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세포와 격자세포 연구로 뇌 위치추적 메커니즘 규명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시간 세포는 뇌 안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 좌우 측두엽(側頭葉)에 있는 해마에 있습니다. 해마는 뇌에서 우리가 뭘 보거나 들었을 때 이걸 담당하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동물 해마(海馬)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해요. 사람이 보고 듣고 느끼는 등 5가지 감각을 통해 전달된 외부 자극은 전기신호 형태로 해마에 저장됩니다. 이 전기신호가 해마에 저장되려면 신경계를 이루는 뉴런을 거쳐야 합니다. 뉴런은 신경계를 이루는 기본 단위로 정보를 전달하는 고속도로 같은 역할을 합니다. 사람의 뇌에는 수백억 개 뉴런이 모여 있는데 해마의 1개 세포가 대략 2만~3만개 뉴런과 연결돼 있습니다. 뉴런에는 수상돌기가 붙어 있는데 신경 자극을 전해주는 가느다란 세포질의 돌기입니다. 뉴런과 뉴런 사이 또는 뉴런과 신경세포 사이를 연결하는 부위는 시냅스라고 부릅니다. 시냅스는 톨게이트라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뉴런과 뉴런이 전기신호를 주고받을 때 시냅스를 거칩니다. 이때 신경전달 물질이 분비됩니다. 시냅스를 많이 지날수록 기억은 강화된다고 해요. 이런 식으로 해마는 전기신호를 정리해 기억합니다. 해마가 학습과 기억 및 새로운 것을 인식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과거 무슨 일을 했는지 떠올릴 때 어떻게 순서대로 기억할 수 있을까요? 2011년에 쥐 실험을 통해 시간 세포가 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레가 교수는 사람의 뇌에도 시간 세포가 있는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사람을 대상으로 조사했죠. 연구팀은 반복적인 발작을 일으키는 뇌 질환(중증 간질) 환자 27명의 뇌 속 해마에 전극을 심었습니다. 이어 컴퓨터 화면을 통해 간질 환자들에게 30초 동안 12개 단어를 순서대로 보여주면서 되도록 많은 단어를 기억하게 했어요. 그리고 환자들이 기억한 단어를 떠올릴 때 해마에서 나오는 전기신호를 측정했지요. 이때 해마의 특정 세포들이 반응을 했습니다. 환자가 단어를 기억한 30초 안의 상황을 시간 세포가 그 기억 순서대로 분리해 저장하고 있었던 겁니다. 연구팀은 시간 세포가 환자들이 기억한 단어를 언제, 어떤 순서로 봤는지 기준에 따라 구별해 떠올리게 하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정 사건의 기억을 형성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는 거죠.
◇위치와 주변 환경 정보 저장
해마는 주변 환경과 자기 위치 정보를 저장하기도 합니다. 어떤 곳을 처음 찾아갈 때 주변을 보고 눈에 띄는 물체나 지형을 통해 길을 찾곤 합니다. 하지만 점차 익숙해지면 그런 지표가 없어도 길을 헤매지 않게 되죠. 해마에 위치를 아는 '장소 세포'가 있기 때문입니다. 장소 세포는 사건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기록합니다. 여기가 어디인지, 나는 이 공간에서 어디에 있는지 등을 기억하죠.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뇌과학연구소 세바스찬 로이여 연구팀은 2019년 실험을 통해 장소 세포가 위치 정보를 어떻게 습득하고 기억해내는지 알아냈어요. 로이여 박사는 쥐를 대상으로 고안한 독특한 실험용 러닝머신을 이용했습니다. 연구팀은 생쥐의 머리에 8개의 탐침을 꽂고 나서 특수 제작된 1.8m 길이 러닝머신을 달리도록 했어요. 러닝머신 위에는 생쥐가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 알기 위한 벨크로(찍찍이)와 중간중간 뾰족한 튜브 같은 장애물을 설치해 놓았죠. 쥐가 러닝머신 위를 걷는 동안 장애물을 통해 특정 장소에 대한 학습이 이뤄지면서 공간 기억이 생성되게 설계한 것입니다.
이 과정을 반복한 연구팀은 쥐가 장애물을 통과할 때마다 장소 세포의 활동 지점이 달라지는 걸 발견했습니다. 부드러운 표면 위를 달릴 때는 쥐의 장소 세포 중 공간적 위치를 인식하는 'CM세포'가 활성화됐어요. 반면 돌기가 솟은 오돌토돌한 부분을 달릴 땐 주요 지형지물을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LV세포'가 활성화됐죠. 이는 해마의 장소 세포가 움직이면서 공간 과 감각 정보를 따로따로 저장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연구팀은 두 종류의 장소 세포가 해마의 같은 영역에서 서로 다른 층을 따라 상하로 배열돼 있다는 것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발견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실렸습니다.
