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홍염(紅焰), 최서해, 사실주의적 신경향파 문학

Jobs 9 2021. 4. 5.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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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이 가난한―---백두산 서북편 서간도 한 귀퉁이에 있는 이 가난한 촌락 '빼허(白河)'에도 찾아들었다. 겨울이 찾아들면 조그마한 강을 앞에 끼고 큰 산을 등진 빼허는 쓸쓸히 눈 속에 묻혀서 차디찬 좁은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눈보라는 북국의 특색이라. 빼허의 겨울에도 그러한 특색이 있다. 이것이 빼허의 생령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오늘도 눈보라가 친다.

북극의 얼음세계나 거쳐 오는 듯한 차디찬 바람이 우― 하고 몰려오는 때면 산봉우리와 엉성한 가지 끝에 쌓였던 눈들이 한꺼번에 휘날려서 이 좁은 산골은 뿌연 눈안개 속에 들게 된다. 어떤 때는 강골 바람으로 빙판에 덮였던 눈이 산봉우리로 불리게 된다. 이렇게 교대적으로 산봉우리의 눈이 들로 내리고 빙판의 눈이 산봉우리로 올리 달려서 서로 엇바뀌는 때면 그런대로 관계치 않으나, 하늬〔北風〕와 강바람이 한꺼번에 불어서 강으로부터 올리닫는 눈과 봉우리로부터 내리닫는 눈이 서로 부딪치고 어우러지게 되면 눈보라와 바람 소리에 빼허의 좁은 골짜기는 터질 듯한 동요를 받는다.

등진 산과 앞으로 낀 강 사이에 게딱지처럼 끼어 있는 것이 이 빼허의 촌락이다. 통틀어서 다섯 호밖에 되지 않는 집이나마 밭을 따라서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모두 커다란 나무를 찍어다가 우물정(井)자로 틀을 짜 지은 집인데 여기 사람들은 이것을 '귀틀집'이라 한다. 지붕은 대개 조짚이요, 혹은 나무껍질로도 이었다. 그 꼴은 마치 우리 내지(간도서는 조선을 내지라 한다)의 거름집〔堆肥舍〕과 같다. 심하게 말하는 이는 도야지굴과 같다고 한다.

이것이 남부여대로 서간도 산골을 찾아들어서 사는 조선 사람의 집들이다. 빼허의 집들은 그러한 좋은 표본이다.

험악한 강산, 세찬 바람과 뿌연 눈보라 속에 게딱지처럼 붙어서 위태위태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 모든 집에도 언제든지 공도(公道)가―---위대한 공도가 어그러지지 않으면, 언제든지 꼭 한때는 따뜻한 봄볕이 지나리라. 그러나 이렇게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우짖으면 그 어설궂은 집 속에 의지 없이 들어박힌 넋들은 자기네로도 알 수 없는 공포에 몸을 부르르 떨게 된다.

이렇게 몹시 춥고 두려운 날 아침에 문서방은 집을 나섰다. 산산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뿌연 상투에 휘휘 거둬 감고 수건으로 이마를 질끈 동인 위에 까맣게 그을은 대팻밥 모자를 끈 달아 썼다. 부대처럼 툭툭한 토수래(베실을 삶아서 짠 것이다) 바지저고리는 언제 입은 것인지 뚫어지고 흙투성이 되었는데 바람에 무겁게 흩날린다.

"문서뱅이 발써 갔소?"

문서방은 짚신에 들막을 단단히 하고 마당에 내려서려다가 부르는 소리에 머리를 돌렸다. 펄쩍 문을 열면서 때가 찌덕찌덕한 늙은 얼굴을 내미는 것은 한관청(韓官廳 : 관청은 직함)이었다.

"왜 그러시우?"

경기 말씨가 그저 남아 있는 문서방은 한 발로 마당을 밟고 한 발로 흙마루를 밟은 채 한관청을 보았다.

"엑, 바름두! 저, 엑 흑……."

한관청은 몰아치는 바람이 아츠러운지 연방 흑흑 느끼면서,

"저 일절 욕을 마오! 그게…… 엑, 워쩐 바름이 이런구! 그게 되놈〔胡人〕인데, 부모두 모르는 되놈인데……."

하는 양은 경험 있는 늙은 사람의 말을 깊이 들으라는 어조이다.

"나는 또 무슨 말씀이라구! 아 그늠이 이번두 그러면 그저 둔단 말이오?"

문서방의 소리는 좀 분개하였다.

눈을 몰아치는 바람은 또 몹시 마당으로 몰아들었다. 그 판에 문서방은 바람을 등지고 돌아서고 한관청의 머리는 창문 안으로 자라목처럼 움츠렸다.

"글쎄 이 늙은 거 말을 듣소! 그늠이 제 가새비(장인)를 잘 알겠소! 흥……."

한관청은 함경도 사투리로 뇌면서 다시 머리를 내밀었다.

"염려 마슈! 좋게 하죠."

문서방은 더 들을 말 없다는 듯이 바람을 안고 휙 돌아섰다.

"그새 무슨 일이나 없을까?"

밭 가운데로 눈을 헤갈면서 나가던 문서방은 주춤하고 돌아다보면서 혼자 뇌었다.

눈보라 때문에 눈도 뜰 수 없거니와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이 되어서 집은커녕 산도 보이지 않았다.

"그새 무슨 일이 날라구!"

그는 또 이렇게 혼자 뇌고 저고리 섶을 단단히 여미면서 강가로 내려가다가 발을 돌려서 언덕길로 올라섰다. 강얼음을 타고 가는 것이 빠르지만 바람이 심하면 빙판에서 걷기가 거북하여 언덕길을 취하였다. 하 다니던 길이니 짐작으로 걷지 눈에 묻히어서 길이 보이지 않았다.

언덕길에 올라서니 바람은 더 심하였다. 우와 하고 가슴을 치어서 뒤로 휘딱 자빠질 것은 고사하고 눈발에 아츠럽게 낯을 치어서 눈도 뜰 수 없고 숨도 바로 쉴 수 없었다. 뻣뻣하여 가는 사지에 억지로 힘을 주어 가면서 이를 악물고 두 마루턱이나 넘어서 '달리소' 강가에 이르니 가슴에서는 잔나비가 뛰노는 것 같고 등골에는 땀이 흘렀다. 그는 서리가 뿌연 수염을 씻으면서 빙판을 건너간다. 빙판에는 개가죽 모자 개가죽 바지에 커단 '울레(신)'를 신은 중국 파리(썰매)꾼들이 기다란 채쭉을 휘휘 두르면서,

"뚜―어, 뚜―어, 딱딱."

하고 말을 몰아 간다.

"꺼울리 날취(저 조선 거지 어디 가나)?"

중국 파리꾼들은 문서방을 보면서 욕을 하였으나 문서방은 허둥허둥 빙판을 건너서 높다란 바위 모롱이를 지나 언덕에 올라섰다.

여기가 문서방이 목적하고 온 달리소라는 땅이다. 이 땅 주인은 '인(殷)'가라는 중국 사람인데 그 인가는 문서방의 사위이다. 저편 밭 가운데 굵은 나무로 울타리를 한 것이 인가의 집이다. 그 밖으로 오륙 호나 되는 게딱지 같은 귀틀집은 지팡살이(소작인)하는 조선 사람들의 집이다. 문서방은 바위 모롱이를 돌아 언덕에 오르니 산이 서북을 가리어서 바람이 좀 잠즉하여 좀 푸근한 느낌을 받았으나, 점점 인가―---사위의 집 용마루가 보이고 울타리가 보이고 그 좌우에 같은 조선 사람의 집이 보이니 스스로 다리가 움츠러지면서 걸음이 떠지었다.

"엑, 더러운 되놈! 되놈에게 딸 팔아먹은 놈!"

그것은 자기 스스로 한 일은 아니지만 어디선지 이런 소리가 귀청을 징징 치는 것 같은 동시에 개기름이 번지르하여 핏발이 올올한 눈을 흉악하게 굴리는 인가―---사위의 꼴이 언뜻 눈앞에 떠올라서 그는 발끝을 돌릴까말까 하고 주저거렸다. 그러다가도,

"여보, 용례(딸의 이름)가 왔소? 용례 좀 데려다주구려!"

하고 죽어 가는 아내의 애원하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서 다시 앞을 향하였다.

"이게 문서방이! 또 딸 집을 찾아가옵느마?"

머리를 수굿하고 걷던 문서방은 불의의 모욕이나 받는 듯이 어깨를 툭 떨어뜨리면서 머리를 들었다. 그것은 길 옆에서 도야지 우리를 손질하던 지팡살이꾼의 한 사람이었다.

"네! 아아니……."

문서방은 대답도 아니요 변명도 아닌 이러한 말을 하고는 얼른얼른 인가의 집으로 향하였다. 온 동리가 모두 나서서 자기의 뒤를 비웃는 듯해서 곁눈질도 못 하였다.

여기는 서북이 가리어서 빼허처럼 바람이 심하지 않았다. 흐릿하나마 볕도 엷게 흘렀다. 

2

"여보! 저 인가가 또 오는구려!"

가을볕이 쨍쨍한 마당에서 깨를 떨던 아내는 남편 문서방을 보면서 근심스럽게 말하였다.

"오면 어쩌누? 와도 허는 수 없지!"

뒤줏간 앞에서 옥수수 껍질을 바르던 문서방은 기탄없이 말하였다.

"엑, 그 단련을 또 어찌 받겠소?"

