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전선, The Western Front
서부에서 형성된 전선. 말 그대로 서쪽에서 독자적으로 형성된 전선 전체를 지칭하기도 하며, 한 개의 전선을 위치에 따라 나누어서 서부전선, 중부전선, 동부전선 하는 식으로 구분할 때 상대적으로 서쪽에 위치한 전선의 일부를 말하기도 한다.
세계사에서 서부전선은 일반적으로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당시 서유럽 지대에 형성된 전선을 일컫는다. 한국사에서는 일반적으로 6.25 전쟁 당시의 서부전선을 뜻하고, 서양에서는 보통 1차 대전을 떠올린다.
제1차 세계 대전
흔히 제1차 세계 대전 하면 떠올리는 참호전의 참상이 벌어진 곳이 바로 이 서부전선이다. 의외로 참호전은 서부전선, 그리고 어쩌면 이탈리아 전선의 예외적인 상황에 가까운데, 서부전선과 달리 세르비아 침공 및 동부전선은 기동전과 회전이 주된 양상이었다. 후자의 경우 독일 제국을 제외한 주요 참전국들이 상대적으로 후진국이고, 전선이 넓은 동유럽 평원에 위치하며 그 길이는 서부전선보다 훨씬 긴 데 반해 배치된 병력은 상대적으로 적어서 병력 밀도가 낮아 전선 돌파가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즉 동부전선은 회전이 더 자주 벌어질 수 있었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참호전을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서부전선의 경우 영국과 프랑스, 독일 제국 셋 다 산업화가 잘 되어 있는 나라인데다 슐리펜 계획마저 마른 전투에서 저지당하여 독일의 신속한 승리가 날아갔다. 게다가 동부전선과 달리 전선의 병력 밀도가 매우 높아서 전선 돌파나 기습을 하기 매우 어려웠고, 따라서 양측이 참호를 파고 기나긴 대치 상태에 돌입하면서 끔찍한 인외마경의 진흙탕 바닥의 생지옥으로 변하게 된다.
참호전은 화력 팩터가 기동 팩터를 상대로 우위를 누리면서 일어난 전투양상이었다. 즉 후술할 전차나 비행기와 같은 참호를 돌파할 만한 무기와 그 무기를 사용할 전술의 부재가 빚은 전투양상이었던 것이다. 솜 전투마냥 적군 참호에 보병대를 어택땅시켜 들이부으면 기관총 앞에서 벌집이 되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결국 영국-프랑스군과 독일군의 전술은 모두 참호 파고 버티기으로 일종의 수렴 진화를 겪었다. 특히 연합군의 참호는 독일군에 비해 참호가 상대적으로 저지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비만 오면 물바다가 되었고 심지어 익사할 정도로 물이 차 오르기도 했다. 위생 상태야 뭐 말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독일군이라고 나을 것도 없어서, 독일군은 본토에서 멀리 진격 나와 있는 상태인 데다 경제 상황이 막장으로 치달아서 보급이 후달린 나머지 병사들이 그저 식량을 구하기 위해 바닥을 치는 사기 앞에서 목숨 걸고 무의미한 희생을 내가며 연합군 참호를 뒤져 식량을 보이는 대로 싹싹 긁어 털어와야 했을 정도.
결국 양 진영이 국력을 참호선 요새에다 다 퍼붓는 이 막장스럽고 부조리의 끝을 보여준 미친 상황은 전차와 비행기 등의 새로운 무기와 전술의 등장, 그리고 미국의 참전으로 기존의 병력소모를 낸 영프연합군이 압도적인 병력, 인력자원과 사기를 보유한 미군에게 주도권을 주면서 충분한 병력의 양과 질을 보유하게 된 연합군이 우위에 서게 되면서 종결되었다.
