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공포, 종교는 공포를 먹고 자란다
고대 종교 탄생을 이야기할 때 역사학자들은 공포가 신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자연재해, 무서운 짐승들에 대한 공포로 인해 사람들은 신을 모시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두려움이 부족 모두가 인정하는 하나의 신으로 바뀌기에는 단순히 공포만으로는 무언가 고리가 빠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빠진 고리를 찾기 위해선 우선 신이 먼저인지 주술사가 먼저인지에 대한 질문부터 던지고자 한다. 즉 어떤 종교가 생겨났기 때문에 그에 맞는 주술사가 생긴 걸까? 아니면 주술사가 생기고 나서 그 주술사가 말하는 대로 따라한 것이 종교일까?
이 부분은 마치 닭과 달걀과 같아서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증명을 하긴 힘들지만, 우회로를 통해볼 순 있다.
척박한 곳의 종교
척박한 땅의 종교라면 가장 대표적으로는 이슬람이 있지만, 이슬람은 고대 종교가 아니므로 잠시 접어두기로 하겠다. 이슬람 다음으로 유명한 것이라면, 북유럽의 토르, 오딘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토르와 오딘의 모습은 그리스 신들과 다르게 무척 사납고, 떠받들어야 하며, 아주 강한 형상으로 나온다는 점이다.
이런 신의 모습과 종교적인 모습은 척박한 땅에서 주로 나타난다. 이슬람 역시 사막에서 생겨났으니까.
왜 그런가 하면, 살기 힘들수록 의지할 곳을 찾는 게 사람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단순한 의지가 아니라 완전히 몸과 마음을 맡길 어떤 곳을 말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원하던 모습이 나타난다. 바위를 들고,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던가, 혹은 번개와 폭풍을 부르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물론 여기에는 과장과 뻥이 무수히 버무려져 있지만, 일단 사람들 눈에 그렇게만 보이면 그걸 진짜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상관없다. 즉 호랑이와 1:1로 싸워서 이기기만 해도 이제 사람들이 알아서 적당히 각색을 해줄 것이고, 혹은 본인이 직접 힘을 동원해서 믿도록 강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번개와 폭풍을 부르는 사람이 되는 법은, 굳이 그걸 부를 필요는 없다. 단지 언제 오는지만 알고 있어도 사람들 눈에는 번개와 폭풍을 부르는 것처럼 보이기엔 충분하다.
이런 모습들은 역사에도 조금 남아있다. 삼국지에선 제갈 공명이 바람의 방향을 바꿔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장비가 80킬로짜리 창을 휘두른다. 여기에 과장이 섞였겠지만 적어도 제갈 공명이 자연의 흐름을 읽을 줄 알던 것과, 장비가 상상을 뛰어넘는 힘을 가진 것은 분명 사실이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된 사이에 믿으라는 강요가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부채에 나오는 티브 족 이야기, 인육 부채 이야기를 보면 은근한 강요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강요가 설령 할아버지가 손주를 무릎에 앉혀놓고 매일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해도 말이다.
기름진 곳의 종교.
위와 다르게, 농사가 되고 물도 많은 기름진 땅에서 생긴 종교는 좀 많이 다른 모습을 띈다. 우선 위와 다르게 절대복종을 강요하진 않고, 무척 따스한 신들이 나온다. 우리나라에 삼신할머니나, 집을 지킨다는 문왕신, 조왕신, 측신, 성주신….. 과 같은 수호신들이 나온다. 또한 한 가지 특징은 여신들이 중심에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남신들에게 밀려서 역할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분명 여신들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는 있었다. 그건 아마 각 부족마다 있는 대모의 모습이 변한 걸 수도 있고, 인구는 적은데 할 일이 많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성의 지위가 높아서일 수도 있다. 혹은 정말로 어머니에 대한 부채감이 여신들을 낳았던가. 어떻든 여신들이 지배하던 세상은 평화로웠고, 폭력이 끼어들어서 신을 만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기름진 곳에 살다보면 기술이 발전하고, 인구도 늘어난다. 그러면 전쟁이 벌어진다.
