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괴(X), 우두머리(O)
내란 수괴→내란 우두머리
형법, 2020년 한글화 용어 변경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구속영장에 윤석열 대통령과 공모한 혐의를 적시하는 등 윤 대통령을 사실상 ‘내란 우두머리(수괴)’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 야당은 "‘내란 수괴’ 윤 대통령을 즉각 체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형법에 규정된 정확한 용어는 ‘수괴’가 아니라 ‘우두머리’다.
내란죄를 규정한 형법 87조는 "우두머리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래는 ‘수괴(首魁)’였는데, 2020년 12월 형법이 일부 개정될 때 우리말인 우두머리로 개정됐다. 형법의 어려운 용어들을 한글화해야 한다는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수괴는 못된 짓을 하는 무리의 우두머리를 뜻한다.
1953년 제정된 형법은 어려운 한자어나 일본식 표현,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 등이 수십 년간 그대로 사용됐다. 일반 국민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법조계의 지적이 이어지자, 법무부는 2019년 8월 형법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며 한글 표현을 다수 도입했다.
이때 내란죄의 ‘수괴’가 ‘우두머리’로 개정됐다. 수괴라는 표현이 너무 선동적이고 부정적인 뜻이 강한 것도 개정에 감안됐다. 당시 법무부는 "형법은 형사 관련 특별법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국민의 일상생활에 직접 적용되는 기본법이란 점에서 다른 법령 문장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며 "형법에 대한 국민의 접근성 및 신뢰성을 높이고자 한다"고 개정 이유를 밝혔다. 다만 군(軍) 형법에는 수괴라는 용어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반란죄를 규정한 군형법 5조엔 "수괴는 사형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우두머리’의 어원
‘우두머리’란 ‘어떤 일이나 단체에서 으뜸인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우두머리’는 말하는 사람이 그 집단이나 단체를 긍정적인 면에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면에서 평가할 때에만 쓰이는 어휘다. 그래서 ‘대통령은 행정부의 우두머리다.’라고 하면 행정부나 대통령을 좋지 않게 평가할 때에만 쓰인다. 이런 경우에는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首班)이다’라고 하여 ‘우두머리’ 대신에 ‘수반’(가장 높은 책임자의 자리 또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두머리’가 쓰이는 예문들이 아래의 예문들에서 보는 것처럼 ‘사교(邪敎)의 우두머리, 남사당패 우두머리, 욕심 많은 집단의 우두머리’ 등으로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엉뚱하게도 동학이 아닌 사교(邪敎)의 우두머리요 화적패를 포섭하게 된 것이다. <1976들불(유현종),166>
배명창하고 정처사는 이미 아시는 처지고, 이 이는 전에 말씀드렸던 남사당 패 우두머리 홍처사올시다. <1989녹두장군(송기숙),106>
고독하고 한낱 무력한 개인의 위치로부터 저 명령적이고 욕심 많은 집단의 우두머리로 바뀌어 버린 중늙은이……. <1993머나먼쏭바강(박영한),145>
‘우두머리’를 더 속되게 표현할 때에는 다음의 예문들에서 보듯이, ‘대가리’란 말까지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는 ‘머리’에 대한 낮춤말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우두대가리’란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너는 사내로서는 대가리다. 너를 대가리로 해서 아들을 주욱 나아라, 이 소리라우. 이 대가리란 소리는 꼭 아들만 더 나라는 소리만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도 대가리가 되어라 이 소리도 되는 것 같은디, 이런데 나와 본게 잘난 사람이 하도 많아서 지가 다른 사람 우게 대가리 되기는 폴새 틀린 것 같소. <1989녹두장군(송기숙),252>
‘우두머리’의 ‘머리’는 ‘단체의 으뜸이 되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로도 쓰이기 때문에, ‘우두머리’의 ‘머리’는 ‘사람의 머리’의 ‘머리’에 해당하는 단어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두머리’는 ‘우두’와 ‘머리’로 분석된다. ‘머리’는 쉽게 알 수 있지만, ‘우두머리’의 ‘우두’는 그 뜻을 알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두’의 어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각양각색이다.
어떤 사람은 ‘우두’는 한자 ‘우두’(牛頭), 즉 ‘소머리’란 뜻을 가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배달국(倍達國)의 치우 천황이 전쟁에 나갈 때 항상 머리에 쇠뿔 모양의 장식을 달았는데, 이처럼 쇠뿔 모양의 장식을 머리에 달고 한 조직이나 단체를 이끌고 다스렸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을 ‘소머리’ 즉 ‘우두’(牛頭, 소머리)라고 하고, 여기에 ‘머리’를 붙여서 ‘우두머리’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근거가 위서(僞書)에 근거한 것이어서 그 역사적 사실을 믿기 어려워, ‘우두머리’의 ‘우두’를 한자 ‘우두’(牛頭)로 풀이하는 설명은 믿거나 말거나 한 어원풀이다.
