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에 나온 아래 그래프. 분석한 4개 국가 모두 청년층 여성이 남성보다 더 진보적이고 성별 정치 성향의 격차가 벌어지는데, 특히 한국의 사례가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났다.
기사의 임팩트가 크다보니 이 분석에 제대로 된 분석인지 많은 분들이 검증에 나섰다. 하지만 정확한 자료 replication에 성공한 분들은 없는 듯 하다. 그래프의 주석을 보면 한국은 KGSS조사의 지지정당 항목을 분석한 것이고, 따라서 어떤 정당을 진보와 보수로 묶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전체 인구의 추세에 맞춰 조정 (adjusted for time trend in the overall population)"했다고 한다. 뭔가 추세 분석을 해서 그래프를 스무딩했다는건데 정확히 어떻게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저도 이것저것 해 봤는데 동일한 그래프를 얻는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FT 기사의 핵심 메시지, 그 중에서 한국 관련 분석은 타당해 보인다. 아래 그래프는 KGSS를 이용해서 지지 정당의 성별 격차 추세를 분석한 것이다. (A)는 18-29세의 청년층으로 한정한 것이고, (B)는 전체 응답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0보다 큰 값은 여성이 더 진보계열 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고, 0보다 작은 값은 남성이 더 진보계열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다. 0에 가까우면 성별 격차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아래 그래프는 전반적으로 진보나 보수 정당 중 어느 쪽을 지지하냐가 아니라, 이 지지 경향의 성별 격차를 봤다는거다.
보다시피 청년층은 시간이 갈수록 여성과 남성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여성이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남성보다 크다. 2015년 이후 급작스럽게 변화한게 아니고, 21세기 전반에 걸친 경향적 변화다. 이에 반해 전체 국민으로보면 성별 분화가 보이지 않는다. 시기별로 진보 정당이 더 지지를 받기도, 보수 정당이 더 지지를 받기도 하지만, 성별로 다른 추세적 경향이 나타나지 않는다.
여러 분석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것으로 보아, 청년층 세대 정치 태도의 성별 분화는 확실한 경향이다.
세대 얘기만 나오면 소환되는 약방의 감초 만하임의 세대 분석 중에 "세대 내 분화"라는 개념이 있다. 세대 얘기하면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개념이지만, 청년 세대의 특징은 다른 세대와의 차이보다는 청년 세대 내부 분화가 더 특이점이다.
Ps. 위 그래프는 (1) KGSS 각 연도별 지지 정당을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으로 구분한 후 (변수명: PRTYID03~PRTYID21, PRTYPR04~PRTYPR21) (2) 성별 진보/보수 지지 비율을 단순 계산한 후, (3) 진보 지지율에서 보수 지지율을 빼서 성별로 "진보 지지율의 상대적 우위"를 계산한 후, (4) "진보 지지율의 상대적 우위" 의 성별 격차를 본 것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연도에 따라 전체적으로 진보계열 정당의 지지율이 높아지거나, 보수계열 정당의 지지율이 더 올라가는 효과가 통제된다.
2030 남성은 보수, 여성은 진보 뚜렷
한국 정치의 주요 변수 된 성별 정치적 분화
윤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서 2030 여성은 전체 참가자의 27.1%를 차지했으나 2030 남성은 9.9%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가 서울시·KT의 생활인구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반면에 1월 19일 터진 서부지법 난동사태에서 경찰은 90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는데 이 중 2030세대가 46명(51.1%)이나 됐다. 경찰은 성별을 밝히진 않았으나 정황상 2030 체포자의 대부분이 남성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2030세대는 성별 성향 차이가 뚜렷하기 때문에 적어도 정치 영역에선 2030세대를 성별로 구분하지 않고 전체를 통칭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다. 가령 영남과 호남의 정치 성향이 확연히 다른데 둘을 묶어 남부권이라고 통칭하는 게 일기예보면 몰라도 선거에선 유효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40대 이상에선 성별에 따른 성향 차이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2030세대의 성별 정치성향 분화는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이다. 기존엔 정치 여론을 읽기 위해 주로 지역과 세대 변수를 눈여겨봤지만, 앞으론 성별을 빼놓고 판세를 얘기할 수 없게 됐다.
18~29세 남성 여 36% 야 14%
18~29세 여성 여 14% 야 39%
젊은 세대 젠더 격차 세계적 현상
페미니즘 반발, SNS 영향 심해져
40대 이상은 남녀 성향 비슷
실제 여론조사 데이터를 살펴보자. 현재 메이저 여론조사기관 중 연령·성별 데이터를 공개하는 곳은 한국갤럽이 유일하다. 한국갤럽 정례조사 2월 2~4주 통합 분석에서 정당지지도를 보면 18~29세 남성 더불어민주당 14% 국민의힘 36%, 18~29세 여성 민주당 39% 국민의힘 14%, 30대 남성 민주당 29% 국민의힘 36%, 30대 여성 민주당 48% 국민의힘 23%, 40대 남성 민주당 50% 국민의힘 27%, 40대 여성 민주당 56% 국민의힘 23%, 50대 남성 민주당 50% 국민의힘 32%, 50대 여성 민주당 52% 국민의힘 29%, 60대 남성 민주당 35% 국민의힘 46%, 60대 여성 민주당 33% 국민의힘 54%, 70대 이상 남성 민주당 26% 국민의힘 58%, 70대 이상 여성 민주당 25% 국민의힘 62%로 나타났다.
4050세대는 남녀 공히 민주당 우세, 60대 이상은 남녀 공히 국민의힘 우세가 뚜렷하다. 성별 수치 차이도 적다. 남녀가 비슷한 정치성향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2030세대는 정반대다. 남성은 국민의힘 우세, 여성은 민주당 우세가 확연하다.
