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토막(土幕), 유치진, 일제 강점기 농촌의 비극적 현실, 사실주의 희곡

Jobs 9 2020. 6. 1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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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土幕)

유치진(柳致眞)

우리 현대 희곡사에서 사실주의 희곡의 첫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의 가혹한 현실 속에서 파멸되어 가는 가난한 농민들의 삶과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그렸다.

 

제 1 막

토막에 사는 시골 농사꾼인 최명서의 아들 명수는 7년 전 일본으로 돈을 벌러 갔으나 아무런 소식이 없다. 같은 마을의 삼조라는 청년이 집을 잡히고 일본에 돈을 벌러 가는 길에 명수의 소식을 알려 주기로 한다. 그런데 동네 구장이 가져온 낡은 신문을 통해서 명수가 일본에서 노동자 해방 운동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잡혀 종신 징역을 살지 모른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한편, 경선네는 장리벼를 얻어먹다가 집까지 빼앗기고 경선은 어디로 도망간다.

제 2 막

이로부터 일 년 후, 명서는 앓아 누웠고, 명서 처의 행상으로 가족이 연명한다. 한편 경선 처와 자식들은 명서집 부엌에서 더부살이를 하는데 등짐장수하는 경선이 돌아와 가족을 데려간다. 이들이 떠난 뒤 명서 처는 아들 명수를 기다리며 거의 실성한 상태에 빠지는데 우체부가 나타나 명수의 유골을 전한다. 교과서에 수록된 부분은 제2막의 후반부이다.


                    

등장 인물

최명서(崔明瑞) : 병들고 가난한 늙은이     명서 처(妻)

금녀(今女) : 그들의 딸                   이웃 여자

우편 배달부

때 : 192×년 제 1 막의 다음 해 초봄의 어느 날

무대 : 읍에서 그리 멀지 않은 명서의 집. 외양간처럼 음습(陰濕)한 토막(土幕)집의 내부. 온돌방과 그에 접한 부엌. 방과 부엌 사이에는 벽도 없이 통했다. 천정과 벽이 시커멓게 그을은 것은 부엌 연기 때문이다. 온돌방의 후면에는 골방으로 통하는 방문이 보인다. 좌편에 한길로 통한 출입구, 우편에는 문 없는 창 하나.

 

제2막

<전략>

명서 처  아이구 금녀야, 우린 이런 형상으루 어떻게 우리 명수를 만나니? 이렇게 찌들어진 형상으루! 너의 오빠를 맞이하기엔 이 집은 너무 누추하구나. 금녀야, 우리는 집 안을 치우구 몸을 단속하자. 이런 꼬락서니로 우리 명수를 만나서는 안 된다. 얘야, 이리 와서 머리를 빗어라. 기름두 남았지? 싸리문에는 불을 켜구…… 귀한 사람이 들어올 때 집 안이 컴컴해선 못쓰느니라.

금녀  (어머니의 미친 듯이 서두는 양을 바라보고 있는 금녀의 눈에는 일종의 공포의 빛이 감돈다.)

 

(바람 소리)

 

명서 처  금녀야, 뭘 하니? 빨리 머리를 풀어라. 에미는 불을 킬 테니까.

금녀  (불안한 듯이 어머니만 꼭 바라보고 섰다.)

이웃 여자  좀 답답해서 저러겠니? 보고 있는 나까지 속이 졸이는구나.

금녀 오빠  생각만 나문 저러신대유. 그러신 중에두 오늘은 유달리 심허신 걸유. 난 어쩌지…….

이웃 여자  당찮어! 무슨 그런 엉뚱한 생각을! 그러지 말구 네가 어머니 위로를 잘 해 드려라. 위로해 드릴 사람이래야 너밖에 더 있냐?

금녀  아무리 위로한댔자 소용 없어유. 그리구 내게는 뭐라고 위로해 드릴 말두 없구. 다만, 이 증세가 속히 지내가기만 바랄 뿐이지.

이웃 여자  하기야 그렇겠지. 무슨 말이 저 거칠언 마음에 위안이 되겠니. 마치 게 등에 소금 칠이지. (사립문 등불을 다는 명서 처에게) 금녀네, 과히 상심치 말게나. 아들 생각하다가 지레 죽겠네. (퇴장)

명서  (골방에서 얼굴을 내밀고) 대체 이게 웬 일이야? 왜 이리 야단들을 해?

명서 처  귀한 사람이 와유.

명서  미쳤수! 방정맞게 이렇게 허문 되려 집안의 우환을 사는 거여.

명서 처  귀인이 온다는데 무슨 잔소릴…….

 

(바람 소리 인다.)

 

남자의 소리  (불의에 밖에서) 여보!

금녀  (놀라) 에그머니!

명서  (어리둥절하며) 그 무슨 소리냐?

남자의 소리  사람 있수, 이 집에?

명서 처 이애 금녀야, 네 오빠 아니냐? 그렇지? 너두 들었지? 오오, 명수야, 명수가 왔다. 그 놈이 왔다. (명서에게) 자, 내 말이 거짓말인가 봐요.

명서 이상헌 걸.

남자의 소리  여보!

명서 처  금녀야, 빨리 사립문을 열어 귀인을 맞아라. 얼른!

금녀  어머니, 무서워!

명서 처  에그, 병신같으니! 그럼 같이 가자.

 

(모녀, 다소 공포에 떨면서 입구편으로 나간다.)

 

남자의 소리  이 집에 최명서란 사람 있소?

명서 처  일본서 왔우?

남자의 소리  그렇소.

명서 처  일본서?

 

(그 때에 사립문을 박차는 듯이 한 남자 안으로 들어선다. 그는 우편 배달부이다. 소포를 들었다.)

 

배달부  (들어서며) 왜 밖에 문패도 없소?

모녀  (무언(無言))

배달부  빨리 도장을 내요.

명서  도장?

명서 처 (금녀에게 의아한 듯이) 너의 오빠가 아니지?

금녀  배달부에유.

명서  (실망한 듯이) 칫!

배달부  얼른 소포 받아 가요! 원, 무식해도 분수가 있지. 빨리 도장을 내요.

명서  (반항적 어조로) 내겐 도장 같은 건 없소.

배달부  그럼 지장이라도…….

명서  (떨리는 손으로 지장을 찍는다.)

 

(배달부 퇴장)

 

명서 처 음, 그 애에게서 물건이 온 게로구먼.

명서  뭘까?

명서 처 세상에 귀신은 못 속이는 게지. 오늘 아침부터 이상한 생각이 들더니, 이것이 올려구 그랬던가 봐. 당신은 우환이니 뭐니 해도…….

명서  (소포의 발송인의 이름을 보고) 하아 하! 이건 네 오래비가 아니라 삼조(三祚)가…….

명서 처 아니, 삼조가 뭣을 보냈을까? 입때 한 마디 소식두 없던 애가…….

 

(소포를 끌러서 궤짝을 떼어 보고)

 

금녀  (깜짝 놀라) 어마나!

명서 처  (자기의 눈을 의심하듯이) 대체 이게…… 이게? 에그머니, 맙소사! 이게 웬 일이냐?

명서  (되려 멍청해지며, 궤짝에 쓰인 글자를 읽으며) 최명수의 백골.

금녀  오빠의?

명서 처  그럼 신문에 난 게 역시! 아아, 이 일이 웬 일이냐? 명수야! 네가 왜 이 모양으로 돌아왔느냐? (백골 상자를 꽉 안는다.)

금녀 오빠!

명서  나는 여태 개 돼지같이 살아 오문서, 한 마디 불평두 내지 않구 꾸벅꾸벅 일만 해 준 사람이여. 무엇 때문에, 무엇 때문에 내 자식을 이 지경을 맨들어 보내느냐? 응, 이 육실헐 눔들! (일어서려고 애쓴다.)

금녀  (눈물을 씻으며) 아버지! (하고 붙든다.)

명서  놓아라, 명수는 어디루 갔니? 다 기울어진 이 집을 뉘게 맽겨 두구 눔은 어딜?

금녀  아버지! 아버지!

명서  (궤짝을 들고 비틀거리며) 이 놈들아, 왜 뼉다구만 내게 갖다 맽기느냐? 내 자식을 죽인 눔이 이걸 마저 처치해라! (세진하여 쓰러진다. 궤짝에서 백골이 쏟아진다. 바튼 기침 한동안)

명서 처 (흩어진 백골을 주우며) 명수야! 내 자식아! 이 토막에서 자란 너는 백골이나마 우리를 찾아 왔다. 인제는 나는 너를 기다려서 애태울 것두 없구, 동지 섣달 기나긴 밤을 울어 새우지 않아두 좋다! 명수야, 이제 너는 내 품 안에 돌아왔다.

명서 아아, 보기 싫다! 도루 가져가래라!

금녀  아버지, 서러 마세유. 서러워 마시구 이대루 꾹 참구 살아 가세유. 네 아버지! 결코 오빠는 우릴 저바리진 않을 거예유. 죽은 혼이라도 살아 있어, 우릴 꼭 돌봐 줄 거예유. 그 때까지 우리 꾹 참구 살아 가세유. 예, 아버지!

명서 아아, 보기 싫다! 도루 가지구 가래라!

 

(금녀의 어머니는 백골을 안치하여 놓고, 열심히 무어라고 중얼거리며 합장한다. 바람 소리 적막을 찢는다.)

