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강박증(호더)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강박. 그 물건의 가치와는 무관하게 물건을 버리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게 된다.
증세가 약하면 쓰지 않지만 쓸 수는 있는 물건을 '언젠가 쓰겠지'라고 아까워하며 못 버리는 수준에서 멈추지만, 심한 경우에는 비닐 봉지나 페트병 같은 쓰레기조차 버리지 못한다. 심각한 저장강박 환자의 주변 사람들이 보다 못해 치우려고 하면 미친듯이 분노하면서 화를 내기에 손도 못 댄다. 보통 이런 환자들의 집은 쓰레기장 수준을 넘어 난지도가 되게 마련이며, 대청소를 하면 1인가구에서는 2톤 정도, 심하면 10~20톤의 쓰레기가 나온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아파트 거주가 흔해 저장강박증 환자의 집을 청소하지 못하면 벌레의 번식처가 되어, 배관이나 전기배선 등으로 이웃집에 유입되거나, 악취가 풍겨나오는 등 거주민 전체가 피해를 본다. 2020년대에 한국에서 이러한 저장강박을 해결해주는 방송프로그램으로 신박한 정리가 있었다. 다만 주의할 점은 이런 유명한 '쓰레기집' 사례가 전부 저장강박증은 아니다. 쓰레기집의 상태를 보면 구분이 가능한데, 저장강박증 쓰레기집의 경우 그래도 쓰레기들이 '나름대로' 정리되어 있으며 사람이 생활할 최소한의 공간은 남겨놓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폐품을 집에 쌓아둘 뿐 청소도 꾸준히 하는 경우도 있다. 쓰레기의 종류도 일반 쓰레기보다 밖에서 주워온 재활용 쓰레기, 대형 쓰레기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반면 다른 원인에 의해 만들어진 쓰레기집은 이름 그대로 쓰레기장을 그대로 집 안에 재현해둔 경우가 대다수로, 아무런 규칙 없이 어지럽게 마구 방치되어 있으며, 쓰레기의 종류도 생활 중 생성되는 일반쓰레기 및 음식물 쓰레기의 비중이 높다.
해외 유명인 중 앤디 워홀, 위르겐 클롭도 저장강박증이 있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중증 히키코모리가 저장강박증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한편 젊은이들의 저장강박은 노인들의 일반적인 저장강박과 결이 다른데, ADHD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혹은 우울증, PTSD등 각종 정신적 외상에 의한 부차적 결과로 나타나는 것으로도 추정된다.
애니멀 호더 역시 저장강박증 환자의 일종으로 보기도 한다.
인터넷의 발전 이후로는 데이터 호더도 생겨났다. 쉽게 말해 스마트폰이나 PC에서 더 이상 열람하지 않고 사용하지 않는 파일들을 지우지 않고 계속 붙들고 있는 것. 일반적으로는 보지 않을 영화나 TV쇼, 동영상파일, 사진파일 등을 저장하는 수준으로 그치지만, 심한 경우에는 archive.today처럼 인터넷에 올라온 잡다한 페이지들을 보이는대로 크롤링해 저장해두거나, 쓰지 않을 프로그램, iso 등을 수십TB 단위로 저장하기도 한다. 실제 저장강박과 별 차이가 없고, 개인에게도 인생의 일부 시간을 상당부분 소요하면서, 정신건강 상 중독행위의 일종이라 그닥 건강하다고 보긴 어렵다. 다만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신체적 위해를 가하지는 않는다. 인터넷의 역사 이전, 가령 90년대 이전 방송국에서도 지워버린 방송데이터를 VHS비디오로 저장한 개인들의 기록물을 통하여, 이를 복원하는 작업으로 과거의 방송사 기록이나 고전영화같은 영상물을 복원하기도 한다.
소유하는 인간의 한계, 저장 강박
버리지 못하는 사람의 심리학
최근 연구 결과를 토대로 미국 전체 인구의 2~5%인 600만~1500만이 저장 강박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소개한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도 발생된다고 일반화시켜 볼 수 있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그렇고 우리나라 방송에서도 볼 수 있는 증상이 아닌가. 발 디딜 틈도 없이 온갖 잡동사니로 들어찬 아파트나 단독주택을 공익단체가 나서서 설득하여 청소를 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니.
