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인 수컷과 소극적인 암컷’이란 이분법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1871년 암수의 차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거의 모든 동물은 수놈의 열정이 암놈보다 강하다. 반면에 여성은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면 수컷보다 덜 열심이다. 암컷은 수줍음이 많다.” 수놈을 활동적 지도자, 구애자이자 진화를 끌고 가는 주체로, 암놈을 어미 역할을 하는 수동적 존재로 본 다윈의 성선택 이론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암컷들(원제 Bitch)’은 영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이자 옥스퍼드대에서 동물학을 전공한 루시 쿡이 전통적 관점에 반기를 든 책이다. 암수에 대한 다윈의 이론이 19세기 가부장적 시대의 산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점박이하이에나 암컷에게 소극적으로 살아야 할 이유를 피력해보길. 아마 개처럼 물어뜯은 다음 내뱉으며 면전에서 비웃을 것”이라고 일갈한다. 그러면서 “그저 다윈은 암컷의 진면목을 볼 수 없었거나 아니면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라고 지적한다.
쿡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마다가스카르의 정글과 케냐의 평원, 하와이와 캐나다의 바다 등을 찾아다니며 이전 이론과 달리 암컷을 ‘재정의’하고 있는 연구자들과 만난다. 음경이 달린 암컷 두더지와 점박이하이에나 등 암수 이분법을 파괴하는 성적 모호성을 가진 종을 비롯해 바람둥이 암사자, 암컷끼리 커플을 이루는 앨버트로스, 여족장 범고래 등 수컷보다 방탕하고 생존을 위한 투사로 살아가며 무리 위에 군림하는 자연계 암컷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저자는 이를 통해 “동물 암컷은 수컷만큼이나 성적으로 개방적이고 경쟁심이 강하며 적극적, 공격적이고 우세하고 역동적이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특히 남성은 ‘난잡한’ 짝짓기로 진화적 이익을 얻고 여성은 일부일처제에서 이익을 얻는다는 ‘신화’를 뒤집는 사례들을 제시한다. 자연의 수많은 암컷 동물이 여러 파트너와 짝짓기를 하는 ‘바람둥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동물 중 일부일처제 사회는 7%뿐. 난교로 유명한 암사자 중에는 발정 기간 하루에 최다 100번까지 여러 수컷과 교미한 기록도 있다. 암새의 90%는 일상적으로 여러 수컷과 교미한다. 대표적 사례로 동부요정굴뚝새는 둥지에서 키우는 새끼 중 4분의 3이 파트너가 아닌 다른 수컷의 새끼로 판명 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암컷은 수컷의 선택을 받는 수동적 존재라는 공식을 깨는 사례도 많다. 다윈의 이론에 따르면 짝짓기를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은 수컷뿐이다. 하지만 영양이나 유인원 암컷은 수컷과 짝짓기하려고 죽음을 불사하며 서로 싸운다. 토피영양은 1년 중 단 하루인 발정기에 혈투를 벌여 수컷을 차지한다. 서부저지고릴라는 교미 중인 서열 낮은 암컷을 방해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들의 강한 승부욕은 암컷은 경쟁심이 없다는 가정 아래 예외 취급을 당해왔지만, 실상은 주의 깊게 보지 않은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편견을 버리면 암컷이 명령을 내리고 지배하는 동물 사회도 이상할 것이 없다. 저자에 따르면 “마다가스카르는 권력 맛 좀 아는 계집들의 천국”이다. 마다가스카르에서 발견되는 영장류 집단인 여우원숭이는 전체 111종 중 90%가 암컷이 명령을 내리고 지배한다. 번식기가 짧아 암컷이 귀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저자가 만난 한 과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왜 암컷이 지배하면 안 되는 거죠? 번식 비용을 암컷이 부담하는 태반성 포유류에서 암컷이 수컷보다 유리한 상황이 어떻게 없겠습니까.” 물고기의 3분의 2는 수컷이 새끼를 돌보고 암컷은 알만 낳고 떠난다는 것과, 수컷이 알을 돌보는 동안 영토를 방어하는 호전적 암컷 열대어 사례 등을 통해 ‘모성 신화’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도 책에 썼듯 진화 생물학 분야에서 이런 문제 제기는 오랫동안 ‘이단’으로 취급돼 왔다. 책 내용 대부분은 종전에 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배치돼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성에 대한 다윈의 이론에 도전하는 과학자가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암컷들의 신선하고 다양한 초상화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여성을 시대에 뒤떨어진 엄한 규칙과 기대가 아닌 다른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여성의 역동적이고 다양한 본성입니다.”