2030세대의 정치성향 분화는 2022년 대선을 계기로 수면 위에 부상했다. 당시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를 보면 18~29세 남성은 민주당 이재명 후보 36.3%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58.7%, 18~29세 여성은 이재명 58% 윤석열 33.8%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30대 남성은 이재명 42.6% 윤석열 52.8%, 30대 여성은 이재명 49.7% 윤석열 43.8%였다. 반면에 다른 세대에선 두 후보의 지지율이 남녀 간에 별로 차이가 없었다. 〈그래픽 참조〉
전통적으로 2030세대는 진보 성향이 강한 것으로 간주했는데 2022년 대선에서 2030 남성이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면서 파란을 몰고 왔다. 2030 남성의 보수화는 윤석열 후보의 0.7% 포인트 차 신승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2030 남성의 보수화를 상징하는 인물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이 전 대표를 내치자 이에 반발한 2030 남성은 윤석열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 지지율이 계속 내리막을 걷게 됐고 지난해 총선에서 여당의 참패로 이어졌다.
일각에선 이미 2017년 대선 때부터 20대 남성의 보수화 경향이 나타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선거 자체가 문재인 후보의 압승 무드여서 세대별 분석이 별 관심을 끌진 못했다. 하지만 선거 직전 여론조사를 들여다보면 다른 그룹에 비해 유독 20대 남성에서 문 후보가 상대적으로 약세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경향이 시간이 흐르면서 30대로 확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젊은 남성 ‘여성 우대’에 반감
2030세대에선 왜 남성과 여성의 정치적 분화가 발생했을까. 진주교대 김한나 교수는 “2030 남성은 같은 세대의 여성이 차별 대우를 받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여성 우대’나 ‘성차별 해소’ 정책에 대한 반감이 크다”며 “민주당 정권이 실제로 얼마만큼 페미니즘 정책을 구현했는지와는 별개로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포지셔닝한 부분이 2030 남성에게 큰 반발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민주당이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듯하다가 막상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 비위 사건이 터졌을 때 성범죄를 비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도 2030 남성에게 진보에 대한 환멸을 부추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흥미로운 건 젊은 세대에서 남녀의 정치적 분화가 세계적 현상이란 점이다. 영국 가디언지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18~29세 남성은 56%가 공화당 트럼프 후보를 지지했고 42%가 민주당 해리스 후보를 지지했다. 반면에 같은 세대의 여성은 58%가 해리스를 뽑았고 40%만 트럼프를 선택했다. 지난달 독일 총선에서도 18~24세 남성들이 가장 많은 지지(25%)를 보낸 정당은 극우인 독일대안당(AfD)이었지만, 같은 세대의 여성들이 가장 많은 지지(34%)를 보내는 정당은 극좌인 좌파당(Linke)이었다. 해외 매체들도 젊은 남성 사이에서 페미니즘적 가치에 대한 반발이 심해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또 틱톡·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의 영향도 거론된다. 어렸을 적부터 알고리즘에 의해 개인 맞춤형 콘텐트만 접하다 보니 남녀 간의 양극화가 심화한다는 것이다. 이런 요인들은 한국 2030세대에도 고스란히 해당하는 부분이다.
특히 한국은 징병제 때문에 외국보다 젠더 격차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윗세대와 달리 2030세대는 남성에게만 병역의 의무가 주어지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 젊은 세대의 젠더 격차와 저출산 문제를 연결지으며 “한국의 극단적 상황은 젊은 남녀가 갈라설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다른 나라에 경고하는 역할을 한다”고 진단했다.
정치권은 2030세대의 성별 분화에 대해 임시방편식 대응밖에는 보여준 게 없다. 사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기성 정치인들은 젠더 격차에 어떻게 접근할지 문제의식조차 희박해 보인다. 지난 대선 때 위기에 빠졌던 윤석열 후보는 갑자기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들고 나왔다. 이 공약이 2030 남성에게 큰 화제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2030 여성의 반감을 초래해 전체적으론 윤 후보에게 득이 됐는지 모호하다. 당시 이재명 후보는 젊은 여성 표심을 겨냥해 20대 여성활동가 박지현씨를 영입했다. 그러나 대선 뒤 이 대표와 박씨의 관계가 싸늘해지면서 결국 청년 정치인을 일회용으로 써먹고 토사구팽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아직 두고 봐야 하지만 만약 올해 조기 대선이 실시된다면 2030세대의 성별 분화는 선거의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그런데 남녀가 정치 성향이 크게 다르긴 하지만 특정 정당 고정 지지층은 적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갤럽조사에서 18~29세는 남녀 똑같이 무당층이 40%나 되고, 30대도 남성 26% 여성 25%가 무당층이다. 다른 연령대에 비해 무당층 비율이 2~3배나 높다. 각 정당이 하기에 따라 2030세대를 포섭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의미다. 2030세대를 끌어안기 위해 여야가 어떤 전략을 구사할지 앞으로 눈여겨볼 대목이다.
2030남성 극우로 치닫나? "젠더갈등과 취업난 속 사다리 끊겨 길 잃어"
- ‘반(反)페미니즘’과 ‘역차별’ 담론, 불만은 어디서 시작됐나
- 취업난·군 복무 부담, 사다리가 끊긴 청년들은 어디로 가나
- 조국 사태 vs 윤석열 의혹, 선택적으로 작동하는 공정 프레임
-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 ‘이대남’ 표심을 어떻게 움직였나
현직 대통령 탄핵 소추와 구속 기소가 현실이 되면서, 사회·정치 전반에 거센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20대 남성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보수 성향 강화’ 움직임이 탄핵 정국과 맞물려 한층 주목받고 있다. 과연 이 흐름이 일시적 반발인지, 실제 극우화 현상으로까지 이어지는지 단계적으로 짚어 본다.
