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인정 욕구
인간은 선천적으로 자신의 생존 이유에 대해 늘 어떤 확신을 필요로 하는데 그 확신으로 인해 인간은 생존력을 완성하게 된다. ‘살고자 하는 의지’를 ‘생존력’이라고 할 수 있다면, 생존력의 완성을 위해 필요한 욕구 중 식욕과 수면욕이 인간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생리적 욕구이고, 인정욕(구)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심리적 욕구이다.
인간의 인정욕은 생존과 관련한 생리적이고 본능적인 욕구로 다룰 수 없는 순전히 심리적 욕망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인정욕은 심리적 욕망으로 동식물과 같은 범주에 넣을 수는 없다. 식욕과 수면욕은 생리적이고 본능적인 욕구로 생존력에 필요한 것이나, 인간의 인정욕은 자기 존재감을 확장하기 위한 것으로 끝이 없는 심리적 욕망이지 생리적 욕구의 대상이 아니다.
남에게, 혹은 자기 자신에게 자기의 어떠한 종류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받는 일은, 자기가 생존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을 확신하는 일로서,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믿음, 다시 말해 자신감이나 자부심을 갖게함으로써 살아갈 맛을 느끼게 하고 삶의 목표까지 생기게 만드는 기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는 남(혹은 스스로 설정한 특정 수준으로 그것은 남이 이뤄낸 어떤 수준)과의 비교나 대결이나 투쟁을 통해 해결되거나 좌절되는데, 이러한 대결 구도에서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인정욕구가 강한 사람을 우리는 승부욕이 강하다고 한다. 승부욕이 강한 것은 긍정적인 면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일궈내 그 능력이 좋은 곳에 쓰여 이 세상의 진화에 밑거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에서는, 타인보다 높은 계급에 올라 낮은 계급을 무시하거나 군림하는 일과 오른 그 계급을 유지하기 위해 부정을 저지르는 일까지 낳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적극적 인정욕구 외에 자신의 욕망을 인정받으려는 욕구, 자신의 처지에 대해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있다. 자신의 욕망이 남에게 인정받아 그 욕망을 방해 받지 않고 표출하고 해결하고 싶은 욕구, 자신의 현재 모습이 어쩔 수 없는 결과라는 것을 인정받고 이해 받고 싶은 욕구이다. 이렇듯 인정욕구는 타인에게 혹은 자신에게 ‘너는 (생존할) 가치가 있다’는 말을 듣고 싶은 욕구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인정 욕구
미국의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는 ‘욕구의 위계’로 사람이 움직이는 동기를 설명했다. 가장 하위인 생리적 욕구는 인간의 생존에 기본이 되는 음식, 공기, 배설, 물과 같은 것이다. 이 하위의 욕구는 상위의 욕구가 실현되는 과정에서도 중첩되어 나타난다. 우리 인간은 먹어야 에너지를 얻고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면 위험한 환경이나, 질병 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안전의 욕구가 발현된다. 위협적인 환경에서 유년기를 보낸 성인은 불안장애나 강박증에 시달리게 된다고 한다.
그다음의 욕구는 ‘소속감과 사랑의 욕구’이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유기적으로 얽히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한 집단에 소속이 되는 것은 안전의 욕구도 충족시켜주며 자신의 가치감을 향상한다. 다양한 집단에 널리 소속이 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자존감이 올라간다고 한다. 소속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집단 안에서의 역할과 위치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집단에 소속이 되어있더라도 자신이 갈구하는 만큼의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하면 이는 공허감과 무가치함이 되어 돌아온다. 의기양양하게 집단에서 돋보이는 존재가 되려고 했지만 뜻하는 만큼의 성과가 없을 때 자기 패배감이 들고 집단이나 특정 구성원에 대한 적개심을 형성하기도 한다.
옛날의 대가족 시대에 온 마을이 공동육아를 하던 집단 사회에서는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소속감과 사랑의 욕구’를 충족하기가 수월했다. 아빠가 무서워도 고모나 삼촌이 방어막이 되어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핵가족, 개인가족 사회에서는 자신이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충족하기 어려운 욕구가 ‘소속감과 사랑의 욕구’이다.
타인의 인정을 지나치게 바라는 욕구는 자신을 해칠 수 있는 독이 된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불가피하게도 타인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자신을 인정하기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다. 세상에 태어나 경험이 없는 개인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인정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며 자란다. 이때 사랑받으며 내재된 가치감이 바로 자존감이다. 하지만 가족이 아닌 다른 사회에 편입될 때에는 다시 그 사회의 일원들에게 인정을 받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래야만 집단 내에서의 자기 존중의 욕구가 충족 가능하다.
