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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불교사상

Jobs9 2021. 12. 2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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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불교사상

성사(聖師) 원효(元曉)의 속성(俗姓)은 설씨(薛氏)이다. 할아버지는 잉피공(仍皮公)으로 또는 적대공(赤大公)이라고도 하는데, 지금 적대연(赤大淵) 옆에 잉피공의 사당이 있다. 아버지는 담날(談捺) 내말(乃末)이다. 처음에 압량군(押梁郡)의 남쪽【지금의 장산군(章山郡)이다】 불지촌(佛地村) 북쪽 율곡(栗谷) 사라수(娑羅樹) 아래서 태어났다. ……(중략)……

성사가 태어나서 어릴 적 이름은 서당(誓幢)이고, 제명(第名)은 신당(新幢)【당(幢)은 속어로 털[毛]이다】이다. 처음에 어머니가 유성(流星)이 품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태기가 있었는데, 해산하려고 할 때는 오색구름이 땅을 덮었다. 이때가 진평왕(眞平王) 39년인 대업(大業) 13년 정축년(丁丑年, 617)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총명이 남달라 스승을 따라서 배우지 않았다. 그가 사방으로 다니며 수행한 전말과 널리 교화를 펼쳤던 크나큰 업적은 『당전(唐傳)』과 행장(行狀)에 자세히 실려 있다. ……(중략)……

원효가 이미 계율을 잃어버려 설총(薛聰)을 낳은 이후 속인의 옷으로 바꾸어 입고 스스로 소성거사(小姓居士)라고 하였다. 우연히 광대들이 놀리는 큰 박을 얻었는데 그 모양이 괴이하였다. 그 모양대로 도구를 만들어 『화엄경(華嚴經)』의 “일체 무애인(無㝵人)은 한 길로 생사를 벗어난다.”라는 (문구에서) 이름을 ‘무애(無㝵)’라고 하고 이에 노래를 지어 세상에 퍼뜨렸다. 일찍이 이것을 가지고 온 마을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교화하고 음영하여 돌아오니 가난하고 무지몽매한 무리까지도 모두 부처의 호를 알게 되었고, 모두 나무[南無]를 칭하게 되었으니, 원효의 법화(法化)가 컸던 것이다. ……(중략)……

일찍이 분황사(芬皇寺)에 살면서 『화엄경소(華嚴經疏)』를 짓다가 「제사십회향품(第四十廻向品)」에 이르자 마침내 붓을 놓았다. 또 일찍이 소송으로 인해서 몸을 백 그루의 소나무로 나누었으므로 모두 (그의) 위계(位階)를 초지(初地)라고 하였다. 또 해룡(海龍)의 권유에 따라 길에서 조서를 받아 『삼매경소(三昧經疏)』를 지으면서 붓과 벼루를 소의 두 뿔 위에 놓아 두었으므로 이를 각승(角乘)이라고 했는데, 또한 본각과 시각 두각[本始二覺]의 숨은 뜻을 나타낸 것이다. 대안법사(大安法師)가 배열하여 종이를 붙인 것은 음을 알고 화창(和唱)한 것이다.

『삼국유사』권4, 「의해」5 원효불기


聖師元曉, 俗姓薛氏. 祖仍皮公, 亦云赤大公, 今赤大淵側有仍皮公廟. 父談㮈乃末. 初示生于押梁郡南【今章山郡.】佛地村北, 栗谷娑羅樹下. ……(中略)……

師生小名誓幢, 第名新幢【幢者俗云毛也.】. 初母夢流星入懐, 因而有娠, 及將産, 有五色雲覆地. 真平王三十九年, 大業十三年丁丑歳也. 生而頴異, 學不従師. 其逰方始末, 弘通茂跡, 具載唐傳與行狀. ……(中略)……

曉旣失戒生聦, 已後易俗服, 自号小姓居士. 偶得優人舞弄大瓠, 其状瑰竒. 因其形製爲道具, 以華嚴経一切無㝵人, 一道出生死, 命名曰無㝵, 仍作歌流于世. 嘗持此, 千村萬落且歌且舞, 化詠而歸, 使桑樞瓮牖玃猴之軰, 皆識佛陁之号, 咸作南無之稱, 曉之化大矣㦲. ……(中略)……

曾住芬皇寺, 纂華嚴䟽, 至第四十迴向品, 終乃絶筆. 又嘗因訟, 分軀於百松, 故皆謂位階初地矣. 亦因海龍之誘, 承詔於路上, 撰三昧経䟽, 置筆硯於牛之两角上, 因謂之角乗, 亦表夲始二覺之微旨也. 大安法師排来而粘紙, 亦知音唱和也.

『三國遺事』卷4, 「義解」5 元曉不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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