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امارت اسلامی افغانستان1
د افغانستان اسلامي امارت2
Islamic Emirate of Afghanistan
لا إله إلا الله محمد رسول الله
알라 외에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이다
역사
영국으로부터 독립 1919년 8월 19일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건국 1996년 9월 27일
탈레반 축출 및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건국 2001년 11월 13일
탈레반 재집권 및 과도정부 수립 2021년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재건국 2021년 8월 19일
수도
카불
면적
652,230km²
접경국
우즈베키스탄
중국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파키스탄
타지키스탄
인도
인구
43,372,950명(2024년) | 세계 36위
민족
파슈툰인 42%, 타지크인 27%, 하자라인 9%, 우즈베크인 9%, 아이마크인 4%, 투르크멘인 3%, 발루치인 2%, 기타 4% (2008)
출산율
4.43명(2024년)
공용어
다리어, 파슈토어
국교
이슬람
종교
이슬람 99.9%, 기독교 0.01%
아시아 서남부 이란고원의 동북부에 있는 내륙국.
일반적으로 남아시아 또는 중앙아시아로 분류된다. 수도는 카불(다리어·파슈토어: کابل, Kabul)이며 주요 도시로는 칸다하르(کندهار, Kandahar)14, 헤라트(هرات, Herat), 마자르이샤리프(مزار شریف, Mazar-i-Sharif)가 있다.
아프가니스탄(다리어·파슈토어: افغانستان)이라는 국호는 아프가니스탄인을 구성하는 주요 민족인 '파슈툰인'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افغان(afğān)과 '땅'을 의미하는 ستان(stān)이 더해진 조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용되는 페르시아어인 다리어로는 ʔäf.ɣɑː.nɪs.t̪ʰɑ́ːn(아프가니스탄), 파슈토어로는 avɣɑnisˈtɑn, ab-(아브가니스탄)이라고 한다. 러시아어 Афганиста́н(ɐvɡənʲɪˈstan)과 유사하게 /f/ 음소가 변이음인 v로 조음되는 유성음화가 있다.
2021년까지는 국호에 공화국을 명시한 대통령제 국가였지만 탈레반이 집권한 2021년 8월부터는 공화국이라는 명칭을 떼 버리고 이마라트를 국호에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이마라트란 게 아미르가 통치하는 군주제 국가를 뜻하는데 현재 아프가니스탄에는 군주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이 없으며16 실질적으로는 군사정부에 가까워서 명칭과는 달리 군주제 국가의 모습과는 거리가 꽤나 멀다는 것이다.17 사실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나 이마라트 캅카스처럼 형태와 이름만 이슬람 제국스럽게 하고 정작 내부는 공화정이나 군사정권 혹은 집단지도체제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는 단체가 많다.
다만 형식상으로 아프가니스탄 국가원수의 명칭이 실제 토후의 명칭인 아미르 알무미닌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름만 국가원수직에 불과하며 결론적으로 현재 아프가니스탄은 군주제 국가가 아니다.
자연
위 지도처럼 국토 전역에 걸쳐 광역 히말라야 산맥에 속하는 산맥이 가로지르고 있기 때문에 국토의 대부분이 고산 지대이자 메마른 지역이다. 아프가니스탄은 넓은 영토와 지역별 고도의 차이로 인해 기후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은데 아프가니스탄의 지형은 동고서저 또는 북고남저이므로 카불이 있는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지역이 고도가 가장 높다. 그렇기 때문에 고도가 높은 북동부 산악지역은 고지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난다. 고지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나는 지역은 많지 않은데 이를 볼 수 있는 곳 중 한 곳이 아프가니스탄이다. 그 북동부 지역에서도 고도가 가장 높고 7,000m의 고봉이 밀집해 있는 바다흐샨주 와칸 회랑의 고산지대에서는 툰드라 기후마저 나타난다. 반면 칸다하르가 있는 남부 또는 헤라트가 있는 서부의 저지대는 대부분 사막으로 여름에는 기온이 무섭도록 치솟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높은 고도로 인해 아프가니스탄보다 위도가 높은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보다 국토 평균기온이 낮은 국가다.
기후는 주로 건조하고 연교차와 일교차가 크며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탁한 공기로 인해 호흡기 질환 등이 자주 유행하는 편이다. 해발 1,791m의 고지에 있는 카불은 1월 평균기온 -2.3℃, 7월 평균기온 23.7℃에 연강수량은 312mm18이다. 겨울에는 서울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가끔 영하 20도 이하도 기록되기도 한다. 이는 여름도 마찬가지로 평균기온은 서울보다 약간 시원하나 40°C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카불의 역대 최저기온은 -26.2°C다.
산이 많고 국가 자체의 면적도 넓은지라 기온 편차가 꽤 큰데 중부 산지의 차그차란(چغچران, Chaghcharan)은 1월 평균기온이 -9.4℃로 모스크바(-6.5℃)보다도 더 춥고 심지어 -46°C가 기록된 적도 있다. 반면 서부 사막 지대에 있는 자란지(زرنج, Zaranj)는 7월 평균기온은 35.0℃로 미국의 피닉스(34.9℃)와 비슷한 수준이며 가장 높게는 영상 51℃까지 기록된 바 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에서 기록된 최고 기온은 2009년 8월 파라(فراه, Farah)에서 기록된 49.9℃이고 최저 기온은 1964년 1월 샤흐라크(شهرک, Shahrak)에서 기록된 -52.2℃라고 한다.
