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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표 점찰계법

Jobs 9 2021. 12. 27.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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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표 점찰계법

승려 진표(眞表)는 완산주(完山州)【지금의 전주목(全州牧)】 만경현(萬頃縣) 사람이다【혹은 두내산현(豆乃山縣) 혹은 도나산현(都那山縣)이라고도 하니 지금의 만경(萬頃)이며, 옛 이름은 두내산현이다. 관녕전(貫寧傳)에 석진표의 고향을 금산현(金山縣) 사람이라고 한 것은 절 이름과 현 이름을 혼동한 것이다】. 아버지는 진내말(眞乃末)이고, 어머니는 길보랑(吉寶娘)으로 성(姓)은 정씨(井氏)이다. 나이 12세에 이르러 금산사(金山寺) 숭제법사(崇濟法師)의 강석 아래에 몸을 던져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배우기를 청하였다. ……(중략)…… 

진표가 (숭제) 법사의 말을 듣고 명산을 두루 다니다가 선계산(仙溪山) 불사의암(不思議菴)에서 멈춰서 머물면서 3업(業)을 연마하였으며, 망신참회(亡身懺悔)로 계(戒)를 얻었다. 처음 7일 밤을 기약하여 5체(五輪)를 돌에 두드려서 무릎과 팔이 다 부서지고 피가 바위절벽에 비 오듯 쏟아졌으나 보살의 감응이 없는 듯하여 몸을 버리기로 결심하고, 다시 7일을 기약하여 14일에 마치자 지장보살(地藏菩薩)이 나타나 정계(淨戒)를 받으니, 즉 개원(開元) 28년 경진(庚辰, 740) 3월 15일 진시(辰時)이고, 이때 나이가 23세였다. 

그러나 (진표의) 뜻이 자씨(慈氏)에 있었으므로 감히 중지하지 못하고 양산사(靈山寺)【일명 변산(邊山) 또는 능가산(楞枷山)이라고도 한다】에 옮겨 다시 처음과 같이 부지런하고 용감하게 수행하였다. 과연 미륵보살이 감응하여 나타나 『점찰경(占察經)』 2권【이 경은 진(陳)나라와 수(隋)나라 무렵에 외국에서 번역된 것으로 지금 비로소 나온 것은 아니다. 미륵보살이 이 경을 그에게 주었을 뿐이다】과 증과간자(證果簡子) 189개를 주면서 이르기를, “그 가운데서 제8간자는 새로 얻은 묘계(妙戒)를 말하고, 제9간자는 더 얻은 구계(具戒)를 말한다. 이 두 간자는 내 손가락뼈이고, 나머지는 모두 침단목(沈檀木)으로 만든 것으로 여러 번뇌를 이른 것이니, 너는 이것으로써 세상에 법을 전하여 사람을 구제하는 뗏목을 만들어라”라고 하였다.

진표는 미륵보살의 기별을 받고 금산사에 와 살면서 해마다 단을 열어 법시(法施)를 널리 베풀었는데, 단석의 정성과 엄함이 말세에서는 아직 없었다. 풍속과 교화가 이미 두루 퍼져서, 그가 유람걸음으로【아슬라주(阿瑟羅州 : 강원도 강릉)】에 이르자, 섬과 섬 사이에 물고기와 자라가 모여 다리를 만들어 물속으로 맞아들여 (진표가) 설법을 하여 (물고기와 자라가) 계를 받았으니, 즉 천보(天寶) 11년 임진(壬辰, 752) 2월 보름이었다. ……(중략)……

그의 사리는 지금 발연사(鉢淵寺)에 있으니, 즉 어족[海族]을 위하여 계를 강연하였던 곳이다. 법을 얻은 수제자는 영심(永深)⋅보종(寶宗)⋅신방(信芳)⋅체진(體珍)⋅진해(珍海)⋅진선(眞善)⋅석충(釋忠) 등인데, 모두 산문의 개조(開祖)가 되었다. 영심은 진표가 간자를 전해서 속리산에 주석하면서 법통의 계승자가 되었다. 단을 만드는 법이 점찰육륜(占察六輪)과는 약간 다르나 수행하는 것은 산중에 전하는 본규(本規)와 같았다.

『삼국유사』권4, 「의해」5 진표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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