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과학 Social Sciences/지리 Geography

요르단, 수도 암만, 요단 강 오른쪽, 중동의 보석, 페트라, 와디 럼, 시타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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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면적
89,342km²
인구
11,325,858명 (2023년) | 세계 83위
인구밀도
115명/km² (2021년)
출산율
세계은행 자료 2.60명(2020년) CIA 자료 2.96명(2022년)
수도
암만
공용어
아랍어
종교
이슬람교 90%, 그리스도교 8%, 드루즈교 및 바하이교 등 기타 2%
명목 GDP
418억 달러
GDP(PPP)
941억 달러
1인당 명목 GDP
4,428 달러
1인당 GDP(PPP)
9,406 달러




서아시아에 있는 입헌군주국. 수도는 암만(عمان)이다.

면적은 89,342km², 인구는 10,248,069명(2017년 통계) 홍해로 이어지는 약 20km 정도의 해안선에 유일한 항구도시 아카바가 있다.

정식 국명은 요르단 하심 왕국이다. 영어로는 'Jordan'이며 아랍어 표기로는 알-우르둔이다. 같은 이름의 요르단 강으로부터 국호를 따 왔으며 '요르단'이라는 번역은 대부분의 번역 성경의 저본인 라틴어판에서의 번역명인 Iordanis에서 영향을 받았다. 

여담으로 구글에 영문 국명인 Jordan이라고 치면 스포츠 용품이나 농구 선수 관련 결과만 가득 나온다. Jordan country라고 쳐야 요르단 관련 결과가 나온다.



이 나라는 1세기부터 6세기까지 기독교문화권에 속하였으나 636년 이후 사라센제국의 판도에 편입되었으며, 11세기의 100년간은 십자군의 지배로 다시 기독교문화권에 있었으나,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슬람문화권에 속하고 있다.

1916년 이후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아왔으며, 1946년 5월 25일 독립하여 왕국이 되었고, 1952년 1월 헌법을 제정하였다. 1967년 6월 ‘6일전쟁’ 때 요르단강 서안지역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에게 상실하였다. 입헌군주국이기 때문에 정부형태는 국왕중심제이며, 세습제로 즉위하는 국왕이 국가정책 결정과 집행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정당은 1976년 이래 존재하지 못하다가 1992년 8월 정당법이 상하 양원에서 성립되어 합법화되었다. 

현 압둘라(Abdullah) 국왕은 1999년 2월 7일 즉위하여 집권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팔레스타인계 주민과 원주민인 베드윈 부족간의 갈등이 잠재화되고 있어 정치·사회변동의 요인이 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중도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1955년 유엔에, 1964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한국과의 관계
우리나라는 1962년 7월 26일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현재 상주공관을 두고 있다. 1983년 9월 이 나라의 후세인(Hussein,I.) 국왕이 공식 방한하여 상호협력의 폭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양국은 1972년 11월에 무역 협정, 1977년 10월에 문화 협정과 경제·기술협력 협정, 1978년 5월에 항공 협정, 2004년 7월에 투자보호 협정과 이중과세방지 협정, 2005년 1월에 관광 협정, 2006년 3월에 KOICA봉사단파견 협정, 2008년 12월에 원자력협력 협정과 홍해·사해수로사업협력 협정 등을 체결하였다. 

1974년 2월 한국의 남광토건주식회사가 이 나라 암만시의 상수도공사를 수주한 이래 1987년 3월에는 10개 업체가 56건의 각종 건설공사에 참여하는 등 한국건설업체의 진출이 한때 활발하였다. 이 가운데서 한국의 한보종합건설주식회사·신승기업 등이 참여한 요르단 계곡개발공사는 특기할 만하다. 요르단이 국가적인 사업으로 벌인 이 공사에 한국업체들은 뛰어난 시공능력으로 요르단의 기대에 부응하였다.   

