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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s 9 2025. 5. 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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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고기

 

양(羊)의 고기

 

영어로 수컷은 'ram', 암컷은 'ewe'로 칭하며, 식용이 되는 양은 'lamb' 또는 'mutton'이라 표기한다. 이는 양의 나이에 따른 구분으로, 일반적으로 lamb는 1년 미만인 어린 양, mutton은 1년 6개월 정도의 나이든 양을 뜻한다. 생후 6~10주 된 양고기는 보통 베이비 램(baby lamb), 생후 5~6개월짜리는 스프링램(spring lamb)이라고 한다. 다만 양의 특성상 육용과 양모, 젖 등의 부산물을 얻는 용도가 갈리는 이 어중간한 시기에 도축되는 일이 별로 없다. 한글 및 한자로는 구분 없이 그냥 '양고기', '양육(羊肉)'이라고 부른다.

 

 

특징

 

성체 양(Mutton)은 자라면서 지방질에 카프릴산, 펠라르곤산이 축적되어 특유의 진한 누린내를 풍긴다. 이 냄새는 닭기름 비린내나 돼지 군내와 다른 계열의 냄새로서, 굳이 묘사하자면 남아시아인 특유의 카레향 체취가 동물성 기름에 녹아들어 풍기는 냄새라고 보면 대강 비슷하다.

 

이 누린내는 성숙한 양고기의 지방질과 피에서 나는 향이며, 이 향을 약화시키기 위해 고기의 지방질과 피를 최대한 제거하거나 후추, 민트, 로즈마리, 고수, 파슬리, 고추 등의 향신료를 많이 사용한다. 이 독특한 냄새 때문에 램은 잘 먹어도 머튼은 냄새가 암내처럼 느껴진다고 아예 못 먹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양고기에 익숙지 않고 체취도 적은 편인 동아시아인과 동남아시아인에게는 제대로 처리를 하지 않은 양고기는 냄새를 잡지 않고 삶은 돼지고기만큼이나 고역이 될 확률이 높다.

 

설사 제대로 처리를 했다고 하더라도 양고기 냄새를 가리기 위해 쓰이는 다양한 향신료에 익숙하지 않거나 특정 향신료에 거부감이 있으면 오히려 이 양고기의 냄새를 잡기 위해 넣은 향신료 때문에 양고기를 먹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양고기에 쓰이는 향신료는 고수만큼이나 이국적이고 이질적인 것이 많기에 그렇다.

 

특히 인도식 커리 등에 넣어 먹으면 강한 향신료와 고기의 풍미가 조화를 이루고 쿠민과 카다멈 등의 향신료가 냄새를 가려 주기에, 향신료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라면 머튼에 익숙하지 않아도 상대적으로 쉽게 즐길 수 있지만, 그 반대 급부로 인도식 커리에 들어가는 향신료 때문에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유목민들처럼 특히 늙은 양고기에 익숙한 이들은 양고기의 노린내를 오히려 구수하게 느낀다고 한다. 버터의 고소한 맛과 함께 달짝지근한 늙은 양고기 특유의 풍미가 더해지기에, 머튼에 맛을 제대로 들인 사람이 램을 먹으면 맛과 향에서 뭔가 2%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좋아하는 사람은 이 누린내를 양고기를 먹는 이유 그 자체로 꼽기도 한다.

 

역으로 양고기 문화권 사람들은 돼지고기의 육향이나 돼지고기에 첨가하는 향신료를 거북해하는 경우들이 제법 있다. 특히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의 돼지고기 요리는 신선한 돼지고기의 육향을 역하지 않게 살리고 현지의 향신료나 소스를 곁들여먹는 방향으로 발전했거나 혹은 육향을 가리기 위해 강렬한 매운맛이 나게 하거나3 현지에서 나는 온갖 약재와 향신료를 넣어 만드는 방향으로4 발전한데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는 돼지고기 요리에 MSG를 첨가하는 경우가 많아 MSG와 동아시아/동남아시이의 향신료에 익숙지 않은 양고기 문화권 사람들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돼지고기 요리의 풍미를 낯설어하는 경우가 많다.

 

양고기는 고기 자체가 쇠고기나 돼지고기에 비하면 질기기에 별도의 레스팅 과정 없이 조리 직후 뜨거운 상태에서 바로 먹어야 부드럽다고 하며, 실제로 많은 양고기 요리가 조리직후 따뜻한 상태에서 먹도록 돼있다. 노린내를 배제하면, 맛이나 식감 자체는 돼지고기와 쇠고기 중에서는 쇠고기와 비슷한 편이다. 풍미를 제외하면 램은 어린 송아지 고기와, 머튼은 일반 육우 고기와 식감과 맛이 비슷하다. 색은 소고기보다 엷으나 돼지고기보다 진한 선홍색이다. 육즙이 풍부하고 기름이 많은 편이여서 향신료와 조미료를 잘 쳐서 갓 구운 양고기5는 매우 맛있다.

 

새끼 양(lamb)은 노린내가 별로 없고 연하다. 대신 맛도 연해서 성체 양에 비해 고기맛에 특징이 없다. 값은 성체 양보다 비싸지만 세계적으로 머튼보다는 램이 잘 팔린다. 어린 양 통구이인 메슈이(méchoui)는 양 고기에 거부감 있는 이들도 웬만하면 즐길 수 있다. 미국의 유명한 요리사 앤서니 보데인6이 살아있을 때, 모로코에 여행 가서 100달러를 주고 메슈이를 사 먹었는데, 어린 양을 그 앞에 데려와 목을 번개같이 베어 도축하여 털 밀고 요리하는 과정을 다 봤다고 한다. 보뎅 본인이야 유명 주방장이고 '이런 거 못 보면 도저히 좋은 재료 못 구한다'는 철칙으로 미국에서도 도축장에서 닭이나 돼지를 도축하는 광경을 여러 번 봐서 그리 역겹진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도축하여 통으로 굽고 인공첨가제 없이 몇몇 자연재료만 써서 구운 메슈이를 먹어본 뒤, 미국에서라면 몇 배는 더 줬어야 할 음식이었고 돈이 아깝지 않은 맛이었다고 격찬했다.7 다만 술이 없어 아쉬웠다고. 물론 모로코는 이슬람권 국가이긴 해도 자국산 맥주 브랜드인 카사블랑카와 스페샬레 플래그 등이 큼지막하게 자리잡았고 맥주공장도 있는 나라이니 술이야 얼마든지 사 마실 수 있지만, 관광지에 주로 팔기에 이 양고기를 먹던 곳에서 거리가 있었고 관광객도 없는 현지인들 틈에서 먹던 것이라 술은 포기하고 그들이 마시던 독한 박하차를 대신 술처럼 여기며 즐겼다고 한다. (앤서니 보데인 - 쿡스 투어 중 발췌)

 

유목민들은 가족들끼리 먹을 때에는 죽을 때가 가까워서 노린내가 극에 달한 늙은 양을 잡아 먹었지만, 손님을 대접해야 할 때는 어린 양을 대접했는데, 당연하게도 대접하는 양이 어리면 어릴수록 그 손님을 더 극진히 대접하는 것으로 여겼다. 구약 성경에서도 전형적인 유목민이었던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늙은 양이 아닌 어린 양을 잡아서 고기를 대접하는 묘사가 종종 나온다.

 

또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인과 아랍인을 비롯한 셈족 계통 민족들은 갓 태어난 새끼 양과 염소를 신에게 바칠 최고의 제물로 여겼다.