아내의 찌푸린 낯은 스르르 흐리었다.

"참 되놈이란 오랑캐……."

"여보 여기 왔소."

문서방의 높은 소리를 주의시키던 아내는 뒤줏간 저편을 보면서,

"아, 오셨소!"

하고 어색한 웃음을 웃었다.

"예 왔소! 장구재(주인) 있소?"

지주 인가는 어설픈 웃음을 지으면서 마당에 들어서다가 뒤줏간 앞에 앉은 문서방을 보더니,

"응 저기 있소!"

하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그 앞에 가 수캐처럼 쭈그리고 앉았다.

서천에 기운 태양은 인가의 이마에 번지르르 흘렀다.

"어디 갔다 오슈?"

문서방은 의연히 옥수수를 바르면서 하기 싫은 말처럼 힘없이 끄집어내었다.

"문서방! 그래 올에두 비들(빚을) 못 가프겠소?"

인가는 문서방 말과는 딴전을 치면서 담뱃대를 쌈지에 넣는다.

"허허, 어제두 말했지만 글쎄 곡식이 안 된 거 어떡하오?"

"안 돼! 안 돼! 곡식이 자르 되구 모 되구 내가 알으오? 오늘은 받아 가지구야 가갔소!"

인가는 담배를 피우면서 버티려는 수작인지 땅에 펑덩 들어앉았다.

"내년에는 꼭 갚아 드릴게 올만 참아 주오! 장구재도 알지만 흉년이 되어서 되지두 않은 이것(곡식)을 모두 드리면 우리는 어떻게 겨울을 나라우? 응! 자, 내년에는 꼭…… 하하."

인가를 보면서 넋없는 웃음을 치는 문서방의 눈에는 애원하는 빛이 흘렀다.

"안 되우! 안 돼! 퉁퉁(모두) 디 주! 모두두 많이 많이 부족이오!"

"부족이 돼두 하는 수 없지. 글쎄 뻔히 보시면서 어떡하란 말이오! 휴."

"어째 어부소? 응 늬디 어째 어부소 마리해! 울리 쌀리디, 울리 소금이디, 울리 강냉이디…… 늬디 입이(그는 입을 가리키면서)디 안 먹어? 어째 어부소? 응."

인가는 낯빛이 거무락푸르락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문서방은 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언제나 이놈의 소작인 노릇을 면하여 볼까? 경기도에서도 소작인 십 년에 겨죽만 먹다가 그것도 자유롭지 못하여 남부여대로 딸 하나 앞세우고 이 서간도로 찾아들었더니 여기서도 그네를 맞아 주는 것은 지팡살이였다. 이름만 달랐지 역시 소작인이다. 들어오던 해는 풍년이었으나 늦게 들어와서 얼마 심지 못하였고 그 이듬해에는 흉년으로 말미암아 일년내 꾸어 먹은 것도 있거니와 소작료도 못 갚아서 인가에게 매까지 맞고 금년으로 미뤘더니 금년에도 흉년이 졌다. 다른 사람들도 빚을 지지 않은 바가 아니로되 유독 문서방을 조르는 것은 음흉한 인가의 가슴속에 문서방의 딸 용례(금년 열일곱)가 걸린 까닭이었다. 문서방은 벌써 그 눈치를 알아채었으나 차마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인가의 욕심만 채우면 밭맥(1맥은 10일경(日耕)=1일경은 약 천 평)이나 단단히 생겨서 한평생 기탄이 없을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무남독녀로 고이 기른 딸을 되놈에게 주기는 머리에 벼락이 내릴 것 같아서 죽으면 그저 굶어 죽었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는 그런 것 저런 것 생각할 때마다 도리어 내지(조선)가 그리웠다. 쪼들려도 나서 자란 자기 고향에서 쪼들리던 옛날이―---삼 년 전의 그 옛날이 그리웠다. 그러나 그것도 한 꿈이었다. 그 꿈이 실현되기에는 그네의 경제적 기초가 너무도 어줄이 없었다. 빈 마음만 흐르는 구름에 부쳐서 내지로 보낼 뿐이었다.

"어째서 대답이 어부소, 응? 그래 울리 비디디 안 가파? 창우니! 빠피야(이놈 껍질 벗긴다)."

인가는 담뱃대를 꽁무니에 찌르면서 일어나 앉더니 팔을 걷는다. 그것을 본 문서방 아내는 낯빛이 파랗게 질려서 부들부들 떨면서 이편만 본다. 문서방도 낯빛이 까맣게 죽었다.

"자, 그러면 금년 농사는 온통 드리지요!"

문서방의 목소리는 힘없이 떨렸다. 마치 종아리채를 든 초학 훈장 앞에 엎드린 어린애의 소리처럼…….

"부요우(일없다)…… 퉁퉁디…… 모모 모두 우리 가져가두 보미(옥수수) 쓰단(4石), 쌔옌(소금) 얼씨진(20斤), 쏘미(좁쌀)디 빠단(8石)디 유아(있다)…… 니디 자리 알라 있소! 그거 안 줘?"

검붉은 인가의 뺨은 성난 두꺼비 배처럼 불떡불떡하였다.

"나머지는 내년에 갚지요!"

문서방은 머리를 뚝 떨어뜨렸다.

"슴마(무엇)? 창우니 빠피야!"

인가의 억센 손이 문서방의 멱살을 잡았다. 문서방은 가만히 받았다. 정신이 아찔하였다.

"에구, 장구재…… 흑흑…… 장구재…… 제발 살려 줍쇼! 제발 살려 주시면 뼈를 팔아서라두 갚겠습니다. 장구재 제발!"

문서방의 아내는 부들부들 떨면서 인가의 팔에 매달렸다. 그의 애걸하는 소리는 벌써 울음에 떨렸다.

"내 보미 워디 소금이 낼라! 아니 줬소? 아니 줬소? 어 어째서 아니 줬소?"

인가의 주먹은 문서방의 귓벽을 울렸다.

"아이구!"

문서방은 땅에 쓰러졌다.

"엑 에구…… 응응응…… 에구 장구재! 제발 제제…… 흑 제발 좀 살려 줍쇼…… 응응."

쓰러지는 문서방을 붙잡던 아내는 인가를 보면서 땅에 엎드려서 손을 비빈다.

"이 상느므 샛지(상놈의 자식)…… 늬듸 로포(아내) 워디(내가) 가져가!"

하고 인가는 문서방을 차더니 엎디어서 손이야 발이야 비는 문서방의 아내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늬듸 울리 집이 가! 오늘리부터 늬듸 울리 에미네(아내)!"

"장구재…… 제발…… 에이구 응응."

"에구, 엄마!"

집 안에서 바느질하던 용례가 내달았다. 인가는 문서방의 아내를 사정없이 끌고 자기 집으로 향한다.

"나를 잡아가라! 나를!"

쓰러졌던 문서방은 인가의 팔을 잡았다.

"타마나!"

하는 소리와 같이 인가의 발길은 문서방의 불거름으로 들어갔다. 문서방은 거꾸러졌다.

"아이구 어머니! 왜 울 어머니를 잡아가요? 응응…… 흑."

용례는 어머니의 팔목을 잡은 중국인의 손을 물어뜯었다. 용례를 본 인가는 문서방 아내는 놓고 문서방의 딸 용례를 잡았다.

"이 개새끼야! 이것 놔라…… 응응 흑…… 아이구 아버지…… 엄마!"

억센 장정 인가에게 티끌같이 끌려가는 연연한 처녀는 몸부림을 하면서 발악을 하였다.

"용례야! 아이구 우리 용례야!"

"에이구 응…… 너를 이 땅에 데리구 와서 개같은 놈에게……."

문서방의 내외는 허둥지둥 달려갔다.

낯빛이 파랗게 질린 흰옷 입은 사람들은 쭉 나와서 섰건마는 모두 시체같이 서 있을 뿐이었다. 여편네 몇몇은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씻었다.

의연히 제 걸음을 재촉하는 볕은 서산 위에 뉘엿뉘엿하였다. 앞강으로 올라오는 찬바람은 스르르 스쳐가는데 석양에 돌아가는 까마귀 울음은 의지 없는 사람의 넋을 호소하는 듯 처량하였다.

"에구 용례야! 부모를 못 만나서 네 몸을 망치는구나! 에구 이놈에 돈이 우리를 죽이는구나!"

문서방 내외는 그 밤을 인가의 집 울타리 밖에서 새었다. 누구 하나 들여다보지도 않는데 인가의 집에서 내놓은 개들은 두 내외를 잡아먹을 듯이 짖으며 덤벼들었다.

이리하여 용례는 영영 인가의 손에 들어갔다. 며칠 후에 인가는 지금 문서방이 있는 빼허에 땅날갈이나 있는 것을 문서방에게 주어서 그리로 이사시켰다. 문서방은 별별 욕과 애원을 하였으나 나중에 인가는 자기 집 일꾼들을 불러서 억지로 몰아내었다. 이리하여 문서방은 차마 생목숨을 끊기 어려워서 원수가 주는 땅을 파먹게 되었다. 그것이 작년 가을이었다. 그 뒤로 인가는 절대로 용례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어버이 되는 문서방 내외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용례는 매일 밥도 안 먹고 어머니 아버지만 부르고 운다."

하는 희미한 소식을 인가의 집에 가까이 드나드는 중국인들에게서 들을 때마다 문서방은 가슴을 치고 그 아내는 피를 토하였다.