보수화·극우화 논란의 배경
과거에는 진보 성향이 강하다고 여겨졌던 젊은 층이 최근 몇 년 새 상대적으로 보수 정당을 지지하거나, 반(反)페미니즘 기조를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2022년 대선에서 ‘이대남(20대 남성)’ 표심이 보수 진영으로 쏠렸다는 분석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를 곧바로 “극우화”라고 명명하기에는, 인종주의나 배외주의 등을 내세우는 서구 극우와는 결이 다르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젠더 갈등과 공정성 집착
이 현상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가 ‘젠더 갈등’이다. 정부·지자체가 여성 안전이나 복지를 내세우면, 일부 20대 남성은 “나는 왜 혜택에서 배제되느냐”며 ‘역차별’을 호소한다. 또 한 축으로 꼽히는 ‘공정성’ 역시 중요한 쟁점이다. 조국 사태, 인국공 정규직 전환 등으로 불거진 “청년이 바라본 불공정”은 윤석열·김건희 의혹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보지만, 실제로는 상황과 대상에 따라 평가가 엇갈려 ‘선택적 공정’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취업난과 경제적 박탈감
경제적 여건 역시 20대 남성 보수화 흐름을 부추기는 요소다. 취업문이 좁아지는 와중에 군 복무로 인한 공백까지 감안해야 하는 이들은 “앞으로 계층 상승 기회가 사실상 차단됐다”는 박탈감을 느낀다. 이때 “정치적 혼란이 길어지면 내 삶이 더 어려워진다”는 불안이 작동해, 상대적으로 ‘안정과 질서’를 외치는 보수 쪽으로 기울게 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대통령 탄핵 소추로 국정 공백이 길어지거나 정쟁만 심해지면, 불안을 해소할 대안으로 보수 성향 지지를 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반페미’ 담론 확산
디시인사이드·일간베스트·에펨코리아 등 남성 위주의 인터넷 커뮤니티와 유튜브 채널은 20대 남성들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작동한다. 여성가족부 폐지, 남성 역차별 문제 등을 거론하는 콘텐츠가 빠르게 퍼지면서, 정치권도 이를 정책·공약으로 포장해 표심을 끌어당기는 양상이 이어진다. 이는 ‘극우화’보다는 “나에게 직접 이득을 주거나, 내 목소리를 대변하는지”를 기준 삼는 젊은 남성층의 정치적 이동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가 많다.
극우인가, 유동적 보수화인가
이런 흐름을 두고 “정말로 한국 청년 남성이 극우 사상에 빠졌느냐”는 물음이 제기된다. 미국이나 유럽의 극우처럼 반(反)이민·반(反)소수자 운동이 활발한 것은 아니며, 실제로 20대 남성들 상당수가 무당층 혹은 단기적 지지 패턴을 보인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불만을 해결해줄 곳”을 찾아 유동적으로 표심을 바꾸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흥분된 반페미니즘과 공정성 집착이 합쳐져 일시적으로 보수에 쏠린 것일 뿐, 전통적인 극우 이념과는 다르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혼란 이후, 과제는?
결국 문제 해결의 열쇠는 청년 남성들이 겪는 구조적 어려움(취업난, 군 복무 부담, 주거난 등)을 실질적으로 완화하는 정책에 있다. 여성 친화 정책의 합리적 근거를 충분히 설명하고, 동시에 남성 인력 지원책을 강화해 ‘역차별’이라는 오해나 반감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정치권 역시 젠더 갈등을 단순 대립 구도로 몰아붙이기보다는, “어떻게 청년층의 불신과 좌절을 해소할 것인가”라는 중장기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20대 남성들이 내세우는 ‘공정’과 ‘안정’이라는 외침이 진정 ‘극우화’를 향한 진군인지, 아니면 기성 체제에 대한 불신이 낳은 일시적 강경 반응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탄핵 정국이 길어져 국가 운영이 표류할수록 이들의 분노와 냉소가 더 깊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선명한 갈등을 부추겨 표를 얻는 계산보다, 청년들이 실제로 달라졌다고 느낄 제도적 개선이 선행되어야 할 이유다.
20대 남성은 왜 극우
“이대남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파시즘의 첨병이자, 윤석열과 국민의힘의 홍위병, 유겐트가 되었다. 대구지하철 세월호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를 조롱하는 학우들, 여성과 장애인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교실 분위기, 일베가 단순히 유머로 치부되는 학교 내 남초 환경,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연장선에 있는 군대와 온라인 커뮤니티까지. 이런 것들이 이대남이라는 집단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대남은 자신의 권리가 무엇에 위협받고 있는지, 누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파괴하고 있는지 판단하지 못한 채, 반대를 위한 반대와 혐오를 위한 반대를 일삼고 있다. 급기야 이들은 탄핵반대집회에 참가하는 수준을 넘어 내란 가담 세력이 되어 폭동을 일으키고 법원을 습격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대남을 사유화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윤석열과 국밈의힘에 분노하기에 이 자리에 섰다.
대구에서 올라 온 20대 남성(고양이 뉴스 유튜버)이 집회 현장에서 성토했다. 남성 청년으로서 같은 세대의 극우화를 개탄하고 나선 것이다. 내란 전과 내란 후, 그리고 조기대선을 보는 태도에서 청년 남녀는 확연한 차별을 보인다. 전 연령층 구간에서 남녀가 차이를 보이는 것은 2030뿐이다. 동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남녀의 상반된 정치적 태도는 왜 다른 것일까?
1) 누가 짱돌을 들었는가?
중앙일보가 두 개의 집회에 참여한 인구데이터를 분석했다. 서울시는 KT와 협업해 매일 1시간 단위로 각 지역에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지를 연령별·성별로 추정한 생활인구 데이터를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지난해 12월14일 오후 3시 탄핵안 촉구를 위해 여의도에 모인 인파는 44만5900여 명이다.
그중 20대 여성의 비율이 15.6%로 가장 높았다. 뒤를 이은 것은 30대 여성(11.5%)이었다. 집회 참가자 4명 중 1명(27.1%)은 20·30 여성이었다는 이야기다. 응원봉을 들고 K-팝을 부르며 시위를 주도했다. 반면 20대 남성은 3.9%, 30대 남성은 6%에 그쳤다.