 

오랜 시간 보편적으로 사랑받아온 고기이기도 하다. 식품에 대한 금기 자체가 거의 없는 기독교와 유교, 돼지고기를 금하는 등 코셔와 할랄 같은 엄격한 식품 금기가 있는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물론, 소고기를 금기시하고 상위 카스트를 중심으로 돼지고기 금기도 일부 존재하는 힌두교에서도 선호하는 고기가 바로 양고기와 닭고기다.

 

불교에서는 중국으로 전파되기 전까지 초기 불교나 상좌부 불교는 신도들은 물론이고 승려들에게도, 기본적으로 채식을 권하기는 하나, 육식에 대한 금기 자체는 '살아있는 생물들에 존중심을 가지고, 불필요한 살생을 하지 말라.'는 것을 제외하면 없었다.8 대승 불교에서도 티베트 불교 등 양젖과 양고기를 비롯한 양의 부산물들이 생존에 필수적이었던 티벳, 몽골 등 지역에 기반을 둔 불교 교파들에서는 승려들이 양고기를 시주로 받으면 섭취하게 할 정도이다.

 

삶아서 수육으로 내놓으면 개고기와도 식감과 풍미가 유사하다. 양두구육이 여기서 나온 고사이다.

 

지방을 태우는 L-카르니틴이 지구상 동식물 재료들 중 가장 많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다이어트식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당연히 다른 고기와 마찬가지로 너무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

 

 

 

각국의 양고기

 

구세계에서 양고기가 주요하게 생산되어 소비되는 국가들의 공통점은 지리적 요인 때문에 양을 많이 키웠다는 점이다. 강수량의 차이나 치안 문제가 핵심이었다.

 

농경 문명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면 더욱 우수한 생산성과 범용성을 지닌 목화 같은 면직물이나 삼(식물), 아마 등 마직물을 생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양의 가치가 떨어져서 양의 사육 비율이 낮아지는 반면, 외적의 침략이나 강수량 문제 등으로 농경이 안정화되기 어려운 사회에서는 동물 가죽이나 털을 이용할 수밖에 없으니 상대적으로 양의 가치가 상승하여 양의 사육 비율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농경 문명이 빨리 자리를 잡은 곳에서는 양의 필요성이 낮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양고기의 섭취율도 떨어졌지만 반면 북아시아의 건조 지대나 침엽 수림 지대에서는 양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양고기의 섭취율도 증가하였다. 더해서 북중국 지역을 제외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경우 일찍부터 견직물이라는 변수가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환경적으로 면양이 잘 자라기 어려운 반면 누에와 누에를 먹일 뽕나무는 잘 자라기 때문에 해당 지역들에서는 일찌감치부터 양잠이 크게 발달했다. 그리고 견직물은 언제나 최고급 직물로 취급되어 상당한 가격에 거래되어 온 만큼 양잠이 생산하는 부가가치가 매우 컸다. 때문에 해당 지역들에서는 견직물과 양잠이 (양)모직물과 목양을 사실상 완벽히 대체했고 이로 인해 목양과 목양에 따르는 양고기 문화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

 

이는 현대로 이어져 농경 문화가 우세했던 지역에서는 양고기의 섭취량이 적은 반면 반농반목이 자리잡았던 지역에서는 양고기 섭취량이 많은 편이다. 농경 문화가 빨리 자리잡은 지역에서 중요하게 여긴 동물은 농업 생산량에 도움이 되면서 여러 부가물들을 제공해주는 소의 비중이 더 높았고 이 때문에 양 대신 소고기 및 돼지고기 섭취 문화가 더 널리 자리잡았다.12

 

양고기가 대중화된 지역들은 현재까지도 척박한 땅에 부족한 강수량이나 일조량 등으로 인하여 농사를 짓기 좋은 조건이 아니다. 이 때문에 양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웠고, 때문에 양고기 섭취 문화도 오랫동안 남아있었던 것이다. 한편 사막 지대가 많은 서아시아나 북아프리카 또한 양을 많이 키웠다.

 

중동이야 농경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지역이었으나 장기간의 농경으로 인한 토양의 염화로 건조 지역이 늘어났는데 건조 지역의 경우 양에게서 털과 가죽, 고기와 뼈 등 유용한 것들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막은 해가 진 후에는 몹시 춥다 보니 양털이 필수품이기도 했다. 더불어 농경 문화가 빨리 자리잡은 지역이라고 해서 양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겨울에는 마직물보다 양털이 더 방한 효과가 좋았고, 고기와 가죽 및 뼈 등의 부가물들은 덤으로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면직물이 온대 지방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근세 이후이다.

 

반대로 양을 먹지 않는 지역들은 고온다습한 기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인도 남부와 일본, 중국 남부 및 동남아시아 지역이 있다. 인도나 중국에서 양을 자주 키우고 먹는 지역들은 위도나 고도가 높아서 서늘한 기후를 가진 지역들이다. 대표적으로 각각 히말라야산맥 근처와 화북 지역이 있다.

 

반면 남인도, 남중국 등 고온다습하며 쌀농사로 대규모 인구를 부양하는 인구 밀집 지역에서는 양고기보다는 돼지, 오리, 물소 등을 키워 먹는 편이다. 즉 농경문화 중에서도 벼농사/목화 재배와 상극인 게 양고기 문화이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양고기보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수산물 쪽이 훨씬 발달해 있다. 홋카이도를 개척한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양을 사육하기 시작하였으나, 양고기를 제대로 먹기 시작한 건 20세기 중후반의 일이라 더더욱 역사가 짧으며 지금도 앞서 언급한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들에 비해 인지도와 인기가 현저히 떨어진다.

 

또한 남중국, 독일, 오키나와 등의 사례를 볼때 양고기 문화의 대척점에 있는 육류 문화는 돼지고기 문화가 있다. 돼지는 기본적으로 온난한 기후와 풍부한 물, 일정한 정착지와 돼지를 먹이기에 충분한 식량이 필요한데, 이는 양을 키우는 환경 조건과 정 반대의 조건들이다.

 

쉽게 말해, 돼지는 고온다습한 기후에 수자원이 풍부하며 대규모의 식량이 생산되어 많은 수의 정착민과 가축을 부양할 수 있는 지역의 주력 가축이며, 양은 건조한 기후에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물이 있으며 식량 생산에 한계가 있어 대규모 정착민과 가축을 부양하기는 힘든 지역의 주력가축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 때문에 돼지고기 문화 지역과 양고기 문화 지역은 겹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편으로 질병에 대한 저항력 또한 강한 영향력을 주기도 한다. 상술한 내용으로만 보면 건조한 지역에서 돼지를 못키우는 이유는 알 수 있지만 고온다습한 지역에서 양을 키우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 수 있는데 양의 원종인 산양부터 고온다습한 지역에서는 자연생식이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고온 다습한 지역에 사는 식물들이 생성하는 알칼로이드 독성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서 못먹는 풀이 많고, 무엇보다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낮다. 또한 면양은 긴 털 등으로 인해 생체적으로 더위와 습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동물이다.

 

반면 돼지는 고온다습한 지역에 적응한 생물이므로 각종 바이러스와 세균들의 번식최적지인 정글지역에서도 엄청나게 잘 견디며 살고 열대와 온대 지역의 온갖 식물들을 탈 없이 먹어치울 수 있다. 또한 돼지는 양에 비해 비교적 털이 짧고, 생체적인 더위 처리 능력은 떨어지지만 물이나 진흙을 이용한 목욕을 통해 더위와 기생충을 처리하는 노하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덥고 습한 기후에 양들보다 훨씬 더 적응하기가 쉽다.

