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크박스 뮤지컬, Jukebox Musical
대중음악을 주요 소재로 플롯과 얼개를 엮어 무대용으로 재탄생시킨 일련의 작품을 통틀어 지칭하는 뮤지컬이다. 대중성이 검증된 노래를 넘버로 구성하여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멜로디의 대중음악을 쓰는 것이 특징으로, 관객들에게 진입장벽이 낮고 상대적으로 일정 수준의 기대치를 충족하기 쉽기에 폄하되는 부분도 있으나, 무대 문법에 맞춰 해체와 배열을 통한 재구성 과정을 거쳐 하나의 극으로 완성됨으로써 무대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의미가 중요한 장르라 할 수 있다.
주크박스 뮤지컬이란 '도넛(doughnut)'이라고도 불리는 싱글 앨범이 가득 담긴 기계에 동전을 넣고 선곡 시 곡을 들려주는 음악상자(Jukebox)처럼 흘러간 예전의 대중음악을 무대용 콘텐츠로 재가공한 뮤지컬을 말한다.
주크박스 뮤지컬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 팝 뮤지컬(pop musical)이라는 용어도 있는데, 물론 이는 대중음악이라는 의미의 팝송(pop-song, popular song)을 무대의 소재로 활용했다는 의미에서 붙인 명칭이다. 즉, 주크박스 뮤지컬 혹은 팝 뮤지컬이란 과거의 인기곡을 활용해 노래들을 극적 구조에 맞게 맥락화한 뮤지컬을 일컫는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무대보다는 영상에서 먼저 각광을 받았다. 진 켈리가 공동연출 및 주연을 맡았던 '사랑은 비를 타고'는 기존에 이미 발표된 유명 음악들을 재구성해 극적인 변화를 거쳐 활용한 작품으로 주크박스 뮤지컬의 초기 형태로 대표적인 사례라 부를 만하다. 비틀즈의 11번째 정규 앨범 Yellow Submarine을 사운드트랙으로 사용해 제작한 애니메이션 영화 노란 잠수함(1968)도 초창기 주크박스 뮤지컬 형식을 활용한 문화적 생산물로 손꼽을 수 있는 영상물이다.
이후 1980년대에 접어들어 주크박스 작품은 영상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무대에 들어서 뮤지컬로 재탄생했고, 비로소 주크박스 뮤지컬이라 불릴 만한 작품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84년 제작된 'Leader of the Pack'이나 1989년작 'Buddy-The Buddy Holly Story' 등이 이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에 해당된다.
해당 시기를 지나 주크박스 뮤지컬은 런던에서 1999년 공연한 맘마 미아!의 대흥행 이후 급속하게 확산됐다. 이 작품은 1970-80년대에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던 스웨덴 출신의 혼성 그룹 ABBA의 음악들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데, 특히 뮤지컬에 등장하는 ABBA의 노래들은 가사의 변형 없이 원래 그 모습 그대로 불리며 절묘하게 이야기를 꿰맞춰 가는데, 바로 극작가였던 캐서린 존슨이 ABBA의 대부분 노래가 가족이나 우정, 사랑 등 일상사의 감성들로 이뤄져 있는 것에 착안해 고안해낸 스토리라인 덕분이라고. 이후 맘마미아는 독일이나 스웨덴 등 인접한 유럽 국가들은 물론 일본이나 브로드웨이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몰이에 성공하며 글로벌한 흥행 콘텐츠로 자리매김, 명실상부한 대표적인 주크박스 뮤지컬로 평가받는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대중성과 흥행 파급력을 체험한 뮤지컬 제작자들은, 유사한 형태의 접근을 통한 뮤지컬 진입 시도를 대폭 늘려 나갔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뮤지컬의 불확실한 대중성과 흥행 실패의 리스크를 피하고자 하는 접근으로 주크박스 뮤지컬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고, 소비자 입장에서도 향수를 자극하고 동시에 익숙한 노래를 듣는다는 개념의, 최소한의 기대치를 확보하기 쉽다는 측면에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 게다가 해당 음원을 확보하고 있는 제작사나 기획사, 해당 음악가의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 등도 주크박스 뮤지컬의 활성화를 극대화하는 요인으로 설명되고 있다. 특히 라이선스 뮤지컬 비중이 가장 높고 창작 뮤지컬은 상대적으로 적은 한국보다 영미권에서 이러한 주크박스 뮤지컬에 대한 시도가 많은 편이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크게 여러 가수의 노래를 엮어 만드는 형식의 컴필레이션 뮤지컬과 특정 뮤지션의 음악을 테마로 구성하는 어트리뷰트 뮤지컬로 구분된다. 앞서 언급한 맘마미아의 경우 대표적인 어트리뷰트 뮤지컬인 셈.