이리하여 문서방의 아내는 늦은 여름부터 아주 병석에 드러누웠다. 그는 병석에서 매일 용례만 부르고 용례만 보여 달라고 졸랐다. 그래서 문서방은 벌써 세 번이나 인가를 찾아가서 말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이번까지 가면 네 번째다. 이번은 어떻게 성사가 될는지? (간도 있는 중국인들은 조선 여자를 빼앗아 가든지 좋게 사가더라도 밖에 내보내지도 않고 그 부모에게까지 흔히 면회를 거절한다. 중국인은 의심이 많아서 그런다고 들었다.) 

3

문서방은 울긋불긋한 채필로 '관운장'과 '장비'를 무섭게 그려 붙인 집 대문 앞에 섰다. 문 밖에서 뼈다귀를 핥던 얼룩개 한 마리가 웡웡 짖으면서 달려들더니 이구석 저구석에서 개 무리가 우아 하고 덤벼들었다. 어떤 놈은 으르렁 으르고, 어떤 놈은 뒷다리 사이에 바싹 끼면서 금방 물 듯이 송곳 같은 이빨을 악물었고, 어떤 놈은 대어들었다가는 뒷걸음을 치고 뒷걸음을 쳤다가는 대어들면서 산천이 무너지게 짖고, 어떤 놈은 소리도 없이 코만 실룩실룩하면서 달려들었다. 그 여러 놈들이 문서방을 가운데 넣고 죽 돌아서서 각각 제 재주대로 날뛴다. 그러지 않아도 지금 개 때문에 대문 밖에서 기웃거리던 문서방은 이 사면초가를 어떻게 막으면 좋을지 몰랐다. 이러는 판에 한 마리가 휙 들어와서 문서방의 바짓가랑이를 물었다.

"으악…… 꺼우디(개를)!"

문서방이 소리를 치면서 돌멩이를 찾느라고 엎드리는 것을 보더니 개들은 일시에 뒤로 물러났으나 다시 덤벼들었다.

"창우니 타마나가비(상소리다)!"

안에서 개가죽 모자를 쓰고 뛰어나오는 일꾼은 기다란 호밋자루를 두르면서 개를 쫓았다. 개들은 몰려가면서도 몹시 짖었다.

문서방은 조짚 수수깡이가 지저분하게 널려 있는 마당을 지나서 왼편 일꾼들 있는 방문으로 들어갔다. 누릿하고 뀌쥐한 더운 기운이 후끈 낯을 스칠 때 얼었던 두 눈은 뿌연 더운 안개에 스르르 흐려서 어디가 어딘지 잘 분간할 수 없었다.

"윈따야 랠라마(문영감 오셨소)?"

캉(구들)에서 지껄이던 중국인 중에서 누군지 첫인사를 붙였다.

"에헤 랠라 장구재 유(있소)?"

문서방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얼었던 몸은 차츰 녹고 흐리었던 눈앞도 점점 밝아졌다.

"쌍캉바(구들로 올라오시오)!"

구들 위에서 나는 틱틱한 소리는 인가였다. 그는 일꾼들과 무슨 의논을 하던 판인가? 지껄이던 일꾼들은 고요히 앉아서 담배를 피우면서 호기심에 번득이는 눈을 인가와 문서방에게 보내었다.

어느 천년에 지은 집인지? 거미줄이 얼키설키 서린 천장과 벽은 아궁이 속같이 꺼먼데 벽에 붙여 놓은 삼국풍진도(三國風塵圖)며 춘야도리원도(春夜桃李園圖)는 이리저리 찢기고 그을었다. 그을음과 담배 연기에 싸여서 눈만 반짝반짝하는 무리들은 아귀도(餓鬼道)를 생각게 한다. 문서방은 무시무시한 기분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치옌바(담배 잡수시오)!"

인가는 웬일인지 서투른 대로 곧잘 하던 조선말은 하지 않고 알아도 못 듣는 중국말을 쓰면서 담뱃대를 문서방 앞에 내밀었다.

"여보 장구재! 우리 로포가 딸(용례)을 못 봐서 죽겠으니 좀 보여 주, 응……."

문서방은 담뱃대를 받으면서 또 전처럼 애걸하였다. 인가는 이마를 찡그리면서 볼을 불렸다.

"저게(아내) 마지막 죽어 가는데 철천지 한이나 풀어야 하지 않겠소, 응! 한 번만 보여 주! 어서 그러우! 내가 용례를 만나면 꼬일까 봐…… 그럴 리 있소! 이렇게 된 밧자에…… 한 번만…… 낯이나…… 저 죽어가는 제 에미 낯이나 한 번 보게 해주! 네? 제발……."

"안 되우! 보내지 모하겠소. 우리 지비 문 바께 로포(아내) 나갔소. 재미 어부소."

배짱을 부리는 인가의 모양은 마치 전당포 주인과 같은 점이 있었다. 문서방의 가슴은 죄었다. 아쉽고 안타깝고 슬픔이 어우러지더니 분한 생각이 났다. 부뚜막에 놓은 낫을 들어서 인가의 배를 왁 긁어놓고 싶었으나 아직도 행여나 하는 바람과 삶에 대한 애착심이 그 분을 제어하였다.

"그러지 말고 제발 보여 주오! 그러면 내 아내를 데리고 올까? 아니 바람을 쏘여서는…… 엑 죽어두 원이나 끄고 죽게 내가 데리고 올게 낯만 슬쩍 보여 주오…… 네…… 흑…… 끅…… 제발……."

이십 년 가까이 손끝에서 자기 힘으로 기른 자기 딸을 억지로 빼앗긴 것도 원통하거든 그나마 자유로 볼 수 없이 되는 것을 생각하니…… 더구나 그 우악한 인가에게 가슴과 배를 사정없이 눌리는 연연한 딸의 버둥거리는 그림자가 눈앞에 언뜻하여 가슴이 꽉 막히고 사지가 부르르 떨리면서 주먹이 쥐어졌다. 그러나 뒤따라 병석의 아내가 떠오를 때 그의 주먹은 풀리고 머리는 숙었다.

"낼리 또 왔소 이얘기하오! 오늘리디 울리디 일이디 푸푸디! 많이 있소!"

인가는 문서방을 어서 가라는 듯이 자기 먼저 캉에서 내려섰다.

"제발 이러지 말구! 으흑 흑…… 제제…… 제발 단 한 번만이라두 낯만…… 으흑흑 응!"

문서방은 인가를 따라서 밖으로 나오면서 울었다. 등뒤에서는 웃음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 웃음 소리는 이때의 문서방에게는 아무러한 자극도 주지 못하였다.

"자, 이게 적지만!"

마당에 한참이나 서서 무엇을 생각하던 인가는 백 조(百吊)짜리 관체〔官帖 : 돈〕석 장을 문서방의 손에 쥐였다. 문서방은 받지 않으려고 했다. 더러운 놈의 더러운 돈을 받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나 지금 부쳐 먹는 밭도 인가의 밭이다. 잠깐 사이 분과 설움에 어리어서 튀기던 돈은―---돈 힘은 굶고 헐벗은 문서방을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못 이기는 것처럼 삼백 조를 받아 넣고 힘없이 나오다가,

'저 속에는 용례가 있으려니!'

생각하면서 바른편에 놓인 조그마한 집을 바라볼 때 자기도 모르게 발길이 도로 돌아섰다. 마치 거기서는 용례가 울면서 자기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인가는 문서방을 문 밖에 내보내고 문을 닫아 잠갔다.

문 밖에 나서니 천지가 아득하였다. 발길이 돌아가지 않았다. 사생을 다투는 아내를 생각하면 아니 가진 못할 일이고 이 울타리 속에는 용례가 있거니 생각하면 눈길이 다시금 울타리로 갔다.

그가 바위 모롱이 빙판에 올 때까지 개들은 쫓아나와 짖었다. 그는 제 분김에 한 마리 때려잡는다고 얼른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가, 작년 가을에 어떤 조선 사람이 어떤 중국 사람의 개를 때려죽이고 그 사람이 주인에게 총 맞아 죽은 일이 생각나서 들었던 돌멩이를 헛뿌렸다.

돋아 떨어지는 겨울해는 어느새 강 건너 봉우리 엉성한 가지 끝에 걸렸다. 바람은 좀 자고 날씨는 맑으나 의연히 추워서 수염에는 우물가처럼 얼음 보쿠지가 졌다. 

4

눈옷 입은 산봉우리 나뭇가지 끝에 남았던 붉은 석양볕이 스르르 자취를 감추고 먼 동쪽 하늘가에 차디찬 연자줏빛이 싸르르 돌더니 그마저 스러지고 쌀쌀한 하늘에 찬 별들이 내려다보게 되면서부터 어둑한 황혼빛이 빼허의 좁은 골에 흘러들어서 게딱지 같은 집 속까지 흐리기 시작하였다.

꺼먼 서까래가 드러난 수수깡 천장에는 그을은 거미줄이 흐늘흐늘 수없이 드리우고, 빈대 죽인 자리는 수묵으로 댓잎〔竹葉〕을 그린 듯이 흙벽에 빈틈이 없는데 먼지가 수북한 구들에는 구름깔개(참나무를 엷게 밀어서 결은 자리)를 깔아 놓았다. 가마 저편 바당(부엌)에는 장작개비가 흩어져 있고 아궁이에서는 벌건 불이 훨훨 붙는다.

