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동 선사주거지(岩寺先史住居地)
암사동선사주거지 유적(서울시 강동구 암사동 139-2번지 일대)은 1979년 7월 26일 사적(史蹟) 제 267호로 지정되었고, 1981~1988년까지 유적지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총 면적 25,122평의 문화재 보호구역을 확보하게 되었다.
1925년의 대홍수 때 한강이 넘쳐 유적 일부가 파손된 채로 토기편과 석기들이 발견된 이후 1967년에 유적을 발굴조사하고, 1971∼1975년 재발굴조사를 거쳐 1980년대에 다시 발굴했다. 그 결과 수렵·채집으로 생활하며 취락을 형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집터와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를 비롯해 돌도끼·돌화살촉·긁개 등의 생활도구와 돌낫·보습과 같은 농기구 등의 석기가 대량 출토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서로 시대가 다른 3개의 문화층이 발견되었는데, 최하층인 제1층은 적갈색 사질층으로 움집[竪穴住居]터가 확인되었고, 내부에서 빗살무늬토기와 뼈조각이 출토되었으며 기둥자리의 흔적도 발견되었다. 중간의 제2문화층은 흑회색 사질층으로 빗살무늬토기와 민무늬토기[無文土器]를 비롯해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제3층은 삼국시대 백제에 해당하는 문화층으로 빗살무늬토기 조각, 석기, 백제의 토기조각 등이 출토되었고, 독무덤[甕棺墓]과 건물터가 발견되었다.집터는 둥근꼴과 모줄임네모꼴[抹角方形]로 된 길이 5∼6m, 깊이 1m 정도의 움집터로, 가운데에는 주위에 한 줄로 돌을 두른 화덕 자리[爐址]가 있으며 저장구덩이 시설도 갖추었다. 네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어 움집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4000∼3000년 무렵에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움집터 유적으로 1981∼1988년 유적지 발굴조사로 움집 등이 복원되면서 암사동 선사유적공원이 조성되었다.
빗살무늬토기
암사동선사주거지에서 출토된 토기는 빗살무늬토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나 일부 무문토기가 출토된 것도 있다. 특히 1998년 4~6월까지 원시생활전시관 건립을 위한 국립중앙박물관 유적구제 발굴조사에서는 시루형토기가 도토리의 떫은 맛을 우려내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빗살무늬토기는 구연부, 기복부, 저부로 통상 구분하며 각 부분별 서로 다른 문양이 장식된 형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토기의 바탕 흙에는 일부 활석이 혼합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운모와 장석․석영이 혼합된 사질토이다. 또한 구연부는 예외없이 직립하여 있고 바닥이 원저를 이룬 포탄형으로 이루어진다. 토기의 색은 적갈색이 대부분이나 황갈색, 회갈색, 회흑색도 일부 보인다.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는 빗살무늬토기로서 밑이 둥근 모양이나 간혹 밑이 편한 것도 있다. 암사동선사주거지가 위치한 자연적 조건은 강을 끼고 주변이 사질토로서 손쉽게 바닥을 둥글게 파 낼수 있기 때문에 바닥을 둥글게 파내고 그 안에 밑이 둥근 토기를 두어 음식물을 담아두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형태는 부산의 동삼동에서 출토된 토기의 밑 모양과 동일하여 해안이나 강가에서 출토된 토기는 대부분 밑이 둥근 공통점이 있고 반대로 양양의 오산리 유적에서 발견된 토기의 밑 형태는 평평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와 같은 내용은 즐문토기 분포도를 자세히 관찰하면 쉽게 납득이 갈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