그리고 승리자는 ‘신’이 된다. 파라오는 모든 전쟁에서 승리한 황제가 스스로를 신과 동격이라고 말함으로써 신이 되었고, 환웅도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 되었다.
이렇게 정복자가 신이 되며, 이런 곳들도 ‘강한 신’을 믿게 되었다. 원래 세상을 지배하던 여신들은 뒤로 밀려나고, 가부장이 등장했다.
특히 여신들이 밀려나고 가부장이 등장한 부분이 중요하다. 원래 삼신할머니는 한반도를 지배하던 시조신이었는데, 어느 순간 출산이나 도와주는 신으로 변해있고, 분명 시조신이었을 웅녀나 그리스 가이아 역시 애만 낳고 사라진다.
이런 부분들은 남자들이 그 당시 여자들에게 강요한 모습과 똑같다. 물론 여기에는 애를 낳는 일이 예전처럼 중요해지지 않아 생긴 시대적 문제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점은 이 모든 일이 전쟁이 한창 벌어지거나 벌어지고 나서 생긴 일이라는 점이다. 이런 이야기에 구체적인 근거는 없지만, 지금 우리가 고대신이라 부르는 것 중 기름진 곳의 신들은 거의 대부분 정복전쟁이 왕성하게 일어날 때나 정복전쟁이 끝난 다음 나타났다. 초대 파라오가 그랬고, 환웅도 나타나서는 곰신을 모시는 부족과 호랑이 신을 모시는 부족을 정복한 다음 할 일 많았을 곰신을 애만 낳고 사라지는 존재로 만들지 않았나.
고대 종교가 끼친 영향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회가 신을 만들었다고 해놓고선 종교가 사회에 미친 영향을 알아본다는 것은 좀 생뚱맞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종교가 사회에 다시 영향을 미쳤다. 이런 일들은 바로 ‘강한 사람들’ 즉 고대 사회에 계급에 높은 사람들이 신을 다룸으로써 일어난 일들이다.
종교와 권력의 관계
종교가 어마어마한 권력이 된다는 것에는 반론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종교는 정치권력, 그리고 소위 총부리에서 나오는 권력과는 많이 다르다. 총부리에서 나오는 권력은 총이 녹스는 순간 사라진다. 정치권력은 늘 사람들의 목소리를 어떻든 들어야 한다.
하지만 종교는 조금 다르다. 일단 자리만 잡으면, 노력이 딱히 없어도, 딱히 약자를 배려하지 않아도 종교의 힘은 유지가 된다. 이것이 정치권력과 비슷하게 바뀌면 또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지만, 그래도 종교가 가진 특유의 힘, 즉 강한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도 계속 노력을 한다. 사람들이 계속 종교를 자기 입맛에 맞는 데로 믿을 필요가 있으므로. 그래서 교리도 바뀌고, 신화도 무수히 바뀌어 왔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바뀐 신화’는 바로 고조선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조선을 끌어들인 첫 번째 나라는 다름 아닌 고구려다. 고구려는 고조선의 옛 영광을 되찾겠다며 정복전쟁을 정당화 했고, 스스로를 단군의 아들 해부루(부여의 시조)의 피를 이은 사람이라 말함으로써 당시 커다란 나라였던 부여를 통치할 정당성을 가져왔다.
그리고 고구려가 무너진 다음, 다시 단군과 기자를 끌어들인 건 다름 아닌 고려였다.
왜 굳이 고려가? 그건 고려가 삼국을 통일하고 나서 삼국은 원래 고조선에서 흩어져 나온 우리 삼국은 원래 하나였다. 라고 말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야지만 정복에도 정당성이 있다.