아프가니스탄 전역은 힌두쿠시의 높고 척박한 산들과 복잡한 지형 때문에 외지인은 물론 탈레반조차 접근하기 쉽지 않은데 2002년 1월 한국군 소속으로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간 채수문 예비역 대령(당시 중령)이 파견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힌두쿠시 산맥을 지나며 본 풍경에 대해 말하길 '이 전쟁을 미국이 이긴다는 소리가 엄청나게 많았지만 높고 복잡한 산들만 봐도 쏙 들어간다. 힌두쿠시라는 이름부터가 힌두교인들이 죽어간 무덤이라는 뜻이다. 종종 인도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납치된 힌두교인들이 이동 과정 중 힌두쿠시 산맥에서 얼어죽는 경우가 많아 붙은 이름이다. 첨단 장비로 무장한 현대 미군조차 위성장치를 비롯한 장비들이 이 산과 고원 지대에 올라가면 먹통이 되는 관계로 이곳에 대대로 살던 지역민들이 없다면 들어가지도 못하는 곳이다.' 라고 했다고 한다. 실화 기반 영화 론 서바이버에서 주인공 일행이 전화 한방을 못 때려서 그 생고생을 하다 겨우 한명만 살아남기도 했다. 그러니까 장갑차나 전차 등 차량은 절대로 못 들어간다. 험난한 산악길을 오로지 헬리콥터만 타고 이동해야 하는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이한 일도 있었다. 예전에 미군은 지도 없이 이 근방을 헬리콥터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도중에 한 마을과 마주쳤다. 그러자 마을에선 난리가 벌어졌다고 한다. 헬리콥터가 착륙하자 총을 쏴댔는데 미군도 대응하려고 보니 총들이 그야말로 골동품인 20세기 초반에 쓰던 총이었고 살의보단 경계로 쏴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후 현지인 통역을 통하여 설득하고 보니 이 마을은 이방인이 온지 수십여 년이 넘었으며 전기도 탈레반이 뭔지도 모르는 마을이었으니 헬리콥터도 자동차도 아예 몰랐다고 한다. 그만큼 척박한 곳이라서 사람들이 먹는 것은 듣도보도 못한 채소를 길러 먹거나 마을에 얼마 안 되는 가축을 아주 드물게 먹는 수준이었고 당연히 통조림이나 인스턴트 음식은 신기하게 여겼다고 한다. 오랫동안 고립되었기 때문에 말도 꽤 다르게 변모해서인지 통역인도 한참 대화에 고생했다고 한다.(출처: 김혜자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대개 파미르인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고립된 부족들은 다행히 탈레반의 폭정이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같은 참상은 겪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힌두쿠시 산맥의 험준한 산악지형이 만들어낸 결과인지 몰라도 저격의 명소이기도 하다. 베트남 전쟁 때 카를로스 헤스콕이 세운 세계 초장거리 저격 기록은 한동안의 긴 공백 끝에 아프가니스탄에서 4번이나 깨졌다. 맥밀런 TAC-50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한 전투에 두 번, 이후 또 저격 기록을 갱신 및 1위를 다시 차지했고 L115A3도 기록하는 등 진짜 저격의 명소인가 싶다. 아닌 게 아니라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때 AK-74로 무장한 소련군들을 무자헤딘 전사들은 구식 리-엔필드 소총으로 800m 이상의 거리에서 저격함으로써 불리한 화력에도 불구하고 소련군의 사기를 크게 꺾어다. 워낙 험준한 고산 지대라 대규모 화력은 이동시키기도 어렵고 체력 안배도 쉽지 않은 곳인지라 자연히 저격수들에 의해 아프가니스탄은 소련군의 무덤이 되었다. 이에 소련은 고심 끝에 스페츠나츠 저격수를 3배나 늘리고 민간인 마을에 마구 보복하는 등 갖은 수를 썼지만 국제 여론까지 악화되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무자헤딘 측은 소련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현재 저격 최장거리 기록도 저격수의 이름이 밝혀진 기록에 한해서는 1위부터 3위까지 모두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들어진 기록인데 현재 1위 기록(3,450m)은 현역 복무중인 특수부대 JTF-2 소속이라 신상이 비공개이기 때문이다.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시기에 활약한 머스킷인 제자일이 만들어진 곳으로도 유명하다.
아프가니스탄은 지역마다 고도와 기후가 다 다르기 때문에 그에 따른 자연경관도 다르다.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지방 사진 (판지시르, 누리스탄, 바다흐샨)
우선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지방은 평균고도가 4,000~5,000m 정도로 매우 높고 험준하다. 그 중에서도 누리스탄주와 바다흐샨주는 평균고도가 6,000m 정도고 해발고도 7,000m가 넘는 고봉들도 밀집해 있으며 해발고도 7,491m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노샤크 산도 이 지방에 있다.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지방은 메마르고 건조한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얼마 되지 않는 풍요로운 지역이다. 반 탈레반 저항군이 활동하고 있는 판지시르주의 수도 바자라크만 봐도 그렇다. 아무튼 이 지역은 높고 험준한 산악지형이 외부의 적들을 차단하고 그 안쪽의 분지지형은 물이 많고 토질이 좋아 농작물이 잘 자라고 광물자원도 풍부해서 천연의 요새 역할을 한다. 내륙 및 고산기후로 인한 큰 일교차와 혹독한 겨울과 고산병만 제외하면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역이다.
일반적으로 북동부 지방에는 타지크족이 가장 많이 산다. 예외적으로 라그만주, 쿠나르주에는 파슈툰족이 많으며 누리스탄주에는 누리스탄족이 많다.
바다흐샨, 타하르, 바글란, 판지시르, 파르완, 카피사, 라그만, 누리스탄, 쿠나르, 카불주가 북동부 지방에 위치해 있다.