어떤 사람은 ‘우두머리’의 ‘우두’는 ‘우뚝하다’의 ‘우뚝’이 변해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 ‘우뚝하다’의 옛말이 ‘우둑다’이고, ‘우두’와 ‘우둑’의 의미가 유사한 면이 있어서, 그럴 듯이 들릴 지 모르지만, 이 주장 또한 믿기 어렵다. ‘우둑’의 ‘ㄱ’이 탈락할 이유도 없거니와, 실제로 ‘우두머리’는 ‘우둑머리’로 나타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어원사전에는 ‘우두머리’는 만주어 ucyu[頭]나 몽고어 ütügüs[頭]에서 온 것으로 원래 이들은 utu에서 변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믿을 만한 만주어 사전을 다 뒤져 보아도 ucyu나 utu란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
‘우두머리’의 ‘우두’는 한자어 ‘위두’(爲頭)에서 온 것이다. ‘위두’(爲頭)는 15세기 문헌에서 흔히 발견되는 어휘인데, ‘위두’(또는 한자 ‘爲頭’로) 단독으로도 쓰였지만, ‘위두다’처럼 동사로 쓰인 예들이 훨씬 많다.
‘위두다’는 ‘으뜸가다’ 또는 ‘가장 위가 되다’란 뜻이고, ‘위두’는 ‘머리’를 붙이지 않고 그 자체로도 ‘우두머리’란 뜻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그 단체나 그 사람을 낮추어 보는 정서적 의미는 없었다.
우두머리 (명사 : ① 물건의 꼭대기. ② 어떤 일이나 단체에서 으뜸인 사람)
<주몽>이나 <연개소문>같이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보면 막리지(莫離支)라는 벼슬 이름이 자주 나온다. 막리지는 고구려에서 군사와 정치를 주관하던 으뜸 벼슬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이어서 연개소문은 막리지가 된 다음 스스로 막리지 앞에 큰 대(大) 자를 붙여 대막리지가 되었고, 연개소문이 죽은 뒤 연개소문의 두 아들 남생과 남건은 대막리지 앞에 또 클 태(太) 자를 붙인 태대막리지 자리를 놓고 물고 물리는 싸움을 벌이다 고구려의 망국을 자초하고 말았다. 으뜸 위에 큰 으뜸이 있고, 또 그 위에 더욱 큰 으뜸이 있는 형국이니 나라가 망할 수밖에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국어사전에는 막리지와 같은 뜻을 가진 마리기라는 낱말이 실려 있다. 막리지의 ‘막리’가 ‘마리’와 통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마리’는 머리의 옛말이다. 신라의 왕칭이었던 마립간(麻立干)을 보자. 마립간의 ‘마립’은 마리(頭)나 마루(宗) 등과 같은 말밑(語源)에서 비롯된 말로 지극히 높은 곳이나 꼭대기(頂上)를 뜻한다고 한다. 몽골의 칭기즈칸 시대에 ‘칸(khan)’은 임금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한자로는 가한(可汗), 한(汗) 또는 간(干)으로 표기된다. 마립간의 ‘간’을 ‘칸’, 즉 임금이라는 뜻으로 보면, 결국 마립간은 ‘지극히 높은 임금’이나 ‘왕중왕’이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막리지의 ‘막리’와 마립간의 ‘마립’은 모두 ‘마리’와 통하고, ‘마리’는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우두머리의 말밑에 대해서는 ‘대가리 노릇을 하다’라는 뜻의 한자말 ‘위두(爲頭)’로 보는 견해가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는 ‘우두(牛頭)’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이동(牛耳洞) 할 때의 우이(牛耳)에는 쇠귀 말고 우두머리라는 뜻도 있는데, 그래서 ‘우이를 잡다’나 ‘쇠귀를 잡다’는 ‘어떤 모임이나 동맹의 우두머리가 되다’라는 뜻이 된다. 쇠귀를 잡는 것은 결국 쇠머리를 잡는 것과 매한가지니 ‘쇠머리 잡은 머리’라는 뜻에서 우두머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숙부는 어려서부터 장난이 심하고, 특히 아이들을 모아 일을 꾸미는 데는 선수였다. 자신은 언제나 우두머리 노릇을 하면서 말이다. (최일남의 소설 「숙부는 늑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