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대체산업화(輸入代替 産業化 / Import Substitution Industrialization, ISI)란 원조,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재화를 국내에서 생산하도록 이끄는 것을 말한다. 말 그대로 수입을 대체하기 위해 관련 국내 산업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수입대체, 수입대체 전략이라고도 한다.
수입대체산업화 배경
제1차 세계 대전당시 전쟁상태를 맞아 국제적 무역시스템이 경색되었고 전쟁상태에서 적대국으로부터 자원수급이 막힌 각국은 적대국이 생산하던 자원을 생산하기 위해 자급자족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1차대전 당시 경제호황을 맞았던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전쟁 이후 유럽의 생산력이 복구되자 수출하던 상품이 남아돌게되자 높은 관세, 무역 수량 제한등의 보호무역적 경제정책을 해법으로 꺼내들었다. 스무트-홀리법(Smoot-Hawley Tariff Act)에 의하면 관세율이 무려 59%에 달했고 결국 대공황을 발발시켰다. 같은 시기 남미 국가들도 이러한 경제이론에 영향을 받았으며 동시에 남미 국가들은 종속이론을 수용하여 자신들이 수출하는 상품이 약탈당하고, 수입하는 상품이 폭리를 취한다고 생각하여 수입대체산업화를 주 전략으로 채택했다. 재미있게도 당시 이 정책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는데 왜냐하면 1차대전이후 곧바로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국제적 무역시스템이 또 붕괴되었었기 때문이다. 영국, 미국도 공산품 대신 군수품 생산하기 바빴고 바다를 봉쇄당한 나치 독일은 말할 것도 없었다. 곡창지대인 프랑스, 동남아시아, 우크라이나가 전장의 한복판이 되어서 국제 곡물가는 하늘을 치솟았고 군수품의 원재료를 생산하던 남미는 크게 부유해졌다. 이 시기 아르헨티나도 팜파스 곡창지대의 농업생산력을 기반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이러한 수입대체산업화는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들도 채택하였고, 1960년대 초까지는 라틴아메리카 일대에서 성과를 냈지만 전쟁 상황이 진정되고 국제적 교역이 복원된 이후 1960년대 중반기부터 점차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제조업 대국이던 영국, 미국, 독일등의 서방국가들이 만들어낸 고품질의 상품들이 세계시장에 다시 쏟아지자 조잡한 기술력에 비싼 자국산 원재료를 쓰는 자국 공산품들은 부실한 품질 관리와 그로 인한 신뢰도 하락과 맞물려 국내 소비자들에게 외면받고 수익성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동남아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기근상황도 해결되고 수리시설들이 전후복구되면서 농산물 가격도 급락하면서 수출액도 급전직하하기 시작했다. 이로인해 무역수지가 크게 악화되고 외채는 악화일로를 걸었는데 이를 타개하기 위해 많은 외채를 빌려서 자국의 공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세계최대의 곡창지대를 가진 남아메리카가 이 외채를 가지고 우크라이나에게 소련이 한 것처럼 수리시설 확충과 경지정리 산업을 한게 아니라 공업을 육성하려고 하다가 실패를 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가뜩이나 농산물 수출액 감소로 무역수지가 악화된 마당에 국산화 실패와 품질 문제로 기계를 수입에 의존하면서 무역역조 현상이 심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산성이 꾸준히 악화하면서도 어떻게든 외채를 빌려 꾸역꾸역 막던 좀비기업들은 외부충격에 대한 자생력이 있을리 없다. 그러던 중 오일 쇼크가 발생. 전세계에 공급충격이 강타했다. 오일 쇼크 때문에 심각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이를 끝내기 위해 폴 볼커 연준 의장이 20%에 달하는 대대적인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미국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경기가 둔화되기 시작했고 그나마 1차 산업이 수익을 내가면서 버텨가던 상황에 중남미에 투자한 미국 투자자들이 급히 자금을 회수하며 유동성이 말랐다. 거기에 고금리 때문에 경기가 침체되자 자원 소비가 줄어들자 자원가격이 바닥을 치게되고 1982년을 멕시코를 시작으로 중남미 각 국가에서 폭등한 금리로 인해 불어난 엄청난 외채 상환 문제에 시달리게 되었다. 중남미 각국은 IMF의 금융구제까지 받기에 이른다. 이때를 기점으로 수입대체산업화 정책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대부분의 중남미 각국에서 국가주도로 설립된 많은 기업들이 헐값에 외국기업에 매각되었다. 외국기업들은 다국적 기업들이었고 당연히 남미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려고 들어온 것이라, 높은 기술력과 세계각지의 원자재 산지에서 최적화된 상품판매 물류운송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이에 대한 반발한 남미 각국들은 이를 재국유화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했지만, 이런 짓을 하면 상품판매 경로와 원자재 수입로, 기술도입도 막히기 때문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 배를 가르는 짓이나 다름이 없었다. 수입대체산업화의 실패로 국가 실패상태로까지 빠진 90년대 당시의 남미 지역의 경제성장률은 형편없었고 그야말로 국가가 외국기업들에게 넘어가는 상태로까지 치달았으며 국가 구성원 전원이 평등하게 가난해졌다.
이때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이후에는 남미각국은 투자를 자원개발 쪽에 몰아서 상당한 성과를 이룬다. 특히 2000년대는 중국이 세계 원자재 수요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성장하던 시기라 라틴아메리카의 두번째 "황금기"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둔화하기 시작한 2014년 이후로 자원값이 하락하며 다시금 침체기의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2010년 호황기때 얻은 국부를 "자원개발산업"의 건전성과 발전을 유지할정도의 자금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복지에 낭비한 바보도 있었으니 그게 현재 헬게이트가 열린 베네수엘라다. 칠레나 에콰도르는 그나마 이번에는 옆나라처럼 되지않았고,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 개발처럼 앞을 내다본 투자를 통해 전기 배터리 산업을 지배하는등, 침체기이지만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단점
현대 경제정책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중상주의에 민족주의 등을 결합한 현대버전이다. 대개 비교우위에 따른 국제무역 자체를 적대적으로 인식하고 있으므로, 무역량을 줄이기 위해 자급자족을 꾀하는 공산주의나 자연주의 사상가들에게 열정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추구하는 목적이 중상주의와 다를바 없다. 수입대체산업화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도 외국에서 우리 자원과 생산품을 뺏어간다고 생각해 자급자족을 지향하려는 목적으로 한 것이었으니 이것도 중상주의와 완벽하게 똑같다.
긍정적인 적으로 묘사하는 측에서 일종의 국영화 또는 무역장벽같은 것으로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에 외화를 절약할 수 있고, 국내 산업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만성적인 무역 적자를 보고 있는 경우 국제수지의 불균형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수요가 있는 시장을 대상으로 생산력, 고용을 늘리기 때문에 위험, 비용이 적다. 또한 산업시설이 구축되어 있다면 전후방연관관계를 모두 발현시키기 쉽다.라는 것인데 실제로는 기대한 효과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어찌보면 공산주의 등장 이전의 중상주의보다도 못한데 중상주의는 최소한 수출산업을 육성하기라도 했다.
당연히 비교우위에 따른 무역진흥에 정반대의 목표가 펼쳐져있으니 산업침체와 산업 경쟁력 감소, 생산량 감소가 발생하고, 자국이 비교우위한 상품 개발에 들어가야할 자원을 해봐도 안되는 산업에 투자하게 된다.예를들어 우크라이나처럼 자국에 방대한 농지가 펼쳐저있다면 미국같이 농사를 최대한 효율화하면 되는데 굳이 자국에서 모든 공산품을 생산하기 위해 수리시설이나 비료공장을 지을 돈으로 자동차 공장을 짓게 된다면 딱봐도 느끼겠지만, 경쟁력 부족으로 망하기 쉽다.
현실의 아르헨티나의 예시를 보면 이미 목축업에서 전세계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공업을 발전시킨다면 쇠고기 통조림, 육포가공, 쇠가죽 피혁 생산등 연계산업을 발전시켜 세계 목축 가공품 시장의 파이를 점유하고 그 재원으로 필요한 물품을 수입하는 것이 당연했다. 고품질의 쇠가죽 피혁이 인정받으면 그 다음은세계 제일의 좋은 원료를 쓴다는 마켓팅을 통해 가죽패션산업을 육성하는 등, 자신의 강점을 살려 경쟁력을 갖춘 산업을 육성하는게 상식이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종속이론등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영향을 받아 수입대체산업화를 채택했기에 목축업은 자국 소비를 충분히 충당하고 있으니 목축업과 관련산업에 전혀 투자를 하지 않았다. 수출은 곧 헐값에 약탈당하는 것이고 서민들의 식료 물가가 오른다고 여겨 수출할 생각이 아예 없었으니 투자를 해봐야 과잉생산이긴 했을 것이다. 결국 현재까지도 낮은 생산비와 높은 품질의 소를 키우면서도 세계시장에서 아르헨티나산 쇠고기와 소관련 상품들은 영향력이 거의 없었다. 외채로 빌려온 돈은 경쟁력 하락으로 외화유출이 진행되고 있는 소비재 산업에 투자를 했는데 최종생산품은 아르헨티나 산이지만 원료와 기계는 전부 외국산이었다. 실패하고서야 다들 깨달은 것이지만, 안되는건 안되는 이유가 있는 것인데 왜 농구선수가 농구를 하지않고 굳이 야구를 하는 것과 같은 짓을 했는지 남미인들 스스로도 이해를 못한다.