 

돼지고기 문화는 서유럽 독일어권과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농경 문명 지역들과 그 영향을 받은 지역들에 퍼져있으며, 양고기 문화는 그리스 + 튀르키예,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유목민 문명 지역들과 그 영향을 받은 지역들에 퍼져있다. 이는 종교적 특성으로도 나타났다. 양고기 문화권 종교인 유대교와 이슬람교 그리고 북인도 지역의 힌두교가 돼지고기를 불결한 음식 취급을 하며 섭취를 금기시하는 반면, 이런 양고기 문화권 종교에 그 기원을 둔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메시지와 베드로 등의 선교로 돼지고기 섭취를 허용하도록 바뀌었다.

 

동아시아의 전통인 유교나 도교, 신토, 무속 등에서는 돼지고기를 신이나 조상 등 존귀한 대상에게 올리는 제물이자 특별한 날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먹는 특식으로 적극 활용해왔다.

 

다만 예외적인 국가가 있는데, 그것이 영국과 영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아일랜드이다. 영국과 비슷한 기후와 식생을 나타내는 프랑스 북부,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독일, 폴란드에서는 양고기가 중동계 이민자들의 요리 혹은 특별한 때에 먹는 특식으로 인식되는 반면, 영국에서는 일상적으로 접하는 고기 중 하나이다.

 

영국인들이 생활터전으로 삼은 브리튼 제도의 브리튼 섬과 아일랜드 섬은 제법 비옥한 땅에 넓은 평야가 존재하고, 강수량이 충분했으며, 일조량이 부족하고 평균 기온 자체는 높지 않지만 기후 변동 폭이 크지 않아 스코틀랜드 고지대 정도를 제외하면 겨울이나 밤에 혹한이나 폭설이 찾아오지는 않아 그렇게 크게 추위에 대비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잉글랜드와 웨일스를 중심으로 영국은 현재까지도 유럽에서 제일 가는 양고기 생산 및 소비국이 되었다.

 

영국은 자국의 산업적 특성과 로마 제국 시기부터 시작된 유럽의 경제적 분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영국의 기후나 환경이 정착 농가를 형성해 양을 대규모로 키우는 산업의 경지에 올리기 적합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목양 산업이 영국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그러한 영국인들이 이주한 호주, 뉴질랜드의 양고기, 양모 생산 능력과 소비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집약적 농경 문화가 정착해 양고기 섭취 문화가 적었던 한국에서는 체감이 잘 안 되지만, 전세계적으로 대중적인 고기 중 하나가 양고기이다. 지역별로 금기시되는 경우가 있는 다른 고기들과는 달리 닭고기와 함께 거의 모든 지역에서 허용되는 고기이다.

 

그나마 닭고기가 조류인 반면 양은 포유류이기 때문에 돼지고기나 소고기와 더 가깝다는 이점도 있는 편. 이런 탓에 국내에서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90년대 이후엔 오리고기도 추가)에 비해 상당히 비중이 적은 편이었다. 참여정부시절 시행한 고용허가제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유입되어 수도권을 중심으로 양꼬치 가게가 성행하면서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일부는 양(羊) 사육농가를 통해서 양고기가 공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양고기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대중적이지는 않다.

 

세계에서 닭 - 오리 - 거위 - 돼지 다음으로 많이 도축되는 식용 가축으로 2009년 미국에서 조사한 통계를 보면 전세계에서 10억 마리에 달하는 양이 도축되었다.

 

2010년대 초반 조사에서 1인당 양고기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에 수단이 이름을 올렸다. 2위는 카자흐스탄, 3위는 양이 많은 호주. 역시 양이 많은 뉴질랜드는 7위에 올랐다. 4위는 중국, 5위는 미국이다.

 

 

 

유목민족

 

농경 정착민이었던 한국인이 소와 돼지의 거의 모든 부위를 다 먹는 것처럼 지금도 유목민이나 그 영향을 받은 이슬람권에서는 양의 살코기, 내장은 못 먹는 부위가 거의 없다. 눈알까지 아이들 간식으로 즐겨먹고 뇌는 쪄서 타진 등의 방식으로 먹으며 뼈는 조각품이나 일상도구 등 여러 가지로 활용한다.

 

더욱이 양은 다른 가축에 비해서 비교적 더 적은 양의 목초로 더 많은 양의 고기와 젖을 생산한다. 비교하자면 말 한 마리를 기를 수 있는 목초지라면 양을 15~50마리 가까이 키울 수 있다.

 

다만 양이 만능 가축은 아닌 것이 소와 물소는 우리에 가두어놓고 곡물 사료를 주면서 사육이 가능하지만 양은 우리에 가두어놓고 사육하는 것이 아직 불가능하다. 물론 가축을 우리에 가두어놓고 키우는 것은 농경민족에 한한 것이고 이웃 부족들의 습격 및 목초지 고갈을 피해 이리저리 옮겨다녀야 하는 유목민족 입장에서는 소보다는 양이 더 적합했다.

 

중앙아시아, 중동지방의 아랍인, 페르시아 제민족, 튀르크 제민족이나 유럽인들은 누린내를 잡기 위해 다양한 향신료로 양념을 하지만 몽골인들은 그냥 삶거나 뜨거운 돌에 익혀서 그대로 소금에 찍어 먹는다. 게다가, 이들이 잡아먹는 양은 대다수가 늙은 양이기에 냄새가 더 지독하다.

 

이렇게 나이가 든 양을 유목민이나 아프리카 부족들이나 고기를 보통 삶아서 주는데 주의할 점은 다 익지 않은 것을 주는 경우가 있다. 안 그래도 누린내 나는 양고기를 덜 삶아서 입으로 물면 핏물이 배어나온다. 게다가 유목민도, 부족민도 손님을 대접하는 걸 최우선하는 사람들이라 큰 덩어리를 몇 개씩 집어주는데 거절할 수도 없고 난처하게 될 수 있다. 이럴 땐 대충 한두 덩어리 꿀꺽 삼키고 남은 것을 어린아이에게 주면 OK.

 

그냥 손님에서 인자하고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친절한 손님이 될 수 있다. 물론 전통에 따라 큰 실례가 될 수도 있으니 눈치껏. 사실, 양을 완전히 익히는 것보다는 반쯤 데치는 것이 더 맛이 난다고 한다. 스테이크를 미디엄 정도를 선호하는 것과 마찬가지. 특히 변변한 향신료가 없는 유목민족일수록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허영만도 몽골 취재여행을 가서 양고기로만 먹는 유목민들에게 얻어먹은 양고기가 고역이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그대로 삶은 양고기는 냄새가 장난이 아닌데, 그 양고기를 재료로 만든 만두(보즈)나 군만두(호쇼르)도 냄새가 나서 먹기 힘들었다고. 또한 양젖으로 만든 아이락(마유주)도 냄새에 기겁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울란바타르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김치찌개 먹으니 얼굴이 달라져서 몽골인 가이드가 웃었다고 한다. 그 냄새 이유는 피도 내장도 제거하지 않기 때문이다. 몽골에서는 동물의 피를 땅에 흘리는 것을 불결하게 여기므로, 도축할 때 최대한 피를 빼지 않고 급소를 찔러 죽이고 재빨리 가죽을 벗기고 툭툭 잘라 그대로 삶거나 모닥불 돌에 묻어 요리한다. 당연 피와 내장에서 배어나온 누린내가 작렬하는데, 손님이 오면 대접한답시고 초원 지대에서 귀한 소금을 듬뿍 쳐 주므로 한국 사람들은 누린내가 심한 데다 짜기까지 하니 정말 먹기가 힘들다고 한다. 이는 물이 귀해서 피를 제거하기도 힘들거니와 피냄새가 오래 풍기면 늑대나 다른 맹수가 냄새를 맡고 올 수도 있고 적들이 핏자국을 따라 추적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몽골이나 유목민들은 물을 아껴쓰기에 누린내가 가득한 양고기를 즐겨먹는다. 물론 대도시에 가면 양고기를 쓰지만 물로 피를 씻고 온갖 서양식, 한국식으로 요리하는 식당도 있기는 하다.

