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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슈미르 분쟁, 카슈미르, 히말라야 산맥, 인도, 파키스탄, 중국 국경, 캐시미어, 무슬림

Jobs 9 2023. 9. 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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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던 시기에 이슬람교도가 많은 카슈미르 지역이 인도령으로 속하게 되면서, 이 지역의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에 발생하기 시작한 갈등을 의미한다. 

 

카슈미르 지역과  종교 갈등

카슈미르는 히말라야 산맥의 서쪽 끝 부분의 남쪽에 있는 계곡을 말하며, 현재 잠무 카슈미르는 인도령, 아자드 카슈미르와 길기트발티스탄은 파키스탄령에 속하며 아크사이친은 중국령이다. 이 지역이 1947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으로 분리되는 과정에서 카슈미르는 인도에 귀속됨으로 인해 분쟁이 발생하게 되었다. 카슈미르는 이슬람교도가 많으며 힌두교도와 종교적인 원인으로 인해 이슬람교도는 파키스탄에, 힌두교도는 인도에 귀속되기를 희망하는 분쟁 지역이다.   

 

 

카슈미르 지역은 인도의 북부와 파키스탄의 북동부, 그리고 중국의 서부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면적은 22만 여㎢이며 히말라야 산맥의 고산 지대를 끼고 아름다운 계곡이 많아 세계적인 관광지로서 유명하며, 고급 양모 생산지이기도하다. 그러나 오늘날 카슈미르는 분쟁으로 인해 주민, 역사, 문화, 자연환경이 무차별적으로 파괴되고 있다.

 

Kashmir

남아시아 인도 북부 잠무 카슈미르 연방 직할지와 라다크 연방 직할지, 파키스탄 동부 길기트 발티스탄 주와 아자드 카슈미르 주, 그리고 중국 서부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티베트 자치구가 관할하는 아크사이친이 속하는 고원 지대.

면적은 약 222,236㎢로 한반도 면적과 비슷하다. 분쟁지역으로, 인도-파키스탄 국경과 인도-중국 국경이 지난다. 

인도, 파키스탄이 분리 독립한 이후 양측은 계속해서 카슈미르 지역 영유권을 두고 무력충돌을 벌이고 있다. 특히 현재 카슈미르에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경계선은 국경선이 아니라 통제선(Line of Control; 실효지배지역의 경계선)이라서 마음만 먹으면 양측이 서로 카슈미르를 차지하려고 하기에 분쟁이 그치지 않는다. 물론 국력에서 인도가 압도적이라 파키스탄이 영 불리한 형편이다. 주 거주 민족은 인도아리아인으로 다르드어군에 속하는 카슈미르어를 사용하는 카슈미르인이다.

 

사회
1901년 영국령 인도 제국에서 시행한 인구 조사에 따르면 당시 카슈미르 주 인구는 2,905,578명이었으며, 이 중 무슬림은 2,154,695명, 689,073명은 힌두교도, 25,828명은 시크교, 35,047명은 티베트 불교 신도였다 한다. 힌두교도들은 주로 잠무 지역에 거주했으며 잠무 전체 인구의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카슈미르 계곡 내 힌두교 인구는 전체 인구 1,157,394명 중 5.24% 정도였으며, 무슬림 인구는 1,083,766명으로 93.6%에 달했다. 불교 지역 라다크와 무슬림 지역 길기트 지역 내 힌두교도 인구는 0.94% 정도였다.  

천혜의 관광자원이 매우 많아 그러다보니 무굴 제국 시절부터 유명한 관광지였으며,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에 땅도 비옥해서 농산물이 많이 생산되는데다 지하자원과 목재도 많은 지역이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것이 물인데 수자원이 풍부한 지역이다. 이 때문에 인도 치고는 비교적 추운 기후임에도 불구 벼농사가 발달했다.

또한 직조업이 발달한 지역으로, 이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특산품이자 카슈미르라는 이름만큼 유명한 캐시미어(cashmere)의 본고장이다. 캐시미어는 카슈미르에서 자라는 산양 품종인데 이 산양의 양털이나 비단으로 만드는 양탄자가 꽤 오래 전부터 명품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예 초고급 양털 양탄자나 모직제품의 대명사로 '캐시미어'라는 영단어까지 있을 정도다. 한국에서도 캐시미어는 담요나 모직코트 등 초고급 양털제품의 대명사로 쓰인다. 6, 70년대에 유행한 울긋불긋한 털담요의 이름도 캐시미어.

산업과 상업, 관광업에서 잠재력이 충만한 지역이긴 하지만 워낙 위험한 국경분쟁 지역에, 교통 인프라가 낙후되어 해외 기업들의 개발과 투자는 영 더디다. 고유 산업인 직조업과 관광업 역시 분쟁으로 인해 그나마 치안이 안정되어 있는 잠무 카슈미르의 주도 스리나가르 시와 동부의 라다크 지역을 제외하곤 잘 안되는 편이다. 직조업은 카슈미르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데 치안이 잘 되어 있는 지역만 관광객이 몰리다보니 다른 지역들은 관광객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
카슈미르 모스크
카슈미르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사원 중 하나인 착찬 모스크 (1370년 건립, 길기트 발티스탄의 칼푸에 위치)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독립 당시인 1947년에는 독립 카슈미르 인도 번왕국의 소속이었으며 이 당시 번왕국들은 인도/파키스탄으로 편입, 아니면 독립 존속을 선택할 수 있었다. 당시 이슬람 무슬림 다수 인구를 지배하던 카슈미르의 힌두교도 번왕은 카슈미르의 독립을 선택, 인도와 파키스탄 모두의 편입 요청을 거절한다. 하지만 카슈미르의 다수 무슬림들은 이 결정에 반대하였고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은 민병대가 카슈미르를 침공하기 시작하자 카슈미르 번왕은 인도에 지원을 요구, 그 대가로 인도로 (파키스탄에 점령당하지 않은 지역들은) 편입되어 인도와 파키스탄이 충돌하게 된다. 그리하여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의 결과 카슈미르는 지금과 같은 인도-파키스탄의 축소판 분쟁지역으로 분단되었다. 

현재 카슈미르 지역을 더 많이 영유하고 있는 국가는 인도로 카슈미르 전체의 63%나 차지한다. 하지만 거주 인구 77%가 무슬림으로서 인도의 주들 중에서 무슬림이 힌두교인보다 많은 유일한 주이다. 남한 면적의 두 배나 되는 땅이니 만큼 카슈미르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불교나 힌두교가 우세한 지역도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역시 이슬람이 우세하다. 인도의 무슬림들은 심한 탄압과 차별을 받는데 이 지역 역시 예외가 아니며, 이 지역의 무슬림들은 파키스탄과의 병합을 원한다. 무슬림 주민들은 틈만 나면 시위를 벌이며 아예 독립을 주장하기도 한다. 당연히 인도 정부가 허용할리가 없기에 주둔 인도군과의 마찰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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