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
眞空 / Vacuum, Free space
고전적인 진공은 "물질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가리킨다.
영어 등에서 진공을 가리키는 단어인 베큐엄(vacuum)은 '비어 있다'는 뜻의 라틴어 단어 '바쿠스(vacuus)'에서 유래한 것이며, 우리말과 한자의 '진공(眞空)'은 '진짜로 텅 비었다'는 의미.
일반인들도 진공관이나 진공 청소기, 진공 보온병 같은 용어를 통해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인에게도 친숙한 단어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진공은 진짜 진공이 아니다. 진공 청소기는 진공은커녕 대기압의 80퍼센트 정도이며, 대개는 1/1000 mmHg 정도 이하의 저압이면 진공이라고 불러준다. 과학 실험이나 정밀공학 등을 위해 초저기압 상태를 만드는 경우에도 완전한 0기압이 아니며 대개 100나노파스칼 정도의 기압이 존재한다. 이처럼 고전적인 의미로도 진정한 진공은 만들어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며,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진공은 더더욱 만들기 힘들다. '진공' 내에서도 입자들이 마구 생겨나기 때문이다.
흔히 진공은 공간 내에 '공기'가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고 오해하는데, 공간 내에 '물질'이 없는 상태가 진공이다. 즉 산소, 질소 같은 기체 분자만 없다고 진공인 것이 아니다. 기체 이외의 입자, 예를 들어 철이나 규소 입자 같은 게 있어도 진공이 아니다.
진공도는 저압 상태의 공기의 압력을 그대로 이용하여 표현한다.
진공도는 압력과 남아있는 기체 종류에 따라 저진공, 고진공, 초고진공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진공을 뽑게 되면 가장 먼저 산소나 질소 등 공기를 이루는 주요한 가스가 먼저 빠져나가고 (저진공), 그 뒤로 챔버에 붙어 있던 수분이나 다른 가스들이 빠져나오고 (고진공), 마지막으로 수소나 헬륨같은 가벼운 기체들이 빠져나오는데 (초고진공), 사실 수소랑 헬륨 가스는 너무 가벼워서 펌프만 가지고 빼내기 쉽지 않다. 쉽게 말해 진공을 잡게 되면 무거운 기체 원소, 수분과 챔버에 붙어있던 기체 분자들, 가벼운 기체 원소 또 순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그 결과 진공도에 따라서 챔버 안의 기체 분포에 차이가 생기게 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진공은 저진공으로 주로 건조, 보존에 활용되며 산업군에서는 저진공과 고진공을 많이 사용하게 된다. 전자현미경 같은 분석 장비는 고진공을 주로 사용하며, 전계방출형 전자현미경의 전자총이나 그 외 매우 정밀한 장비의 경우 초고진공을 잡는 경우도 있다. 초고진공은 주로 우주환경 실험실 등 특수한 목적의 실험실 등에서 활용된다.
진공도가 높아질수록 기체 분자들은 골고루 퍼진 상태에서 챔버 표면 쪽으로 몰리게 되며 저진공에서 고진공 상태로 넘어가게 되면 기체의 거동도 점성유동에서 분자유동으로 변화한다. 점성 유동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상식처럼 기체를 펌프 같은걸로 빨아드리면 기체 분자가 딸려오는 거동을 보이지만 분자 유동 부터는 펌프로 빨아도 기체 분자가 반응하지 않고 제멋대로 떠돌아 다니는 거동을 보인다. 이런 까닭에 고진공 펌프부터는 마음대로 떠돌아 다니는 분자가 펌프 주변을 지나가면 강제로 분자를 펌프 쪽으로 끌어내려서 뽑아내거나(확산펌프, 터보 분자 펌프) 기체 분자가 돌아다니지 못하게 가두거나(크라이오(극저온) 펌프) 다른 물질과 반응시켜서 무력화 시키는(이온 펌프) 방법을 사용해 잔류 기체 분자를 제거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알갱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주에는 연속된 물질이 가득차 있다. 그러므로 자연에는 진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추론한 이래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라는 믿음은 중세까지 이어져왔으나, 1643년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제자 토리첼리가 실험을 통해 진공의 존재를 재연했다.