 

캐나다인 남편이랑 몽골로 여행을 간 만화가 윤린도 똑같이 겪어서 몽골에서 울란바타르에만 눌러 지내지 않는다면 양고기 누린내는 극복해야 한다고 만화로 그린 바 있다. 나중에 울란바타르에 들러서 일본인 내외 여행자랑 만났는데, 이들도 양고기 누린내에 질렸다고 울란바타르 한식과 일식 가게에 서로 가면서 넷 다 웃었다고.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의 여행기에서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가장 괴로웠던 음식으로 이 삶은 양고기를 꼽았다. 몽골에서 살아 있는 양을 눈 앞에서 죽이고 그대로 데친 후 뼈째 붙은 고기 한 덩이를 받았는데 그 노린내가 엄청난 수준이었다고 한다. 물론 사람마다 다른지라 하루키랑 같이 튀르키예 및 몽골 여행을 간 일본인 친구는 이런 양고기를 맛있게 잘 먹어서 하루키가 나중에 물고기를 구하기 어려운 내륙지방에서 음식 탓에 고생할 때 그 친구는 전혀 고생을 안해 부러웠다고 한다.

 

무엇보다 몽골인들에게 양고기는 국민들이 모두 즐기는 대표적인 고기이다. 높은 지대에 산림이 없고 평야가 넓어 양을 키우기 최적인 환경을 갖춘 몽골은 양의 사육두수 또한 엄청나다. 대다수의 몽골요리에는 양고기가 들어간다. 칭기즈 칸만 해도 생전에 양 머리 요리를 즐겼다고 하며, 양고기로 만든 전통 레시피가 아직도 내려오고 있다. 뿔을 잘라내고 털을 대충 깎은 다음 뜨겁게 달군 석쇠로 털을 그을려 제거하고, 솥에 넣어 물에 오래 삶다가 뿌리채소를 넣고 얇게 편 밀가루 반죽으로 머리를 덮는다. 이후 머리가 다 익으면 꺼내 뼈를 제외한 모든 부위를 도려 먹는다. 다만 양 사육두수가 엄청남에도 몽골은 양고기 수출량이 그리 많지 않아서 호주나 뉴질랜드처럼 양고기 수출대국이 되지는 못했다. 몽골 내에서 원자재 의존형 경제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이슬람권과 남아시아권 지역을 대상으로 양고기 수출을 시작하는 중이다.

 

중국에서는 노점을 가면 양좆만 꼬치로 팔기도 한다. 아랍이나 이슬람권도 양좆을 별미로 즐겼다. 미국인 주방장 앤서니 보뎅도 모로코에서 메쉬위를 먹을 당시, 도축하여 굽던 사람이 먼저 주던게 바로 양 음경과 고환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을 놀리는 게 아닌가 했지만 가이드가 말하길, 양 음경은 상징적 의미도 있거니와 맛도 좋기에 연장자에게 먼저 대접하는데 오늘 양을 산게 당신이니 당신에게 특별히 준 것이라고. 고환 하나는 도축하던 사람이 맛있게 먹기에 보뎅은 먹어봤는데 의외로 맛있다고 회고했다. 생존왕도 먹기도 했고, 아이슬란드를 비롯해 유럽 각지에서도 양 음경, 고환은 별미로 취급한다.

 

 

 

이슬람권

 

인구 수가 13억 이상이 넘는 이슬람권에서도 양고기를 즐겨 먹는다. 인구보다 양이 더 많다는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주로 수입한다. 사실 이 나라들도 이슬람권이 주 양고기 수출국이다.

 

그래서 뉴질랜드와 호주에서는 할랄 푸드를 위하여 무슬림 도축업자 이민들도 받아줄 정도다. 때문에 정치 경제문제로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허구헌날 호주 백인우월주의 극우 정당이 아랍계 이민자 금지주장을 하면 목축업계가 그러다가 호주 목축업계 망한다고 난리를 피운다.

 

호주 출신 주방장이 오만에 가서 여러 현지 음식도 먹고 현지를 둘러보며 쓴 책에서 아랍에서 양고기 수요가 엄청나다보니 아랍권이 호주 양고기의 수입을 금지한다면 호주 목축업자들이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물론 이슬람권에서도 양을 길러 먹기도 하지만 워낙 수요는 많고 공급은 달리니 수입을 할 수밖에 없다고. 양고기를 많이 먹어서인지 이슬람권 나라를 대표하는 냄새는 양고기 냄새라는 말까지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의 경우 인도계 무슬림들이 주로 먹는다.

 

 

 

남아시아

 

힌두교인, 무슬림, 시크교도 가리지 않고 다 잘 먹는 고기이다. 힌두교 상층 카스트(브라흐민, 크샤트리야)들의 경우 종교적인 이유로 육식을 꺼리는 편이기는 하지만 라자스탄과 카슈미르 일대의 브라흐민들은 육류 중에서 양고기만 먹었었다. 인도의 유명 커리 메뉴인 로건 조시는 카슈미르에서 기원한 요리인데, 카슈미리 펀디트(카슈미르의 힌두교 브라흐민 귀족 계급)들만의 로건 조시 레시피가 따로 있을 정도이다. 국가별로 보면 히말라야 산맥 및 힌두쿠시 산맥과 맞닿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네팔, 부탄 및 인도의 라자스탄 일대는 양을 키우기 적합한 환경 덕분에 자국에서 생산된 양고기를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인도의 나머지 지역과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몰디브에서는 고온다습한 기후 때문에 양을 키우기 힘들어서 양고기를 찾는 것도 힘들고 대체재로 염소고기를 먹지만, 염소고기는 양고기에 비하면 질기고 조리가 훨씬 더 까다로운 편이라서 결국 양고기가 더 귀한 대접을 받는다.25 이 지역들은 바다와 맞닿은 지형(특히 스리랑카와 몰디브는 섬나라다.)이라 북인도와 달리 전통적으로 양고기 섭취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 그나마, 해상교역이 활발한 덕에 소비되는 양고기 대다수가 호주, 뉴질랜드 등 타국에서 수입한 양고기다. 그리고 방글라데시의 경우 랑푸르 주로 대표되는 북부 지역은 방글라데시의 다른 지역에 비해 양고기의 생산과 소비가 많은 편이다.