“암컷에 대한 선입견을 우아한 분노로 부숴버린다”_《옵서버》
스승인 도킨스를 뛰어넘는 대담한 서사!
암컷과 성, 그리고 진화에 관한 혁명적 안내서
진화론의 바이블 『이기적 유전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암컷은 착취당하는 성이며, 진화의 근본적인 차이는 난자와 정자에서 시작된다.” 여성은 조신하고 신중하게 모성으로 알을 품으며, 이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남성이 진화를 이끈다는 의미다. 그러나 리처드 도킨스의 제자이자 영국을 대표하는 자연사 다큐멘터리 제작자 루시 쿡(Lucy Cooke)은 이렇게 묻는다. “그 말, 장담할 수 있습니까. 교수님?”
스승인 도킨스를 뛰어넘는 대담한 서사로 암컷과 성, 진화에 대한 생물학의 혁명을 그리며 학계와 언론의 찬사를 받은 문제작 『암컷들(BITCH)』이 드디어 한국의 독자를 만난다. 암컷의 성과 본성, 그리고 진화의 동력에 관한 현대 진화생물학의 발견은 지난 두 세기의 가부장적 프레임을 타파하며 일대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마다가스카르의 정글과 케냐의 평원, 하와이나 캐나다의 바다 등을 종횡무진 모험하면서, 진화생물학의 최전선을 걷고 있는 연구자들을 만난다. 바람둥이 암사자, 레즈비언 알바트로스, 폭압의 여왕 미어캣, 여족장 범고래 등 수컷보다 방탕하고 생존을 위한 투사로 살아가며 무리 위에 군림하는 자연계 암컷들의 진면목을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텔링으로 펼쳐 보인다. 무엇이 자연적이고 정상이며 심지어 가능한가? 이 책은 세상에 대한 당신의 기본 전제부터 전복시킬 것이다.
동물의 암컷에 대한 풍성하고 생생한 초상화이며 진화의 뒤엉킨 역학을 새롭게 해석하는 놀라운 통찰이다. 우리는 진화생물학자들에게 흥미진진한 시대를 살고 있다. 성선택은 커다란 패러다임 변화의 진통을 겪고 있다. 실험으로 폭로된 내용이 기존에 수용된 사실들을 뒤엎고 개념의 변화는 오랫동안 고수되어온 가정들을 밀어내고 있다. 다윈이 전적으로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수컷의 경쟁과 암컷의 선택이 성선택을 주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역시 진화가 그린 큰 그림의 일부일 뿐이다. 다윈은 빅토리아 시대의 핀홀 사진기를 통해 자연 세계를 보았다. 여기에 암컷의 성을 추가한다면 우리는 지구의 생명을 총천연색 와이드스크린 버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점점 사람들을 빨아들인다. -32쪽 〈들어가며〉 중에서
이 책에 나오는 계집들은 암컷으로 태어나 어떻게 단순한 수동적 보조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투사로 살아가는지 보여줄 것이다. 다윈의 성선택 이론은 암수의 차이에 초점을 맞추어 두 성을 가르는 쐐기를 박았지만, 이런 구분은 생물학적이라기보다는 문화적인 측면이 더 컸다. 동물의 형질은 신체적이든 행동적이든 다양하고 가소성이 있다. 자연선택이든 성선택이든 선택의 힘이 부리는 변덕에 맞춰 변형될 수 있으며 성적 형질을 유동적이고 유연하게 만든다. -34쪽 들어가며 중에서
동물계에서 생식세포는 오로지 두 종류의 크기로 나타났다. 크거나 작거나. 이 기본적인 이분법이 생물학적으로 성을 정의하는 표준이다. 암컷은 크고 영양분이 풍부한 난자를 생산한다. 수컷은 작고 이동성이 있는 정자를 만든다. 이보다 완벽한 구분이 있을까? 참으로 훌륭하지 않은가? 아니, 그렇지 않다. 성은 복잡한 비즈니스다. 앞으로 보겠지만 상호작용하여 성을 결정하고 구분하는 유전자와 성호르몬의 오래된 네트워크에는 남과 여라는 이분법을 무시하고 생식세포, 생식샘, 생식기, 몸, 그리고 행동을 뒤죽박죽 섞어버리는 능력이 있다. 이 모든 것은 성을 구분하는 일을 전혀 간단하다고 볼 수 없는 아주 복잡다단한 과정으로 만든다. -42쪽, 1장 〈무정부상태의 성〉 중에서