―막(幕)―

<문예 월간(文藝月刊)(1932)>

 

 

 

․토막(土幕) : 흙으로 만든 움집.

․제2막 : 실제 작품에서 ‘제2막’에는 때․무대의 지시가 별도로 되어 있지 않다. 제1막의 것을 참조하여 재구성하였으며, 무대는 제1막의 무대 그대로이나 좀더 퇴락한 상황이다.

․게 등에 소금 칠이지 : 아무 쓸모 없는 일이라는 뜻.

․금녀야, 빨리 사립문을 열어 귀인을 맞아라. : 금녀를 끌어 들여 기대와 불안이 얽힌 심리를 완화시키려는 말이다.

․ 세상에 귀신은 못 속이는 게지. : 아들의 좋은 소식을 굳게 믿고 싶은 심정을 귀신까지 끌어들여 합리화하려 했다.

․세진 : 시진(澌盡). 기운이 빠져 없어짐.

․나는 여태 개 돼지 같이 ~ 응, 이 육실헐 눔들! :아들의 주검을 앞에 놓고 일제에 대한 적개심이 폭발하였다. 학대받고 살아온 우리 민족의 슬픔을 대변하는 말이다.

 

 

 

 

참고

○ 유치진(柳致眞, 1905~1974) : 극작가. 연출가. 연극 평론가. 경남 충무 출생. 1931년에 ‘극예술연구회’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근대극 확립에 힘썼다. 1930년대에는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일제 강점의 현실을 고발했으며, 8․15 광복 후에는 민족 의식을 고취하는 역사극을 많이 썼다. 대표작에 「토막」(1931), 「버드나무 선 동리의 풍경」, 「소」, 「흔들리는 지축」 등이 있고, 작품집으로 �유치진 희곡 전집�이 있다.

○ 극예술 연구회(劇藝術硏究會) : 1931년 결성된 신극 단체로 우리의 신극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동인의 대부분이 외국 문학 연구 회원으로 소위 해외 문학파였는데, 그 중 유치진, 김진섭, 이헌구, 서항석, 이하윤, 정인섭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기존 연극인으로는 윤백상, 홍해성 등이 참여하였다. 제1기(1932~1934)는 홍해성이 주도하였고, 제2기(1935~1938) 및 제3기(1938~1939)는 유치진이 주도하였다. 이 단체는 예술과 인생 본위의 기치 아래 초창기의 번역극․소인극에서 탈피할 것을 주장하고 창작극․전문극을 적극 전개하여 연극 발전에 큰 공적을 남겼다.

친해지기

❶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토막(土幕)’이 상징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❷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중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고 있는 인물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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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幕(토막) 

토막 (2막)

유치진 작

 

등장인물 

 

최명서 (병들고 가난한 늙은이)

명서 처

금녀 (그들의 딸)

강경선(별명 빵보)

순돌(경선의 장남)

삼조 

구장 

이웃여자(60세) 

우편 배달부

 

때: 192 년 가을

 

((무대. 읍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명서의 집, 외양간처럼 음습한 토막집의 내부, 온돌방과 그에 접한 부엌, 방과 부엌 사이에는 벽도 없이 통했다. 천장과 벽이 시커멓게 그을은 것은 부엌 연기 때문이다. 온돌방의 후면에는 골방으로 통하는 방문이 보인다. 좌편에 한길로 통한 출입구, 우편에는 문 없는 창 하나, 창으로 가을 석양의 여윈 광선이 흘러 들어올 뿐, 대체로 토막 안은 어둠컴컴하다. 우편 방에 꾸부려 앉은 60노인은 금녀의 아버지. 명서, 편지를 쓰고 있다. 오랫동안의 병으로 정신이 매우 흐릿한 듯하다. 그가 가진 침울한 성질은 선천적이라기보다 그의 생애의 궁핍과 다년의 병고가, 그에 영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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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적지 않다. 좌편 부엌에서 금녀는 타념 없이 가마니를 짜고 있다. 그의 멍하니 커다란 눈에는 일종의 병약과 지의 빛을 감추었다. 가마니 짜는 둔한 기계소리에 막이 열리면))

 

[명서처] (소리만) 후우! 저놈의 닭들 좀 봐라! 후어! 에그 속상해. ((명서의 아내, 좌편 입구에서 등장, 호미와 바구니를 든 것을 보면 그가 밭에서 일하고 오는 것이 분명하다. 나이에 비하여 아직 기력이 좋아서 능히 자기의 노동을 담당하는 것이다.))

 

[명서처] (들어서서) 아이, 세상이 약으니까, 닭들꺼정 약아서, 사람의 소리를 겁을 내야지. (금녀에게) 이년아 넌 집에 있으면서 닭두 좀 못 쫓냐?

 

[금녀] 집에 있으문 누가 노우? 어머니두 참. 밭이나 다 매고 왔우?

 

[명서처] (몸을 흙을 떨면서) 아랫밭만 맸지. (남편을 보고) 당신은 그걸 여태 들구 앉았우? 오늘두 끝을 못 내구--- 아이구, 편지 한 장에 며칠이 걸린단 말유?

 

[명서] ---

 

[명서처] 그렇게 천장만 쳐다보구, 눈만 까무락거리문 뭣이 나오우? 얼른 써유. 삼조가 곧 올텐데. 일본 간다구. 금녀야, 내 없는 동안에 삼조가 혹 왔다 가진 않았니?

 

[금녀] 아뉴, 아직.

 

[명서처] 아까 밭에서 보니까 벌써 보퉁이를 들구 나가더라던데. (남편에게) 그 애더러 금년에는 꼭 나오라구 그러쥬.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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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구 나올 때는 돈 좀 가지구 나오구 그렇게 썼우?

 

[명서] 왜 이 수선야? 정신 헷갈리게.

 

[명서처] 돈이 있어야 사람이 좀 허리를 펼게 아뉴?

 

[명서] 편지라는 건 그리 쉽게 되는 게 아니어.

 

[명서처] 대관절 이 편지를 들구 앉은지가 오늘이 며칠이우? 사흘 째에유. 사흘이문 벙어리두 말을 배우겠네.

 

[금녀] 어머니, 누가 오나봐, 개가 짖어요.

 

((아까부터 개 짖는 소리 들리더니 삼조가 명랑한 얼굴로 등장. 보퉁이를 들고 바랜 양복에

 

노동화를 신었다.))

 

[삼조] 명수어머니!

 

[명서처] 아이구 삼조야! 너 참 훌륭하구나. 양복에다 사포를 쓰구서! 그렇게 차리구 오니까, 재두 몰라보구 짖는게지? 지금 떠나니?

 

[삼조] (미소를 지으며) 예. 명수헌테 전헐 게 있다구요?

 

[명서처] 아이구 구장헌테나 매꼈으문 벌써 다 됐을 걸. 되지도 않는 글씨를 부비다가 그만 좋은 인편을 놓쳐버리겠네.

 

[삼조] 여태 안 쓰셨구먼유?

 

[명서] 거진 다 되어 가는데---

 

[명서처] 그 눔의 거진이 또 며칠을 끄을거진이란 말유?

 

[금녀] 그럼 말로나 전혀지유, 어머니.

 

[명서처] 그러는 수밖에 없겠다. 삼조야 좀 올라앉으렴.

 

[삼조] 바뻐유.

 

[명서처] 바뻐두 좀 걸터 앉기래두 해라. 우리 집 형편을 네가 잘 보구 가서 자세히 전해 주어야겠다.--- 에그, 사람이란 별 게 아니로구나, 너두 그렇게 꾸며 놓구 보니까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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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면주사 나으리 같구나!

 

[삼조] 그야 뭘 일본 가서 「곤니찌와」「곰방와」쯤 배우구 구쓰(靴) 신을 줄이나 알문 그까짓 면서기쯤이야 부러울 것 없쥬. (일동 웃는다) 아니, 정말이우.

 

[명서처] 얘, 부디 그렇게 되드래두 우리 잊지 말아다구.

 

[삼조] 그야 그 때가 돼 봐야 알쥬. 하하하---

 

[명서] 너희들은 재주두 좋다. 가뭄에 빗방울보다 귀헌 돈을 어디서 구해서 그만 저만의 노자를 다 장만했니?

 

[삼조] 집을 잽혔쥬, 뭐.

 

[명서] 집을? 허어 그거 될 말이라구?

 

[삼조] 거기 가기만 허문 그까짓 돈쯤이야---

 

[명서] 집꺼정 팔아 가지구 가두 오두 못허는 사람이 부산 뱃머리에서는 장군 같다더라. 너무 헤픈 생각말구 너두 미리 조심해라. 그리구 일본 가걸랑 우리 집 명수 만나 보구 그 눔이 요즘 뭘 하는지 좀 기별 해다구. 재작년 섣달 부터선 도무지 소식이 없구나.

 

[삼조] 그야 제가 건너가기만 허문 제절로 만나게 될 테니까 염려 없어유.

 

[명서처] 에그, 길이 가까워 가 보기나 하겠니, 왕래가 잦은 데라 냉큼 인편이 있겠니?

 

[명서] 그 눔 간 지가 어엄범 일곱 해로구나. 남의 밥 그만 벌어 먹구 인젠 그만 나오래라.

 

[삼조] 명수가 나오문 뭘 시킬려구 그러슈? 이 고장에서 살아나갈 방도가 있겠우?

