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광야, 이육사, 저항시 [현대시]

Jobs9 2022. 6. 28.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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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요점 정리

성격 : 의지적, 저항적, 참여적, 지사적, 미래지향적, 상징적
어조 : 남성적 어조
시상 전개 : 시간의 흐름에 따른 추보식 전개
구성 : ① 광야의 원시성(제1연)
         ② 광야의 광막성(제2연)
         ③ 역사의 태동(胎動)(제3연) - 과거
         ④ 현재의 암담한 상황과 그 극복 의지(제4연) - 현재
         ⑤ 영광스런 미래의 소망(제5연) - 미래
제재 : 광야(曠野)
주제 : 조국 광복에의 신념과 의지 
특징 : 
① '과거-현재-미래'로 시간의 순서에 따라 시상을 전개하고 있음(추보식 구성)
② 의인법을 사용하여 역동적 심상을 만들어냄

③ 각 연과 행은 동일한 형태로 만들어짐. 즉 모든 연은 3행이고 1행보다는 2행이, 2행보다는 3행이 길게 형태 지어짐

④ 남성 편향적인 시어로 정신적 강렬성과 의지를 부각시킴

⑤ 예스러운 어휘와 어미를 사용하여 품격을 유지함

⑥ 호방하고 웅장한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상징적인 시어를 많이 사용함

⑦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광막한 공간과 장대한 시간을 교차시켜서 시상을 전개함

⑧ 속죄양 모티프를 취하고 있음

⑨ 시적 화자의 선구자적이고 예언자적인 태도가 돋보임 
                     

어휘와 구절

까마득한 날 : 아주 오래 전. 뒤의 '천고의 뒤'와 호응.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 설의적 표현으로 여명을 알리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암흑과 혼돈의 상태를 가리킴. 닭 우는 소리는 인간의 생활, 역사의 시작. 따라서 역사 이전의 상태로 때묻지 않는 천지 개벽 이전의 광야의 원시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모든 산맥들이 /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 역사의 시자과 더불어 대지에 산맥이 형성된 과정을 동적으로 묘사한 표현(활유법). 역동적 심상. 사이비 진술(사이비 진술이란 진술과 유사하지만 진술이 아니라는 뜻으로 시적 진술이 상징성과 은유성을 갖는 데서 비롯된 말) 
차마 이 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광야의 광막성, 신성함.
끊임 없는 광음과 부지런한 계절 : 광음이나 계절은 모두 시간을 나타내지만, 광음은 '끊임없는'이라는 관형사의 성격으로 보아 물리적인 시간을 의미하고, 계절은 '부지런한'으로 미루어 인간적(의지적) 시간이다.

광음 : 시간,  세월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 시간의 개념인 '계절'을 '꽃'의 심상으로 시각화, 영화의 화면으로 재현하려고 한다면 가장 알맞은 카메라의 촬영 기법은 O. L(over-lap) - 화면이 겹쳐지며 장면이 바뀌는 수법. 한 화면의 끝과 다음 화면의 처음을 부드럽게 포개는 기법.(시간의 경과를 나타내기도 함.) 
강물이 길을 열었다 :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았던 광활한 대지에 문명의 역사가 시작된 상황의 표현. 역사, 문명의 태동. 인류 문명의 발상지가 대부분 큰 강 주변이라는 사실에 착안한 표현이다.

지금 눈 - 아득하니 : 겨울의 추위가 사라질 봄에 대한 희망은 아득히 멀다.

눈 : 일제 치하의 가혹한 현실 상황
매화 향기 : 독립의  기운.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와 고고한 정신
내 여기 - 씨를 뿌려라 : 비록 현실적 힘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밝은 미래를 향한 나의 염원이 후대에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 
가난한 노래의 씨 : 미래에 대한 준비이자 자기 희생(속죄양 의식).  자신의 노력을 '가난한'것으로 인식하는 시적 자아의 겸손한 자세. 미래의 희망을 예견하는 희생적 자세.
뿌려라 : 감탄적 명령. 1인칭과는 호응하지 않으나,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음.
천고의 뒤 : 온갖 고통을 거친 먼 미래의 시간.
백마타고 오는 초인 : 조국의 광복을 실현하고 조국의 역사를 찬란히 꽃피울 존재, 이상적 구원자 