그리고 이 단군과 기자의 위치도 끊임없이 바뀐다. 어느 때는 단군이, 어느 때는 기자가 더 높았다. 이것은 바로 외교와 관련이 있다. 중국을 상국으로 모시려 했던 왕들은 모두 중국 출신 기자를 더 높은 왕으로 쳤고, 중국과 동등해지려고 한 왕들은 모두 단군을 높게 모셨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외교술을 정당화했던 것이다.
또한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모두 불교를 들여온데 역시 정치적 이유가 있다. 왕의 자리에 올라와 보니, 토착 세력을 굴복시키지 못해 왕이 별로 힘이 없었다. 그리고 이 토착 세력은 무당 세력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불교를 들여옴으로써, 무당 세력을 약하게 만들고, 토착 세력의 힘을 빼앗으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시도는 성공했다.
그밖에 일일이 예를 들을 수는 없지만, 이렇게 권력에 의해 신화가 바뀌고, 그것이 세상에 다시 영향을 미친 일들은 무수히 많이 일어났다. 조금 다른 이야기긴 하지만, 경제학자들 역시 완전한 자유시장 신화나 물물교환 신화를 주장했고, 그것은 엄청난 세상을 만들어내었다.
종교와 경제의 관계
그리고 종교는 늘 경제를 휘어잡았다. 물론 종교의 힘이 약할 때는 이야기가 다르지만 중국의 불교, 인도의 힌두교, 유럽의 기독교, 중부의 이슬람. 그밖에 고대 종교 역시 대부분 종교 중심으로 경제가 굴러갔다. 단지 조금 큰 예외라면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신 중심으로 굴러가진 않았지만, 황제가 최고 제사장 역할도 했으므로 완전히 신과 동떨어졌다고 하기는 힘들다.
중요한 건 종교가 경제를 휘어잡아서 뭘 만드냐는 점이다. 거의 대부분, 종교는 결과적으로 노예를 만들었다. 그것이 채무노예든, 부채노예든, 아니면 노예는 아니어도 이집트처럼 노예나 다름없이 살아가는 식이었다. 특히 고대 종교는 노예제도를 딱히 부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빚을 갚는 것이 도덕이라고 이야기 하며 빌려준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이런 부분은 어쩔 수 없었던 게, 빌려준 사람들이 바로 신을 만든 사람들, 즉 주술사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버트란드 러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종교의 일차적이고도 주요한 기반은 두려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여러분이 온갖 곤경이나 반목에 처했을 때 여러분 편이 되어 줄 큰형님이 있다고 느끼고 싶은 갈망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그 모든 것의 기초다. 신비한 것에 대한 두려움, 패배에 대한 두려움, 죽음의 두려움…… 두려움은 잔인함의 어버이 다. 따라서 잔인함과 종교가 나란히 손잡고 간다고 해서 놀랄 것은 전혀 없다. 이 세계를 사는 우리는 과학의 도움으로 이제야 사물을 좀 이해했고 어느 정도 정복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과학이 기독교와 교회에 맞서 또한 모든 낡은 교훈에 맞서 한 걸음 한 걸음씩 어렵사리 전진해 온 덕분이다. 인류는 세세손손 그 오랜 세월 비굴한 두려움 속에 살아왔으나 과학은 우리가 그러한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과학은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바로 우리의 마음도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고 본다. 이제는 더 이상 가상의 후원을 찾아 두리번거리지 말고, 하늘에 있는 후원자를 만들어내지 말고, 여기 땅에서 우리 자신의 힘에 의지해, 이 세상을, 지난날 오랜 세월 교회가 만들어 온 그런 곳이 아니라 우리가 살기 적합한 곳으로 만들자고 말이다.
종교는 문명에 공헌하였는가?
