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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 사르트르, 절교, 반항하는 인간, 진보적 폭력 견해차, 소련 강제수용소

Jobs 9 2025. 3. 1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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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와 사르트르 왜 갈라섰나

‘진보적 폭력’에 대한 견해차

소련 강제수용소 지상논쟁서

공산주의 두고 맹렬한 사투

 

 

폭력에서 전체주의로

에릭 베르네르 지음

 

 

실존주의 문학의 거장들이자 서로 돈독한 사이였던 프랑스의 두 지성 알베르 카뮈(1913~1960·왼쪽 사진)와 장폴 사르트르(1905~1980·오른쪽)는 1952년 소련에 강제수용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지상논쟁을 벌였다. 카뮈는 당시 공산주의에 기대와 희망을 걸었던 프랑스 지성계의 일반적 흐름과 달리 공산주의를 맹렬하게 비판하는 입장에 섰고, 사르트르는 이에 맞서 반공산주의 자체를 반대하는 주장을 폈다. 

 

스위스 출신 철학자 에릭 베르네르가 1972년 펴낸 <폭력에서 전체주의로>는 서로 갈라질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의 철학적 배경을 파헤친 책이다. 지난 20세기 유럽을 관통했던 정치철학적 논쟁의 줄기뿐 아니라, 그동안 문학에 견줘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던 카뮈와 사르트르의 사상가적인 면모를 드러내 보여준다.

 

지은이는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생각들을 ‘진보적 폭력’에 대한 입장 차이로 풀어나간다. 같은 시대의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휴머니즘과 공포>란 책에서 ‘진보적 폭력’이라는 개념을 제시해 많은 논쟁을 유발했다. 모든 정치 제도는 폭력에 근거할 수밖에 없는데, 폭력을 제거하기 위한 ‘진보적 폭력’과 폭력을 영구적으로 고착하려는 폭력을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엔 두 가지 가정이 있다. 혁명을 통해 역사의 진보가 이뤄질 수 있다고 보는 ‘휴머니즘’과 자연상태 속 인간은 다른 인간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보는 ‘테러주의’다. 이런 가정들로부터 앞으로 휴머니즘이 이뤄지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현재 횡행하는 폭력들을 제거하기 위한 ‘진보적 폭력’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카뮈는 <반항하는 인간> 등의 저작들을 통해 이 두 가지 가정을 무력화시키려 했다. 그는 인간이 역사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혁명론자들의 생각은 ‘지금-여기’를 아랑곳하지 않는 헛된 시도로서, 우상숭배와 다를 바 없다고 봤다. 인간의 비참함은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본질적인 조건이라고 본 ‘부조리론’이 그 뼈대다.

 

또 자연상태를 긍정한 루소의 전통을 이어,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라고 본 홉스의 생각을 비판했다. 흔히 마르크스주의는 헤겔의 ‘주인-노예 변증법’으로부터 근거를 끌어와 주인에 대한 노예의 반항(‘죽음의 투쟁’)을 세계를 변화시킬 혁명의 실천이라고 보지만, 카뮈는 반대로 그 속에서 인간의 ‘연대성’과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인간은 반항을 통해 ‘나’를 넘어서 타자와 함께 서 있는 공동체로서 ‘우리’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사르트르는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이기 때문에 ‘나’는 ‘우리’로 자발적으로 옮겨갈 수 없다는 홉스의 생각을 이어받았다. 그런 자연상태가 아닌 ‘사회상태’, 곧 정치적인 삶을 만들려면 ‘우리’를 강제할 수 있는 매개자가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이런 논점 아래 사르트르는 개인이 매개자에게 복종하는 것만이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식의 ‘복종의 계약’ 논리를 끝까지 밀고 나갔고, 이는 전제주의에 대한 긍정으로까지 나아갔다.

 

무엇보다 사르트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성’이었다. 인간이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 놓인 이상 그 속에 있는 적대감을 제거하려면 그들 사이의 차이를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절대적 동등이란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전망은 비관적이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프랑스 혁명을 앞두고 바스티유 감옥을 탈취하기 위해 인민들이 하나의 동일체가 됐던 것처럼, 사람들이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전제적 존재와 이를 통한 진보적 폭력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카뮈에 견줘 사르트르는 때로 자신의 논지에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했고, 카뮈의 비판에 걸맞게 현실 공산주의는 그 전체주의적 속성 때문에 몰락했다. 그렇다고 사르트르의 주장이 아예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결론 부분에서 지은이는 카뮈의 작품 <전락>을 소개하며 이렇게 풀이한다. “사르트르와 카뮈, <전락>의 주인공 클레망스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자연상태이든 역사의 산물이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의 시대’라는 점이다.”