후술하는 제2차 세계 대전과는 달리 전쟁의 종결은 서부전선에서 결정되었다. 다른 전선에서도 활발한 전투가 벌어졌고, 동부전선은 러시아 제국의 붕괴로 인해 전선 자체가 독일의 승리로 일단락되었으나, 결국 서부전선에서 독일의 최후 공세가 실패하면서 독일의 패배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개전 당시 프랑스는 독일의 국력의 3분의 2 수준이었는데, 인구수는 저출산으로 정체되었고 철광과 탄전이 부족하여 대규모의 공업을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농업과 식민지, 금융업과 사치품 산업으로 막대한 자금을 보유했지만 독일은 프랑스보다 산업이 발전되어 있었고 프랑스의 식민지를 뺀 본국은 인구 수에서 독일에 밀렸다(독일: 6,500만 / 프랑스: 3,980만). 또한 프랑스는 전쟁 초기 국경 전투의 패배로 북부의 곡창 지대를 죄다 독일에 빼앗기고, 수도인 파리에서 불과 50여km까지 밀리면서, 수도의 함락을 앞두기도 했다. 그러나 제1차 마른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반격하기 시작하더니, 1917년부터 어마어마한 규모의 미군 병력이 프랑스에 상륙해 기진맥진하며 병력소모가 극심한 영프연합군의 바톤을 이어받아 백일 전투의 생 미이엘 공세를 시작으로 뫼즈-아르곤 공세를 거치며 지친 독일군을 압박해 버티지 못하게 만들었고, 마침내 킬 군항의 반란으로 인해 독일군이 항복하면서 프랑스는 승리했다. 1940년과 달리 프랑스군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되갚아 줘야 한다는 이유(그리고 패전하면 프랑스가 사라질테니)로 사기가 높았으며 식민지 경험을 통해 실전경험 및 훈련도도 매우 높았으며, 인재 면에서도 역대 프랑스군 중 가장 우수했었다. 포슈, 조프르, 페탱 모두 이 시기 크게 활약한 장군들이며 프랑스의 약점과 강점을 파악하고 독일에 반격을 가해 전선을 고착화하는 데 성공하며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
동부전선, The Eastern Front
동부에서 형성된 전선을 일컫는다. 전쟁 중 여러 지역에서 전선이 형성된 경우에 다른 전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동쪽에 있는 것을 가리킨다. 참전국 기준의 동쪽이 아니다.
세계사에서 동부전선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서 동유럽 지대에 형성된 대규모 전선을 일컫는다. 한국사에서는 6.25 전쟁 당시의 강원도 일대 동부전선을 뜻한다.
제1차 세계 대전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같은 동맹국과 삼국협상의 일원이었던 러시아 제국, 브루실로프 공세에 자극받아 1916년쯤에 전쟁에 뛰어들었던 루마니아와 같은 연합국의 전투가 벌어진 지역으로 서부전선 일대가 참호전으로 소모전이 벌어졌다면 이 지역은 기병과 열차를 이용한 기동전이 벌어졌다. 전쟁 초기 러시아군은 대군을 두 방면으로 나눠 프로이센 일대를 크게 포위하는, 독일의 슐리펜 계획과 비슷한 작전으로 전쟁을 속전속결로 끝내려 했다. 그러나 탄넨베르크 전투에서 독일군에 의해 처절하게 져서 시도는 좌절되고 동부전선은 러시아와 동맹국의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그러나 동부전선도 서부전선과 마찬가지로 크게 변동이 없었던 기간은 있었다. 러시아 제국은 황후의 총애를 받는 요승 그리고리 라스푸틴에게 니콜라이 2세가 휘둘려서 국정 운영이 개판이었고, 전선에서 싸우는 군대의 보급도 러시아의 후진 교통과 산업 능력, 황제의 무능으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 장군들은 대체적으로 독일군에 비해 무능했으며 그나마 유능한 장군들도 라스푸틴의 입김으로 전선에서 소환되었다. 독일군은 서부전선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입장이라 공세적으로 나가기도 힘들었고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병력을 투입하면서 진격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두터운 방어선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알렉세이 브루실로프라는 불세출의 명장이 등장한 덕분에 브루실로프 공세라는 대반격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애초에 전쟁 준비가 전혀 안되어있던 러시아 제국은 군대 전체가 보급난에 시달렸으므로 기술과 보급이 앞선 독일군의 공세를 막아낼 수 없었다. 게다가 총력전으로 이행하여 경제난이 극심해졌고, 여기에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을 계기로 무능한 차르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계속 쌓여갔다. 하지만 라스푸틴이 죽은 후에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니콜라이 2세는 내정은 완전히 팽개쳐버리고 전선에서 병력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결국 총체적인 문제가 쌓이면서 러시아의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수도 페트로그라드에서조차 식량이 떨어지는 사태가 발생하자 분노한 국민들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일으켜 제정을 붕괴시켰다.