 

[명서처] 남의 집을 살아두 내 고장에서 살구, 흙을 파 먹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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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파먹지.

 

[삼조] 아따 남의 집 살덴 있구, 흙 파먹을 덴 있답디까?

 

[명서처] 나와서 장가두 들어야지. 그 애 나이가 벌써 반 쉰이 넘었단다.

 

[삼조] 장가가 다 뭐유? 죽자꾸나 농사 지어두 입엔 거미줄을 면치 못하는 세상인데---

 

[명서처] 아이참! 여보, 너더럭 장단에 소중헌 돈, 말을 빼놓을 뻔 했구려.

 

[명서] 정말!

 

[명서처] 얘야, 명수가 냉큼 나올 수 없다거든 돈이라두 보내라구 그래라. 돈만 있으문야, 이러니 저러니 걱정할 것두 없다.

 

[명서] --- 삼조야, 이 집을 한번 둘러봐라. 여긴 사람겉은 사람은 하나두 없다. 이 할미는 늙어 이렇지, 저 금녀는 금녀 저대로 몸이 착실치 못하지. 게다가 나꺼정 병으로 이 몇핼 두구 그들의 신세만 지구 있으니 대체 이걸 집이라겠니, 무덤이라겠니?

 

[삼조] 이런 지옥에라두 이대로 죽으란 법은 없을 거예유. 명수 아버지, 너무 상심맙슈. (일어선다)

 

[명서] 에그, 너희들 젊은 눔은 메뚜기 새끼같이 제 좋을데로 모두 뛰어들 가버리구 여긴 누구 남는단 말여? 나 같은 늙은 것허구 병신뿐이니, 허릴 없는 쓰레기통이로구나.

 

[명서처] 왜 그렇게 궁상만 떨우? 먼길 가는 젊은일 보구---

 

[명서] 바쁜데 어여 가거라. 아무리 말해두 너희들의 기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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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아 줄만한 소린 한 마디두 없다.

 

[삼조] 안녕히들 계시유.

 

[명서처] 부디 잊지 말구, 가든 맡으로 명수 소식 좀 전해다구.

 

[삼조] 염려 마슈.

 

[삼조 퇴장] 하자마자, 경선이 뛰어 들어온다. 들어와서 초조하게 숨을 데만 찾는다. 그는 코찡찡이다. 그의 빵보라는 별병은 그 때문이다.

 

[명서처] 빵보 영감 또 마누라한테 매를 맞아구료?

 

[경선] (출입문을 안으로 잠그면서 시치미를 뚝 떼고) 내가? 아뉴.

 

[경선] 이건 저 --- 개가 들어 올까봐 그래. 아주머니 개가 짖어두 문은 열어 주지 말우.

 

(가마니를 뒤에 숨는다.)

 

[경선처] (멀리서 소리만) 여보! 어딜 숨어 버렸우? 여보!

 

[경선] (그의 처의 소리를 듣더니 콩낟만하게 움츠라든다.)

 

[명서처] 밖에 저 소리가 개 소리우!

 

[경선처] (잠근 문을 떨거덕거리며) 금녀 어머니, 우리집 영감인지, 대감인지, 여기 안 뵙디까?

 

[경선] (없다는 말을 해 달라고 애원)

 

[경선처] 아이, 문은 왜 잠것우? 좀 열어주.

 

[명서처] (천연덕스럽게) 여긴 없네. 대낮에 뭣 헐려구 영감을 찾나?

 

[경선처] 에그, 지지리두 못났지, 이 난리에 어딜 숨어버렸누

 

[경선] (낮은 목소리로) 금녀야 갔나 좀 봐다구.

 

[금녀] (문을 열어보고) 안 뵈는 걸유.

 

[경선] (끼웃이 문 밖을 엿보고 그 처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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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대담하게) 우리 집 마누라 거기 있나 없나. 여보! (하고 부른다. 대답이 없으니) 제에기 어딜 갔어? 영감은 여기다 두구.

 

[명서처] 헹, 없으니까 또 뽑내지.

 

[명서] 에키 못난 사람 같으니, 계집에게 쥐어서 그 무슨 꼴이람!

 

[명서처] 바로 괭이 앞에 쥐죠.

 

[경선] 그 모르는 소리유. 내가 눈을 부릅뜨구, 한번 이년! 어문 꼼짝달싹 못허구 파리 손을 살살 부비지. 허지만 양반의 체면으로 내가 어찌 그럴 수야 있나.

 

[명서] 허허허---

 

[명서처] 하하하--- 이불 밑에서 웬 활개는 그리 잘 치우?

 

[경선] 아니 정말이우.

 

[명서] 아따 그만 두게.

 

[경선] 오늘은 제에기, 또 무슨 양복쟁이가 왔다나---

 

[명서처] 양복쟁이라니?

 

[경선] 점잖은 집에는 흔히 그런 손님이 드나들지우.

 

[명서] 허어 또 큰 소리야.

 

[경선] 그리문서 날더러 그 손님을 붙들구서 한번만 더 용서해 줍시사구, 애걸복걸하라는 거야. 원, 그를 수가 있나. 그래 애초엔 내가 유순허게 「안 되느리라. 젊잖은 체면에 그럴 순 없어」 이렇게 달래 주었지. 그랬더니 요 맹랑한 것 좀 보지. 내가 순허게 구니까 이년이 검방지게 말대꾸를 헌단 말야 성미에 두구 볼 수 있나? 어림없지. 제꺽 그년의 머리채를 움켜쥐구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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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보기 좋게--- (이때 사람 오는 기척이 나니까) 이크! 또 오나베. (가마니를 한 장 들고, 언뜻 숨는다. 일동 배가 아프게 웃는다) 경선의 처 등장. 뚱뚱하고 앙탈 궂은 40세쯤 되는 여자다

 

[경선처] 아이 속상해. 우리 집 영감 좀 찾아주우. (집안을 이리저리 찾는다)

 

[명서처] 왜 이 성화야?

 

[경서처] (가마니를 들춰본다. 그 밑에 경선이 죽은 듯이 엎디었다.) 글쎄 이게 무슨 병신 굿이란 말유? 누가 장난 하겠우? 빨리 집에나 가 봐유.

 

[경선] 쥐새끼처럼, 왜 이건, 내 꼬리만 물구 다녀? 사람이 숨두 좀 못 쉬게---

 

[경선처] 아따, 숨 쉴 팔자가 됐으니 복은 무척 많이 타구 났구려, 글세, 여보! 그 복은 다 어쩌구서 계집자식을 요렇게 안녕하게 건사한단 말유?

 

[경선] (그 처에게) 이왕 그렇게 돼서 방금 경맬헌다는 마당에 내가 나서문 뭣해? 속만 상허지.

 

[경선처] 에그, 말씀은 점잖구, 마음은 무사태평이십니다. 그러.

 

[명서] 여보게, 이게 대관절 어떻게 된 셈인가?

 

[경선] 장리 쌀 몇 가마니 꾸어다 먹은 게 있는데 그걸래 무슨 집행이 나왔다나.

 

[명서처] (놀라며) 집행?

 

[경선처] 아따, 남의 얘기나 허는 것 같구려. 당신이 병신이라 그렇지. 그래 사내 대장부로서 자기 집이 날아가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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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보고 있담.

 

[명서] 아까 경선이가 양복쟁이가 왔느니 손님이 어떻게 되었느니 하기에 우린 또 농담인 줄만 알구 웃구만 있었지.

 

[경선처] 이 양반은 뭐든지 농담으로만 돌려 버리슈. 그게 병이에유.

 

[명서] 아무리 받을 게 중하기로서니 사람을 거리로 내쫓는 그런---

 

[명서처] 빨리 가봐유. 빵보영감?

 

[경선처] (기가 막혀 발을 구르며) 어서 가서 말 좀 해유. 저 눔들이 우리 누더기 쪼각꺼정 마구 가져 가나봐, 어서 좀 빨리!

 

[경선] 난 싫어, 그걸 어떻게 나더러 보구 섰으란 말야? 우리 핼 가져가는 게 뭐 이번이 처음이구, 또 마지막인가, 어디?

 

[경선처] (혀를 끌끌차며) 에그, 저 꼴에 불알이 달렸으니 기가 맥힐 노릇이지. 동네방네 쏘다니면서 술이나 쳐먹구 엄벙뗑한 소리나 허라문 잘 했지. 남의 앞에 나서라문 그만 주먹 맞은 감투가 돼 버린단 말여.

 

[경선] 우리 집 겉은 걸랑 제멋대루 떠가지구 가래. 난, 사내답게 다 내줄테야. 내가 그까짓 걸두구 떨어? 그런 걸 가지구 울었다문 난 말라서 벌써 북어 신세가 됐을 걸.

 

((순돌이. 5, 6세밖에 안 되는 소아 울며 등장))

 

[순돌] 엄마, 어서 와, 다 가져가. 다 가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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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처] 에그, 저걸 어쩌나? 어서 가봐유!

 

[경선] (치미는 울화를 억제 못하는 듯이) 제에기 망할 것! 될 대루 되래라, 뭐가 뭔지 뒤죽박죽이다! (이렇게 악을 쓰다가 갑자기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어허허허--- 이 눔의 일은 점점 가경으로 몰아치는구나. 인젠 어디로 가란 말씀요? 온 세상을 토파 헤매란 말씀이우? (눈에는 눈물이 맺힌다)

 

[경선처] 바로 미쳤군.