뜨끈뜨끈한 부뚜막에는 문서방의 아내가 누덕 이불에 싸여 누웠고 문 앞과 윗목에는 이웃집 사람들이 모여 앉았는데 지금 막 달리소 인가의 집에서 돌아온 문서방은 신음하는 아내의 가슴에 손을 얹고 앉았다.

등꽂이에 켜놓은 등(삼대에 겨를 올려서 불 켜는 것)불은 환하게 이 실내의 이 모든 사람을 비췄다.

"용례야! 용례야! 용례야!"

고요히 누웠던 문서방의 아내는 마지막 소리를 좀 크게 질렀다. 문서방은 아내의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에구! 우리 용례! 우리 용례를 데려다주구려!"

그는 눈을 번쩍 뜨면서 몸을 흔들었다.

"여보, 왜 이러우. 용례가 지금 와요! 금방 올걸!"

어린애를 달래듯 하면서 땀때가 께저분한 아내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문서방의 눈은 흐렸다.

"에구, 몹쓸늠(인가)두! 저런 거 모르는 체하는가? 음!"

윗목에 앉은 늙은 부인은 함경도 사투리로 구슬피 뇌었다.

"허, 그러게 되놈이라지! 그놈덜께 인륜이 있소?"

문 앞에 앉았던 한관청은 받아 치었다.

"용례야! 용례야! 흥 저기저기 용례가 오네!"

문서방의 아내는 쑥 꺼진 두 눈을 모들떠서 천장을 뚫어지게 보면서 보기에 아츠러운 웃음을 웃었다.

"어디? 아직은 안 오! 여보, 왜 이리우? 정신을 채리우, 응!"

문서방의 목소리는 떨렸다.

"저기 엑…… 용…… 용례……."

그는 눈을 더 크게 뜨고 두 뺨의 근육을 경련적으로 움직이면서 번쩍 일어났다. 문서방은 아내의 허리를 안았다. 그는 또 정신에 착각을 일으켰는지 창문을 바라보고 뛰어나가려고 하면서,

"용례야! 용례 용례…… 저 저기저기 용례가 있네! 용례야, 어디 가니? 용례야! 네 어디 가느냐? 으응."

고함을 치고 눈물 없는 울음을 우는 그의 눈에서는 퍼런 불빛이 번쩍하였다. 좌중은 모진 짐승의 앞에나 앉은 듯이 모두 숨을 죽이고 손을 들었다. 문서방은 전신의 힘을 내어서 아내의 허리를 안았다.

"하하하(그는 이상한 소리를 내어 웃다가 다시 성을 잔뜩 내면서)…… 용례! 용례가 저리로 가는구나! 으응…… 저놈이 저놈이 웬 놈이냐?"

하면서 한참 이를 악물고 창문을 노려보더니,

"저 저…… 이놈아! 우리 용례를 놓아라! 저 되놈이, 저 되놈이 용례를 잡아가네! 이놈 놔라! 이놈 모가지를 빼놓을 이 이."

그의 눈앞에는 용례를 인가에게 빼앗기던 그때가 떠올랐는지? 이를 빡 갈면서 몸을 번쩍 일어 창문을 향하고 내달았다.

"여보, 정신을 차리오! 여보, 왜 이러우! 아이구! 응."

쫓아 나가면서 아내의 허리를 안아서 뒤로 끌어들이는 문서방의 소리는 눈물에 젖었다.

"이놈아! 이게 웬 놈이 남을 붙잡니? 응 으윽."

그는 두 손으로 남편의 가슴을 밀다가도 달려들어서 남편의 어깨를 물어뜯으면서,

"이것 놔라! 에그 용례야, 저게 웬 놈이…… 에구구…… 저놈이 용례를 깔고 앉네!"

하고 몸부림을 탕탕 하는 그의 눈엔 핏발이 서고 낯빛은 파랗게 질렸다.

이때 한관청 곁에 앉았던 젊은 사람은 얼른 일어나서 문서방을 조력하였다. 끌어들이려거니 뛰어나가려거니 하여 밀치고 당기는 판에 등꽂이가 넘어져서 등불이 펄렁 죽어 버렸다. 방 안이 갑자기 깜깜하여지자 창문만 히슥하였다.

"조심들 하라니! 엑 불두!"

한관청은 등대를 화로에 대고 푸푸 불면서 툭덕툭덕하는 사람들께 주의를 시켰다. 불은 번쩍 하고 켜졌다.

"우우 쏴― 스르륵."

문을 치는 바람 소리가 요란하였다.

"엑, 또 바람이 나는 게로군! 날쎄두 페릅(괴상)다."

한관청은 이렇게 뇌면서 등꽂이에 등대를 꽂고 몸부림하는 문서방 내외와 젊은 사람을 피하여 앉았다.

"이것 놓아 주오! 아이구! 우리 용례가 죽소! 저 흉한 되놈에게 깔려서…… 엑, 저 저 저…… 저것 봐라! 이놈 네 이놈아! 에이구 용례야! 용례야! 사람 살려 주오! (소리를 더욱 높여서) 우리 용례를 살려 주! 응으윽 에엑응……."

그는 마지막으로 오장육부가 쏟아지게 소리를 지르다가 검붉은 핏덩어리를 왈칵 토하면서 앞으로 거꾸러졌다.

"으윽!"

"응 끔직두 한 게!"

하면서 여러 사람들은 거꾸러진 문서방의 아내 앞에 모여들었다.

"여보! 여보! 아이구 정신 좀……."

떨려 나오는 문서방의 소리는 절반이나 울음으로 변하였다.

거불거불하는 등불 속에 검붉은 피를 한 말이나 토하고 쓰러진 그는 낯이 파랗게 되어서 숨결이 없었다.

"허! 잡싱(雜神)이 붙었는가? 으흠 응! 으흠 응! 각황제방, 심미기, 두우열로 구슬벽……."

여러 사람들과 같이 문서방의 아내를 부뚜막에 고요히 뉘어 놓은 한관청은 귀신을 쫓는 경문이라고 발음도 바로 못 하는 이십팔수를 줄줄줄 읽었다.

"으응응…… 흑흑…… 여 여보!"

문서방의 목메인 울음을 받는 그 아내는 한관청의 서투른 경문 소리를 듣는지 마는지? 손발은 점점 식어 가고 낯은 파랗게 질렸는데, 무엇을 보려고 애쓰던 눈만은 멀거니 뜨고 그저 무엇인지 노리고 있다. 경문을 읽던 한관청은,

"엑, 인제는 늙어 가는 사람이 울기는? 우지 마오! 이내 살아날껴!"

하고 문서방을 나무라면서 문서방의 아내 앞에 다가앉더니 주머니에서 은동침(어느 때에 얻어 둔 것인지?)을 내어서 문서방 아내의 인중(人中)을 꾹 찔렀다. 그러나 점점 식어 가는 그는 이마도 찡그리지 않았다. 다시 콧구멍에 손을 대어 보았으나 숨결은 없었다.

바람은 우우 쏴― 하고 문에 눈을 들이치었다. 여러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두려운 빛을 띤 눈으로 창을 바라보았다.

"으응 에이구! 여보! 끝끝내 용례를 못 보고 죽었구려…… 잉잉…… 흑."

문서방은 울기 시작하였다. 그 울음 소리는 고요한 방 안 불빛 속에 바람 소리와 함께 처량하게 흘렀다.

"에구 못된놈(인가)두 있는 게!"

"에구 참 불쌍하게두!"

"흥 우리두 다 그 신세지!"

무시무시한 기분에 싸여서 낯빛이 푸르러 가는 여러 사람들은 각각 한마디씩 뇌었다. 그 소리는 모두 갈데없는 신세를 호소하는 듯하게 구슬프고 힘없었다. 

5

문서방의 아내가 죽던 그 이튿날 밤이었다. 그날 밤에도 바람이 몹시 불었다. 그 바람은 강바람이어서 서북에 둘린 산 때문에 좀한 바람은 움쩍도 못 하던 달리소(문서방의 사위 인가의 땅)까지 범하였다. 서북으로 산을 등지고 앞으로 강 건너 높은 절벽을 대하여 강골밖에 터진 데 없는 달리소는 강바람이 들어차면 빠질 데는 없고 바람과 바람이 부딪쳐서 흔히 회오리바람이 일게 된다. 이날 밤에도 그 모양으로, 달리소에는 회오리바람이 일어서 낟가리가 날리고 지붕이 날리고 산천이 울려서 혼돈이 배판할 때 빙세계나 트는 듯한 판이라 사람은커녕 개와 도야지도 굴 속에서 꿈쩍 못 하였다.

밤이 썩 깊어서였다.

차디찬 별들이 총총한 하늘 아래, 우렁찬 바람에 휘날리는 눈발을 무릅쓰고 달리소 앞 강 빙판을 건너서 달리소 언덕으로 올라가는 그림자가 있다. 모진 바람이 스치는 때마다 혹은 엎드리고 혹은 우뚝 서기도 하면서 바삐바삐 가던 그 그림자는 게딱지 같은 지팡살이집 근처에서부터 무엇을 꺼리는지 좌우를 슬몃슬몃 보면서 자취를 숨기고 걸음을 느리게 하여 저편으로 돌아가 인가의 집 높은 울타리 뒤로 돌아간다.

"으르릉 웡웡."

하자 어느 구석에선지 개가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뒤이어 나와서 짖으면서 그 그림자를 쫓아간다. 그 개소리는 처량한 바람소리 속에 싸여 흘러서 건너편 산을 즈르릉즈르릉 울렸다.