 

물론, 북부가 남부에 비해 건조지대가 많아서 양고기 섭취가 비교적 높을 뿐 남아시아는 파키스탄을 제외하면 전통적으로 양보다는 염소를 더 대중적으로 소비하는 지역이다. 코끼리 못지 않게 인도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만큼 친숙한 동물이고 남아시아 지역에서 소비되는 유제품들도 거의 다 염소젖으로 만드는 것들이다. 소위 머튼 커리라 불리는 것들도 일반적으로는 늙은 양고기를 뜻하지만 남아시아에서는 염소고기를 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동아시아

 

동아시아의 양고기 관련 문화를 볼 때에는 오늘날의 양인 면양이 서아시아나 유럽에서 전파된 외래종이며, 면양의 전파 이후로도 적어도 근대 초까지는 한자와 한문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의 문자 언어 체계에서 양과 염소가 엄밀히 구분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오늘날 문헌 자료와 고고학적 발굴 결과 등을 교차검증한 결과 근대까지 동아시아 문화권 각지에서 염소 또한 羊으로 표기했음이 밝혀졌으며, 현대에도 그런 언어적 관습의 영향이 제법 남아있다. 대표적으로 현대 중국어와 광동어, 대만어, 일본어에서는 염소를 한자로 山羊이라고 표기하고, 지금도 한자로 양과 염소를 모두 표기하는 중국인들과 대만인들 그리고 홍콩인들은 문서를 읽을 때 가끔 양과 염소를 헷갈려하곤 한다.27 한국어의 경우 근대 한국어까지도 한자로 쓸 때에는 염소에 대해 양이라는 표기가 종종 쓰였고, 현대 한국어도 고유어인 염소를 법령 등에서 한자어로 옮길 때에는 산양으로 옮긴다. 또한 대한민국 정부의 경우 2017년 9월 법률 개정 이전까지 축산법 등의 법령으로 양과 염소를 양이라고 묶어서 표기하고 함께 취급하였다. 때문에 양과 관련한 전근대 동아시아권의 기록을 읽을 때 해당 기록의 양이 현대와 같은 면양을 의미하는 것인지 혹은 산양, 즉 염소를 의미하는 것인지를 잘 구분해야 한다.

 

 

 

한국

 

대한민국에서는 적어도 부여시대 때부터 양을 사육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주로 털 채집 목적으로 사용되었고 고기는 종묘에 제사를 올릴 때 쓰거나 약용으로 사용되는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현재까지도 인류의 동물성 단백질 수요 충족에서 압도적 비율을 차지하는 계란과 고기를 제공하는 닭이나, 양처럼 모피 채집이 가능한 소, 잡식성으로 사육되는 개 등에 비해서는 고기 공급이 드물었던 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다만 신라에서 자체 생산한 모직물로 된 양탄자 유물이 발견된 걸로 봐서 양 사육 자체는 확인되고 있다. 과거에도 몽골과 만주에서 양이 넘치도록 사육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철도, 비행기 같은 것이 없던 시절이니 대중화는 힘들었다.

 

고려 시대 기록들 중 지배층에서는 양고기와 돼지고기, 개고기를 먹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되는 기록이 있다. 송나라의 사신 서긍이 서술한 고려도경에 보면 고려에서는 사신을 접대할 때 개와 양을 잡아서 대접하는데 도축 기술이 엉망이라서 고기에 악취가 난다고 불평하는 서술이 나온다. 해당 기록에는 고려에서 동물을 잡을 때 절벽에서 떨어뜨리거나 산 채로 다리를 묶어 불 속에 던져서 털을 제거한 이후 불을 끈 후에 동물이 만약 숨이 붙어있으면 몽둥이로 두들겨패서 죽인다고 나와있는데, 이렇게 도축 기술이 조잡했던 것을 보면 당시 양고기, 개고기에 대한 수요가 적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윤관의 여진 정벌 당시 노획품 관련한 기록되어 여진족이 키우던 양을 얼마나 몇 마리를 노획했는지 관련한 기록이 나오는데, 이렇게 붙잡힌 양들은 대개 현지 군인들의 군량으로 활용되었으라라 여긴다.

 

조선 세종 조에 세종의 건강이 악화되자 어의가 양고기를 처방하기도 하였다는 것이 조선왕조실록에 기술되어있다. 이때 세종은 양은 조선에서 구할 수 없어 명에서 수입해야 하는데, 그 돈으로 더 많은 백성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양고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다만, 세종이 양고기를 전혀 안먹어본 건 아닌데 세종 초기 영락제가 세종에게 잔치하라고 양과 거위를 하사하는 기록이 있으니 이때는 세종도 양고기를 맛봤을 가능성이 높다.

 

양을 대규모로 키우려면 서늘한 기후와 드넓은 목초지가 필요한데, 한반도는 암벽투성이 바위산이 많아 목초지가 들어설 수 있는 평야가 적고, 장마 때문에 함부로 산을 깎았다간 산사태가 나기 쉬운 기후였다. 게다가 양털도 조선인들에게는 딱히 쓸모가 없었던 듯 한데, 이미 고려 때부터 여름에 시원한 면직물과 겨울에 따뜻한 솜을 동시에 제공해 주는 목화 재배가 활발했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 전기 한반도에서 양은 거의 절멸됐으며, 세종 대부터 양고기는 비싼 돈 주고 중국이나 만주에서 수입해 먹는 것이 되었다.

 

그 이후 1960~70년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경공업 진흥 정책이 펼쳐지며 한국의 섬유 공업이 활성화 되었고, 이 시기 영국 등 서양계 품종의 서양 양들이 한국에 털양으로 유입되었다. 이때 양털을 얻고 더 이상 양털을 얻을 수 없는 늙은 성체 양을 도축해서 단체급식, 특히 군대에 식육으로 납품하거나 혹은 시장에 내놓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머튼은 노린내가 심하기 때문에 고추와 마늘을 비롯한 향신료를 잔뜩 넣어야 비린내를 없앴수 있지만, 이 당시 군대 환경으로는 상급부대같은곳이 아니고서야 머튼의 노린내를 처리하기가 힘들었다. 이 당시에도 흔했던 된장국과 된장찌개도 된장을 많이 넣지 못해 심심한 맛이 나서 똥국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김치도 부대에서 알아서 담가야되었던것이 이 당시의 많은 부대 사정이었다. 이러다보니 당연히 노린내 나고 질기기까지 한 양고기를 억지로 먹던 이들의 증언이 양고기에 대한 국내의 부정적인 인식을 키우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언급은 한국군 병영식 문서에도 나와있다. 이후 양모 붐이 가라앉으며 양 사육두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고,30 질낮은 국산 양고기 대신 외국에서 들여온 양고기가 시장을 점령하게 됐다.

 

현재 한국에서 소비되는 양고기는 거의 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영국 등 영연방 국가들에서 수입해온 양고기라고 보면 된다. 수입과 국내 납품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사업체들도 있다.31 한국에서 방목되는 양들이 없는 건 아닌데 보통 털 얻기 + 관광사업용으로 길러지지 식육용으로 길러지진 않는다. 대관령 등에서는 근처 점포에서 제법 비싼 값에 제한된 양의 국산 양고기를 팔기는 한다. 대부분은 양꼬치 한 두 개 분량으로 맛보기 겸 관광상품으로 판매한다.

 

관련 식당이 전무했던 양고기가 다시 등장한 것은 1990년대 국내로 진출한 조선족들에 의해 양꼬치집이 생기면서 부터. 현재는 소도시 지역까지 널리 퍼지게 되었다. 양꼬치집 외에도, 저가 뷔페가 아닌 중~고가 뷔페에서는 2010년대부터 바베큐 코너에서 소나 돼지의 갈비 외에 양갈비를 내기도 한다.