러시아 혁명 이후 혼란상 끝에 볼셰비키가 집권하자 독일군은 블라디미르 레닌을 비롯한 공산주의 지도부에게 치욕에 가까운 협상을 요구했고 이에 반발한 볼셰비키가 협상을 거부하자 다시 동부전선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러시아군이 혁명의 여파로 전선을 떠난 상태라 막아낼 병력이 없어 결국 볼셰비키는 치욕적인 내용의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맺고 전쟁을 끝내고, 종전 후에는 폴란드 독립을 손가락 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때 잃은 영토 대부분은 나중에 적백내전과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다시 되찾게 된다. 그러나 냉전 붕괴 이후 이 영토들이 죄다 독립해버리면서, 현재 러시아의 땅은 1차대전 직후 러시아 땅보다 작아졌다.
물론 막대한 사상자를 내면서 처절한 전투들이 벌어진 전선이었지만, 서부전선과 같은 끔찍한 교착상태보다는 그래도 운신의 자유가 있었던 전선이었다. 그리고 말 그대로 지옥과 같았던 2차 대전의 동부전선과도 많이 달랐다. 인종주의에 기반한 절멸전이 벌어졌던 2차대전의 동부전선에 비하면 1차 대전의 동부전선은 그러한 절멸전 양상으로 치닫지는 않아서 잔혹행위는 별로 없었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1928년 11~12월 'Vossische Zeitung'에 연재되고 1929년 1월 출간된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 제1차 세계 대전을 다룬 창작물 중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레마르크는 독일 태생의 소설가로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후에 나치가 집권하자 먼저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다시 미국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지냈고, 후에 나치가 몰락하자 유럽으로 돌아와 스위스에서 지냈다. 특이할 점은 찰리 채플린의 두 번째 처인 여배우 폴렛 고다드와 재혼했다는 점. 두 명 모두 세 번째 결혼이었고 이후 죽을 때까지 부부로 있었다.
레마르크의 소설은 이 밖에도 2차대전 직전의 파리를 배경으로 한 자전적인 소설 "개선문"이 있으며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리스본의 밤', 2차대전 후반의 동부전선 병사들을 다루는 '사랑할 때와 죽을 때'도 명저로 꼽히며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1차대전의 서부전선을 다루고,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2차대전의 동부전선을 다루는 소설로 둘 다 빛나는 명저이다.
그 외 작품으로는 1차대전 종전 후 돌아가는 병사들을 다룬 다룬 '세 전우들', 귀향한 병사들의 방황을 그린 '귀로' 등이 있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줄거리
1. 제1장[
전선에서 가혹한 포격을 받고 엄청난 피해를 입은 후 교대해서 전선 후방으로 휴식하러 돌아온 주인공의 중대는 150명분의 식사를 80명이 배터지게 먹고 똥 싸고 담배 피우면서 즐겁게 쉰다. 사실 이렇게 된 건 바로 그 전날까지 전선이 평온했던지라 취사병이 중대원 전원을 위해 150명분 식사를 미리 준비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만 그 마지막 날 아주 제대로 불벼락이 쏟아져서.....생존자들이 식사와 담배를 모두 전사자 몫까지 받게된 것. 취사병은 사람이 80명이니 80명분만 배식하겠다고 하고 중대원들은 150명분의 밥을 다 내놓으라고 해서 실랑이가 벌어지지만, 이를 본 중대장이 그냥 전부 다 배식하라고 지시한다.
주인공은 전우들과 함께 잠시 즐거운 휴식을 즐기다가 급우인 알베르트 크로프, 뮐러와 함께 허벅지 관통상으로 다리를 절단한 급우 켐머리히를 문병하러 간다. 뮐러는 이젠 쓸모 없게 된 켐머리히의 영국제 고급 조종사용 장화를 탐내지만, 아직 자기가 다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는 켐머리히는 소중한 장화를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담임인 칸토레크의 설득으로 군대에 지원할 때의 이야기, 급우인 벰의 전사 이야기가 회상 형식으로 언급된다.
정확히 이때가 몇 년 몇 월인지 명시하는 내용은 없다. 다만 주변이 "꽃이 피어 있는 초원"이라고 되어 있으므로 아마도 1917년 3~4월쯤의 봄이었음은 추정할 수 있다.