"꽝! 꽝꽝!"

인가의 집에서는 개짖음에 홍우재(마적)나 몰아오는가 믿었던지 헛총질을 너댓 방이나 하였다. 그 소리도 산천을 울렸다. 그 바람에 슬근슬근 가던 그림자는 휙 돌아서서 손에 들었던 보자기를 개 앞에 던졌다. 보자기는 터지면서 둥글둥글한 것이 우르르 쏟아졌다. 짖으면서 달려오던 개들은 짖음을 그치고 거기 모여들어서 서로 물고 뜯고 빼앗아 먹는다. 그러는 사이에 그림자는 인가의 울타리 뒤에 산같이 쌓아 놓은 보릿짚더미에 가서 성냥을 쭉 긋더니 뒷산으로 올리닫는다.

처음에는 바람 속에서 판득판득하던 불이 삽시간에 그 산 같은 보릿짚더미에 붙었다.

"훠쓰(불이야)!"

하고 고함과 같이 사람의 소리는 요란하였다. 모진 바람에 하늘하늘 일어서는 불길은 어느새 보릿짚더미를 살라 버리고 울타리를 살라 버리고 울타리 안에 있는 집에 옮았다.

"푸우 우루루루루 쏴아……."

동풍이 몹시 이는 때면 불기둥은 서편으로, 서풍이 몹시 부는 때면 불기둥은 동으로 쓸려서 모진 소리를 치고 검은 연기를 뿜다가도 동서풍이 어울치면 축융〔火神〕의 붉은 혓발은 하늘하늘 염염이 타올라서 차디찬 별―---억만년 변함이 없을 듯하던 별까지 녹아 내릴 것같이 검은 연기는 하늘을 덮고 붉은빛은 깜깜하던 골짜기에 차 흘러서 어둠을 기회로 모여들었던 온갖 요귀를 몰아내는 것 같다. 불을 질러 놓고 뒷숲속에 앉아서 내려다보던 그 그림자―---딸과 아내를 잃은 문서방은,

"하하하."

시원스럽게 웃고 가슴을 만지면서 한 손으로 꽁무니에 찼던 도끼를 만져 보았다.

일 동리 사람들과 인가의 집 일꾼들은 불붙는 데 모여들었으나 모두 어쩔 줄을 모르고 떠들고 덤비면서 달려가고 달려올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울타리는 물론 울타리 속에 엉큼히 서 있던 큰 집 두 채도 반이나 타서 쓰러졌다.

이런 불 속으로부터 여러 사람이 오고 가는 밭 가운데로 튀어나가는 두 그림자가 있었다. 하나는 커다란 장정이요, 하나는 작은 여자이다. 뒷산 숲에서 이것을 본 문서방은 그 두 그림자를 향하고 내리뛰었다. 그는 천방지방 내리뛰었다. 독살이 잔뜩 올라서 불빛에 번쩍이는 그의 눈에는 이 두 그림자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으윽 끅."

문서방이 여러 사람을 헤치고 두 그림자 앞에 가 섰을 때, 앞에 섰던 장정의 그림자는 땅에 거꾸러졌다. 그때는 벌써 문서방의 손에 쥐었던 도끼가 장정 인가의 머리에 박혔다. 도끼를 놓은 문서방의 품에는 어린 여자의 그림자가 안겼다. 용례가…….

그 바람에 모여 섰던 사람들은 혹은 허둥지둥 뛰어 버리고 혹은 뒤로 자빠져서 부르르 떨었다. 용례도 거꾸러지는 것을 안았다.

"용례야! 놀라지 마라! 나다! 아버지다! 용례야!"

문서방은 딸을 품에 안으니 이때까지 악만 찼던 가슴이 스르르 풀리면서 독살이 올랐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이렇게 슬픈 중에도 그의 마음은 기쁘고 시원하였다. 하늘과 땅을 주어도 그 기쁨을 바꿀 것 같지 않았다.

그 기쁨! 그 기쁨은 딸을 안은 기쁨만이 아니었다. 작다고 믿었던 자기의 힘이 철통 같은 성벽을 무너뜨리고 자기의 요구를 채울 때 사람은 무한한 기쁨과 충동을 받는다.

불길은―---그 붉은 불길은 의연히 모든 것을 태워 버릴 것처럼 하늘하늘 올랐다. 

 

 

지은이 : 최서해

갈래 : 단편소설

배경 : 시간 - 1920년대

공간 - 서간도 바이허[白河]의 조선인 이주민 마을

성격 : 사실주의적, 현실고발적

경향 : 신경향파 문학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문체 : 속도감과 강렬한 인상을 주는 직설적인 간결체

주제 : 서간도 조선 이주민의 바참한 생활과 악독한 지주에 대한 소작인의 저항, 간도 유이민들의 궁핍한 생활상, 지주의 횡포에 대한 저항과 복수

인물 :

문 서방 - 간도로 이주하여 중국인의 땅을 경작하는 소작인으로 순박한 농사꾼이었으나 딸을 빼앗기고 아내가 죽은 후 지주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입체적 인물임.

문 서방의 처 - 딸을 빼앗긴 후 홧증으로 병들어 '용례'를 부르며 죽는다.

용례 - 문 서방의 외동딸. 빚값으로 '인가(哥)'에게 잡혀감.

인가[殷哥] - 중국인 지주(地主)로 탐욕스럽고 악독함의 전형임.

구성 :

발단 - 빈농(貧農)인 문 서방이 서간도로 이주하여 인가[殷哥]의 소작인이 됨. 

전개·위기 - 소작료 체납으로 인가[殷哥]에게 외동딸 '용례'를 빼앗김. 이로 인하여 아내가 죽음. 

절정·결말 - 문 서방은 인가[殷哥]의 집에 방화하고 인가를 죽임. 

줄거리 :

서간도 한 귀퉁이에 있는 가난한 촌락 바이허[白河]. 문 서방은 사위(?) 인가[殷哥]가 사는 달리소로 향한다. 그는 죽어가는 아내가 인가에게 빼앗긴 딸 '용례'를 데려다 달라고 애원하던 것을 생각한다. 

문 서방은 본래 경기도 어느 곳의 소작인이었다. 10여 년 소작인 생활에 지친 그는 남부여대(男負女戴)로 딸 하나를 앞세우고 서간도 바이허[白河]로 이주했다. 그러나 여기서의 생활도 나아진 것이 없었다. 중국인 지주인 인가[殷哥]의 소작인이 된 것이다. 겹친 흉년으로 인가[殷哥]에게 소작료를 납부하지 못하자, 인가는 그것을 빌미로 딸 '용례'를 욕심내었다. 결국, 빚을 못 갚아 빚 대신 외동딸을 빼앗긴 문 서방 내외는 절망에 빠졌고, 화증으로 몸져누운 문 서방의 아내는 '용례'를 한번이라도 만나 보기를 원했다. 

한겨울, 죽어가는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문 서방은 지금 인가[殷哥]를 찾아가는 길이다. 그러나 인가[殷哥]는 '용례'를 보여 주지도 않았다. 지전(紙錢) 몇 장을 주며 야박하게 내쫓는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그의 앞에서 아내는 '용례'를 부르다가 피를 토하며 죽는다. 

아내가 죽은 이튿날 밤, 세찬 바람과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인가[殷哥]의 집 근처에 문 서방이 나타난다. 그는 달려드는 개들을 먹이로 달래 놓고 인가[殷哥]의 집 뒤에 쌓아 놓은 보릿짚 더미에 불을 지른다. 치솟아 오르는 '홍염(紅焰)'을 바라보며 문 서방은 쾌감에 젖는다. 이어 불붙은 집에서 뛰쳐나온 인가[殷哥]를 도끼로 찍어 죽이고, 문 서방은 딸을 품에 안는다. 

 

 

내용 연구

홍염[저항과 보복(착취 계급에 대한 분노와 항거), 정화(세속적인 현실을 불태워 깨끗하게 하는 기능), 갈등의 해소(문제를 해결해 주는 매개체로서 카타르시스의 기능함)의 기능을 가지고 있음]

(앞부분의 줄거리 : 문서방은 경기도에서 소작인으로 살다가 간도로 이주해 중국인 지주 인가의 소작인이 된다. 지주인 인가는 지나치게 소작료를 요구하고 문 서방이 이를 내지 못하게 되자 그의 딸 용례를 빼앗아 간다. 딸을 그리워하다 아내는 병이 들고 문 서방은 아내를 위해 인가를 찾아 간다.)

3.

(전략)

"저게(아내) 마지막 죽어 가는데 철천지한[하늘에 사무치는 크나큰 원한]이나 풀어야 하지 않겠소, 응!  한 번만 보여 주!  어서 그러우! 내가 용례를 만나면 꼬일까 봐…… 그럴 리 있소!  이렇게 된 밧자에…… 한 번만…… 낯이나…… 저 죽어가는 제 에미 낯이나 한 번 보게 해주!  네? 제발……."

"안 되우! 보내지 모하겠소. 우리 지비 문 바께 로포(아내 - 용례를 가리키는 말) 나갔소. 재미 어부소."

배짱을 부리는 인가의 모양은 마치 전당포 주인과 같은 점이 있었다[배짱을 부리며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는 수전노와 같은 모습에 호색한이자 수전노와 같은 인물이라고 추측할 수 있음]. 문서방의 가슴은 죄었다. 아쉽고 안타깝고 슬픔이 어우러지더니 분한 생각이 났다. 부뚜막에 놓은 낫을 들어서 인가의 배를 왁 긁어놓고 싶었으나 아직도 행여나 하는 바람과 삶에 대한 애착심이 그 분을 제어하였다.

