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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종교, 과학, 0과 1

Jobs9 2022. 2. 1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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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원은 無와 有, 쉽게 말해 0과 1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그래서 인류가 이룩해 온 모든 학문은 0과 1의 대들보 위에 놓여 있습니다. 
 
원래 학문은 철학 딱 하나였습니다. 철학은 0에서 1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밝히는 학문입니다. 이것이 풀어지면 존재에 관한 모든 비밀이 풀릴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궁구해도 여기에 대한 납득할 만한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0을 부정하고 1의 자존(自存)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는데, 여기서 종교가 태동하게 됩니다. 
 
종교가 번성해도 철학자들은 1의 自存을 거부했고, 어떻게든 0에서 실마리를 찾으려 했습니다. 

이때 그 해법을 이성보다는 직관과 심리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니, 바로 수행자들입니다. 그리고 1을 밝혀 0으로의 연결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뒤를 잇게 되는데, 이들이 곧 과학자들입니다. 

이렇게 철학의 0과 1의 문제 때문에 종교와 수행, 과학이 떨어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과학의 본래 목적은 0에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제1원인(實存)’을 화두로 걸어 놓고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과학이 철학에서 떨어져 나올 때는 이런 거창한 명분에 의해서였습니다. 
 
[1을 연구해 0을 밝힌다]는 사명을 알든 모르든 과학자들은 본능적으로 0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입자가 있으면 그것을 쌍소멸시킬 반입자가 있고, 물질이 있으면 그것에 반대되는 반물질도 함께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과 에너지가 있으면 감춰져 있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도 준비돼야 하고요. 이때 극히 일부의 에너지라도 외계로 빠져나가면 안 되기에 「열역학 제1법칙」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주의 질서를 무너뜨려야 0에 가까워지기에 「열역학 제2법칙」도 수반돼야 합니다 

 
미시세계 역시 모든 입자들이 대칭을 이루어 질량이 0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현대물리학의 상징과도 같은 표준모형은 ‘게이지(gauge)대칭’을 써서 우주의 질량 총합을 0으로 만듭니다. 그런 연후에 1이 나오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자발적 대칭성 깨짐(spontaneous symmetry breaking)’을 도입하고 ‘힉스 입자’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과학자들이 알고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과학은 1을 풀어 0을 완성하기 위한 학문입니다. 만일 우주의 에너지 총합이 0이 아니라 1이면 종교의 영역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빅뱅을 일으킨 특이점 역시 0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계산 결과 질량이 있는 것으로 나오면 특이점 이전으로 숙제를 미루어야 하고요. 어떡하든 질량의 총합은 0이 되어야 하며, 이것이 과학이 태동한 본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 시점에 다시 한 번 0과 1을 떠올려 봅시다. 둘 가운데 무엇이 먼저이고 진실일까요?
 
1의 自存을 인정하면 과학과 철학은 그 순간 학문으로서의 사망선고가 내려집니다. 1이 실존이면 종교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1의 自存을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창조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한다[구약/출애굽기]」고 자처하는 神이 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던 철학과 과학은 어떡해서든 0에서 답을 구하려 했습니다. 
 
그렇다면 철학은 0에서 1이 나오는 원리를 풀었을까요?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물론 그것을 연구하다 파생된 방대한 철학 분야는 인류의 정신문명에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됩니다.
 
수행은 어떠할까요?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만 성공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증명할 길은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수행 문화를 세상 곳곳에 퍼뜨려 인류의 영성에 기여한 점은 높이 칠 만합니다.

과학은 어떨까요?

0에서 1을 만들면서 그 0 속에 자꾸 1을 넣고 있습니다. 뭔가 알 수 없는 고차원의 존재가 있고 그곳에서 1이 나온 것으로 예상합니다. 즉 과학은 1을 연구해서 수많은 업적을 쌓았지만 여전히 0의 문제에 있어서는 오리무중인 상태입니다.

도대체 실존은 0인가요? 아니면 1인가요?

 
1이면 종교가 되고, 0이면 1을 창조할 수 있는 논거가 없으니 참으로 답답한 형국입니다. 수천 년 전 철학이 태동할 때에 비해 0과 1은 조금도 변한 게 없이 제자리인 것입니다. 문명이 이토록 발전하였는데도 말입니다.

 

 왜 이 문제를 못 푸는 걸까요?

 

2차원 평면 세계에 나타난 사각뿔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 높이가 도입되어야 합니다. 높이를 떠올리지 못하면 영원히 사각뿔의 정체를 풀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0과 1을 풀기 위한 우리만의 높이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정보’입니다. 여기서의 ‘정보’란 어떤 관념과 지식을 전달하는 일반적인 information과는 다릅니다. 이는 물질의 바탕이 되는 참된 질료로서의 ‘정보’를 말하는데, 0과 1에만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낯설고 기괴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평면 세계에 높이가 없듯, 우리 3차원 세계에도 질료로서의 정보는 눈에 띄지 않습니다. 아니, 관찰 정도를 넘어 상상으로도 그런 것은 떠올릴 수 없습니다. 그건 정보가 0과 1의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0과 1을 동시에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0도 아니고 1도 아닌 ‘제3의 존재 형태’라는 얘기입니다.  

 

우리는 입자가 실재하는 것으로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해 우주의 모든 것은 당연히 1(有)인 걸로 압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입자가 실재한다고 증명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실험실에서 나온 것은 입자의 성질을 띤 파동뿐입니다. 그 파동에 질량이란 수치를 붙이고 무슨 입자라고 이름을 지어준 것이지요. 

 

존재하지 않는 선과 면이 합해 입체가 됐듯, 우리 세계의 물질 역시 존재하지 않는 입자들을 굴비처럼 엮어 마치 있는 것처럼 여기게 된 것입니다. 파동이 일으킨 홀로그램에 에너지가 실리면서 입자와 물질로 착각하게 된 것이지요.

 

파동, 그것의 본질은 정보에 있습니다. 정보에서 파동이 나오고, 파동이 중첩되면서 입자성을 띠게 됩니다. 이 점을 밝혀 나가고 있는 것이 현대물리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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