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한국사/고려

최씨 무신정권, 최충헌의 집권

Jobs9 2023. 12. 1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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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 무신정권

1. 최충헌의 집권

   (1) 재추회의 활성화와 교정도감의 설치를 통해 중방을 약화시켰고 선종계통인 조계종을 후원

   (2) 시무 10조(봉사10조) : 최충헌이 명종에게 올린 건의안으로 집권 직후에 정치적으로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되는 것을 왕에게 건의한 것이다. 기만적, 형식적이고 자기모순에 빠져 실시되지는 못하였다. 그 의도는 권력 장악을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당시 고려 사회의 당면 과제를 적절히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권을 확고하게 장악한 뒤에는 그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한 짓을 오히려 거리낌 없이 자행하였다.  

     * 최충헌은 정권을 잡자 무신정권 초기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하여 봉사 10조와 같은 사회개혁 책을 제시하는 한편, 농민항쟁의 진압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사회개혁 책은 흐지부지되고 오히려 많은 토지와 노비를 차지하고 사병을 양성하여 권력유지에 치중하였다.

      * 최충헌은 상당한 학식과 경륜을 갖춘 무신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정치 경륜이 없이 탐학을 일삼던 이의민 일파를 제거한 다음, 왕에게 10개조의 상소를 올려 의종 이후 무너진 정치기강을 바로 세우려는 등 민심의 지지를 얻었다.

      * 최충헌의 봉사십조 - 그 내용은 멋대로 설치한 기관을 줄이고, 향리의 세도를 견제하며, 관리들의 기강을 확립한다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기 뜻대로 정치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고 그에게 대항할만한 자는 모두 숙청하였다.

      * 최충헌의 시무10조

          1) 왕은 개성의 정전에서 정사를 볼 것

          2) 쓸 데 없는 관원을 혁파할 것

          3) 토지 겸병을 막을 것

          4) 조부를 공평히 할 것

          5) 지방관의 업적평가를 엄히 할 것

          6) 진상을 빙자한 지방관의 탐학을 막을 것

          7) 승려들의 취식과 궁궐 출입을 막을 것

          8) 사치를 금하고 숭검(崇儉)을 장려할 것

          9) 비보사찰 이외의 사찰을 없앨 것

          10) 아첨하는 신하를 멀리하고 직간자를 임용할 것

   (3) 명종과 신종을 폐하고 신종, 희종, 강종, 고종 네 왕을 옹립하는 등 국왕의 권력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이의방이나 최충수(최충헌의 동생)와 같이 왕실의 외척으로써 자기의 권위를 높이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는 어디까지나 자기의 실력에 의존하려고 하였다. 농민과 천민 그리고 노비들의 봉기를 진압하는 데 있어 무력으로 토벌하는 동시에 그들을 회유하였다. 혹은 관직을 주기도 하고, 혹은 현으로 승격시키기도 하였다.

   (4) 진양(진주)을 식읍으로 받았고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에 대규모 농장을 형성하였다.

   (5) 진강후로 봉하고 府를 세워 흥령부(개인집에 설치)라 하여 소속 관원을 두게 하였다. 이후 흥령부는 강종 원년에 진강부라 고쳤다 : 흥령부는 공적인 기관임과 아울러 개인을 위한 기관으로서 최씨정권의 권력기구의 하나로 취급할 수 있다.

     * 부는 많아야 10인 이하였을 것이다. 더욱이 최씨정권의 사적 권력기구로 막강한 교정도감, 정방, 도방 등이 있었으므로 사적 권력행사에 있어서 구태여 법제상 공기구인 부를 이용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부는 합법제적 기구로서 상징적 명예의 기구로 삼았을 것이다.

   (6) 도방 : 경대승이 조직화한 사병집단인 도방을 6번으로 확대하였고, 최항 때에 이르러서는 36번으로 확장되었다.

   (7) 교정도감(교정별감을 세습) : 정권의 반대세력을 제거하고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 정치 기구

       ① 설치 : 청교역리들의 최충헌 암살 음모 수사를 구실로 임시로 설치한 기구

       ② 성격 : 군국의 서정을 관장하는 막부적 정무청으로 설치한 기관으로 그 밑에 도방, 정방, 서방 등의 기구를 거느렸다.

