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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도그마 : 약자(Underdog)+도그마(dogma)

Jobs9 2020. 10. 1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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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차이를 근거로 선악을 판단하려는 오류로, 맹목적으로 약자는 선(善)하고, 강자는 악(惡)하다[1]고 인식하는 현상이다. 사회과학에서 약자를 뜻하는 언더독(underdog)과 맹목적인 견해, 독단을 뜻하는 도그마(dogma)의 합성어. 두 단어 모두 dog가 들어간다.[2] 언더독의 도그마(Underdog's dogma)로 풀어 쓰이기도 한다.

 

러시아의 어느 옛날 이야기에는 요술 램프를 우연히 발견한 농부가 등장한다.  농부가 램프를 문지르자 요정이 나타나 소원을 말하라고 한다.  농부가 말했다.

 "이웃집에 젖소 한 마리가 생겼는데 가족이 다 먹고도 남을 만큼 우유를 얻어 큰 부자가 됐어."

​그러자 요정이 말했다.

"그럼 이웃집처럼 젖소를 한 마리 구해 드릴까요? 아니면 두 마리라도?"

​농부가 대답했다. 

​"아니, 이웃집 소를 죽여줘."

 ​이 이야기는 시기 혹은 질투의 개념을 말해준다. 젖소가 죽어 옆집 사림이 우유를 얻지 못하길 바라거나 더 나아가 옆집 사림이 죽기를 바라는 것은 시기심이나 질투심이다. 이에 반해 젖소를 갖지 못한 농부가 "단지 젖소가 없다는 이유로" 당연히 도덕적 우위에 있게 되고, 젖소를 가진 농부는 "단지 젖소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언더도그마이다.

- 마이클 프렐,『언더도그마』 20쪽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남이 잘 되는 것'에 배 아파하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 속담은 이러한 인간의 속성을 명확히 비유한다. 독일어 Schadenfreude(샤덴프로이데 : 남의 불행에서 얻는 행복) 나 영어 속담 Turning green with envy(시기심으로 얼굴이 새파래지다) 등과 같은 말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간은 본능적으로 남의 행복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설령 겉으로는 기뻐하는 척 웃으며, 축하의 의미를 가득 담은 꽃다발을 건넬지언정 말이다. 러시아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온 한 옛날이야기 역시 이를 해학적으로 풍자한다. 어느 날 평범했던 40대 농부가 길을 가다 우연히 마술램프를 발견한다. 그가 램프를 문지르자 펑! 하고 나타난 요정이 그에게 소원을 물었고, 농부는 "이웃집에 젖소가 한 마리 생겼는데, 가족이 다 먹고도 남을 만큼 우유를 얻어 결국 부자가 됐다."라고 말한다. 요정은 "그럼 이웃집처럼 젖소를 한 마리 구해 드릴까요? 아니면 두마리 라도?" 라고 물었고, 이에 농부는 대답한다. "아니, 그냥 이웃집 젖소를 죽여줬으면 좋겠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이다.