마이클 조단은 농구의 레전드지만 야구도 잘했다. 농구를 1차 은퇴하고 트리풀 A까지 갔으니 선수로쳐도 비범한 선수급이다. 하지만 마이클 조단이 돈을 벌려면 농구를 해야하는지 야구를 해야하는지 우리 모두 답을 알고 있다. 반대로 구루병에 걸린 곱추들은 주로 구두닦이를 한다. 구두를 닦으려면 원래 낮은 곳을 보고 허리를 굽혀야하므로 구두닦을때는 별 문제가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곱추가 구두닦이 같은걸 하기 싫다고 농구선수가 되고자한다고 하면 그의 인생은 더더욱 고달파질 것이다. 1차산업이 싫어서 비교우위가 있는 농업이 아닌 제조업을 키우고 싶다고 하면, 그때는 그렇지않아도 제조업 선진국의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과 절대우위의 대결을 펼쳐야한다. 곱추가 마이클조단에게 농구대결을 거는게 자살행위이듯이, 남미국가들이 선진국과 제조업 상품 대결을 하는건 너무나도 눈에 보이는 자살행위였다. 공장 좋아하는 공산주의자들은 1차산업으로 잘사는게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미국은 농업생산력으로 전세계를 먹여살리면서 돈을 벌고 있고, 미국은 제조업도 잘하니까 불만이 있다면 노르웨는 어업과 석유, 뉴질랜드나 호주는 목축과 농업 자원개발업 만으로 아무 문제없이 국가 경제를 키워나갔다. 아르헨티나는 수입은 물론 수출마저도 수백퍼센트의 수출관세와 쿼터를 둘만큼 교역을 적대시했고, 지금도 하고 있기 때문에 망한 것이다. 물론 하비에르 밀레이의 당선으로 몇년간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아르헨티나 지식인들에게 마르크스주의, 페론주의가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의회나 지방정부의 지지를 받기 어려워서 단기간의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고 정권이 망하길 기도하는 페론주의자들의 방해로 단기간에 극적인 상과를 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정권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미래 전망이 그리 좋지도 않다.
대공황을 이끈 스무트 홀리 관세법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소비시장을 가지고 있었던 그 미국마저도 자국 소비시장만 가지고는 완벽한 고립계로 규모의 경제를 갖출 수 없었다. 경제에서는 어디까지나 성장률을 1순위로 중시하기 때문에 아무리 내수규모가 커도 무역으로 인한 이득을 완전히 상쇄할 수 없다. 또한 최종재에만 중점을 둘 경우, 오히려 중간재 수입이 늘어남에 따라 되려 외화수급의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실제로 중미 니카라과,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의 주력 산업인 의류섬유산업은 해외에서 원사와 원단을 수입 및 가공해서 완제품으로 만들어 바이어에게 넘겨주는 방식의 사업방식이 고착화되었는데, 때문에 원자재와 부자재의 가격 상승과 같은 대외악재에 대단히 취약한 편이다.
대한민국
수입대체를 실시한 시기는 1960년대이며, 제2공화국에서부터 계획이 수립되었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처럼 이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에서도 기조 자체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때 시멘트, 비료, 식량, 자동차, 무기 등 다방면에 걸쳐 국산화를 추진, 장려하였다.
6.25 전쟁 이후 대한민국은 건물, 산업시설, 사회간접자본을 재건, 확장해야만 했고 이에 따라 건설 자재의 수요 급등은 필연적인 사실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건설 자재들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에 이승만 정부 시절 핵심 건설 자재인 시멘트 국내 생산을 추구하여 UNKRA(국제연합한국재건단)의 도움을 받고 연산 20만톤 규모의 문경시멘트 공장을 건설하게 된다. 이후에도 기조는 유지되어 1962년부터 쌍용양회 영월공장, 한일시멘트 단양공장, 현대시멘트 단양공장, 아세아시멘트 제천공장, 동양시멘트 삼척공장, 쌍용양회 동해공장 등이 연이어 세워졌다.
해방 이후 농업국가 한국은 흥남비료공장이 북한에게 넘어가게 되어 화학비료를 전량 해외수입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에 이승만 정권은 미국 해외개발처(AID) 차관과 내자를 투입하여 세계적 규모의 제1비인 충주비료공장을 건설토록 하였다. 이는 1959년부터 시운전에 들어갔으며, 1963년부터 연간 요소 8.5만톤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연간 국내 수요의 1/4에 이르는 규모였다. 1963년에는 제2비인 나주 호남비료공장이 가동되기 시작하였으며, 1967년에 이르면 제3비인 영남화학 울산공장, 제4비인 진해화학 공장, 제5비인 한국비료 울산공장 그리고 용성인비 생산시설을 갖춘 풍농비료가 잇따라 완공되어 가동에 들어갔다. 그 결과, 1967년 질소자급률 41.9%, 인산 자급률 12.6%, 칼리 자급률 5.3% 등 국내 자급률 25.3%를 달성하며 국내 연간 생산량 113.2만톤을 기록하였고, 1970년, 마침내 국내 생산량이 국내 비료 연간 소비량을 초과하게 되었으니 이는 1962년에 비해 성분 중량 기준으로 20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1971년 통일벼 보급에 따라 일시적으로 비료 수요가 급증하는 호재 속에서 수출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잉여 비료 수출 활로를 모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과잉생산을 해결할만한 물량 확보에 실패하였으며, 합작으로 설립한 회사로부터 인수해야 하는 비료의 인수가격이 높다는 점과 합작상의 계약 불리(일정량을 의무적으로 인수, 그렇지 못하면 정부는 수출보상금을 지급) 문제에 직면하여 제1차 석유 위기와 함께 생산 위축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증산을 멈추지 않았고, 제6비인 충주 공장[과 제7비인 여수 남해화학 공장 등을 뒤이어 건설하고 1974년부터 자체적으로 유안을 생산하는 등 질적 개선을 꾀하였다. 그 결과 1970년대 후반, 대한민국은 연산 실중량 300만톤, 성분중량 100만톤 이상의 화학비료 생산능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이는 1970년대의 것보다 각각 갑절을 웃도는 것이었다. 1980년대 들어 신군부 정권은 이것의 수출경쟁력이 없고 국내 수요에 비해 너무 과다하다고 판단하여 1981년 제1차 비료산업 합리화 계획을 수립, 실시함으로써 연간 80.3만톤 수요로 하향 조정하였다. 이에 따라 계약 만기에 맞춰 영남화학 제1공장(진해화학)을 폐쇄하고 영남화학과 남해화학을 불하하였으며 제6비인 충주비료공장이 매각되어 폐쇄되는 등 대대적인 감축이 이루어졌다.
2019년 한일 무역 분쟁이나 2021년 요소수 대란 당시 안보 차원에서 해외 공급망에만 의존하기보다는 경제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일정 부분은 국산화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있었다. 사실 수입대체산업화가 세계대전 당시에는 성과를 냈었던 것처럼 적대국이 존재한다면 그 나라에서 생산하는 물자는 교역이 불가능하니 자급이 필요하다. 이후 수입이 규제됐었던 불화수소·포토레지스트·불화폴리이미드 등의 국산화가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이런 과정은 서방국가가 중국과의 경제적 협력이 중단되고 적대적인 관계로 들어서게 될 것이라는 예측에 따른 것이다.
무엇이 대한민국과 주요 중남미 국가들 간에 큰 격차를 초래했을까
- 1953~2014년 한국 및 주요 중남미 국가들의 실질 GDP 변화 추이
- 측정단위 : 2011년 미국 달러 PPP 기준, 실질 GDP
1950~60년대 한국은 주요 중남미 국가들보다 가난했습니다. 한국전쟁이 멈춘 1953년 한국의 GDP(2011년 미국 달러 PPP 기준)는 21억 달러 였고, 아르헨티나 · 칠레 · 베네수엘라는 각각 49억 · 29억 · 39억 달러였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듯이 오늘날 한국의 경제규모는 대부분 중남미 국가들보다 월등히 큽니다. 2014년 한국의 GDP는 1조 7500억 달러인 반면, 아르헨티나 · 칠레 · 베네수엘라는 각각 8,600억 · 3,800억 · 4,700억 달러에 불과합니다.
