 내왔다. 비오 12세는 필요한 득표 수를 3분의 2 초과(즉 3분의 2에 최소 1표가 더 나와야 함)로 고쳤고, 요한 바오로 2세가 잠시 과반 찬성으로 바꾸었으나 베네딕토 16세가 다시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바꾸었다. 이는 미래의 교황들이 확실한 합의에 의해 선출되지 않으면 가톨릭 교회의 일치와 운영에 지장이 있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3분의 2 득표에 의해 선거가 종종 지연돼 공석이 자주 발생했다. 교황 선거법에는 교황 선출이 될 때까지 공석 기간과 선거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268년 클레멘스 4세 사망 후 비테르보 교황궁 경내 성당에서 치러진 선거에서는 추기경들의 정치적 투쟁 때문에 무려 2년 9개월 하고도 이틀 후인 1271년에야 교황이 선출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금처럼 추기경들을 감금하는 형태의 콘클라베는 이때 정립되었다. 선거가 늘어지자 지친 비테르보의 시민들과 행정 당국자들은 성당의 문을 걸어잠가 추기경들을 감금하고 지붕을 뜯어 빗물이 새게 함과 동시에 제공되던 물과 빵의 양을 줄여 선거를 독촉하는 조치를 취했다.6 이 일이 있은 직후 새로 즉위한 그레고리오 10세는 이것을 제도로 편입해 콘클라베의 절차를 새로 세웠으며,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교황 선거 방식
일찍이 교황은 투표에 의해서 선출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과는 다르게 두 가지 방법이 더 있었다.
첫째는 발성에 의한 결정
발성에 의한 결정이란, 추기경들이 새로운 교황이 될 사람의 이름을 만장일치로 동시에 불렀을 때 그 결과를 성령의 개입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둘째는 타협에 의한 결정
타협에 의한 결정은, 선거가 수렁화할 것 같다고 판단되면 추기경 중에서 선거위원회를 골라내 선출을 주도하는 방법이다.
셋째는 투표에 의한 결정.
마지막으로 투표에 의한 결정은 이른바 지금의 교황 선거로 이해되는 것으로서 모든 추기경이 익명 투표를 반복하며 교황을 골라내는 방식이다. 현재의 방법이다.
발성에 의한 만장일치로 선출된 마지막 교황은 1621년에 선출된 그레고리오 15세이며, 선거 위원회의 주도로 선택된 마지막 교황은 1316년에 선출된 요한 22세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사문화되어 있던 앞의 두 가지 방법을 정식으로 폐지하고, 공식적으로 투표에 의한 결정만을 인정했다.
오늘날의 교황 선거
교황 선거에 관한 최신 규정은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 헌장 《주님의 양떼》(UNIVERSI DOMINICI GREGIS)이다. 이 규정은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의 관습을 정리하여 시대에 맞지 않은 부분만 수정한 것이다. 이 헌장에 베네딕토 16세가 당선에 필요한 총 득표수를 2007년에 개정했고, "선거인단 추기경이 모두 도착하면 15일을 넘기지 않고 선거를 시작할 수 있다."라는 조항을 퇴위 직전인 2013년에 추가했다.
먼저 위에서 언급한 발성에 의한 선출과 타협에 의한 선출은 모두 인정되지 않아 폐지했다.
이 헌장에서, 추기경단은 전처럼 시스티나 경당에서 감금되듯 밀집 생활을 할 필요가 없으며 요한 바오로 2세 시절인 1990년대에 신축된 성 마르타의 집이라고 하는 숙소에서 생활하면서 시스티나 경당에 출퇴근하듯 투표하러 가는 것으로 개정되었다. 대신 개인적으로 통행하다가 기밀이 유출될 문제를 방지하고자 모든 선거인단이 바티칸에서 제공하는 단체 버스를 타고 동시에 이동한다.
주교급 추기경만이 될 수 있는 수석 추기경에게는 교황 선거에서 몇 가지 역할이 부여된다. 만약 수석 추기경이 연령 제한에 걸려 선거권이 없으면 차석 추기경이 그 역할을 대리하고 차석 추기경도 참가할 수 없으면 주교급 추기경 중에서 최선임자가 대리한다.