노래가 갖는 향수에게 흥행을 기댄다는 측면에서 주크박스 뮤지컬은 심심치 않게 스토리라인의 개연성이나 주요 인물의 설득력 부족, 플롯 자체의 완성도 등의 넘버 외적인 작품성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곤 한다. 맘마미아마저도 ABBA의 명성에 기대어 리스크만 낮춘 평범한 뮤지컬이라거나, 더 나아가 현대 뮤지컬의 재앙이라는 극단적인 평까지 있을 정도. 쉽게 중박 이상의 흥행 성공을 노리기에 주크박스 뮤지컬은 분명 준수한 선택지이기는 하지만, 평론가와 관객 모두에게 호평받으며 작품성과 흥행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명작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극의 전반적인 흐름과 줄기, 그에 따른 캐릭터의 입체성까지 잘 확보해야 하기에 쉽지만은 않다.
또한, 해외 라이선스 작품의 주크박스 뮤지컬은 익숙함이라는 강점이 국내에서의 번안 문제로 인해 약점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퀸' 열풍을 이끌었던 2018년작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예시에서도 알 수 있듯 일반적으로 관객들은 노래를 들으면서 이미 해당 곡들을 원곡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자막 제공이 가능한 영화와 달리 뮤지컬의 경우 원곡이 한국어로 번안되어 올라오니, 멜로디 이외의 가사적인 점에서 정서상의 이질감을 느끼는 관객들이 적지 않다는 것. 이는 국내 뮤지션들의 노래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보다 해외에서 가져오는 라이선스 형식의 주크박스 뮤지컬에서 자주 발생하는 원초적인 결함인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윌락유'나 '보디가드' 등 많은 주크박스 뮤지컬이 일부 곡은 원곡 그대로 부르거나, 주요 소절과 멜로디는 영어로 부르기도 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대중에 익숙한 노래 선택해 제작
국내 경기가 금융 위기 여파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곤 하지만 공연계가 실감하는 체감 경기는 바닥이다. 뮤지컬 시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09년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올 상반기 뮤지컬 시장도 최악의 상황이다. 뮤지컬 빅4에 해당하는 파워 브랜드인 <오페라의 유령>이나 <미스 사이공>이 공연하고 있지만 예전에 비해 형편없는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공연 시장이 경색되면 제작사들은 신작에 도전하기보다는 이미 흥행이 검증된 기존 작품들을 올리는 경향을 띤다. 올해 유독 신작을 찾아보기 힘든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고 매번 기존 작품만을 올릴 수는 없다. 신작을 제작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 마련이다.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브로드웨이 제작자들이 선택한 방법 중 하나가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주크박스 뮤지컬을 선도한 <맘마미아>
뮤지컬 <올 슉 업>이 3개월간의 공연을 마치고 얼마 전 막을 내렸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뮤지컬 제목을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일 텐데, 예상한 대로 엘비스의 노래 ‘All Shook Up’에서 제목을 따온 것이다. <올 슉 업>은 주크박스 뮤지컬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동전을 넣고 음악을 선택하면 흘러나오는 기계가 주크박스인데, 주크박스 뮤지컬이란 기존의 노래를 사용하는 뮤지컬을 말한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대중들에게 사랑받았던 노래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뮤지컬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큰데, 일단 대중들에게 사랑받았던 노래를 사용하기 때문에 합격점을 받은 노래를 확보하고 뮤지컬을 제작하게 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주크박스 뮤지컬들이 쏟아졌다. <위 윌 락 유>(2002, 그룹 퀸), <무빙아웃>(2002, 빌리 조엘), <아워 하우스>(2002, 매드니스), <타부>(2003, 보이 조지), <레논>(2005, 존 레논), <굿 바이브레이션>(2005, 비치 보이스), <저지 보이스>(2005, 포 시즌스), <대디 쿨>(2006, 보니 엠) 등 이외에도 수많은 주크박스 뮤지컬들이 2000년 이후에 등장했다.
그 출발은 1999년 런던의 프린스에드워드 극장에서 막을 올린, 아바의 노래로 만든 <맘마미아>였다. 작품이 올라가기도 전에 이미 1300만달러에 달하는 티켓을 판매했고, 캐나다, 호주, 미국, 서울 등 <맘마미아>가 상륙하는 도시마다 흥행 릴레이를 이어갔다. 국내에서는 2004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되었다. 예술의전당이 생긴 이후 처음으로 3개월 장기 공연을 했는데, 티켓이 없어 못 볼 정도로 대단한 흥행을 기록했다. 현재 부산을 비롯한 지방에서 장기간 순회공연하고 있는데, 불경기 속에서도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고 있다. 2008년 메릴 스트립, 피어스 브로스넌이 출연한 영화 <맘마미아> 역시 대단한 인기를 끌며 뮤지컬의 인기를 이어갔다.