무엇이 대한민국과 주요 중남미 국가들 간에 큰 격차(divergence)를 초래한 것일까요?
우선, 한국과 중남미 국가들이 어느 시점부터 다른 길을 걷게 되었는지 살펴봅시다.
- 왼쪽 : 1953~69년 한국 및 주요 중남미 국가들의 실질 GDP 변화 추이
- 오른쪽 : 1970~90년 한국 및 주요 중남미 국가들의 실질 GDP 변화 추이
왼쪽 그래프를 살펴보면, ▷한국과 중남미는 1960년대 초반까지는 비슷한 추세를 보이다가, ▷한국이 1963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오른쪽 그래프에 나오듯이, ▷한국은 1970년대에 독보적인 성장세를 이어갑니다. ▷1979년 이후 잠깐 주춤하다 ▷1986년부터는 중남미 국가들과는 완전히 다른 수준의 길을 걷게 되죠.
1961년 군사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찬탈한 박정희정권이 기존 경제개발 계획을 수정한 이후, 한국은 수출진흥형 산업화 전략(export-oriented industrialization)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갔습니다. 박정희정권은 수출기업에 각종 특혜를 제공해주며 수출을 독려하였습니다. 또한 기업이 특혜를 악용하여 국내시장에서 독점자로서만 행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종 규율도 부과했습니다.
1970년대부터는 중화학 공업화를 추진하였고, 제조업 설비투자에서 중화학 공업 비중이 76%까지 확대되었습니다. 또한, 수출액에서 제조업 부가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1963년 15%에서 1995년 92%로 커졌죠.
이러한 수출진흥형 산업화 및 중화학 공업화 전략이 평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닙니다.
1979년 제2차 오일쇼크가 발생하자 중화학 공장들의 가동률은 크게 떨어졌습니다. 당시 한국은 시장의 자연발생이 아닌 정부의 인위적인 정책으로 중화학 공업을 육성했던지라, 비효율 및 중복투자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습니다. 또한 1979년 미 연준 의장이 된 폴 볼커가 통화긴축 정책을 펼치면서 국제적 고금리 환경이 조성된 결과, 중화학 공업화를 위해 많은 외채를 끌어왔던 한국은 외채위기를 겪게 됩니다.
그럼에도 한국은 지속적으로 수출증가 및 대외지향적인 정책을 추진해온 덕분에 위기에서 신속히 탈출할 수 있었고, 1986년 3저호황에 힘입어 또 다시 고도성장기를 경험한 결과, 중남미 국가들과는 차원이 다른 경제수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주요 중남미 국가들 내에서는 무슨 일이 발생했던 걸까요?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은 한국과는 정반대의 산업화 전략을 선택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참담한 결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이번글에서는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산업화 전략이 무엇이며 · 왜 그런 선택을 하였는지 ·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떻게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이란 무엇인가
(Import-Substitution Industrialization)
식민지 해방 이후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산업화 전략은 '수입대체'(Import Substitution) 였습니다. 수입대체란 '외국에서 수입해서 사용하던 재화 및 서비스, 특히 제조업 수입상품을 국내에서 만든 생산품으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무역을 통해 외국에서 수입해오던 상품을 더 이상 수입하지 않고, 대신 국내에서 직접 만든다는 말입니다.
중남미가 선택한 수입대체 전략이 한국의 수출진흥 전략과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수출은 해외에 판매하여 돈을 벌고, 수입대체는 해외로부터 물건을 구매하지 않으니 돈을 아낀다는 점이 다른 걸까요? 그런 식으로 무역과 성장을 바라보면 안됩니다. 애덤 스미스가 중상주의를 비판했던 논리[각주:2]를 소개할 때 말했듯이, 화폐와 금은 등의 재화를 축적하는 것은 현대자본주의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각주:3].
수출을 증가시킨다는 말은 비교우위를 가지는 부문에 더 집중한다는 뜻이며, 이를 통해 자원을 생산성이 높은 곳에 집중하여 효율성을 극대화 시킬 수 있습니다[allocation & efficiency]. 수출을 통해 산업화를 달성한다는 말은 해외시장에 물건을 팔아서 얻게 된 외화로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 설비 · 기계 등 자본재를 수입해와 물적자본을 축적한다는 의미입니다[dynamic gain].
또한, 무역을 통해 시장크기가 확대됨으로써 규모의 경제도 달성할 수 있으며[scale effect], 해외기업과의 접촉 및 경쟁증대로 국내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도 있습니다[technology diffusion & competition effect].
이렇게 많은 사항들을 관통하는 수출진흥 산업화 전략의 핵심은 '비교우위에 특화하여 교역량을 늘려나갔다(수출+수입↑)'는 점에 있습니다.
만약 비교우위에 집중하여 수출을 늘려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다른 나라와 교환할 상품도 없으니 수입도 줄어들 뿐더러 아예 교역 자체가 어렵습니다. 다른나라와 무역을 하면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질 뿐더러 생산자들도 외국 자본재를 싸게 들여와 사용할 수 있을텐데, 무역을 하지 않으면 이러한 정태적 이익(static gain)을 누리지 못합니다.
즉, 한국은 앞선 글들[각주:4]을 통해 살펴보았던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가져다주는 이점'[각주:5]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경제발전 전략을 선택했던 겁니다.
반면, 중남미가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은 '비교우위 원리를 따르지 않고 자급자족 경제를 운용하는 것(수출+수입↓)'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비교열위를 가진 상품을 직접 만들지 않고 외국으로부터 수입해 온다면 더 싼 가격에 상품을 이용하게 되고, 국내의 한정된 자원을 보다 효율적인 곳(비교우위를 가진 수출부문)에 쓸 수 있는데, 수입대체 전략은 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수입과 수출 모두 위축되고 맙니다.
왜 중남미 국가들은 이렇게 미련해 보이는 결정을 했을까요?
이전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를 읽으신 분들이라면, "호주가 보호무역으로 이득을 취한 경우를 보면, 비교우위론과 자유무역을 거부한 중남미 국가들의 선택을 무조건 미련하다고 볼 수는 없지 않나?"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겁니다.
1920~30년대 호주는 "영국과는 정반대 상황에 놓여있는 호주는 보호무역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자유무역을 거부했습니다. 호주는 영국과는 정반대로, 비교열위가 수확체증산업인 제조업이고 비교우위가 수확체감산업인 농업인 국가였습니다.
호주가 우려했던 것은 '비교우위를 가진 농업 · 철광석 등 1차 산업(primary sector)에 특화하여 성장할수록, 수확체감 산업만 발전하여 소득분배가 악화되고 · 교역조건이 하락하여 생활수준이 감소할 가능성' 이었습니다.
이때, 수입상품에 관세(import tariff)를 부과하면, 스톨퍼-새뮤얼슨 정리에 따라 '근로자 임금 증대를 통한 소득분배 문제를 해결'하게 되고, 교역조건 개선으로 '국민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를 보면, 자유무역이 아니라 보호무역정책이 '영국과는 다른 상황에 처한 국가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시 중남미 국가들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선택으로 느껴지죠.
그러나 '단순히 수입관세 부과를 통해 특정 산업을 보호하는 것(import tariff) 혹은 일시적으로 무역장벽을 높이는 것(temporary protection)'과 '아예 무역체제를 대내지향적으로 만드는 것(inward-looking trade regime)'은 크게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중남미 국가들이 행한 수입대체 전략은 다른 국가들과의 교역을 중단하여 대외의존도를 줄이는 '전통적인 anti export bias of protectionism' 이었습니다. 이는 호주의 보호무역주의와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중남미 국가들이 대외교역에 보였던 태도가 얼마나 페쇄적이었는지는 한국과 비교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과거 한국이 수출진흥형 전략을 택했다고는 하나, 100% 자유무역을 실시했던 것은 아닙니다. 무역개방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은 보호했으며, 미래를 위해 발전시켜야겠다고 판단한 산업은 전략적으로 선별하여 키워나갔습니다. 국가가 주도적으로 밀어부친 중화학 공업화가 그 예시입니다.
이렇게 한국은 부분적인 수입대체를 시행했음에도, 중남미와는 달리 대외적으로 개방된 무역체제를 항상 추구하면서 교역량을 증가해 나갔습니다.
중남미 국가들은 왜 해방 이후 아예 문을 꽁꽁 잠그는 선택을 했던 것일까요? 모든 선택에는 나름의 논리와 이유가 있습니다. 이제 그들의 논리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 왜 중남미 국가들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멀리했나
- ① 산업화를 위해서 제조업을 육성해야 한다
- [유치산업보호론], 제조업 육성을 위한 국가개입을 정당화 하는데 이용되다
호주가 영국과는 다른 길을 간 배경이 있던 것과 마찬가지로, 중남미 국가들이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을 선택한 데에는 나름의 논리와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중남미 국가들은 자신들의 독특한 경제구조를 살펴보고 향후 경제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 이후에 결정을 내렸었습니다.