 

하나 2010년대 들어 양고기 값이 대폭 오르면서 한국에서의 대중화가 주춤해지기도 했고 지금도 여전히 한국에서 대중적인 소비가 이뤄지지 않는 고기이다. 그래도 2020년대 이후 마라탕이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양고기가 서서히 대중화되고 있는 추세다. 소고기와 닭고기 케밥만 판매하던 케밥 전문점에서도 양고기 케밥을 선보이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발맞춰 2020년대 중반부터는 대형마트 육류 코너에서도 양고기를 취급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쉽게 양고기를 접할 수 있는 메뉴로는 양꼬치 외에 훠궈, 마라탕, 인도 커리, 케밥 등이 있다. 양고기 음식점이 많은 데는 초량동, 남포동 등 원도심 관광지과 인천 차이나타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동, 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동 등 중국인 밀집지역과 안산 땟골마을, 한양대학교 ERICA 정문 등 러시아/중앙아시아인 밀집지역이다. 초량동, 남포동을 제외하면 수도권에 편중되어있다.

 

북한은 일제의 남면북양(南棉北羊) 정책33 이후로 양을 많이 키우게 되었다. 현재도 북한 전 지역에서 널리 키우지만, 특히 개마고원에서 많이 키우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쇠고기34에 비해 염소고기와 양고기를 더 많이 먹는 편이라고 한다. 염소와 양은 사람이 못 먹는 풀을 먹고, 젖과 털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사육을 장려한다고 한다. 북한에서 양고기는 토끼고기나 염소고기 같은 (북한 기준으로) 대중적인 고기들보다는 비싼 편이지만 중국에서 양고기 레시피가 수입되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중화권

 

지금이야 중화요리에서 돼지고기가 주로 쓰이고 양고기는 유목민족의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원래 중국인의 전통 고기요리는 양고기요리였다. 굳이 동호계 정복왕조인 거란 몽골 등의 이방 유목민족의 영향을 빼고도 한족의 전통음식이 양고기였다는 말이다.

 

중국은 신석기 시대부터 북방에서는 양과 소를 키운 흔적이 발견되며, 특히 중국의 봉건제과 국제질서의 시초가 된 주나라의 경우 강족과 함께 서북 지방에서 성장한 목축 문명이었기 때문에 양이 일찌감치 중국에 있었다. 때문에 주나라 시대의 제례에서부터 양을 핵심적인 희생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양고기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중국의 양에 대한 유물과 기록은 최소 5000 여 년 전의 것이며, 미토콘드리아 분석을 통해 확인한 결과 이 시점에 이미 중동에서 수입된 것으로 보인다. 가장 초기의 양 유물은 강족이 있던 감숙성과 산시성의 유적이며, 기원전 2000년 무렵부터 중원 평원으로 전파되었다.37 역사 기록과 대조하면 주나라의 확장과 거의 일치한다. 이 시절의 양들은 현대 중국 양 토종품종으로 그대로 이어졌다. 어째서인지 동아시아에는 고대에 양(sheep, Ovis aries)이 없었고 고대의 것은 염소란 말이 인터넷 등지에서 도는데 잘만 키웠고 고유 품종도 있다. 고대 중국어가 둘 다 양이라고 썼다는게 와전된 듯.

 

이는 아직 농경문화가 조악하던 당시에 관개와 치수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대부분의 농토에서는 조 또는 기장이나 겨우 키웠었고, 그 외의 많은 들판이 잡초 가득한 황무지로 남아있어 거기서 양을 놓아 키우는 것이 가장 생산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연교차가 크고 건조한 대륙성 기후권에서는 정주민족이라고 해도 털이 짧은데다 무리지어 뭉치는 습성이 없는 소와 돼지를 월동시키는 것은 지금도 굉장히 힘들고, 주기적으로 털만 깎아주면 월동이 용이한 양에 비할 바가 아니다. 진나라에 망국의 징조가 드리우고 사방에서 진나라에 반대해 육국의 부활을 노리는 반란이 일어날때, 명목상 천자로 옹립되었던 회왕 웅심도 원래 양치기였을 정도이다.

 

하지만 역사상 한족 3대 굴욕의 첫번째인 영가의 난 이후로 이민족이 대거 화북에 유입되고, 많은 한족들이 강남으로 이주하면서 쌀밥과 돼지고기가 보편화되기 시작한다. 물론 송나라 개국시조인 태조 조광윤이 군인 시절에 양고기 국물에 밀가루 떡을 말아먹었다던가(양러우파오모)38 소동파가 동파육을 처음 개발하면서 '돼지고기 괜찮은데 다들 요리해먹을 줄을 모른다'라는 말을 했던 것을 감안하면 내륙 한족은 아직 양고기를 먹는 것이 흔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명나라가 멸망하고 반농반목 민족이었던 만주족이 한족을 지배하면서 화북의 양고기요리는 특유의 냄새를 살리는 유목민 스타일이 지배적이 된다. 청나라 때 북경 인근에서는 당연히 그러한 양고기 요리가 대세였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따르면 가는 곳마다 조선 사신들을 대접한다고 유목민식 양고기 요리를 해주었는데, 양고기에서 나는 노린내 때문에 조선인들에게는 고역이었다고 한다. 참다못한 박지원이 상대방에게 농담 삼아 "대국 요리는 제법 노린내가 난다." 했다가 상대방이 무안해하자 서둘러 사과한 적도 있다. 다만 박지원이 방문한 지역은 만주와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북중국 지역이었기 때문에 당시 중국 사회 전반에 양고기 문화가 퍼져있었다고 해석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이후 박제가의 경우 그의 저서 북학의에서 조선은 소고기를 지나치게 많이 소비해서 농사에 지장을 주는 반면 중국은 소고기는 적게 먹고 양고기와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다며 이를 본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싣기도 했다.

 

이무렵 만들어진 것이 중국 동북 3성 지방의 어린 양꼬치/양갈비 요리. 대한민국39과 일본에서 별미거리 안주거리로 상당히 인기를 얻어 중국 양고기 요리의 대표요소까지 되어버렸다.40 하지만 사실 중국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양요리는 한족 스타일의 양탕(羊湯 혹은 羊羹41)이다. 외식메뉴로도 각광받는 카오양(烤羊, 양고기 구이)42을 먹기 전에 보양삼아 먹는 것은 필수코스고, 별도로 한끼 식사용으로 만든 양탕도 인기있다. 정말 간혹가다가 국수를 말아먹기도 하는데 마치 설렁탕면같은 느낌. 이들은 서북쪽의 위구르족(후이족) 양고기 요리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기도 한데, 현지 위구르 자치구에 가면 말 그대로의 통양구이도 볼 수 있다. 탄카오루양이 통으로 어미양과 새끼양을 구운 양고기 요리다.

 

전술했듯 중국 길거리에서 파는 노점에선 양의 생식기도 꼬치로 판다. 영어로 Sheep Penis(...)라 적어두기도 한다. 맛은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남중국 지역의 경우 북중국 지역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우선 강남 지역이라고도 불리는 남중국 지역은 여러 큰 강을 중심으로 습지 지역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날씨 또한 고온다습한 기후였기 때문에 양을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은 지역이었다. 거기다 이런 기후로 양모의 수요 또한 많지가 않았다. 그리고 쌀과 과채 농사가 매우 잘 되고, 환경적 요인으로43 돼지 목축 또한 매우 용이했기 때문에 양고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목화 등의 면작물 농사가 매우 일찍 시작되어 다양한 식물성 섬유로 옷을 만들어 입었기 때문에 양을 키울 필요가 없었다.