종교는 일차적으로 사회 현상의 하나다. 교회가 처음 생겨난 데는 개인적으로 굳은 확신을 지닌 스승들의 힘이 컸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구축한 교회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반면에 교회는 집단들 속에서 번성하면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서구 문명에 속한 사람들에게 최고 관심사가 되고 있는 예를 하나 들어보자.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가르침은 기독교인들의 윤리와 엄청나게 큰 거리를 유지해왔다. 사회적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가 아니라 교회이기 때문에 만일 여러분들이 사회적 세력으로서의 기독교를 판단하려 한다면 복음서들을 재료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수는 가난한 자들에게 재산을 나눠 줄 것이며, 싸우지 말 것이며, 교회에 가지 말 것이며, 간음을 벌하지 말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구교도 신교도들은 이런 점들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강한 의욕을 보여준 일이 없다.
이렇게 교육받은 젊은이들도 성인의 문턱에 들어서게 되면 자신이 불의와 잔인함과, 막을 수도 있었던 불행으로 온통 가득 찬 세상에 던져졌다고 느끼기 쉽다.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불의와 잔인함과 불행함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서 그 궁극적 근원은 경제에 있다. 예전에는 생계 수단을 사이에 두고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는 것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서는 이런 싸움이 불가피하지 않다.
지식은 그것이 어떠한 보편적 행복을 보장해 주느냐에 따라 존재한다. 종교적 가르침은 그러한 목적으로 지식을 활용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주요 방해물이다. 종교는 우리의 아이들이 합리적인 교육을 받는 것을 방해한다. 우리가 전쟁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려는 것을 방해한다. 죄와 벌이라는 낡고 험악한 교리 대신에 과학이 뒷받침된 윤리를 가르치는 것을 방해한다. 인류는 이제 황금시대의 문턱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먼저 이 문을 막고 있는 괴물부터 처치해야 하는데 그 괴물이 바로 종교인 것이다.
나는 이렇게 믿는다
종교는 공포에 그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일정한 류의 공포들에 고귀함을 부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함부로 여기지 못하게 만들어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종교는 인류에게 커다란 해악을 저질렀으니, 모든 두려움은 나쁘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나는 내가 죽으면 썩어 없어질 뿐 나의 에고 따위가 남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내 나이 젊지는 않지만 삶을 사랑한다. 그러나 내가 허무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공포로 몸을 떠는 모습에 대해선 경멸한다. 행복이 진정한 행복일 수 있는 건 그것에 끝이 있기 때문이며, 사고나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들이 제 가치를 잃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수대에 올라가서도 당당하게 처신했다. 세상에서 인간의 위치가 어디인지에 대해 진실하게 사고하도록 우리를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당당함이다. 우리가 아늑한 실내에서 인간화된 전통적 신화들이 주는 온기에 묻혀 있다가 과학이 열어 준 창을 내다봤을 때 처음엔 몸이 떨리지만 결국에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힘을 얻게 되며 거대한 우주도 제 나름의 장엄함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예속된 초기 기독교인들의 자위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개인적 구원이라는 관념은 우리가 극히 협소한 훌륭한 삶 개념에서 벗어나는 순간 불가능해진다. 정통 기독교적 개념의 훌륭한 삶은 덕 있는 생활인데 이때 덕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하나님의 뜻은 양심의 목소리를 통해 각 개인에게 드러난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에서 이런 식으로 행동 할 수 있는 것은 미치광이 밖에 없다. 귀족주의적 이상에 내포된 동정심의 한계야말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구원은 귀족주의적 이상이다. 왜냐하면 개인주의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근거에서 볼 때 어떻게 해석하고 확대하더라도 개인의 구원 역시 훌륭한 삶의 정의에 도움이 될 수 없다.
인간은 죽은 뒤에도 존재하는가?