신문이나 잡지와 같은 사소한 물건을 비롯하여 길을 가다 버려진 잡동사니를 집안으로 끌어들여 방마다 가득가득 채우는 저장 강박증은 사람마다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다. 크게 보면 다 쓰지도 못할 정도로 많이 벌고 소유하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부의 축적, 배가 고프지 않으면서도 끝없이 음식을 찾는 식탐, 타고난 외모에 만족하지 못하고 성형중독에 시달리는 증상 등 깊이 생각해보면 인간이 지닌 저장 강박 사례는 연구 대상이 분명하다.
대부분의 저장 강박을 지닌 사람들도 자신의 문제점을 알고 인정하지만 버리지 못하는 생활로 돌아간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서 저장 강박의 심리적 측면을 지적한다. 가난과 결핍이 원인이라는 진단에서부터 가족애의 결핍이나 무의식에 남아있는 상처 때문이라고. 그러니 저장 강박을 치료하려면 개인사나 가족사를 심도 있게 들여다보는 노력이 먼저라는 것. 단순히 물건을 정리하여 버리는 행동만으로는 근본적인 치료가 어렵다고 지적한다. 미국에서는 저장 강박증을 진단하고 상담하며 치료까지 도와주는 단체도 있다.
소유한 물건이 나를 소유하기 시작할 때
저장은 인간의 본능이다. 꿀벌이 자신에게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은 꿀을 저장하기 위해 한시도 쉬지 않는 것처럼, 인간도 꿀벌을 닮았다. 그러나 그 저장 본능이 일상의 삶을 파괴할 정도로 심한 경우를 저장 강박으로 본다는 점에서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이 저장 강박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물건에 쌓여서 옴짝달싹 못하는 삶, 물질에 치여서 더 나은 삶의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음으로부터 자신을 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의 몸도 저장 강박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가면 섭취하는 음식의 양이 줄어들까 봐 우리 몸 스스로 음식을 축적해서 뱃살을 찌운다고 한다. 유목민 시대와 수렵 시대를 거친 인간의 몸조차도 영양분을 비축하는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젊었을 때보다 덜 먹는 데도 불구하고 늘어나는 체중이 그 증거다. 이 또한 심리적인 측면이 작용하는 증거로 보인다.
비움의 철학이 무소유로 발전되어야 함을 깨닫는다. 몸도 비우는 삶을 넘어 마음을 비우는 삶을 지향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잡동사니로부터 습격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는 책이다. 인간의 탐욕은 끝을 알 수 없어서 탈이 나지 않으면 도대체 언제 멈출 줄 모르는 고장 난 자동차가 아닐까?
관계의 정리, 존재를 위한 시작
어쩌면 부지런히 책을 읽고자 하는 것도 정보나 지식을 저장하고 싶은 발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냥 읽음으로 끝나도 될 텐데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것도, 크게 보면 저장 강박이 아닐까 생각하니 걱정이 된다. 인간은 기록을 남기는 고등동물이다.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하고 명예를 소중히 하며 좋은 모습으로 저장되고 싶어서 편안히 살지 못하고 현재를 즐기지도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확장해서 생각하니 인간의 거의 모든 행위는 저장 강박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레 이른다. 생명체는 이기적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본능적으로 진화를 거듭해왔다. 존재하고 살아남기 위해 녹색식물은 태양과 물, 이산화탄소로 광합성 작용을 하며 영양분을 저장한다. 생태계 또한 끝없는 먹이사슬을 거치며 생명을 잉태하고 양분을 저장하며 개체의 번식을 이어간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저장 강박이라는 생존 본능이 있기에 진화를 거듭해 왔으리라.
이 책에는 저장 강박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을 이룬다. 책 제목에서 풍기는 심리학적 접근은 생각보다 약한 편이다. 아직도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아파트에 가득 쌓인 잡동사니로 인해 살던 집이 무너진 일본 사람, 부유한 집에서 잘 살았으나 부모가 죽은 뒤에는 두문불출하며 잡동사니에 묻혀 살다가 형제가 함께 죽음에 이른 미국 사람 이야기, 기르는 고양이의 개체수가 너무 많이 늘어나서 더 이상 기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줄이지 못해 일상이 망가진 동물 애호가 등. 사례는 넘치나 그 원인이 되는 심리학적 접근은 기대한만큼에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어서 한숨을 쉬면서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