 

거기에 더해 남중국 지역은 일찍부터 견직물이라는 품질 좋고 생산성 좋은 동물성 섬유가 등장하여 중요한 산업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양 목축 문화가 자리 잡기가 힘들었다. 즉, 농업 생산 외의 다른 분야에 투입될 수 있는 잉여 노동력과 자본이 양모 산업 대신 견직물 산업에 투입되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했기 때문에 남중국 지역에서 양이란 그야말로 "북쪽 사람들이 키우는 이상한 냄새나는 동물"이 된 것이다. 때문에 여러 유목민 왕조의 지배를 받으면서 양고기 문화가 널리 퍼진 현재에도 중국에서 양고기 문화의 남방 한계선은 우한시 지역을 중심으로 한 장강 중류 지역으로 꼽힌다. 물론 이건 예전 얘기며, 이촌향도 현상이나 교통과 물류, 통신의 발전 그리고 소득의 향상으로 인해 남중국 지역에서도 양고기가 흔한 길거리 음식 겸 술안주이다.

 

남중국 지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대만에선 오스트로네시아어족에 속하는 언어들을 사용하며 혈연적으로도 폴리네시아인들과 친척 관계에 있는 대만 원주민들이나, 남중국 출신 이주자들의 후손들이 주류인 본성인들의 경우에는 돼지고기 문화나 닭고기·오리고기 문화 그리고 염소고기 문화가 크게 발달했다. 일본 제국 통치 아래 소고기 문화 또한 크게 발달했으나, 양고기 문화와는 큰 접점이 없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의 영향과 국부천대를 전후로 밀려온 북중국 출신 외성인들의 영향으로 일본과 북중국 지역의 양고기 문화가 도입됐으나, 여전히 북중국 출신 외성인들 및 그 후손들이나 중국 대륙 출신의 망명객들을 제외하면 즐기는 비율이 높지 않다. 애초에 외성인들 및 중국 출신의 망명객들 중에서도 본성인과 같은 남방 한족 혈통인 사람들이 적지 않은 편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외성인과 중국 출신들에게서도 양고기의 인기가 떨어진다.

 

홍콩과 마카오는 각각 영국과 포르투갈의 지배에 따른 영향으로 다른 남중국 문화권에 비해 양고기 섭취가 많은 편이지만, 북중국 지역에 비해서는 매우 적은 편이다. 또한 홍콩과 마카오를 포함한 남중국 지역이 양을 키우기에 불리한 기후인지라 대체로 북중국 지역에서 생산된 양고기를 들여오거나 영미권에서 생산된 양고기를 수입하는 경우가 많다.

 

 

 

동남아시아

 

고온다습한 기후 탓에 전통적으로 양고기 대신 염소고기를 먹던 편이었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양고기보다는 염소고기가 압도적인 주류이며, 오늘날 해당 국가의 양고기 요리는 현지 염소고기 요리가 호주에서 수입하는 양고기에 맞추어 변형된 것이거나 식민지 시절 식민 모국이나 인도 등 다른 식민지 지역의 양고기 요리가 유입된 것이다. 지금이야 사육기술 및 냉방기술의 발달에 따른 영향으로 동남아시아도 양 사육이 전근대에 비해 많아졌지만, 전근대 기준으로 동남아시아는 양고기 생산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구 영국 식민지 지역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미얀마의 경우 인도계 이민자들 및 영국인들의 영향으로 양고기 식용 문화가 다른 지역들에 비해 보급되었으며,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프랑스의 식민지배 이전 전통적으로 중국의 문화적 영향을 받았던 베트남 또한 프랑스와 중국의 영향으로 양고기 섭취가 있는 편이지만 해당 국가들도 염소고기를 주로 소비하고 양고기는 외국 요리 레스토랑 등에서 특식으로 먹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최근 들어서는 축산업 기술의 발달로 해당 국가들도 양 사육이 과거보다는 활발해진 편이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차례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중양(남아시아와 중동)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역시 기후 탓에 양고기 섭취 문화의 발달로 이어지지 못했으며,44 인도네시아에서 본격적으로 양고기 섭취 문화가 자리잡게 된 것은 네덜란드령 동인도 시절에 네덜란드의 영향을 받으면서부터였다. 그래서 양과 염소를 뜻하는 단어가 같다.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캅카스

 

이쪽도 양고기를 정말 많이 먹는다. 캅카스 등에서 유래한 꼬치요리인 샤슬릭이45 대표적이다. 원래 양고기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많이 먹었지만 러시아 제국이 중앙아시아를 정복했었고46 지리적 인접성 때문에 러시아로도 중앙아시아 요리가 퍼져 나가면서 러시아인들도 양고기를 꽤나 많이 먹게 되었다. 수프의 일종인 보르시에도 양고기를 넣기도 하며, 양갈비와 감자를 곁들여 먹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주변이나 안산시, 부산역 등지에서 우즈베키스탄이나 러시아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튀르키예

 

튀르키예에서 양고기 케밥을 사먹는 경우에도 이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다만 제법 비싸게 파는(한화 4천 원 정도) 케밥은 이런 냄새가 별로 없는 양고기라 한국인도 먹을만하지만 엄청 싸게 파는(1천~2천 원 이하) 케밥을 사먹으면 나이들어 도축한 양이라 누릿한 양고기 냄새에 괴로울 수도 있다. 특히 갈아서 만든 륄레 케밥(Lüle kebap)은 질이 안 좋은 고기를 갈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냄새가 많이 나서 처음 먹으면 기겁을 할 정도다. 만약 먹으려면 티케 케밥(Tike kebap)이나 생고기를 구운 것이 그나마 냄새가 덜 난다. 아니면 쇠고기와 양고기를 반반 섞는 아다나 케밥(이쪽은 매워서 먹기 더 수월하다.)도 좋은 선택이다.

 

 

영국 및 영연방

 

앵글로색슨족이 중심이 된 혹은 앵글로색슨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영연방 국가들에서도 양고기는 즐겨 소비되는 육류이다. 특히 웨일스와 뉴질랜드, 아일랜드의 넓은 초원 지대에 풀어놓은 양은 세계적인 양모와 양고기의 공급원이며, 동시에 관광자원으로 쓰일 정도로 유명하다.

 

이들 국가들에서는 양고기 먹을때 박하로 미리 양념을 해서 구워 먹거나 박하로 만든 소스를 곁들여 먹는 스테이크 요리가 발달해 있다. 양고기 특유의 노린내를 잘 잡고 풍미를 더해줘서 잘 어울린다. 영국 요리에 대한 인식과 정 반대로, 영국은 서유럽에서 양고기 요리가 가장 발달한 나라이다. 일상식으로도 양고기를 많이 먹는 편이라 일상식 양고기 요리도 제법 발전했고, 손님을 초대한 정찬에는 소고기 아니면 양고기로 만든 메인 디쉬를 올리는 것이 예의라고 여기는 만큼 특식으로도 양고기 요리가 제법 발달해 있다.

 

영국 내의 괜찮은 식당들은 양고기 스테이크를 적당한 육질로 냄새 없이 잘 굽는다. 역사적으로 역시 털을 얻을 목적으로 양을 많이 키웠던 스페인 카스티야나 벨기에 플란데런, 네덜란드 등에서 양고기 요리가 별로 발달하지 않은 것에 비해 영국은 양을 적극적으로 도축해 잡아먹었고, 그만큼 양고기 요리에 축적된 노하우도 많아 다양한 양고기 요리들이 존재한다.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은 스테이크 용으로 특히 양 갈비대를 즐겨 사용하고, 이외에도 뼈가 박힌 등심이나 다리 부분도 스테이크로 즐겨 먹는다.