남의 성공을 질투하지 않고 진심으로 기뻐해 주기란 사실상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약자에게 '선()'의 이름을, 강자에게 '악()' 의 이름을 씌우는 일명 언더도그마(Underdogma : '약자는 착하고 고결하며, 강자는 나쁘고 비난받아야 한다'는 맹목적 신념) 현상 역시 이러한 인간의 심리에 근본적인 뿌리를 두고 있다. 생각해 보자. 관객들이 감동을 느끼는 흔한 영화의 기본적인 시나리오는 선하고 약한 주인공이 강한 악당을 물리치는 것이다. 영화 '타이타닉'만 봐도, 3등석에 탄 가난한 청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여주인공의 사랑을 받고 끝내 구명보트에 타지 못해 죽음을 맞이하는 반면, 1등석에 탄 부유한 권력자들은 구명보트를 모두 차지해 착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물에 빠져 죽게 하는 것으로 나온다. 뿐만이 아니다. 신데렐라, 콩쥐팥쥐, 해와 달님 같은 유명한 동화들의 공통점 역시 늘 강자가 한 모습으로 나온다는 것이며,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나는 현재 행복하다'는 말 대신 '뜨기 전 불행했던 이야기'를 들고 나와 대중들에게 그들의 인간성을 어필한다. 이에 대해 미국 사회 내 언더도그마 현상에 대해 분석한 작가 마이클 프렐(Michael Prell)은 자신의 책 <Underdogma> 속에서 이러한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대표적 인물로 방송인 오프라 원프리(Oprah Winfrey)를 꼽기도 했다. 강자(Overdog) 보다 약자(Underdog)가 이미지 관리에 있어 훨씬 수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언더도그마 현상에 근거한 여러 가지 사례들도 예로 들 수 있다. 2012년 한 임산부가 유명 식당 종업원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글을 올리자 순식간에 모든 언론과 네티즌들이 해당 가게와 종업원을 비난했고 "그 식당은 망해야 한다"며 캠페인까지 벌어졌던 '채선당 사건' 같은 경우, CCTV 확인 결과 오히려 임산부가 종업의 머리채를 잡고 발로 차며 진상 짓을 부렸던 것으로 드러나 많은 국민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또 2014년에는 미국의 한 KFC 가게에서 개에 물린 어린 여자아이의 흉터가 흉측하다는 이유만으로 아이와 할머니에게 매장에서 나가 달라고 부탁했다는 글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여론이 이를 비난하며 KFC 불매운동 및 아이와 할머니를 위한 모금 활동을 벌였고, KFC 측에서는 공식 사과와 함께 그들에게 3000달러를 배상해 줬던 사건도 있었다. 물론, 외부 조사 결과 그 아이와 할머니는 당일날 KFC에 방문한 적도 없고 주문한 기록도 전혀 없었다는 것. 정의 실현을 위해 KFC를 향해 무섭도록 달려들던 네티즌들도 슬금슬금 모금 사이트를 폐쇄했고 불매운동 역시 그렇게 중단 되었다. 이처럼, 사람들이 어떠한 사건에 대해 사실 여부나 정확한 증거를 확인하려는 노력은 들이지도 않고 우선은 약자로 인지되는 쪽에 감정을 이입해 무조건적으로 강자를 의심하고 비난하고부터 보는 경향 때문에 또 다른 누군가가 중대한 피해를 본 사례가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슈퍼스타K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한동안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도, 얼핏 다르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상 위와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PD와 작가는 참가자의 불행했던 과거, 가난한 생활, 가슴 아픈 가정사 또는 신체적 결함, 즉 그의 '약자로서의 면모'를 끄집어 내어 방송을 통해 보여주고, 시청자들은 그런 아마추어가 메이저 음반사와 계약해 성공하는 자신을 꿈꾸며 열창하는 모습에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하지만 정작 그가 피나는 노력 끝에 우승하여 내게 된 노래들은 음원 사이트 순위의 상위권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처음부터 어렵고 가난한 모습이 아닌 오로지 실력과 재능으로 인기를 끌었던 몇몇 참가자들을 제외하고서는 말이다. 이러한 현상이 대부분의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들에게 나타나는 이유는, 소위 말해 그가 더 이상 사회적으로 '언더독'이 아닌 성공한 '오버독'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예전만큼 그를 동정하고 그의 음반을 사고 들어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언더도그마 현상, 다시 말해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보통 약자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강자에게는 반감을 가지곤 한다는 심리학적 분석이 오로지 인간의 선척적인 본성에만 근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에 내포된 '강자 = 악, 약자 = 선'이라는 상투적 구도뿐만 아니라, 자라 오면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 속에 축적된 무의식이 이런 맹목적인 선악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약소국들을 괴롭힌 강대국들의 역사, 노예를 억압한 백인들의 야만성, 가난한 자들의 인권을 유린한 부자들의 횡포, 중소기업을 압박한 대기업들에 대한 뉴스와 기사들이 '힘은 곧 악'이라는 편견을 심화 시켰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화 '베테랑'을 예시로 들면 이해가 빠를 듯하다. 