새로운 집단은 학교, 직장, 취미 동호회, 독서 모임, 육아 모임, 자조 모임 등 다양한 공동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안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업무의 성과를 달성하며 인정의 욕구를 채워간다. 사람은 타인에게 존중과 존경을 받으며 자존감을 쌓아 올린다. 하지만 타인에게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열등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충분히 가치있 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자기 독립성이다.
사람은 독립을 추구하면서도 공존을 추구하는 의존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에서 가장 상위인 ‘자아실현의 욕구’는 자기가 꿈꾸는 가장 최고의 자신이 되는 것이다. 매슬로우는 자아실현을 달성한 사람은 전체 인구의 1%도 되지 않는다고 추정했다. 그만큼 절박하지 않은 욕구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상위 욕구로 올라갈수록 만족도는 점점 낮아지게 되는데 그 설명은 간단하다. 만족감의 척도로 봤을 때, 내가 지금 당장 배가 고프다고 상정해 보자. 엄마가 끓여주신 따끈한 김치찌개에 갓 지은 밥과 갓 구운 김이 차려진 식탁에서 맛있는 식사를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배불리 먹었을 때의 만족도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35,000%.
그런데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삶이 마더 테레사의 삶이라면 그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나아가야 하는 길은 멀고도 험난할 뿐이다. 막상 봉사활동을 많이 하며 살아도 계속해서 눈에 밟히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때문에 도움을 주려는 결핍의 욕구는 충족이 어려워진다.
결핍과 성장은 마치 양극단에 존재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공존한다. 동전의 앞뒤와 같은 모습이다. 결핍감은 불편한 상황과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해 준다. 성장은 힘든 상황을 극복하며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목표를 수립하고 달성하려는 실행의 과정이다.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 인지를 해야 한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 안에서 부족한 것과 없애야 하는 것을 우선순위라는 채로 걸러낸다. 환경을 지각하는 태도가 달라지면 상황을 왜곡하지 않고 바로 볼 수 있게 된다. 자신을 남과 비교하거나 타인의 삶을 판단하고 비판하지 않는 힘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자신과 타인을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사랑에 대해서 매슬로우는 ‘결핍 사랑’과 ‘성장 사랑’으로 나누어서 보았다. 결핍 사랑은 타인이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나도 사랑한다는 것이다. SNS에서 흔히 보는 모습 중 하나이다. 나에게 ‘좋아요’를 눌렀으니까 그 사람에게도 ‘좋아요’를 누르는 것이다. ‘좋아요’는 갚아야 하는 빚이 아니다. 나에게 ‘좋아요’를 안 누르면 나도 너에게 ‘좋아요’를 주지 않겠다는 사고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함께 졸업을 했어야 한다.
남들이 '우와'하는 모습만이 가치 있다는 오해로부터 자신을 구해야 한다.
-이혜진, <인정받고 싶어서 오늘도 애쓰고 말았다>
타인이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수단적 사랑을 하는 것이 결핍 사랑이라면 성장 사랑은 자기의 만족 추구보다 타인의 행복과 안녕을 우선시하는 사랑을 뜻한다. 타인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타인의 삶의 방식이 나와 다르더라도 존중해 주며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마음이다.
욕구가 좌절될 때, 그 좌절이 반복될 때 사람은 한 없이 약해진다. 성격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 내가 갈구하는 만큼의 타인의 긍정적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했을 때 자기 존중의 욕구와 자기실현의 욕구는 상처를 입게 된다. 이는 열등감과 공격적인 감정으로 표현될 수 있다.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으로 보았다. 욕구를 충족해 나가며 몸과 마음의 균형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이 결핍과 성장의 조율이다. 사람은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자유로운 존재이다.
타인의 인정 없이 자신을 인정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먼저 타인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 이만큼 대단한 사람이니까
이만큼의 인정을
받을 거야,
받고 싶어,
받아야 해.
이러한 당위적 신념은 건강하지 못한 신념이다. 자기애 과잉형의 엇나간 인정욕구이다. 남들이 추켜세워주는 모습만 가치 있는 자신의 모습이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존중, 인정, 그리고 자신의 겸손. 이 삼위일체가 이루어졌을 때 결핍과 성장이 건강한 균형을 이루며 자기 독립성을 실현할 수 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알아차리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오늘도 '인정 욕구'라는 늪에 빠져 살아간다. 인정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거기에 매달리기 마련이다.