윤석열 구속영장이 집행됐던 1월15일 서울 한남동에는 응원봉이 아닌 태극기와 성조기를 쥔 20·30 남성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늘어나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 한남동에는 4만8300여 명이 모여들었다. 20대 남성(6.5%) 30대 남성(10.7%)로 이들의 합(17.2%)은 여의도의 탄핵안 촉구 때(9.9%)보다 비중이 2배 정도 늘었다. 1월19일 새벽 ‘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에서도 이어졌다. 시위대가 법원으로 난입하기 직전인 18일 오후 11시 같은 데이터 분석 결과에서 20대 남성과 30대 남성은 각각 6.1%, 9.4%를 기록했다
청년 남성들이 내란을 비호하는 정당을 옹호하고, 정권재창출을 원하고 집회에도 참석하고 있다. 12.3 계엄군의 국회 진입 때 보여주는 쭈볏쭈볏하는 Z세대 군인이 있는가하면 폭도가 된 이들도 있다. 윤석열이 시청하기를 권고하는 극우 유튜브를 즐겨 시청하고 있다. 지역주의, 개신교 근본주의, 고령층 반공주의와 함께 2030의 여성혐오주의가 극우정당의 4대 인적 기반이다. 2021년 서울시장(20대 남 72.5% 국민의힘 지지. 출구조사), 부산시장 보궐선거 이후 특히 청년남성의 다수는 일관되게 국민의힘을 지지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극우화되었는데도 여전히 지지를 하고 있다.
2) 이대남, 변혁의 주체에서 극우의 전사로?
우리 역사에서 20대는 늘 변혁의 주체이자 담지자였다. 새로운 역사의 희망이었다. 그런데 그 20대 남성이 극적으로 변화했다. 홍세화가 ‘그대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2003. 한겨레신문)에서 먹고 마시고 논다고 개탄했던 그들. 우석훈 박권일이 ‘88만원 세대’(2007)에서 세대 착취와 승자독식구조에 맞서기 위해 토플책을 덮고 거리로 나와 봉기하라고 촉구했지만 꿈쩍도 안했던 그들. 그들이 어디에 있는가 했더니 한남동과 서부지방법원에 나타났다. 2030 남성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조 앤 윌리엄스는 EBS ‘위대한 수업’을 통해 <저출생, 워킹맘, 극우 그리고 신자유주의> 현상을 진단했다. 왜 젊은이들이 극우화되는가를 묻고 답했다.
“남성들은 경쟁이 심해지자 분노와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중산층 일자리와 내 집은 얻기 어려워졌다. 아버지 세대에 가능했던 일이 지금 세대에서는 어려워졌다. 아버지 세대에서는 좋은 일자리 대부분을 남성이 차지했다. 지금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의 젊은 남성은 이민자를 탓하지만, 한국의 젊은 남성들은 젊은 여성들을 탓한다. ‘분노는 항상 아래로 흐른다.’ 이것은 진리다. 부유층이나 노동의 질을 떨어트리는(비정규직) 대기업, 정부를 탓하는 대신에 여성들을 비난한다.(여성 혐오) 20대 남성의 80%가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성성’을 위협하는 것 중에 ‘가장(家長)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가정을 부양하는 것은 오랫동안 ‘남성성’, ‘남성다움’의 상징이다. 이 남자다움의 상실을 남성들이 맛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로인한 분노가 여성 혐오로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3) 남성성, 남성다움의 상실 혹은 변화-가부장제에서 가모장제로
인류가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발전하면서 면면히 이어져 온 것이 가부장제적 질서다. 여기서 남자는 가정의 중심이고, 돌아가신 조상 남자는 우주의 중심이었으며, 남자 자손은 내일의 중심이었다. 이것이 주자학적 세계관이었다. 조선사회에서 인간은 아들을 낳고 키우기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아가신 남자 조상을 잘 섬기기 위해서이다.
역사(history)는 남성사(his story)이다. 남성의 역사이지만 모든 남성의 역사가 아니다. 가부장제하에서 지배자가 된 남성의 얘기다. 하지만 지배당한 남성들도 그들의 세계관에 젖어있다. 씨족의 위계를 관리하고 그 체제와 항렬을 통해서 단합을 도모하고 위세를 보인다. 제사와 같은 문중의 가장 큰 행사를 관리하고 재산을 분배한다. 남성은 이 세계의 중심이고, 여성은 국외자이다.
남성다움은 가정을, 가정경제를 부양하는 것이다. 그 반대로 여성은 그 가정을 관리하는 역할 분담체제였다. 미국과 유럽에서 분업이 먼저 깨졌다. 1960년대 페미니즘 운동과 1970년대 여성의 사회적 진출, 1980년대 여성 CEO의 출현, 1990년대 여성의 전문직 진출이라는 새로운 현상에 부딪혔다. 여자는 남자의 경쟁자가 되었다. 학업 직업 운동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성취욕과 자신감을 가진 여성, 이른바 알파걸(Alpha Girl)이 출현했다.
결정적인 것은 세계화, 신자유주의이다. 외환위기를 거쳐 한국경제와 사회도 완전히 포섭됐다. 평생 직장의 시대에서 고용이 불안정한 시대가 되었다. 부의 원천이 노동에서 금융으로 이전했다. 노동의 외주화, 비정규직화가 진행됐다. 가정의 주부양자로서 어깨를 펴고 살던 시대는 끝났다. 여성도 신자유주의 피해자가 되었다. 반면에 새로운 흐름도 나타났다. 여성이 주부양자가 되거나, 여성이 남자보다 수입이 많은 현상이 나타났다. 그렇게 된 부모를 보면서 오늘의 20대는 자랐다.
우리나라의 고령층 7080은 가부장제에서 태어나서 가부장제로 인생을 마감한다. 지금의 5060은 가부장제의 온갖 특혜 속에서 자라나서 가모장제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원래 가모장제는 가정의 주부양자가 여성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가부 가모장제가 양립(공동부양제)하고 있거나, 여성의 권력이 가정 내에서 남성 보다 우위에 섰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지금의 20대 이하는 가모장제에서 태어나 가모장제 하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기성세대는 여전히 20대의 남자에게 구시대의 남자다움을 강요한다.
4) 지금의 청년 남성은 어떻게 자라났나
우리나라에서는 선택적 낙태, 즉 여아를 낳지 않고 남자를 골라 낳는 젠더사이드(Gendercide)가 지속되었다. 1970년대에 시작하여 1990년 무렵에 정점(여아 100명 대비 남아 114)을 찍었고 2011년(105.7)에 자연성비로 돌아왔다. 젠더사이드의 후반부에 태어난 남자아이들은 부모의 의도와 달리 학교에서 부터 여자 아이들에게 밀렸다. 공부는 여자들이 앞섰고, 사귐의 주도권은 여자에게 넘어갔다.
