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1952년 6월 18일
부산광역시 동래구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업기계학 / 학사)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노스리지캠퍼스 대학원 (컴퓨터공학 / 석사)
6.25 전쟁 당시인 1952년 6월 18일에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 동래구)에서 3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대한민국 음반 시장에 역사를 쓴 인기 아이돌 그룹들의 아버지이자 한국 음반 시장에 아이돌 문화를 정착시킨 주역 중 한 명이다.
1970년대부터 가수 겸 MC로 맹활약했기 때문에 이수만과 동년배이거나 이수만보다 나이가 많은 노년층에게는 가수로 더 유명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수만을 가장 잘 드러내는 단어는 프로듀서이다.
1970~1980년대에 활동했던 옛날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프로듀서로 활동한 경력이 있어 어린 세대도 대부분 이수만을 알고 있다. 이문세, 유열과 같이 마삼트리오로서 대한민국 발라드 가수 삼대장보다 내 가수들의 사장님으로 더 많이 기억하고 있다.
이수만은 아이돌이라는 말이 익숙치 않던 시절부터 앞으로 아이돌 가수 시대가 올 것을 일찍이 예측하고 철저히 기획된 아이돌 팀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최고의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는 SM 소속 아이돌 가수들은 모두 이수만의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에서 나온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이수만이 비리 혐의로 해외에서 도피 중이던 2000년대 초반에는 SM 아이돌들의 흥행 성적이 떨어졌다.
굳이 SM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하더라도 K-POP 장르를 개척한 장본인으로, 이수만 덕분에 SM 소속 인기 아이돌뿐만 아니라 타사의 여러 인기 아이돌들이 생겨날 수 있었다. DSP 사장 이호연이 H.O.T.의 성공을 보고 강성훈, 은지원의 듀엣 그룹에 급하게 고지용, 이재진, 김재덕, 장수원 4명을 추가 영입해 젝스키스를 만든 일화는 유명하다. 걸그룹도 S.E.S.가 청순 컨셉으로 데뷔와 동시에 신드롬을 일으키자, 김준희를 필두로 제작 예정이었던 힙합 걸그룹을 청순 컨셉으로 전면 수정해 핑클을 만든 일화도 유명하다.
DSP는 'SM 아이돌에 +1' 전략으로 각각 젝스키스, 핑클(vs S.E.S.), 클릭비(vs 신화)를 배출하며 라이벌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이 둘의 라이벌 관계는 이제 옛날 이야기가 됐고, 이호연사장이 2010년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DSP는 크게 쇠퇴했다. 이후 한동안 이수만의 라이벌은 JYP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과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으로 대표되었다.
2012년대에는 EXO를 데뷔시키면서 아이돌 시장에 본격적으로 세계관 문화를 도입, 성공시키면서 역시나 트렌드를 이끌어간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연예 기획사들의 인수 합병, 중소기획사들의 발전으로 인해 과거에 비해 이수만의 영향력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SM Rookies를 통해 연습생들을 데뷔 전부터 공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 역시 연예계 전반의 트렌드가 되었지만, 정작 루키즈를 통해 공개됐던 여자 연습생들은 이미지 소모만 크게 한 뒤 과반 이상이 데뷔하지 못한 채 SM을 퇴사하거나 연예계를 떠났다.
루키즈를 만든 이유나 다름 없었던, H.O.T. 시절부터 끊임없이 시도한 끝에 20년 만에 데뷔시킨 로테이션형 그룹 NCT는 초반 몇 년간 자리를 잡지 못했었고, 걸그룹은 히트작 중 하나인 레드벨벳이 데뷔한 이후 6년이 지나서야 에스파가 데뷔했다. f(x)는 2015년 이후 그룹 활동을 전혀 시키지 않으면서 무대응으로 일관하다 모든 멤버들이 떠나는 사실상 해체 상태에 놓였다. 다만 이 기간 동안 태연, 규현, 태민, 헨리 등의 기존 그룹의 멤버들을 솔로 아티스트로 성공시키는 행보가 있었다.
