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멈추면 실재(實在)를 보게 된다.
실재(實在)를 보면 지혜가 생긴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오온(五蘊), 즉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봅니다. 여기서 색(色)은 몸, 수상행식은 마음입니다. 마음의 구성요소 가운데 수(受)는 느낌입니다. 상(想)은 우리가 뭔가를 보고 딱 아는 겁니다. ‘칠판이구나, 마이크구나.’ 하고 알고, 처음으로 본 것은 ‘이거는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새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인식 작용이라고 합니다. 행(行)은 우리가 의도, 의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식(識)은 마음의 근본 작용, 다시 말해 무엇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어떤 속성을 가졌느냐, 다시 말해 몸과 마음이 어떻게 되어서 우리에게 병이 생겼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병이 안 나는지를 아는 것. 이것이 불교정신치료의 첫째 원리입니다.
둘째 원리는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 이해’입니다. 세상은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에 따라 움직입니다.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런 세상의 원리와 나의 생각이 충돌할 때 괴로움이 오고 그 괴로움을 잘 처리하지 못하면 정신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괴로움이란 건 일단 하나가 생겨나면 눈덩이처럼 자꾸자꾸 불어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괴로움이 있으면 고통스럽기도 하고 정신적인 문제도 생깁니다. 그래서 이 괴로움을 잘 이해하고 다스리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것이 불교정신치료의 핵심입니다.
셋째 원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한 것입니다. 괴로움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지혜로워야 합니다. 제가 말하는 지혜란, 그저 실제를 있는 그대로 아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식시장에 대한 지혜는 주식시장이 어떤 원리로 운영되는지를 아는 것이고, 장사에 대한 지혜는 어떻게 하면 장사가 잘되고 어떻게 하면 망하는지를 아는 겁니다. 사람에 대한 지혜는 상대의 마음속에 지금 무엇이 있는지, 그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그 사람하고 잘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겁니다. 죽음에 대한 지혜는 죽었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아는 겁니다. 태어남에 대한 지혜는 태어나는 과정을 아는 겁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의 생각과 실제의 차이만큼 괴로움도 정신적인 문제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치료의 목표도 결국은 내담자로 하여금 세상과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보도록 하여 생각하고 바라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것과 맞아떨어지게끔 이끄는 것입니다. 생각과 바람이 잘 실현되는데 정신적인 문제가 일어날 리는 없을 테니까요. 이런 면에서, 불교정신치료의 셋째 원리는 ‘지혜계발’입니다. 자기만의 생각이 아닌 세상과 통하는 지혜로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강의에서 불교정신치료의 세 가지 원리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것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몸과 마음을 정확히 알면 우리에게 왜 병이 생기고, 어떻게 해야 병에서 벗어나 정신 불건강에서 정신 건강으로 갈 수 있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몸과 마음의 속성 이해’를 불교정신치료의 첫째 원리로 소개합니다.”
괴로움은 어디서 오는가
저는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가 생긴 원인을 철저히 파악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항상 생각합니다. 어떤 문제가 생긴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니 그 원인을 철저히 살피고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래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원인은 A인데 그에 맞지 않는 대처를 하면 절대로 원하는 변화가 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문제의 원인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게 실제를 보는 겁니다. 불교의 사성제가 바로 이 원리를 바탕으로 되어 있습니다.
괴로움은 나로부터 오기도 합니다. 제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분들 대부분이 스스로 괴로움을 만듭니다. 환자들은 대부분 스스로 만든 감옥에 들어가 있습니다. 누가 넣은 게 아니라 스스로 들어간 거예요. 그러니 나오는 것도 스스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기는 합니다.
괴로움은 남으로부터 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제를 잘 살펴보면 남으로부터 괴로움이 오도록 유발하는 무언가를 내가 했기 때문에 그러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물론 내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괴로움이 바깥에서 밀려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남으로부터 괴로움이 와도 내가 접수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남으로부터 온 괴로움에 대해서 내가 전혀 괴롭지 않게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괴로움이란 결국 나를 통해서 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릴 수만 있다면 어떤 것도 나를 힘들게 할 수 없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아셔야 합니다.