아프가니스탄 북부 지방 (발흐, 쿤두즈, 파르야브, 바그디스)
다음은 아프가니스탄 북부 또는 북서부 지방인데 북동부, 동부 지역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에서 풍요로운 지역이다. 이 지역의 평균고도는 300m 정도로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가장 낮다. 특히 쿤두즈, 발흐, 자우즈잔 주의 고도는 200m 안팎으로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압도적으로 낮다.
일반적으로 북부 지방에는 타지크족이 가장 많이 산다. 예외적으로 자우즈잔주와 파르야브주는 각각 투르크멘족과 우즈벡족의 비율이 더 높다.
쿤두즈, 발흐, 자우즈잔, 파르야브, 바드기스주가 북부 또는 북서부 지방에 위치해 있다.
아프가니스탄 중부 지방 (바미얀, 고르, 다이쿤디)
코흐 바바
다음은 아프가니스탄 중부지방인데 이 지역의 평균 고도는 30,00~4,000m로 고도가 높고 해발고도 5,000m의 고봉들이 밀집해 있다. 고도가 높은 만큼 여름에는 선선하고 겨울에는 춥다. 여느 아프가니스탄의 지역처럼 메마르고 건조하다. 일반적으로 중부지방에는 타지크족과 하자르족이 많으며 예외로 마이단와르다크주와 우르즈간주는 파슈툰족이 타지크족과 하자르족보다 많다.
바미안, 고르, 다이쿤디, 우르즈간, 사르이풀, 사망간, 마이단와르다크주가 중부 지방에 있다.
아프가니스탄 동부 지방 (낭가르하르,파크티카, 자불, 가즈니)
다음은 아프가니스탄 동부인데 이 지역은 평균고도는 1500~2000m 정도이며 중간 높이의 산과 구름이 많다. 북동부 지방과 더불어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물이 풍부하고 땅이 비옥한 지역이다. 이 지역도 북동부 지방과 더불어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살만한 지역이다.
일반적으로 동부에는 파슈툰족이 가장 많다. 예외로 가즈니주는 하자르족도 파슈툰족만큼 많으며 로가르주도 타지크족이 파슈툰족보다 더 많다.
낭가르하르, 로가르, 팍티야, 호스트, 팍티카, 가즈니, 자불주가 동부지방에 있다.
아프가니스탄 남부 지방 (칸다하르, 헬만드, 님루즈)
다음은 남부인데 이 지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덥고 건조하고 메마른 지역이며 평균고도는 1,000m 정도며 낮은 산과 구릉이 많다.
일반적으로 남부에는 파슈툰족이 가장 많은데 예외로 님루즈주는 발로치족이 50% 를 차지한다.
아프가니스탄 서부 지방 (헤라트, 파라)
다음은 서부지방인데 남부 못지 않게 덥고 건조하다. 평균 고도는 1,000~1,500m 사이다. 서부지방에는 2개의 주밖에 없는데 바로 헤라트와 파라다. 이 2개 주의 인종 구성이 서로 다른데 헤라트는 타지크족이 많은 반면 파라는 파슈툰인이 많다.
참고자료(제국의 무덤이 된 지질학 요새,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 역사
1919년 8월 19일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1970년대 말부터 내전 상태가 고착화된 이래 반세기 동안 초강대국에 2번의 침공을 당했고, 3번의 내전을 치렀고, 그 과정에서 정치체제가 6번이나 바뀌었다. 그만큼 정세가 혼란스러워 제대로된 경제발전을 이룩하지 못해 세계 최빈국이 되었다.
독특하게도 당대 초강대국이었던 영국, 소련, 미국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물러난 역사가 있어 제국의 무덤이라고도 불린다.(사실 과거 영국령 인도제국으로 영국의 식민지였으나 1919년에 영국령 인도에 속하는 인도,파키스탄,미얀마 등보다 훨신 빨리 독립을 하였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이 강대국들을 상대로 당당히 승리했다고만 볼 수는 없는데 실제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이들 국가들은 초기 목적이였던 기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붕괴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실제 역사에서는 제국의 무덤 못지 않게 정복자의 고속도로(highway of conquest)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 기존 정부는 국력이 약하다보니 쉽게 무너졌지만 산악이 많은 지리적 특성을 활용한 게릴라전을 통해 침략자들에게 출혈을 강요하여 다시 쫓아내는 식으로 주인이 바뀌어왔기 때문이다.
대체로 전쟁의 양상은 기존 아프가니스탄 정권이 먼저 해당 국가에게 밉보일 짓을 하게 된 게 빌미가 되었다. 영국은 아프가니스탄 정권들이 러시아나 독일 등 영국의 적성국가와의 외교를 강화하려 든 게 빌미가 되어 공격하였고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 세워진 공산 정부가 공격을 당하자 같은 공산권 보호라는 명분으로 공격하였으며 미국은 말할 것도 없이 9.11 테러의 원흉인 오사마 빈 라덴을 검거하기 위해 그를 숨겨준 탈레반을 공격했다.