최초의 한류 진출을 염두에 둔 아이돌 그룹을 만든 선구자격 제작자이기도 하다. H.O.T.가 중국과 일본, 동남아 등에서도 인기를 얻자 이후 거의 최초로 기획부터 철저히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아이돌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최초의 사례가 걸그룹 S.E.S.다. 당시 남자는 군입대 문제가 있었기에 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걸그룹으로 해외진출 시도를 꾀했던 것이다. 재미교포 출신의 유진, 재일 교포 출신의 슈, 중국어를 담당할 예정이었지만 학업을 사유로 사퇴한 소이 등의 구성으로 역대 한국 가수 최초로 제작 당시부터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다국적 멤버를 구성하는 시도를 S.E.S.를 통해서 실현했다. 일본어가 가능한 슈 때문에 일본 진출을 하였고, 대만 내에서는 가장 인기있는 걸그룹으로 한류 열풍의 주역에 섰다. 이후 일본 진출을 염두에 둔 보아나 중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중국인 멤버까지 도입했던 SUPER JUNIOR 등의 아이돌은 이수만이 기획하기 전, 과거 한국에는 볼 수 없는 가수들이었다. 여러모로 긍정적인 의미든 부정적인 의미든 지금의 철저한 기획형 아이돌의 전성기를 이끄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프로듀서라 할 수 있다.
현재 나이는 고령으로, 그룹을 운영할 후임자를 찾고 있어 SM 매각설이 2021년부터 돌고 있다. 하지만 이수만의 직무 중 일부는 이미 H.O.T.로 활동했던 강타가 대행하고 있다.
가수 활동
1972년 밴드 '4월과 5월'의 멤버로 데뷔하였으나 건강 이상으로 중도 탈퇴하였다. # 이후 경복고등학교(46회)와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노스리지에서 컴퓨터공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인디 시절에는 농생대 소속 동아리인 '샌드페블즈' 초창기 멤버로서 활동하는 등 정통 락을 기반으로 음악을 갈고 닦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수만이 샌드페블즈였는데, 왜 대학가요제는 나가지 않았나?" 라고 묻는 부분이 있다. 1977년 첫 대학가요제에 출전했던 샌드페블즈는 기수로 6기였다. 이수만은 2기. 그리고 바로 윗선배(1기)가 김동만 씨인데 이분의 아들이 지금 톡식의 김정우. 어쨌든 이수만은 1977년 제1회 대학가요제 MC를 맡은데 이어 1998년까지 이효리에 이은 최다 MC로 활약했다.(8회)
이수만과 365일 1집. 1980년 발매된 이 앨범에서는 정통 록을 확실하게 시도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좋은 노래들이 상당 수록되어 있지만 당대에 워낙 쟁쟁한 가수가 많아서 큰 두각은 나타내지 못했다.
라디오 DJ를 하기도 했었는데, TBC의 비바 팝스(일레븐 팝스)를 제외하고는 MBC가 주 활동무대였다. 별이 빛나는 밤에의 진행을 맡기도 했고 1980년대 후반에는 '젊음의 음악캠프'를 맡았으며 이는 '팝스 투나잇'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다시 '젊음의 음악캠프 이수만과 함께'가 된다. 어디서 많이 본 단어가 느껴졌다면 제대로 본 것이다. 이수만의 뒤를 이어 배철수가 30여년간 계속 맡아온 그 프로그램의 전신이다.
당시 MBC 라디오의 가수출신 DJ로 "별이 빛나는 밤에" 이문세, "젊음의 음악캠프" 유열과 함께 마상트리오(馬相 Trio) 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2015년 12월 4일 응답하라 1988 9화에서 이문세가 이수만의 곡을 소개하면서 대놓고 「마상트리오」 인증했다.