해마는 어떠한 사실 정보나 사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데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따라서 해마를 다친 사람은 기억력 장애를 겪을 가능성이 크죠. 레가 교수팀과 로이여 연구팀의 이번 연구는 해마 손상으로 인한 간질이나 알츠하이머 같은 뇌 질환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장소세포(place cell), 격자세포(grid cell)
장소세포와 격자세포 연구로 뇌 위치추적 메커니즘 규명
014년도 노벨 생리의학상은 '뇌속 네비게이션'을 처음으로 찾아낸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존 오키프 교수와 부부 과학자인 노르웨이 마이-브리트 모서와 에드바드 모서 등 3명에게 돌아갔다.
전문가들은 이 과학자들이 연구성과를 낸 이후 뇌의 위치추적 메커니즘이 점차 규명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임상적으로도 질환을 조기 발견하거나 치료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의 연구성과를 정리해본다.
◇ 뇌 내비게이션 시스템 핵심 '장소세포' 발견한 존 오키프
사람들은 흔히 길을 잘 찾는 사람을 두고 '길눈이 밝다'고 한다. 1970년대 영국 런던대(UCL) 교수로 재직 중이던 오키프 박사는 바로 '길눈이 밝은 사람'이 왜 있을 수 있는지를 뇌 연구를 통해 처음으로 밝혀낸 과학자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길눈이 밝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건 해마에 있는 신경세포의 하나인 '장소세포(place cell)' 때문이다. 해마는 대뇌의 좌·우 측두엽 안쪽 깊숙이 자리한 기관으로 기억을 저장·상기시켜 '기억의 제조공장'으로 불린다. 그중에서도 장소세포는 공간을 탐색, 기억해 구분할 수 있다. 또 장소를 옮기면 이 신경세포가 활성화돼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인식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서울의 택시 운전기사 머릿속에 서울시내 구석구석의 지도가 들어 있는 것과 비슷하다. 택시 기사가 손님을 태우고 목적지 근처에서 골목길을 맞닥뜨렸다면 뇌 속의 장소세포가 신호를 보낸다. 또 도로 옆 전봇대를 마주쳤을 때는 다른 장소세포가 신호를 보낸다. 택시를 몰며 마주쳤던 여러 장소의 특정 사물이나 모양새가 각기 다른 신호를 보내는 셈이다.
오키프 박사는 이런 과정을 쥐 실험을 통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미로상자에 쥐를 가둔 뒤 행동을 관찰한 결과, 실험 쥐는 시간이 지날수록 일정한 위치에 가면 그전에 자신이 지나갔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멈칫거리는 행동을 보였다. 오키프 박사는 해마 속 신경에 위치정보가 저장됐기 때문에 쥐가 이런 행동을 보인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신희섭 박사는 "오키프 교수의 장소세포 연구성과로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고 찾아가는 뇌 속 메커니즘이 설명될 수 있었다"면서 "이후 뇌질환과 관련한 후속 연구성과로 이어진 점을 고려한다면 노벨상 가치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 네비게이션 위도·경도 역할 '격자세포' 발견한 모세르 박사 부부
뇌의 네비게이션 시스템을 구성하는 데 있어 장소세포와 함께 핵심을 이루는 게 바로 부부 과학자인 노르웨이 마이브리트 모세르(여·50)와 에드바르드 모세르(51) 박사가 발견한 '격자세포(grid cell)'다.
오키프 교수가 발견한 장소세포가 특정 지점이나 모양새 등에 관한 기억을 보관한다면, 격자세포들은 공간과 거리에 관한 감각을 제공한다. 예들 들면 네비게이션으로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공간상의 위치를 보여주는 위도와 경도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연구팀은 2005년 네이처에 발표한 동물실험 논문을 통해 격자세포의 비밀을 공개했다. 생쥐가 상자 안에서 먹이를 찾아 다닐 때의 뇌 신호를 분석한 결과 해마 바로 옆 내후각피질의 신경세포가 집단적으로 반응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같은 세포의 움직임은 위도와 경도선처럼 일정한 격자 모양으로 관찰됐다. 특히 이 격자세포들은 생쥐가 일정 간격으로 나눈 특정 지점을 지날 때만 작동했다. 상자속 생쥐가 아무런 규칙없이 움직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가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는지 알고 행동했다는 의미다.
과학자들은 결국 이 격자세포와 장소세포가 서로 정보를 나눔으로써 사람이 길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반대로 길을 잘 잃어버리거나 특정 장소를 찾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2개 세포간 대화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못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신경과 양동원 교수는 "이번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 덕분으로 치매환자나 길을 잘 찾지 못하는 사람, 물건 두기를 잘 잊는 사람 등의 인지능력 저하가 설명될 수 있었다"면서 "질환의 궁극적인 치료에서부터 재활에 이르기까지 연구성과가 폭넓게 적용된다는 측면에서 노벨상 수상의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두뇌 그리드(Grid) 뉴런 세포, GPS뿐만아니라 사건도 통째로 기억
지금까지 과학이 밝혀진 바에 따르면 두뇌에는 공간(Space)의 위치정보(GPS)를 인식하고 기억하게 하는 두 종류의 뉴런들이 있다. 하나는 해마(Hippocampus)에서 발견된 특정 지점이나 모양새 등을 인식하고 기억하게 하는 위치(Location) 또는 장소(Place) 뉴런이고, 다른 하나는 해마 뒤에 인접한 내후각피질(Medial Entorhinal cortex)에서 발견된 장소와 장소를 연결하는 점들(Nodes), 즉 위도와 경도가 만나는 노드들을 인식하고 기억하게 하는 육각형 패턴의 격자인 그리드(Grid) 뉴런이다.
