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치, 행복, 쾌락, 쾌락적응, 마약중독
역치(閾値, threshold) 또는 문턱값은 물리학에서 어떤 현상을 일으키게 하기 위하여 계(系)에 가해야 하는 물리량의 최소치를 말한다. 생물학, 생화학 및 의학 분야에서는 생물체가 자극에 대한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의 자극의 세기를 수치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
생물은 모든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강도 이상의 자극이 가해지지 않으면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없으며, 생물이 갖고 있는 물리적, 화학적 특성 역시 생명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항상성이 존재하여 미약한 강도의 자극에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떠한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자극에 최소한의 강도가 필요하며, 이 때의 강도의 수치를 역치라고 한다.
흔히 '역치를 넘기다', '역치 이상의 자극'(suprathreshold)과 같은 표현으로 사용되며, 일상생활에서도 비유적인 표현으로서 '참을 수 있는 한계'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생물학에 ‘역치(閾値)’ 라는 게 있다. 생물이 외부환경의 변화, 즉 자극에 대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를 말한다. 소머즈가 아니라면 멀리 있는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우리가 들을 수 없는 것은 귀가 반응할 수 있는 역치 이하의 자극이라서 그런 것이다. 또한 가시광선보다 길거나 짧은 파장의 적외선이나 자외선을 눈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도 같은 원리이다.
하지만 우리가 모든 소리나 빛 등 모든 자극을 다 수용할 수 없다 하여 슬퍼하거나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아마 더 힘들고 혼란스러워 일상의 삶을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만 받아들이면 그 뿐. 여기서 자연스럽게 과유불급을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역치의 법칙은 운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근육운동을 위해 덤벨을 들 때도 역치 이상의 무게를 들어줘야 근력이 늘어난다. 가벼운 덤벨을 10회 드는 것이 무거운 덤벨 1회 드는 것보다 못하다는 뜻이다. 횟수나 시간도 마찬가지인데 이때도 역치 이상의 운동을 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니 평일에는 그냥 지내다가 주말에 등산 등을 몰아서 했다고 자랑해선 곤란하다. 이 경우에는 오히려 부상등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운동 효과를 얻으려면 일상의 삶에서 습관처럼 꾸준히,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같은 크기의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으면 역치가 올라가 나중엔 더 큰 자극을 주어야 자극을 느낄 수 있다. 이를 ‘감각의 순응’이라고 한다. 고향의 어머니가 해 주시는 음식이 날이 갈수록 짠 것도 이런 예이다. 수십 년의 세월 속에서 어머니의 혀가 느끼는 짠맛의 역치가 높아진 것이다. 어머니의 음식이 짠 만큼 어머니가 가족들에게 그만큼 긴 세월 음식을 준비해 온 것이기에 음식이 ‘짠’만큼 그만큼의 사랑이 깃든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진다.
관련하여 한 마디 덧붙이면 ‘쾌락적응’이라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돈이 많고, 크고 화려한 집에 사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거기에 적응하게 된다. 처음에 느꼈던 그 기분이 나중엔 희미해지며 더 큰 욕심을 내게 된다. 그래야만 역치이상의 자극이 되어 그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 쾌락
행복의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영역이기에 사람들마다 다르다. 애초에 이건 자기 자신이 판단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객관적으로 이렇다저렇다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획일화되고 몰개성적인 집단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는 다수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해 부정하는 경향이 매우 심하다지만, 결국 행복은 남들이 대신 평가해 주는 게 아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쾌락을 행복으로 착각한다. 이 둘의 차이점은 행복은 지속적으로 느끼는 것이고, 쾌락은 단기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명문대 합격하면 행복할 것 같다','로또 1등 당첨되면 행복할 것 같다'는 행복이 아니라 쾌락을 원하는 것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에 아무리 큰 쾌락을 맞이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에 적응해서 당연한 일상이 되기에 행복감이 다시 평상시로 돌아온다. 이것을 '쾌락적응'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금수저로 태어나거나 자수성가해서 부자가 되어도 자살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행복하다는 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감당할 수 있는 대로 감정을 느끼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이를 SWB(주관적 안녕감)라는 개념으로 정립하여 행복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긍정심리학에 따르면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몰입),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관계가 유지되어야 함(사회적 지지)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행복 연구의 권위자들은 행복함은 대개 유전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본다. 즉 누군가가 행복한지 불행한지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는 유전... 30년간의 행복에 관한 연구들을 메타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돈, 건강, 종교, 학력, 지능, 성별, 나이 등 환경적 변수들은 모두 합쳐도 개인 간의 행복의 차이를 15%밖에 설명하지 못하며, 반면에 유전이나 성격은 전체의 50%를 설명했다. 즉 개인 간 행복의 차이의 반은 유전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한편 긍정심리학의 권위자인 셀리그만과 행복연구의 권위자인 디너의 공동 연구에서는 50%를 결정하는 성격과 함께 행복에 중요한 환경적 요인으로 사회적 관계의 빈도와 만족도, 즉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과 만족도를 뽑았다.
행복감을 얻지 못하면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 봤을 때 "저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라고 생각해도 정작 본인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또한 욕심이 많은 사람은 자기 자신의 행복을 채워도 채워도 부족하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하다. 이때는 어느 정도 욕심을 버리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