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한국사/조선

조선 후기 상업, 두문자 암기

Jobs9 2023. 10. 1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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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상업 두문자

● 조선상업사- '지방 한선경(이) 대만주(를 먹고) 개인방송(을 해서) 동대상(탔다)'

지방 지방대상인 장시

한 한강 중심

선 선상=경상

경 경강상인-객주

대 대청對淸

만 만상灣商

주 의주 신의주

개 개성

인 인삼재배

방 송방

송 송상

동 동래

대 대일

상 내상


 

사상의 활발한 활동

 

1. 상업 발전의 배경

   - 18세기를 전후하여 농업생산력이 증대되고 수공업 생산이 활발해지면서

      상품의 유통이 활성화되었다.

   - 대동법과 널리 확산된 부세 및 소작료의 금납화는

      상품화폐경제의 진전을 촉진시켰다.

   - 조선 후기에는 인구의 자연 증가 및 농민의 계층 분화가 심화되었고,

      농촌의 인구가 도시로 유입되고 그들이 상업 인구 또는 소비 인구가 되면서

      상품의 유통이 매우 활발해졌다.

 

2. 6의전을 제외한 금난전권 철폐

   (1) 신해통공(1791,정조)과 갑인통공(1794, 정조)

       - 30년 이내에 설치된 시전은 모두 철폐하며 금난전권도 육의전에 국한한다.

          이는 상품을 소상인이나 소상품생산자도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도록 한 조치다.

       - 평시서와 6의전은 갑오개혁 때 폐지

 

   (2) 배경

       : 국가재정 수입을 증가시키고 상공업의 진흥을 통해 국가 경제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① 직접적 동기

          - 영의정이었던 채제공과 같은 정권 담당자를 통해

             실학자들의 생각이 어느 정도 정책에 반영된 결과였다.

          - 시전상인들의 금난전권을 과도하게 사용하여 물가가 상승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였다.

 

       ② 근본적 배경

          - 변화하는 상업유통구조 및 체제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금난전권 이외의 새로운 대응이 강구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난전권을 행사하는 특권상인에 대한

            도시빈민층, 영세상인, 소생산자층의 꾸준한 저항이 뒷받침된 된 결과였다.

 

          - 양반지주들의 생산물을 주로 취급하면서 성장해온

             특권상인의 폐쇄적이고 독점적인 유통경제구조로는

             직접 생산자인 일반 농민의 잉여생산물 증대로

             확대되어 가는 개방적인 유통경제구조를

             더 이상 담당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반영한 결정이다.

 

       ③ 정치적 의도

          - 시전상인과 연결된 노론의 정치자금원을 차단하여

             노론 벌열의 세력을 약화시키면서

             또한 남인 집권층의 정치자금을 확보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있었다.

 

   (3) 의의

       - 17~18세기에 일어난 상품유통구조의 변화와 사상층의 대두,

          그들에 의한 신전 창설 및 시장권 확대라는 일련의 변화를 수용하여

          시전체계의 재편을 꾀한 정책이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  이로써 넓게는 지주들, 좁게는 기득권층의 생산물을 취급하는 대가로

          독점판매권을 누리던 시전상인들의 특권이 박탈되고,

          농민들의 생산물을 취급해온 도시와 그 주변 소상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상품유통구조의 변혁이 일어났다.

 

   (4) 영향 :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상인층의 계층분화 및 도고상업의 대두를 촉진시켰다.

 

3. 조선 후기 상업 활동의 주역

   - 공인과 사상

   - 처음에는 공인들이 상업활동을 주도하였다.

   - 18세기 이후에는 사상들이 서울을 비롯한 각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4. 공인의 등장과 성장

   (1) 공인의 의미

       - 대동법 실시 이후 공납청부업자로서 출현한 관허 어용상인이다.

   (2) 공인의 지정

       - 시전상인, 장인, 사주인과 경주인 등 

   (3) 의무

       - 공인들은 수시로 공인세, 국역을 부담하였다.

         한편으로 조선 정부의 재정악화로 조달품의 값을 지불받지 못하거나,

         시가보다 낮게 받는 낙본의 경우도 많았다. 

   (4) 물품 구매활동과 성장

       - 조달권을 가진 상품에 대해 금난전권을 행사하거나,

          수공업품제품인 경우 선대제적 수공업장을 경영하거나,

          조총 생산장을 가지고 기술자를 고용해서

          공장제 수공업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특권적 도고 상인으로 성장도 하였다. 

   (5) 계를 조직

       - 공인들은 같은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는 상인들끼리 공동출자해서 조직하였다.

 

5. 사상의 활동

   (1) 사상의 활동

       - 주로 칠패, 송파 등 도성 주변에서 이루어졌지만

          개성, 의주, 동래 등 지방도시에서도 활발하였다.