"그러지 말고 제발 보여 주오! 그러면 내 아내를 데리고 올까? 아니 바람을 쏘여서는…… 엑 죽어두 원이나 끄고 죽게 내가 데리고 올게 낯만 슬쩍 보여 주오…… 네…… 흑…… 끅…… 제발……."

이십 년 가까이 손끝에서 자기 힘으로 기른 자기 딸을 억지로 빼앗긴 것도 원통하거든 그나마 자유로 볼 수 없이 되는 것을 생각하니…… 더구나 그 우악한 인가에게 가슴과 배를 사정없이 눌리는 연연한 딸의 버둥거리는 그림자가 눈앞에 언뜻하여 가슴이 꽉 막히고 사지가 부르르 떨리면서 주먹이 쥐어졌다[보여주기인 showing 방식으로 문 서방의 내면 심리 제시]. 그러나 뒤따라 병석의 아내가 떠오를 때 그의 주먹은 풀리고 머리는 숙었다. [마음에 가득한 분노를 삭이고 부탁을 할 수밖에 없는 문 서방의 안타까운 상황이 보임]

"낼리 또 왔소 이얘기하오! 오늘리디 울리디 일이디 푸푸디! 많이 있소!"

인가는 문서방을 어서 가라는 듯이 자기 먼저 캉에서 내려섰다.

"제발 이러지 말구! 으흑 흑…… 제제…… 제발 단 한 번만이라두 낯만…… 으흑흑 응!"

문서방은 인가를 따라서 밖으로 나오면서 울었다. 등뒤에서는 웃음 소리가 들렸다[문 서방에 대한 중국인들의 비웃음]. 그러나 그 웃음 소리는 이때의 문서방에게는 아무러한 자극도 주지 못하였다.

"자, 이게 적지만!"

마당에 한참이나 서서 무엇을 생각하던 인가는 백 조(百吊)짜리 관체〔官帖 : 돈〕석 장을 문서방의 손에 쥐였다. 문서방은 받지 않으려고 했다. 더러운 놈의 더러운 돈을 받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나 지금 부쳐 먹는 밭도 인가의 밭이다. 잠깐 사이 분과 설움에 어리어서 튀기던 돈은―---돈 힘은 굶고 헐벗은 문서방을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인가에 대한 적개심과 돈을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이 빚는 모순]. 그는 못 이기는 것처럼 삼백 조를 받아 넣고 힘없이 나오다가,

'저 속에는 용례가 있으려니!'

생각하면서 바른편에 놓인 조그마한 집을 바라볼 때 자기도 모르게 발길이 도로 돌아섰다. 마치 거기서는 용례가 울면서 자기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인가는 문서방을 문 밖에 내보내고 문을 닫아 잠갔다.

문 밖에 나서니 천지가 아득하였다[망연자실한 주인공의 심리]. 발길이 돌아가지 않았다. 사생을 다투는 아내를 생각하면 아니 가진 못할 일이고 이 울타리 속에는 용례가 있거니 생각하면 눈길이 다시금 울타리로 갔다.

그가 바위 모롱이 빙판에 올 때까지 개들은 쫓아나와 짖었다[여기서 개의 역할은 공포감을 조성하고, 사건의 긴장감을 강화함]. 그는 제 분김에 한 마리 때려잡는다고 얼른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가, 작년 가을에 어떤 조선 사람이 어떤 중국 사람의 개를 때려죽이고 그 사람이 주인에게 총 맞아 죽은 일이 생각나서 들었던 돌멩이를 헛뿌렸다.[아내의 병과 딸에 대한 염려, 인가에 대한 분노와 그리고 그런 분노조차 개에게 마음대로 풀 수 없는 문 서방의 복잡한 심리가 담겨 있음]

돋아 떨어지는 겨울해는 어느새 강 건너 봉우리 엉성한 가지 끝에 걸렸다. 바람은 좀 자고 날씨는 맑으나 의연히 추워서 수염에는 우물가처럼 얼음 보쿠지가 졌다. 

(중략)

문서방의 아내가 죽던 그 이튿날 밤이었다. 그날 밤에도 바람이 몹시 불었다. 그 바람은 강바람이어서 서북에 둘린 산 때문에 좀한[약한] 바람[인가에 대한 징벌]은 움쩍도 못 하던[감히 들어오지도 못하던] 달리소(문서방의 사위 인가의 땅)까지 범하였다[배경을 통하여 사건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으며, 바람은 결국 파국적 결말의 분위기를 암시]. 서북으로 산을 등지고 앞으로 강 건너 높은 절벽을 대하여 강골밖[강쪽으로 난 골짜기]에 터진 데 없는 달리소는 강바람이 들어차면 빠질 데는 없고 바람과 바람이 부딪쳐서 흔히 회오리바람이 일게 된다. 이날 밤에도 그 모양으로, 달리소에는 회오리바람이 일어서 낟가리[낟알이 붙은 볏단이나 보릿단 따위를 쌓아 올린 더미]가 날리고 지붕이 날리고 산천이 울려서 혼돈이 대단할 때 빙세계나 트는 듯한[온통 얼음으로 뒤덮힌 세계가 되어 버리는 듯, 엄청나게 추운] 판이라[자연을 배경으로 하여 문서방의 분노를 암시하면서 방화와 살인이라는 극단적 항거로써 파국적인 결말이 나타나게 될 것임을 암시] 사람은커녕 개와 도야지도 굴 속에서 꿈쩍 못 하였다.[달리소 바람은 아내를 잃은 문 서방의 분노를 암시] - 문서방의 아내가 죽은 이튿날 밤의 달리소 - 파국적인 결말 예고

밤이 썩 깊어서였다.

차디찬 별들이 총총한 하늘 아래, 우렁찬 바람에 휘날리는 눈발을 무릅쓰고 달리소 앞 강 빙판을 건너서 달리소 언덕으로 올라가는 그림자가 있다. 모진 바람이 스치는 때마다 혹은 엎드리고 혹은 우뚝 서기도 하면서 바삐바삐 가던 그 그림자는 게딱지 같은 지팡살이집[소작인의 집] 근처에서부터 무엇을 꺼리는지 좌우를 슬몃슬몃 보면서 자취를 숨기고 걸음을 느리게 하여 저편으로 돌아가 인가의 집 높은 울타리 뒤로 돌아갔다. - 인가의 집에 접근하는 그림자

"으르릉 웡웡."

하자 어느 구석에선지 개가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뒤이어 나와서 짖으면서 그 그림자를 쫓아간다. 그 개소리는 처량한 바람소리 속에 싸여 흘러서 건너편 산을 즈르릉즈르릉 울렸다.

"꽝! 꽝꽝!"

인가의 집에서는 개짖음에 홍우재(마적 : 말을 타고 다니며 노략질하던 도둑의 무리)나 몰아오는가 믿었던지 헛총질을 너댓 방이나 하였다. 그 소리도 산천을 울렸다. 그 바람에 슬근슬근[남이 모르게 가만히] 가던 그림자는 휙 돌아서서 손에 들었던 보자기를 개 앞에 던졌다. 보자기는 터지면서 둥글둥글한 것이 우르르 쏟아졌다[방화를 위한 치밀한 준비를 했음을 알 수 있음]. 짖으면서 달려오던 개들은 짖음을 그치고 거기 모여들어서 서로 물고 뜯고 빼앗아 먹는다. 그러는 사이에 그림자는 인가의 울타리 뒤에 산같이 쌓아 놓은 보릿짚더미에 가서 성냥을 쭉 긋더니 뒷산으로 올리닫는다. - 불을 지르고 달아남

처음에는 바람 속에서 판득판득하던[불빛이 약간 일어나는 상태 / 물체가 순간적으로 작은 빛을 자꾸 내비치거나 반사하는 모양] 불이 삽시간에 그 산 같은 보릿짚더미에 붙었다.

"훠쓰(불이야)!"

하고 고함과 같이 사람의 소리는 요란하였다. 모진 바람에 하늘하늘 일어서는 불길[분노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상징]은 어느새 보릿짚더미를 살라 버리고 울타리를 살라 버리고 울타리 안에 있는 집에 옮았다.

"푸우 우루루루루 쏴아……."  - 타오르는 불길

동풍이 몹시 이는 때면 불기둥은 서편으로, 서풍이 몹시 부는 때면 불기둥은 동으로 쓸려서 모진 소리를 치고 검은 연기를 뿜다가도 동서풍이 어울치면[어울려서 불어치면] 축융[火神]의 붉은 혓발은 하늘하늘 염염이[붉게 타오름] 타올라서 차디찬 별―---억만년 변함이 없을 듯하던 별[부와 권세를 누리던 인가의 권세가 변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음을 뜻함]까지 녹아 내릴 것같이 검은 연기는 하늘을 덮고 붉은빛은 깜깜하던 골짜기에 차 흘러서 어둠을 기회로 모여들었던 온갖 요귀[지주 일가와 같은 사악한 무리]를 몰아내는 것 같다[그 동안 억눌려 왔던 문 서방의 분노가 표출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불을 질러 놓고 뒷숲속에 앉아서 내려다보던 그 그림자―---딸과 아내를 잃은 문서방은,

"하하하."

시원스럽게 웃고 가슴을 만지면서 한 손으로 꽁무니에 찼던 도끼를 만져 보았다.