실상 어제의 나란 것은, 지금 기억에 남겨져 있기 때문에 지금 그것들을 회상하는 그 사람 역할로 간주되어지는 어떤 정신적 사건들에 불과하다. 한 사람을 구성하는 것은 기억과, 이른바 습관이라 불리는 류와 비슷한 어떤 것들로 연결된 일련의 경험들이 전부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죽은 후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으려면 먼저 그 사람을 구성하는 기억과 습관들이 새로운 사건 환경에서도 계속해서 나타난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우리의 기억과 습관은 뇌의 구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이것은 강물과 강바닥이 관계 맺는 방식과 흡사하다. 강 속의 물은 항시 바뀌지만 늘 같은 길로 흐른다. 과거에 내린 비가 길을 터 놓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사건들이 뇌 속에 길을 터 놓으면 그 길을 따라 우리의 생각들이 흐른다. 기억과 정신적 습관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구조로서의 뇌는 사람의 죽음과 함께 해체되어 버리며 따라서 기억 역시도 해체된다고 예상할 수 있다. 지진이 일어나서 계곡이 있던 곳에 산이 생기면 강물이 옛 길을 고집할 수 없듯이, 우리로선 그밖에 달리 생각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이 같은 혐오스러운 행위들과 그들을 자극하는 윤리론들이 과연 지적인 창조주의 증거일 수 있을까? 또한 우리는 이런 짓을 한 사람들이 영원히 살기를 진심으로 바랄 수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혼돈과 우연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인간 세상이 세심한 목적에서 나온 산물이라고 한다면 그 목적은 아마도 악마의 목적이었을 것이다. 나로서는 우연이라고 보는 것이 좀 덜 고통스러우며 보다 그럴듯한 가정이라고 생각된다.
마담, 그럴까요? - 아니, 그렇지 않아요
현상과 실체 사이의 간극은 너무도 깊기 때문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한, 어떤 경험이 다른 경험보다 완전한 실체에 더 가깝다고 생각할 하등의 근거도 없다. 그러므로 문제시되는 경험들의 가치는 전적으로 그 정서적 질에 달려 있는 것이지, 브래들 리의 입장처럼, 이 경험들이 지니고 있을 것 같은 진실의 정도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입장이 옳다하더라도, 이 경험들은 고작해야 이론화하는 데서 오는 위안일 뿐 철학에서 오는 위안은 되지 못한다. 궁극의 진리를 추구하는 이유들 속에 이러한 경험도 꼽히는 것은 그것이 길을 가다 얻을 수 있는 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궁극의 진리를 얻은 데 대한 포상 축에 끼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 꽃들이 도정의 첫머리에서만 자라다가 우리가 그 길의 종착점에 도달하기 오래전에 자취를 감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유와 대학
특히 학문의 자유는 원래 교회의 자유의 일부였던 관계로 영국에서는 헨리 8세 시절에 시련을 겪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부의 형태가 무엇이냐를 떠나 모든 국가에서 자유를 보존하려면 국가로부터 일정 정도 독립된 사람들의 단체가 존재해야 하며, 대학도 그러한 단체들에 속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명목상 민주적인 당국에 소속된 대학들보다 사립대학들이 더 많은 대학의 자유를 누리는데 이러한 현상은 정부의 올바른 기능에 대한 오해가 너무도 널리 퍼져있는 데서 기인한다.
민주주의의 권력 남용은 특히 위험스럽다. 즉, 집단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군중 심리에 자극받기 쉽다. 군중의 마녀 사냥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데 재주가 있는 자는, 다수에 의한 권력 행사가 습성이 되어 압제에 대한 열광과 충동이 발생하는 민주주의에 악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권위는 행사하다 보면 대개 그러한 열광과 충동을 낳기 마련인 것이다. 이 같은 위험에 대비한 주요 방비책은 집단적 증오의 비합리적 분출 풍조와 맞서 싸우도록 기획된 건전한 교육이다.
