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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헬레니즘 시대, 에피쿠로스학파, 쾌락주의(Hedonism, 快樂主義), 스토아 학파

Jobs9 2022. 6. 1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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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헬레니즘 시대, 에피쿠로스학파의 창시자. 쾌락주의 철학을 펼쳤다.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41년, 당시 아테네의 식민지였던 사모스 섬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14세에 학교 선생들이 헤시오도스의 책에 나오는 혼돈 개념을 그에게 설명해주지 못하자 선생을 얕잡아 보게 되어 철학을 접했다. 18세에 아테네로 넘어가 2년간 군복무를 했고, 학교 교사로 잠시 활동하다가 데모크리토스의 책을 만나고 본격적으로 철학을 하기 시작했다.

32세에는 레스보스 섬의 뮈틸레네와 람사코스에서 학파를 세우고 5년을 지냈다. 그후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서 철학공동체인 '정원'을 세우고 35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정원'의 구성원에는 여자와 노예는 물론 심지어 창녀도 속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에피쿠로스를 비웃었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를 비웃던 사람들도 에피쿠로스와 제자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는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제자와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72세까지 살다가 요로결석과 이질로 14일간 앓다가 죽었다. 그때 그는 따뜻한 물로 데워진 청동 욕조에 들어가 물을 섞지 않은 포도주를 가져오게 해 한 번에 들이켰다고 한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기억하라고 지시하고서 숨을 거두었다

아테네 사람들은 동상을 세워 그의 명예를 기렸다. 그의 친구들은 하나의 도시국가를 넘어설 정도로 그 수가 많았으며, 그의 모든 제자들은 그의 학문적인 매력에 단단히 붙들렸다. 평소에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인간애가 있어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친구들이 도처에서 그에게로 와서 그의 정원에서 그와 함께 살았던 덕분인지, 다른 학파들은 계보가 거의 끊어졌지만 그의 학파는 계보가 언제나 계속 이어지면서 무수히 많은 제자들을 차례로 배출하였다

당대에 에피쿠로스가 남긴 저서는 300편이 넘으나 지금까지 전해내려오는 것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지은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에 나오는 핵심 교설과 3편의 편지뿐이다. 그 밖에는 파편들이거나 그가 살았던 때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시기에 에피쿠로스를 비판한 학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특히, 로마시대의 철학자 키케로의 『신들의 본성에 관하여』에서 에피쿠로스 학파를 비판하면서 언급한 부분이 제일 많이 언급된다. 파편 중에는 18세기 베수비오 산 근처의 헤르쿨라네움에서 발굴된 『자연에 관하여』의 파피루스 일부 단편들이 전해진다

에피쿠로스의 사상은 데모크리토스를 계승하여 이를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인식론에서의 감각과 자연학에서의 원자론적 관점이 유사하며, 윤리학적 면에 있어서도 데모크리토스의 '쾌활함'과 에피쿠로스의 '쾌락'이 정적으로 절제된 쾌락(쾌활함)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에피쿠로스 학파(Epicureanism)

에피쿠로스 학파(Epicureanism)를 창시한 것은 신(神)과 같이 추앙을 받던 에피쿠로스이다. 다수의 제자가 쾌락주의를 계승하여 그리스어로 논문을 쓴 필로데모스, 메트로도로스가 유명하다. 그러나 에피쿠로스설을 라틴어로 남김없이 철학시(哲學詩)로 정리해 낸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는 더욱 유명하다. 
메트로도로스는 람프사코스의 사람으로 열렬한 에피쿠로스 동조자였다. 그를 안 후 그의 곁을 떠난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스승보다 7년 앞서 53세로 타계하였다. 그는 에피쿠로스의 모사(模寫)라고까지 불리었던 선량한 사람으로, 곤란에 부딪혀 또는 죽음에 직면해서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 학파의 사람들은 철학을 행복 추구의 수단으로 생각하였다. 행복이란 일종의 정신적 쾌락으로, 그것을 구하며 그것을 얻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단순히 그때그때의 일시 쾌락으로 만족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언제 어떤 때에도 마음이 '어지럽혀지지 않은 상태'를 쾌(快)로 보았다. 공(公)의 생활을 단념하라, 숨어서 조용히 살라고 권하고 있다. 국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를 지킬 필요에서 계약을 맺은 단체에 불과하다. 
이 사상은 사회 계약설 (국가 계약설)의 선구가 되었다 할 수 있다.

 

쾌락주의(영어: Hedonism, 快樂主義)
쾌락주의(영어: Hedonism, 快樂主義)는 쾌락이 인생의 목적이며 최고의 선이라 하여,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것을 도덕원리(道德原理)로 삼는 윤리설이다.

쾌락을 육체적인 것으로 보는가, 정신적인 것으로 보는가, 또는 자기만의 쾌락으로 하는가, 많은 사람의 쾌락으로 하는가 등에 따라서 여러 가지 논의가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쾌락주의라고 할 경우, 상식으로서는 감각적·육체적인 쾌락만을 목표로 하는 견해를 말하는 듯하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이름에 유래하여 쾌락주의를 에피큐리어니즘, 그리고 쾌락주의자를 에피큐리언이라고도 한다.