그러나 초창기의 목적인 기존 정권의 붕괴를 달성해도 아프가니스탄이 어떻게 해서든 자국의 통제하에 둬야 할 정도로 매력적인 지역은 아니었기 때문에 장기적인 소모전으로 돌입하면 입장이 달라진다. 이렇다할 자원도 없고 척박한 산지가 가득한 곳을 지키려고 지속적으로 산 속에서 저항하는 게릴라들을 상대하기에는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이다. 지켜야할 이익도 적고, 게릴라들도 토벌하기가 쉽지 않은데 지속적으로 공격해오니 결국 철수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침공해온 강대국에서 작정하고 단단히 찍어눌렀다면 충분히 점령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부족한 명분 때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해 아쉬운 성과만 거두고 물러난 소련이나 미국과는 달리 제국주의 시절 아프가니스탄과 갈등을 빚던 영국은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아프가니스탄을 적극적으로 찍어 눌렀다. 그 결과 아프가니스탄을 확실하게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영국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기는 했지만 미소양국과는 달리 씁쓸하게 물러난 게 아니기 때문에 참전 경력에 대해 굳이 잘했다고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숨기지도 않는다.20 다른 두 국가들의 아프간전 참전자들이 참전 경력을 수치스럽게 여겨 숨기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외세에게 승리하여 몰아낸 것이 아니라 여러 게릴라 세력들의 저항에 질린 공격자가 스스로 물러난 형태이기 때문에 각각의 게릴라들은 저마다 자기가 외세 침략을 막아냈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의 실권을 독점하려고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돌려 내전이 발생하고, 겨우 어느 누구 하나가 실권을 잡고 나면 내부적으로는 독재를 통한 부와 권력 증가에만 집중해서 전형적인 막장 국가 테크를 타며 최빈국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대외적으로는 자신들이 외세를 몰아냈다는 착각에 허파에 바람이 과하게 들어가서 국제사회를 상대로 어깃장을 놓는 짓을 저지르다가 제대로 찍혀서 날 잡고 제대로 털려버린 다음 공격자가 설립한 괴뢰 정부가 들어서지만 다시 위의 게릴라 활동으로 돌아가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정치
부패인식지수
17점
2024년, 세계 165위
언론자유지수
17.88점
2025년, 세계 175위
민주주의지수
0.25점
2024년, 세계 167위
아프가니스탄의 정치는 탈레반에 의한 군사독재다. 정치와 국가 운영에 대한 지적 소양이 낮은 탈레반 지도부는 다른 미승인국가들과는 달리 헌법, 법률, 제도 등을 만들지 못하며 포고령을 통한 임의의 통치를 한다. 심지어 탈레반의 포고령도 내용이 혼란스럽고 탈레반이 임의로 안 지키기도 하기 때문에 법률과 같은 권위와 역할을 하지 못한다. 신권정치라고 칭해지기도 하지만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군사독재에 불과하다. 게다가 탈레반의 병력수는 상당히 적기 때문에 지방은 사실상 무정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탈레반은 1996년에서 2001년까지는 아프가니스탄의 대부분의 지역을 손에 넣고 있었고, 미국에 쫓겨난 20년 동안에도 아프가니스탄의 일부 지역을 지배했으며, 현재는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탈레반은 이름뿐인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이라는 국가를 참칭하지만 1996년부터 현재까지 26년 동안 포고령을 통한 임의의 통치만 해 왔으며 '정치'의 기본바탕인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는 탈레반 지도부가 교육 수준이 낮고 현실을 경시하는 반지성주의적 종교근본주의자들이기 때문이며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아프가니스탄의 민주주의 지수는 2024년 기준 0.25점으로 꼴찌이며 매우 낮은 수치를 찍었다. 이는 2021 ~ 2022년까지 최저점이었던 0.32점 기록을 경신한 점수로 미얀마와 함께 민주주의 지수가 북한보다 낮은 2개국 중 1개다. 참고로 이 지수는 10점이 만점이다. 1점 만점이 아니다. 세계의 자유 역시 총 6점22으로 수단과 동점이다.
경제
아프가니스탄은 지구 최악의 극빈국 중 하나로 꼽힌다. 2024년 IMF 통계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의 1인당 GDP는 고작 443달러로 예멘(486달러), 말라위(481달러)보다 낮고 남수단(422달러), 부룬디(229달러)를 제외하면 가장 낮다.
기후조차 최악이라 농업도 힘들다. 원래부터 강우량이 적은 나라였지만 설상가상으로 근래에는 기후위기까지 겹치며 국토의 80% 가량이 가뭄 상태이며 그 중 절반은 '심각한 상태'다.
인간개발지수는 0.374로 끝에서 13번째로, 앙골라와 에티오피아보다도 낮다. 험한 산악지대가 가득해서 개발이 힘든 데다 내전 중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지만 부정부패가 너무 심하다 보니 정부관계자들이나 토호들이 중간에 빼먹는 금액이 너무 커서 발전이 이뤄지지 않은 것도 크다. 오죽하면 아프가니스탄 국민들도 그간 선진국들로부터 받은 원조자금의 반이라도 제대로 쓰였다면 아프가니스탄이 적어도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보다는 잘 사는 국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탄할 정도다. 여기에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국제사회와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자 아편 등 비공식 경제를 제외하고 사실상 생산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져 버렸다.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어느 정도 아편 재배로 수입을 올리기 때문에 실제 GDP는 443달러보다는 조금 높을 것으로 추정되지만25 당연히 아편은 불법이므로 지하 경제 특성상 GDP에 들어가지 않으며 아편 사업마저 탈레반의 집권 후 사실상 불법화되었다.
사실 아프가니스탄은 중세에는 동서 교역으로 번영했던 잘 나가던 지역이었는데 아바스 왕조 이슬람 제국에서 도시 계획을 짤 때 주로 아프가니스탄의 도시들을 참고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사막화가 진행됨과 동시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주도한 대항해시대로 인해 육로를 통한 동서 무역이 쇠퇴하면서 문맹률이 증가하고 종교 극단주의가 득세하는 후진 지역으로 추락하였다.