당시 앞의 두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인지도 있는 가수였다. 그러나 점차 연예 활동에 한계를 느꼈다. 포크/록 가수로서 최정상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상실감과 정상에 서고 싶다는 욕망 등 여러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가운데 미국 유학 시절 MTV를 보고 틴에이져 아이돌들과 뉴 키즈 온 더 블록을 보며 왜 우리 가수는 해외에서 인기를 끌만한 가수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해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설립한 것이 SM기획(현 SM엔터테인먼트)이다.이수만 "미래 한류는 한중일 합작"
이로 인해 조영남은 2006년 GQ 인터뷰에서 그를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이문세 또한 샤이니가 <오늘 아침 이문세입니다>에 출연하여 이수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더 이상 이야기 하지 말도록 해요. 별로 안 좋아하거든." 이라며 말을 했지만 2015년에도 이수만, 유열과 아직도 정기적으로 가족동석 식사를 한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친분이 있으니 반농담식 발언이었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후 처음 발매한 곡. 대한민국 최초로 테크노음악, 즉 오늘 날에는 컴퓨터 음악인 MIDI로 불리는 프로듀싱 방식을 들여왔다. 이때부터 화려하고 아티스틱한 앨범 패키징을 선호했다.
본인부터 1989년 10집 뉴에이지 이후 아예 음악 활동을 끊었으니 미련은 없는 듯. 그래도 별이 빛나는 밤에 1만회 특집에서는 랩을 이문세와 같이 하기도 했다. 별밤 40주년 기념 특집방송에서 주철환 전 MBC PD(현 JTBC 콘텐츠본부장)와 샤이니가 같이 출연했을 때 기념삼아 틀어줬다. 별밤 홈페이지에 동영상으로 제공되니 그 현란한 래핑을 확인해보자. 또한, 이 시절에는 모 주스의 모델을 맡기도 했는데 당시의 CF가 발굴되면서 소소한 화제가 되었다.
프로듀서
음악 활동을 접을 무렵 MC로 진출하기도 했으며 이때부터 가수 현진영의 2집 제작을 총지휘하는 등 매니지먼트 사업 행보가 시작됐다. 이후 SM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여 수많은 아이돌 그룹들을 배출하였고 자신이 제작한 아이돌 그룹을 연달아 성공시키면서 국내 최고의 연예 기획사로 성장하게 된다.
보아와 동방신기의 일본 현지화를 통해 대성공을 거두고 SUPER JUNIOR-M을 통해 한국 아이돌 그룹 최초로 중국 현지화를 시도했다. 정형화된 아이돌 구성을 굳히면서도 나름대로 다양한 시도를 한 것도 큰 특징인데 샤이니와 f(x)의 경우 천편일률적인 아이돌 그룹과는 다르다는 게 그룹 콘셉트였고 대중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아이돌 그룹의 음악이 음악적으로 평가될 발판을 세우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또한 유튜브를 통한 해외 시장 공략으로 일찍이 눈을 돌린 것도 이수만과 SM이었는데 하술할 SM의 파리 콘서트 이후 국내 기획사들이 유튜브를 중요시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각종 음악방송도 순위 집계에 유튜브 점수를 반영하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한류 3단계론을 제시하였다. 한류 1단계는 보아와 동방신기처럼 한국 가수의 해외 시장 진출, 2단계는 SUPER JUNIOR, f(x)처럼 외국인 멤버를 그룹에 넣어 현지에서의 한류에 대한 반발을 최소화하고 한류를 이어가는 것이고 마지막 3단계는 철저한 현지 가수 육성 단계다. 현지 회사와의 합작을 통해 시장을 공략하고 현지 시장에서의 강력한 영향력을 토대로 한류 1, 2단계 가수들까지 해외로 계속 진출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인데 전세계 현지화팀 데뷔 프로젝트인 NCT 프로젝트가 이에 해당한다.