       - 각 지방의 장시를 연결하면서 물품을 교역하고,

          각지에 지점을 두어 상권을 확장하기도 하였다.

 

   (2) 거상의 대두

       ① 경강상인(선상)

          - 경강과 서남 연안의 포구를 중심으로 운송업에 종사하면서

             전국의 포구와 내륙강변을 연결하는 유통권을 장악하여

             막대한 자본을 축적하였고, 점차 선박을 이용하여

             곡물도매상으로 발전

             서울에서 소비하는 연간 100만 섬이 넘는 쌀 가운데

             절반 이상을 조달하였다. 

          - 한강을 이용하여 운수와 조선을 통해서

             돈을 벌기도 하고 미곡, 소금, 어물 등을

             경기도와 충청도일대에 판매하여 막대한 이득을 취하였다.

 

       ② 개성의 송상

          - 전국에 송방이라는 지점을 설치하여

            육로를 통한 유통권을 장악한 상인으로서

         - 주로 인삼의 재배와 가공업에 진출하기도 하였으며,

            대외무역에도 깊이 관여하였고 정권과도 유착되었던 도고 상인이었다.

         - 의주와 동래 상인을 매개로 하여 청 ∙ 일 간의 중계무역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선 복식부기 사용

 

       ③ 의주의 만상 : 객주로서 중간후시나 책문후시에서 청상인과 사무역, 중개무역을 하였다.

       ④ 평양의 유상

       ⑤ 동래의 내상 : 일본과 사무역

 

   (3) 중도아 : 중간 도매상 - 서울 부근의 송파, 칠패, 이현, 누현 등 시장을 상대

   (4) 감고 : 도량형을 담당

   (5) 거간 : 거래 중개인

 

   (6) 都賈 (도고)의 대두

       ① 의미 : 상품을 매점하거나 독점하는 상행위

       ② 유형

          - 관상도고 : 시전상인, 공인, 경주인, 영주인 (금난전권을 바탕으로 형성)

          - 사상도고 : 객주, 여각, 경강상인, 개성상인, 의주의 만상, 동래의 내상

       ③ 영향

          - 유통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상업자본의 축적을 가져왔으며

             그 자본의 일부가 정치자금에 이용되었고 국가의 탈세행위가 논란이 되었다.

          - 관상도고인건 사상도고이건 그들의 독점적 상행위는

             상인계층 분화를 초래하였으며, 물가 폭등 등 사회문제를 일으켜,

              피해를 직접 느끼고 있던 도시 빈민층의 반발이 일어났다.

          - 농촌시장에서 성장하고 있던 소생산자의 반발과 농민항쟁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 국가는 도고상업이 국가와 민생에 끼치는 폐단을 우려하여 이를 막는 정책에 부심하였다.

             * 관상도고에 대한 반도고운동 : 난전으로 불려지던 사상층, 민간수공업자

             * 사상도고에 대한 반도고운동 : 소비자층과 소생산자의 반발

               ---> 순조 33년(1833) 경강상인들이 값을 올리기 위해

                       쌀을 매점매석함으로써 서울 싸전들이 문을 닫을 정도였고,

                       이 때문에 쌀을 구하지 못한 도시 빈민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사태가 벌어졌다.

                       농촌의 소생산자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으며,

                       농민항쟁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홍경래의 난 이후 제기된 민심 수습책 가운데

                       각종 물화의 도고를 혁파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6. 서울과 그 주변의 변화

   (1) 서울

       - 행정구획이 4대문 밖으로 확대되었고,

         서울에 종로(4대문 안), 이현(동대문 밖),

          칠패(남대문 밖) 등의 3대 상가를 형성하였다.

 

   (2) 서울 주변의 변화

       - 경강상인의 활동으로 뚝섬에서 양화진에 이르기까지

          한강유역에 많은 나루터가 늘어났으며,

          지방민의 서울유입으로 도성 밖에 많은 신촌이 건설되었고,

          지방상품이 서울로 들어오는 서울근교 길목에 새로운 상업의 거점이 형성되었다.

          * 광주의 송파 : 영남과 강원도지방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상경로

          * 양주의 누원점 : 동북지방에서 육로로 서울로 들어가는 상경로

          * 포천의 송우점

          * 퇴계원점

 


  

장시의 발달

 

 

1. 장시와 특수시장

   (1) 장시의 증가와 확산

       - 15세기 말 남부지방에서 개설된 장시는

          18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전국에 1000여 개소가 개설되었다.

       - 5일장 : 인근의 장시와 연계하여 하나의 지역적 시장권을 형성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 일부 장시는 상설시장이 되기도 하였다.