추기경단의 규모 자체가 생각만큼 크지 않기 때문에, 인원을 늘려 교황을 선택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의견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오늘날과 같이 추기경단에 선거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주교회의에 맡기는 편이 좋다고 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기현재 규정상 주교회의를 소집할 수 있는 사람은 교황뿐이다. 《주님의 양떼》에서는 시노드뿐 아니라 공의회조차 교황이 사망할 시에는 일단 휴회하고, 새로 선출된 교황에 의한 재개 지시를 기다려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교황의 사망부터 선거까지
교황이 사망하면 교황 궁무처장(Camerlengo)이라는 직위에 있는 추기경이 입회한다. 궁무처장은 교황이 생전에 지명해 둔 추기경이며, 교황 부재 시에 지시를 내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교황이 사망했다고 판단되면, 궁무처장이 은망치로 교황의 이마를 살살 두드리며 세례명으로 3차례 부르고 반응이 없다고 판단되면 죽음을 확인하는 의식이 행해지고 있었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행해졌던 적이 없다7《주님의 양떼》에서는 단지 교황청 전례 위원장과 성직자단의 대표, 교황의 비서, 사도단의 단장 등 만 80세 미만의 고위 성직자가 입회하여 확인하는 것만을 요구하고 있다.(만 80세 이상부터는 추기경 직위는 유지되지만 콘클라베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확인이 끝나면 궁무처장은 어부의 반지라고 불리는 교황의 황금 반지를 교황의 손가락에서 빼내 추기경단 앞에서 반지에 공식 인장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2개의 깊은 흠집을 낸다.8 어부의 반지에는 교황이 작성한 문서에 찍는 인감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교황의 사망이 발표되면 추기경단은 전원 집합하여 회합을 열어, 교황 선거에 관한 일정을 결정한다. 투표권이 없는 80세 이상의 추기경은 이 회합에 불참할 권리가 있다. 장례 미사를 포함한 교황의 장례 절차는 사후 4일부터 6일간에 걸쳐 행해진다. 그 후 교황청 전체가 9일간의 애도 기간을 갖는다. 이것을 라틴어로 9일을 의미하는 노베디아레스라고 한다. 교황 선거는 통상 교황 사후 15일 이후에 행해진다. 불참해도 무방한 80세 이상인 자를 제외한 모든 추기경이 다 모이지 않는 경우, 선거 개최일을 많게는 20일까지 늘릴 수 있다.
교황의 퇴위부터 선거까지
교황이 스스로 물러나기로 마음먹는다면, 교황 본인이 물러나고 싶은 날짜를 스스로 선택하고 공고한다. 교황의 퇴위권은 순전히 본인 의사에 달려 있기 때문에 이를 수리하는 기관도 없다. 본인이 퇴위 선언하면 그것으로 효력이 발생한다. 교황이 물러나기로 공고한 날 새벽 4시가 되면 교황직이 공석이 된다. 그때부터는 사망 직후와 마찬가지로 문서 위조 방지를 위해 어부의 반지를 반납하고 이를 흠집 내 사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또한 추기경단이 집합한 뒤 회합을 열어 교황 선거 일정을 결정한다. 이 경우에는 교황 본인이 스스로 물러난 경우이므로 퇴위 발표 뒤 전세계 추기경들에게 공식 사임 전에 미리 투표 날짜를 정하여 보낼 수 있다는 점이 이롭다고 할 수 있겠다.
《주님의 양 떼》에서 콘클라베 개시 시점을 명시한 조항은 제37조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콘클라베는 교황의 사망이나 퇴위로 사도좌가 공석이 된 지 15~20일 사이에 개시해야 한다. 만 15일을 기다리는 것은 장례와 애도기간 포함해 약 15일, 그리고 아직 로마에 도착하지 않은 추기경들을 위한 배려다. 하지만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때(퇴위하기 전)인 2013년 2월 25일, 자의교서(Motu Proprio)를 발표하여 제37조에 “모든 선거인 추기경이 도착하면 선거 개시를 앞당길 권한도 있다”는 문항을 추가함으로써 일정이 앞당겨질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했다. 교황의 사망에 따라 열렸던 통상적인 콘클라베와 달리, 600년 만의 생전 퇴위로서 이례적으로 교황이 살아 있는 중에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옛날에는 비행기도 없고 육로 및 해상교통으로만 바티칸에 갈 수 있었으니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지금은 비행기만 타면 하루이틀, 늦어도 사나흘이면 다 도착하고, 교황의 사망이 아닌 퇴위로 인한 콘클라베에는 장례 기간이 생략되기 때문에 이것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진행
선거 당일 아침, 추기경단은 성 베드로 대성전에 모여 미사를 올린다. 오후에는 바티칸 궁전 내의 파올리나 성당에 집합하여 <성인 호칭 기도>(Litaniae Omnium Sanctorum)10를 부르며 선거 장소인 시스티나 성당으로 이동한다. 시스티나 성당의 추기경 좌석에는 교황령 <주님의 양 떼>와 <콘클라베 예식서>(Ordo Rituum Conclavis),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위한 전례서가 구비되어 있다.
성당에 도착한 추기경들은 성령의 도움을 바라는 찬미가인 Veni, creátor Spíritus(오소서, 창조주님)11를 부른 다음 한 명씩 선서를 한다. 선서 내용은, 만약 자신이 선출되었을 때는 성좌의 자유를 수호할 것, 선거의 비밀을 지킬 것, 투표에 대해 외부 압력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서약은 먼저 추기경단 수석 추기경의 주도로 다 같이 아래 선서문을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Nos omnes et singuli in hac electione Summi Pontificis versantes Cardinales electores promittimus, vovemus et iuramus inviolate et ad unguem Nos esse fideliter et diligenter observaturos omnia quae continentur in Constitutione Apostolica Summi Pontificis Ioannis Pauli II, quae a verbis « Universi Dominici Gregis » incipit, data die xxii mensis Februarii anno MCMXCVI. Item promittimus, vovemus et iuramus, quicumque nostrum, Deo sic disponente, Romanus Pontifex erit electus, eum munus Petrinum Pastoris Ecclesiae universae fideliter exsecuturum esse atque spiritualia et temporalia iura libertatemque Sanctae Sedis integre ac strenue asserere atque tueri numquam esse destiturum. Praecipue autem promittimus et iuramus Nos religiosissime et quoad cunctos, sive clericos sive laicos, secretum esse servaturos de iis omnibus, quae ad electionem Romani Pontificis quomodolibet pertinent, et de iis, quae in loco electionis aguntur, scrutinium directe vel indirecte respicientibus; neque idem secretum quoquo modo violaturos sive perdurante novi Pontificis electione, sive etiam post, nisi expressa facultas ab eodem Pontifice tributa sit, itemque nulli consensioni, dissensioni, aliique cuilibet intercessioni, quibus auctoritates saeculares cuiuslibet ordinis et gradus, vel quivis hominum coetus vel personae singulae voluerint sese Pontificis electioni immiscere, auxilium vel favorem praestaturos.