 

스테이크 손질된 양고기의 경우 고기의 색상이 소고기에 비해 덜 붉어 은빛이 돌기 때문에 영연방 국가들에선 양고기 스테이크를 Silver Steak라고 부르기도 한다.48

 

스테이크 외의 요리법에는 양고기 스튜가 있는데, 가정식으로 투박하지만 맛있는 스튜를 만들어 먹는다. 다만 만드는 국가와 지역에 따라 다르고, 인접한 지역이라도 각 집안마다 재료나 조리법이 조금씩 차이가 있고, 이 때문에 한국의 김치처럼 만든 집안 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다.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지역 특산 스튜를 먹어보는 것도 좋다.

 

더불어 인도 요리의 영향으로 양고기 커리도 많이 먹는데, 고유의 양고기 스튜 문화와 합쳐진 양고기 커리 스튜를 만들어 먹곤 한다.

 

 

 

 

 

 

요리

 

대표적인 요리로는 양(羊)불고기, 스튜, 바비큐 등이 있고 양꼬치나 케밥 등의 재료로 쓰이는 등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위에 양고기의 특징에서도 설명 되어 있지만, 양을 자주 먹는 나라에서 머튼과 램은 아예 다른 종류의 고기라고 취급해도 될 정도로 요리법이 구분이 되어있다. 머튼은 향신료를 많이 넣고 오래동안 조리하는 커리, 스튜등의 요리에 쓰고 램은 주로 스테이크나 구이에 쓰인다.

 

양고기 토마호크 스테이크 요리가 유행하기도 했다.

 

 

램 요리

 

훠궈(火鍋)

마라탕

마라샹궈

양꼬치

케밥

샤슬릭

징기스칸50

스테이크

사지51

 

 

 

 

머튼 요리

 

스튜

커리

비르야니

셰퍼드 파이

허르헉

 

 

 

냄새 제거법

 

양고기를 맛있게 요리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누린내52에 적응해서 진입장벽을 없애든지 아니면 요리하기 전에 충분히 준비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하는 양고기 손질법이다.

 

고기의 피를 완전히 빼야 한다. 할랄 푸드 문서에서도 볼 수 있지만, 무슬림들은 양을 잡고 나서 피를 완전히 빼고 가공한다.53 양고기의 냄새는 대부분 양의 혈액에서 생성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양고기의 노린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슬람권의 양고기 요리(대표적으로 튀르키예 요리)를 먹는 게 나을 수 있다.

튀르키예에서는 케밥을 요리하기 하루 전에 양고기를 후추와 커민, 우유 등에 담궈둔다. 이렇게 하면 냄새가 한층 더 희석되고 고기가 연해지게 되는 효과가 나온다. 그 외에 박하나 생강, 마늘, 고춧가루등을 사용해 볼 수도 있다. 특히 마늘이 효과가 좋으며, 튀르키예 요리나 아랍 요리같이 양고기를 많이 사용하는 요리에서도 마늘은 이 때문에 필수요소로 자리잡았다.

동유럽에서는 양고기를 레몬, 토마토, 양파, 소금에 하루 이상 재워서 냄새를 제거한다. 터키에서 향신료로 양고기를 재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기를 더 부드럽게 하는 기능도 있다.

향신료를 쓰고 싶지 않다면 양고기를 본격적으로 조리하기 전에 끓는 물에 살짝 데치는 방법도 있다. 고기 내의 남은 피를 상당 부분 빼내기 위한 방법인데, 이럴 경우 고기가 익기 전에 꺼내야 하며 육즙을 일부 포기해야 한다.

삶아서 조리하려면 요리술이나 정종을 넣고 우선 한번 데치고 다시 물을 부어 삶는 방법도 있다. 대신 이렇게 하면 양고기의 기름이 상당히 많이 빠져나간다.

특유의 냄새는 대부분 비계에서 나오기 때문에 오븐 조리의 경우 중간 중간 오븐 팬에 고인 기름을 따라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비계를 너무 제거하면 그냥 딱딱하고 질긴 살코기만 남는지라 취향에 따라 적절한 밸런스 선을 맞추는 것이 포인트.

복잡한 양념 필요없이 MSG만 살짝 뿌려 굽는 것도 한 방법이다. MSG의 감칠맛이 양고기 특유의 냄새를 역하지 않게 효과적으로 잡아주기 때문이다.

나무를 태운 연기를 쏘여서 냄새를 잡고 풍미를 더해주는 훈연도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바비큐 그릴을 쓰거나, 연료로 히코리, 매스킷 등 나무를 사용하여 자연스럽게 연기의 향이 배도록 하면 된다. 가정에서는 훈연기나 더치오븐을 사용하여 5-20 분간 연기를 쏘여 냄새만 제거한 후 나머지는 프라이팬으로 굽거나, 냄비에서 끓이거나, 오븐에서 마무리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릴에서 나무로 굽거나 훈연 목재를 숯에 넣어가며 석쇠로 구운 양고기 스테이크는 대부분의 사람이 소고기와 맛을 구분하지 못한다. 물론 현실은 갈비뼈가 붙은 양 스테이크 고기는 뼈 붙은 소갈비 스테이크54보다 더 뼈가 가늘고 (새끼양 고기인 램이니까) 크기가 작기 때문에 모양으로 구별은 할 수 있다. mutton으로 토마호크 정형을 하면 크게 나오겠지만, 그걸 구우면 대부분의 한국사람은 누린내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다.

 

 

 

 

양고기, 다른 고기와 영양 차이

 

양고기의 영양학적 효능

 

양고기는 영양 측면에서 소고기나 돼지고기 등 다른 육류 못지않다. 저칼로리·저지방·고단백의 대표 육류로, 예로부터 유럽이나 중동 지역 등에서는 보양식으로 즐겨 먹었다. 또 양고기는 돼지고기나 소고기와 비교했을 때 적은 지방을 포함하고 있다. 혈관계 질환의 원인으로 꼽히는 콜레스테롤 함량도 육류 중에서 가장 낮다. 특히 양고기가 가진 지방의 절반 이상은 불포화지방산으로 이는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준다.

양고기에 특히 풍부한 영양 성분은 비타민B12다. 비타민B12는 적혈구 생성을 돕고 신경 손상을 방지하는 등 우리 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타민 B12가 결핍되면 우울증, 위장관 기능 저하, 성장 발달 지연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양고기는 원기회복을 위해 자주 찾는 식품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양고기에는 철분, 칼슘, 인, 아연 같은 무기질이 풍부해 스트레스를 저하시키고 불면증, 정서불안 등에 도움이 된다. 성인에게 권장되는 철분 섭취량은 하루에 12mg인데, 양고기 200g(1인분)을 먹으면 권장량의 30% 이상을 채울 수 있다.

 

한편, 양고기도 소고기처럼 취향에 따라 레어, 미디엄 레어 등 덜 익혀먹는 경우도 많은데, 괜찮은 걸까?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에 따르면, 소고기를 덜 익혀먹어도 되는 건 굉장히 위생적으로 유통된다는 전제하에서다. 이런 면에서 양고기 역시 검역 과정을 통해 안전성이 확보된 것들만 수입되므로, 국내에서 양고기에 의한 기생충 발생 사례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웬만하면 완전히 가열해 먹는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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