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精靈)
산천초목이나 무생물 따위의 여러 가지 사물에 깃들어 있다는 영혼으로 원시 종교의 숭배 대상 가운데 하나인 존재이다. 달리 만물의 근원을 이루는 신령스러운 기운, 죽은 사람의 영혼이라 정의된다. 흔히 말하는 넋, 그리고 미안마의 나트, 태국의 피, 인도네시아의 아나토가 이 정령의 범주에 속한다. 고대인들은 죽음을 계기로 육체에서 떠나간 영혼을 상상하고 이것이 초자연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정령은 물질적인 형상이 없는 비물질적인 초자연적 존재로 에너지와 영적 형태로 존재하며 산, 강, 바다, 나무 등 특정한 자연 요소와 현상, 힘들과 깊은 연관 및 연결되어있고 일부의 경우 인간과 자연, 인간과 초자연 사이의 중재 역할을 맡거나 영적 혹은 비물질적 영역에 접근 아니면 그 영역에서 통찰력을 얻기도 했고 바람과 비를 조종 및 일으키는 등 자연의 힘을 조절 및 통제가 가능했고 육체적 및 정신적 질병을 회복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정확히 맞는 영어 단어는 없지만, Spirit, Elemental Spirit, Nature Spirit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현실의 정령 신앙
한국, 중국, 일본 등 예전 한자문화권에서 정령이란 단어는 일반적으로 거의 쓰이지 않았다. 이쪽에서 말하는 정령이란 단어는 대개 외국어의 역어로서 쓰인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4원소설의 엘리멘탈(Elemental)을 정령으로 번역한 것이고, 애니미즘에서 말하는 스피릿(Spirit)도 정령으로 번역하며 중동 신화에 나오는 지니(Jinn)조차도 정령으로 번역한다. 이 때문에 똑같이 정령이라고 불러도 그 인식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중화권을 비롯한 동아시아권에서 고래로 정령이란 단어는 요정, 요괴, 요마, 귀신과 동의였다. 정령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고 그냥 정(精) 내지 정괴(精怪)라고 불렸다.
현대 중국의 경우 요정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요괴, 도깨비만을 의미하기 때문에 엘프, 페어리 등 서양식 판타지의 요정을 번역할 때는 그나마 잘 사용하지 않았던 단어인 정령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사실 서양 요정의 개념이 들어오기 전에는 정령도 도깨비만 의미하는 단어였다. 한편 현대 일본에선 요정과 정령 모두 서양 요정의 개념까지 포함하는 단어로 사용되지만, 정령이라는 단어는 범위가 더 넓어서 4원소 엘리멘털이나 애니미즘적 의미도 포함된다.
산신령, 가택신 등 한국 토속신앙에서 모시던 신(神)들 다수도 일종의 정령이라 볼 수 있으며, 현대 한국에서 정령이라고 하면 대체적으로 4원소설의 엘리멘틀, 애니미즘의 영적 존재가 뒤섞인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서양의 엘리멘털과 요정
그 기원은 연금술. 불꽃을 많이 사용하던 연금술계에서 민간신앙으로 믿어지던 샐러맨더를 불의 정령이라 정의했다. 거기에 연금술사 파라켈수스가 4원소설에 근거하여 민간신앙으로 믿어지던 요정 노움을 땅의 정령으로 설정하고, 물의 정령과 바람의 정령의 이름으로 각각 운디네, 실프(실피드)를 제시한 것이 4대 정령의 기본이다.
한국 판타지 소설에서의 정령
한국 판타지 소설 작품에서 나타나는 정령 설정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비교적 추상적인 존재로 다뤄지는 서양 매체에서의 정령에 비해 그 존재가 뚜렷하고 인세에 자주 연관된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다뤄지는 것은 4대 정령으로 불(샐러맨더, 이프리트), 물(운디네, 아리엘), 바람(실프, 실피드), 땅(노움) 등 원소들의 정령들이 주로 등장하고, 작가에 따라 그 외 속성인 빛과 어둠(윌 오 위스프), 셰이드), 얼음(잭 프로스트), 번개, 금속, 동물, 식물(드라이어드), 강, 연못, 호수, 산, 숲 등 자연계의 여러 사물(님프, 나이아스), 독, 분노(퓨리), 잠(샌드맨) 같은 정신계, 무속성, 시간과 공간, 혼돈, 심지어 생명과 죽음, 행운같은 추상적인 개념에 검 같은 인공물, 별, 달, 태양, 지구 등의 천체 등 다양한 속성의 정령들도 등장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정령은 엘프와 같이 자연에 깃들어, 자연을 사랑하고, 선하며 자연주의적, 평화주의적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영체 엘프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사악한 정령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었지만 클리셰 파괴로 가끔 사악한 정령이 나오기도 한다. 하위급 정령들은 대체로 자아가 약하고 정해진 행동과 답만 하는 NPC 같은 모습이지만, 정령왕급의 정령은 비교적 자아가 뚜렷하고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작품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고위급으로 갈수록 지능이 높아진다.
인간(또는 드래곤 등의 마법을 쓰는 이종족)이 정령을 소환할 수 있다는 개념이 있다. 정령은 유기체에 강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고, 정령과 계약을 맺으면 소환자는 그 힘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식. 정령의 힘을 다루는 정령사는 이름만 다른 소환 계열 마법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기본적으로 영체라 파괴되어도 현실에서는 죽지 않고 역소환될뿐 소멸하는 경우는 드물다.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정령은 동물형 또는 인간형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중상급 정령이라면 대부분 인간형으로만 등장하는 편이다.인간중심주의 만약 정령왕이 동물형으로 나타난다면 하위급 정령과 같이 인간적인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인간형은 작품에 따라서 미녀, 미소녀로 탈바꿈하여 히로인으로 등장하며 동물형은 귀여운 외모라면 마스코트 취급이다.
정령이 인간계와 분리되어 살지 않아 자연에 거주하는지, 인간계와 분리되어 정령들만이 따로 사는 정령계에 거주하는지는 작품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정령계 설정이 존재하더라도 정령이 주제가 되는 작품이 아니라면 설정만 존재하고 거의 등장하지는 않는 그저 설정상의 세계가 된다.
한국 판타지의 정령에 대한 또다른 특징은 '뚜렷하게 나타나는 정령의 계급'이다. 정령의 계급은 대개 추상적인 것으로 다뤄지지 않으며 계급이 무의미한 작품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체로 하급-중급-상급-정령왕의 4단계 체제나, 하급-중급-상급-최상급-정령왕의 5단계로 나뉘어진다. 하위급일수록 약하고 상위권은 강하다는 기본틀은 같고, 정령왕급의 정령은 그 힘이 드래곤이나 준신급으로 필적할만큼 강하게 표현되는 편이다. 또한 4대 정령을 비롯한 원소계 정령등 주세력으로 설정된 정령은 정령왕이 있거나 하지만 독특한 속성의 정령은 소수라서 정령왕이 없거나 아예 단독으로 정령왕급인 경우도 있다. 드물지만 보다 상위단계로 정령황제, 정령신같은 것을 넣는 작품도 있는데 설정과 이름만 킹왕짱일뿐 실은 정령 셔틀에 불과하다.
정령을 사역마로 다루는 술법을 정령술, 정령술로 정령을 사역하는 직업를 정령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