학문의 자유에 반대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용인하지 않는 주장을 퍼뜨리는 것과 관련해 방법만 있다면 이 나라를 독일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릴 것이다. 그들은 조직화된 압제로 개인의 사고를 대신하려 들 것이며, 새로운 것은 무엇이든 배척할 것이며, 사회를 경색시킬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류 역사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하는 일련의 세대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작게 보이는 사안에서든 가장 큰 사안에서든 문제가 되는 것은, 인류에 대한 자신의 믿음과 희망을 표현할 수 있는 개인간 정신의 자유라는 점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믿음과 희망에 공감하는 자가 많든 적든 혹은 전혀 없든 말이다. 새로운 희망, 새로운 믿음, 그리고 새로운 사상은 시대를 막론하고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며, 이러한 것들이 생명 없는 획일주의로부터 생겨나리라고는 결코 기대할 수 없다.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코플스턴 : 그럼 이제 내 입장을 요약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나는 두 가지 점을 주장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실제는 형이상학론에 의해서 철학적으로 증명 될 수 있다. 둘째, 인간의 도덕적 경험과 종교적 경험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실재뿐이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간의 도덕적 판단에 대한 경의 설명 방식은, 경의 이론이 요구하는 것과 경 자신의 자발적인 판단 사이의 충돌로 이어질 게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뿐만 아니라 경의 이론은 도덕적 의무를 교묘하게 둘러대고 넘어가 버리는데, 둘러대고 넘어가는 것은 설명이 아니지요. 형이상학론에 있어서는, 우리가 세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우연 존재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데 대해 우리 둘 다 분명히 일치합니다. 즉,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의 실재를 설명할 수 없는 존재들로 구성되어 있지요. 사상들의 연속물에는 설명이 불필요하다고 경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만일 필연 존재, 즉 실제해야 하는 동시에 실재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가 없다면 아무것도 실재하지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우연 존재들의 연속의 무한성은, 설사 그것이 입증된다 하더라도, 아무 관련성도 없을 것입니다. 무엇인가가 분명 실재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설명하는 무언가가 존재해야 하며 그것은 우연 존재들의 연속 그 바깥에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러셀 : '우연적'이란 말은, '그저 거기에 있음'의 이른바 그 우유성을 띠지 않는 어떤 것의 가능성을 불가피하게 암시하므로 순수 하게 인과적인 의미에서가 아닌 한 나는 옳다고 보지 않습니다. 때로는 어떤 것을 다른 어떤 것의 결과로 보면서 인과적 설명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떤 것을 다른 것의 탓으로 돌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볼 때는 코플스턴 신부님이 뜻하는 바와 같은 설명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물을 '우연적'이라고 하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물이 달리 존재할 길이 없기 때문이죠.
도덕론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인류학이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나로선 끔찍하게 생각되는 행위를 실행하는 것이 자기들의 의무인양 생각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도덕적 의무의 내용이 하나님에게 기원이 있다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으며 코플스턴 신부님도 나에게 그렇게 생각하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이를테면 제 아비를 잡아 먹는 것과 같은 일을 사람에게 명하는 형태로 될 때는 도덕적 의무의 형식조차도 그다지 고상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는 도덕적 의무감이란 것이 하나님에게 기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으며 그것은 전혀 다른 방식들로 아주 쉽게 설명될 수 있다고 봅니다.
종교와 도덕
나는 독단적 신앙심이 쇠퇴하면 악 밖에 생겨날 것이 없다고는 믿지 않는다. 나치즘이나 공산주의 같은 새로운 체계의 독단이 구체계보다 더 나쁘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 정통적 독단주의적 습성이 주입되지 않았던들 이러한 새로운 것들이 사람들의 정신을 사로잡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탈린의 언어는 자신이 훈육 받았던 신학교에 대한 회고로 가득 차 있다.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독단이 아니라 과학적 탐구의 태도이며 더불어, 수백만이 고통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하는 믿음도 필요하다. 그 고통이 스탈린이 야기한 것이든, 혹은 믿는 자들과 닮았다고 상상되는 신이 야기한 것이든 말이다.
Bertrand Russell wrote that 'religion is based primarily and mainly upon fear'.