일 동리 사람들과 인가의 집 일꾼들은 불붙는 데 모여들었으나 모두 어쩔 줄을 모르고 떠들고 덤비면서 달려가고 달려올 뿐이었다.[아비규환, 속수무책, 전전긍긍, 동분서주]

그러는 사이에 울타리는 물론 울타리 속에 엉큼히 서 있던 큰 집 두 채도 반이나 타서 쓰러졌다.

이런 불 속으로부터 여러 사람이 오고 가는 밭 가운데로 튀어나가는 두 그림자가 있었다. 하나는 커다란 장정[인가]이요, 하나는 작은 여자[용례]이다. 뒷산 숲에서 이것을 본 문서방은 그 두 그림자를 향하고 내리뛰었다[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저돌적인 모습을 보임]. 그는 천방지방[천방지축 : 너무 급하여 허둥지둥 함부로 날뛰는 모양.] 내리뛰었다. 독살이 잔뜩 올라서 불빛에 번쩍이는 그의 눈[문 서방의 복수심이 담긴 눈]에는 이 두 그림자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으윽 끅."

문서방이 여러 사람을 헤치고 두 그림자 앞에 가 섰을 때, 앞에 섰던 장정의 그림자는 땅에 거꾸러졌다. 그때는 벌써 문서방의 손에 쥐었던 도끼가 장정 인가의 머리에 박혔다. 도끼를 놓은 문서방의 품에는 어린 여자의 그림자가 안겼다. 용례가…….

그 바람에 모여 섰던 사람들은 혹은 허둥지둥 뛰어 버리고 혹은 뒤로 자빠져서 부르르 떨었다. 용례도 거꾸러지는 것을 안았다.

"용례야! 놀라지 마라! 나다! 아버지다! 용례야!"

문서방은 딸을 품에 안으니 이때까지 악만 찼던 가슴이 스르르 풀리면서 독살이 올랐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이렇게 슬픈 중에도 그의 마음은 기쁘고 시원하였다[카타르시스( catharsis) 문학에서는 비극을 봄으로써 마음에 쌓여 있던 우울함, 불안감, 긴장감 따위가 해소되고 마음이 정화되는 일.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詩學)'에서 비극이 관객에 미치는 중요 작용의 하나로 든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정신 분석에서,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를 언어나 행동을 통하여 외부에 표출함으로써 정신의 안정을 찾는 일. 심리 요법에 많이 이용한다.]. 하늘과 땅을 주어도 그 기쁨을 바꿀 것 같지 않았다.

그 기쁨! 그 기쁨은 딸을 안은 기쁨만이 아니었다. 작다고 믿었던 자기의 힘이 철통 같은 성벽[지주의 권세와 부귀 및 억압]을 무너뜨리고 자기의 요구를 채울 때 사람은 무한한 기쁨과 충동을 받는다. [주제 의식의 직접적 노출]

불길[현실의 모순에 대한 항거와 힘 상징으로 세상의 부조리한 것을 모두 태워 버리기 위한 존재라는 점에서 '소멸의 이미지'로 파악하는 것이 옳음 / 경향 소설의 일반적 특징 - 방화, 살인, 약탈]은―---그 붉은 불길은 의연히 모든 것을 태워 버릴 것처럼 하늘하늘 올랐다[딸을 되찾은 문 서방의 기쁨과 성취감 ]. - 딸을 되찾음

위 글에 드러난 서술자의 태도는

 

1. 간결하면서도 속도감이 느껴지는 문체를 구사

2. 주인공의 행동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밀하게 그려냄

3. 작품 밖의 서술자가 인물의 행위와 심리를 모두 보여주고 있다.

4. 시각과 청각의 이미지를 동원하여 긴박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해와 감상

 최서해(崔曙海)가 지은 단편소설. 1927년 1월 ≪조선문단≫에 발표되었다. 최서해의 작품 경향은 그의 실체험을 토대로 하여, 그러한 인생의 가난, 거기서 오는 쓰라림을 꿰뚫고 반항하는 데 일관하였다. 이 작품도 그러한 작품 중의 하나이다. 〈홍염〉은 조국인 조선에서 소작을 하던 문 서방이 서간도로 이주해서도 뾰족한 수 없이 중국인의 소작인이 되어 빚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하였다. 
 문 서방은 빚 때문에 중국인 지주에게 딸을 빼앗긴다. 딸을 빼앗긴 설움으로 병이 난 아내는 딸을 한 번 보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중국인 인가는 찾아간 문 서방의 청을 매번 거절한다. 문 서방은 그 중국인 인가에게 네 번이나 찾아갔으나 거절 끝에 쫓겨나게 된다. 아내는 원한이 맺힌 채 미쳐 죽고, 아내가 죽은 이튿날 밤, 문 서방은 인가와 딸이 사는 마을로 가서 인가 집에 불을 지른다. 문 서방은 그 불길을 바라보며 마음껏 시원하게 웃어젖힌다. 
그리고 나서 불길 속에 허덕이는 인가와 딸을 보자, 도끼를 높이 쳐든 문 서방은 달려가서 그 도끼로 인가를 한 대에 쳐서 죽이고는 딸을 품에 안는다. ‘작다고 믿었던 자기의 힘이 철통같은 성벽을 무너뜨리고, 자기의 요구를 채울 때 사람은 무한한 기쁨과 충동을 받는다.’고 결론을 맺는다. 
 특히 최서해의 문학에 있어서 폭력은 반항의 변증법이며 굶주린 자의 적의(敵意)로 본능적인 행동이다. 그리고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는 주인공들은 어떤 시각의 환상 또는 착란 상태를 으레 겪게 되는데, 이러한 환상은 가해관계(加害關係)에 있다고 믿는 대상과 피해자의 음영들이다. 여기에서 그의 문학이 단순한 빈궁문학의 영역을 넘어서 프로문학과도 맥이 닿는 이념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참고문헌≫ 作家論-崔曙海論(金宇鍾, 同和文化社, 1973), 한국현대소설사(이재선, 홍성사, 1978), 한국현대작가의 문제작 평설(윤병로, 국학자료원, 1996).(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해와 감상1

 1927년 <조선 문단>에 발표된 단편 소설. 1920년대 겨울, 백두산 서북편 서간도에 있는 바이허[白河]라는 곳을 중심 배경으로, 중국인 지주 '인가[殷哥]'에게 착취당하는 조선인 소작농의 울분과 저항을 그린 신경향파 소설이다. 빈곤과 민족적 대립의 문제가 중심 갈등 요인이 되고 있으며, 특히 결말의 방화와 살인은 신경향파 소설의 전형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다. 

1920년대 한국 문학의 중요한 일부를 차지하는 것이 <신경향파> 문학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시작된 계급주의 사상이 일본을 통해 우리 나라에 유입되면서 이를 바탕으로 한 문학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이것이 신경향파 문학이다. 

<신경향파> 문학의 특징은 첫째, 소재를 궁핍한 데서 찾은 것. 둘째, 지주 대(對) 소작인 또는 공장주 대(對) 노동자의 대립을 중심 플롯(plot)으로 한 것. 셋째, 결말이 살인·방화로 끝나는 것 등이다. 

최서해의 문학 세계는 그의 간도(間島) 체험에서 유래한다. 간도에 유랑하면서 그는 극도의 가난 속에서 독학(獨學)으로 문학 수업을 하는데, 귀국 후 자신의 체험을 <고국>, <탈출기>, 기아와 살육> 등의 소설로 발표하면서 새로운 <경향 작가>로 각광을 받게 된다. 그는 극심한 빈곤과 기아가 인간의 감정 및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 소설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눈물과 울음, 증오와 폭력, 방화와 살인 등은 모두 빈곤과 기아에서 비롯되는 반응들이다. 

<홍염>은 이러한 그의 문학적 특징이 집약된 작품으로, '빈곤→빚의 대가로 딸을 빼앗김→그로 인한 아내의 죽음→반항적 폭력으로서의 방화와 살인의 선택'이라는 도식(圖式)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대부분의 <신경향파> 문학이 그러하듯이 소설 <홍염>에서도 현실 대응 방식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방화와 살인이라고 하는 대응 방식은 극적이기는 하지만 현실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는 바람직한 대안(代案)은 아니며, 자포 자기 상태에서의 충동적 행위는 문제의 바람직한 해결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주인공의 비극적인 삶과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개인적 보복을 제시한 것은 본질적인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극복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는 한계를 지닐 수 있지만, 작품의 외적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가 갈 수 있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문제점의 지적은 배부른 자들의 한가한 소리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혹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의 입장에서는 또는 그것을 고발하려고 하는 작가에게는 선택의 방법이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최서해(崔曙海)

 