       - 일부 장시는 전국적인 유통망을 형성하는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 광주의 송파장, 안성 읍내장, 은진의 강경장, 전주 읍내장, 남의 읍내장, 창원의 마산포장, 평창 대화장, 덕원 원상장, 박천 진두장, 황주 읍내장 등

 

   (2) 특수시장의 등장

       - 약령시 : 대구, 청주, 공주에서 봄, 가을로 개장된 약재시장

       - 파시 : 해산물을 거래하는 장시

 

2. 장시의 기능과 농민들이 선호

   (1) 장시의 기능

       - 지방민의 교역 장소만 가진 것이 아니라,

         농민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음식을 즐기며,

         각종 놀이도 구경하는 축제의 장소이기도 하였다.

   (2) 농민들이 선호

       - 행상보다 싸게 물건을 구입하고 비싸게 팔 수 있어 농민들이 선호하였다.

 

3. 보부상

   : 농촌의 장시를 하나의 유통망을 연계시킨 상인으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 장날의 차이를 이용하여

     일정지역 안이나 전국적인 장시를 무대로 활동하였다.

   (1) 보상

       - 비교적 값비싼 필묵, 금 ∙ 은 ∙ 동제품 등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 다니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판매하는 봇짐장수를 가리킨다. 

   (2) 부상

       - 나무 그릇, 토기 등의 비교적 조잡한 일용품을

          지게에 지고 다니면서 판매하는 등짐장수를 말한다.

 

 

 

포구에서의 상업 활동

 

1. 포구의 성격과 성장

   : 도로와 수레가 미발달로 물화의 대부분이 육로보다는 수로를 통해 많이 운송됨

   (1) 조선 전기 : 세곡이나 소작료 운송의 기지 역할을 하였다.

  (2) 조선 후기 : 18세기에 이르러 상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 선상의 활동 : 전국 각지의 포구가 하나의 유통권을 형성하여 갔다.

          특히 칠성포, 강경포, 원산포 등의 포구에서는 장시가 열리기도 하였다.

       - 포구를 거점으로 상행위를 하는 상인 : 선상, 객주, 여각

 

2. 포구에서의 상업 활동

    (1) 선상

         - 선박을 이용해서 각 지방의 물품을 구입해 와 포구에서 처분하였는데,

           운송업에 종사하다가 거상으로 성장한 경강상인은 대표적인 선상이었다.

           그들은 한강을 근거지로 주로 서남 연해안을 오가며,

            미곡, 소금, 어물 등을 거래하였다.

 

   (2) 객주, 여각

       - 둘은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 특별히 구분한다면,

          객주는 모든 상품을 취급하고,

          여각은 소금과 어물을 취급했다고 하며,

          또한 객주는 자본규모가 작고, 여각은 자본규모가 컸다고 한다. 

      -  정부에 바치는 금전도 취급하면서 정부의 보호도 받게 되었고

          개항초기 외국무역 담당자로 또는 상품위탁판매자로 대두하여

          새로운 자본계급으로 성장하였으나 1930년 이후 약화되어 갔다.

 

      - 육상교통과 각 포구 등 교통의 요지에서 도고로서

         상품 도매와 위탁 판매, 부수적으로 운송, 보관, 숙박, 자금대부,

         어음발행, 예금어부의 금융 등의 영업도 하였다.

 

     - 객주의 종류 : 보행객주와 물상객주로 나눈다.

        보행객주는 숙박업을 주로 하였고,

        물상객주는 상업금융기관으로서의 기능이 컸다.

 

 

 

중계무역의 발달

 

1. 무역의 교역품

   : 주로 청과 일본을 대상으로 하여 삼각관계를 맺으면서 전개되었다.

     개성의 송상은 의주의 만상과 동래의 내상 양자를 중계하여 큰 이익을 남겼다.

   (1) 청 : 의주의 만상은 대중국 무역을 주도하면서 재화를 많이 축적

       ① 수출 : 은, 가죽, 종이, 무명 등 19세기 이후로는 개성 인삼(홍삼)이 중심

       ② 수입 : 비단, 모자, 약재, 말, 문방구

 

   (2) 일본 : 왜관개시(동래 상인)

       ① 수출 : 인삼, 쌀, 무명, 청에서 수입한 물품을 중개함

       ② 수입 : 은, 구리, 유황, 무소뿔, 후추

 

2. 대청 무역

   (1) 조공무역

       - 공식사절(조공사)에 따라 무역, 연경무역을 주도한 것은 역관들이었다.

   (2) 개시무역 (대외 교역시장)

       ① 중강개시 (압록강 의주의 대안인 중강 : 압록강의 난자도)

           - 선조 26년(1593) : 임진왜란 중 명나라의 요동 쌀 수입목적으로 설치되었으나

                                         곧 폐지되었다.

