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 위치, 지리, 총격 이유, 벨벳 혁명, 슬로바키아 총리, 용의자 71세 작가, 체코슬로바키아, 친러 정책
슬로바키아 공화국(슬로바키아어: Slovenská republika 슬로벤스카 레푸블리카), 약칭 슬로바키아(슬로바키아어: Slovensko 슬로벤스코, 문화어: 슬로벤스꼬)는 중앙유럽에 있는 공화국이다. 서쪽으로 체코, 북쪽으로 폴란드, 동쪽으로 우크라이나, 남쪽으로 헝가리, 남서쪽으로 오스트리아와 접해 있다.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는 브라티슬라바이며, 둘째로 큰 도시는 코시체이다. 서슬라브족에 속하는 슬로바키아인이 주요 민족으로, 체코인이 그 뒤를 잇는다. 공용어는 슬로바키아어이다. 이름이 비슷한 슬로베니아는 이 나라처럼 슬라브족에 속하지만, 이 나라는 폴란드, 체코에 가까운 민족이며, 슬로베니아는 주로 주변 남슬라브족과 연관성이 깊다.
현재의 영토에 슬라브족이 처음 도착한 것은 서기 5-6세기의 일이다. 서기 6세기 후반에는 아바르 칸국의 지배를 받았다. 서기 7세기에는 사모가 사모 왕국을 세울 때 주요한 역할을 했으며, 서기 9세기에는 아바르 칸국이 해체되자 니트라 대공국을 세웠는데 이는 후에 모라비아 왕국에 의해 점령되었다. 서기 10세기에는 대모라바 왕국의 해체로 헝가리 대공국이 세워졌는데 이는 1000년에 헝가리 왕국으로 바뀌었다. 13세기에 몽골의 유럽 원정으로 영토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벨러 4세에 의해 복구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가 해체되어 체코슬로바키아가 세워졌는데, 슬로바이카는 그 일부로 존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나치 독일의 종속국인 슬로바키아 공화국 형태로 유지되었다.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 쿠데타로 체코슬로바키아가 공산국가가 되었는데, 이후 프라하의 봄 등의 사건이 이어지다가 1989년 벨벳 혁명으로 공산주의 체제가 종결되었다. 슬로바키아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평화적으로 해체되어 1993년 1월 1일부터 독립국이 되었다.
슬로바키아는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국민들에게 보편적 건강보장 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무상교육과 육아휴직이 보장된다.[4] OECD, 유럽 연합, 유로존, 솅겐 지역, 국제 연합, 북대서양 조약 기구,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 세계무역기구 등의 회원이다. 여덟 개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있으며, 2019년 기준 인구당 차량 생산량이 가장 높은 국가이다.
지리
카르파티아 산계에 있어 평야부는 적다.
슬로바키아는 북위 47°~50°, 경도 16°~23°E에 위치해 있다. 슬로바키아의 풍경은 주로 산악 지형으로 유명하며, 카르파티아 산맥이 국가 북부 대부분을 가로지르고 있다. 이러한 산맥 중에는 파트라-타트라 지역(타트라 산맥, 그레이터 파트라 및 소 파트라 포함), 슬로바키아 광석 산맥, 슬로바키아 중앙 산맥 또는 베스키드의 높은 봉우리가 있다. 가장 큰 저지대는 남서쪽의 비옥한 다뉴브 저지대이며, 남동쪽의 동부 슬로바키아 저지대가 그 뒤를 따른다. 숲은 슬로바키아 육지 표면의 41%를 차지한다.
총격 받은 슬로바키아 총리, 용의자는 71세 작가
15일 암살 시도로 추정되는 총격을 받고 병원으로 이송된 로베르트 피초(60) 슬로바키아 총리가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토마스 타라바 슬로바키아 부총리는 이날 밤 “현재 피초 총리는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병원 치료가 잘 진행되었다고 믿는다”고 했다. 현지 언론 ‘악투알리티(aktuality)’도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피초 총리가 수술을 받았고, 안정적인 상태에 있다고 보도했다.
피초 총리는 이날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로부터 북동쪽으로 약 180㎞ 떨어진 마을 핸들로바에서 정부 회의를 주재하고 나와 지지자들과 인사하던 중 총격을 받고 쓰러져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피초 총리는 복부와 가슴에 4발의 총상을 입었으며, 이 중 한 발이 복부를 관통해 출혈이 상당했다고 한다. 응급 헬기로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4시간 동안 응급 수술을 받은 후 현재 의학적으로 유도된 혼수상태(induced coma)에서 치료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은 현장에서 체포된 총격 용의자가 슬로바키아 국적의 71세 남성 J.C 브란이라고 보도했다. 슬로바키아 남부 레비체 출신인 브란은 시집 3권을 출간한 슬로바키아 작가협회 회원으로 알려졌다. 그는 8년 전 레비체 지역에서 ‘폭력 반대 운동’이라는 단체를 설립한 이력도 있다. 브란의 아들은 악투알리티에 “아버지는 합법적으로 총기를 소유하고 있었다”면서 “그러나 아버지가 무엇을 계획했고 의도했는지는 전혀 모른다”고 했다. 그는 브란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일각의 주장을 부인했으며, 브란의 정치 성향에 대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버지는 피초에게 투표하지 않았다는 것뿐”이라고 했다.
마투스 수타지 에스토크 슬로바키아 내무장관은 “초기 정보에 따르면 용의자는 정치적 동기를 갖고 있었다”고 했다. 총격 사건이 벌어진 당일은 슬로바키아 의회가 공영방송 RTVS를 폐지하려는 정부안 논의에 착수한 날이다. 지난해 10월 세 번째로 총리 임기를 시작한 피초 총리는 반(反)민주주의적 행보를 보여왔다. 부패 사건을 수사해온 국립범죄청(NACA)을 지난 3월 폐지한 데 이어 정부를 비판해온 슬로바키아 공영방송(RTVS)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총격 사건이 벌어진 15일은 슬로바키아 의회가 정부가 제출한 RTVS 폐지안 논의에 착수한 날이었다.
슬로바키아는 1918년 건국된 공산국가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부였지만, 1989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일으킨 ‘벨벳 혁명’이 성공한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단일 정부 구성 협의에 실패하자 1993년 1월 1일 분리독립했다. 1998년 주린다 총리 시절부터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는 등 친(親)서방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 왔다. 그러나 과거 언론·야권 인사 탄압 논란 등으로 총리직을 사임했던 피초 총리가 지난해 총선에서 승리해 다시 집권한 이후 노골적인 친러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피초 총리는 취임 직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중단을 발표하고 유럽의 또다른 친러파인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와 함께 “EU의 우크라이나 지원 패키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