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과학 Social Sciences/지리 Geography

오리건 트레일, 미국 서부개척시대, 개척자 지나던 길, Oregon Trail, 3,490km, 미주리주 인디펜던스, 오리건주 컬럼비아 강

Jobs 9 2025. 4. 2.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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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건 트레일

미국 서부개척시대 개척자들이 지나던 길

Oregon Trail

 

길이 2,170마일(약 3,490km)의 횡단로로, 말 그대로 미국 동부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에서 시작해 서부 해안에 있는 오리건주 컬럼비아 강까지 가는 여행길을 뜻한다. 원래는 사냥꾼이나 선교사들이 이용하던 길이었지만 골드 러시 시대에 개척자들이 이 길을 따라 서부로 이동하기 시작해 대중화됐다고 한다. 하지만 말이 여행길이지 당연히 정비된 포장도로 같은 게 있을리가 없어서 그냥 남이 지나간 길을 따라 가는 것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가는 길은 대단히 험난했으며 보통 4~6개월 정도 걸렸다고 한다. 1800년대 중반에 이 길을 지난 인구는 약 4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 길 사이에는 원래 버팔로가 많이 살았는데 개척자들이 지나면서 버팔로 가죽이나 고기 등을 얻기 위해 자꾸 잡아서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건조한 서부라서 딱히 땔감 삼을것도 없었기 때문에 버팔로 똥도 연료로 쓰였다.[버팔로 칩(Buffalo Chips)이라고 불린다.] 아메리카 원주민 영역도 있었는데, 원래 사람들이 별로 지나지 않던 때에는 원주민들도 인정을 베풀어서 먹을 걸 주거나 물물교환으로 교역을 하기도 했지만 이주민들이 늘어나면서 자꾸 버팔로를 잡거나 나무를 베면서 간접적인 피해를 끼쳤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오리건 트레일을 지나던 개척자들을 공격하기도 했다.

 

1869년 첫 미국대륙횡단 철도가 설립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일단 1890년대까지는 계속 쓰였으며 지금은 고속도로 26, 오리건주와 아이다호 고속도로 84, 네브래스카 80번 주간 고속도로가 이곳을 지나가고 있다. 국가유산으로 보존 중이며, 가끔 국토대장정 식 행사가 이뤄지기도 한다.




이동 중 생활

사람들은 정돈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길을 수레를 타고 가는 것을 싫어했고 대부분 그냥 걸어갔다.신발은 금방 만신창이가 되었고 발은 피투성이가 되기 십상이었다. 서부로 가는길은 강, 산, 사막을 위시해 험난한 지형이 연속돼서 이주자들은 산을 오르내리고 진흙과 먼지와 싸워야 했다.

 

캠핑

이주자들은 짐마차 주변에 불을 피우고 캠핑했다. 지친 가축들의 울타리 역할을 해 주고자 그 사람들은 원을 그려 빙둘러 앉았다. 오리건 가도를 통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캠핑도 점점 힘들어졌다. 불을 피울 재료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주변에 나무가 많지 않아 그 사람들은 버팔로의 똥을 태워야했다.

 

버팔로

거대한 버팔로 떼가 오리건 가도를 지나는 사람들의 앞길을 막을 때가 잦았다. 이주자들은 이때 만사를 제쳐두고 버팔로를 사냥하곤 했다. 이때 무리한 사냥 탓에 버팔로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인디언

오리건 가도로 가던 사람들이 제일 우려한 인디언 부족 두 개는 북측의 샤이엔족과 남측의 파우니족이었는데 이 두 족은 이주자들에게 공격은커녕 친절을 베풀었다. 이주자들과 인디언 사이에서는 물물교환이 이루어졌는데 이주자들은 옷, 권총, 담배를 주로 주었고 인디언들은 말이나 식량을 제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주자들이 가축을 초원에 지나치게 방목하고 땔감을 구하려고 나무를 함부로 자르며 버팔로를 무분별하게 사냥하기 시작한 탓에 인디언들은 피해하였다.

 

 

역경

 

도강

이주자들에게 절대로 불가피했던 역경으로서 수백 명이 북부 플라테강과 콜럼비아강을 지나려다가 익사했다. 1850년 한 해만 하더라도 37명이 익사했다.

 

이동 수단

수레에는 보통 짐을 실어서 사람 대부분은 3200km나 되는 거리를 도보해야[3] 했다.

 

사고

사고 대부분은 이주자들 자신의 과오 탓에 일어났고 황소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거나 이동 수단인 수레를 잘 운전하지 못해 발생하는 사고가 잦았다.수레에는 어떤 안전장치도 되어 있지 않아서 아이들이 수레바퀴 밑에 깔려 죽는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동 중 기후

번개가 자주 쳤고 벼락에 맞아 죽은 사람이 많았다. 환경이 열악해서 조금만 비가와도 수레나 마차에 비가 샜고 주변은 평원이라서 마땅한 은신처도 없었다.

 

콜레라

오리건 가도 이동 중 가장 심각했던 문제로서 마땅한 치료책이 없어 멀쩡하던 사람이 몇 시간만에 죽었고 그 중 소수만이 제대로 땅에 묻혔다. 나머지는 길가에 버려지거나 마차나 수레 위에서 혼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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