 

[경선] 어딜 가유? 예? (남편의 뒤를 따르며) 여보, 이리와유 어딜 가유? 여보!

 

(경선의 아내 남편을 부르며 그의 뒤를 쫓는다. 아들 순돌은 어머니의 뒤를 따른다. 금녀와 그 어머니는 자기집 사립문 앞에서 경선의 식구의 나간 쪽을 기막힌 듯이 바라만 보고 있다.)

 

[금녀] 어딜 저렇게 훨훨 갈까유?

 

[명서처] 살림을 탕을 치니까 정신까지 뒤집힌 모양이지?

 

[금녀] 에그, 저것 봐유! 곧장 강을 건너가네.

 

[명서] (노기를 띠어) 그게 무슨 구경거리람? 이리 들어들 와.

 

((명서처와 금녀, 아무 말 없이 각각 제 자리에서 돌아가 하던 일을 다시 계속한다. 구장, 한 손에 신문지를 들고 등장하다가 출입문에서 발을 잠깐 멈춘다.))

 

[구장] (들어오던 쪽을 멀리 바라보며) 빵보가 술만 쳐먹구 다니더니, 그예 저 지경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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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 아따, 술 먹지 않은 사람두 별 수 없습디다. 망해 먹으러 드는데야, 막아낼 장수가 있나유?

 

[구장] 사람이 갚을 건 갚구 살아야지, 무턱대고 배짱만 내밀면 쓰나?

 

[명서처] 백죄 영감님두 잘 아시문서 어디 경우가 없어 그러나유? 할 수 할 수 없으니까, 그렇지.--- 에구 우린 또 어째나? 구장 영감, 우리 구실 때문에 오셨지우? 다 알아유. 조금만 더 참아주슈.

 

[구장] 구실두 구실이지만 오늘은 다른 일이 있어 왔어.

 

[명서처] 예?

 

[구장] 왜 놀래긴. 걱정 말우. 잠깐 물어만 볼 일이야--- 저 요즘 명수한테서 무슨 소식이나 있오?

 

[명식처] 음, 우리 아들 명수 말씀이예유? 난 또 뭐라구.

 

[명서] 소식이 아주 막연해유.

 

[구장] 하하--- 막연해?

 

[명서처] 웬일인지 재작년 섣달부터 그래유.

 

[명서] 왜 그러슈? 어디서 무슨 기별이 있었우?

 

[구장] (손에 가졌던 헌 신문지를 보이며) 이 신문에 난 이 사진을 좀---

 

[명서처] 이거유?

 

[구장] 아니, 이것 말이어

 

[명서] 눈이 어두워서 어디 잘 뵈야지. 얘 금녀야. 이리 와서 좀---

 

[금녀] (사진을 자세히 뜯어보더니 그 얼굴에 불안의 빛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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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 너 오래비 명수 같지 않니?

 

[명서처] 명수?

 

[금녀] 이상해유, 어머니.

 

[구장] 나두 처음에 무심히 보곤 이상하게 생각했어. 아무리 봐두 비슷한 데가 있단 말야. 그래, 다시 뜯어보니까 여기에 또 최명수란 이름 석자가---

 

[명서] 어디?

 

[구장] 이걸 보게.

 

[금녀] (보고는) 이게 언제 신문이예유?

 

[구장] 모르지. 언제 건지. 읍에서 고무신 싸 가지구 온 건데. 뒤지 헐려구 두 깐에 가지고 갔다가 우연히 이걸 봤어. (하면서 날짜를 신문지에 찾는다.) --- 옳아.

 

[명서처] 어찌 된 일이예유?

 

[구장] 재작년 섣달부터 소식이 없었다지? 이 신문이 바로---

 

[명서] 무슨 사연이유? 이 신문에 쓰인 건?

 

[구장] 그게 또 이상허단 말야.

 

[명서처] 얼른 좀 들려 주세유, 구장 영감.

 

[구장] 쉽게 말허문 이 내용이란 건 대판서, 노가다패에 일하는 최명수란 자가---

 

[명서처] 노가다패라니요?

 

[구장] 그걸 몰라? 산에서 굴 파먹고 남포질 해서 돌 떼는 놈들 말야.

 

[명서] 그래서?

 

[구장] 그래, 그 철없는 명수란 자가 노가다패에서 몇몇 동무 놈들허구 남 몰래 해방 운동인가 뭘 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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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처] 해방이라니 그 무슨 말이유?

 

[명서] 오오, 남의 일 허는데 훼방을 놀았단 말이겠지. 그렇쥬? 구장 영감?

 

[구장] 훼방이 아니라 해방이야. 해- 방- 운-동-, 명서두 모르는구먼

 

[명서] 모르겠는데유.

 

[구장] 헹, 말씀 아니군, 우리네 백성이 이처럼 무식해서야 될 수 있나. 대체 해방운동이란 건--- 음--- 저 뭐라더라. 옳지, 이를테면 보천교와 같은 거야.

 

[명서처] 훔치기교?

 

[구장] 그렇지, 그런 걸 해 먹다가, 그만 탄로가 났단 말야. 그래, 경찰에 붙잡혀서 예심에 붙었다는 거야.

 

[명서] 그럼 지금두 그 명수란 애는 갇혀 있을까?

 

[구장] 암 그렇겠지.

 

[명서처] (반항적으로) 거짓말이야. 그 삶은 우리 명수가 아니야. 우리 명수가 그까짓 훔치기교를 해? 그럴리는 없어. 원 이 세상에 이름 같은 사람이 없구, 화상 같은 사람이 없을 거라구.

 

[구장] 만일에 거짓말이라문 불행 중 다행이겠지만---

 

[명서] 대체 그 눔들 왜 그런 짓을 했답디까?

 

[구장] 그야 한 가질 알문 열 가질 안다는 심으로, 외지에 갔다 온 눔들의 행사만 봐두 알 일 아녀? 쥐뿔두 없는 놈들이 괜히 오금에 신물만 들어서 제집 구석에선 넨장 나무 껍질 뜯어먹는다 뿌릴 파먹는다는 난리판에 착실히 일할 줄은 모르고 떼를 지어 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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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서 사람은 먹어야 산다! 이렇게 떠들어대지 않던가? 그리구 본시 헐벗구 자란 눔들이 구두는 웬 구두야? 그나 그 뿐이문 좋게. 몇 십원씩 허는 양복까지 입구 다니니 대체 이런 눔들이 사람 구실을 헐상 싶은가?

 

[명서] 하기야 누군들 좋아서 헐벗구 즐겨, 나무 껍질 풀뿌리를 먹는 사람은 없겠지유.

 

[구장] 허허, 이 딱한 소리 들어보게 아니 그 눔들이 왜 다들 제 집을 버리구 다른 데루 달아나는 줄 아나? 그건 그 눔들이 단지 호강이 허■어서 그래, 그래서 모두들 도망을 가는 거여, 못 먹어 허덕이는 제 애비 에미의 꼴이 보기 싫으니까, 그저 맙시사 허구 도망을 가 버린단 말야. 말하자문 난리 피란이랄까? 아무렇든 그 눔들을 자식이라구 믿구 사는 제 부모들이 가엾지. 그렇잖은가, 명서?

 

[명서처] 구장 영감 댁 자제나 그렇지. 우리네 자식은 그렇잖다우.

 

[구장] 이렇게 속이 편하니 늙지는 않겠군 그래, 허허허--- 하여튼 농삿군의 자식은 농사만 들여다보게 해야지. 글을 가르치거나 다른 길에 내놓으문 그저 망치는 거여. (일어선다)

 

[금녀] (나가려는 구장에게) 그 청년이 갇혔다문 징역은 몇 해나 갈까유?

 

[구장] 법에서 하시는 일을 우리네 백성이 알 수 있냐. 허지만 전례로 봐선 그런 일은 혹 종신징역까지 되는 수도 있지.

 

[금녀] 종신징역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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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 암.

 

[금녀] (갑자기 흐느껴 울어버린다.)

 

[구장] 왜 울기는 해? 허허허--- 명서 자네, 그 신문지는 두구 가니까 뒀다 잘 보게나.

 

[명서처] (나가는 구장을 노려보고 있다가 신문지를 뭉쳐 던지며) 에이 올같잖은 영감쟁이! 가져가! 가져 가유! 어디서 이런 흉악헌 걸 물어 왔담! 가져가유!

 

[구장] (노하여) 이게 무슨 인사여!

 

[명서처] 에이, 어디 천하에---

 

[명서] 여보!

 

[명서처] (남편의 말리는 소리에 들리지 않는 듯이 우는 금녀에게 화풀이를 한다.) 이년 그쳐! 우는소리 못 그치겠니? 에그 듣기 싫다! 보기 싫어! (제 분에 못 이겨 운다)

 

[구장] (어이없는 듯이) 어허허허--- 참 우스운 여편네도 다 보겠네.

 

((구장 퇴장. 문. 명서의 처와 금녀의 흐느끼는 소리만 들린다. 명서는 멍하니 허공만 쳐다보고 앉았다.))

 

[명서] --- 아아 머리 꼴이 허퉁 빈 것 같구나. 얘 금녀야 이리 와서 이 애비의 머리나 좀 짚어 주려마.

 

[금녀] (울음을 참으려고 애쓴다)

 

[명서] 그만하고--- (골방으로 기어 들어간다.)