합계출산율이 6.0이었던 1960년에 남자와 여자는 학교에서 경쟁 상대가 아니었다. 가정에서부터 여자는 남자를 위해 희생했다. 오빠나 남동생의 학업 성취를 위해 공장에 취직하고, 집안의 생활비를 보탰다. 이때는 과외공부, 학원, 진학 등 미래를 위한 투자가 남자아이들한테 집중되었기 때문에 여자아이는 경쟁 상대가 안되었다. 어차피 여자는 졸업하고 나면 시집갈 것이라는 사회 인식이 팽배해 있어서 공부를 열심히 할 이유가 없었다.
출산률이 떨어지면서 남녀 차이가 없어졌다. 여자아이에 대한 투자가 똑같이 이뤄졌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에서 겪는 학령기 남학생의 학습 부진이 우리나라에도 나타났다.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에 비해 발달이 먼저 이뤄지면서 교실의 경쟁에서 앞선다. 남자아이들은 반복되는 좌절을 일찍부터 경험한다. 스스로를 우성으로 생각하지 않고 열성으로 생각하게 된다. 공부로는 안된다는 여성과 경쟁이 안된다는 좌절에 빠지게 된다.
싸움이나 게임중독 등 사고를 치지 않고 공부에 집중하는 비인지적 능력도 남자아이들이 부족하다. 핀잔과 꾸지람은 온전히 남자 아이들의 몫이다. 과거에는 남자답다고 했던 행동이 용서가 안된다. 사회에서, 가정에서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1996년에 출판되어서 밀리언셀러가 된 장편 소설 ‘아버지’(김정현)에서 아버지는 항상 외롭다. 가족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다. 돈 버는 기계다. 남자아이들이 본 첫 남성이다. 아버지의 지위와 역할이 위태로와 보였다. 남성성, 남성다움 즉 패권적인 헤게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강하다. 가정 내에서 막강한 책임과 권한을 가진 실력자다. 때로는 남편의 기를 살리기도 하고, 반대로 남편을 윽박지른다. 용돈도 어머니에게서 나온다. 사회에서 처음 접하는 이들도 대개 여성이다.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은 여자다. 가르치는 것은 여자가 하는 일로 아이들이 생각할 수 있다.
대학은 이미 여학생들 더 많다. 대학입시에서 여학생들과 치열한 경쟁을 한다. 그리고 스펙쌓기에 나서야 하는데 남자들은 군대에서 2년을 보내야 한다. 군대는 남녀 경쟁에서 결정적이다. 취업경쟁을 하는 또래 친구 여자아이들이 스펙을 쌓는 동안 북한 땅을 바라보거나 기합을 받는다. 군대를 다녀왔다고 해서 국가가 나에게 해주는 일이 없다. 그들은 남자로 태어나서 특혜를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의 청년 남성은 성차이가 역전된 시대에 살고있다.
5) 남녀간의 성전(性戰)이 시작됐다.
페미니즘이 남녀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청년 남성은 특히 이대남은 그런 시대를 살아왔다. 태어날 때부터 세상이 그랬다. 남성 우위라는 개념 자체를 잘 모른다. 꿈도 못 꾼다. 이미 세상은 가모장제를 향해서 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천년간 남성이 태어나고 자랐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마찬가지로 2030 여성의 삶도 사고방식도 그들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수천년간의 어머니와 완전히 다르다.
외환위기는 중산층을 파괴했고 중산층의 진입장벽을 높였다. 금융위기 등 잇달은 경제위기는 치열한 적자생존의 시대를 만들었다. 남자와 여자의 무한경쟁이 시작되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가장 안정된 직장을 찾기 시작했다. 남자도 여자도 공무원이 되려고 했다. 이때부터 공시 열풍이 3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이 시기에 이회창 아들의 면제가 이슈가 되었다. 이를 덮기 위해서 1998년 공무원 시험에 군가산점 5%를 주겠다고 정부가 발표했다. 이대생 5명이 나서서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기했고 만장일치로 위헌판결이 났다. 징집문제는 남녀간의 이익전쟁이 되었다. 여자도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왔다. 격렬한 남여 성전의 서막이 열렸다.
남성들은 신자본주의 하에서 집과 여성을 소유할 수 있는 남성과 그렇지 못한 남성으로 나뉘어진다. 다수의 남성들은 후자로 편입되어 점차 남성다움(주부양자)을 상실해 나가는데 반해서, 여성들은 남녀관계에서 우위에 서기 시작했다. 남자의 자격, 국민의 자격을 박탈당했다고 생각한 남성들은 인터넷 공간으로 이주를 했다. 디씨인사이드와 같은 남초 공간에서 시작하여 일간베스트에서 형제애를 키웠다. 꼴페미를 처단하고, 폭력과 욕설이 난무한 가운데 새로운 남성다움을 습득했다. 인터넷 남초공간에서 남자의 자격을 이상한 방식으로 회복하여 재주체화하는 것이다.
여성들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여성이 들어오게 되면 현실세계처럼 소유자와 비소유자가 나뉘어지게 되고 세상이 평등해지지 않는다. 여성이 들어오면 축출했다. 현실세계에서 마음껏 할 수 없는 연애와 성을 포르노 이미지를 교환하고 공유하는 사이트(소라넷)을 통해 해소했다. 그런 남성이 다수는 아니다. 하지만 이를 알게된 여성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한국 여성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집단적으로 자각하게 했다. “우리는 우연히 살아있다” 여성의 생명이 항상적으로 위협받는 구조를 깨트리기 위한 운동이 일어났다. 사회적 반향이 없으면 반향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여성들의 공적 등장이었다. 여성운동의 대중화를 촉발시켰다. 2015년 8월 메갈리아라는 페미니스트들의 독립된 왕국이 건설된다. 이들은 남성들의 여성 혐오에 대해 남성 혐오로 되돌려주었다. 미러링을 이용한 전투적 페미니즘의 등장으로 대단한 전략적 성과를 얻었다.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남성들은 잠재적 범죄자가 되었다는 피해의식을 갖게 되었고, 메갈리안의 등장으로 남성들은 온라인이라는 그들만의 영토도 위협받았다.