제2장
10주간의 신병교육대 생활이 주된 내용이다. 20명의 급우들 중 같은 분대에서 훈련받은 것은 크로프, 뮐러, 켐머리히 3명뿐이었다. 탸덴과 하이에 베스트후스는 이때 만난 훈련소 동기들이다. 켐머리히를 제외한 4명은 힘멜슈토스에게 찍혀서 고생을 단단히 한다. 결국 나중에는 태업으로 질려버리게 만들지만.
켐머리히가 병원에서 죽고, 죽기 직전의 켐머리히에게 허락을 받은 주인공은 뮐러에게 장화를 가져다 준다. 주인공이 "난 오늘만 다리 다섯 개나 잘랐어! 귀찮게 하지 마!"라는 군의관의 무성의한 태도에 화를 내자, 의무병이 "오늘만 벌써 16명이 죽었다"는 병원에서 겪는 현실에 대해 말해준다. 그 말을 들은 주인공은 더 이상 화를 내지 못한다.
훈련소에서 주인공이 "눈을 쓸고, 수확이 이미 끝난 습기찬 밭을 기었다"는 언급에서 입대 시기가 초겨울임을 알 수 있다. 밭이 무슨 밭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밀 수확이 끝난뒤인 1915년 11~12월 경일 공산이 크다.
제3장
1장에서의 대손실을 메우기 위한 보충병이 대거 들어온다. 예비역과 신병이 9:5 정도로 섞여 있고, 주인공 일당은 신병들 앞에서 으쓱해한다. 탸덴이 지나가던 소령에게 경례를 대충 하다가 걸리는 바람에 한 시간 동안 중대원들이 경례 연습을 하게 되자 카친스키는 "경례 연습하다가 전쟁 지겠다"고 투덜거린다. 옆에 있던 크로프는 전쟁을 하려거든 양쪽 고관들이 투기장에서 맨몸에 몽둥이를 들고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훈련소에서의 생활이 언급되고, 힘멜슈토스를 사례로 하여 군대에서 상급자라는 인간들이 왜 사람을 못살게 구는지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는 중에 탸덴이 힘멜슈토스가 전방에 나왔다는 소식을 전한다. 과거 회상으로 힘멜슈토스가 탸덴의 야뇨증을 치료한답시고 철사로 된 이층침대에서 자게 했던 일과, 훈련소 퇴소 전날 힘멜슈토스에게 몰매를 놓았던 일이 언급된다. 술집에서 돌아오는 힘멜슈토스에게 시트를 덮어씌우고 1타를 먹인 것은 하이에였는데, 5미터를 날아갔다나. 그 뒤에는 바지를 까내리고 엉덩이에 매타작을 했다.
신병의 입에서 "아침은 순무 빵, 점심은 삶은 순무, 저녁은 순무 커틀릿과 순무 샐러드" 염장무 삼형제 라는 말이 나온다. "순무의 겨울"이 시작된 1916년 말이 지난 시점임을 짐작할 수 있다. 1장부터 3장까지는 시간상 간격이 거의 없으므로, 이 시점은 1917년 봄으로 추정된다.
제4장
중대가 전방으로 작업차 투입된다. 전선에서의 경험에 대한 회상, 신병들에 대한 교육 묘사가 있다. 포탄이 쏟아지는 전선으로 돌아온 중대는 철조망 가설 작업을 하고, 철수 지시를 기다리던 중에 포격을 받는다. 포격이 그친 뒤 농부인 데터링은 부상을 입은 말들이 울부짖는 소리에 괴로워하며, 말에게 안식을 안겨주는 것도 저지당하자 말을 전쟁에 끌어내는 것만큼 악독한 일은 없다고 분개한다.
이때 중대는 병영으로 돌아오는 중에 새벽 3시에 묘지에서 기습적으로 맹렬한 포격을 받고, 독가스 공격까지 받는다. 주인공과 카친스키는 치명상을 입고 고통스러워 하는 신병 한 명을 안락사시킬 생각까지 하지만, 다른 이들의 눈 때문에 실행하지는 못한다.