 

[금녀] (그제서야 아버지에게 가서 그 머리를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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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 아아 뭐가 뭔지 꿈같군 그래. 금녀야, 난 아찔아찔헌 비탈 위에서 별안간 깊은 구렁 속으로 떨어진 것 같다. 아무리 손을 쳐두 구할 이 없는 구렁 속으로---

 

[금녀] 조용히 주무세유, 한참. 아버지 얼굴빛이 아주 좋지 못해유.

 

[명서] ---

 

[금녀] 아버지 몸이 좀 풀리시거든 제발 오빠헌테, 편지를 한 장 해보세유. 예 그러문 금방, 그 구장의 말이 정말인지 아닌지 알 것 아녜유?

 

[명서] 오늘 삼조두 갔으니까 얼마 안돼서 무슨 소식이 있겠지, 그때꺼정 기다려 볼일이며.

 

[금녀] 아버지 가만히 좀 주무세요.

 

((금녀는 골방 문을 닫아준다. 무대에는 명서의 처 혼자, 명서의 처, 눈물을 씻고 구장에게 던진 신문지를 도로 주워 펴본다. 조용히 느낀다. 무대 뒤에서 「구우! 구우!」하며 닭 부르는 이웃 여자의 소리 들리더니 출입구에서 집안을 기웃이 들여다본다.))

 

[이웃여자] 금녀네. 우리 집 병아리 여기 안 왔어? 흰눔이 한 마리 어디 갔는지 안 뵈는 데---

 

[금녀] (골방에서 나오며) 못 봤어유.

 

[이웃 여자] 그럼, 어질 갔을까? 해가 다 저물었는데--- (다시「구우! 구우!」부르며 무대 뒤로 지나간다.)

 

((황혼이 내린다. 금녀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쉬고 마루 끝에 앉았다. 골방에서는 명서의 신음 소리 간간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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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익년 초춘의 어느 날 초저녁부터 밤까지 무대는 앞 장면과 같은 명서의 집. 그러나 전보다 일층 더 쓸쓸하여 풍차파벽은 더욱 심하다. 그들의 유일한 생산기관이던 가마니기는 없어진지 오래다. 경선의 처는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부엌에서 기거하고 있다. 부엌 한 구석에는 줄을 쳐서 빨래를 걸고 그 외에 너절한 가구가 잡연하다. 무대가 밝아지면 무대에는 금녀와 순돌. 금녀는 침침한 등불 밑에서 똬리를 만들고 있다. 이미 만든 칠팔 개는 줄에 끼어서 걸어 두었다. 금녀, 일을 하면서 순돌이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개울 바닥에서 자란 문쥐는 눈 어두운 문쥐떼

 

[금녀] 틀렸다. (부른다) 눈 어두운 문쥐떼.

 

[순돌] (따라 부르며) 눈 어두운 문쥐떼

 

[금녀] 다시! (우인 소리를 맞추어 노래한다)

 

개울 바닥에서

 

자라난 문쥐는

 

눈 어두운 문쥐떼

 

꼬리 물구 다니며

 

찌찌께께 우는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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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구두 가엾네

 

[순돌] (노래를 마치고) 누나, 왜 울 엄마 안 와, 여태?

 

[금녀] 글쎄,--- 애, 걱정 말구 노래나 또 해 보자꾸나.

 

(양인 다시 노래를 시작한다. 밖에서 사람 오는 기척)

 

[순돌] 엄마! (하며 언뜻 출입구로 나가 보고 실망한 듯이) 치잇! 난 울 엄만 줄 알았지.

 

[명서처] (똬리 10여 개를 들고 등장. 행상 갔다 오는 길이다. 들어서며) 아이 추워라. 아직두 해동이 안됐는지 추위가 맹랑헌 걸.

 

[금녀] 얼마나 팔았우. 어머니?

 

[명서처] 오늘 같애선 이 장사두 해 볼 만 허구나. 무시인데두 세 개나 팔렸단다. (주머니에서 돈을 내어 센다) 삼전 사전--- 오전, 육전이나 샀네. 이만만 허다문야 가마니 짜기보다 훨씬 낫지?

 

[금녀] (일을 계속하면서) --- 차츰 날세사 풀리문 더 팔릴거예유. 봄이 되문 밖에 물 길러 나다니는 아낙네가 훨씬 늘테니까.

 

[명서처] 암, 이 추운 고비만 넘겨 놓문 차츰 살기두 낫지. 들엔 풀잎두 피겠구 나무엔 물두 오르겠구--- 그리문 산과 들엔 먹을게 흐느러지지 않겠니. 그러구러 살아가는 동안에 너 오래비헌테서 편지두 올게구.

 

[금녀] ---

 

[명서처] 참 금녀야, 오늘 편지 안 왔었니? 네 오래비헌테서---

 

[금녀] 예

 

[명서처] 왜 삼조조차 소식이 없을까? 그 애마저 함흥차사가 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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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원, 그 애 떠난 지가 벌써 반년이 넘었는데---

 

[금녀] (밖으로 나가려는 순돌에게) 너 어디 가니?

 

[순돌] 엄마 찾으러. (퇴장)

 

[명서처] (품속에 깊이 간수하였던 신문지 조각- 구장이 두고 간 것-을 살그머니 꺼내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 있더니) 아니어, 이걸 누가 믿는담. 난 안 믿을걸

 

[금녀] (일하던 손을 멈추고 날카롭게) 어머니 그거 찢어 없애 버리지 못허우! 아니, 어머니는 그 심술궂은 구장의 소릴 그래 믿구 있우? 어머니 같은 어수룩헌 사람이 있으니깐 그 영감쟁이가, 엉뚱한 거짓말만 해먹구 산답니다.

 

[명서처] (신문지 조각을 조심스러이 개켜서 도로 품속에 넣으며) 듣기 싫다. 얘 네가 뭘 안다구 그러니? 허지만 구장두 구장이지, 왜 이런 걸 해필 내 눈에다 뵌담. 얘야 너 아버지헌테 뭣 좀 끓여 드렸니?

 

[금녀] 여태 앓으시다가 인제야 잠이 드셨는 걸유.

 

[명서처] (골방을 들여다보고는) 너 아버지두 저 병세대루가문 오래 살진 못허실 것 같다.

 

[순돌] (다시 등장하며 퉁명스럽게) 할머니, 울 엄마 왜 안 와?

 

[명서처] 누가 아니?

 

[순돌] (큰소리로) 엄마! (하고 허공을 보고 부른다)

 

[명서처] 에키 이눔의 새끼? 어른이 주무시는데 웬 큰소리야!

 

[순돌] (훌쩍훌쩍 운다)

 

[금녀] 참, 얘 엄마가 오늘 저녁은 왜 이렇게 늦일까유?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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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얻으러 나갔으문 때 맞춰 돌아오진 않구.

 

[명서처] (순돌에게 식은 밥을 주며) 이거나 처먹으렴! (순돌 느끼며 주는 밥을 떠먹는다)) --- 네 에미두 사람구실허긴 인제 틀렸느니라. 살림이 없어지문 허는 수 없기야 허지만, 거지 실성이 들어두 여간이 아닌걸 뭐 게을쿠 추접스러워서 되문 되는대루 허문 허는대루---

 

(경선의 처의 기거하는 부엌을 가리키며) 저 지전분헌 자릴 좀 봐라. 저게 사람 사는데야? ((경선의 처는 조금 전에 등장하여 문께 섰다. 젖먹이를 업었다. 금녀 어머니의 하는 말에 심술스럽게 가만히 들고 섰다.))

 

[순돌] (어느 새 어머니를 발견하고) 엄마!

 

[경선처] 여보, 웬 괄센 그리 허슈? 당신네 집 부엌에 좀 붙어 있다구 그러우? 헹, 번듯한 한간 방이나 내 주었으문 그 세도 바람에 비깝이나 허겠나.

 

[명서처] 왜 사람이 차츰 못돼 가느냐 말야. 우리같이 틈틈히 뙤리라두 만들지. 그러문 하루 이삼 전은 버얼 것 아냐. 그저 게을러 빠져서 밥술이나 얻어 먹으문 늘어져 자구, 일어나문 밥 얻어먹기가 바쁘구, 애가 오줌을 싸니 그걸 거둘 줄 알까, 벽이 무너지니 추운 줄 알까---

 

[금녀] 어머니, 가만히 좀 계세유.

 

[경선처] (서슬이 시퍼렇게) 어데, 부귀영화를 누리구 사는 이 마나님의 꼴 좀 봅시다. 에구, 이렇게 부판으로 생겼으니 그러시겠죠? 대체 이 돼지우리 같은 움집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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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들구두 사람 축에나 드는 줄 알구 이래?

 

[명서처] (성이 나서) 뭘 어째? 남의 덕으로 사는 년이 무슨 큰 소리야? 나가! 보기 싫다!

 

[경선처] 나가라구? 더럽다! 나가지, 나만 나가문 그 뿐이겠지. 이까짓 집이나 한간 쓰구 산다구 이렇게 사람을 눈치코칠 헌담.

 

[명서처] 에그 (혀를 끌끌하며) 큰 소리 말구 제 꼬락서니나 좀 봐.

 

[경선처] 예 나야 개지요. 인제 길바닥에서 죽건 뺨을 맞건 부끄러운 줄두 모르구 분헌 줄두 모르는 게예유.