교황 선거에 참석한 우리 가톨릭 교회의 추기경들은 개인으로서 그리고 단체로서, 1996년 발표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령 《주님의 양떼》의 규정들을 충실하고 철저하게 준수할 것을 약속하고 맹세하고 선서합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 가운데 누가 하느님의 섭리로 교황에 선출되든 보편 교회의 사제로서 베드로의 교의(敎義)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것과 교황의 영적·세속적 권리와 자유를 힘껏 지지하고 보호할 것을 약속하고 맹세하고 선서합니다. 특히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로마 교황 선출과 관련된 모든 것에 관한, 그리고 선출 장소에서 발생한 것에 관한, 직접적 내지는 간접적으로 투표 결과와 관련돼 있는 비밀을 엄수할 것을 충심을 다해 모든 사람과 함께 약속하고 선서합니다. 우리는 이 비밀을 어떤 식으로든, 새 교황 선출 중이든 선출 후든, 선출된 교황의 분명한 허가가 없는 한 깨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선서합니다. 어떤 계층이나 지위의 세속적 권위 그리고 단체나 개인이 교황 선출에 개입하려 하더라도 모든 간섭이나 반대 또는 다른 형태의 개입에 대해서도 결코 지지하거나 찬성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선서합니다.
선서문을 낭독한 후 수석 추기경은 경당 중간에 놓인 복음서 앞으로 가 아래의 기도를 바치며, 이후 순서에 따라 추기경단이 모두 아래의 기도를 바친다.
Et ego N. Cardinalis N. spondeo, voveo ac iuro, (imponendo manum super Evangelium) Sic me Deus adiuvet et haec Sancta Dei Evangelia, quae manu mea tango.
그리고 나 (세례명), 추기경 (속명)은 그와 같이 약속하고 맹세하고 선서하오니, (복음서에 손을 올린다) 하느님과 제가 손을 얹은 이 거룩한 복음은 저를 도와주소서.
선서가 끝나면, 교황청 전례위원장은 "Extra omnes."("모두 밖으로.")라고 외치고, 추기경단과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내보낸 후 문을 걸어 잠근다. 전례위원장은 추기경단에게 교회가 직면한 위기 상황과 지금 요구되는 교황의 자질에 대해 설교한 후 투표를 지켜볼 수 없는 장소로 이동하고, 추기경단만 남아 본격적인 투표 절차를 시작한다
수석 추기경의 주도 아래 문답을 통해 선거법에 의문이 없는지 확인한다. 의문이 없으면 선거를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시작 전에 투표와 개표를 진행할 계표인과 검표인도 추기경단 중에서 추첨으로 결정한다. 선거는 수석 추기경이 콘클라베를 주재하게 되어 있으나, 수석 추기경이 선거권이 없으면 차석 추기경이, 차석 추기경도 선거권이 없으면 일반적 서열에 따라 선거인 추기경 중 최고령 추기경이 주재한다. 투표 개시에 늦었던 추기경은 해당 선거에 참가할 수 없다. 선거 중에 병환 탓에 건강이 나빠지면 퇴실할 수 있다. 그 경우에는 회복하고 나서 선거에 돌아올 수 있지만, 병 이외의 이유로 퇴실했을 때는 이후의 선거에 참가할 수 없다.
추기경단 이외에 교황 선거 중에 추기경들과 만나거나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은 추기경의 비서, 교황청 전례위원장, 의식장 등이며, 국제어에 능통한 몇 사람의 고해 사제, 2명의 의사, 요리사나 청소원뿐이다. 추기경뿐만이 아니라 스태프 전원이 선거의 진행이나 내용에 대해 중대한 비밀을 지킬 의무를 지니고 있다.
특히 추기경단은 외부 통신은 물론 접촉이 엄중하게 금지된다. 《주님의 양떼》에서는 특히 신문이나 텔레비전 등 미디어와 절대 접촉하지 말 것을 다짐하고 있다. 실제로 2005년의 콘클라베에서는 추기경단의 숙소인 성 마르타 숙소에 전화나 인터넷 회선이 절단되었으며, 성 마르타 숙소와 시스티나 성당에는 휴대전화 사용이나 도청을 방지하기 위한 방해전파가 흐르는 등 전자적으로 경계 태세를 강화하였다.