심리학적 쾌락주의(Psychological hedonism), 혹은 동기적 쾌락주의(motivational hedonism)는 무엇이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는지에 관한 실험적 이론이다. 이에 의하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쾌락(pleasure)을 증대하고 고통(pain)을 피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항상 에고이즘(egoism)과 함께 이해된다. 즉 사람은 오로지 자기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행동은 쾌락을 야기하는 것에 대한 신념에 의존한다. 잘못된 신념은 우리를 오도하고 우리 행동은 쾌락을 일으키지 못하지만, 심리학적 쾌락주의에 의하면 실패한 행동조차 쾌락을 고려한 것이 동기를 부여한 것이라고 본다. 쾌락주의의 모순(paradox of hedonism)은 쾌락 추구 행동은 따르는 다른 동기로주터 초래하는 것보다 실질적인 쾌락을 불러오는 것이 더 적다는 점에서 자멸적이라는 가설에 근거한다. 

심리학적 쾌락주의는 인간 행동의 총체를 설명하는 직접적인 이론을 제공한다. 쾌락 추구 행동은 흔한 현상이며 때때로 인간 행동을 지배하기에, 심리학적 쾌락주의는 직관적 개연성(intuitive plausibility)을 갖는다. 그러나 모든 행동을 심리학적 쾌락주의로 해석하는 일반화는 상당한 논쟁을 불러온다. 비판으로는 쾌락에 관한 개연적인 설명이 없는 행동을 반례로 제시한다. 예를 들어, 쾌락 이외의 다른 것들에 대한 이기적 동기(egoistic motive) (건강, 자기계발, 사후 명성)와 이타적 동기(altruistic motive)(자식들의 행복 기원, 큰 명분을 위한 인생의 희생)의 겅우도 있다. 심리학적 쾌락주의는 이러한 행동들을 쾌락 추구 행동으로 재해석한다. 예를 들어 자식이 행복한 것을 보거나 죽음이 의미있을 것을 안다는 것이 목전의 쾌락을 희생하는 사람들에게는 쾌락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상정한다.


또한 비판으로는 자기반성(introspection)을 통하여, 쾌락 추구는 일부 다른 사람들의 동기력(motivating force)의 한 유형일 뿐, 쾌락/고통이라는 차원에서 모든 경우를 재해석하는 것은 이와 모순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도 한다. 또한 비판으로는 심리학적 쾌락주의의 기본적 주장인 무엇이 사람에게 동기를 부여하는가는 철학이 아닌 심리학 영역이란 것이며, 따라서 이를 입증하거나 반대할 실험적 증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당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불만을 품고 있는가? 그렇다면 과연 세상엔 신의 섭리가 있는가, 아니면 원자만 있어서 모든 사물이 우연히 결합되는 것인가라는 명제를 상기해보라. 만약 현명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단지 원자들의 무질서한 결합에 불과할 뿐이다. 만약 현명한 신의 지배하에 이 세상이 움직인다면 불만을 품어 스스로 괴롭힐 필요가 어디 있는가? 이 세계가 조화를 이룬 가운데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수많은 이론을 생각하라. 그러면 마침내 평안한 마음을 지니게 될 것이다." 

 

마커스 아렐리우스 Marcus Aurelius 스토아 학파

 

 

 

"젊었을 때 누구든지 철학공부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늙었다고 해서 학문에 싫증을 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자신의 영혼의 건강을 찾는데 빠르고 늦는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  에피쿠로스 학파

 

 "Death does not concern us, because as long as we exist, death is not here. And when it does come, we no longer exist. 죽음은 우리와 별 상관이 없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이 왔을 때는 우리는 이미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  에피쿠로스 학파

 

방황하는 나그네들이여, 여기야말로 당신이 거처할 진정 좋은 곳이요. 여기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선(善) 즐거움이 있습니다. (Stranger, here you will do well to tarry; here our highest good is pleasure.

 

세네카 에피쿠로스 학파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흔히 ‘쾌락주의 철학’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데, 그때의 쾌락주의는 ‘오늘을 즐겨라’(카르페 디엠) 식의 ‘안달하는 쾌락주의’와는 종류가 전혀 다르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에피쿠로스가 쾌락이야말로 최고선이라고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쾌락은 욕망의 절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고통의 부재’에 가깝다. 에피쿠로스는 그런 쾌락을 두고 ‘아타락시아’(평정심)라고 했고, 아타락시아를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아테네 교외의 정원에 세운 학교(‘에피쿠로스의 정원’)에서 가르친 것은 아타락시아에 이르는 길이었다. 철학이란 “추론과 토론을 통해 행복한 삶을 얻어내는 활동”이었다. 에피쿠로스는 유물론적 세계관이 신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없이, 다시 말해 죽음 이후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삶을 지혜롭게 통찰해 행복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고 믿었다. 유물론이 쾌락의 원리, 행복의 원리가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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