우리나라의 대 요르단 수출액은 2015년 현재 13억 8000만 달러로 주종목은 승용차, 경유, 선박 등이고, 수입액은 7800만 달러로 주종목은 기타석유화학제품, 알루미늄괴 등이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13명의 요르단 선수단이 참가하였다. 2015년 현재 KOTRA를 비롯하여 LG, 현대, 삼성중공업, 두산중공업 등의 업체가 진출해 있고, 660명의 한국민 체류자가 있다. 

우리나라는 1975년도에 주요르단대사관을 설치하였으며, 최근의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양국관계를 반영하여 요르단은 2010년 10월에 주한대사관을 개설하였다.

한편, 북한은 요르단과는 1974년 7월 5일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2004년 현재 주 시리아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양측은 수교 이후 1978년 8월에 문화 협정, 1980년 2월에 방송TV상호협력 협정, 1994년 9월에 노동당·아랍이슬람운동당간협력 협정, 1994년 11월에 항공운수 협정, 1994년 12월에 문화 협정, 1995년 2월에 노동당·인민통일당간협력 합의서, 1996년 11월에 경제기술 협정 등을 체결하였다. 



국토의 80%가 사막으로 척박하다. 사막성 기후에 더운 곳도 꽤 많지만 바람이 불고 기후도 선선한 곳이 많아 다른 아랍국가 왕족들이 이 곳에 피서를 오기도 하고 해변이 있는 아카바의 경우 아예 여러 곳에 개인별장을 사둔 게 많다. 

물 부족 문제가 심각한데 여름철에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연 강수량은 90mm밖에 안 된다. 특히 요르단 강의 수자원을 둘러싸고 이스라엘, 시리아, 레바논과의 갈등이 굉장히 심하다. 게다가 요르단은 도시화가 돼 전체 인구의 60%가 도시에 거주하고 인구 증가로 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가뜩이나 부족한 수자원의 고갈이 더 심하다.그래서 요르단은 많은 양의 물을 수입하지만 그래도 감당이 안 돼 정부에서 서민들에게 물을 주 1회만 공급하는 배급제를 실시한다. 이럼에도 요르단의 물부족은 갈수록 심각하다. 

무엇보다 사막화와 기후변화로 인해 가뜩이나 적은 강수량이 갈수록 감소한다. 사실 요르단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시리아, 이라크, 이란,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키프로스, 아랍 에미리트 등 중동 지역 대다수 국가, 이집트, 알제리도 같이 물부족을 겪는다. 국가별 사회 문제 문서에 나오듯 유럽도 상당수 국가가 똑같이 물부족으로 물값이 어마무시하게 비싸다. 다만 여긴 물이 많은데 석회질이 많아 정제해야 되기 때문이고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이조차도 없어 물이 말라버릴 상황이다. 
 
북미의 케찰코아틀루스와 더불어 백악기 말기 최대 크기의 익룡인 아람보우르기아니아의 화석이 요르단에서 발견됐다. 당시 압둘라 1세 요르단 전 왕과 하심 왕가 인사들이 직접 화석 발굴 현장에 방문해 이 익룡의 화석을 보고 갈 정도로 당시 요르단에서는 엄청난 화제였다. 

 

종교
요르단 국민의 92% 이상이 수니파 이슬람교도지만 팔레스타인이 인접해 국민의 약 7%가 그리스도인이다. 최대 종파는 정교회며 가톨릭, 시리아 정교회, 콥트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등을 믿는 이도 있다. 요르단에서는 또 소수의 시아파 이슬람교도와 드루즈파 신자도 있다.