물론 탈레반의 종교 극단주의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이 가난해졌다고도 볼 수 있지만 반대로 빈곤 문제 때문에 탈레반 같은 종교 극단주의가 득세한다고도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바로 이웃나라인 타지키스탄은 종교 극단주의 문제는 없다. 탈레반조차 진압하지 못한 아프가니스탄과 달리 이슬람 극단주의 반군들을 다 토벌했고 이슬람 극단주의를 국가에서 엄격하게 금지하고 단속하기 때문에 종교 극단주의 문제는 덜하며 민족 구성에서도 타지크족이 절대 다수라서 여러 민족들로 혼재되어 있어 국가적 정체성이 미약한 아프가니스탄보다는 훨씬 낫다. 그럼에도 전술한 문제인 동서 교역의 쇠퇴로 인한 전통 산업의 궤멸로 아시아 최빈국 중 1곳으로 전락한 곳 중 하나이며, 그나마 러시아가 지원을 많이 해 주는 데다가 해외 송금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고, 소련 시절의 영향으로 교육 수준이 경제력 대비 높은 편이기에 최소한으로 나라 꼴은 유지하고 있다.
소련과의 기나긴 전쟁으로 인해 소련군의 장비가 고철로 많이 남아 한때 이것을 팔아먹었다. 평화유지군 소속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머물던 채수문 중령의 회고를 봐도 아프가니스탄 산지 곳곳에 소련 전차가 남았는데 이는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제 헬기나 온갖 장비가 남아서 90년대 초반만 해도 고철로 활용되던 베트남이랑 똑같았다. 탈레반이 지배하는 지금은 미국제 장비가 엄청나게 남아도는데 기름이 없는 탈레반이 중간에 버리고 간 미국차들을 아프가니스탄인들이 고철로 팔아먹고 있는데 눈치와 인맥, 기술이 있어야 하는 만큼 그조차 없는 사람들은 정말 굶어 죽어야 하는 상황이다.
마르코 폴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푸른색'이라고 부른 보석 라피스 라줄리의 최상품은 바로 이 아프가니스탄 북부 바다흐샨 주에서 나온다. 자그마치 6000년 동안 라피스 라줄리를 캔 사르이상그(سر سنگ, Sar-i Sang)라는 광산도 있다. 철이나 망간, 여러 광물자원들이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으며 힌두쿠시 산맥 쪽에는 우라늄도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어서 미국은 핵 관련 문제만으로도 100% 완전 포기는 어렵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기존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사실상 전쟁 수행 의지가 없었다는 걸 깨닫자 결국 답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탈레반으로부터 테러집단과 손잡거나 미국의 적대국의 핵개발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낸 후 아예 손을 떼 버렸다.
석유가 나긴 하지만 생산량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채굴 기술이 없다는 주장도 있으나 그게 사실이라도 구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탈레반과 맞설 돈을 벌기 위해 미국의 지원을 받아서라도 채굴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은 걸 보면 없거나 현재의 기술로는 채굴이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보는 게 맞다.
아편 생산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최대의 아편 생산국이다. 이미 17세기에도 아편 재료인 양귀비꽃 재배로 알아주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1960년대에 그나마 안정적이었을 때도 시골 지역에선 여러 생필품 부족 및 생활난으로 양귀비는 활발하게 재배되어 왔다. 한 때는 왕실에서 금지하려고 했으나 금지할 경우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거나 굶어죽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결국 금지하려는 계획을 전면 취소할 정도로 양귀비가 생활에 깊숙히 들어온 곳이 많다.
결국 단속한다고 해도 마약은 민병대의 주요 수입원 1등을 차지하고 있는데 매해 최대 40억 달러로 추정되며 이 정도 돈이라면 탈레반 및 부족들에게 크나큰 수익이며 이 돈은 무장을 튼튼히 하는 데 쓰인다. 이로 인해서 정부군 및 미군의 희생을 부채질한다. 대부분 소비되는 아편 계열의 마약은 아프가니스탄산이 많다.
덕분에 한때는 전세계 아편 생산량의 80%를 차지하기도 했다. 자료마다 다르지만 어떤 자료는 전세계 생산량의 약 93%까지였다.
이 지역을 골든 크레센트, 즉 황금 초승달 지대라고 한다. 실제로 탈레반은 이 황금 초승달 지대를 장악한 것을 이용해 외국, 특히 파키스탄, 이란 마피아와 마약을 거래하는 사실상 마약 카르텔 역할을 하며 장사를 해먹고 있다. 그 덕분에 탈레반은 수익을 이용해 서방국가 부럽지 않은 수준 높은 무장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1차 탈레반 집권기에 그랬듯 2023년에는 아편이 대량으로 단속되어 작년 대비 52% 줄었지만 일시적인 효과일 수도 있어 진짜 박멸인지는 지켜봐야 한다.
원인
자연 환경
아편의 원료가 되는 양귀비꽃은 건조한 기후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의 기후와 잘 맞는 데다 빠르게 자라고 해충에도 강해 다른 농산물보다 재배하기 쉽다. 일단 아편으로 가공되면 유통기한이 매우 긴 것은 덤이다. 여기에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라서 안 그래도 단속 및 적발이 힘든데 전쟁으로 치안까지 악화되어서 아편 재배가 성행하기 더욱 쉬워졌다.
탈레반 정부의 자금 확보를 위한 독려
과거에는 탈레반이 아편 생산을 금지하였지만 탈레반이 2001년에 축출된 후부터는 자금 확보를 위해 아편 생산을 독려하고 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시절에 아편 생산을 금지하기 위해 노력했고 아프가니스탄 농부에게 보조금 지원 형식으로 공식적으로는 많은 양의 아편 농장을 일반 농장으로 바꿨다. 세계적인 곡물 가격 상승의 영향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다고 여겼지만 이 조치는 실제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양귀비를 재배하다가 밀을 심은 이들이 한탄하길 "양귀비꽃 재배로 받은 돈 절반을 겨우 버는데 누가 미쳤다고 이걸 재배하겠는가!?"라고 할 정도로 밀은 돈이 안 된다.