2000년대 당시만 해도 한류 3단계론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이 주를 이루다가, 2010년대 초중반까진 한중 합작 컨텐트 제작사가 늘어나고 한국의 컨텐츠 제작자들이 중국으로 넘어가 현지 회사와 제작 초기부터 참여하는 등 이수만의 안목이 얼추 맞아들어 가기는 했다. 이수만의 주장에 따르면 중국의 자본력을 이길 수 있는 회사와 시스템이 다른 나라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 컨텐츠 제작에 한국이 참여하는 식으로 수익을 내게 되면 국가 경제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이 완벽하지만은 않다는 것이 드러났는데, 바로 중국이란 국가의 특수성과 규모 때문이다. 중국인 멤버를 가장 먼저, 그리고 본격적으로 채용한 것이 SM이었는데 정작 중국인 멤버들은 한국에서의 활동을 그저 인지도 쌓는 발판으로만 이용하다가 중국 본토로 넘어가 버리곤 했고, 홍콩 민주화 운동 같은 정치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중국 편에 서는 일이 비일비재해진 것이 문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중국인 멤버 입장에선 한국에서 그룹 활동을 하는 것보다 본국으로 돌아가서 혼자 활동하는 것이 수익이나 인지도 확보 면에서도 월등히 좋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정치적 문제에 얽혀들어 홍콩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거나, 이른바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는 아티스트들이 대거 늘어나면서 소속 그룹은 물론 기획사 자체의 이미지 하락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수만이 제창한 한류 3단계론에도 다소 회의적인 시각이 늘어났는데, 굳이 타국 현지화 없이, 외국인 멤버 없이 해외에서 막대한 수익과 인기를 거둬들이는 케이스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연예계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굳이 외국인 멤버에 연연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겨나고 있다. 이수만의 한류 3단계론은 2010년대 이전까지는 잘 맞아 떨어지는 플랜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중후반부터 유튜브가 떠오르고, 그 여파로 국가 간의 문화 교류가 급속도로 빨라지면서 현지화 전략 없이 다이렉트로 해외에 매력을 어필하는 게 가능해진 것이 사실이다.
다만 한류 3단계론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지론이라고 보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타국의 특수성, 국가 간 트러블 등으로 인해 SM이 이미지 타격을 받았다 해도 거대한 중국 시장에 K-POP의 위상을 퍼트리고 한류의 불씨를 계속 이어나갔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 박진영이 방송 출연에서 말했듯, 외국인 멤버가 K-POP을 하는 것도 한류고 외국에서 자체적으로 K-POP 그룹이 나타나는 것도 한류다. 이수만의 한류 3단계론을 통해 K-POP의 저변과 스펙트럼을 넓혀나가야 한다는 목적성을 제시했고, 지금은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인해 진통을 겪는 과정이라 보는 것이 옳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SM의 해외 공략은 연이어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11년 6월 10일 프랑스 파리 콘서트를 통해 슈퍼주니어의 Sorry, Sorry가 큰 반향을 일으키며 현지 팬덤이 형성되었고 대형 플래시몹과 서명문 통지를 통해 2012년 슈퍼주니어의 단독 콘서트 투어인 SUPER SHOW 4가 파리에서 개최되었다. 심지어 이 떡밥으로 광고도 찍었다! 그만큼 이 콘서트는 당시 연예면과 시사면 양쪽에서 화제가 되었으며 뒤이어 2013년 10월 19일 베이징 콘서트에서는 7만 명의 관중을 모으면서 K-POP의 세계 시장으로의 가능성을 다시금 보였다. 뿐만 아니라 중국 멤버를 영입하는 전략을 토대로 중화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는데 대표적인 예가 상술한 SUPER JUNIOR와 EXO. EXO의 경우 현지화 도중 중국인 멤버들이 탈퇴하는 바람에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
2020년 무한 확장 콘셉트로 활동하는 보이그룹 NCT와 SuperM을 통해 현지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2022년 9월 15일 SM 측에 2022년 말 프로듀싱 계약 조기 종료를 통보했다. 훌륭한 후배 프로듀서들이 큰 어려움 없이 잘 꾸려나갈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현 상황에서 물러나라는 소액주주들의 의견 또한 대주주로서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도리이며 현 시점이 계약을 종료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는 의견을 강력히 피력했다고 밝혔다. SM 입장문 9월 16일 추가 입장문
이에 SM 내부는 경영진와 소속 아티스트들도 당혹스러워하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라고 하며 엔터업계에서는 이수만이 SM 콘텐츠의 완성도에 끼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인 만큼 SM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면 타격이 매우 클 것이라는 반응이 주류를 이뤘다..