이 장소 뉴런과 그리드 뉴런이 협력하여 위치정보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 두 종류의 공간 뉴런들을 밝힌 세분의 과학자들은 2014년에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Nobelprize, 06 Oct 2014)1.
따라서 우리는 공간과 거리를 3차원으로 인식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결국 이 격자세포와 장소세포가 서로 정보를 나눔으로써 사람이 길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반대로 길을 잘 잃어버리거나 특정 장소를 찾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두 개 세포간 대화와 협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더 과학적인 실험적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 해마에서 발견된 장소(Place) 뉴런 세포와 해마 뒤에 인접한 내후각피질(Medial Entorhinal cortex)에서 발견된 육각형 패턴의 격자, 즉 그리드(Grid) 뉴런 세포가 협력하여 위치정보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Image Credit : Nobelprize.org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리드 세포인데, 이를 보다 과학적으로 상세하게 밝힌 연구가 뒤 따르고 있다. 미국 보스톤대의 신경과학자들이 쥐가 공간에서 달리는 동안(during running), 쥐 두뇌의 뉴런인 그리드 세포가 경과 시간(Elapsed Time)과 달린 거리(Distance Run)를 통합하고 기억하게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Kraus et al., Neuron; Science Daily, 4 Nov 2015)2.
두뇌의 그리드 뉴런 세포의 역할을 조명한 것인데, 주행 거리계를 담당하는 뉴런들(odometer neurons)이 여행 거리와 각각의 경과된 시간을 엔코딩(Encoding)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눈에 들어오는 시각적인 이정표(visual landmarks)가 없이도 시간과 공간과 거리의 정보를 통합하고 기억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존재하는 영역으로 각종 사건들이 통합되어 단기 사건(기억)은 해마에, 장기 사건(기억)은 신피질(neocortex) 혹은 대뇌피질(cerebral cortex)에 저장된다(Hasan et al., 27 Aug 2013)3).
이번 연구결과는 포유동물들은 뉴런의 회로들(circuits)을 이용해서 공간과 시간의 사건들과 다른 많은 경험의 영역들이 어떻게 조직되어 기억으로 진화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과거의 연구를 보면 그리드 세포들은 다른 뉴런 세포들로부터 여행 방향에 관한 정보들을 받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리드 세포들이 장소와 시간과 거리를 담당하고 있다는 직접적인 과학적 증거를 보여주지는 못했었다. 연구팀들은 쥐를 쳇바퀴들에 넣고 그리드 세포들의 활동을 기록했다. 쥐로 하여금 정해진 시간에 계속 달리게 하기도 하고 고정된 거리를 달리게 하면서 속도까지 조절해 그리드 세포들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을 분석했다.
쳇바퀴가 돌아가는 동안 그리드 세포들의 92%가 특정 순간들(moments)이나 거리들(distances)에서 불꽃 신호를 보냈다. 예들 들어 하나의 그리드 세포는 속도와 거리에 관계없이 8초 동안 불꽃 신호를 보내 달리게 했으며, 다른 그리드 세포는 거리와 시간에 관계없이 쥐가 400센티미터를 달린 후에 불꽃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50%의 그리드 세포들은 시간에 영향을 받았고, 또 다른 50%는 거리에 영향을 받았으며, 41%는 시간과 거리에 영향을 받았다.
가장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리드 세포들은 전적으로 공간상에서 위치 정보들을 코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치 정보들이 지속되는 동안 시간과 거리 정보도 동시에 엔코딩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해마 뒤에 있는 내후각피질이 단지 공간을 매핑한다는 것 이상의 훨씬 넓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그리드 세포들은 이정표나 시신경 등의 시각적 정보들이 없어도 경로들을 통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안정적인 시각 정보를 바탕으로 들에서 먹이를 찾아다닐 때 보다, 쳇바퀴를 달리는 동안의 그리드 세포들의 패턴이 훨씬 넓고 거리도 멀었는데, 이는 시각 정보가 보다 정확하고 근접한 공간 정보들을 찾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시간과 거리를 저장한다는 것은 사건의 흐름과 공간 노드들을 기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해마나 대뇌피질은 24시간의 모든 사건들과 경험들을 모두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들은 이번 연구가 시작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리드 세포만 연구했기 때문이다. 해마에서 발견된 장소 세포도 추가로 연구하여, 해마와 내후각피질이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사건의 흐름들을 시공으로 기억하는지 밝혀내야 한다. 그래야만 기억 상실, 치매(알츠하이머병), 인지장애(cognitive disorder) 등을 치료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장소세포(place cell), 격자세포(grid c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