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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 인생의 정답은 출발점에서 방향을 보는 것

Jobs9 2022. 1. 18.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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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정답은 출발점에서 방향을 보는 것이다. 도착점에서 목적지를 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환경의 소관이다.

 

    어떤 사람이 권총을 한 자루 구해서 서랍에 넣어두고 있었다. 강도가 침입했는데 대항하지 못했다. 서랍에 권총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뒤늦게 서랍 속의 권총을 떠올렸다면 어찌 아쉽지 않겠는가? 그때 권총을 빼들어 강도를 제압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그게 인생이다. 첫째 권총을 획득하는 것, 둘째 권총으로 강도를 제압하는 것. 셋째 그리하여 승부에서 이기는 것. 그리고 더 좋은 총을 물색하는 것이다.

 

    자연은 커다란 무대다. 인간은 혼자 덩그러니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다. 환경 역시 나의 일부다. 내 손과 발을 이용하듯이 환경을 이용해야 한다. 인생의 본질은 환경이라는 무대 안에서 내 안의 어떤 가능성을 남김없이 털어놓는 것이다. 권총이 있으면 쏘면 되고 재능이 있으면 발휘하면 된다. 그런데 혼자서는 잘 안 된다. 내 안의 숨은 재능을 온전히 꽃 피우려면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동료와의 팀워크가 필요하다. 축제가 벌어져야 장기자랑이라도 할 수 있다. 큰 판을 벌여야 한다.

 

    기독교의 창조론, 다윈의 진화론, 마르크스의 자본론, 플라톤의 이상론, 공자의 군자론, 석가의 해탈론, 니체의 무신론,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알려져 있다. 나름대로 인간에게 주어진 무대의 성격을 이야기하고 있다. 주어진 무대 위에서 인간은 어떤 게임을 벌여야 하는가? 대개 어떤 정해진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사상이다. 인간은 왜 사는가? 도달하려는 목적지는 없다. 구조와 기능으로 접근해야 한다. 인생의 답은 주어진 기능을 발달시켜서 내부에 잠재한 것을 남김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활은 표적을 쏘고 악기는 소리를 토한다. 일방작용이 아니라 상호작용이다. 도망가려고 하면 안 된다.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도망치고 숨는다면 무대를 세운 사람과 그 무대에 초대된 관객들은 허탈해진다. 인간들은 점점 시시해졌다. 근래에 유행하는 탈근대 사상은 거대담론을 포기하고 미시담론으로 도망치는 것이다. 양차 세계대전의 재앙을 낳은 전체주의에 대한 환멸이 퇴행적 반동을 일으킨다. 다들 치사해졌다.

 

    인생의 종착역은 어디인가? 자동차의 기어변환과 같다. 어떤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운전하는 재미를 즐겨야 한다. 기어는 구조다. 하나의 구조는 하나의 뇌세포와 같은 1 바이트의 정보처리 단위다. 한 개인은 인류 집단지성의 일부를 구성한다. 연주자 한 사람은 악기 하나를 담당하지만 오케스트라는 객석 전체와 대결한다. 때로는 하나가 전체를 대표한다. 결정적인 한순간에 하나의 소리가 무대를 꽉 채우고 청중을 지배한다.

 

    인생의 목적은 이기는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인간은 이기는 결정을 해야 한다. 불리하면 이기는 게임을 조직해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게이머는 계속 스테이지를 깨고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간다. 인생에 천국도 없고, 구원도 없고, 해탈도 없고, 내세도 없고, 피안도 없고, 목적지도 없다. 이기는 결정을 하면 반응이 돌아온다. 관객은 박수를 치고 무대는 다시 세팅된다. 다음 게임에 초대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만약 거기에 더하여 무언가를 요구한다면 그게 치기 어린 어린이의 마음이다.

 

    아기는 무얼 해도 칭찬을 받지만 어른은 무얼 해도 스스로 완성된다. 칭찬을 듣는 것은 혼자의 것이고, 상대의 반응을 끌어내는 것은 둘의 상호작용이다. 상호작용이 더 낫다. 내가 잘했다는 것보다 내가 차가 더 좋은 차라고 말하는게 더 멋지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좋은 차를 배정받았다. 내가 잘나 봤자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힐난이 돌아오지만 대한민국이 좋은 차라면 다음 스테이지와 연결된다. 내가 잘났다고 자랑하기보다 내 자식이 잘났다고 자랑하는 게 낫다. 그 경우는 내가 이야기의 출발점에 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출발점에 서야 동료를 초대할 수 있다. 그렇게 발언권을 얻는 것이다.

 

    출발하려는 자는 방향을 보고 도착하려는 자는 목적지를 본다. 우리는 출발점에 서서 방향만 보고 나아가야 한다. 인생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이므로 도착지는 환경이 정한다. 새는 둥지에 깃들고, 배는 항구에 정박하고, 비행기는 공항을 찾아가고, 자동차는 차고지를 찾아간다. 그것은 나를 초대한 환경이 결정한다. 인생의 많은 부분은 환경이 걱정할 영역이지 나의 소관은 아니다. 인간의 불행은 오지랖 넓게 남의 걱정을 대신 걱정하기 때문이다. 내가 맡은 파트만 잘 연주하면 되는데 날씨 걱정부터 시작해서 별 걱정을 다 하는 게 인간이다. 초보 운전자는 야간에 고속도로를 달리며 백미러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을 걱정한다. 뒤에 아무것도 없는데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게 당연하다. 아무것도 없으면 그것을 걱정할 이유도 없다. 운전자는 앞만 보고 달리면 된다. 방향만 보고 가는 것이다. 인생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고 게임 안에서 내 역할을 명확히 하면 부담은 크게 줄어든다.

 

김동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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