여자는 책임질 일이 많다. 왜 코주부원숭이 수컷은 그렇게 길고 덜렁거리는 코를 가졌을까? 코주부원숭이 아가씨들이 그걸 좋아하니까. 자루눈파리의 거추장스럽게 양쪽으로 뻗친 눈자루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눈자루의 너비가 몸길이보다 더 길다. 당연히 산쑥들꿩의 팝핑 댄스도 그렇다. 암컷의 선택은 진화의 힘 중에서도 가장 엉뚱하고 기발하며 자연이 만든 가장 사치스러운 창조물에 영향력을 발휘한다. 여성이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는지를 밝히는 일이 최근 몇 년간 진화생물학에서 가장 활발한 연구 분야가 되었다. 그리고 산쑥들꿩만큼이나 초현실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통찰을 끌어냈다. -80쪽, 2장 〈배우자 선택의 미스터리〉 중에서
범고래 레아는 (나처럼) 삶의 다음 단계에 들어선 사회적 동물이다. 레아에게 난소의 죽음은 주체성의 부활을 예고했다. 그녀는 퇴색되어 사라지기는커녕 사회의 중앙 무대를 차지할 것이다. 무르익은 통찰로 무리의 존경을 받고 무리를 이끌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남부 상주군 범고래에 남아 있는 완경한 암컷의 하나로서 레아는 새로운 그래니가 될 수 있을까? “다들 누가 무리를 넘겨받을지 궁금해해요. 하지만 저들에게는 그런 사치를 부릴 여유가 없어요.” 가일스가 말했다. 이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유지할 치누크연어가 부족해지면서 전통적인 삶의 방식에도 영향을 줄 거라는 게 가일스의 생각이다. “문화의 틀 전체가 해체되는 기분이에요.” 374쪽, 9장 〈범고래 여족장과 완경〉 중에서
“이는 다양한 예로 보여졌다…… 암컷은 비록 비교적 소극적이지만 대개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권을 잘 행사하고 특정 수컷을 다른 수컷보다 선호하여 받아들인다.”4 다윈은 계속해서 그런 변덕의 전반적인 효과를 설명한다. “더 매력 있는 수컷을 암컷이 선호하기 때문에 수컷이 변화한다. 종의 존재와 양립하는 한 오래도록 시간제한 없이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가부장제는 성선택을 자연선택의 하위 분류로 취급하긴 했어도 암컷과 짝지을 권리를 두고 수컷들이 대결한다는 발상을 받아들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다윈이 물의를 일으킨 부분은 여성이 성적으로 자율적일 뿐 아니라 남성의 진화를 좌지우지하는 결정권을 가졌다는 주장이었다. 이것은 마나님들에게 강력한 권한을 준 것으로 대부분의 (남성) 생물학자들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빅토리아 시대는 남성이 여성을 통제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 반대가 아니라. -86쪽, 2장 〈배우자 선택의 미스터리〉 중에서
세상 누구보다 독창적이고 꼼꼼한 과학자도 문화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다윈이 남성 중심으로 성을 읽은 것은 그 시대에 만연한 남성 우월주의 탓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빅토리아 시대 상류층 사회에서 여성에게는 평생 한 가지 중요한 역할이 있었으니,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남편의 관심사에 동참하며 바깥일을 거드는 것이다. 이는 가정을 지키며 남성을 뒤에서 받쳐주는 보조 역할에 불과하다. 여성은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 ‘약한’ 성으로 정의되었기 때문이다. 여성은 모든 면에서 남성의 권위에 종속되어 있었다. -24쪽, 〈들어가며〉 중에서