          - 인조(1627) : 정묘호란이후 공식화된 최초의 공무역 장소이다.

       ② 회령개시(북관쌍시) : 1623년(인조) 개설되어 1884년(고종)에 자유무역시장으로

       ③ 경원개시(북관쌍시) : 1646년(인조)에 청의 요청으로 격년제로 열림

       ④ 왜관개시(부산 동래)

 

   (3) 후시무역(사상들이 전개한 밀무역, 때로는 허용되거나 폐지되었다)

        ① 중강후시

           - 중강개시가 활발해진 후 양국관리의 눈을 피해 점차

              중강후시라는 밀무역으로 변화되었다. 이때 주로 의주 만상이 활동하였다.

              이러한 사무역은 책문후시로 발전하였다.

        ② 책문후시(대한제국 말기까지 존속됨)

            - 가장 대표적이며 양국사신의 왕래를 따라 책문에서

                요동상인과 의주의 만상, 개성의 송상간의 밀무역 성행

        ③ 단속사후시의 발생

            - 정부에서 취재관으로 단속사를 파견하여 감독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감독관이 도리어 사무역을 하는

              단속사후시가 발생하였다.

       ④ 회동관후시

          - 조공사행의 사신 유숙소인 회동관에서 사신 수행원들의 밀무역

       ⑤ 북관후시(경원)

       ⑥ 왜관후시(부산 등의 왜관)

 

   (4) 팔포무역

       - 사신 수행원인 통역관(부연역관)에게 확대 공인되었다.

       - 기술직 중인의 사무역은 연행사신의 공적 관행인

          공무역을 보완하는 상행위로서 밀무역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들의 상행위는 난전과 함께 지하경제의 중추가 되면서

          정부당국자의 지탄의 대상이었다.

 

3. 영향

    (1) 17세기 말 이후 대외무역의 주체는 사무역으로 공무역을 압도하였다.

       - 17세기 중엽 이래 상업 활동이 국외에까지 확대되어

          사무역이 크게 번성하였다.

   (2) 17세기 중엽 이후 18세기 중엽까지 100년간

         - 송상, 만상, 내상 등은 청국과 일본과의 중계무역으로

           많은 자본을 축적하였다.

    (3) 문제점

        - 수입품 중 사치품이 많았고, 수출품 중 은과 인삼이

           큰 비중을 차지하여 국가 재정과 민생에 피해를 줌

 

 

 

화폐의 유통

 

1. 배경

   - 대동법 실시 후 상공업 발달 및 상품화폐경제의 성장 그리고

      조세 이외의 지대 금납화 경향으로 교환 거래의 규모가 점차 확대되었다.

   - 한양을 중심으로 유통시장에서는 심각한 은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 17세기 후반의 유통 경제적 조건은 법적인 화폐로서 새로운

      명목화폐의 출현이 불가피했다.

   - 동전의 원료인 구리는 18세기 후반부터

      동광의 개발이 활발히 추진되어 공급이 쉬어졌다.

 

2. 상평통보

   (1) 숙종(1678) : 허적 주장 - 주전도감 설치

   (2) 전국적 유통(숙종, 17세기 말) → 1차 유통수단(18세기 후반)

   (3) 주조

       - 처음에는 호조와 상평창이었으나 이 두 관청의 발행만으로는

          화폐수요를 충당할 수 없었다.

       - 이 때문에 훈련도감, 어영청, 수어청 등의 군영과 지방관청

         그리고 한때는 민간업자에게까지도 화폐발행권을 주었다.

       - 한편으로 동전 발행에 대한 통제가 해이해지면서

          사적으로 주조하는 경우도 있었다.

 

3. 신용화폐의 보급

   - 동전은 곡물이나 옷감에 비하여 간편하긴 했지만

      중량 때문에 대규모 상거래에서는 불편하였다.

   - 환, 어음 등의 신용화폐가 이용되었다.

     이는 이 시기 상품화폐경제의 진전과 상업자본의 성장을 나타내는 것이다.

 

4. 영향

    (1) 상품 유통의 촉진과 전통 사회체제 해체

        - 화폐 유통의 활발은 상호 인과적으로

           상품 생산과 교환경제를 촉진시켜

           자급자족적인 경제체제가 해체되어 갔다.

 

   (2) 전황의 발생

        - 18세기 초부터 대두, 시중에 동전유통량이 부족하여 화폐가치가 상승하는 현상   

        - 양반지주, 부상, 토호는 물론 관부까지 다량의 동전을 퇴장시켜

           이를 고리대자본으로 활용함으로써 통화량 부족을 부추겼고,

           전화의 원료인 동의 개발과 수입의 부진도 원인 중에 하나이다.

      - 폐전론과 용전론의 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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