곧이어 비밀 서면투표가 진행된다. 개표 직후 투표 용지는 그대로 불에 태워 없애버리는데, 선거 이후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논란, 시비, 구설수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자신의 표를 투표함에 넣기 전에, 추기경들은 이 기도를 바친다.
Testor Christum Dominum, qui me iudicaturus est, me eum eligere, quem secundum Deum iudico eligi debere
저의 주님이시며 심판자이신 그리스도님, 이 표가 하느님 뜻을 헤아려 제가 뽑혀 마땅하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행사되나이다.
첫날 오후의 투표에서 당선자가 나오지 않으면, 그 다음부턴 매일 오전/오후 두 번씩 선거를 한다. 이 절차에 따라 3일 동안 투표를 하고서도 교황이 선출되지 않으면, 투표를 하루 중단한다. 이후 이런 방식을 3번 실시, 즉 9일에 걸쳐 투표를 21회 해도 교황이 선출되지 않으면, 궁내원장은 추기경들에게 선거 방식을 어떻게 할지 의견을 묻는다. 그 뒤의 투표 진행 방법은 선거인들의 과반수가 결정하는 대로 이루어지지만, 교황 선출은 3분의 2 이상 득표일 경우에만 유효하다.
투표 결과는 투표 용지를 태울 때 외부에 알려진다. 과거(1914년 베네딕토 15세 콘클라베 부터)에는 선거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투표 용지와 젖은 짚단을 함께 태워서 불완전 연소되어 '미정'이란 의미의 검은 연기가 나도록 했고, 결과가 나왔을 경우엔 마른 짚을 함께 태워서 '결정되었음'을 알리는 흰 연기가 나오도록 했었다. 그런데 요한 23세가 선출된 1958년 콘클라베 때는, 짚이 제대로 타지 않는 바람에 연기의 색깔이 불명확해져 회색 연기가 나온데다 양도 너무 적어서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에게 '아니 그래서 결과가 나왔다는 거야 안 나왔다는 거야?'라며 혼란을 준 적이 있었다. 때문에 1963년에 바오로 6세가 선출된 콘클라베에서는 이탈리아 육군이 제공한 백색, 흑색 연막탄을 써서 결과를 확실히 했다. 여기에는 TV 방송사의 압력도 있었다.
이후 베네딕토 16세가 선출된 2005년 콘클라베부터는 교황 선출이 확정되었을 때 시스티나 경당의 굴뚝에서 흰 연기를 피운 후 성 베드로 대성당 시계탑의 종을 울리는 것을 병행하고 있으며, 기존의 투표 용지 소각용 굴뚝과는 별도로 선출 결과만을 알리는 굴뚝을 추가로 설치했다. 2013년 콘클라베부터는 아예 화학물질을 태워 연기의 색을 보다 명확하게 하였는데 검은 연기는 과염소산칼륨, 안트라센, 황을 배합한걸 태우고 흰 연기는 염소산칼륨, 젖당, 송진을 태운다고 한다.
차기 교황이 확정되면 수석 추기경이나 품계와 연배가 가장 높은 추기경이 선거인단을 대표해 선출된 사람의 동의를 구한다. 새로 선출된 교황은 자신의 교황명을 직접 정해야 한다. 자신의 속명13을 교황명으로 쓴 마지막 인물은 1555년에 선출된 제222대 교황 마르첼로 2세(마르첼로 체르비니)였다. 새 교황이 '요한'이라는 인물을 평소에 존경하거나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싶어할 경우, 그 교황은 '요한 24세'가 될 것이다. 첫 번째 교황의 이름인 베드로는 사용하지 않는데, 예수께서 자신의 으뜸 제자에게 친히 지어주신 이름을 쓰자니 부담스러워서 그렇다고. 다만, 성문법적인 금제는 없으며, 실제로 베드로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가 물린 교황도 있다.
이후 추기경들은 새 교황을 알현하고, 선임 부제급 추기경은 외부사람들에게 새 교황 탄생 소식과 이름을 공표한다.
(Fratelli e sorelle carissimi. Queridísimos hermanos y hermanas. Bien chers frères et sœurs. Liebe Brüder und Schwestern. Dear brothers and sisters.)15
Annuntio vobis gaudium magnum:
Habemus Papam!
Eminentissimum ac reverendissimum Dominum,
Dominum 'Georgium Marium' Sanctæ Romanæ Ecclesiæ Cardinalem 'Bergoglio',
Qui sibi nomen imposuit 'Franciscum'.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매우 기쁜 소식을 발표하겠습니다:
교황이 선출되었습니다!
지극히 탁월하시고 공경하올 분,
거룩한 로마 교회의 추기경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이십니다.
이분은 자신을 '프란치스코'로 명명하셨습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 파사드 가운데에 있는 강복의 발코니에 전 교황의 문장이 걸린 뒤16, 새 교황이 모습을 드러내어 로마와 전 세계에 축복을 보낸다. 이 때 라틴어로 다음과 같이 축복하는 것도 관례.
우르비 에트 오르비 (Urbi et Orbi, 이 도시와 온 세계에게)
+Sancti Apostoli Petrus et Paulus: de quorum potestate et auctoritate confidimus ipsi intercedant pro nobis ad Dominum.