전체적인 피해는 적은 편으로, 전사 다섯에 부상 여덟 명밖에 안 되었다. 하지만 부상자들을 의무대로 보낸 중대원들이 부대로 복귀하는데, 투입될 때는 서 있기도 힘들 만큼 좁았던 트럭 화물칸이 "자리는 넓었다"고 담담하게 묘사된다.
계절 등 시점에 대한 묘사는 "따뜻한 밤"이라는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1917년 4~5월 봄일 공산이 크다.
제5장
쉬는 시간에 이를 잡던 동료들 사이에 힘멜슈토스가 어제 정말로 나타났다는 사실이 화제가 된다. 훈련소에서 프로이센 주지사 아들을 갈궜다가 좌천된 것.
전쟁이 끝나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놓고 주인공 패거리가 왁자지껄하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크로프는 술부터 퍼먹겠다고 하고 카친스키는 어머니를 찾아갔다가 처자식에게 돌아가겠다고 하며 전쟁을 저주한다. 질문하는 크로프 때문에 자다가 일어난 하이에는 여자를 얻어 1주일 동안 바지도 입지 않겠다고 말하고, 토탄을 캐는 광부 일로 돌아가느니 생계가 확실한 직업 부사관으로 군대에 눌러앉겠다고 한다.(파울은 그의 학력 때문에 불가능한 것을 알지만 말하지 않는다) 탸덴은 오로지 힘멜슈토스를 가둬 놓고 매일 두들겨패고 싶을 뿐이라고 하고, 데터링은 그저 추수에 알맞게 귀가할 수 있기만을 바란다.
이야기 도중에 힘멜슈토스가 나타나 조심스럽게 다가오는데,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힘멜슈토스가 부드러워진 이유를 프래깅에 대한 걱정 때문이라고 추정. 결국 힘멜슈토스가 먼저 인사를 건네지만 옛 원한을 잊지 않은 크로프는 매우 싸가지없게 대응하고, 탸덴은 아예 대놓고 욕지거리를 퍼붓는다.
분노한 힘멜슈토스가 행정반으로 사라지자 주인공과 급우들은 남은 친구들의 수를 세어 보고, 사회에서 직업이 있었던 동료들과 달리 자신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들을 진지하게 한다. 학교 수업은 이미 자신들의 인생에서 무의미해졌고, 전쟁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전쟁이 끝난 뒤의 일을 생각하기를 두려워하는 자신들을 발견한다.
힘멜슈토스와 함께 온 특무상사가 어디가에 짱박힌 탸덴을 찾아서 행정반으로 보내라고 했는데도 오지 않자 힘멜슈토스가 다시 와서 주인공 일당을 갈구는데, 크로프가 재차 대놓고 개긴다. 저녁에 직접 관계자 전원으로부터 쌓이고 쌓인 원한에 대한 증언을 들은 베르팅크는 힘멜슈토스를 잔뜩 꾸짖은 다음 탸덴은 경영창 3일, 크로프는 경영창 1일에 처한다. 경영창은 닭장이고 중영창은 지하실이라고. 예전 같았으면 기둥에 묶었겠지만 이젠 그러지는 않는다고 한다.
카친스키와 함께 4장에서 보아 둔 연대본부에서 기르는 거위 한 마리(사실은 한 마린 줄 알고 들어갔는데 두 마리가 있어서 동시에 잡으려다가 불독까지 한 마리 나타나 덤비는 바람에 개고생함)를 서리한 주인공은 둘이서 거위를 구워 빵과 함께 실컷 먹고, 남은 것은 영창에 있는 두 사람에게 갖다 준다.
20명의 급우들 현황에서 전사 7명, 부상 4명, 정신병원 입원 1명이라고 언급된다. 남아 있는 8명 중 3명은 장교가 되었다고 하는데 주인공, 크로프, 뮐러, 레어 4명이 2중대에 함께 있으며 후에 언급되는 미텔슈테트는 장교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뿐 아직 장교가 아니므로, 언급되지 않은 3명이 모조리 장교가 된 듯하다.