1901∼1932. 소설가. 본명은 학송(鶴松), 아호는 서해(曙海)·설봉(雪峰) 또는 풍년(豊年). 함경북도 성진 출생. 소작농의 외아들로 출생한 그는 1910년 아버지가 간도 지방으로 떠나자 어머니의 손에서 유년시절과 소년시절을 보내었다. 유년시절 한문을 배우고 성진보통학교에 3년 정도 재학한 것 외에 이렇다 할 학교교육은 받지 못하였다. 
소년시절을 빈궁 속에 지내면서 ≪청춘 靑春≫·≪학지광 學之光≫ 등을 사다가 읽으면서 문학에 눈을 떴고, 그때부터 이광수(李光洙)의 글을 읽으면서 사숙(私淑)하기 시작하였다. 
1918년 고향을 떠나 간도로 건너가 방랑과 노동을 하면서 문학 공부를 계속하였다. 1923년 간도를 나와 국경지방인 회령에서 잡역부 일을 하기도 하였다. 
1924년 작가로 출세할 결심을 하고 노모와 처자를 남겨둔 채 홀로 상경하여 이광수를 찾았다. 그의 주선으로 양주 봉선사(奉先寺)에서 승려 생활을 하게 되었으나, 두어 달 있다가 다시 상경하여 조선문단사(朝鮮文壇社)에 입사하였다. 
1927년 현대평론사(現代評論社)의 기자로 일하기도 하였고, 기생들의 잡지인 ≪장한 長恨≫을 편집하기도 하였다. 
1929년 중외일보(中外日報) 기자, 1931년 매일신보(每日申報) 학예부장으로 일하다 사망하였다. 
1924년 1월 ≪동아일보≫ 월요란(月曜欄)에 단편소설 〈토혈 吐血〉을 발표한 일이 있으나 같은 해 10월 ≪조선문단≫에 〈고국 故國〉이 추천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토혈〉이 처녀작이라면, 〈고국〉은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대략 장편 1편, 단편 35편 내외를 발표하였다. 
그의 소설들은 빈궁을 소재로 하여 가난 속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는데, 대체로 세 가지 경향이 있다. 
첫째, 조국에서 살지 못하고 간도로 유랑한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로 〈고국〉(조선문단, 1924)·〈탈출기 脫出記〉(조선문단, 1925)·〈기아(饑餓)와 살육(殺戮)〉(조선문단, 1925)·〈돌아가는 날〉(1926)·〈홍염 紅焰〉(조선문단, 1927) 등이 이에 속한다. 
둘째, 함경도 지방의 시골을 배경으로 무식하고 가난한 노동자나 잡역부들의 생활을 그린 소설로 〈박돌(朴乭)의 죽음〉(조선문단, 1925)·〈큰물 진 뒤〉(개벽, 1925)·〈그믐밤〉(신민, 1926)·〈무서운 인상(印象)〉(동광, 1926)·〈낙백불우 落魄不遇〉(문예시대, 1927)·〈인정 人情〉(신생, 1929) 등이 여기에 속한다. 
셋째, 잡지사 주변을 맴도는 문인들의 빈궁상을 그린 소설로 〈팔개월 八個月〉(동광, 1926)·〈전기 轉機〉(신생, 1929)·〈전아사 錢瞑辭〉(동광, 1927) 등이 이 계열에 속한다. 
이러한 빈궁상의 제시는 사회의식의 소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의 개인적인 체험에서 나온 것으로 ‘체험의 작품화’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빈궁 속에 있는 사람들의 호소와 절규가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 1920년대 경향문학의 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現代韓國小說의 構造(金永和, 泰光文化社, 1977), 韓國傳記作家硏究 下(李御寧, 同和藝術選書, 1980).(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경향파문학(新傾向派文學)

1920년대 초 백조파의 감상적 낭만주의, 창조파의 자연주의 등 이전의 문학 경향을 부정 혹은 발전시킨 사회주의 경향의 새로운 문학. 
‘경향(tendency, tendenz)’이란 말은 ‘무엇인가를 가지려 하다’라는 뜻을 지닌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경향을 ‘습관적으로 또는 감각적으로 일정한 대상에 대해 병적 애정(pathologische Liebe)의 증상을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경향의 형태는 특히 윤리적·정치적·사상적·미적인 측면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속성을 지닌다. 경향은 광의로는 일정한 ‘신념·주의·이상·사조 등을 지향하는 것’이 되며, 협의로는 ‘사회주의사상 쪽으로 기울어진 상태’를 뜻한다. 
1920년대 한국 문단에서 유행어가 되었던 ‘신경향파문학’이란 용어는 광의로 쓰인 것이며, 이에 비해 ‘경향문학’이라는 용어는 협의로 쓰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20년대 전반기의 한국 문단에 ‘경향’이란 용어를 처음 소개하였던 박영희(朴英熙)는 ‘경향문학’보다 ‘신경향파문학’이란 용어를 자주 썼다. 이 점에 있어서는 백철(白鐵)도 마찬가지다. 박영희는 신경향파문학이란 말을 사회주의 색채를 띤 문학이라는 뜻과 신흥 문학, 신사조(新思潮)의 문학이라는 뜻을 섞어서 사용하였다. 
박영희가 ‘경향’의 의미에 대해 구체적인 정의를 내린 것은 이 말이 유행된 지 몇 년 뒤에 발표한 글 〈신경향파문학과 그 문단적 지위〉(개벽 64호, 1925.12. )에서였다. 
그 당시 문인들 사이에서는 별다른 구별 없이 혼용되었다. 192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경향문학 또는 신경향파문학(Tendenzdichtung, Tendenzliteratur)이라는 용어는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였다.
그 대신 프로문학·카프문학·무산자문학·계급문학·빈궁문학·마르크시즘문학·사회주의문학·노동문학·이데올로기문학 등의 용어가 새로 등장하여 무분별하게 혼용되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1922년 이후 ‘프로문예’라는 말이 사용되고, ‘경향문학’이나 ‘신경향파문학’이라는 말은 실제로 거의 쓰이지 않았다. 
한국 문학사를 기술하는 과정에 있어서 경향문학은 대략 두 가지 관점에서 처리되어 왔다. 그 첫번째 관점은 박영희에 의해서 시작되고 백철에 의하여 굳어진 것으로, 경향문학을 이른바 프로문학의 예비 단계로 처리하는 태도이다. 사실상 이 관점은 지금까지도 거의 수정되지 않은 채 국문학자들 사이에서 하나의 공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영희는 당시 여러 편의 평론을 통하여 ‘자연생장적(自然生長的)’인 신경향파문학은 ‘목적의식적’인 무산자문학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신경향파문학은 빈궁과 고뇌의 생활상을 자연주의적 수법으로 그려내는 것이며, 무산자문학은 빈궁과 고뇌의 생활 상태에 빠진 사람들에게 투쟁 의식과 반항 의식을 심어주려는 목적을 분명하게 지녔던 것이다. 
또한, 그는 〈신경향파문학과 무산자의 문학〉(朝鮮之光 64호) 같은 글을 통해서 신경향파문학의 특징을 ‘허무적·절망적·개인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무산자문학의 특징을 ‘성장적·집단적·사회적’인 것으로 설명하였다. 
그리고 신경향파문학에서 무산자문학으로 발전적 전환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백철은 신경향파문학이 프로문학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를 카프 결성이라는 사실에서 찾았다. 
카프에 가담하여 이른바 프로문학의 진영에서 활동하던 문인들은 프로문학이 결국 신경향파문학의 지향점임을 또 그렇게 되어야 함을 한결같이 주장하였던 것이다. 
또 하나의 관점은 경향문학을 아예 프로문학의 대명사나 동의어로 보자는 태도이다. 경향문학과 프로문학 사이의 구분은 이론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나 실제 작품을 통하여 볼 때 그러한 구분은 쉽지 않다. 
경향문학의 활동은 특히 평론 분야와 소설 부문에서 많이 전개되었으며, 실제 작품보다는 이론이 훨씬 승(勝)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경향소설의 주요 작가와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최서해(崔曙海)의 〈고국 故國〉(朝鮮文壇, 1924.10.)·〈탈출기 脫出記〉(朝鮮文壇, 1925.3.)·〈기아(飢餓)와 살육(殺戮)〉(朝鮮文壇, 1925.6.)·〈홍염 紅焰〉(朝鮮文壇, 1927.1.), 박영희의 〈정순(貞順)의 설움〉(開闢, 1925.2.)·〈산양개〉(開闢, 1925.4.)·〈지옥순례 地獄巡禮〉(朝鮮之光, 1926.11.) 등이 있다. 
또 김기진(金基鎭)의 〈붉은 쥐〉(開闢, 1924.11.)·〈젊은 이상주의자(理想主義者)의 사(死)〉(開闢, 1925.7.), 이기영(李箕永)의 〈가난한 사람들〉·〈쥐이야기〉·〈실진 失眞〉·〈원보 元甫〉, 조명희(趙明熙)의 〈저기압 低氣壓〉(朝鮮之光, 1927.3.)·〈한여름 밤〉(朝鮮之光, 1927.5.)·〈낙동강 洛東江〉(朝鮮之光, 1927.1.), 주요섭(朱耀燮)의 〈인력거꾼 人力車軍〉(開闢, 1925. 4.)·〈살인 殺人〉(開闢, 1925.6.)·〈개밥〉(東光, 1927.1.) 등이 있다. 
또 송영(宋影)의 〈석공조합대표 石工組合代表〉(文藝時代, 1927.1.)·〈선동자 煽動者〉(開闢, 1926.3.) 등이 있다. 경향시로는 이상화(李相和)의 몇 작품과 〈무산자(無産者)의 절규〉·〈생장의 균등〉 등을 중심으로 한 김석송(金石松)의 많은 작품을 들 수 있다.

≪참고문헌≫ 朝鮮新文學思潮史-현대편-(白鐵, 白楊堂, 1949), 韓國近代文藝批評史硏究(金允植, 한얼문고, 1973), 韓國現代小說史(金宇鍾, 宣明文化社, 1973), 韓國共産主義運動史(金俊燁·金昌順, 아세아문제연구소, 1967∼1973).(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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