다만 이러한 기사는 신빙성이 모자르므로 걸러들을 필요성은 있어보인다. 참고로 팬들과 대중들의 반응은 "이수만이 나가니 시원섭섭하다" 라는 반응과 함께 "나갈사람이 드디어 나간다"며 반기는 반응이 함께하고 있다. 여하튼 이수만이 떠난 SM이 어떠한 방식으로 돌아갈지에 대해서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것이다.
그런데 위의 찬반론이 좀 무의미한 것이 이수만은 현재도 SM의 최대주주다. 직접적 영향력은 얼마든지 행사할 수 있고, 2022년 후반기 카카오가 역대 최악의 행보를 가지고 있어 자신의 주식 매각도 거의 실패로 돌아가는 상태라 계속 SM의 리더로 남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일단 2023년 1월을 마지막으로 총괄 프로듀서로서의 계약은 종료되었다. # 미우나 고우나 프로듀싱 능력 하나만큼은 인정하던 수많은 SM 팬들 대부분은 걱정이 앞서는 상태며, SM 3.0 이랍시고 공개한 계획이 매년 2팀 이상의 신인그룹 데뷔라는 말도 안되는 목표를 지향함에 따라 드디어 정신이 나갔다는 소리를 듣고있다. 또 최근 굉장히 좋지 못한 평가를 들은 갓더비트의 신곡 Stamp On It이 이수만은 끝까지 반대했지만 이사진이 강력하게 밀고나간 곡이라는 소문까지 퍼지면서 이수만이 빠진 SM 수뇌부에 대한 불신이 가득 쌓여가고 있다.
2023년 2월 3일, <SM 3.0: IP 전략> 발표회에서 이수만 프로듀서와 SM의 계약이 종료되었다고 공식화했다. 이성수·탁영준 SM 공동대표는 “SM과 총괄프로듀서로서의 계약은 종료되었지만, 여전히 주주로서 SM을 응원해주시는 이수만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며 여전히 이수만이 대주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발표회 후 SM 초기 시절부터 쭉 인연을 함께해 온 가수 겸 배우 김민종이 SM 전 직원에게 보낸 메일에서 “이수만 선생님을 위해, SM 가족을 위한다는 이성수·탁영준 공동대표는 공표된 말과는 달리 선생님(이수만)과의 모든 대화를 두절하고, 내부와는 어떤 상의도 없이 일방적인 발표와 작별을 고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저를 비롯한 SM 아티스트의 활동에는 (이수만) 선생님의 프로듀싱과 감각적 역량이 꼭 필요하다” 며 이와 같은 퇴진 공식화에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나 퇴진 발표 후 주식시장에서는 상장 이후 처음으로 9만원 선을 돌파한 상황에서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 기사 심지어 블라인드에서는 해당 메일이 김민종의 의사가 아니며, 이수만이 본인의 발언권이 줄어들자 자신과 친분이 있는 아티스트들과 이사들을 매수해 총알받이로 내세우면서 여론전을 펼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2월 10일 자신이 가진 지분을 HYBE에 매도한다고 발표하면서 상황이 급변하게 됐다. 이수만 본인으로서는 초강수를 둔 셈.
SM 1세대 가수 출신 현진영의 회고에 따르면 잔소리가 꽤 심하다고 한다. 식사할 때 젓가락과 숟가락을 동시에 든다고 잔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고.