오랜 세월 요르단은 이슬람권에서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을 베푼 것으로 유명한 국가였다. 요르단은 헌법으로 종교 차별을 금지하고 종교적 신앙과 예배를 자유롭게 실행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현재 요르단 국왕인 압둘라 2세는 다른 중동의 이슬람 국가 지도자 가운데 비교적 진보적인 인사다. 그는 2005년 9월 13일 영국에서 가진 연설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비판하며 포용과 타협을 바탕으로 한 대화를 강조했다. 요르단 의회도 2006년 9월 24일 요르단 내 이슬람 사원을 통해 극단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슬람 사원 및 기관에서 진행되는 모든 종교 행사에 대해 주제 및 강사 등 세부 내용에 대해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했다. 2012년 정당조차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것을 금지해 요르단의 정당들은 모두 세속주의를 추구하며 종교정당은 하나도 없다. 

또한 요르단 정부는 국민에게 개종을 강요하는 것도 금지한다.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요르단인은 물론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난민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허용하는 등 이슬람교가 국교인 국가로서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종교의 개방성이 높다. 

요르단은 헌법으로 종교 자유를 보장하지만 동시에 이슬람교 신자에게는 이슬람 율법을 적용하는 이중 법률체계를 시행한다. 그래도 막장 이슬람 율법을 시행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브루나이보다 낫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이슬람에 대한 비판을 금지하며 처벌해 인권단체가 비판한다. 특히 반이슬람 만평을 실은 요르단 작가의 만평이 삭제되고 싣는 게 금지당했으며 기소돼 재판을 기다리는 중 작가가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요르단이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이 된 이유는 이국적인 풍광 때문이다. 거대한 바위 사이의 좁고 깊은 장밋빛 협곡에 숨어 있는 고대 도시 ‘페트라’, 자연이 빚은 광활한 붉은 모래사막 ‘와디 럼’, 몸이 저절로 뜨는 소금 바다 ‘사해’ 등 진귀한 자연경관을 만나볼 수 있는 관광지가 즐비하다. 신비로운 장소뿐 아니라, 요르단은 역사나 종교 유적지도 잘 보존돼 있다. 알렉산더 대왕의 숨결이 느껴지는 ‘제라시’를 비롯한 수많은 로마제국의 유적과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를 받은 요단강 ‘베다니’, 비잔틴 시대 교회 모자이크로 유명한 ‘마다바’, 가나안 땅으로 이끈 모세가 숨을 거둔 ‘느보산’ 등 기독교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성지이기도 하다.

요르단이 이렇게 여행지로 유명한 나라임에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생소하고 낯설다. 아마도 중동 국가들에 대한 여러 편견과 선입견 때문일 거다. 요르단이 중동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위험한 국가라는 느낌마저 들 수 있다. 실제로 이슬람 국가를 여행하다 보면 그들의 문화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태라 때로는 당황스럽고 왠지 모를 공포감과 두려움이 엄습해오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자체를 하나의 종교로 받아들이고 미지의 세상 속 풍경처럼 인식하다 보니 그때부터 눈앞의 모든 것이 전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혹은 다르게 알고 있었던 중동에 대한 선입견을 요르단 여행을 통해 완전히 지워버렸으면 좋겠다. 
 
중동으로 떠나는 여행이 처음이라면 요르단은 탁월한 선택이다. 그나마 이곳이 온건한 이슬람 국가에 속하기 때문이다. 면적은 남북으로 약 460㎞, 동서로 약 355㎞ 뻗어 있어 대한민국과 비슷하지만, 인구는 1000만 명 정도로 훨씬 적다. 국민의 95%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이슬람 수니파다. 요르단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시리아,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다른 중동 국가들에 비해 개방적이다. 평화적인 약소국이라 ‘중동의 스위스’로 불린다. 산유국이 아니라서 관광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약 20%를 차지한다. 요르단은 여름에 섭씨 40도 이상 기온이 올라가는 더운 나라다. 그래서 여행 최적기는 낮 기온이 22도로 쾌적한 4~5월, 9~10월이다. 일교차가 크고 저녁에는 쌀쌀한 편이니 외투는 필수다. 시간은 한국보다 7시간 늦다. 화폐는 ‘디나르’를 사용하며 전압은 230V로 한국 전자제품을 쓸 수 있지만, 콘센트 모양이 다르니 멀티플러그를 준비하는 게 좋다. 요르단에 가려면 비자가 필요하다. 비자 비용은 40디나르(약 17만 원). 출발 전 주한 요르단대사관을 방문해 받거나 현지 공항에 도착해 받아도 된다. 요르단에서 3박 이상 체류할 예정이라면 40여 개 관광지 입장권 등이 포함된 ‘요르단패스’를 구매하면 비자는 따로 받지 않아도 된다.  