왜 친해졌고, 왜 갈라서야 했는가

 

1960년 카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사르트르가 그에 대한 추모사를 쓰긴 했으나, 1951년 카뮈의 『반항하는 인간』 출간 이후 급격하게 냉랭해진 그들의 관계는 그간의 돈독한 우정이 무색하게 대화도 섞지 않지 않는 정도로 치달았다고 한다. 왜 그들은 적으로 남아야 했는가? 이에 함께 선행되는 질문은, 사르트르와 카뮈를 갈라서게 한 계기와 원인 이전에 그들을 형제에 다름없게 엮어준 요소에 관한 것일 테다. 본 강좌는 사르트르와 카뮈의 삶과 문학에서 그들을 가깝게 했던 이유와 갈라지게 했던 이유에 방점을 두며, 이를 위해 그들 각자의 성장배경·환경에서부터 짚어간다. 구토와 부조리로 대표되는 그들의 시대적 감수성은 유사했지만 1950년대에 이르러 불화와 결렬로 굳어지기까지의 상이한 사르트르와 카뮈의 사회·정치적 입장을 본 강좌는 조목조목 짚어간다. 




닮은 듯 다른, 구토와 부조리

 

사르트르와 카뮈를 각각 대표하는 개념으로서 구토와 부조리. 이것들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각각 작품 『구토』와 『시지프 신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유사한 시대적 감수성, ‘구토’와 ‘부조리’의 극복은 사르트르에겐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고, 카뮈에겐 세계를 껴안으며 ‘자신의 삶에 충실’하는 것에 있다. 구토와 부조리 모두 우리가 늘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문득 일상에 파묻힌 우리를 찾아온다. 참으로 닮아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두 개념의 차이는 나와 대상과의 관계와 치유 방법 면에서 갈라진다. 구토와 부조리라는 닮은 듯 다른 두 개념의 차이를 2, 3강에 걸쳐 알아본다. 




불화의 지점, 사회를 바라보는 상이한 시선과 해석

 

사르트르와 카뮈는 자신들이 위치해 있는 현실로부터 등 돌린 적이 없었고, 이는 여러 저작을 통해 확인가능하다. 정치·사회적인 입장에서 그들의 차이와 불화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은 ‘나와 타자의 관계에 대한 이해방식’과 ‘폭력에 대한 정당화 여부’에서다. 사르트르는 나-타자-집단의 관계를 갈등이나 투쟁으로 이해하고 공동체 형성의 원리로 ‘폭력’을 인정한다. 이와 달리 카뮈는 타자를 나의 신이나 낙원으로 이야기하고 관계에 대해서도 화해나 공존을 내세우며, 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폭력을 용인하지 않는다. 유토피아를 고대하는 혁명 앞에서도 사르트르와 카뮈는 각각 효율성과 도덕성을 우선시하며 입장을 달리한다. 그들의 불화와 결렬을 이해하는 대타관을 사르트르의 『무덤 없는 주검』, 『톱니바퀴』, 카뮈의 『페스트』, 『정의의 사람들』을 통해 살피며 총 네 강(4~7)에 걸쳐 알아본다.

 

 

그들을 화해시키자, 우리가

 

“우리를 서로 가깝게 만들어 준 것은 많았고, 우리를 갈라놓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그 얼마 안 되는 것도 여전히 지나치게 많은 모양입니다.” 사르트르가 카뮈에게 보낸 서한의 한 대목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르트르와 카뮈의 ‘친구-적’ 관계를 비교해보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들은 이데올로기의 충돌과 대립이 거셌던 20세기 초중반을 살며 말 그대로 작은 차이를 가지고, 보다 나은 사회의 건설과 그것의 토대를 수용하고, 이해하고, 적용하는 입장에서의 유의미한 논쟁을 벌였다. 사르트르-카뮈의 ‘친구-적’ 사이 그리고 차이를 현대에 다시 위치시키는 좋은 방법은 그들을 대립 구도에 세워 차이를 강조하기보다 연적으로서 융합하고 변증법적으로 매개하는 데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사회를 둘러싼 치열한 사유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떠올리자. 사르트르와 카뮈, 카뮈와 사르트르를 다시금 화해시킬 수 있는 사람은, 그러니까 현대의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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