국제 밀값이 올라 봐야 정작 그들에게 돌아온 돈이 기대 이하였던 데다 부정부패가 워낙 횡행하고 교통망 및 인프라도 그다지 개선된 점이 없어 중간업자들 및 정부요인들이 그 수익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탈레반이 집권한 후인 2024년에는 아편이 전면 금지된다.
심각한 공권력의 부정부패
더구나 밀이나 석류 같은 합법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들이 판매를 위해 검문소를 지나갈 때마다 뇌물을 요구하는 군경들의 행패에 분노해 농작물을 죄다 엎어 버리는 시위를 벌였을 정도로 썩은 공권력도 마약 퇴치를 가로막고 있다.
아편이 원래 음지에서 거래되는 것을 볼 때 아직도 많은 아편 농장이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될 뿐 아니라 단속해야 할 현지 군경들도 많은 수가 연루되어 있다 보니 이들이 뇌물도 받고 단속도 무마시키며 아예 겉으로는 밀이나 다른 곡물을 심고 잘 안 보이는 험난한 곳에는 한가득 양귀비를 키우는 곳이 허다하다.
게다가 미국과 국제안보지원군이 주둔했을 때 허구한 날 탈레반의 자금줄을 끊고자 지원했던 돈도 단속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대부분 부패한 아프가니스탄 구 정부에 의해 횡령되어 극히 일부의 주머니로 들어가 사라졌다. 단속 수준도 뇌물을 못 바치는 집안, 가장을 잃고 양귀비 재배로 벌어먹는 집안의 밭을 급습하여 무작정 양귀비를 베어 버리는 것이었다. 이런 마약 단속에 대한 증오는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저항할 정도로 커져 2009년에는 마약단속 경찰 트럭이 양귀비 밭에 몰래 숨겨 놓은 지뢰에 터져 23명이 죽는 사건까지 터졌으며 아예 탈레반에 가담하는 이들까지 생겨나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구 정부가 골치를 썩기도 했다.
마약 단속반의 불법행위
아프가니스탄 경찰의 마약 단속에 대하여 되려 아직도 많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아프가니스탄인을 죽이려는 미국과 그 미국의 개들인 국제안보지원군에 매수된 매국노들의 짓으로 여기며 증오한다. 아프가니스탄 마약 단속반들이 워낙 깡패짓을 하고 다녀서 현지인들에겐 도적이라고 악명이 높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기자들이 현지 취재를 하는데 마약 단속반들이 벌이는 행패가 문제임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외국 기자가 보는 앞에서 그들은 식사 시간이 되자 단속 대상이 아닌 사람들의 밭에서 과일과 채소를 멋대로 가져와서는 싸온 도시락과 같이 지들끼리 실컷 먹어 버렸다. 이 막장짓을 두 눈으로 모두 본 기자들이 하도 어이 없고 기가 막혀서 "돈도 안 주고 멋대로 훔쳐먹어도 되냐?"고 따졌더니 그들이 한다는 소리가 가관인데 "어차피 우릴 싫어하는데 뭐하러 좋게 대해주냐?"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니 현지인들은 탈레반을 따라서 저런 놈들을 죽여버리는 게 낫다며 무섭도록 증오하고 있다. 때문에 아이들이나 여자들이 마약단속반들에게 돌팔매질을 할 정도로 단속이 어렵다.
양귀비꽃의 생필품화
아프가니스탄은 주식인 빵, 식용유, 비누 같은 물품들을 구하기 어려운 시골이 가득해 양귀비꽃이 거의 생필품화돼 버렸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꽃잎은 잼을 만드는 데 쓰고, 씨앗은 갈아서 빵을 만들거나 식용유를 짜고, 마약을 추출하고 남은 줄기는 말려서 장작으로 쓴 뒤 나온 재로 비누를 만드는 식이다. 거기다가 아프가니스탄의 병원들은 의약품도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아편을 비상약으로 쓰는 경우도 많다. 가난한 국가들에선 흔한 일인데 한국도 휴전 이후 50~60년대에 병원 갈 돈도 없고 병원 가기도 힘든 시골에서 몰래 양귀비꽃을 심고 아편을 추출해 극소량을 약 대신 쓰기도 했으며, 북한에서 국민 1/3이 마약을 한다는 게 열악한 의료실태 때문에 마약을 진통제로 쓰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현재도 양귀비 밀경작의 90% 이상이 도서/농촌 지역 60대 이상 노인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으며 경찰들도 이를 무작정 잡을 수가 없어 규모가 큰 곳만 본보기로 잡아내는 형편이다.
신용거래와 가뭄
아프가니스탄에서 낙농협동조합을 운영하는 세라 체이스(Sarah Chayes)는 아프가니스탄의 아편 재배 요인을 탈레반의 강압이나 높은 가격 때문이 아니라 신용거래와 1990년대의 가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아프가니스탄인들한테 돈을 빌릴 루트는 친척을 제외하면 아편상밖에 없다. 아편상은 대출을 해주고 아편으로 대금을 치르도록 요구한다. 과일나무는 과일을 맺기까지 5년이 걸리고 한번 흉작이 들면 그 폐해가 수십 년씩 이어지는 반면 아편은 땅에 심기만 하면 그해에 바로 수확할 수 있어서 과일나무에 비해 유리하다. 1990년대 말 아프가니스탄에 가뭄이 발생해 수많은 농민이 피해를 입었고 그 경험 때문에 아편을 많이 재배한다는 것이다.