6) 청년 남자들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청년 남성은 세상이 완전히 여자 위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정체성 정치 즉 페미니즘은 이제 부문운동이 아니라 주류운동의 하나가 되었다. 페미니즘이 권력이 되었다고 보며 자신들을 페미니즘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은 성평등한 세상에서 태어나, 여성을 차별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자신은 가해자가 되어있다.
남자들은 찌질해 보인다. 왜소해진다. 중산층이 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는 갈수록 여성들이 침투한다. 여성들은 명품 성형 해외여행 등으로 소비시장의 주체가 되었다. 반짝반짝거린다. 그들의 인스트그램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여자들의 이런 소비는 남자들에게 빌붙어 사치한 결과라는 것이 청년 남성들의 인식이다. 남성들은 게임캐릭터, 술집 풍경, 영끌해서 구입한 외제차를 올릴까 말까 한다. 잘해봤자 인생에 단 한번 미국야구, 영국 축구 직관한 그림이다. 질적 차이이다.
여성들 사이에서는 비혼선언 비혼주의 비혼가족이 어느새 트렌드가 되었다. 선택적 낙태로 남자들이 가뜩이나 많은데 여자들은 점차 연애와 결혼으로부터 멀어져간다. 남자들이 경제력을 독점했을 때는 경제력으로 얻은 일부를 여성에게 나눠주는 대신에 섹스와 연애와 가정과 가사노동을 교환했다. 남자들의 호주머니가 얇아지면서 그런 우월적 교환은 어렵다. 가뜩이나 힘든 판에 비혼을 당한다. 여성들은 외국 남자와 어울린다. 그들과 교제할 때는 더치페이를 하면서 한국 남자한테는 독박을 쓰게 한다는 분노를 갖고 있다. 게다가 “키가 180cm 이하면 루저”라는 말까지 한다. 아예 기회조차 가질 수 없게 된다.
2030 남성들은 여저히 자신의 어머니 같은 여성상을 원한다. 그런 여성은 이제 현실에서는 없다. 반면 2030 여성들은 자신의 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다며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들도 낳지 않으려고 한다. 남자들은 전통에 따라 모든 것이 유지되기를 바라면서 더 보수적이 되는데 여자들은 더 넓은 평등과 더 많은 변화를 원한다. 그 간극이 크다. 여기서 생기는 원망을 된장녀, 김치녀로 한국 여성을 매도하는 것에서 해소를 한다.
모든 것은 군대 문제로 환원된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경쟁자인 된장녀 김치녀들을 위해 군에서 복무한다는 것이 억울하다. 공인된 국가기구에서 2년을 폭력적인 환경에서 살았는데 국가가 합당한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군 경력이 승진에서 반영되어서는 안된다는 지침을 기재부가 2021년에 정부와 공기업에 일괄적으로 내려보냈다. 여성들에게는 여성을 위한 정부 부처(여성가족부)가 있지만 남자들은 2년 동안 공적 기부를 강제하는 국방부만 있을 뿐이다. 이것이 청년 남성 특히 이대남의 생각이다
(7) 남자의 적은 남자
기성세대는 차별적 사회에서 얻을 것을 모두 다 얻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여성에 대한 죄책감을 다음 세대에게 전가한다. 남녀평등의 전도사인양 행동한다. 여성할당제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2030 남성은 사회적 약자이다. 6070 남성 처럼 강자가 아니다. 6070 남성이 속죄를 할려면 그들 세대의 여성들을 위한 보상을 강구해야하는데 나이가 들어서 은퇴를 해버렸다. 그러자 5060 남성들이 그 보상책을 만드는데 그 짐은 2030 남성의 것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는 부동산으로 누릴 것을 다 누렸지만 이들에게는 기회가 없다, 국민 10명 중 1명이 코인 투자를 한다. 20대 대학생 4명 중에 1명이 코인 투자를 하는데 대부분이 남학생이다. 알바를 하면서 번 돈으로 어떻게 해서든 내 집 마련의 남성성을 회복하려 하는데 정부는 불법 도박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세금을 걷겠다고 한다. 국가가 나를 위해서 이제껏 해준 일이 무엇이냐고 묻게 된다.
이들을 대표하는 이도 없고 목소리도 없다.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다. 대부분은 여자들의 눈치만 살폈다. 직장에서 일을 시킬 때도 힘든 일은 남자들의 차지였다. 남적남. 남자들의 적은 남자다. 남자 상사들은 여성의 눈치를 살핀다. 남자들에게는 남자니까 참으라고 한다. 이것은 약자에 대한 성차별이라고 외치고 싶지만 찌질해 보여서 그만 둔다.
직장에서 성차별 성희롱 방지 교육도 철저히 여성을 위한 것이다. ”남자는 군대를 갔다와야 사람이 된다“, “사내 자식이 불알 두 쪽 달고 태어나서 쪽팔리지도 않냐”, “남자니까 참아야 한다”, “남자가 쪼잔하게 왜 그러냐” 이런 것들이야 말로 성차별적이지 않은가? 직장내 성희롱 성차별 방지위원회에서 이런 것을 시정했다는 말을 청년 남성은 들어보지 못했다. 데이트 폭력은 남성만이 저지른다는 전제, 여성들은 성범죄 고소시에 무고죄 조사유예를 받는 조치. 이런 것이 과연 공정한가를 묻는다.
그래서 차라리 소라넷, N번방, 연쇄강간범 같은 범죄에 대해서는 사형 등 중형에 처하라고 한다.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지 말고, 범죄자는 엄격히 처단하라고 말한다. 사형제도를 폐지한다고 말로만 하지말고 어떤 기한내에 집행하겠다고 명백하게 말하라고 한다.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지 말고, 확실하게 법을 집행할 것은 집행하라고 한다.
이 모든 것에 대한 불만은 여성가족부로 향한다. 2015년 여성정책원이 여성 혐오 발생 이유를 조사했다. 10대 남자 청소년(53.8%)과 남자 대학생(48.4%)은 압도적으로 “여성가족부 때문에” 여성 혐오가 발생했다고 대답했다. 복수응답을 할 수 있는데 “군대는 안가면서 특혜만을 요구하는 여자들 때문에”, “공중 질서를 어기는 무개념 여자들 때문에”, “남자에게 의존해서 사치를 일삼는 여자들 때문에” 가 그 다음으로 많았다.