1세대 아이돌그룹 세대의 등장과 더불어 립싱크가 보편화되면서 가창력 논란이 일던 시절, 방송에서 "H.O.T.를 가수가 아니라고 한다면 기꺼이 동의할 용의가 있다", "TV 엔터테이너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바라봐야 한다", "립싱크도 장르다"라는 주장과 함께 립싱크 옹호론을 펼쳐 PC통신 등에서 비난을 받았다. 여기에 대해 이수만은 칼럼이나 인터뷰로 구구절절 자신의 의견을 다시 펼치기도 했다.
‘이수만 퇴진’ SM 내분 심화…카카오 2대 주주되면서 법적 소송 예고
SM엔터테인먼트의 내분이 심화되고 있다. 이사회가 대주주 이수만의 퇴진 결정을 내리고 지분 일부를 카카오에 팔자 이수만 측이 거세게 반발하면서다. 향후 법적 소송까지 이어질 분위기다. ‘1세대 아이돌’ 산업을 만든 SM이 상당 기간 진통이 겪을 것으로 보인다
SM 내분의 핵심은 대주주 이수만의 1인 체제 유지 여부였다.
1995년 SM을 설립한 이수만은 총괄 프로듀서로 회사를 이끌어왔다. 2010년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뒤로는 개인 회사인 라이크기획을 세워 프로듀싱 명목으로 매년 200억원 이상을 받아왔다.
이 체제에 반기를 든 건 소액 주주를 대표하는 행동주의 얼라인파트너스 운용사. 얼라인파트너스는 지난해 2월 SM에 감사를 선임하겠다는 주주 제안 행동에 나섰고 주총 결과, 새로운 감사인을 선임했다. 얼라인은 그러면서 이수만 프로듀서의 1인 체제 문제를 집중추궁했고, 결과적으로 1년이 흐른 지난 3일 SM은 이수만 없는 프로듀싱 체제 ‘SM 3.0 시대’를 발표했다. 대주주 이수만의 퇴진 요구 받아들인 것이다.
‘이수만 퇴진’ 발표 이후 지분 정리도 곧바로 이어졌다. 카카오는 7일 공시를 통해 SM엔터테인먼트의 지분 9.05%를 확보해 2대 주주로 올라섰다고 발표했다. SM엔터테인먼트가 제3자 배정 유상증자 형태로 발행하는 123만 주 규모의 신주를 인수하고, 전환사채 인수를 통해 114만 주(보통주 전환 기준)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총 취득 금액은 2171억5천200만원이다. 카카오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현재 이수만은 SM 지분 18%를 보유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카카오가 지분을 더 사들이면 최대주주가 바뀔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수만 측도 가만있지 않을 태세다. 이수만 측은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화우를 통해 이날 “명백한 위법 행위”라고 반발했다.
화우는 “SM의 정관은 긴급한 자금조달 등 경영상 필요가 있는 경우에만 신주 또는 전환사채의 제3자 배정을 허용하고 있다”며 “경영권 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공동 대표이사들이 주도하는 SM의 이사회가 제3자에게 신주와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것은 명백히 상법과 정관에 위반되는 위법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어 “SM 이사회가 내세우는 자금조달 목적은 상법 및 정관 규정에 부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 위한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며 “(경영권 분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실제로는 경영진의 경영권이나 지배권 방어 등 회사 지배관계에 변동을 주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위법 행위”라고 주장했다.
화우는 “최대주주의 대리인으로서 위법한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을 금지하는 가처분을 통해 SM 이사회의 불법적 시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것이며, 위법한 결의에 찬성한 이사들에 대해서는 민·형사상 모든 법적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SM 소속 가수 겸 배우 김민종은 지난 5일 SM 모든 직원에게 e메일을 보내 “이수만 선생님을 위해, SM 가족을 위한다는 이성수·탁영준 공동대표는 공표된 말과는 달리 선생님(이수만)과의 모든 대화를 두절하고, 내부와는 어떤 상의도 없이 일방적인 발표와 작별을 고했다”며 “저를 비롯한 SM 아티스트의 활동에는 (이수만) 선생님의 프로듀싱과 감각적 역량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