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한국사/현대

전두환 정부와 6월 민주 항쟁

Jobs9 2022. 12. 9.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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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군부의 등장과 5ㆍ18 민주화 운동

 

1. 12ㆍ12 사태(1979)

  •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의 권력 장악

2. 서울의 봄(1980)

  • 학생과 시민이 계엄령 철폐와 유신 헌법 폐지, 민간 정부 수립 등을 요구하는 민주화 운동 전개 → 신군부의 민주화 운동 탄압

3. 5ㆍ18 민주화 운동(1980)

배경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
전개 학생, 시민의 민주화 요구 → 계엄군의 발포 → 시민군 조직 → 계엄군의 광주 봉쇄 → 무력 진압
의의 군부 독재에 저항하는 민중 의식의 성장 반영,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토대, 반미 운동 시작

 

1980년 5월 18일, 광주

우리는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가? 그 대답은 너무 간단합니다. 너무나 무자비한 만행을 더는 보고 있을 수만 없어서 너도나도 총을 들고 나섰던 것입니다. …… 정부 당국에서는 17일 야간에 계엄령을 확대 선포하고 …… 18일 오후부터 공수 부대를 대량 투입하여 시내 곳곳에서 학생, 젊은이들에게 무차별 살상을 자행하였으니! …… 20일 밤부터 계엄 당국은 발포 명령을 내려 무차별 발포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 광주 시민군 궐기문(1980. 5. 25.)

→ 12·12 사태로 군부 내의 온건파를 제거하고 군사권을 장악한 후 점차 정부 내에서도 세력을 강화해가던 신군부는 계엄령의 철폐를 원하는 국민의 희망을 져버리고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함으로써 정권 장악의 야욕을 드러냈다. 이러한 군부의 정권 장악 음모에 대항하여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는데, 시민이 파출소 등의 무기로 무장하여 시민군을 형성한 것이 특징이었음

 

 

 전두환 정부(1981∼1988)

 

1. 성립 과정

  • 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국보위) 설치, 정치적 반대 세력 활동 정지, 언론 통폐합, 비판적 언론인 강제 해직, 삼청 교육대 운영, 헌법 개정(7년 단임,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한 대통령 간접 선거)

삼청 교육대

  • "산기슭에 자리한 넓은 연병장은 몸에 밴 악의 응어리를 삭여 내뿜는 땀과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도시의 뒷골목을 주름잡던 주먹들과 서민을 울리던 공갈배들이 머리를 빡빡 깎고 전봇대 크기의 육중한 멸공봉을 들고 비지땀을 흘리며 훈련받는 모습은 기자의 눈에는 차라리 희극적이었을지 몰라도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었다. 이제 수련생들의 얼굴에서 과거의 악은 찾아볼 수 없었다."-○○신문, 1980. 8. 18.
  • 깍지 끼고 땅을 기다 부러진 손가락 / 영하 20도의 땅바닥에서 동상 걸려 진물 흐르는 발바닥 ……김형은 체불임금 요구하며 농성 중에 / 사장 놈 멱살 흔들다 고발되어 잡혀오고 열다섯 난 송군은 노가다 일 나간 / 어머니 마중 길에 불량배로 몰려 끌려오고 - 박노해, "노동의 새벽"중 '삼청 교육대1'

→1980년 8월 신군부가 '사회악 일소' 를 내걸고 폭력배와 사회 문란 사범 등을 강제로 군부대로 보내 혹독한 훈련을 시키기 위해 만든 삼청 교육대는 인권 유린 논란을 남겼다. 수만 명이 적법한 절차 없이 삼청 교육대로 끌려가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재야 인사, 5·18 민주화 운동 관련 시위자, 노조 인사 등 시국 사범과 영문도 모르고 끌려간 일반 시민이 다수 포함되었음

2. 강압 통치

  • '정의 사회 구현', '복지 사회 건설'제창, 실제로는 민주화 운동 탄압

3. 유화 정책

  • 야간 통행금지 해제, 교복과 두발 자율화, 국외 여행 자유화, 88 서울 올림픽 대회 유치

 

 6월 민주 항쟁(1987)

1. 민주화 투쟁의 활성화

  •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진상 규명 요구,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운동 전개(신한 민주당과 재야 세력 중심, 1980년대 중반부터)

2. 전개 과정

  •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운동 본격화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발생 → 전두환 정부의 4·13 호헌 조치 발표 → 6·10 대회(박종철군 고문 살인·은폐 조작 규탄 및 민주 헌법 쟁취를 위한 범국민 대회) 개최 → 범국민적 민주화 운동으로 발전

3. 결과

  • 6·29 민주화 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수용 →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

 

6월 민주 항쟁 당시 국민의 요구

◇ 6ㆍ10 대회 선언문(1987)
  • 오늘 우리는 전 세계의 이목이 우리를 주시하는 가운데 40년 독재 정치를 청산하고 희망찬 민주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큰 걸음을 전 국민과 함께 내딛는다. 국가의 미래요 소망인 꽃다운 젊은이를 야만적인 고문으로 죽여 놓고 그것도 모자라서 뻔뻔스럽게 국민을 속이려 했던 현 정권에게 국민의 분노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국민적 여망인 개헌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4∙13 폭거를 철회시키기 위한 민주 장정을 시작한다.
◇ 6ㆍ29 민주화 선언(1987)
  • 첫째, 여야 합의하에 조속히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고 새 헌법에 의한 대통령 선거를 통해 1988년 2월 평화적 정부 이양을 실현토록 해야겠습니다. 오늘의 이 시점에서 저는 사회적 환란을 극복하고, 국민적 화해를 이룩하기 위하여 대통령 직선제를 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 둘째, 직선제 개헌이라는 제도의 변경뿐만 아니라, 이의 민주적 실천을 위하여는 자유로운 출마와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어 국민의 올바른 심판을 받을 수 있는 내용으로 대통령 선거법을 개정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 전두환 정권 말기 국민들의 대통령 직선제 요구는 커져갔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은 '4·13 호헌 조치'로 국민들의 열망을 거부하고 노태우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였다. 이에 맞서 국민들은 6·10 대회를 개최하여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직선제 쟁취하여 군부 독재 타도하자."를 외쳤다. 마침 내전두환 정권은 6·29 민주화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받아들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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