2030 남성은 여성가족부가 남녀가 평등한 세상을 만든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청년 남성은 보호의 대상인가 아니면 회피의 대상인가라고 질문을 한다. 2030 남성도 힘들다며 여성들을 위한 평등은 이미 초과달성되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강남역 살인 사건 후 2016년 문재인은 최초의 페미니스트대통령을 선언했다. 2022년 윤석열은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 라는 단 일곱글자 공약으로 청년 남성 표를 쓸어모았다. 그리고 윤석열은 체포되면서 유튜브를 통해 청년들에게서 희망을 느낀다고 했다. 신남성연대 등 극우 유튜브는 그들에게 극우적 세계관을 주입한다. 게임커뮤너티에서 남성의 언어와 세계관을 접하고, 남초커뮤너티와 유튜브를 통해 세계관을 단련한다.
8) 2030 남성은 이념 집단은 아니다, 공정을 바랄 뿐이다.
청년세대에게는 이념이 없다. 민주 대 반민주의 시대에 살지 않았다. 좌와 우로 나뉘어있지도 않았다. 공정은 남녀 공히 그들 세대의 가장 민감한 이슈이다. 2018년 평창 올림픽 남북단일팀 결성은 남북 화해를 위한 결단이다. 청년들 사이에서 반대 여론이 급속하게 번져나갔다. 단일팀 결성으로 올림픽 진출 꿈이 좌절된 이들에게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요원 정규직화 논란은 문재인 정부 초기에 부딪힌 악재였다. 죽어라고 경쟁하는 사회에서 어느날 기성세대의 결정으로 하루 아침에 정규직이 된다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2021년 서울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터진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 부동산 투기사건은 성난 민심에 불을 질렀다.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탄핵으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꿈꿨지만 여전히 세상은 내노남불이고 불공정하다고 보았다. 이것은 기존 정치권이 철저하게 응답해야 할 사안이다.
국민의힘의 콘크리트 지지층인 6070의 세대기억은 한국전쟁이다. 민주당의 절대 지지세력인 4050의 세대기억은 광주다. 2030의 세대기억은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탄핵 촛불시위다. 그들의 세대 기억으로 볼 때 이념적으로 보수화될 이유는 없다. 그런데 보수정당으로 경사되어있다.
청년 남녀가 갈리는 것은 젠더이슈이다. 세상의 따듯한 시선은 모두 청년 여성에게로 향해있다. 특히 진보적인 586세대 남성들이 그렇다. 그들은 남태령대첩, 응원봉 떼창, 키세스에 열광한다. 그들의 SNS에는 온통 이들에 대한 찬사가 넘쳐난다. 민주주의의 보루라고 보고 변화의 담지자라고 평가한다. 새로운 세상의 희망을 보았다며 벅찬 기쁨을 토로한다.
악순환이다. 청년 남자들은 갈수록 진보의 영역에서 멀어져간다. 청년 남성에게는 다른 정치적 선택의 방도가 없었다. 2021년 서울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압도적으로 국민의힘을 선택했다. 2022년 대선에서 20대 남성은 이재명 36.3%, 윤석열 58.7% 지지를 보였다. 20대 여성은 이재명 58%, 윤석열 38.3%로 나뉘었다. 30대 남성은 이재명 42.6%이고, 윤석열 52.8%였다. 30대 여성은 이재명 49.7%, 윤석열 43.8%로 나뉘었다.
‘여민남국’, 이것은 이제 추세가 되었다. 내란 사건을 경험하고도 교정이 되지 않는다. 2024년 총선에서는 윤석열의 실책으로 그런 흐름이 완화되어 국힘 지지가 근소하게 더 많았다. 설을 전후해 다수의 여론조사가 나왔다. 내란을 경험한 젊은 남성들의 선택은 뜻밖에도 정권교체 보다 정권재창출을 더 많이 선택했다. 청년 남성들이 내란 이전에 보수정당을 지지한 것과 지금의 극우화된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사회에 미치는 여파가 다르다. 청년 남성들의 이런 흐름을 방치하면 세대기억으로 보존되어서 극우화의 발판이 될 수 있다. 이들을 방치하는 것을 잘못된 일이다.
조 앤 윌리엄스는 ‘저출생, 워킹맘, 극우 그리고 신자유주의’(EBS)에서 좀 더 포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회가 해법이라고 말한다. 아버지 세대는 그렇지 않았는데 자신들의 세대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향수적 박탈(Nostalgic Deprivation)에서 벗어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권한다. 노동법을 고쳐서 보다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해야 하고, 아버지 세대가 누리지 못했던 미래경제에서 기회를 찾도록 사회를 재설계해야 한다. 사회에서의 실패가 본인의 잘못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며, 실현하기 어려운 가장의 역할에 대한 그들의 상실감을 위로해야 한다고 본다.
2030 남녀의 성전은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를 갖고 해법을 찾을 수 없다. 누구 편을 들어준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남녀평등인지 남녀가 만족할만한 중간 지대의 해법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남성들이 요구하는 남녀개병제 수용만이 답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런 사회적 합의를 단시간내에 도출할 수는 없다. 사회경제구조를 바꾸어서 사회적 약자에게 더 포용적인 방향으로 갈 때 갈등과 대립도 줄일 수 있다. 지금 20대에서 남자들이 사회적 약자일 수 있다는 따듯한 시선이 필요한 때이다.
윤석열 대통령 개인에 대한 광신적인 지지를 보내고, 탄핵 찬성 세력의 배후에 중국, 조선족 등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 그러면서 폭동의 '주모자'가 될 만큼 자신들의 신념을 거스르는, 여기서는 사법부에 대한 폭력적인 분노를 쏟아내는 사람들. 모든 이대남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사회적으로 유의미하다고 봐야 할 정도로 많은 이대남들이 소위 '극우화'되었습니다.