시어의 내포적 의미

① 강물  -------역사  

② 눈    ----암울한 시대 상황

③ 매화 향기 -------민족 정신

④ 닭 우는 소리----생명의 기적

⑤ 백마 -------조국(민족)의 번영이나 영광

⑥ 초인 ------비범한 능력을 가진 존재, 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꽃피울 초월적 존재, 위대한 후손(의식을 지닌 독립 운동가)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배경의 웅대함으로 처음부터 독자를 압도한다.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아득하게 넓은 평야, 시간적 배경은 천지가 처음 열리는 까마득한 태초에서부터 머나먼 미래에로 이어지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크게 나누어 보면, 제1∼3연이 과거를, 제4연이 현재를, 제5연이 미래를 각각 노래하고 있다.
 제3연까지의 부분에서는 광야의 원시적 순수성에서부터 무수한 세월이 흘러 강물이 길을 열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제2연은 바다를 향해 뻗어 있는 산맥들의 모습을 살아 있는 동물의 움직임처럼 인식하면서, 그것들이 차마 침범하지 못한 광야의 광활함을 노래하였다. 이처럼 웅장한 터전에 마치 꽃이 피고 지듯 무수한 계절이 지나간 뒤 비로소 강물이 흐르고 길이 열렸다. 
만물이 눈에 덮여 있는 가운데 이 넓은 광야에 매화의 향기가 그윽하고 은은하게 풍겨 온다. 이 분위기는 앞 부분에서 전개되어 온 광야의 모습을 좀더 숭고하고 신성한 것으로 만들면서 그 안에 선 인물의 외로움을 암시하여 준다. 그는 아무도 없는 광야, 더욱이 눈 덮인 겨울의 광야에 서서 무한한 과거의 시간과 먼 미래의 시간을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이 상황은 고독한 것이면서 그의 강인한 의지를 더욱 곧게 세우도록 촉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한 고독감과 긴장된 의지의 경지가 `매화 향기'라는 사물을 통해 암시된다.
 강인한 의지로 외로움과 추위를 이기며 서 있는 이 자리에 `나'는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린다. 일체의 생명이 용납되지 않는 냉혹한 시련의 상황에서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자리에 혼자서 뿌리는 씨앗이기에, 더욱이 견디기 어려운 추위(가혹한 현실 상황)를 무릅쓰고 뿌리는 것이기에, 그것은 가난한 노래의 씨앗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광막한 공간과 무한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억센 의지로 모든 고통을 이겨내고자 하는 의연한 결의가 담기어 있다.
 그러면 그가 뿌린 외로운 노래의 씨앗은 누가 거둘 것인가? 그것은 대체 싹이나 틀 수 있는가? 이런 물음은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냉혹한 시련만이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의지로 모든 고통을 이기며 싸워야 했던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행위가 가져올 성패(成敗) 여부가 아니라 달리 선택할 길이 없는 그 필연성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마지막 연에서 노래한다 ― `다시 천고의 뒤에 /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라고.

 

 

이 시에 나타난 비극적 자기 확인 
 

「광야」는 웅장한 목소리와 비전으로 때묻지 않은 역사의 신성한 미래를 노래한다. 주목되는 것은 여기서 육사가 보여주는 고절(孤絶)의 의식 ― 시간적으로는 장구한 과거의 천고(千古)와 미래 사이, 공간적으로는 만물이 눈 덮인 광야 위에 홀로 선 자기의 인식이다. 이 고절의 자리 ― 어쩌면 절절한 고독감으로 그를 절망케 할 수도 있었을 자리에서 육사에게 행동의 의미를 부여하는, 그리하여 그를 구제하는 것이 장엄한 미래에의 기대이다. 이 때문에 극한적 상황의 압박에서 정신의 의연함이 획득될 수 있었다. 

이 작품을 해명하는 핵심은 넷째 연에서 드러난다. 즉, 그는 자신을 아득한 과거와 미래의 연속을 매개하는 창조의 계기로 자임(自任)하는 것이다. 허심탄회하게 `가난한 노래의 씨'라고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언명(言明) 속에는 거대한 역사의 중력(重力)을 감히 지탱하겠다는 오연한 의지가 자리하고 있다.

육사가 「광야」에서 기도했던 것은 타인에게 향한 발언이기보다 자기 스스로에게의 다짐이라고 여겨진다. 즉, 역사적·문화적 혼돈의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삶에 절대한 사명을 부여함으로써 세계 내적 존재 의미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 결의는 번민의 음울함도 절망적 침통함도 넘어섰지만 `기다림'의 의미 때문에 여전히 비극적인 자기 확인이다.