결론
단순히 양귀비꽃을 불태우거나 훼손하는 단속 및 다른 농작물을 대신 심으라는 종전의 행위는 일절 도움이 안 된다. 그렇게 해 봐야 들어오는 돈이 더 적고 무엇보다 전술한 생필품 자체를 구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즉, 저런 문제까지 다 해결해야만 마약 단속에 도움이 되는데 열악한 곳에 물자를 수송하는 문제도 어렵지만 애써서 겨우 수송해 봐야 물자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걸 일부가 가로채서 배를 채울 게 뻔하다. 종전에 시행하던 밀이나 여러 농작물 씨앗조차도 대부분 착복되어 사라졌으며 이 때문에 양귀비가 많은 지역에서 재배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오죽하면 미국은 양귀비들을 아예 돈 주고 사서 불태우는 작전까지 구사했다가 비난 여론에 밀려 포기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미군 내부에선 차라리 우리가 양귀비를 사는 게 괜히 헛돈 버리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주장이 거셌다.
참고로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이복아우이던 아흐마드 왈리 카르자이(احمد ولي کرزی)의 별명은 마약왕이었다. 카르자이가 파키스탄의 전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파키스탄이 마약 유통을 단속하지 못한다고 불평하자 무샤라프가 어이없어하며 "당신 동생이나 잘 단속하쇼"라는 비웃음을 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나중에 왈리 카르자이는 나에겐 마약이 있기에 아무나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고 자신만만했다가 2011년 7월 12일 경호원들이 배신하여 총알 수십여 발을 맞고 끔살당했다. 탈레반이 경호원들을 매수 및 협박했다고 발표하면서 여전히 헬게이트임을 증명해 버렸으며 결국 권력층이 마약 거래에 깊이 관련되어 있고 저런 생활 문제가 깊숙히 들어간 아프가니스탄에서 마약 재배가 사라질 일은 요원하다. 특히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4년 아프가니스탄의 양귀비 생샨량은 약 6,400t을 기록하여 지난해보다 재배량이 17% 늘었는데 이는 사상 최대의 재배 수치를 기록한 것이다.
현황
2017년에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유엔에서 공동으로 양귀비꽃 재배조사를 한 결과 아프가니스탄 내 양귀비 재배면적이 87%나 늘어나는 등 전년에 비해 급상승했다.
2021년 8월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정상 국가처럼 보이기 위해 양귀비 재배를 금지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국외원조까지 중단된 상태라 어쩔 수 없이 다시 재배되는 실정이다.
2021년 12월 탈레반이 집권한 지 몇 달이 지났지만 먹고 살 길이 없고 탈레반 치하에서 최악의 경제난을 겪다 보니 오히려 아편 농사는 크게 늘었으며 아편과 헤로인 중독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
그러나 2023년엔 정권이 안정화되자 아편 탄압을 시행하였고 전체 농경지 생산량의 52%에 달하던 아편이 1%로, 아편 생산량의 95%가 감소하여 미얀마에게 뒤처지게 되었다. 24년에는 조금 늘었지만 전성기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다. 앞으로 장기간 관찰해야겠지만 현 상태로서는 완전 근멸되었다고 할 수 있다.
탈레반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이, 정부군에 맞서는 반군 신세였던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시절과는 달리 2021년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상 마약 근절 등의 이상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반군, 군벌의 돈줄을 끊기 위해서라도 아편 탄압을 해야만 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불안한 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워낙 재배를 많이 해뒀던지라 재고가 엄청나게 남아있으며, 이 재고들을 통해 거래 자체는 가격만 높아진 채 지속중인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메스암페타민과 같은 다른 마약에 손을 대고 있다는 기사도 존재한다.
사회
샤리아를 공식 법률로 하는 것을 지지하는 무슬림 여론이 99%라는 통계가 있다.
특히 시아파 근본주의 신정국가인 이웃나라 이란에서 만든 드라마 가지고도 저질이니 퇴폐적이라느니 하면서 까대는 나라이니 굳이 더 말이 필요할까? 이란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이란은 바로 이웃나라 아프가니스탄과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슬람 공화국 출범 후에도 이란은 여전히 중동에서 민주주의와 여성 인권에서 그나마 순위권 안에 드는 국가다. 그럼에도 여성과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차별과 인권탄압이 심각한 국가로도 악명이 자자하며 그 때문에 많은 이란인들이 다른 나라로 망명을 갈 정도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차이가 있기는 해서 카불 같은 북동부 지역으로 가면 나름대로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데 반해 서부나 남부 지역으로 갈수록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다.
전체적으로는 보수적인 여론이 강한 나라이지만 문화적으로 무조건 꽉 막혔냐면 사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사실 인도반도 등 남아시아 및 중동이나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위성방송이 생각 이상으로 잘 보급되어 있기 때문에 돈만 있으면 할리우드 영화나 유럽 축구리그 경기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수준이 된 지가 꽤 되었다. 2000년대 탈레반이 물러난 후 텔레비전 수상기가 급속하게 보급되면서 적어도 인도 영화나 외국 드라마 같은 것도 볼 수 있게 된 데다 언론의 자유가 생각보다는 잘 보장된 편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얘기지만...
문제는 탈레반 세력이 여전히 큰 세력으로 잔존해 있기 때문에 이들이 방송사와 언론사에 테러를 저지르거나 기자, 영화 감독, 배우들한테 살해 협박과 테러를 저지르거나 기자, 배우한테 압박을 가하는 일이 많다는 거다. 선정적인 프로그램을 내보낸다는 상투적인 이유에서부터 정치인 비리를 폭로할 때 죽일 것이라고 협박하는 일까지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대표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유명 배우이자 100편이 넘는 영화들을 찍은 영화 감독인 살림 샤힌(Salim Shaheen)만 해도 과격 무슬림들로부터 비종교적 액션 영화를 제작한다는 이유로 끊임없는 살해 협박을 받고 있는데 단순 협박으로 그치지 않고 스튜디오에 실제로 로켓포 공격이 날아와 스태프 9명이 죽은 적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부패상이나 전후 막장 치안과 정치 상황이 국내외에 잘 알려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들의 공이 크다. 아프가니스탄 기준으로 제법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는 톨로TV나 1TV 등 상업 방송국의 시청률이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데다 페르시아어 위성방송이나 인도/파키스탄 방송도 꽤 흥하고 있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카타르 같은 다른 중동의 이슬람 극단주의 국가들보다는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상당히 개방적인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은 원래 인도문화권이었던 관계로 인도 대중 문화가 인기인지라 어느 정도 서구화된 인도를 동경하며 문화적으로 개방적으로 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장노년층들의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은 여전해서 갈등이 나름대로 있는 편이다.