+거룩한 사도인 베드로와 바오로여, 당신들께 맡겨진 권한과 권위를 신뢰하오니 주님 곁에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Amen.
+Precibus et meritis beatæ Mariae semper Virginis, beati Michaelis Archangeli, beati Ioannis Baptistæ, et sanctorum Apostolorum Petri et Pauli et omnium Sanctorum misereatur vestri omnipotens Deus; et dimissis omnibus peccatis vestris, perducat vos Iesus Christus ad vitam æternam.
+평생 동정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대천사 미카엘, 세례자 요한, 거룩한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그리고 모든 성인의 기도와 공덕을 통하여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죄를 용서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실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소서.
◎ Amen.
+Indulgentiam, absolutionem et remissionem omnium peccatorum vestrorum, spatium verae et fructuosae poenitentiæ, cor semper penitens, et emendationem vitae, gratiam et consolationem Sancti Spiritus; et finalem perseverantiam in bonis operibus tribuat vobis omnipotens et misericors Dominus.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주님께서는 이들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용서해주시며, 참되고도 결실 풍부한 참회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항상 기꺼이 준비되어 있는 마음, 성령의 은총과 위로와 함께 선을 행하며 끝까지 견뎌낼 수 있는 인내심을 허락해주소서.
◎ Amen.
+Et benedictio Dei omnipotentis, Patris et Filii et Spiritus Sancti descendat super vos et maneat semper.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소서.
◎ Amen.
새 교황은 적절한 때에 즉위식을 거행한 다음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로마 주교 착좌식을 거행한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즉위식을 미루기를 바랐는데, 즉위식을 거행하기로 한 때가 하필 요한 바오로 2세가 보고 싶어하던 축구 경기가 방송되던 때라 그렇다.18
교황을 뽑을 권한은 80살 미만의 추기경들에게만 있지만, 교황으로 뽑힐 자격은 가톨릭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받은 남성 누구에게나 있다. 즉 선거 전에 미리 후보들을 추려서 그 후보들에게만 피선거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론상으론 모든 남성 신자에게 피선거권이 있는 것. 즉, 80살이 넘은 사제도 교황 선거에 참여만 못할 뿐 교황 후보로 뽑힐 수 있다. 요즘 추기경들이 워낙에 능력자들이라서 그렇지, "이론적으로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옆집 김씨 아저씨 같은 사람이 교황으로 뽑히는 것도 가능하며 미혼 등 조건만 충족한다면 연예인이나 정치인 신자도 이론적으로 불가능할 것은 없다. 2013년 콘클라베 때는 몇몇 도박 사이트에서 안드로메다급 배당률을 걸어 놓고 보노를 후보에 올려놓기도 했는데 이는 아마 아일랜드 사람이니까 가톨릭 신자일 것이라 착각한 결과로 보인다. 문서에 나와 있듯 보노는 개신교(성공회) 신자다.
언론에서 교황을 선출하기 전 '유력 후보'19라며 몇몇 인사들을 소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직책이나 정치 활동 등을 볼 때 교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암묵적으로 평가받는 성직자들을 분석해 추려낸 형태이다. 그래서 아예 유력 후보로도 거론되지 않던 성직자가 깜짝 선출된 사례도 있다.20
다만 여기에는 약간의 제한이 있다.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사람이 주교일 경우, 선출된 사람이 이를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교황이다. 설령 어떠한 사정으로 즉위식을 거행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교황으로서의 정통성에 지장이 생기지 않는다. 만약 선출된 사람이 주교가 아니라면, 해당 인물이 결정을 받아들인 뒤 주교직을 서품받아야 한다. 주교품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교황이 되며, 만약 주교로 서품되지 않으면 교황이 되지 못한다. 이는 교황이 원칙적으로 로마의 주교이기 때문이다.
중세 시절에는 이를 악용해 정치적 이유로 주교는 고사하고 신부조차 아닌 평신도가 교황으로 당선된 사례도 몇 차례 있었으며, 신부가 교황으로 당선된 예는 훨씬 많다. 현재의 가톨릭 교회법에도 이런 역사적 상황이 재현될 경우를 가정하여, 주교가 아닌 사람이 교황으로 당선될 경우 당선자가 교황직을 수락한 뒤에 최대한 빨리 주교로 서품받을 것과, 해당 서품식은 수석 추기경이, 수석 추기경이 없다면 차석 추기경이 집전할 것을 명시한 조항이 있다. 이게 완전히 확정된 것은 요한 23세 때로, 주교에 서임되지 않은 상태에서 교황에 즉위한 마지막 교황은 그레고리오 16세이다. 요한 23세 때 모든 추기경은 주교여야 한다는 제약이 생기기 이전에는 주교가 아닌 추기경도 가능했기 때문에, 주교가 아닌 사제가 교황으로 선출될 여지가 지금보다는 좀 더 있었다.