그후 보일과 홉스의 논증을 통해 진공의 존재를 학계에서 인정하게 됐으며, 실험론에 입각한 과학이 온전하게 자연철학과 분리되는 계기가 되었다.
물리나 화학 및 관련 공학 분야에서 이론상실험용 샘플 혹은 제품을 제작할 때에 진공 상태가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모든 물질이 극히 낮은 농도로 존재하는 상태인 진공에서는 당연히 불순물의 농도도 0으로 수렴하기 때문에 불순물로부터 자유로워 샘플의 제작 및 보관에 매우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산화되지 않기 때문에 산소라는 불순물이 들러붙지 않는다. 이는 금속의 접합으로도 매우 유용한데, 산소가 풍부한 지구에서는 용접을 해야 금속끼리 붙지만 진공 상태에서는 금속 표면이 산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같은 금속끼리 붙이면 접합된다.
우주 공간이 진공상태인지라 과학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진공상태와 무중력 상태를 자주 혼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해가 부족한 영화나 만화 등에서 진공 상태라며 사람과 물체가 마구 떠오르는 묘사를 보여주는 것이 대표적인 예.
진공 엔진이라는 외연기관이나 진공 청소기는 상대적 기압차를 이용하는 물건이다. 진공관 역시 유리관 속을 진공에 가깝도록 기압을 낮춰놓고 전기를 흘려 전자 방출 현상을 이용하는 물건이다.
통상 압력의 대기 중에서 물체가 매우 빠르게 움직일 때도 기압차가 발생해서 소리가 나거나, 음속을 넘어설 만큼 속도가 높아지면 국소적으로 순간적인 진공 상태가 발생하여 큰 파열음과 함께 충격파가 발생한다. 이것이 소닉붐이다. 이 정도로 빠른 속도를 인간이 손에 든 무기로 발생시키는 건 채찍을 제외하면 현실적으로는 무리지만 창작물 등에서 검이나 주먹을 휘둘러 충격파를 내는 연출은 꽤나 간지가 나기에 자주 활용되곤 한다. 그것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창작물 속 기술 이름이나 무기 이름에 종종 '진공'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흔히 진공상태에 사람이 노출되면 낮은 압력 때문에 터져죽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진공이래봐야 1기압에서 0기압으로 줄어든것 뿐이니까. 단순한 비교로, 수심 10m에 살고 있던 물고기를 대기중에 꺼낸다고 해서 물고기가 터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외려 수백 기압 수준으로 증가할 수 있는 수압이 더 무섭다.
그런데 반대로 대기중에서 용기에 진공이 과도하게 방생하는 경우에는 내파(implosion)라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 현상은 사막 같은 더운 지역을 통과하는 화물열차의 탱크용기차 등에서 나타날 수 있는데, 데워진 공기가 냉각되면서 용기 내부의 기체가 수축하게 되고 압력 차이로 인해 그 탄탄한 탱크용기가 찌그러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빈 생수병에 입을 대고 강하게 숨을 마시면 패트병이 찌그러지는데 이것이 과하면 내파라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양자 진공 요동
양자진공을 이해하는 가장 유명한 방법 중 하나는 우선 에너지-시간 불확정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에너지-시간 불확정성을 이해하고 나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해진다. 우선, 진공 속에서 입자가 갑자기 생겨난다. (이런 입자를 가상입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진공을 자유롭게 움직이다가, 에너지-시간 불확정성에 위배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 동안 존재하다가 사라진다.
호킹 복사는 여기서 입자와 반입자쌍이 생겨났을 때 입자 또는 반입자중 한 개가 빨려들어가 블랙홀의 에너지가 줄어드는(수명이 줄어드는) 현상을 예측한 것이다.
위지와 운동량에 관한 불확정성
불확정성 원리를 설명할 때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예가 위치와 운동량의 불확정성에 관한 것이다. 수학적으로
ΔxΔp≥ℏ2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여기서 Δx 는 위치의 불확정성, Δp 는 운동량(p)의 불확정성, ℏ2 는 플랑크 상수 h를 2π로 나눈 값을 다시 2로 나눈 값이다.
이 식은 만약 위치(x)가 매우 정확하게 측정될 경우 운동량(p)의 정확도가 떨어지게 되고, 반대로 운동량이 매우 정확하게 측정되면 위치의 정확도가 떨어짐을 의한다. 실제 실험에서는 동일한 조건으로 준비된 관찰 대상에 대해 여러 번에 걸쳐 위치와 운동량을 측정했을 때 측정값의 표준편차를 불확정성으로 볼 수 있다.