아프가니스탄 사회의 병폐들인 막장 치안, 명예살인, 가난한 경제, 관료들의 부정부패나 기업들의 결탁 등 사회부조리와 부패상을 널리 알리고 인도 영화나 튀르키예 드라마 등을 편성하거나 서구나 파키스탄, 인도 음악도 틀어주고 한국 기준으로는 심심하지만 개방적인 프로그램들을 많이 방영하는 등 아프가니스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많이 하기에 TV가 아프가니스탄에 끼치는 영향은 꽤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텔레비전의 보급률이 나름대로 높으나 인터넷은 국토의 대다수가 산지인 데다 인프라를 까는 데 드는 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인해 쓰는 사람이 적다. 그나마도 사용자들이 도시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속도도 느리며 요금도 비싸다. 하지만 사회 부조리를 알리는 창구 역할을 하기 때문에 TV와 함께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맡는다.
2015년 1월 이후로 여성 가수 뮤직비디오 제작 및 공중파 송신이 가능해졌으나 가슴골이나 다리가 조금만 보여도 모자이크 처리를 할 정도로 검열도 심하다. 그나마 권투는 여성이 니캅이나 히잡을 벗고 활동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이다. 태권도도 허용은 되지만 히잡은 꼭 쓰고 경기를 치러야 할 정도로 검열이 심하다. 그래도 1차 탈레반 집권기에 비해 정말 많이 나아진 거다. 그때는 두 종목 모두 여성은 할 수도 없고 만일 걸린다면 하거나 가르쳐 준 사람까지 동반 처형될 각오를 해야 했다. 물론 현재도 여성 인권은 바닥을 치고 있으며 지방 소도시나 외진 시골 지역에서는 여성들이 인간적인 대우를 아예 받지못하는 곳이 많다.
마약, 범죄, 전쟁 등의 문제로 젊은 나이에 사망하거나 마약에 중독되는 사람들이 상당하고 교통이나 치안 등의 문제로 인해 평균 수명도 볼 것도 없이 중하위권인데 남성이 58살, 여성이 62살 수준에 불과하다. 빈곤율도 상당해서 영양실조가 매우 심각하고, 아프리카의 빈곤국과 마찬가지로 결핵으로 죽는 이들도 상당수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가 계속 일어나면서 온라인 쇼핑이 성행하고 있다고 로이터와 톨로뉴스 등 아프가니스탄 매체가 보도했다.
2021년 중반에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전역과 카불을 점령하면서 아프가니스탄 내의 여성 인권이 갈수록 추락할 우려를 낳고 있다.
이슬람 교리를 극한으로 고수하는 국가(아프가니스탄 등등)는 여성에게 부르카 등을 입게 강요한다. 202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공세 후 여성들은 전통 복장으로 응수했다.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작은 나라 부룬디와도 여러모로 비슷한 나라다.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에 경제적으로 굉장히 가난한 최빈국이고 혼란하고 가난한 모국에 비하면 인접한 이웃나라들(탄자니아, 르완다, 이란,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은 그래도 그럭저럭 잘 살거나 경제적으로 가난하더라도 국내 정세 상황과 인프라도 나름 나쁘지 않은 편이다. 두 나라 모두 초기에는 왕국이었다가 왕정이 폐지된 후에 국가 막장 테크를 타면서 내부 민족 갈등으로 내전을 벌인 역사가 있으며 세계 여러 나라들의 외무부에서 여행금지/출국권고로 지정할 정도로 정정이 불안하고 치안이 가장 위험한 나라에 속한다.
아프가니스탄은 고산지대에 부족, 씨족 중심의 사회인지라 매우 고립적인 생활을 하는 소수부족도 매우 많다. 숫적으로는 전체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20 ~ 30명 단위의 부족은 문화/역사학적으로 연구가치가 매우 높다. 무려 5천 년이 된 원시 아리아 종교를 신봉하는 부족도 있는데 이것을 발견한 연구진은 환희의 논문을 써내려갔다고 사례가 있다. 문제는 아프가니스탄이 외부세력으로부터 매우 공격적인 선교를 받던 지역이라 이런 부족에 대한 이슬람 선교사들의 강제 선교와 개종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행정구역 중 하나인 누리스탄은 이름 자체가 빛나는 땅이라는 뜻으로, 1890년대 압둘 라흐만 칸 통치 당시 바라크자이 왕조의 아프가니스탄 아미르국30이 누리스탄(당시에는 카피리스탄) 일대를 정복한 후 1890년대 이전까지 카피르인으로 불렸던 누리스탄인들을 무슬림으로 개종시키면서 붙여진 지명이다. 그리스도인이나 불교 신자를 강제 개종시키는 것도 그러잖아도 인권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마당에 저런 원시부족들을 개종시키는 건 거기에 더해 문화인류학적으로 매우 큰 손실이라 학계의 우려를 사고 있다.
민족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민족구성은 2013년 통계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파슈툰인
42%
타지크인
27%
하자라인
9%
우즈베크인
9%
아이마크인
4%
투르크멘인
3%
발루치인
2%
기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