 

[명서처] 저 돼 가는 걸 보니, 저것의 집을 집행해 갈 때 저것의 혼마자 빼앗아 갔나 보구먼!

 

[경선처] 헤헤헤--- 맞았어, 우리 집 항아리, 냄비, 뜰보, 집터를 가져갈 제 눔들은 정녕 내 정신까지 쓸어간 거여, 이 등신만 남겨 두구--- (발을 구르며) 이 눔들아, 왜 이 등신은 못가져가니? 이 죽일 눔들아!

 

[순돌] 에그 누나! (그 어머니의 고함소리에 놀라 울고 있다가 인제는 오히려 실신한 듯한 그의 어머니를 겁내는 듯이 금녀에게 안긴다.)

 

[명서처] 바루 미쳤구나.

 

[경선처] (서슬이 시퍼렇게) 미치구 말구, 안 미치구 살겠우? 난 눔들을 찾아가서 부르짖을 테여, 이 등신마저 집행해 가라구.

 

[명서처] 에그 계집두.

 

[경선처] (나가려다가 주춤 서서 흐느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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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 (골방 문을 살며시 열고) 왜 이 법석이여? 사람이 잠을 잘 수 있어야지.

 

[경선처] --- - 금녀 어머니. 금녀 어머니, 날 좀 죽여주구려, 예. 날 좀 다신 이 세상 햇볕을 못 보게 때려 죽여주구려.

 

[명서처] 자, 눈물을 씻어요. 젊은 사람이 이 무슨 짓이여?

 

[경선처] --- 아아, 제발 이년을---

 

[금녀] 순돌 어머니, 울지 말우. 이렇게 어린애들까지 놀래 울고 있다우.

 

[명서처] 그만 허구 일어나래두.

 

[경선처] (눈물을 거두며) --- 금녀 어머니, 이 이 더러운 등신을 어디다 쓰구, 어디다 버리겠우, 사람의 껍질을 쓰구서 개만도 못헌 이 등신을---

 

[명서처] 그 무슨 소리여. 되는대로 살지.

 

[금녀] 어린애나 좀 달래유.

 

[경선처] (아이에게 젖을 빨리며) 금녀 어머니, 우린 오늘 떠날래유.

 

[명서처] 뭐?

 

[금녀] 별안간 왜?

 

[명서처] 옳지, 금시 내가 화를 좀 냈다구 그러는구랴, 원 사람이 강구허문 없는 화두 나구 한 집에 두 살림을 허자문 별소리가 다 많은 것 아녀?

 

[금녀] 요즘 어머니가 오빠 생각에 노상 울화가 나서 더구나 그런대유.

 

[경선처]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명서처] 그만 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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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처] 아까 이 애 아비를 만났이유.

 

[순돌] (눈이 번듯해지며) 응? 아버지?

 

[명서처] 어디서?

 

[경선처] 저녁밥 얻으러 다니다가, 우연히 거리에서---

 

[금녀] 그럼 오늘 저녁에 늦게 들어온 건 그 때문이로군유?

 

[명신처] 어찌됐든 반가운 일야. 허지만 그 양반두 무심허지. 처자를 버려두구 여태 어딜 다니다가 인제야 찾아온담.

 

[경선처] 등짐장산가 허구 이리저리 떠다녔다나유. 그러다가 들물에 물거품처럼 떠들어 왔대유.

 

[순돌] 엄마, 아버지 돈 많이 벌었어?

 

[경선처] 쉬! (밖에서 들리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린다.) 인제 오나베.

 

(경선 약간 취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등장한다. 행구를 지고 감발한 양은 등짐장수에 틀림없다.)

 

[경선] (떠들썩하게) 모두들 아직 살았나?

 

[명서처] 빵보 영감! (거의 동시에)

 

[금녀] 순돌 아버지!

 

[순돌] (달려가며) 아버지! 우리 집 그만 빼앗겼어.

 

[경선] 이 눔 꽤 컸구나! 아주머니 그 동안 돈맛 좀 보았우?

 

[명서처] 돈맛이라니? 호랑이 똥맛도 못 보구 되려, 우리 집 명줄이던 가마니틀만 날려 버렸다우.

 

[경선] 허허허--- 가마니틀을 날려유? 하나 날려, 둘 날려, 집 날리구, 집터 날리문 나두 날구, 너두 날구, 너두 날아--- (꺾어서 노래부르듯 익살을 피다가 눈을 홀기는 자기의 처를 발견하고) 헤에--- 우리 마누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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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석에 앉아 계십니다그려. 바로 댑짜리 밑에 개 팔잔 걸.

 

[경선처] 또 취했구려! 이그, 사람이 그만 저만의 고생을 허구 왔걸랑 좀 정신을 차려요!

 

[경선] 내가 취해? 원 천만에! 자아, 입을 맡아봐요. (자기 처의 코밑에다 입을 갖다대며) 안 나지? 그렇지?

 

[경선처] (남편을 떠밀어 버린다. 경선 히떡 자빠진다.) 아직두 그 지랄병이 안 나았구랴! (모두 웃는다)

 

[명서처] 허허허--- 만나문 싸움이야.

 

[경선] (옷을 털고 일어서며 자기의 처에게 퉁명스럽게) 백죄 진종일 굶은 사람을 보구---

 

[명서] (골방에서 나와 앉으며) 왔으문 날 먼저 찾는단 말이지, 왜 부엌에서 그래.

 

[경선] --- 아니, 저어--- 자, 자네 말라서 골생원이 다 됐는걸.

 

(경선의 어쩔 줄 몰라 허둥대는 꼴을 보고 일동 또 웃는다.)

 

[명서처] 빵보 영감이 오니까 웃음꽃이 피어서 온 집안이 환해지는 걸요.

 

[명서] --- 자네두 못 났지. 그때야말로 집행인가를 뭔가를 만나서, 죽는다 산다는 살얼음판에, 그래 처잘 버리구 종적을 감춰 버렸다가 인제야 다람쥐 모양으로 코빼기만 살짝 내민담.

 

[경선] (손을 내저으며) 허어, 말 말게. 그땐 홧김에 서방질한다는 격으로 그저 무망중! 그래서 오늘은 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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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식으로 모시러 왔다네.

 

[명서] 정식으로? 허허허! 익살은 그만 두게.

 

[경선] 아니, 정말일세. (자기의 아내에게) 여보, 빨리 짐 챙겨요.

 

[명서] 짐? 아니, 이 사람 농담은 아니겠지?

 

[경선] 농담이 뭔가?

 

[명서처] 순돌네두 아까부텀, 오늘 저녁에 떠났다구 자꾸 그런다우.

 

[경선처] (짐을 챙기면서) 하론들 더 있으문 뭘 합니까?

 

[경선] 암, 창피만 더할 뿐이지.

 

[명서] 허허허--- 자네두 창피스런 줄 알았으니, 장관일세 그려, 허지만 이 어둔 밤엔 못 떠나네.

 

[명서처] 이왕이문 밝을 때 떠나지?

 

[경선] 아무래두 이런 일에는 그저 삼십 육계 야간 도주가 제일이랍디다.

 

[명서] 허기야, 밤이건, 낮이건, 이리 된 마당에 세상이 무서워 못헐 일은 없겠지만---

 

[경선] 암, 그렇지, 제 고장이란 밥술이나 얻어먹을 땐 따뜻한 양지 쪽이지만, 우리같이 잠자리조차 걱정허게 되구 보면 외려 감옥이데. 갑갑한 감옥이데그려.

 

[경선처] (여전히 짐을 싸며) 하로 바삐 우리 두 이 감옥살일 벗어나야 해요.

 

[명서] 헹, 이 눔의 땅에서 어딜 가문 감옥 아닌 데가 있다구 누구나 우린 그림자처럼 감옥을 떠매구 다닌다우.

 

[순돌] 아버지, 어딜 가, 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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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 모르지, 어딜 가는지.

 

[경선처] --- 그 동안 이 집이 없었더라문 우린 어찌 됐을꾸? 어느 귀신이 어느 돌다리 밑에서 물어갔는지 지금 쯤야, 흔적도 못 찾았을 텐데, 금녀 어머니 덕분으로 이렇게 살아 나간다우.

 

[명서처] 그런 소릴랑 허지두 말게. 외려 우리가 부끄럽네.

 

[명서] 대관절 자넨 뭘 해 먹구 살았는가? 거진 반년 동안이나---

 

[경선] 등짐장사 했다네.

 

[명서] 등짐장사?

 

[경선] 자넨, 그 맛을 모를 거야.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바람 부는 대로 맘 내키는 대로 떠다니는 미상불 참 좋은 직업일세. 일년 내 뼈 빠지게 일 하구두, 가을에 가서 빗자루만 메구 울구 돌아오는 농사 짓기보다 몇 갑절 나은지 몰라. 그리구 그중 편안헌 건, 이러퉁 저러퉁 남의 싱갱이 받을 것 없이 거리에서 자구, 별 밑에서 일하는 걸세. 도대체 가진 게 없으니 빼앗길 염려가 없구, 빼앗길 염려가 없으니, 줄창 맘은 푸군허구 푸군한 맘에는 언제 죽어두 눈을 감을 수 있으니, 요렇게 히안한 살림살이가 또 어딨단 말인가.

 

[명서] 허허허--- 자넨 언제든 태평일쎄그려.