The most powerful aspect of Bertrand Russell's critique of religious belief is his claim that religion is based on fear, and that fear breeds cruelty. His philosophical arguments against the existence of God may not touch the lives of many ordinary people, but his more psychological point about fear has to be taken seriously by all of us. In his 1927 lecture "Why I am not a Christian" – delivered to the south London branch of the National Secular Society – Russell expressed his point with characteristic clarity: "Religion is based primarily and mainly upon fear. It is partly the terror of the unknown and partly the wish to feel that you have a kind of elder brother who will stand by you in all your troubles and disputes. Fear is the basis of the whole thing – fear of the mysterious, fear of defeat, fear of death. Fear is the parent of cruelty, and therefore it is no wonder if cruelty and religion have gone hand in hand. It is because fear is at the basis of those two things." No doubt he was preaching to the converted on this occasion.
There are actually two elements to Russell's diagnosis of religion here. The first is that religious belief is a symptom of fear: aware that our lives are precarious and vulnerable, we seek the protection of a powerful deity, to comfort ourselves with an illusion of safety. The second is that fear is a symptom of religion: in particular, doctrines of punishment in both this life and the next cause ignorant believers to live in fear unnecessarily. There is little doubt that this analysis has some truth on both points; perhaps it explains quite accurately the causes and effects of religious belief in a significant number of cases. But do such cases represent religion itself, or are they a distortion of it?
We will focus here on Christianity, since this is the tradition that Russell was mainly concerned with. While Russell argues as if his rejection of fearful belief and fear-inducing dogma comes from an atheistic perspective, the Christian tradition itself contains a vigorous critique of fear. The First Letter of John, for example, puts forth the basic tenet that "Whoever does not love does not know God, for God is love", and suggests that fear and love are incompatible with one another: "There is no fear in love, but perfect love casts out fear; for fear has to do with punishment, and whoever fears has not reached perfection in love." In fact, Russell echoes this sentiment in a 1912 essay on "The Essence of Religion, where he writes that "fear tends more and more to be banished by love, and in all the best worship fear is wholly absent." But he did not need to appeal to any biblical text in arguing that "fear is the parent of cruelty", because it is a basic psychological fact that love is inhibited and distorted by fear.
In the 17th century, Spinoza – whom Russell described as "the noblest and the most lovable of the great philosophers" – invoked the First Letter of John to attack the persecution of non-conformists by the Dutch Reformed church. The violent dogmatism witnessed by Spinoza is exactly the sort of thing emphasised by modern atheists who claim, like Russell, that religion is a harmful force in the world. But Spinoza attacked "superstitious" forms of religious belief, which are characterised by fear, as a dangerous perversion of a purer Christian teaching found in the New Testament. Prefacing his Theological-Political Treatise with a verse from the First Letter of John, Spinoza implied that the church was failing by precisely those Christian ethical standards which it claimed as its own.
Another example of a Christian critique of fear can be found in Kierkegaard's analysis of the theological concept of sin. Traditionally, pride has been identified as the fundamental form of sinfulness, but Kierkegaard argued that human psychology is darkened by an inseparable combination of pride and fear, which both get in the way of love. This means that the Christian ideal of love requires us to battle against both pride and fear, to combine humility with courage. According to Kierkegaardian theology, fearful religion is sinful religion.
These two brief examples suggest that the Christian tradition has the resources not only to recognise the dangerous consequences of fear, but to scrutinise them closely and provide a spiritual response to them. However, this is not the sort of perspective that Russell was prepared to explore in his philosophical work. He was certainly unwilling to invoke the Christian doctrine of original sin – presumably because it was closely associated with the Victorian moralism that, to Russell's disgust, lingered long into the 20th century.
But his atheist disciples may be surprised to discover that privately Russell found some meaning in the concept of sin. In his autobiography he describes a visit in 1952 to a small Greek church, where he became aware within himself of "a sense of sin" which, to his astonishment, "powerfully affected" him in his feelings, though not in his beliefs. If Russell had followed Kierkegaard in paying more heed to such "feelings", he might have come closer to understanding that fear is a religious problem, and not just a problem with relig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