"4장 바로 다음 날"이므로 시기는 같다. 그 외에 크로프의 대사에서 "2년간이나 총과 수류탄으로 살아왔다"는 언급이 있는 것을 보면 1917년 봄이 확실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6장
투입 주기가 돌아오고 중대는 전선으로 나간다. 전선으로 가는 길에서는 공세 준비가 한창이었고, 중대의 분위기는 뒤숭숭해진다. 참호 생활과 쥐잡기가 회상으로 언급되고, 다음날에는 격전의 조짐인 브랜디와 네덜란드산 치즈가 지급된다. 연합군에 의한 포로 살해와 수류탄과 야전삽을 활용한 백병전 요령이 언급된다. 치열한 포격 때문에 식사 추진도 불가능해지고, 굶주림을 참던 중 PTSD 발작을 일으킨 신병들을 제압하지만 결국 한 명은 참호를 뛰쳐나갔다가 포격에 맞아 죽는다.
어느 순간 포격이 멈추고 프랑스군이 돌격해 온다. 하지만 독일군의 맹렬한 방어에 프랑스군의 공격은 저지되고, 일단 물러섰다가 반격에 나선 독일군은 일선 참호를 탈환한다. 후퇴하는 프랑스군 뒤에 바로 따라붙은 중대원들은 성공적으로 적의 제1선 참호에 뛰어들고, 가까스로 점령했으나 계속 사수할 여력이 없어서 전리품으로 식량만 잔뜩 챙겨서 귀환한다. 이때 노획한 콘비프가 전선 전체에서 좋은 평을 받으면서, 식량 사정이 나빠진 독일 병사들이 이후 적진을 공격하는 주된 이유가 되었다고...
이후 주인공이 떠올리는 온갖 상념과 계속되는 죽음과 신병들의 안쓰러운 모습 등 전투의 일상이 스치듯이 묘사된다. 그러던 중 참호에서 만난 힘멜슈토스가 꾀병을 부리고 짱박혀 있으려는 것을 두들겨 패서 끌어내는데, 지나가던 소위가 한마디 하자 늘어져 있던 힘멜슈토스가 벌떡 일어서서 대열을 따라 힘차게 걷는다
주인공 패밀리 중 하이에 베스트후스가 전사하고, 부대는 후방으로 다시 돌아온다. 중대 인원은 32명이 되었다. 중대장이 앉아번호를 시키는데 구호가 32에서 멈추자 더 없는 거냐 외치지만 32에서 더 올라가지 않자 망연자실한 채 분대별이 아닌 중대 전체에게 행군 명령을 내린다.
1916년 7월~11월에 벌어진 솜 전투에 참전했던 이야기를 중대원들이 나눈다. 또한 "여름에 전선에 투입되어 가을에 돌아왔다"는 주인공의 대사를 보면 현 시점은 1917년 가을이다.
제7장
중대는 손해가 너무 커서 아예 후방 보충대로 보내져 재편성을 하게 된다. 참호에서 같이 구르고 난 힘멜슈토스와도 화해를 한다. 다만 탸덴은 아직 원한을 풀지 않았지만, 보충대 대기 기간 동안 취사장 관리를 맡게 된 힘멜슈토스가 설탕과 버터 보따리를 안겨 주고 취사장 사역을 시켜 배불리 먹게 해주자 손을 든다.
주인공 일당 중 주인공, 레어, 크로프는 어느 날 저녁 근처 강에서 수영을 하다가 인근에 살고 있는 프랑스 여자들을 만나고, 밤에 몰래 찾아가 음식을 주고 성관계를 한다. 원래는 탸덴도 같이 가야 했는데, 여자가 3명이라 숫자가 안맞았다. 탸덴은 술을 먹여 재워버렸다. 그래도 늦게라도 술이 깬 탸덴이 혼자서라도 가기는 했다.
주인공은 이제 17일의 휴가(3일은 왕복 기간)를 받는다. 그리고 4주는 후방에 있는 훈련소에서 재교육을 받도록 되었다. 고향에 온 주인공은 가족을 만나고, 전쟁터의 고난에 대해서는 얼버무린다. 주인공은 누나의 귀띔으로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역 군 사무소에 휴가 신고를 마치고 군복을 벗어던진 주인공은 아버지를 비롯한 고향 남자들이 전쟁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는 것을 못 견뎌한다.
한편 주인공은 부상을 입은 뒤 고향에 있는 부대로 배치된 급우 미텔슈테트를 찾아가 자기들에게 입대하라고 부추긴 옛 담임교사 칸토레크가 예비역으로 소집되어 훈련을 받으며 곤욕을 치르는 것을 즐겁게 보고, 약간 후련해 한다. 그리고 휴가 막바지에 켐머리히의 어머니를 찾아가 그가 죽을 때의 모습을 거짓으로 전하고 괴로워한다. 복귀 전날 괴로워하는 어머니를 보며, 차라리 휴가를 받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후회한다.