 

[경선] 암, 어딜 가두 웃구 지내지. 누가 술을 받아 놓구 제발 울어 달래두 난 안 울어주네. 암, 막무가내지. 정말일세.

 

[경선처] 왜 연설만 허구 앉았우? 맞잡아 짐이나 뭉치잖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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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 내 몽뚱이만 해두 내겐 큰짐이여.

 

[경선처] (날카롭게) 에그, 주둥이두! 이 짐 챙기는 게 안 보이우?

 

[경선] (질려서) --- 아따, 난 또 뭐라구. (할 수 없이 순돌이에게 옷을 갈아 입힌다. 처의 눈치를 살피며 가만히) 정말일세. 명서 난 안 울어주네. 아까두 행길에서 (자기 처를 가리키며) 저걸 만났을 때 젖멕이를 등에 차구 바가지 들구 다니는 그 꼬락서니란 과연 가슴에서 이런 돌덩어리가 목구멍까지 치미데. 그래두. 난 참았어. 이를 악물구 참았다니까.

 

[명서] 알겠네. 자네 웃음을 얼마나 쓴 줄을--- (짐은 겨우 다 쌌다. 줄에 걸렸던 누더기, 벽에 걸렸던 헌옷, 이불, 남비, 바가지 등 보잘 것 없는 것이 그다지 크지는 않으나 한 보통이다.)

 

[경선처] 여보, 순돌이는 걸릴테니 젖멕이는 당신이--- (금녀, 경선의 등에다 유아를 업힌다.)

 

[명서처] 순돌네, 순돌네꺼정 이 동넬 떠나구 나문 우린 외로워서 어떻게 사나? 모두들 서간도로 일본으로 어디로 뿔뿔이 가버리문 우리 이웃은 열 손가락을 꼽아서 누가 남은단 말야? 명수 그 눔은 그 눔대루 간 곳을 모르구.

 

[금녀] 순돌아, 이 집이나 잘 봐 두어라. 크거던 다시 찾아오게.

 

[명서] 경선이, 어디 가든 자기 고장은 잊지 말아 주게나. 자길 낳아서 길러준 제 고향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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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 자식을 등에 업혀 보퉁일 들려서 휘몰아 내는 고향 말은 아니겠지, 명서?

 

[명서] 뭐래두 고향은 고향일세.

 

[경선] 그보다 여보게, 난 나두 사람이거니 허는 생각이나 잊지 말았으문 좋겠네그려.

 

[금녀] (등불을 주면서) 순돌아, 이렇게 높즉하게 쳐들고 가거라. 말 탄 신랑같이---

 

[순돌] (번쩍 추켜들며) 이렇게?

 

[금녀] 옳지?

 

[경선처] (남편더러) 떠나죠, 얼른.

 

[견선] --- 명서, 실통정을 허문, 오늘 저녁쯤은 한바탕 울구 싶네, 그래두 난 안 울어주네.

 

[경선처] (보퉁이를 들고) 금녀 어머니, 금녀 어머니, 금녀 아버지, 잘 계시우, 금녀야 잘 있거라.

 

[명서처] --- 아이구, 이 추운 밤에 떠나문 어디루 간단 말이우? 하필 오늘 같이 별두 없는 밤에---

 

[경선] 제비 연짜(子) 를 찾아서 강남으로 가죠. 따뜻한 강남 땅으루, 허허허---

 

((순돌은 등불을 들고 선두에 서고 보퉁이를 인 경선의 처는 순돌의 손을 이끌고 경선은 그 뒤에 따라서 퇴장. 금녀의 그 어머니, 문밖까지 나가서 전송하는 소리 들린다. 무대에는 명서 홀로 동치 않고 앉았다. 숙막! 바람 소리!))

 

[명서] (혼잣말로) 집안이 허퉁한 것 같구나. 초상난 집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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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금녀와 그 모(母) 다시 만나서 조용히 마루 끝에 앉는다. 금녀는 말없이 일을 시작한다. 명서는 골방으로 기어 들어간다.))

 

[명서처] (먹을 것을 끓이려고 불을 피우며) 오늘은 이래저래 일이 많이 밀렸지?

 

[금녀] 예

 

[명서처] 내일 장을 봐 먹으려문 오늘 저녁은 또 밤샘을 해야겠구나.

 

((이웃 여자 등장))

 

[이웃여자] 금녀네, 순돌네가 금방 떠났다네?

 

[명서처] 왜?

 

[이웃여자] 어이구, 저 망할 년 봐, 아무 말 없이! 내 돈 꾸어간 것 속절없이 떼었구나. 앨써 달걀 팔아 모은 돈을---

 

[명서처] 그지 보태준삼 치게나.

 

[이웃여자] 금녀네, 내일 읍네 장엘 가지?

 

[명서처] 그럼, 똬리 팔아야 할 테니까.

 

[이웃여자] 우리 집 닭 한 마리만 팔아다 주어. 순돌이네한테서 돈을 받아 영감 제사에 쓸렸더니 이건 또 생닭을 한 마리 팔아야겠는 걸.

 

[금녀] (부엌에서 먹을 것을 가지고 나와) 아버지, 이거.

 

[명서] 뭐냐?

 

[금녀] 쌀물. (아버지에게 떠 먹인다.)

 

[이웃여자] (매달아 놓은 똬리를 보고) 이렇게 제 손으로 맹그는 일이문 속이나 안 타겠지. 우린 닭의 새끼 궁둥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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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다보구 살려니까, 애가 타서 못하겠어. 그래두 하루 한 알씩이나 나 주문 시원하겠지만, 제에기 어떤 눔은 사흘 나흘씩 걸르기가 예사란 말야.

 

[명서처] (힘 없이 웃으며) 허허허--- 남의 궁둥만 바라고 사는 팔자두 상팔잔 못되겠군, 허지만 우리 집 금녀 봐 이거 맹그느라구 햇볕을 못 봐서---

 

[이웃여자] 그래두 금녀네헌텐 일본간 아들이 있잖어?

 

[명서처] 허허허--- 아들?

 

[명서] 오늘두 우편 배달부가 안 지나갔지?

 

[금녀] 읍내에서 다녀 그런지, 배달이 노상 질정이 없어유. 낮에두 왔다, 밤에두 지나갔다 하면서---

 

[명서처] (신문지를 내 뵈며) 참, 이것 좀 봐 주구려. 정말 우리 명수 같은지---

 

[이웃여자] 뭔데?

 

[명수처] 여기 우리 명수 화상허구 이름이 백혔다나. 그래두 난 믿질 못하겠어. 어찌 보문 내 자식 같기두 허지만, 자세히 뜯어 보문 볼수록 눈만 어섬푸레 해지고---

 

[명서] (다 먹고 나앉으며) 또 시작이군.

 

[명서처] 자네는 그 애 얼굴을 알지? 그 애 날 때 몸도 풀어 주구, 그 애 클 땐, 업어두 주구 했으니---

 

[이웃여자] 허지만 그 애 못 본지가, 이럭저럭 연 일곱 해가 됐으니, 그새 좀 변했나.

 

[명서처] 그래두 그 애 피색은 없지? 그렇지?

 

[이웃여자] 왜 이렇게 사진이 희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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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처] 내가 늘 지니고 다녀서 손때가 묻어 그럴거야.

 

[이웃여자] 내 눈으로두 어찌 보문 같은 피색이 있기도 헌데, 어찌 보문 아주 달르기두 허구--- 대체 이걸루는 이렇다 저렇단 말은---

 

[명서처] 암, 그렇구 말구! 내 역시 믿을 수 없어. 하늘이 무너진다는 소릴 믿으문 믿었지, 어떻게 이걸 믿는담. 머리끝이 바로 서는 이 무서운 사연을---

 

[이웃여자] 무서운 사연이라니?

 

[명서처] 맙소사! 당치도 않은! 이 조선 천지에 그런 일이 있어서 어쩔려구.

 

[이웃여자] 어찌 됐어? 내게 좀 들려 주구랴.

 

[명서처] --- 뭐라던가? 애그, 정신 봐! 얘 금녀야, 그 뭐라더라 네 오빠 했다는 것 말야.

 

[금녀] 또 그런 얘길---

 

[이웃여자] 한 이웃에 살면서, 피차에 기울게 뭐냐?

 

[명신처] 얘, 갑갑하다, 이 애미한테 한번만 더 들려주렴. 그 구장이 하구 간 소리 말야.

 

[금녀] 그건 맹탕 거짓말이래두.

 

[명서처] 뭐?

 

[금녀] 웃마을 오빠의 친구에게 알아봤더니 오빤 헌 일은 정말 훌륭한 일이래요. 우리두 이런 토막살이에서 죽지말구 잘 좀 더 잘 살아보자는---

 

[명서처] 그럼 그렇지. 그래 종신징역을 산다는 건 정말이라디?

 

[이웃여자] 종신징역?

 

[명서처] 거짓말야! 거짓말야! (미친 듯이 부르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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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녀] 암, 거짓말이죠!

 

[명서처] 종신징역이란 감옥에서 죽어 나온단 말 아냐? 젊어서 새파란 그가! 금지옥지 내 자식이! 내겐 아무래두 믿을 수 없는 일야! 그런 청천에 벼락같은 일이 우리 명수의 신상에 있어 어쩔랴구! 신문에만 난 걸 보구 그걸 우리 명수라지만 그런 멀쩡한 소리가 어딨어? 이 넓은 팔도강산에 얼굴 같은 사람이 없구, 최명수란 이름 가진 사람이 어디 우리 자식 하나 뿐일거라구? 이건 누가 뭐래두 난 안 믿어.