퀸 알리아 국제공항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특유의 냄새와 소음, 그리고 숨이 턱 막힐 듯한 묵직한 공기가 이곳이 중동, 그중에서도 요르단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짐을 찾고 공항 밖으로 나오면 택시 호객꾼 수십 명이 몰려온다. 정신이 혼미해질 타이밍이다. 이때부터 멘털을 제대로 부여잡아야 한다. 눈과 귀, 호흡을 통해 직접 경험하는 이슬람은 미디어와 책에서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새벽, 정오, 오후, 저녁, 밤, 하루 5번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울려 퍼지는 아잔(Azzan: 기도를 알리는 음성) 소리는 어색함을 넘어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 감정에 오래 빠져 있으면 그때부터 요르단 여행은 꼬이게 된다. 이슬람은 종교로, 낯선 분위기는 하나의 문화로, 어색한 기후는 새로운 대륙에 와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1초라도 빨리 현실을 받아들여야 그때부터 모든 것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요르단 ‘시타델’ ‘사해’ ‘베다니’ ‘제라시’ ‘느보산’은 수도 암만을 기점으로 당일 관광을 다니기에 무리가 없다. 다만 암만에서 서남쪽 150㎞ 지점에 위치한 ‘페트라’와 홍해를 끼고 있는 ‘아카바’, 그리고 ‘와디 럼’ 탐험은 인근에 숙소를 정하고 다니는 게 좋다. 좀 더 여유가 있다면 사해를 품은 리조트에 하루 머물면서 베다니, 느보산 성지를 여행하는 것도 추천한다. 지역 간 이동 수단으로는 요르단 고속버스인 제프와 로컬버스를 이용해도 되고, 로컬 여행사 또는 택시 투어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합리적인 가격에 여행이 가능하다. 요르단 전체를 제대로 살펴보려면 최소 일주일은 필요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핵심 관광지만 선택해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주요 관광지가 암만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어 여행 순서는 남쪽 페트라에서 시작해 암만으로 올라와도 좋고, 역순으로 북쪽 제라시를 시작으로 남쪽으로 내려가도 무방하다. 

암만은 대단히 오랜 역사를 가진 고대 근동의 주요 도시 중 하나다. 이 도시를 최초로 언급한 구약성서 신명기에 따르면 당시 사람들이 이곳을 ‘암몬 족속의 랍바’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그 흔적을 찾아 암몬의 성체가 남아 있는 고대 유적지 ‘시타델’로 향해보자. 현지어로 ‘자발 알 깔라아(Jabal al Qala’a)’라고 부르는 시타델은 기원전 1200년쯤 암몬족의 수도였다. 암만에서 가장 높은 해발 850m 언덕에 위치해 있는데, 다운타운 근처라 걸어서도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다. 요르단패스를 소지하고 있다면 무료 입장도 가능하다. 암몬 성터 입구에는 헤롯 대왕이 헤라클레스에게 바친 신전터와 비잔틴 양식의 정문, 인류에 알려진 가장 오래된 성채들에 속하는 6~7세기 비잔틴 교회 유적, 물 저장고, 로마시대 방어 성벽 등이 남아 있다. 성터 남쪽에는 6000명 수용 규모의 로마시대 야외 원형극장이 예전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는데 지금까지도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타델은 역사의 현장이면서 암만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최고 전망대이기도 하다. 일몰 직전 어스름이 깔릴 즈음 벤치에 앉아 바라보는 암만 야경은 하루의 피로를 싹 날리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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