'관종'이란 용어가 괜히 생겼겠는가. '관심 종자'의 줄임말인 '관종'은 자기표현과 PR을 잘하는 사람으로 여겨지지만, 대부분이 일정한 선을 넘기 마련이어서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인정 욕구의 중독자 같아서다.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페이스북에 사생활을 필요 이상으로 노출하거나 실제보다 미화하는 것도 인정 욕구와 관계가 있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SNS를 시작하지만, 어느새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게 된다.
예컨대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고 싶어 SNS에 사진을 올렸다가 '좋아요'를 꽤 많이 받게 되자 '좋아요'를 올려준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 애쓴다.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이어가다가 섭식 장애를 겪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일본의 조직학자이자 경영학자인 오타 하지메 도시샤대 정책학부 교수는 저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인정 욕구와 그 중독 문제를 파고든다. 이론과 사례를 통해 인정 욕구에 대한 강박이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얼마나 깊게 퍼져 있는지, 그리고 그 갈망이 얼마나 위험한지 밝힌다.
나아가 스스로를 옭아매지 않기 위해, 상대를 인정 욕구에 가두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궁극적으로 지금의 자신 상태를 돌아보게 하고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인정 욕구라는 괴물을 건강하게 다루는 법을 일러준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타인에게서 '잘했네', '멋지다', '괜찮아'라고 수긍 받고 싶은 게 일반적인 인정 욕구다. 이 욕구는 더 나은 삶을 위해 꼭 필요하다. 인정 욕구가 사람을 성장시키고 일의 성과를 올리는 동기부여의 원동력이어서다. 하지만 과해지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거나 번아웃(탈진) 상태에 빠져서 일상생활조차 제대로 이어가기 힘들게 된다.
저자는 "함정은 일상 곳곳에 있다"며 "누구나 우연히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는 걸 계기로 자기도 모르게 중심을 잃고 주위에서 기대하는 방향으로 일을 해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경계한다. 스스로가 타인의 평가에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했다가도 상황과 사람의 변화에 따라 인정 욕구에 연연하게 되면서 극도의 괴로움에 시달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책에 소개된 인정 욕구의 과다 사례는 다양하다. 점원의 칭찬에 붙들려 본래 생각보다 훨씬 비싼 양복을 덥석 구입해버리는 사람, 과도한 업무에 짓눌린 나머지 번아웃 증후군으로 결국 퇴사를 선택하는 사람, 실적 스트레스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과로사나 자살에 내몰리는 사람, 심지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묻지 마' 살인을 저지르고 마는 사람 등등.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극단적 사례는 최근에 우리 사회를 충격으로 내몬 조주빈의 'n번방' 사건이다.
그렇다면 인정 욕구의 강박을 일으키는 실체는 무엇이고, 그 강도는 어떻게 결정될까? 저자는 그 세 가지 요소로 '인지된 기대'와 '자기효능감', '문제의 중요성'을 꼽는다.
'인지된 기대'는 실제로 얼마나 기대를 받는지가 아니라 본인이 그 기대를 얼마나 의식하는지의 문제다. '자기효능감'은 주변 환경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감각으로, 쉽게 말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뜻한다.
'인지된 기대'와 '자기효능감'의 격차가 부담감의 크기를 좌우한다. 인정 욕구의 강박에 빠지는 것은 '인지된 기대'와 '자기효능감'의 격차가 클 때, 즉 큰 기대를 실감하지만 그에 부응할 자신이 없을 때란다. '문제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는 이유다. 저자는 '인지된 기대'는 낮추고, '자기효능감'은 높이면서 '문제의 중요성'을 낮추는 게 관건이라고 조언한다.
인정이란 상대의 의지에 달려 있기 마련이다. 자신이 아무리 인정받고 싶어도,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가 인정해주지 않으면 인정 욕구는 채워지지 않는다. 막강한 권력과 경제력이 있을지라도 힘으로써 인정을 이끌어낼 순 없다.
따라서 괴로움의 원인이 자신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할까 봐' 생기는 불안임을 깨닫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그런 인식만으로도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나 더 인정받지 못한다는 괴로움에서 좀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궁극적으로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 보상 같은 외부 기준에 적당히 연연하고, 대신에 자신의 긍정적 측면에 관심을 기울이며 스스로 작은 보상이나 인정을 주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권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