중남미 국가들이 자유무역체제를 멀리한 논리와 이유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출처 : 울산광역시 - 울산시사 - 울산을 한권에 담다(2017)
- 왼쪽 : 1972년 과거의 울산. 현대중공업 부지로 매립된 해안에서 파일 정지작업이 진행
- 오른쪽 : 2014년 오늘날의 울산 현대중공업.
▶ 비교우위에 따라 특화해야 하는 산업은 영원히 고정되는가
- 현재 비교우위를 가진 산업이 아니라 다른 산업을 성장 시키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하나
개발도상국이 꿈꾸었던 발전된 경제의 모습은 허허벌판이었던 지역에 공장이 들어서고 공산품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던 울산에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이 건설되고 선박과 자동차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자 "이제 한국경제도 발전했다" 라고 우리 윗세대분들이 느꼈던 그 감정입니다.
중남미 국가들은 '산업화 = 제조업 발전'으로 인식했습니다. 경제발전과 산업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제조업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나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중남미 국가들의 경제구조와 비교우위는 제조업이 아니라 농업 · 원자재 등과 같은 1차 상품 생산에 있습니다. 이들은 제조상품을 생산해낼 능력이 없었고, 더 나아가서 생활수준이 낮을 수 밖에 없는 원인으로 '1차 상품 생산에 치중된 경제구조'를 꼽았습니다. (developing economies' production structures were heavily oriented toward primary commodity production)
이런 상황에서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 정책을 실시하면 "우리 중남미 국가들은 평생 1차 상품 생산에만 특화하는 것 아니냐"(developing countries would forever specialize in primary commodities)는 우려를 하게 되었습니다.
산업화를 위해서는 독특한 경제구조에서 탈피하여 제조업을 육성해야 하는데, 오히려 "1차 상품 생산에 더욱 특화해야 하며, 더욱이 공산품은 평생 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게 이익이다" 라고 알려주는 것처럼 보이는 비교우위론. 당시 중남미 국가들이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멀리할 수 밖에 없던 이유입니다.
- 왼쪽 : 알렉산더 해밀턴 (Alexander Hamilton), 1755 or 1757~1804
- 오른쪽 : 프리드리히 리스트 (Friedrich List), 1789~1846
▶ 유치산업보호론 (Infant-Industry Argument)
- 정부의 일시적인 개입으로 비교우위를 인위적으로 창출할 수 있다
이때, [유치산업보호론]은 중남미 국가들의 불만을 정당화 시켜주는 이론으로 보였습니다.
19세기 초,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과 프리드리히 리스트(Friedrich List) 등은 "경제발전의 초기 단계에 있는 국가에서는 제조업 육성을 위해 정부가 일시적으로 시장에 개입하여 성과를 얻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며, 자유무역이론에 반하는 논리를 개발해 냅니다. 여기서 정부의 시장개입수단은 외국 제조업 상품 수입제한 · 국내 제조업 기업 보조금 지원 · 국영기업 육성 등입니다.
유치산업보호론(Infant-Industry Argument)은 말그대로 '어린아이와 마찬가지의 상태에 놓여있는 산업을 발전과정 초기에 외국과의 경쟁에서 보호함으로써 육성시킬 수 있다'는 논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판단되지만, 초기에는 경쟁력이 없는 산업은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경쟁에서 패배하고 말겁니다. 이때 정부가 외국 제조업 상품의 수입을 제한하고, 국내 제조업 기업에게 보조금을 제공하거나 국영기업을 육성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유치산업보호론은 수입대체 전략과 동의어가 아닙니다. 유치산업보호론은 '정부의 일시적인 개입(temporary intervention)'으로 '비교우위 산업을 인위적으로 창출할 수 있다'(creation)는 것이 핵심이지, 수입대체 전략처럼 무역의존도를 줄이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찌됐든 수입대체 전략을 옹호하는 측은 '제조업 육성을 위한 보호정책의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치산업보호론의 논리를 차용했습니다.(appeal for import substitution to yield a justification for protection of newly established manufacturing industries in developing countries.)
※ 왜 중남미 국가들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멀리했나
- ② 1차 상품 특화는 교역조건을 악화시킨다
- [궁핍화성장]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
- 세계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클수록 수출편향성장(export-biased growth)은 교역조건 악화를 초래
- 세계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자국 RS 이동은 세계시장 RS도 이동시켜 세계시장 가격을 변화시킴
▶ 비교우위에 특화하여 생산을 늘려나갈 때, 교역조건이 갈수록 악화되면 어떻게 하나
- 석유 · 농산품 같은 1차 상품(raw material)을 생산하는 국가에게 비교우위론은 해롭다
중남미 국가들이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멀리한 또 다른 이유는 '1차 상품 생산 확대에 따른 교역조건 악화'(the terms of trade had inexorably deteriorated against primary commodities and would continue to do so)에 있습니다.
이것은 지난글에서 살펴본 호주가 우려했던 사항과 동일합니다.
자국의 수출편향성장(export-biased growth)은 비교우위를 가졌던 수출상품의 상대공급을 증가시켜 교역조건을 악화시킵니다. 이때 자국이 세계시장에 조그마한 영향만 미친다면 자국 수출상품의 상대공급이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세계시장 상대공급곡선은 변동이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1차 상품은 수출국가의 공급에 따라 세계시장의 공급이 크게 변동하기 때문에, 교역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게다가 '1차 상품 수요에 대한 세계 소득 탄력성은 낮기 때문에 1차 상품에 특화하면 수출 소득이 빠르게 증가하지 않을 것'(the global income elasticities of demand for primary commodities were low. export earnings would not grow very rapidly)이라고 중남미 국가들은 판단하였고 이는 수출비관주의(export pessimism)로 이어졌습니다.
이말인즉슨, 다른 나라들이 경제성장을 달성하여 소득이 증가하더라도 1차 상품 수요는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개인을 예시로 들면,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했을 때 빠르게 늘어나는 것은 전자제품 · 자동차 등 제조업 상품에 대한 지출이지, 식료품 등 원자재에 대한 지출은 먹는 양이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변동이 적을 겁니다. 따라서 공산품이 아니라 농산품을 판매하는 사람은 수출로 인해 얻게되는 이익이 느리게 증가하고 맙니다.
- 왼쪽 : 해리 G. 존슨(Harry G. Johnson), 1923~1977
- 오른쪽 : 자그디쉬 바그와티(Jagdish Bhagwati), 1934~
▶ 궁핍화 성장 (Immiserizing Growth)
- 경제성장이 교역조건을 악화시켜 후생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비교우위에 따른 특화가 교역조건을 악화시켜 오히려 후생을 저하시킬 수도 있다'는 논리는 다시 생각해보면 매우 독특합니다. 특화로 인해 비교우위 산업이 더 발달하는 경제성장(biased-growth)이 이루어졌는데, 소득 및 후생수준은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를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러한 맥락에서 '궁핍화 성장'(Immiserizing Growth) 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됩니다. 궁핍화 성장 논의의 발전에는 2명의 경제학자가 기여를 했습니다.
경제학자 해리 G. 존슨(Harry G. Johnson)은 1955년 논문 <경제확장과 국제무역>(<Economic Expansion and International Trade>)을 통해서, (우리가 지난글 교역조건 논의에서 살펴봤던[각주:7]) 특정부문 성장에 따른 교역조건 변화를 설명했습니다(the impact of the expansion on the terms of trade). 수출편향 성장은 교역조건이 감소하고, 수입편향 성장은 교역조건이 증가합니다.
또 다른 경제학자 자그디쉬 바그와티(Jagdish Bhagwati)는 1958년에 두 개의 논문 <궁핍화성장: 기하적 관점>(<Immiserizing Growth: A Geometrical Note>)과 <국제무역과 경제확장>(<International Trade and Economic Expansion>)을 통해서, 교역조건 변화가 후생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습니다(the resultant change in the welfare of the trading nations). 이때, 경제성장이 교역조건 악화를 초래해 후생손실을 불러오는 '궁핍화성장'(Immiserizing Growth) 가능성을 제기하여 경제학계에 이름을 남겼죠.
즉, 해리 G. 존슨의 1955년 논문은 어느 부문이 더 성장하느냐에 따라 교역조건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느냐(direction)를 설명했다면, 자그디쉬 바그와티의 1958년 논문은 이러한 교역조건 변화가 후생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는지(extent)를 분석했습니다.
이러한 연구들을 기반으로, 중남미 국가들은 비교우위를 띄는 산업(=1차 산업)이 확장하여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교역조건이 악화되어 국민들의 후생은 오히려 감소할 수도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1차 상품 특화가 초래할 수 있는 문제가 계속 제기되었고, 중남미 국가들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대신할 무역체제를 선택하게 됩니다.