미텔슈테트의 대사에서 베어가 "실제로 소집당해야 할 때보다 3개월이나 먼저 죽었다"는 언급이 있다. 1916년 입대 대상자였다면, 주인공 일동은 1915년 10월에 입대했을 가능성이 크다.
제8장
주인공은 신병훈련을 받은 훈련소에서 재교육을 받는다. 주특기교육을 추가로 받거나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중대 전술훈련. 훈련을 받으면서도 온갖 상념이 스쳐지나가고, 훈련소 옆에 있는 포로수용소의 러시아군 포로들이 보여주는 비참한 모습이 묘사된다. 주인공은 무기력한 포로들을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며 저들도 인간이라는 생각에 괴로워 한다.
전방으로 가기 전 마지막 주말에 아버지와 큰누나를 면회하고, 암에 걸린 어머니를 걱정하며 부대로 돌아간다.
제9장
부대로 복귀한 주인공은 어머니가 싸주신 음식을 신나게 먹는 동료들을 보며 편안함을 느낀다. 카이저가 부대를 방문한다고 하여 빡세게 검열 준비를 하고, 철십자 훈장 수여도 받지만 누가 받는지는 언급이 없다. 카이저가 돌아간 뒤 주인공 패거리는 전쟁이란 도대체 왜 일어나는 것일까에 대해 심도 깊은 철학적인 논의를 하고, 누군가 전쟁으로 득을 보는 놈이 일으킨 게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전방으로 복귀한 주인공은 자원해서 무인지대로 정찰을 나가는데, 정찰 중에 갑자기 프랑스군의 공격이 시작되는 바람에 포탄 구멍 속에 갇혀 버린다. 게다가 후퇴하던 프랑스군 병사 하나가 주인공이 숨어 있던 구덩이에 떨어지자 그대로 찔러버리는데, 즉사하지 않는 바람에 주인공은 자기가 찌른 상대와 하루 온종일을 같이 있으면서 자신이 살인을 했다는 것, 전쟁은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절감한다. 하지만 복귀한 다음 날 주인공이 본 것은 사람을 쏘는 것을 그저 점수판의 표적을 쏘는 정도로 여기는 저격수들이었다.
동부전선에서는 이미 전쟁이 끝났다는 언급이 나온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체결된 뒤는 아니라도, 러시아와 독일이 평화협상을 시작한 1917년 12월 경으로 시점을 짐작할 수 있다.
제10장
주인공을 포함한 8명(카친스키, 크로프, 뮐러, 탸덴, 레어, 데터링 외 1명)이 비어 있는 마을 하나를 수비하고 마을에 소재한 보급소 경비를 맡게 된다. 주인공과 동료들은 주민들이 소개된 마을을 뒤져 사치품과 식량을 긁어모으고, 이걸 가지고 잔치를 벌인다..돼지 통구이를 선두를 한 만찬에 피아노까지 쳤다. 그런데 밥 하는 연기가 나면서 1개 소대 정도의 프랑스군이 잔치 준비를 하는 주인공 일당에게 총알을 퍼붓기 시작한다. 쏟아지는 탄환 속에서 요리를 마친 주인공과 동료들은 실컷 먹고는 오랜만에 먹은 기름진 음식 때문에 전원 설사 환자가 된다.
여유 있는 수비대 생활도 3주 정도 만에 끝나고, 노획품을 챙겨서 철수하게 된다. 그리고 2,3일 뒤에 어느 마을을 소개시키기 위해 출동했다가 프랑스군의 갑작스런 포격으로 자잘한 부상과 더불어 주인공은 왼발에, 크로프는 무릎 3센티 위에 중상을 입는다. 야전병원으로 실려간 두 사람은 파편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후방의 야전병원으로 후송된다. 주인공은 쾰른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크로프의 상태가 악화되자 자기도 꾀병을 부려 일찍 하차, 같은 병원으로 들어간다.