 

[금녀] 어머니, 이러시다가 병이나 나시문 어떻게 해유? 설사 오빠가 죽어 나온대두 조금도 서러울 건 없어유. 외려 우리의 자랑이예유. 오빠는 우릴 위해서 싸웠어유. 이런 번듯한 일이 또 있겠우? 더구나 이런 토막에서 자란 오빠는, 결단코 이 토막을 잊지 않을거유. 병 드신 아버지를 구하시려구 늙으신 아버지를 섬기시려구. 그리구 이 철부지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오빠는 장차 큰 성공을 해 가지고 꼭 한번 이 토막에 찾아 오셔요. 전보다 몇 배나 튼튼한 장부가 되어 오실거야. 여기를 떠날 때만 해두 오빠는 나무를 하거나 끌밭을 매거나 남의 몫은 했었는데, 지금쯤은 어머니, 오빤 얼마나 대장부가 됐겠우?

 

[명서처] --- 옳아! 그 눔은 몸도 크구 기상도 좋아겠다! 그 눔이 지금은 얼마나 훌륭한 장골이 됐겠니? 제 어미도 몰라보게 됐을거야.--- 아아, 명수야! 이제 명수가 저 싸리문에 나타나서 장부다운 우렁찬 목소리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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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를 부르고 떠벅떠벅 내 앞으로 걸어와서 그 억센 손으로 이 여윈 팔목을 덜컥 붙잡을 것이다.--- 그러면 이 토막에도 서기가 날거야.

 

[금녀] 아무렴, 서기가 나구말구! 이 어두운 땅도 환해질 거예유--- 그러면 어머니는 똬리 파시노라구 거리 거리로 떨고 다니실 필요두 없을 거구---

 

[이웃여자] 나는 암탉 궁둥이만 들여다보구 맘을 조리잖아두 좋구---

 

[명서처] 아이구 금녀야! 우리 이런 형상으루 어떻게 우리 명수를 맞나니? 이렇게 찌들어진 형상으루! 너의 오빠를 맞이하기엔 이 집은 너무 누추하구나. 금녀야, 우리는 집안을 치우구 몸을 단속하자. 이런 꼬락서니로 우리 명수를 만나서는 안된다. 얘야, 이리 와서 머리를 빗어라. 기름두 남았지? 싸리문에는 불을 켜구--- 귀한 사람이 들어올 때 집안이 컴컴해선 못쓰느니라.

 

[금녀] (어머니의 미친 듯이 서두는 양을 바라보고 있는 금녀의 눈에는 일종의 공포의 빛이 감돈다) 바람소리!

 

[명서처] 금녀야, 뭘 하니? 빨리 머리를 풀어라. 에미는 불을 킬 테니까.

 

[금녀] (불안한 듯이 어머니만 꼭 바라보고 섰다.)

 

[이웃여자] 좀 답답해서 저러겠니? 보고 있는 나까지 속이 졸이는구나.

 

[금녀] 오빠 생각만 나문 저러신대유. 그러던 중에두 오늘은 유달리 심허신 걸유. 난 어쩐지---

 

[이웃여자] 당찮어! 무슨 그런 엉뚱한 생각을! 그러지 말구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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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어머니 위로를 잘해 드려라. 위로해 드릴 사람이래야 너밖에 더 있냐?

 

[금녀] 아무리 위로한댔자 소용없어유. 그리구 내게는 뭐라구 위로해 드릴 말두 없구 다만 이 증세가 속히 지내가기만 바랄 뿐이지.

 

[이웃여자] 하기야 그렇겠지. 무슨 말이 저 거칠언 마음에 위안이 되겠니. 마치 게등에 소금 칠이지. (사립문 등불을 다는 명서 처에게) 금녀네 과히 상심치 말게나. 아들 생각다가 지레 죽겠네. (퇴장)

 

[명서] (골방에서 얼굴을 내밀고) 대체 이게 웬일이야? 왜 이리 야단들을 해?

 

[명서처] 귀한 사람이 와유.

 

[명서] 미쳤우! 방정맞게 이렇게 허문 되려 집안의 우환을 사는 거여.

 

[명서처] 귀인이 온다는 데 무슨 잔소릴---

 

((바람 소리 인다))

 

[남자의 소리] (불의에 밖에서) 여보!

 

[금녀] (놀라) 애그머니!

 

[명서] (어리둥절하여) 그 무슨 소리냐?

 

[남자의 소리] 사람 있우, 이 집에?

 

[명서처] 이 애 금녀야 네 오빠 소리 아니냐? 그렇지! 너두 들었지? 오오, 명수야. 명수가 왔다. 그놈이 왔다. (명서에게) 자, 내 말이 거짓말인가 봐요.

 

[명서] --- 이상헌 걸.

 

[남자의소리]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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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처] 금녀야, 빨리 사립문을 열어 귀인을 맞아라. 얼른!

 

[금녀] 어머니, 무서워!

 

[명서처] 에그, 병신 같으니! 그럼 같이 가자.

 

(모녀 다소 공포에 떨면서 입구 편으로 나간다.)

 

[남자의소리] 이 집에 최명서란 사람 있오?

 

[명서처] 일본서 왔오?

 

[남자의 소리] 그렇소.

 

[명서부처] 일본서?

 

((그때의 사립문을 박차는 듯이 한 남자 안으로 들어선다. 그는 우편 배달부다. 소포를 들었다.))

 

[배달부] (들어서며) 왜 밖에 문패도 없오?

 

[모녀] (무언)

 

[배달부] 빨리 도장을 내요.

 

[명서] 도장?

 

[명서처] (금녀에게 의아한 듯이) 너의 오빠가 아니지?

 

[금녀] 배달부예유.

 

[명서] (실망한 듯이) 칫!

 

[배달부] 얼른 소포 받아 가요! 원, 무식해도 분수가 있지. 빨리 도장을 내요.

 

[명서] (반항적 어조로) 내겐 도장 같은 건 없오.

 

[배달부] 그럼 지장이라도---

 

[명서] (떨리는 손으로 지장을 찍는다) ,

 

(배달부 퇴장)

 

[명서처] 음, 그 애게서 물건이 온 게로구면.

 

[명서]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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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처] 세상에 귀신은 못 속이는 게지! 오늘 아침부터 이상한 생각이 들더니 이것이 올려구 그랬던가봐. 당신은 우환이니 뭐니 해도---

 

[명서] (소포의 발송인의 이름을 보고) 하, 오래비가 아니라 삼조가---

 

[명서처] 아니, 삼조가 뭣을 보냈을까? 입때 한 마리 식두 없던 애가---

 

(소포를 끌려서)

 

[금녀] (감짝 놀라) 어머나!

 

[명서처] (자기의 눈을 의심하듯이) 대체 이게--- 이게? 에그머니, 맙소사! 이게 웬 일이냐?

 

[명서] (되려 멍청해지며 궤짝에 쓰인 글자를 읽으며) 최명수의 백골.

 

[금녀] 오빠의?

 

[명서처] 그럼, 신문에 난 게 역시! 아아, 이 일이 웬일이냐? 명수야! 네가 왜 이 모양으로 돌아왔느냐? (백골상자를 꽉 안는다)

 

[금녀] 오빠?

 

[명서] 나는 여태 개, 돼지같이 살아 오문서 한마디 불평두 입밖에 내지 않구 꾸벅꾸벅 일만 해준 사람이여. 무엇 때문에, 무엇 때문에 내 자식을 이 지경을 맨들어 보내느냐? 응, 이 육실헐 눔들! (일어서려고 애쓴다.)

 

[금녀] (눈물을 씻으며) 아버지! (하고 붙든다)

 

[명서] 놓아라! 명수는 어디루 갔니? 다 기울어진 이 집을 뉘게 맺겨두구 이 눔은 어딜?

 

[금녀] 아버지!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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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 (궤짝을 들고 비틀거리며) 이놈들아, 왜 뼉다구만 내게 갖다 맺끼느냐? 내 자식을 죽인 눔이 이걸 마저 처치해라! (세진하여 쓰러진다. 궤짝에서 백골이 쏟아진다. 밭은 기침! 한동안)

 

[명서처] (흩어진 백골을 주우며) 명수야, 내 자식아! 이 토막에서 자란 너는 백골이나마 우리를 찾아왔다. 인제는 나는 너를 기다려서 애태울 일도 없구 동지 섣달 기나긴 밤을 울어 새우지 않아두 좋다! 명수야, 이제 너는 내 품안에 돌아왔다.

 

[명서] --- 아아, 보기 싫다! 도루 가져 가래라!

 

[금녀] 아버지, 서러 마세요. 서러워 마시구 이대루 꾹참구 살아가세유. 네 아버지! 결코 오빠는 우릴 저바라진 않을 거예유. 죽은 혼이라두 살아 있어, 우릴 꼭 돌봐 줄거예유. 그때까지 우린 꾹 참구 살아 가세유, 예, 아버지!

 

[명서] --- 아아, 보기 싫다! 도루 가지고 가래라!

 

((금녀의 어머니는 백골을 안치하여 놓고 열심히 무어라고 중얼거리며 합장한다. 바람 소리 정막(靜幕) 을 찢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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