※ 왜 중남미 국가들은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을 선택했나
- 경제성장을 위한 자본축적은 수입대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앞서 살펴본 '중남미 국가들이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멀리한 이유'는 그저 '왜 이들이 자유무역을 꺼리는지에 대한 합당한 논리(?)'를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자유무역론을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하더라도, (한국의 사례처럼) 적절한 보호무역정책을 구사하면서도 대외지향적인 자세를 유지하며 차츰차츰 교역량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중남미 국가들은 아예 대외의존도를 확 줄여버리는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을 선택한 것일까요?
이제 '자유무역을 멀리할 수 밖에 없었던 소극적 이유'에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을 선택한 적극적 이유'를 알아봅시다.
경제성장 달성에 있어 중요한 건 자본축적(capital accumulation)[각주:8] 입니다.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은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product)을 늘려가는 것이기 때문에, 기계 · 설비 등의 물적자본(physical capital) 축적이 생산 증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다른 저개발국 모두가 그러하듯이) 당시 중남미는 이렇다할 물적자본이 없었습니다. 대신 수많은 잉여 근로자(surplus labor)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즉, 자본은 희귀한 요소(scarce factor)이고 근로자는 자유재(free good) 입니다. 그렇다면 기계 대신 수많은 근로자를 생산과정에 투입하여 생산량을 늘려가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투입량을 증가시켜 생산량을 늘리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물적자본에 비해 근로자의 한계생산성은 낮기 때문에, 노동투입량을 늘린다고 해서 생산량이 크게 증가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물적자본 없이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기술 · 교육 수준을 향상시켜야 하는데, 당시 중남미 여건에서는 오랜 시일이 걸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럼 결국 "경제성장을 위해 물적자본을 어떻게 축적해야 할까"의 문제로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습니다.
저개발국이 경제발전 초기 단계에서 물적자본을 축적하는 좋은 방법은 '외국으로부터 자본재를 수입해 오는 것'(capital goods imports)[각주:9] 입니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받은 차관 · 일본의 배상금 · 베트남 파병 · 독일로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 등의 방법으로 달러화를 들여왔습니다. 외국에게서 받은 달러화를 사용하여, 기계· 설비 등 외국에서 생산된 자본재를 구입하는 방식으로 투자를 증가시켰죠.
그러나 중남미 국가들은 자본축적을 대외의존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앞서 보았듯이, 이들은 "1차 상품 생산국인 우리는 수출 소득이 빠르게 증가하지 않을 것"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본재를 수입해오기 위해 필요한 외환소득(foreign exchange earnings)이 언젠가는 부족해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따라서 자본재 생산을 다른 나라에 의존하는 것은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합니다.
결국 남은 선택은 '자본재를 국내에서 생산함으로써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것'(growth could follow only if domestic production of import-competing goods could expand rapidly)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국내 제조업 기업을 육성하여 기계 · 설비 등의 물적자본을 직접 만드는 방법이 당시 중남미로에게는 최선의 선택으로 보였습니다.
※ 중남미가 수입대체 산업화를 선택한 사상 및 정치경제학적 배경
- 대공황과 2차대전 이후, 새롭게 부상한 민족적 산업 부르주아 계급
-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으로 얻으려고 했던 목표들
- 라울 프레비쉬, 국제경제체제의 구조적 문제를 논하며 비교우위론의 문제점을 비판하다
앞서 이야기한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멀리한 이유 및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을 선택한 적극적인 이유는 경제학의 논리를 이용한 설명입니다. 하지만 중남미의 경제발전 과정을 돌아볼 때 더욱 중요한 것은 '사상 및 정치경제학적 배경' 입니다.
● 대공황과 2차대전 이후, 새롭게 부상한 민족적 산업 부르주아 계급
중남미 국가들은 원래 1차상품을 수출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는 대외지향적 노선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과거 스페인 · 포르투갈 등 유럽열강의 식민지배를 받아온 중남미에서 농장 및 광산의 경영주들은 식민 모국으로 상품을 수출하며 이득을 챙겨왔습니다. 19세기 독립 이후에도 경영주들은 여전히 지배적인 지위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유럽 및 미국으로 1차상품을 수출하는 발전전략이 이들의 이해관계에 맞았습니다.
그런데 1929년 대공황과 2차대전은 중남미 국가들에게 대외지향적 노선이 옳은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세계경제가 불황에 빠지면서 수출에 의존하고 있던 중남미 경제도 타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더욱 중요한 점은 "대공황과 세계대전으로 인해 외국자본과 관련된 세력들이 크게 약화되어 있는 기간 동안에 형성된 중남미의 민족적 산업 부르주아 계급은 1940년대 이후 여러 지역들에서 정권을 장악함으로써 지배계급으로 등장하게 된 바, 이들은 자기이익보호를 위해서라도 지금까지 관행으로 되어 온 국제분업의 조건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각주:10]이었습니다.
1차 상품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는 농장 및 광산의 경영주에게만 이익이 되었지, 일반 노동자는 높은 임금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과거부터 농장과 광산을 지배해온 경영주들은 식민 모국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고, 외국자본이 직접 소유한 곳도 많았습니다.
따라서 새롭게 부상한 중남미의 민족적 산업 부르주아 계급은 이전과는 다른 경제발전 전략을 필요로 하였고, "이러한 분위기에서 중남미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들의 원인을 설명하고 또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며, 내부지향적 발전노선을 강조하는 결집력 있는 이데올로기와 경제계획이 마련되기 시작"[각주:11] 했습니다.
그 경제계획이 바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Import-Substitution Industrialization) 이었습니다.
● 민족적 산업 부르주아 계급이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으로 얻으려고 했던 목표들
① 외국무역에의 종속으로부터 저발전국들을 구제해 주고 자율적으로 규제되는 경제를 탄생시키게 될 것이다.
② 외국무역을 위한 생산에 전념해 온 전통적인 과두지배자들(지주, 광산주, 수출업자 등)이 약화될 것이고, 권력의 재분배는 중간계급 및 하층계급의 참여를 증대시키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정치적 민주화과정이 기대될 수 있을 것이다.
③ 민주화는 … 보다 균등한 소득분배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며, 공업화는 농촌대중들을 생산자로서 뿐만 아니라 소비자로서 현대 자본주의적 생산체계에 통합시키게 될 것이다
④ 경제가 '내부지향적'으로 바뀜에 따라 국가적 정책규정의 중심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 과두지배자들의 몰락, 중간계급의 강화, 빈곤한 계층들의 대량소비사회로의 경제적 통합 등은 독립적인 국가사회 및 독립적인 정부기구의 형성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
⑤ 마지막으로 의식수준에서 산업발전은 독립적인 사회의 기반을 만듦으로써 과학적 기술적 그리고 문화적 후진성을 극복할 수 있게 할 것이다.
- Dos Santos. 1976. 『Contemporary Crisis of Capitalism』. 65쪽
- 염홍철. 1988. 『제3세계와 종속이론』 제2판. 37쪽에서 재인용
중남미의 새로운 지배계급이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으로 얻으려고 했던 목표는 간단히 말해 '외국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경제'와 '민족의 이익 극대화' 입니다.
1차 상품 수출을 통해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전략은 외국의 수요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초래합니다. 민족을 우선하는 계급은 이를 '중심국에의 종속'(Dependence)[각주:12]으로 보았습니다. 중심부(core)인 외국에서 1차상품 수요가 늘면 주변부(periphery)에 위치한 중남미 국가 경제도 발전하지만, 반대로 중심부에서 수요가 줄면 주변부의 경제는 침체에 빠집니다.
이처럼 "종속은 특정한 국가집단이 다른 경제의 발전과 확산에 의해 제약받는 경제를 가지고 있는 상황"[각주:13]을 의미합니다. 제조업을 통해 산업화에 성공한 "지배국가는 팽창하고 스스로의 발전에 자극을 가할 수 있는 반면, 1차상품 수출에 의존하는 종속국가는 이러한 팽창의 반사로써밖에 발전할 수 없을 때 종속의 형태를 갖"게 됩니다[각주:14].
민족적 산업 부르주아 계급은 이를 '신식민주의'(Neo-colonialism)으로 보았고, 완전한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입대체 산업화를 통해 대내적으로 완결성을 가진 자립경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은 본질적으로 민족자본가 계층 이데올로기의 발로 입니다.
● 라울 프레비쉬, 국제경제체제의 구조적 문제를 논하며 비교우위론의 문제점을 비판하다
- 라울 프레비쉬(Raul Prebisch), 1901-86년
- 1950-63년 기간동안 라틴 아메리카 경제위원회(ECLA) 사무총장 역임
중심부에로의 종속에서 벗어나 민족의 이익을 극대화 하겠다고 무작정 수입대체 전략을 구사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이전의 대외지향적 정책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경제학적 이론이 뒷받침 되어야 하죠. 그 이론을 제공해준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아르헨티나 출신 경제학자 라울 프레비쉬(Raul Prebisch) 입니다.