병원에 들어가면서 주인공은 수많은 죽음을 또다시 보게 된다. 크로프는 점점 악화되는 상태에 치를 떨며 다리를 자르면 불구로 사느니 자살해버릴거라고 하지만, 결국 수술을 받고 다리를 절단한다. 이후 말수가 극단적으로 줄고 멍해져서 주인공은 몹시 걱정하지만, 그래도 크로프는 같은 병실에서 다른 부상병들이 죽어나가거나 부상을 이겨내거나 하는 것을 보며 점차적으로 안정을 찾아서 다른 이들과 트럼프 카드놀이도 곧잘 하게 된다. 주인공은 치료와 재활을 거치며 많은 생각을 하고, 전쟁을 겪은 자신의 세대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한다. 부상을 당한 폴란드계 병사의 아내가 찾아오는 에피소드를 통해 그래도 가족의 정을 챙기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모습도 묘사된다. 요양 휴가를 얻은 주인공은 잠시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어머니를 두고 다시 부대로 돌아간다.
주인공과 크로프가 수용된 가톨릭 병원의 위치는 "헤르베스탈(벨기에의 도시) 다음 정거장"이라고 명시된다. 즉 이들이 있는 곳은 플랑드르 전선이다.
제11장
전선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모든 것에 무감각해져 간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상념이 매우 길게 서술된다.
벚꽃이 핀 것을 본 데터링이 고향 과수원에 있는 벚나무를 떠올리면서, 결국 탈영하여 집에 돌아가려다 1주일 만에 잡힌다. 영국군과의 전투가 언급되면서 그 뒤에 뮐러의 죽음도 묘사된다. 캠머리히의 장화가 주인공에게 넘어오고 다음 차례는 탸덴으로 정한다. 뮐러의 시체를 묻고 후퇴한 진지는 미군과 영국군이 차지한다.
풍부한 물자를 가진 연합군에 대해 독일군의 빈궁함이 강조되어 묘사되고, 병력 및 장비의 부족도 심각하게 드러난다. 연합군의 대규모 전차부대에 대한 공포도 보병의 시각에서 눈물겹게 묘사된다.
전투의 와중에 중대장 베르팅크와 레어가 전사한다. 베르팅크는 총탄에 가슴을 맞은 뒤 파편에 턱을 맞았고, 이 파편은 레어의 허리까지 부숴버렸다.
늦여름의 어느 날, 카친스키가 전사한다. 식사당번으로 움직이던 중 허벅지에 총을 맞은 것을, 출혈이 심하여 주인공이 업고 응급 치료소로 가던 도중 파편이 머리에 맞는다.
서두에서 "겨울에 전선에 돌아왔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1918년 2월경에 전선으로 복귀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시기는 1918년 여름으로 분명히 명시된다. 마지막 총공격이었다는 언급은 독일군의 마지막 춘계 공세를 의미한다.
카친스키와의 대화에서 "3년 전 내가 신병일 때"를 언급하는데, 주인공의 입대가 1915년 말이라는 것이 확인된다.
제12장
가을이 오자 급우 7명 중에서 주인공 혼자만 남았다. 독가스를 마셔서 2주 휴가를 받고, 곧 눈앞에 닥칠 휴전을 기대한다. 전쟁이 끝나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함을 느끼며 전쟁으로 파괴된 자기 세대는 후대에게 앞질러질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이후의 시간에 대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던 도중 1918년 10월 어느 날에 주인공이 전사한다.
시점이 3인칭으로 바뀌면서 "여기까지 써 내려간 그도 10월의 어느 날 전사했다."라는 내용으로 끝나고, 어떻게 죽었는지 사인도 묘사되지 않는다. 엎드려 있었다는 묘사가 있을 뿐이다.
어쨌든 주인공이 전사한 바로 그날 독일군 사령부에서는 서부전선에 새 소식 없음라는 기록을 남긴다. 전선 자체는 교착상태이므로 후방에 앉아계신 높으신 분들에게는 겉보기엔 이상없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서두의 7명이 5장에서 언급된 죽거나 다치고 전선에 남은 급우 8명 중 후송된 알베르트를 뺀 7명을 이야기하는지, 제2중대에 배속된 7명을 이야기하는지는 알 수 없다. 후자일 가능성이 큰데, 전자 중에서도 부상을 입고 야전병원에 들어간 4명 중 다시 전방으로 복귀한 사람이 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