에너지와 시간의 불확정성
한편 다른 종류의 불확정성 원리가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표현된다.
ΔEΔt≥ℏ2
이것은 에너지와 시간에 대한 불확정성 원리인데 이 관계식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여기 보이는 에너지 불확정성(ΔE)은 에너지 측정값의 표준편차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다. 도대체 시간의 불확정성이란 무엇일까? 시간은 관측하려고 하는 계와 독립적으로 흘러가는 거 아닌가. 이것이 계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Griffiths의 Introduction to Quantum Machanics를 보면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After all, position, momentum, and energy are all dynamical variables -- measurable characteristics of the system, at any given time. But time itself is not a dynamical variable (not, at any rate, in a nonrelativistic theory): You don't go out and measure the "time" of a particle, as you might its position or its energy. Time is the independent variable, of which the dynamical quantities are functions. In particular, the Δt in the energy-time uncertainty principle is not the standard deviation of a collection of time measurements; roughly speaking it is the time it takes the system to change substantially. [출처: Griffiths, Introduction to Quantum Mechanics (3rd edition), p110
결국 위치, 운동량, 에너지는 모두 동역학적 변수(계의 측정 가능한 특성)다. 그러나 시간 자체는 동역학적 변수가 아니다 (비상대론적 이론에서는 어찌되었든 그렇지 않다): 입자의 위치나 에너지처럼 입자의 "시간"을 측정할 수는 없다. 시간은 독립 변수고 동역학적 변수는 시간의 함수다. 특히 에너지-시간 불확정성 원리에서 Δt는 시간 측정값의 표준편차가 아니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계가 대폭 변화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위 내용에 따르면 불확정성 원리에 등장하는 시간은 관측 대상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리량이고, 따라서 계로 부터 직접 측정되는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통해 저자는 시간 불확정성은 계로부터 측정 가능한 물리량이 대폭 변화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도대체 어느 정도를 '대폭'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대폭'의 기준
앞서 언급했듯이 양자역학에서 어떤 물리량의 불확정성은 그 표준 편차로 표현된다. 통계학적으로 변화의 정도를 가늠할 때 기준이 되는 값이 있다. 그건 바로 표준편차다. '대폭 변화'란 표준 편차를 넘어서는 변화라는 말이된다. 결국 시간 불확정성은 관측하고 있는 계의 어떤 물리량이 그 표준편차(=불확정성)를 넘어서는 변화가 일어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인 셈이다.
시간 불확정성에 관한 이 정의로부터 실제로 에너지-시간 불확정성 원리가 만족함을 볼 수 있는 간단한 예가 있다. 특정 지점을 지나가는 자유 입자 파동 묶음(free-particle wave packet)이 그것이다. 아래 현란한 최신 기술을 동원해 그린 삽화가 있다.
free-particle wave packet
여기서 변화는 입자의 위치 x에 의해 측정되므로 위에서 언급한 '대폭적인 변화'의 기준은 위치의 표준편차(Δx, 위치 불확정성)가 된다. 이 경우 시간 불확정성은 위치의 기대값이 표준편차를 넘어 변화되는데 걸리는 시간이고 아래와 같은 식을 통해 얻을 수 있다.
Δt=Δxv=mΔxp
위치 불확정성을 속력(=위치 기대값의 시간 변화율)으로 나눈값이다.
한편 자유 입자의 에너지는
E=p22m
이므로 그 불확정성은 아래와 같은 식을 통해 얻을 수 있다.
ΔE=d(p22m)dpΔp=pmΔp
이제 이 에너지 불확정성과 위에서 구한 시간 불확정성을 곱하면
ΔEΔt=pΔp⋅Δxp=ΔxΔp
여기서 맨 마지막 항(ΔxΔp)은 익숙한 위치-운동량 불확정성 원리에 등장하는 그 항이고 우리는 이미
ΔxΔp≥ℏ2
임을 알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와 운동량의 불확정성의 곱이 불확정성 원리를 만족함을 알 수 있다.
ΔEΔt=ΔxΔp≥ℏ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