콘클라베가 진행되는 동안 시스티나 경당 주변은 금녀 구역으로서 어떠한 여성도 출입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이 전부 남성들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 전통은, 비오 12세가 뽑히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깨졌다. 콘클라베가 열리는 시스티나 경당에 입장한 최초의 여성은 바로 파스칼리나 레네르트 수녀. 그녀는 비오 12세의 신임을 등에 업고 바티칸 정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서 여(女)교황 파스칼리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교회 정치의 관점에서 보자면, 콘클라베는 로마 지역 교회에 대하여 세계의 지역 교회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로마 주교가 세계 교회의 추기경들을 서임하고 그 세계 교회의 추기경들이 로마 주교를 선출하면서, 로마 지역 교회와 세계의 지역 교회들이 서로에게 강한 영향을 주고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이 드러나는 예가 현대 교황들의 출신지인데, 폴란드 출신의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출된 1978년부터 40년 넘게 이탈리아의 수석주교가 이탈리아 출신이 아닌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선출에 세계 교회의 추기경들이 관여하면서 교황이 세계 교회에 대해 가지는 대표성을 실질적으로 보완해준다.
예전부터 이탈리아에서 콘클라베 기간 동안 벌어지는, 차기 교황이 누구인지 예상하는 도박이 성행한 적이 있어서 바티칸 측에서 골머리를 썩힌 듯. 무려 500년 전에 콘클라베 기간 동안 도박을 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유서 깊은 문화(?)다. 이때는 적발될 경우 무려 파문이라는 무시무시한 처벌이 내려졌으나 베네딕토 15세가 새로운 교회법(1917년 교회법)을 공포하는 과정에서 폐지되었다. 이제는 파문 당할 일도 없으니 유럽의 도박업체들은 콘클라베 기간엔 앞다투어 베팅을 제공하는 실정이다. 물론 교계 내외부적으론 매우 불편하게 여긴다. 심지어 도박업체에서 기어이 선을 넘다 제재를 당한 사례도 있는데 2005년 콘클라베 당시 아일랜드의 유명 도박업체 패디파워는 바티칸 한복판에서 배당률이 기재된 입간판을 들고 광고를 하다가 쫒겨난적이 있었다.(...)
콘클라베 형식으로 1인을 선출하는 선거 방식을 교황 선출 방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일부 의회 의장단 선거와, 대학 총장 선거 일부 의원내각제 국가의 대통령 선거에 유사한 방식이 사용된다. 다만 콘클라베와 달리 대통령 선거인단이나 의원들은 직/간선제로 선출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애초에 바티칸은 군주제이고21 대통령 선출은 공화정이기에 차이는 당연하다.
합의가 될 때까지 무기한 진행됨으로 3년간 지속된 적이 있다고 한다. 1271년 그레고리오 10세 선출이었고 참고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추기경단은 시스티나 성당 밖으로 나올 수 없다.
한국인 추기경들의 콘클라베 참석
한국인 추기경의 콘클라베 참석은 2025년 4월 기준 딱 두 번의 사례가 있는데, 모두 한국인 최초의 추기경인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1969년 서임)과 관련이 있다.
1978년 8월 6일에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56세)이 제262대 교황인 바오로 6세의 사망으로 열린 콘클라베에 참석한 게 최초다.
위의 콘클라베로부터 약 1달 뒤인 1978년 9월 28일에 김수환 추기경이 제263대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사망으로 열린 콘클라베에 참석한 게 두 번째 사례다.
2005년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망으로 열린 콘클라베는 김수환 추기경이 연령 제한(83세)에 걸려 참석하지 못했다.
2013년 제265대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사임으로 열린 콘클라베는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2006년 서임)이 연령 제한(81세)에 걸려 참석하지 못했다.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2014년 서임)은 2023년 12월 5일부로 연령 제한에 의해 교황 선거권이 상실되기 전까지 콘클라베가 열리지 않아 참석하지 못했다.
유흥식 라자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2022년 서임)은 2025년 기준 한국인 성직자 중에서 콘클라베에 참석하여 투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1951년 11월생이기 때문에 2031년 11월까지 선거권이 있다. 2025년 4월 21일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가 사망했기 때문에 조만간 열릴 콘클라베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는 한국인 추기경이 1978년 이후 47년 만에 콘클라베에 참석하는 것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가 추기경에 서임될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향후 열릴 콘클라베에 참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정 대주교는 1961년 8월생이기 때문에 추기경에 서임된다면 2041년 8월까지 선거권이 있다.23 하나 2025년 4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망 때까지 추기경으로 서임되지 못해 이번 267대 교황 선출 콘클라베에는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
확신은 어떻게 우리를 위협하는가···밀실 교황 선거 다룬 영화 '콘클라베'
어느 날 바티칸에 118명의 추기경이 한자리에 모였다. 교황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새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로마 가톨릭 교회의 80세 미만 추기경이 다 모인 것이다. 지금 현실 얘기가 아니다. 영화 ‘콘클라베’다.
‘콘클라베(Conclave)’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추기경들이 모여 교황을 선출하는 제도를 말한다. 라틴어로 ‘함께’라는 뜻의 ‘cum’ 과 열쇠라는 뜻의 ‘clavis‘ 에서 유래한 말로 ‘열쇠로 잠근 방’을 의미한다. 교황 선종 시 선거인단인 추기경들이 투표로 새 교황을 뽑을 때까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채 생활하면서 생겨난 말이다.