이들을 왜 '극우'라고 할 수 있는가, 정치학에서 극우는 민족적 기준에 따라 "내집단과 외집단"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내집단이 외집단에 의해 존재론적 위협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제가 이들을 '극우'라고 부르는 까닭은, 이들은 '한국 남성을 위시한 진정한 한국인(내집단)'과 '중국 및 조선족, 그것들에 동조하는 페미니스트를 비롯한 한국 내 일부 집단들(외집단)'을 분명히 구분하고, 외집단이 자신들을 위협한다고 전제하며, 이들과 '공존할 수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들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보기에 많은 정치학자나 시사평론가들은 이들이 등장한 원인을 피상적인 수준에서 파악하고 있다고 봅니다. 제가 보기에 이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원인을 제시합니다.
[일반적으로 지목되는 '극우 이대남'이 등장하게 된 원인들]
(1) 사회, 경제적 불만과 소외감
높은 실업률, 저성장, 주거난 등이 이들의 내면에 분노를 만들었고, 그 분노를 투사할 대상을 찾다보니 페미니스트나 중국을 찾게 되었다는 겁니다. 물론 이런 요인이 배경적인 촉매제가 되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전 이것이 핵심적인 원인이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20대 청년들의 생활고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이것이 원인이 되려면 20대 청년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보수화 되어야 할 뿐더러, IMF 직후 그러니까 꽤나 오래전부터 보수화 경향이 뚜렷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직후 열린 문재인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대남은 분명히 '문재인'을 찍었었습니다. 이대남이 '보수화'되었다고 볼 맥락은 한국에 '페미니즘'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부터입니다. 결국 이대남의 극우화는 적어도 '여성'이라는 키워드와 떼어놓고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2) 젠더 갈등의 심화
그렇다면 젠더 갈등의 심화가 '극우 이대남'이 등장한 '원인'일까요? 아니요. 저는 그렇게도 보지 않습니다. '젠더 갈등'은 모든 이대남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슈입니다. 따라서 이대남이 전반적으로 '보수화'되었다면, 그 원인으로 '젠더 갈등'을 꼽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대남 중에서도 극히 '일부'가 '극우화'가 되었다면, 이들은 '젠더 갈등' 뿐만 아니라 다른 추가적인 요인의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만일 젠더 갈등이 극우 이대남 등장의 핵심적인 원인이라면, 모든 이대남이 극우화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극우' 이대남들이 반페미니즘 성향이 매우 짙다는 점에서 이들이 젠더 갈등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 리는 없겠으나, 이것을 핵심 원인으로 보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봅니다.
(3) 보수 세력의 정치적 동원
보수 세력이 유튜브 등 SNS을 통해서 음모론이나 자극적인 선동을 유포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극우 이대남이 여기에 영향을 받은 것도 분명합니다. 하지만 유튜브 알고리즘의 '필터 버블'이 정말 이들이 극우화된 원인일까요? 이들의 극우화를 부추긴 요인은 아닐까요? 일단 '필터 버블'이 발생하려면, 애초에 이들이 해당 영상들을 관심있게 찾아보고 알고리즘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들이 그런 영상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면, '필터 버블'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태의 원인을 성급하게 '필터 버블'로 찍을 것이 아니라, 극우 이대남들은 왜 이런 극우 유튜브 등을 찾아보기 시작하게 되었느냐고 묻는 데서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4) 사법부에 대한 불신
'곰탕집 성추행 사건'을 비롯해서 문재인 정부 기간 내내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정체 불명의 법리로 한국 남성들에게 불리한 판례가 쌓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일련의 사건을 바탕으로 이대남들 사이에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생긴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역차별적인 판례'들이 등장했다는 이유로 폭동을 일으킨 적은 없고, 하다못해 모여서 시위를 한 적도 극히 드뭅니다. 더구나 이번 폭동은 '윤석열 대통령 구속'에 관한 안건에 있어서의 사법부 불신이기 때문에, 설령 일련의 역차별적인 판결로 사법부 신뢰가 저하되었다고 할지라도 그로 인한 사법부에 대한 극우 이대남들의 불신을 '폭동'의 근본적 원인으로 짚기에는 무언가 설명되지 않는 구석이 많습니다.
(5) 군대 경험
군 복무를 통한 조직문화와 위계질서에 대한 학습 경험이 폭동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저는 이건 말이 안된다고 봅니다. 이제까지 모든 한국 남성들은 20대 시절 군 복무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한국 역사상 존재했었던 모든 20대 남성들이 극우화 되었나요? 심지어 보수화 되었는지도 불분명합니다. 이들의 폭동 방식과 평소 사고방식에 군대식 문화가 옅게 영향을 미쳤을 수는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이번 폭동과 군대 문화는 관련성이 적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극우 이대남'이 등장한 진정한 원인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이들이 유년 시절에 무엇을 보고 배우며 자라왔는지에 대한 분석이 없으면, 모든 설명은 '원인'이 아니라 '배경'을 짚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극우 이대남'의 유년 시절 학습해온 것들]
['남초 커뮤니티'의 등장]
현재의 이대남들은 인터넷이 일상화된 '첫 번째 세대'입니다. 이 사실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인터넷에서 보고 배운 것은 뭘까요?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활동한 커뮤니티가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사람들'이 활동했고, '남초'에 '익명성'이 보장되었다는 점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각각의 요인들은 구체적으로 그들의 커뮤니티를 어떤 방향으로 몰고 갔을까요?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젊다'는 사실이 미친 영향]
'일베' 등을 위시한 이용자들의 평균 연령은 대체로 10대 청소년들이었습니다. 이건 이들이 한창 '학업'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을 시기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이 한창 커뮤니티에 빠져있을 시절, 학교의 교사와 부모들은 좋은 대학에 대한 열망을 이들에게 강제로 주입시기키 위해 노력했고, 공부를 못하는 것이나 좋은 대학에 못 가는 것을 '사회에서 도태된 것', '멸시해도 좋을 열등한 것'으로 여기도록 방치하거나 유도했습니다. 공부를 못하는 것은 '노력'이 부족한 것이고, '노력'을 하지 않는 인간을 무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논리였습니다. 공부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럴 만한 환경적 배경이나 그들의 책임이 없는 다른 요인이 작용해서 그런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학부모나 교사들에게는 자칫 학습 부진아들의 '핑곗거리'가 될 수 있는 불편한 진실이었습니다. 현재의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 대학 서열도 이 당시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