그런데 얼마 뒤에 조사해보니 정관수술을 받은 수컷의 영역에서 낳은 알의 69퍼센트가 새끼를 까는 유정란이지 않은가(중략) 암컷이 제 영역 밖에서 거세되지 않은 수컷과 정사를 한 것이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나리오였다. 1970년대 인간 세계에서는 성 혁명이 한창이었는지 몰라도 명금류 암컷은 아직 그 대열에 합류하지 않았다. “모든 참새목 아과(명금류)의 10분의 9(93퍼센트)가 대개 일부일처를 따른다.” 권위 있는 조류학자 데이비드 랙David Lack이 1968년에 쓴 말이다. “‘일처다부제’인 종은 알려진 바 없다.” 당황한 과학자들은 수컷의 불임화가 붉은날개검은새 개체수를 조절하는 도구로 적합하지 않다고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암컷의 성적 문란함’이 원인일 가능성을 울며 겨자 먹기로 인용했다. 이런 당황스러운 결과는 유해 조수 통제의 실패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암컷의 짝짓기 행동에 대한 이해에 일대 혁명을 예고했다. -115쪽, 3장 〈조작된 암컷 신화〉 중에서
허디는 도서관에 들어가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자신이 본 랑구르가 유일한 ‘음탕한’ 암컷 영장류는 아니었음을 발견했다. 사회성이 강한 많은 종들이 특히 배란기에는 색정증에 가까운 적극적인 성적 취향을 보였다. 야생에서 침팬지 암컷은 평생다섯 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지만 수컷 수십 마리와 6,000번 이상의 교미를 한다. 배란기에 이 암컷은 무리의 모든 수컷을 유혹하고 하루에 30~50회 섹스를 한다. 바바리마카크 암컷도 욕정이 강하기로 유명하여 기록에 따르면 11마리의 성숙한 수컷이 있는 집단에서 한 암컷이 모든 수컷과 17분마다 교미를 했다. 개코원숭이 암컷은 발정기에 색욕이 넘쳐서 심지어 수컷이 거부할 정도로 섹스를 조른다는 기록도 있다. - 126쪽, 3장 〈조작된 암컷 신화〉 중에서
저녁 식사와 데이트를 한 번에 해결하는 암거미의 성향은 빅토리아 시대 남성 동물학자들에게 여러모로 모욕적이었다. 악랄하고 난잡하며 지배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원래의 소극적이고 수줍고 한 남자만 아는 틀에서 벗어난 여성이 나타난 것이다. 암거미는 또한 진화의 난제이기도 했다. 생물이 사는 이유가 제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이라면 섹스도 하기 전에 파트너를 집어삼키는 행위는 진화적으로 적절치 못한 적응 아닌가. 그러나 성적 동족 포식은 전갈에서 나새류, 문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무척추동물과 함께 모든 종류의 거미에서 흔하게 나타난다. 가장 유명한 동물이 아마 사마귀일 것이다. 암사마귀는 연인의 머리를 뜯어먹는 팜파탈이다. 수사마귀는 목이 잘린 채로 용맹하게 뒤로 물러선다. 그런 행동을 보고 수 세대의 동물학자들은 진화가 머리를, 즉 이성을 잃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150쪽, 4장 〈연인을 잡아먹는 50가지 방법〉 중에서
“처음 암오리를 해부했을 때 어찌나 놀랐는지 하마터면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어요.” 브레넌이 내게 한 말이다. (중략) 브레넌은 암오리가 실제로 자신의 알을 수정시킬 수오리를 선택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마음에 드는 상대의 음경이 난관으로 더 깊이 들어오게 통로를 허락하는 것이다. 비폭력적 상황에서 수오리는 교미 전에 춤을 춰서 암오리에게 구애한다. 마음이 동한 암컷은 수용의 자세를 취하여 물속에서 엎드린 채 꼬리를 들어 올린다. “암오리는 배설강 윙크를 해요. 나는 네 것이니 데려가라는 보편적인 신호죠.” -195쪽 5장, 〈생식기 전쟁〉 중에서
귀족의 딸로 태어난 개코원숭이는 엄마의 사회적 관계 덕을 크게 본다. 엄마의 높은 지위가 자식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어미의 폭넓은 인맥이 다른 개코원숭이의 경쟁적 공격은 물론이고, 납치를 시도하는 암컷이나 영아를 살해하는 수컷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때문이다. 상류층의 훌륭한 사회적 네트워크에 속한 새끼는 다른 어른 근처에서 먹이를 먹어도 용인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든든한 지원 구조 안에서는 어미가 자식에게 유일한 전부가 되지 않아도 된다. 이는 특히 처음으로 새끼를 낳아 혹독하게 학습 중인 초보 엄마에게 도움이 된다. 앨트먼은 높은 계급의 친척들로 둘러싸인 딸들은 어린 나이에 새끼를 낳고 새끼가 생존할 가능성도 더 높다는 걸 발견했다. -231쪽, 6장 〈성모마리아는 없다〉 중에서