       ③ 기능 : 무신정권의 중추적인 정청으로 내외의 중요 국사를 관장하고 인사, 재정, 감찰 관리의 규찰, 정적에 대한 정보 수집, 밀고의 처리 감찰, 문무인사권, 지방행정의 통제, 조세징수권, 별공, 어염세, 선세 등 특별세, 재판사무, 내외의 중요 국사를 관장

 

2. 최 우

   (1) 진양후로 봉하여지고 부를 세워 진양부라 하였다.

   (2) 정방 (고종12년, 1225) : 문신들로 구성된 인사기구로 최우가 지기 집에 제도상의 기구로 설치하였다. 이 기구의 임무는 문무 백관의 인사행정과 왕명출납이다.

       ① 의미 : 무인정권이 안정되어 간다는 증거

       ② 직제 : 정방의 문사를 필도적(문사를 의미하는 몽고어)이라 한다. 최우의 막료로서 왕에게 상주하는 직책을 가진 정색 승선을 두었고, 정방에서는 직접 인사 행정을 관장하여 국왕의 결재를 받았다. 이제 국왕은 정방의 결정을 승인하는 형식을 취하는 허수아비가 되었다.

       ③ 영향 : 문신들이 대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었으므로, 정방은 무인정권이 몰락 뒤에도 국가기관으로 탈바꿈하여 존속하였다. 최씨 집권기에는 유능한 신진 관인이 이곳을 통해 진출할 수 있었으나, 국가기관으로 변한 뒤에는 권문세가들이 이곳을 지배함으로써 신진 관료들의 진출을 막아버리는 관부로 변질되었다. 정방은 대개 왕권이 강할 때는 폐지되었다가 반대로 신권이 강할 때는 복구되었다. 그리하여 치폐를 거듭하면서 지인방(知印芳) 또는 차자방 등의 이름으로 불려지다가 창왕 때 상서사(尙瑞司) 등으로 바뀌면서 조선 초까지 계속되었다. 

   (3) 서방 (고종14년, 1227) : 최우에 의하여 시작되어 임유무까지 계속되다가 폐지된 문객으로 구성된 특수한 호위기관이며 문신들을 3번 교대로 숙위시킨 문신들의 숙위기구 - 정치에 있어서 고문 역할을 담당하였고, 패관문학(내용상은 설화, 문체상은 수필) 발달에 영향을 주었다. 이 서방은 도방 및 삼별초와 함께 최씨정권이 몰락한 뒤 김준이 이를 이어받고 임연을 거쳐 임유무 때까지 존속하다가 폐지되었다. 

   (4) 강화도로 천도

       ① 대몽항쟁 : 마별초, 삼별초(야별초에서 분리된 좌별초, 우별초와 몽고에 포로로 잡혀갔던 병사들로 조직된 신의군을 말한다)

       ② 문화사업 : 팔만대장경, 상정고금예문을 금속활자로

 

3. 최씨 무신정권의 성격

   (1) 정치적으로는 안정되었지만 국가통치 질서는 오히려 약화되었다. 권력의 유지와 이를 위한 체제의 정비에 집착했을 뿐, 국가의 발전이나 백성들의 안정을 위한 노력에는 소홀하였다.

   (2) 독재정권이며 강력한 항몽 정권은 민족 주체성 유지의 차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3) 무신과 중방을 억압하고 문신을 보호하였다 : 최씨 정권은 독자적인 권력기반을 가지고 있어 전과는 달리 일반 무신들의 옹호가 필요 없게 되어 독재 정권 유지에 방해가 되는 무신은 제거하였고, 중방 무신의 권위를 무시하였다. 정방, 서방을 통해 문신을 우대하고 회유하였고, 행정적인 능력을 이용하였다. 따라서 최씨 정권 이후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지식인이 나타났다. 금의, 이규보, 최자, 진화 등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4) 교종을 대신하여 선종사원과 연결을 도모 : 최충헌 집권 후에 무신 정권에 대한 승도의 반란은 최충헌 집권 후에 특히 심해졌다. 따라서 문신 귀족과 연결되었던 귀법사 등 교종계통의 사원세력을 무력으로 탄압하고 선종사원과 연결을 도모하였따.

   (5) 8만 대장경 등 민족문화를 육성하였다.

   (6) 민중에 대한 회유 : 천민 집단을 현으로 승격

   (7) 고구려 계승을 표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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