괴로움이란 우리가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것에서 온다고 보시는 게 맞습니다. 누군가 “돈이 없어서 힘들다.”고 한다면, 그에게는 돈 없는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 있는 겁니다. “나는 병이 들어서 힘들다.”고 한다면 병 있는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 있는 겁니다. 내 정신이 강화되면 어떤 것도 나를 괴롭힐 수 없습니다. 이 모델은 부처님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어떤 것도 괴로워하지 않았거든요. 아라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것도 괴롭지 않았어요. 대체로 우리는 돈이 없다는 것에, 아프다는 것에, 가족이 화목하지 못하다는 것에, 사회가 불안정하다는 것에 초점을 두곤 하는데, 그 초점을 정신 쪽으로 옮기는 게 좋습니다. 스스로의 정신을 강화하고 스스로를 바꿔낸다면 어떤 것도 우리를 괴롭히지 못합니다. 그렇게 초점을 전화하여 정신을 강화하는 게 바로 불교입니다.
그런데 제가 경험을 해보니까 환자들에게는 생각을 다스리는 일이 무척 어렵습니다. 불안이 엄청나게 강하기 때문입니다. 환자들은 생각을 알아차리고 현재로 돌아왔다가도 금방 다시 생각으로 갑니다. 그렇게 다시 생각으로 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생각에 머물게 됩니다. 그래서 적지 않는 환자들이 생각 다스리는 연습을 조금 하다가 효과가 없다 생각하고 그만둡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 현재로 돌아오면 그만큼 그 생각에서 받는 영향이 줄어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안 떨어질 것 같은 생각도, 생각이 날 때마다 현재로 돌아오는 연습을 하면 어느 순간 스윽 사라집니다. 전화를 받다가 스윽, 세수를 하다가 스윽, 길을 걷다가 스윽 사라집니다. 그래서 저는 환자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생각이 나면 현재로 돌아오고, 또 나면 또 돌아오라고. 수 천 번을 돌아오더라도 잘하고 있는 것이니 너무 신경 쓰지도, 조급해하지도, 안 없어진다고 불안해하지도 말고 계속하시라고 말이지요. 아무리 노력을 하고 어느 정도 집중을 잘해도 환자들에게는 안 좋은 생각이 미세하게 남아 있기 마련입니다. 그쪽 생각을 워낙 많이 했기 때문이지요. 환자들의 이런 고충을 잘 헤아리고 그들을 격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각은, 마음이 어느 한곳에 머물지 않을 때 일어납니다. 따라서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마음이 생각 아닌 다른 곳에 확고하게 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늘 한곳에 가 있으면 생각이 일어날 확률이 훨씬 줄어듭니다. 다시 말해 생각이란 마음이 과거나 미래로 갈 수 없어 생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명상이 생각을 다스리는 훌륭한 방법인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명상을 깊숙한 동굴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여기지만, 명상이란 본질적으로 현재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현재에 집중하되 몸과 마음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 현재에 집중한다면 훌륭한 명상이 되지요. 현재에 집중하는 속에서 뭔가 깨닫게 됩니다. 물론 정신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극도로 집중하면 좋지 않습니다. 이상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어요. 하지만 안정된 상태에서 현재에 적절하게 집중하는 것은 정신 건강에 굉장히 좋습니다.
명상은 현재에 집중해서 현재에 일어나는 것을 그대로 아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에 집중하는 만큼 생각이 줄고 또 현재를 있는 그래도 아는 지혜가 생기게 돼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는 아는 기능이 있는데, 그것을 몸과 마음에 집중하면 몸과 마음의 속성이 어떤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항상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명상의 반대편에는 생각이 있다 명상을 제대로 하면 생각이 줄고, 생각이 줄면 과거와 미래로 가는 것이 줄고 현재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현재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 정신이 건강해진다.’ 현재에서 멀어진 만큼 정신이 건강하지 않는 것입니다.. 현재에서 조금 멀어진 게 신경증이고, 아무 멀어져서 현실과 맞지 않는 자기만의 세계에서 사는 게 정신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생각을 할 것인지 현재에 집중할 것인지, 과거와 미래에 살 것인지 현재에 살 것인지를.