양육하고 보호하려는 강렬한 욕구는 여전히 혼합된 모성의 핵심 부분으로 남아 있다. 모성애에는 이기적으로 태어난 두 이방인을 깊고 근본적인 관계로 연결하는 변혁의 힘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엄마와 아기의 신비로운 결합은 진짜이다. 다윈이 우리에게 준 믿음과 달리 누구에게나 있거나 즉시 발휘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나는 이런 상징적인 관계를 뒷받침하는 강력하면서도 위태로운 호르몬의 발판을 알아보기 위해 스코틀랜드 동쪽 해안에서 떨어진 바위투성이 무인도로 떠났다. -239쪽, 6장 〈성모마리아는 없다〉 중에서
풀이 무성한 마사이 라마 평원의 늦은 오후. 주황빛 태양이 슬슬 수평선을 향해 내려오는 가운데 토피영양Damaliscus lunatus jimela 한쌍이 아카시아 긴 그늘에서 대결이 한창이다. 발정기를 맞아 두마리의 중간 크기 영양-과장하면 업그레이드된 염소-이 섹스를 위해 겨루는 다른 수백 마리 토피영양에 합류했다. 뿔 달린 한 쌍이 대결을 시작하여 상대를 향해 돌진한 다음 무릎을 꿇더니 수금 모양의 뿔을 마주 걸고 머리를 바닥까지 내린 채 사납게 대치한다. 긴장된 몇 초가 지나자 몸집이 좀 더 큰 놈이 힘을 발휘하여 상대를 밀어붙인다. 씨름판에서 쫓겨난 패자는 치욕스럽게 머리를 흔들며 허둥지둥 무리로 돌아가고 승자는 남아서 상을 받는다. 포상은 최고의 수컷과 나누는 정사이다. 잔뜩 무장하고 공격에 나선 이 경쟁자들은 암컷을 두고 싸우는 수컷이 아니다. 토피영양의 제일 좋은 정자를 두고 겨루는 암컷들이다. -7장, 〈계집 대 계집〉 중에서
그 결과 오랫동안 암컷의 지배는 포유류에서 드문 것으로 알려져왔다. 앞서 보았던 점박이하이에나와 벌거숭이두더지쥐의 모계 사회는 반대로 암컷의 몸집이 수컷보다 크게 진화하여 다윈의 ‘자연스러운 질서’를 뒤엎고 수컷을 제압하게 된 사례이다. 그런데 여우원숭이는 암수의 크기에 큰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집단에서는 암컷이라는 약체가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여우원숭이는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에서 권력의 기원과 역학에 관해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그걸 알아내기 위해 나는 마다가스카르 남부의 뜨거운 내륙으로 순례를 떠났다. -300쪽, 8장 〈영장류 정치학〉 중에서
로레타는 창에 몸을 기울여 머리를 댔다. 패리시도 똑같이 창에 몸을 기댔고 둘은 2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 털을 골라주는 시늉을 했다. 어느 시점에 로레타가 자신의 손을 올려서 창에 대었고 과학자도 자기 손을 보노보손과 마주 댔다. 마치 유리가 없는 것처럼. (중략) 나는 보노보와 이런 교감을 경험하는 패리시의 특별한 능력에 경이를 느꼈다. 그리고 인간과 아주 가깝지만 인간이 아닌 동물과 그토록 오래 역사를 공유하는 것이 참으로 대단한 특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정말로 특별한 관계였다. 이 현명한 늙은 암컷은 패리시가 그들의 평화로운 모계 사회의 비밀을 해독하게 도왔고, 가부장제와 폭력이 인간의 DNA에 처음부터 새겨진 것이 아님을 이해하게 했다. -339쪽, 8장 〈영장류 정치학〉 중에서
“알바트로스는 사람과 똑같아요.” 드물게 의인화의 덫에 걸린 영이 인정했다. “대부분 일부일처이고 오랫동안 같은 상대와 함께 머물러요. 물론 저 사회적 일부일처 커플 중에서도 누구는 바람을 피우고 누구는 이혼을 하죠. 전체적인 스펙트럼이 그렇습니다.” 그 스펙트럼에 이제는 기혼의 다른 수컷에게 정자를 기증받아 다음 세대를 생산하는 장기적인 동성 관계가 포함된다.