영화 '콘클라베'는 실화 바탕은 아니지만 세상에선 알 수 없던 비밀 투표 현장을 긴장감 있게 그린 스릴러물이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은 차기 교황 선거를 이끄는 추기경단장 로렌스(랄프 파인즈)다. 평소 존경했던 교황을 갑자기 떠나보낸 그는 애도할 틈도 없이 콘클라베 진행을 떠맡았다. 더구나 그에겐 말 못할 사연이 있다. 최근 “기도에 어려움을 겪어온” 그는 단장직을 사임하고 바티칸을 떠나려 했으나 교황의 반려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그는 새 교황 선거의 위원장 역할을 소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선거를 최대한 올바르게 이끌고자 한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선거는 궁극적으로 ‘자리다툼’일진대 윤리적인 선거는 과연 어디까지 가능할까. 콘클라베가 시작되자 로렌스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이제 그의 눈에 새 교황 후보들은 모두 의심스럽고 철저하게 ‘검증돼야 할’ 대상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다. 외부와 차단돼 후보에 대한 사소한 검증 자체가 도전된 환경에서 그는 여기저기서 속출하는 의혹을 파헤치고 진실을 가려내야 한다. 영화가 음모와 배신이 이어지는 추리극처럼 펼쳐지는 이유다.
투표 과정에선 진보와 보수 진영 후보 사이의 대립도 첨예하다. 진보주의자 벨리니 추기경(스탠리 투치)은 보수파 규합을 막아야 한다는 목표가 절실하다. 반면 “교회가 진보주의에 의해 잠식돼 타락했다”고 주장하는 보수주의자 테데스코 추기경(세르조 카스텔리토)은 교회를 옛날처럼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첫 흑인 교황에 도전해 유력한 후보로 부상한 나이지리아 출신의 아데예미 추기경(루시언음사마티)도 있다.
영화는 종교 드라마와 정치 스릴러 사이의 경계에서 절묘하게 줄타기를 하며 빼어난 영상미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고풍스러운 교회를 배경으로 붉은색 제복을 입은 추기경 무리를 담은 장면은 완성도 뛰어난 영상 작품 같다. 이 모든 장면은 이탈리아의 영화 스튜디오 시네시타에서 촬영됐다.
한편 투표 과정에서 드러나는 여러 사건은 교회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대변한다. 동성애와 낙태, 그리고 여성의 권리 등 풀어야 할 과제도 그중 하나다. 결국 작은 반전으로 이어지던 드라마는 충격 요법에 가까운 마지막 반전으로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전한다.
영화는 정치 칼럼니스트였던 로버트 해리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으며, ‘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의 에드워드 버거 감독이 연출했다. 최근 영국 아카데미상인 바프타( BAFTA)에서 최우수 영화상 등 4개 부문 상을 받았으며, 오는 2일(현지시간)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8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특히 콘클라베 단장 역을 맡아 열연한 파인스가 남우주연상을 받을지 주목된다. 한편 수녀 아다녜스 역을 맡은 이사벨라 로셀리니의 존재감도 남다르다. 상영 시간 120분 중 겨우 7분 51초 동안 등장하지만 강렬한 연기로 여우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 '콘클라베'의 메시지는 자신의 신앙과 교회에 대한 의구심으로 고뇌하는 로렌스의 모습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확신이 가장 두려운 죄이며, 통합과 포용을 방해하는 강력한 적"이라는 그의 극 중 대사는 극단적인 믿음과 반목, 배신으로 오염된 오늘날 정치 현실에 대한 통렬한 일침으로도 들린다.
정치판 뺨친다, 바티칸판 권력 암투 콘클라베
콘클라베의 정치학
최근 화제가 된 할리우드 영화 ‘콘클라베’는 전 과정이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되는 교황 선출 투표를 소재로 삼았다. 투표권자인 동시에 후보자인 80세 미만 추기경단이 14억 가톨릭 신자의 영적 지도자를 뽑는 과정에 각종 권모술수와 정치적 음모가 판을 치고, 고귀함 이면에 가려진 추악한 진실도 모습을 드러낸다.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기까지 충격적인 반전이 거듭된다. 가상의 이야기를 다뤘지만 완전한 허구가 아니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실제 과거 콘클라베 역사를 보면 권력 다툼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콘클라베를 두고 ‘페이펄 폴리틱스(Papal politics·교황권의 정치학)’ ‘미국 대통령 선거 뺨치는 정치 이벤트’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콘클라베가 ‘밀실의 암투(暗鬪)’처럼 그려지는 건 추기경들이 외부와 철저하게 격리된 상태에서 투표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콘클라베는 게다가 서로의 본심을 알지 못하는 상태로 후보 명단도 없이, 교황이 되기 위해 필요한 표가 한 추기경에게 모이기까지 무한 투표를 하기 때문에 엄청난 ‘경우의 수’가 가능하다. 물리학자들이 극도의 혼돈 상태에 대한 ‘카오스(chaos·혼돈) 이론’을 설명할 때 콘클라베를 종종 사례로 들 정도다.