라울 프레비쉬는 비판하는 것은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입니다.
지난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시리즈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비교우위론은 '각국이 비교우위 부문에 특화한 이후 상품을 교환하면 상호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이에 따르면 유럽 · 미국 등 선진 산업국은 제조업 상품 생산에 특화하고, 산업화를 달성하지 못한 중남미와 같은 저개발국은 제조업 이외의 다른 분야에 집중하는 게 모두에게 이익(=비교열위 상품의 소비가능량 증가)을 안겨다 줍니다.
그러나 프레비쉬는 "비교우위에 입각한 무역을 하면, 기술진보의 혜택은 중심부-주변부 간에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는다" 라고 주장합니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① 1차상품 수요의 낮은 소득탄력성 ② 1차상품 가격 하락으로 인한 교역조건 악화 입니다. 이 요인은 앞서 '▶ 비교우위에 특화하여 생산을 늘려나갈 때, 교역조건이 갈수록 악화되면 어떻게 하나'에서 소개한 것과 동일하지만, 논리는 약간 다릅니다.
- 1876-80년 100 기준. 시간이 흐를수록 중남미 국가의 교역조건 지수가 하락하고 있다
- 출처 : Prebisch. 1950. The Economic Development of Latin America and Its Principal Problems
위의 표는 시기별 중남미 국가의 교역조건 지수를 보여주고 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하락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876-80년에는 주어진 1차상품의 양으로 100개의 제조업 상품을 구매할 수 있었으나, 1946-47년에는 고작 68.7개 밖에 얻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왜 교역조건이 중남미에게 불리하게 변하는 것일까요? 앞에서는 "대부분의 1차 상품은 수출국가의 공급에 따라 세계시장의 공급이 크게 변동하기 때문에, 교역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라고 설명했는데, 프레비쉬가 주목한 것은 '생산성과 임금 그리고 상품가격 간의 관계'(price relations) 입니다.
일반적으로 생산성 향상은 1차상품 부문 보다는 제조업 부문에서 이루어 집니다. 그럼 1차상품보다 제조업에 집중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다시 한번, 리카도의 비교우위론과 교역조건[각주:17]을 기억하십시오.
기술진보는 똑같은 생산요소로 더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은 대개 상품가격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제조업 상품 가격 하락은 교역조건이 1차 상품 생산국에게 유리하게 변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생산성 향상의 혜택을 전세계에 공평하게 배분되도록 만들어줍니다[각주:18]. 중남미는 현재의 비교우위에서 탈피하여 굳이 제조업을 키우는 산업화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각주:19].
프레비쉬는 비교우위론의 이와 같은 설명이 현실과는 완전히 상반된다고 지적합니다. 위의 표를 통해서도 이론과는 다른 상황을 볼 수 있었죠.
그는 "기술진보가 발생하더라도 제조업 상품 가격이 하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생산성 향상에 맞추어 제조업 근로자 임금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라고 설명합니다. 선진국 제조업 근로자는 노동조합을 통해 잘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생산성 증가에 맞는 임금상승을 얻게 되고, 상품 가격도 올라가게 됩니다.
반면 중남미와 같은 저개발국은 대량의 유휴 노동력의 존재로 인해 임금 상승 압력이 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역을 통해 선진국 생산성 향상의 영향이 흘러오더라도, 1차 상품가격과 근로자의 임금은 상승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제조업 상품 가격은 계속 상승하는 반면 1차상품 가격은 오르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교역조건은 중남미에게 불리해집니다. 그 결과, 제조업을 가진 선발 산업국가는 기술진보로 인한 생산성 향상의 혜택을 집중적으로 얻게 되고, 중남미와 같은 후발 산업국가는 이를 공유하지 못합니다[각주:20].
프레비쉬는 이러한 현상을 가치중립적인 경제학논리로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미 제조업을 보유한 중심부(core)와 1차상품 특화에 의존하는 주변부(periphery)라는 국제경제체제의 구조적 특성이 문제를 야기했다고 지적합니다. 중심부-주변부 간 불평등을 시정하고 저개발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구조적 특성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은 참담한 결과로 이어졌나
-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 무역체제에 따른 수출소득 및 실질GDP 증가율
- 출처 : Anne O. Krueger. 1983. The Effects of Trade Strategies on Growth
이처럼 중남미의 독특한 경제구조 · 역사적 배경 · 정치사상적 뒷받침 · 국제경제구조 등을 고려하여 나름 합리적인 이유로 선택되었던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제조업 상품 및 자본재 수입을 국내 생산으로 대체하여 대외의존을 줄이려고 했던 이 전략은 기대와는 달리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는 글의 서두에서 보았던 오늘날 동아시아와 중남미 간의 격차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수입대체 정책을 펼치다 수출진흥으로 돌아선 국가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브라질은 1960년대 중반 이후 수출진흥으로 돌아서면서 수출소득 및 실질GDP가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또한 1963~65년을 기점으로 수출진흥 정책으로 전환하면서 경제발전에 성공했습니다.
도대체 수입대체 정책이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길래 경제발전 실패로 이어졌을까요? 이번 파트에서 수입대체 전략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살펴봅시다.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이 실패한 이유는 크게 2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무역이 가져다주는 눈에 보이는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 둘째, 무역이 가져다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을 생각치 못한 것 입니다.
● 무역이 가져다주는 눈에 보이는 이익(explicit gain)
- 수출을 통해 획득한 외환소득으로 비교열위 상품을 싸게 구입
- 수입대체는 외환소득도 얻지 못하고, 상품을 비싸게 구입하는 꼴이 된다
'수출'(export)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외화를 벌어들인다'(foreign earnings) 입니다. 중상주의자들은 여기에서 사고가 멈추지만, 국제무역이론을 공부한 사람들은 벌어들인 외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바로, 애덤 스미스의 절대우위론[각주:21]과 리카도의 비교우위론[각주:22]이 공통적으로 말한 무역의 이익인 '비교열위 상품을 싸게 구입한다'(relative lower price)를 실천에 옮길 수 있습니다.
즉, 무역이 가져다주는 눈에 보이는 이익은 '수출을 통해 외환소득을 획득하고 + 비교열위 상품을 싸게 구입한다' 입니다.
그러나 중남미 민족 자본가 계급 및 수입대체 전략을 옹호한 사람들은 '외국으로부터의 수입 = 대외의존'으로 보았습니다. 선진 산업국가로부터 제조업 상품을 수입하는 것은 대외의존을 유발하고 종속에 이른다는 논리 입니다. 비교열위 상품을 싸게 구입하는 건 무역이 가져다주는 이익이라고 생각치 않았습니다.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은 외국에서 수입해오던 제조 상품을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뜻 보면 수입을 감소시켜 대외의존성을 줄이고 종속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획기적인 정책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이 대외의존성을 줄여주었을까요?
기존에 수입해오던 상품을 국내에서 생산할 때에 '어떤 종류의 수입상품을 먼저 대체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가방 · 주방도구 등 간단한 최종소비재(consumer goods)와 설비기계와 같은 중간재 및 자본재(intermediate or capital goods)를 수입해오던 상황에서, 하루아침에 이것들을 동시에 국내에서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수입대체 전략을 추구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간단한 최종소비재를 먼저 대체하기로 결정했는데... 간단해보이는 최종소비재를 만들기 위해서도 중간재, 자본재 및 원재료(raw material)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것들 전부를 한 국가가 보유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으로부터 수입을 해와야 합니다.
수입의 필요성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소비재 의존을 줄이려는 정책이 자본재 의존으로 바뀌었을 뿐이고, 대외의존성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Dependence' upon imports for final consumption goods was replaced by 'dependence' upon imports for capital goods.) 더군다나 비교열위 상품을 자체적으로 생산하면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에 수입하는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꼴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아예 중간재 및 자본재 등에 대해 수입대체를 시행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막연히 설비기계나 제철소를 떠올리더라도 막대한 투자비용이 필요하다고 느껴집니다. 투자비용을 회수하려면 그만큼 상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데, 중남미와 같은 저개발국은 시장규모가 작기 때문에 이윤을 얻지 못합니다.
자, 여기서 추가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중남미 국가들이 보유한 노동 · 자본 등 생산요소가 인위적으로 비교열위 부문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수출은 감소하였는데 수입 필요성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필요한 상품을 수입해 올까요?
한 가지 방법은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높게 유지하는 것(appreciation)입니다. 고정환율을 통해 통화가치를 높게 설정하면, 필요한 수입품은 더 싸게 들여올 수 있으며 수출 유인도 줄기 때문에, 비교열위에 집중하는 수입대체 전략에 더욱 더 박차를 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상수지 적자와 동시에 존재하는 '높은 통화가치'는 언제나 외환위기(currency crisis)를 초래합니다. 중남미가 외환위기를 겪은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 중남미와 동아시아 모두 경제발전 과정에서 자본재 수입을 위해 경상수지 적자를 누적해왔다.