본인의 재력과 권력을 이용해 어마어마한 비리와 횡포를 저지르는 재벌 3세를 물리치기 위해 평범한 서민 형사가 도전장을 내밀고 결국엔 통쾌하게 그를 철창으로 집어넣는다는 내용이다. 평소 정치인이나 큰 재산을 지닌 사람들에게 딱히 반감을 느껴본 적이 없던 필자도 영화를 본 뒤 한동안 그러한 '권력가'들에 대해 분노하고 경계심을 가졌었는데, 대다수의 다른 관객들은 어떠했겠는가? 영화 속에 나온 일들이 실화인지 여부를 떠나서, '배테랑'이 돈 많고 잘난 사람들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방적인 적대감을 증대 시켰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에 따라 애꿎은 정치인들만 누가 봐도 허름하고 값싼 점퍼를 입고 해맑은 척 시민들과 사진을 찍어대기에 더욱 바빠졌을 것이고 말이다. 한국처럼 "정치인은 주인이 되기 위해 하인의 자세를 취한다."는 말이 이토록 잘 들어맞는 나라도 흔치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 사람들에게서 언더독을 더욱 선호하고 오버독, 즉 권력자에게 반발하는 경향이 상당히 크게 나타나는 이유가 뭘까? 페이스북만 몇 분 둘러봐도, 돈이나 권력과 연결된 특정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일리 있고 정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비판하는 사람들보다는 일단 "우리는 불쌍하고 너희는 다 벌받아야 해!"라고 외치고 보는 댓글들을 수두룩하게 발견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공감'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스스로 약자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다른 약자와 자연스럽게 일체감을 형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일부는 감정이입을 넘어 책임감마저 느끼기도 한다. 언더도그마 현상에 대한 하버드대의 한 연구팀의 말을 인용하자면 "국가 아이텐티티가 언더독과 맞아떨어지면 그 나라 국민에게서 언더도그마가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이것이 전형적인 언더독 성향을 지닌 한국인이 실제로 언더독들에 대한 높은 선호도를 가질 수 앞에 없는 이유이다. 더구나 한국은 일제강점기, 6.25 전쟁, IMF 외환위기 등 치열한 현대사를 거쳐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언더독 성공 스토리'의 표본이 아니던가? 그리고 실제로 앞서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얘기에서도 말했듯이, 한국 사회는 여전히 누군가가 '약점과 어려움을 열정과 노력으로 극복하는' 사례에 플래시라이트를 터뜨리기를 즐긴다. 다만 사람들은 단지 '언더독' 상태인 그 자체의 사람을 선호할 뿐, 그가 '언더독 신화'를 이루는 순간부터 그를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인간은 흔히 '이성적 동물'에 비유된다. 또 한편으로는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굳이 데카르트나 칸트 같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간이 이성적으로 생각할 줄 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인간이라고 해서 모든 현상을 이성적으로만 판단하는 것 역시 아니다. 편견이나 선입견은 우리의 이성을 흐리게 하는 '사고의 오물들'이라는 말도 있다. 앞서 필자가 언급했던 작가 마이클 프렐은 "인간에게 보편적 특성이 있다면 그것은 성공한 사람에 대한 악의와 그를 정상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열망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러한 본성을 이성과 합리성으로 감싸고 이겨 내는 방법을 알기에 인간이란 생명체가 고귀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아닐까? 부패한 권력을 타도하려 하는 세력은 어느 사회에서든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존재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때때로 그것이 진정한 정의 실현을 향한 제대로 된 외침인지, 아니면 단순히 '언더도그마 현상'에서 비롯된 맹목적 반감일 뿐인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겠다. 나부터 알고 상대방을 알아야 승리를 거둔다는 유명한 말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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