추기경들이 모두 하느님을 위해 한마음으로 일하는 사제이지만 인간이기도 하기 때문에, 콘클라베가 일단 시작되면 대륙별로 뭉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압도적으로 수가 많은 유럽 추기경들이 ‘대세’를 형성하는 가운데 나머지 대륙의 추기경들이 어떻게 모이고 흩어지는지가 결과를 정하게 된다. 이번 콘클라베의 경우 투표를 할 130여 명 추기경 중 50여 명이 유럽 출신으로 알려졌다. 콘클라베는 3분의 2를 득표해야 선출되기 때문에 이번 콘클라베에선 86표 넘게 받아야 한다. 유럽 추기경들의 지지가 없으면 선출이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편 지난 수십 년간 치러진 콘클라베에선 비(非)유럽 추기경들의 표가 뭉칠지, 혹은 유럽이 아시아·아프리카 등 몇몇 다른 대륙 추기경들의 표를 포섭할지가 관건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치열한 물밑 선거전이 펼쳐지고 때때로 배신과 음모론이 불거지는 이유다.
‘3분의 2를 득표해야 한다’는 콘클라베 규정 자체가 추기경 수가 많은 유럽에 유리하다는 지적도 때때로 나온다. 남미·아시아·아프리카 등 다양한 대륙을 순방하며 현지 문화를 존중했던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년 재위) 교황은 자신이 선종한 후 치러질 콘클라베의 선출 조건을 ‘2분의 1 이상 득표’로 바꿨는데, 이를 두고 비유럽 교황 선출을 내심 지지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결국 이 콘클라베에서 독일 출신 베네딕토 16세가 선출됐고 그는 ‘3분의 2 이상’으로 다시 룰을 바꿨다. 역설적이게도 그가 퇴위한 후 치러진 콘클라베에선 유럽을 비롯한 다른 대륙의 표를 두루 얻은 첫 남미(아르헨티나)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됐다.
콘클라베의 결과 자체가 중요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기도 한다. 1978년 요한 바오로 1세의 후임자를 뽑는 콘클라베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폴란드의 카롤 보이티와 추기경(요한 바오로 2세)이 선출됐다. 그는 젊은 나이(당시 58세)와 456년 만에 선출된 비(非)이탈리아인 교황이자 최초의 슬라브인 교황으로 주목받았다. 그가 파격적으로 선출된 배경엔 냉전 시대 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미국이 개입했다는 설이 파다했다. 실제로 요한 바오로 2세는 추기경 시절 반공(反共) 성향을 보였고, 폴란드계 미국인이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친분이 두터웠다고 알려졌다. 교황 즉위 후 활발한 대외 활동이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 정권 연쇄 붕괴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정치판뿐 아니라 가톨릭 내에서도 보수파와 진보파가 존재하고 서로 경쟁한다. 최근 들어선 천주교가 금기시한 동성애나 여성 사제 등을 지지하는 등 가톨릭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여기면 진보파, 반대면 보수파로 분류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2년간 동성애자에 대한 사제의 축복을 허용하거나 성직자의 독신 의무를 완화하는 등 교단에 개혁을 단행한 진보파다. 이 때문에 이번 콘클라베에선 교황 자리를 되찾으려는 보수파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을 이어가려는 진보파 추기경 간 권력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단 이번 콘클라베에 참여하는 130여 명의 추기경 중 약 85%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임한 만큼 보수파의 도전이 쉽지는 않으리라는 전망도 많다. 반면 철저한 비밀투표로 진행되는 콘클라베의 특성상 어떤 이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으리라는 예측도 나온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전임 베네딕토 교황과는 대척점에 있었지만 콘클라베를 통해 선출됐다.
최근 콘클라베는 한 주 내에 결과가 나오지만 과거엔 수 개월, 때로는 수 년에 걸쳐 투표가 반복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1241년 즉위한 첼레스티노 4세 교황은 두 달간 진행된 콘클라베에서 선출됐다. 냉·난방 시설이 변변치 못했던 당시 사실상의 감금 생활 끝에 추기경 한 명이 건강 악화로 사망했고, 첼레스티노 4세 역시 선출 17일 만에 선종했다. 그레고리오 10세가 선출된 콘클라베는 1268년부터 2년 9개월 동안 열렸다. 결과를 기다리다 지친 로마 시민들이 항의의 의미로 콘클라베가 열리는 궁궐의 지붕을 뜯고 공급되는 음식의 양을 줄였다고 전한다.
과거 교황과 황제의 갈등 때문에 추기경들을 보호하기 위해 격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도 있다. 교황과 대립했던 13세기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교황 선출을 막기 위해 콘클라베 선거인인 추기경 두 명을 포로로 잡기도 했다. 추기경들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자 교황청은 문을 걸어 잠그고 선거를 진행하도록 법제화했다.
‘열쇠로 잠글 수 있는 방’을 뜻하는 라틴어로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열리는 교황 선거를 말한다. 80세 미만 추기경 전원이 후보이자 유권자가 돼 3분의 2 이상 찬성이 나올 때까지 투표를 반복한다. 일체의 과정은 비밀에 부쳐진다. 교황이 선출되면 성당 굴뚝에 흰 연기를, 선출이 무산되면 검은 연기를 피워 결과를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