새로 밝혀진 알바트로스 동성 커플이 제안하는 바는 훨씬 고무적이다. 자연에서 성역할에 내재된 융통성은 물론이고 동물이 새로운 사회, 생태적 환경 앞에서 파격적으로 행동을 바꿀 수 있다고 암시하기 때문이다. 이는 생태적 대재앙이 가까워지는 시점에 점차 더 중요해질 특성이다. -389쪽, 〈수컷 없는 삶〉 중에서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다윈은 그의 성선택 이론을 두 갈래로 나눠 설명했다. 짝짓기의 선택권은 궁극적으로 암컷에게 있으며(암컷 선택), 암컷의 간택을 받기 위해 수컷들은 경쟁할 수밖에 없다(수컷 경쟁). 수컷의 가장 결정적 약점은 스스로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컷들은 암컷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화려한 깃털로 치장하고 밤이 새도록 노래하고 춤을 추며 교태를 부리거나 근력, 재력, 권력을 키워 아예 다른 수컷들이 암컷에게 접근조차 못 하도록 막는다. 이런 삶의 현장을 바라보면 자연은 언뜻 수컷들의 세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부일처제를 가장 잘 지키는 듯한 새들도 막상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한 둥지에서 사는 새끼들의 아빠가 서로 다르다. 적극적이고 방탕한 암컷들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암컷에 관한 충격적인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이 책에 우리는 이토록 속수무책으로 빨려드는 것일까? 우리가 기실 오래전부터 세상을 주무르는 실체가 암컷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상희 (캘리포니아대학교 리버사이드 인류학 교수)
이 책은 원제 ‘Bitch’에서부터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강렬히 드러낸다. 동물의 암컷을 일컫는 수많은 영어 단어 중 굳이 선택된 ‘비치(암캐)’는 ‘성깔 더러운 여자’를 가리키는 비속어다. 『암컷들』은 (둔하게) 크고 정적인 난자 하나를 품고 얌전하게 기다리는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역동적이고 재빠른 정자 군단을 앞세워 고군분투하는 수컷에게만 관심을 쏟아 부은 진화생물학 연구사에서 지워지고 잊혔던 암컷, 그리고 그들이 고군분투하며 이루어낸 무궁무진한 진화적 혁신에 대한 책이다. ‘여자답지 못한’ 암컷과 ‘남자답지 못한’ 수컷을 연구하며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이라는 틀이 얼마나 자연적이지 않은지, ‘찐’ 자연은 얼마나 다양하고 화려한지 보여주는 과학자들의 여정에 연대하며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다혜 (《씨네21》 기자, 『출근길의 주문』 저자)
과학에는 뜻밖의 재미가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질문하지 않는다면 답도 찾을 수 없겠지요. 올바른 질문을 하려면 이걸 살펴볼 여성이 있어야 했어요.” 『암컷들』은 전복적 발견, 즐거운 깨달음으로 가득한 책이다. 좌우대칭 암수한몸인 자웅모자이크 새, 산쑥들꿩의 구애, 거미의 동족 포식성 69 체위, 양서류의 다양한 돌봄 전략, 개코원숭이의 계급과 부모되기 등을 탐색하면서, 우리는 진화생물학이 밝혀낸 새로운 진실의 영토를 알아간다. 그 결과, 과학이 동물의 암컷을 얼마나 왜곡해왔는지를 차근차근 접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연구실에서 바다, 정글을 오가는 듯한 박진감 넘치는 서술 덕분에 즐거운 독서가 된다.
앨리스 로버츠 (버밍엄대학교 생물인류학 교수,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 저자)
아름다운 글, 매우 재미있고 중요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루시 쿡은 생물학 분야에서 두 세기에 걸친 성차별적 신화를 날려 보낸다.
오거스틴 푸엔테스 (프린스턴대학교 인류학 교수)
재밌고 유익하고 혁명적이다. 이 책은 학교에서 읽혀야 한다. 쿡은 실제 연구 자료를 정확히 파악하여 여성 과학자들의 실질적인 기여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학계와 대중의 성에 대한 편견·맹목·무지를 파괴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다시는 흰동가리, 따개비, 범고래, 알바트로스 그리고 인간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더 나아질 것이다.
수 퍼킨스 (영국의 작가 겸 배우)
다윈 씨,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다렸던 진화적 리부트다.
크리스 팩햄 (영국의 동식물 연구가·작가)
성에 대한 완전하고도 정확한 탐구. 이 얼마나 기쁜가!
텔레그레프
동물의 성에 관한 흥미로운 가이드. 고리타분한 낡은 생각들을 날려버린다.
네이처
최고의 과학책. 면밀한 연구 내용과 도발적인 필체
사이언스
스토리텔러로서의 유머에 생물학 연구자의 과학적 권위가 결합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