- 이들의 차이점은 '수출액 대비 부채비율' 이었다.
- 대내지향적 무역체제를 지향한 중남미는 수출소득이 얼마 되지 않았으나, 대외지향적 무역체제를 추구한 동아시아는 수출로 많은 외화를 벌어들었다.
- 이러한 차이는 1980년대 초반 외채위기(Foreign Debt Crisis)에서 탈출하느냐 못하느냐 여부를 결정지었다.
- 출처 : Jeffrey Sachs. 1985. External Debt and Macroeconomic Performance in Latin American and East Asia
대내지향적 무역체제로 인해 수출은 줄고 수입은 여전하니 경상수지 적자(current account deficit)가 발생합니다. 또한 개발도상국은 경제발전을 시작할 때 부족한 국내저축을 해외저축으로 충당해야 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서도 경상수지 적자가 초래[각주:24]됩니다. 위의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1970-80년 시기 중남미와 동아시아 가릴 것 없이, 경제발전을 시작한 개발도상국들은 경상수지 적자를 누적해 나갔습니다.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되는데 고정환율로 인해 통화가치는 계속 높게 유지된다? 인위적으로 고평가된 통화가치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기 때문에, 통화가치 하락을 염려한 투자자들의 자본이탈(Capital Flight)이 발생하게 되고, 중남미 국가들은 외환위기를 맞게 됩니다.
글의 서두에서 짤막하게 언급한 폴 볼커 연준의장의 고금리 정책 또한 1980년대 초반 중남미 외채위기를 불러온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글의 서두에서 '한국은 지속적으로 수출증가 및 대외지향적인 정책을 추진해온 덕분에 위기에서 신속히 탈출'했다고 지나가듯이 언급했는데, 바로 이 점이 한국과 중남미 국가들의 차이를 낳았습니다.
똑같이 외채위기를 맞이한 한국과 중남미. 위의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GDP 대비 부채비율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문제는 '수출액 대비 부채 비율'(debt-export ratio) 였습니다. 수출지향적 전략을 채택했던 동아시아 국가들은 보통 75%~100% 수준을 기록하였는데, 수입대체 전략을 채택한 중남미 국가들은 보통 250%~340%에 달합니다.
외채(foreign debt)는 말그대로 외화로 빌린 채무이기 때문에 상환할때도 자국통화가 아니라 외화가 필요합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수출을 통해 외환소득(foreign earnings)를 벌어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채무를 갚아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중남미 국가들은 대내지향적 무역체제 하에서 비교우위 부문이 위축되어 수출이 급감하였기 때문에 외환소득이 적었고, 채무상환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1980년대 초반의 외채위기에서 신속히 벗어날 수 있었지만, 중남미 국가들은 이후로도 몇번의 외채위기를 겪게 됩니다.
● 무역이 가져다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implicit gain)
- 수출진흥 산업화 전략은 경쟁증대 및 효율성을 불러온다
무역은 '수출상품을 판매해서 돈을 번다' + '비교열위 상품을 싸게 구입한다'를 넘어서서 다른 많은 이익들도 가져다줍니다. 국제무역을 공부한 사람에게는 당연한 이익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새롭게 깨달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① 수출진흥이 초래하는 비용이 수입대체가 초래하는 비용보다 더 명확하게 보인다
현재 가지고 있는 비교우위 부문에 특화하여 수출을 하는 것은 별다른 비용이 발생하지 않지만, 인위적으로 특정 산업을 육성하여 수출을 촉진할 때에는 수출보조금 등의 비용이 유발됩니다. 한국이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고 수출기업에 특혜를 주기 위해 각종 지원을 했던 걸 떠올리면 됩니다.
반면 수입대체 정책은 눈에 보이는 비용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수출을 촉진하지 않기 때문에 특정 기업에게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비용'(visible costs)은 쉽게 통제할 수 있습니다. 정부에산으로 수출보조금을 남발한다면 그 비용은 즉각 파악되고, 비용을 축소하라는 각종 압력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은 계량방법론을 사용하여 경제학적인 비용분석을 하지 않는 이상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수입대체로 인해 유발되는 '상품을 비싸게 이용'이라는 단점도 자유무역을 했을 때에 비해 얼마나 비싼 것인지 쉽게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아이러니하게도 수출진흥 정책이 초래하는 비용이 수입대체가 초래하는 비용보다 더 명확하게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통제하기가 쉽습니다.
② 수출진흥 정책이 일반적으로 더 간접적인 개입이다
수출진흥 산업화 정책은 비교열위 부문 중 특정 산업을 선정하여 육성한 뒤 수출을 촉진하기 때문에, 당연히 산업 선정 과정에서 정부의 개입이 발생합니다. 수입대체 산업화 정책 또한 수입을 대체할 특정 산업을 골라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게 됩니다.
수출진흥 정책은 부분적인 수입대체 정책도 포함하고 있으며, 차이점이라곤 '대외지향적인 무역체제로서 수출을 촉진하느냐'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작은 차이처럼 보이는 이것이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수출진흥 정책 하에서 정부는 수출을 촉진한 이후에는 시장에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수출 기업이 경쟁하는 무대는 세계시장이고 이곳은 오로지 가격과 품질만이 중요합니다. 개발도상국이 세계시장을 상대로 경쟁의 규칙을 바꿀 수도 없으며, 다른 나라 상품의 품질을 떨어뜨릴 수도 없습니다.
반면에 수입대체 정책 하에서 정부는 갖가지 사항을 두고 시장에 개입하게 됩니다. 관세를 부과한 이후에도 국내산보다 우수한 수입상품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가격통제(price control) 등을 활용하여 국내시장을 통제합니다.
③ 수출기업은 해외시장에서 가격과 품질을 가지고 치열한 경쟁을 해야한다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느냐 국내시장에서 경쟁하느냐는 매우 다릅니다. 전자는 오직 가격과 품질만이 중요하지만, 후자에서는 정부의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출진흥 정책 하에서 정부가 특정 기업을 선정한 뒤 수출보조금을 지원하여 밖으로 내보내더라도, 결국 세계시장에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이 없다면 무용지물입니다. 부패한 관료와 기업가가 결탁한 뒤 수출보조금에 힘입어 해외로 나가더라도, 근본적인 실력이 없다면 세계시장에서 정착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조금은 다시 회수될 겁니다.
반면 수입대체 정책 하에서 정부와 결탁한 기업가는 국내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활용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정부가 기업을 팽하지 않는 이상 지위는 고스란히 유지됩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내 소비자에게 전가될 뿐입니다.
즉, 수출진흥 정책 하에서는 정부와 기업가 간의 결탁이 발생할 여지가 비교적 적지만(어디까지나 비교적), 수입대체 정책 하에서는 지대추구 행위(rent-seeking behavior)가 빈번하게 일어나게 됩니다.
④ 수출진흥 정책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시켜 분업화를 촉진한다
해외시장 진출에 성공하면 더 넓은 시장을 상대로 상품을 판매할 수 있습니다.
앞서, 수입대체 정책 하에서 자본재 대체가 실패한 이유로 '좁은 국내시장'을 들었었는데, 수출진흥 정책은 시장확장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중남미는 자본재 대체, 중화학 공업화 등에 실패하였으나, 동아시아 특히 한국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입니다.
※ 중남미 실패의 교훈 : 개방적인 무역체제의 중요성
- 수출과 수입은 동전의 양면이다
- 수입대체 산업화 : 대내지향적 무역체제 (수출+수입↓)
- 수출진흥 산업화 : 대외지향적 무역체제 (수출+수입↑)
과거 중남미와 동아시아의 서로 다른 선택이 오늘날 큰 차이를 만들어 낸 모습을 보면 '개방적인 무역체제'(trade openness regime)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중남미가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와 동아시아가 선택한 수출진흥 산업화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역의 이점을 살리는 방향을 지향했느냐 아니냐' 입니다.
중남미와 동아시아의 경제발전 및 산업화 전략은 상당부분 유사합니다. 중남미와 마찬가지로, 동아시아 또한 ① 기존의 비교우위 산업(농업, 경공업)에서 탈피하여 제조업을 육성하고 싶어했고 ② 이를 위해 정부주도의 산업·무역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
이들의 운명을 가른 것은 '국제무역이 안겨다주는 이점을 활용할 수 있는 무역체제냐 아니냐' 여부 입니다. 중남미가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는 전체 교역량(수출+수입)을 위축시켜 '무역이 가져다주는 이점'을 멀리하는 대내지향적 무역체제 였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동아시아의 수출진흥 산업화는 전체 교역량(수출+수입)을 증가시켜 '무역이 가져다주는 이점'을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최대한 활용하는 대외지향적 무역체제 였습니다.
