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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s9 2021. 4. 13.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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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대회에서 채택한 선언.

 

언론은 활자나 전파매체를 통해 사실을 전달하고, 여러 계층들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해 여론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언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이러한 이유로 자본과 권력은 지배력을 유지·강화하기 위해 언론을 장악하고 정보를 통제해 왔다.

언론 통제에 맞서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언론노동운동의 역사는 4월 혁명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 5월 부산지역의 모든 신문사에 노조가 결성되었고, 뒤이어 대구지역의 대구일보, 영남일보, 대구매일신문 등에서 노조가 조직되었다. 서울지역에서는 연합신문, 자유신문, 평화신문, 국도신문 등에서 노조가 결성되었다.

그러나 1961년 5·16군사정변 이후 군부세력에 의해 노조활동이 금지되었으며, 이로 인해 언론노조운동은 활동이 위축되었으며, 더욱이 1970년대 유신체제 하에서는 그 명맥을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중앙정보부는 ‘보도지침’을 작성, 기관원들에게 시달했고,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일체의 기사를 간섭하거나 금지했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언론인들은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집단적인 단결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했으며, 그것이 밑바탕이 되어 1974년 3월 동아일보사 기자들을 중심으로 노조가 결성되었다. 그러나 사측과 정권의 탄압으로 법적 지위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비록 법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 했지만 투쟁과정에서의 역량을 바탕으로 기자협회 집행부와 기자협회 동아분회 집행부를 개편하는데 성공했고, 이러한 여세를 몰아 동아일보사 기자 180여 명은 19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기자들은 이 선언에서 “오늘날 우리사회가 처한 미증유의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언론의 자유로운 활동에 있음을 선언”하고, “자유언론은 어떠한 구실로도 억압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것”이며, “자유언론에 역행하는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민주사회 존립의 기본 요건인 자유언론 실천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다음 3개항의 결의를 채택했다.

① 신문 방송 잡지에 대한 어떠한 외부간섭도 우리의 일치된 단결로 강력히 배제한다.

② 기관원의 출입을 엄격히 거부한다.

③ 언론인의 불법연행을 일체 거부한다.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에 이어 10월 24일 밤 조선일보 기자들이 ‘언론자유회복을 위한 선언문’을 채택했고, 이틀 사이 전국의 31개 신문·방송·통신사 기자들이 자유수호를 위한 결의문과 행동지침을 채택했다.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에 대해 신민당, 대학생, 종교계, 재야에서는 지지를 보냈으며,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언론 탄압을 규탄했다. 그리고 AP, AFP, 로이터 등 세계적인 통신사들도 언론자유를 요구하는 이러한 움직임을 일제히 보도했다. 아사히신문[朝日新聞], 마이니치신문[每日新聞] 등의 신문들과 NHK 방송 등의 일본 언론들도‘자유언론실천선언’을 대서특필했다.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은 이후 끈질기게 자유언론을 실천해 나갔다. 이에 정부는 광고탄압이라는 방식을 동원해 자유언론실천운동을 제압하고자 했다. 광고탄압은 12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행해져 동아일보에 대한 무더기 광고해약이 속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자와 시민들은 격려광고와 돕기운동을 통해 언론자유실천운동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광고탄압이 장기화 되고, 경영주가 정부에 타협하게 됨으로써 자유언론실천투쟁은 이에 앞장섰던 기자들과 방송제작사 직원 대부분이 해고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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