<맘마미아>의 흥행 비결
<맘마미아>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주크박스 뮤지컬들 중 가장 성공한 뮤지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맘마미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바의 노래들을 훼손하지 않고 가사를 거의 그대로 사용해서 아바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드라마 역시 탄탄해서 극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제목 ‘맘마미아’(깜짝 놀랄 때 나오는 의성어)처럼 시종일관 놀라게 만드는 작품 콘셉트가 일관되게 유지된 것도 이 작품의 장점이다.
<맘마미아>는 결혼을 앞둔 소피가 엄마의 일기장에서 아버지로 추정되는 세 명의 남자를 발견하고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 아버지를 찾으려 한다는 이야기다. 다소 엉뚱하고 황당한 드라마가 흥미를 주는 데다 엄마 도나와 딸 소피의 모녀간의 사랑, 가족 찾기를 통해 성숙하는 소피의 성장 드라마가 감동적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바로 아바의 노래가 등장하는 방식이다. 아바의 노래가 전혀 엉뚱한 상황에 등장해 드라마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재미를 준다. 이를 테면 ‘The Name of the Game’의 가사 “짧은 시간 동안 당신을 두 번 만났어요. 우리가 만나기 시작한 건 겨우 일주일. 매번 만날 때마다 마음이 점점 열리는 것 같아요”는 연인에게 사랑 고백하는 내용인데 뮤지컬에서는 아버지 후보와 나누는 대사로 변한다. 게다가 노래의 전주마저도 없애거나 다른 음악으로 연주되다가 노래가 갑자기 나오게 해서 관객들을 ‘맘마미아’ 하게 만든다.
주크박스 뮤지컬, 성적은?
그러나 <맘마미아>처럼 흥행에 성공한 주크박스 뮤지컬은 몇 편 되지 않는다. 2007년 연말 국내 초연해 큰 인기를 끌었던 <올 슉 업>도 브로드웨이에서는 흥행에 재미를 보지 못했고, <레논>이나 <굿 바이브레이션>, <타부> 등의 주크박스 뮤지컬들 역시 프로듀서들에게 큰 재정적인 부담만 남기고 곧 막을 내렸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관객들에게 익숙한 노래를 사용하지만 이미 가사가 정해져 있어 그 노래를 드라마에 맞추기가 어렵다. <맘마미아> 같은 기적과 같은 사례가 없지 않지만 대부분의 주크박스 뮤지컬들은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데 한계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종종 가수의 일생을 드라마로 삼아 노래가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레논>이나 피터 앨렌의 삶을 다룬 <보이 프롬 오즈>, 포 시즌스의 <저지 보이스>와 같은 작품이 가수들의 삶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택했다. 한 인물의 다큐적인 구성은 주로 서사적인 전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루해지기가 쉽다. 결국 가수의 삶에 초점을 둔 주크박스 뮤지컬 중 <저지 보이스>만이 성공에 이르렀을 뿐 나머지 작품들은 처참한 실패를 맛봐야 했다.
정해진 노래를 가지고 만들 수 있는 드라마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국내의 주크박스 뮤지컬들은 주로 1970~1980년대 가요를 사용한 추억의 뮤지컬을 만드는 등 좀 더 폭넓은 노래들에서 취사선택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드라마를 풀어가는 데는 훨씬 자유롭지만 작품의 음악적인 스타일이 통일성을 갖지는 못한다.
류승룡과 염정아의 첫 만남으로 기대를 모으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국내 최초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의 탄생을 알리며 이목을 집중시킨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자신의 생일선물로 첫사랑을 찾아 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한 아내 '세연'(염정아)과 마지못해 그녀와 함께 전국 곳곳을 누비며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 남편 '진봉'(류승룡)이 흥겨운 리듬과 멜로디로 우리의 인생을 노래하는 국내 최초의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
국내 최초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즐기는 대중음악들로 구성되어 있어 기대를 모은다. 신중현의 '미인', 이문세의 '알 수 없는 인생', 'Solo예찬', 이승철의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임병수의 '아이스크림 사랑' 등 각기 다른 가수와 다른 장르의 음악들이 영화 속 인물들의 다양한 상황에 맞춰 다채롭게 펼쳐진다.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담긴 명곡을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생 이야기를 한편의 뮤지컬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밝힌 제작사 더 램프㈜ 박은경 대표의 기획 의도처럼 '인생은 아름다워'는 음악을 통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을 자극하며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예정이다. 한편, 뮤지컬 영화에 첫 도전한 최국희 감독은 "뮤지컬이란,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 펼쳐지는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나를 만나기도 하고, 상상의 세계를 담기도 한다. 노래마다 각각의 컨셉을 잡아 완성했다"고 연출 키포인트를 전해 국내 최초 뮤지컬 영화의 탄생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