앞서 서술한 내용을 반복하면, 수출진흥 산업화 정책은 비교열위 부문 중 특정 산업을 선정하여 육성한 뒤 수출을 촉진하기 때문에, 당연히 산업 선정 과정에서 정부의 개입이 발생합니다. 수입대체 산업화 정책 또한 수입을 대체할 특정 산업을 골라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게 됩니다.
수출진흥 정책은 부분적인 수입대체 정책도 포함하고 있으며, 차이점이라곤 '대외지향적인 무역체제로서 수출을 촉진하느냐'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작은 차이처럼 보이는 이것이 큰 격차를 만들어 냈습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무역이 증가할수록 '비교열위 상품을 값싸게 사용' · '경쟁증대를 통한 생산성 향상' · '자원의 효율적 사용' · '시장크기 확대의 이점' · '상호이득'을 가져다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물론 어느 부문에 특화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이익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1920-30년대 호주의 사례[각주:25]처럼 수입관세 등을 이용한 보호무역 정책이 어떤 경우에는 옹호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를 향한 문을 닫아서 외국과의 교역을 극단적으로 줄여버리는 정책이 옹호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또한, 수입장벽은 결국 수출의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보호무역을 통한 이익이 장기간 유지될 수 없습니다. 보호무역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건 일시적(temporary) 입니다.
- 1967~2017년 한국의 수출입 증감율 (통관 기준)
- 수출과 수입 증감이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어느 시기이든 개별 국가들은 자국의 수입장벽을 높게 세우고 수출은 촉진하려는 유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국산 상품 수입은 줄이고 자국기업이 세계시장에 진출하여 돈을 벌면, 국가경제에 이롭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잘못된 이유는 중상주의적 사고방식에 기반해서이기도 하지만, 애시당초 수출과 수입은 동떨어진 움직임을 가질 수 없습니다. 수출이 늘면 수입도 늘고 수출이 줄면 수입도 줍니다. 반대로 수입이 늘면 수출도 늘고 수입이 줄면 수출도 줍니다.
위의 그래프는 1967~2017년 한국의 수출입 증감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출과 수입 증감이 동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죠. 물론 둘 중 하나가 더 크게 변동하여 무역수지 흑자나 적자가 발생하지만, 큰 움직임은 동일한 방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왜 수출과 수입은 동전의 양면처럼 동일한 방향을 보이는 것일까요? 서로 다른 여러 국가가 교역을 하는 이유인 '비교우위 부문에 특화하여 수출을 하고 비교열위 상품을 수입해와서, 소비가능한 상품의 수량을 증가시킨다'를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무역은 국가간에 교환(exchange) 입니다. 상품을 수출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수입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경제발전 단계에서 개발도상국은 수출을 통해 얻은 외화를 이용하여 자본재 등을 수입해왔고, 오늘날에도 자본재와 소비재 등을 외국으로부터 가지고 옵니다. 상품 수출로 얻게 된 돈은 수입품 구매에 사용하거나 해외자산 구매에 이용해야지[각주:26], 굳이 축적을 해놓을 이유가 없습니다[각주:27]. 따라서, 수출 증감에 따라 수입도 동일한 방향으로 변동하게 됩니다.
역으로 수입을 하는 이유는 수출을 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소비재 등의 수입은 상품을 이용함으로써 경제주체가 효용을 누리게끔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중간재 및 자본재의 수입은 국내 완성품 제조에 이용됨으로써 수출을 촉진하기도 합니다. 국내에는 없는 외국의 값싸고 품질 좋은 자본재를 들여와 완성품 제조에 사용하면, 국내 완성품은 무역을 통해 경쟁력을 얻게 되고 해외시장에 나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수입 증감에 따라 수출도 동일한 방향으로 변동하게 됩니다.
- 왼쪽 : 한국 총수출 증감률과 중국 총수입 증감률
- 오른쪽 : 중국 총수출 증감률과 미국 총수입 증감률
- 한국은 중간재를 중국에 수출하고, 중국은 이를 이용해 완성품을 제조한 뒤 미국에 수출한다
- 한국-중국-미국 간에 서로 연결되는 경제구조를 수출입 증감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수출과 수입은 한 국가 내에서만이 아니라 여러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익숙한 예시로서, 한국-중국-미국 간 서로 연결되는 경제구조를 통해 수출과 수입의 관계를 살펴봅시다.
왼쪽 그래프는 한국 총수출 증감률과 중국 총수입 증감률, 오른쪽 그래프는 중국 총수출 증감률과 미국 총수입 증감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중국-미국 간의 큰 경제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은 중간재를 중국에 수출하고, 중국은 수입해온 중간재를 이용하여 완성품을 제조합니다. 그리고 이를 미국에 수출하고 미국인들은 made in china 제품을 구매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한국 전자부품기업이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을 중국에 수출하고, 중국내에 위치한 폭스콘 공장에서 이를 수입하여 iPhone을 만듭니다. 그리고 iPhone은 미국에 보내집니다.
그러므로 한국 총수출 증감률과 중국 총수입 증감률은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중국 총수출 증감률과 미국 총수입 증감률도 동조화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과 중국의 대한국 수입 그리고 중국의 대미국 수출과 미국의 대중국 수입이 동일한 방향을 가지는 건 당연할테지만, 각 국가 간에 총수출과 총수입마저 동조화 되는 모습을 보면서 '수출과 수입 간의 관계'를 현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수입은 줄인채 수출만 늘리고자 하는 보호무역 정책은 해로운 영향만 끼칠 가능성이 높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습니다. 수입은 줄인채 수출만 증가시킬 수는 없습니다.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무역장벽을 높인다면 완성품 제조가 어려워져 대미국 수출에도 타격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죠. 미국도 대중국 수입장벽을 쌓으면 중국에서 값싸게 제조된 소비재를 이용할 수 없어서 소비자들의 후생이 감소합니다.
한국이 개방적인 무역체제를 추구하면서 경제발전에 성공한 것처럼, 오늘날 세계경제는 서로 간의 교역을 확대하면서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있습니다. 미국 총수입과 중국 총수출 관계를 보면 2002년 이전에는 비동조화된 모습이 나타나는데, 중국이 2002년에야 WTO에 가입하면서 세계무역시장에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해, 2002년 이후 세계화에 들어선 중국은 미국과 밀접한 교역관계를 맺으면서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자립경제를 꿈꾸는 대내지향적 무역체제 보다는 상호의존을 추구하는 대외지향적 무역체제가 일반적으로 경제발전과 성장을 가져다 줍니다.
※ 과거 중남미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비난했던 이유를 확인
-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자립경제를 꿈꾸다
이번글을 통해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중남미 국가를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이 원했던 건 '대외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자립경제'를 통해 '경제발전'과 '산업화'를 달성하는 것 이었습니다. 개발도상국 대부분은 식민지시기를 경험하였기 때문에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경제적독립을 원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제조상품을 선진국에 의존하지 않고 국내에서 직접 생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방식은 폐쇄적인 무역체제와 대내지향적인 경제체제로 이어졌죠.
"특화해야할 산업은 평생동안 1차산업에 고착되느냐", "1차상품 수출이 교역조건을 악화시키면 어떻게하나", "제조업을 육성하여 비교우위를 인위적으로 창출하면 안되나" 라고 말하며, 비교우위의 경제학적 논리를 비판하면서 수입대체 산업화 정책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긴 하였으나, 그 근간에는 민족주의 사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가 설파한 '자유무역사상'은 민족주의 · 국가주의와 거리가 먼 '자유주의'(liberalism)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밑에는 '사해동포주의 혹은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가 있습니다. 자유무역사상은 전인류(mankind)의 관점에서 세계경제를 바라보았습니다(doctrine of universal economy).
자유무역 사상가들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실시하면 전세계 인류가 소비가능한 상품 수량이 증가하기 때문에 좋다"고만 생각하였지, 개별 국가의 입장에서 '어떤 상품을 얼마나 소비할 것인가'는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즉, 자유무역사상은 '무역의 이익이 전세계 국가간에 얼마나 공평하게 배분되는지'를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비슷하게도, 오늘날 선진국에서 자유무역 사상에 대한 비판이 나오게 된 근간에도 자유주의 및 세계시민주의와 배치되는 국가주의적 사고방식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 사상을 소개한 글[각주:28]에서 다룬 자유무역을 둘러싼 논쟁 중 하나가 바로 '③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은 일치하는가' 였습니다. 자유무역을 비판하는 미국인들은 오늘날 미국기업의 이윤추구 행위가 국가경제의 이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반면 중국정부는 치밀하게 세워진 경제전략 하에 기업의 이익이 국가경제의 이익으로 이어지게끔 하고 있다고 부러워 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국제무역논쟁]을 살펴볼 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자유무역 옹호자와 반대자의 주장이 경제학이론에 부합하냐 아니냐' 뿐만 아니라 '어떤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나'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