속죄양 모티프는 '희생정신'과 상통하는 정신이라 볼 수 있겠다.「꽃」에서 '꽃'이 개화되는 것도 시련을 이겨낸 의지의 표상이요,「청포도」에서 '고달 픈 몸으로 오는 손님'의 모습,「절정」에서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는' 서정적 자아의 모습,「교목」에서 '호수 속에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지 못 해라'는 굳센 의지의 모습 등은 암울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 희생정신을 형상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육사 시에 나타난 저항 의식      

가. 이육사의 삶과 역사 인식

육사 이원록(또는 이활)은 1904년 경북 안동의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엄격한 양반 교육과 함께 조부로부터 한학을 배웠다. 그러나 시대적인 추세와 함께 개화한 조부는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노비들에게 토지를 분배해 주는 등 일찍이 반봉건 인간 해방의 실천적 삶을 육사에게 보여 주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 육사는 항일 의식이 강한 외가, 친가의 영향을 받아 1925년(22세), 항일 무장 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한 후 북경, 만주 등을 오가며 독립 운동의 대열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후 반일제·반봉건·민족 해방·인간 해방의 선봉에 서서 17회의 옥고를 치르며 머나먼 이국땅 북경에서 옥사하면서까지도 일제에 굴하지 않는 꿋꿋한 조선 남아의 기개를 보여 주었다.

1930년대는 예술지상주의, 주지주의, 풍자, 전원 문학 등 주로 현실 도피적인 작품이 많이 창작되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육사는 반 민족적이고 비인간적이게 하는 식민지 현실을 직시하고 온 겨레의 살 길인 민족 해방에 대한 확신을 갖고 수십 차례의 옥고를 치르면서도 독립 운동을 포기하지 않았고, 민족 해방과 인간 해방에 대한 믿음과 전망을 제시하고자 함에 노력하였다.  

나. 이육사 시 속에 나타난 저항 의식

 민족 해방의 날은 반드시 온다는 미래 지향적인 육사의 역사 의식은 친일하지 않으면 절필해야 했던 암울한 문학적 현실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일제에 대한 문학적 아부를 일절 거부한 채, 오로지 민족 현실에 대한 염려, 이를 어쩌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질책(방황), 더 나아가 민족 해방에 대한 확신과 결연한 의지 등으로 시 속에서 발전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는 독립 운동가로서의 자신을 단련시키고 절망하고 있는 민족에게 희망을 가져다 주어 식민지적 현실을 타개해 나가는 힘이 되게 하는 것으로서 이를 우리는 민족 해방을 가로막는 일제에 대한 적극적 저항 의식의 표출이라 할 수 있다. 

일제하 저항시의 개념과 범주 
 

일제 강점하의 개념은 단순히 시대, 역사적 현실의 반영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하기보다는 시인의 현실적 삶과 작품에서의 태도의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즉 이상화의 경우는 낭만적인 울분과 토로로, 한용운의 경우는 형이상학적 소망의 구현으로, 이육사의 경우는 혁명적, 지사적 의지의 표출로, 윤동주의 경우는 내면적 갈등과 의지의 성찰로서 저항의 의미를 형상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작자 소개

이육사 李陸史 [1904.4.4~1944.1.16] 호 육사(陸史). 본명 원록(源祿),활(活). 경북 안동(安東) 출생. 조부에게서 한학을 배우고 대구 교남(嶠南)학교에서 수학,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義烈團)에 가입, 1926년 베이징[北京]으로 가서 베이징 사관학교에 입학, 1927년 귀국했으나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때의 수인번호 64를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 출옥 후 다시 베이징대학 사회학과에 입학, 수학 중 루쉰[魯迅] 등과 사귀면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1933년 귀국, 육사란 이름으로 시 《황혼(黃昏)》을 《신조선(新朝鮮)》에 발표하여 시단에 데뷔, 신문사 잡지사를 전전하면서 시작 외에 논문 ·시나리오까지 손을 댔고, 루쉰의 소설 《고향(故鄕)》을 번역하였다. 1937년 윤곤강(尹崑崗) ·김광균(金光均) 등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子午線)》을 발간, 그 무렵 유명한 《청포도(靑葡萄)》를 비롯하여 《교목(喬木)》 《절정(絶頂)》 《광야(曠野)》 등을 발표했다. 1943년 중국으로 갔다가 귀국, 이 해 6월에 동대문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 이듬해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시인으로 목가적이면서도 웅혼한 필치로 민족의 의지를 노래했다. 안동시에 육사시비(陸史詩碑)가 세워졌고, 1946년 유고시집 《육사시집(陸史詩集)》이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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