우리는 보통 좋은 생각은 하고 부정적이고 힘든 생각은 안 하려고 하는데, 사실 어떤 생각이라도 내려놓는 게 필요합니다. 저는 환자에게 이르기를, 좋은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내려놓되 그게 꼭 필요한 생각이라면 그 내용을 기록하라고 합니다. 보통은 그렇지만 수험생에게는 예외를 둡니다. 공부와 관계되는 생각은 무방하다고 이야기하지요. 수험생은 공부 삼매에 들어 있어야 되니까요.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러는 동안에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이 현재에 집중하는 것만큼은 못하고 한계도 있지만 병으로까지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좋은 생각을 한다는 건 생각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는 뜻이고, 따라서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안 좋을 일이 일어났을 때 바로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멈추어야 할 때 멈출 수가 없고, 나쁜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좋은 생각은 나쁜 생각 옆에 붙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둘이 친구인 거지요. 이에 비해 생각 없음은 나쁜 생각과 한참 떨어져 있습니다. 선정 수행을 할 때도 보면, 초선정은 마음에 번뇌를 일으키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다섯 가지 덮개’ [오개(五蓋)]하고 가깝습니다. 오개를 제거하고 초선정에 들기 때문입니다. 초선정에서 이선정으로 들어가기 위해 하는 숙고의 내용을 보면 이게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초선정은 오개와 가깝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은 거친 선정 요소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을 제거하고 더 고요한 이선정에 들어가 머물겠다.’ 이렇게 숙고하여 이선정에 들면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없어져 오개와 훨씬 멀어집니다.
생각 없음을 구축하려면 나쁜 생각이 일어날 때 바로 내려놓으면 됩니다. 좋은 생각이 일어나도 바로 내려놓고요. 어떤 생각이든지 일어나면 탁 내려놓습니다. 그러면 생각이 없어집니다. 생각이 발붙일 곳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속성상 어디라도 가야 하는 것이므로, 생각을 내려놓고 갈 곳이 필요합니다. 그곳이 바로 현재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생각을 다스리는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몇 년 전 저는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체크를 해서 매일 자기 전에 달력에 그날 생각 횟수를 적어봤습니다. 이 방법을 쓰시려면 첫 생각을 알아차릴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집중하는 연습을 열심히 해서 하루 종일 현재에 머물 수 있게 되면 첫 생각이 일어날 때 탁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떨 때 생각이 떠오르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환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다스릴 수 있게 하기 위해 다음의 방법을 씁니다. 저는 환자들에게 첫 생각을 놓치고 공연히 생각에 빠져 있는 걸 알아차리면 그 때 현재로 돌아오면서 카드에 한 번씩 표시하하고 합니다. 그러니까 현재에 집중하고 있다가 첫 생각이 드는 걸 놓치고 다음 생각에 들었다가 ‘아, 지금 내가 생각에 빠져 있구나!’ 하고 아는 순간에 표시를 하는 거죠. 그 표시한 카드를 다음 치료 시간에 가져오도록 합니다.
생각은 사람하고 관계된 게 굉장히 많습니다. 누군가와 있었던 과거의 일이나 어떤 사람을 향한 나의 바람이 생각으로 잘 이어집니다. 따라서 눈앞에 없는 사람을 마음에 담지 않는 훈련을 해도 생각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면 퇴근하여 혼자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지금 나와 같이 있지 않는 회사 상사를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소리를 안 내고 지내는 것도 생각을 줄이고 현재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물론 소리를 하나도 안 내고 지낼 수는 없습니다. 소리를 내는 여지를 최소한으로 줄이며 지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현재 하는 일에 굉장히 집중해야 합니다. 그 상태에서는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어집니다.
바르게 걷는 연습도 생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바른 걸음의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 발을 11자로 하여 걷되 발을 들 때 다리를 쭉 폅니다. 둘째, 걸을 때는 배를 넣고 가슴은 폅니다. 셋째, 주먹을 살짝 쥐고 양팔을 쭉 펴 뒤로 흔들고 그 반동으로 앞으로 가게 합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제대로 되는지 몸을 잘 관찰하며 걸으면, 몸 관찰에 온통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에 생각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생각을 하느니 차라리 자라고 말씀했습니다. 잠은 무익 하지만 생각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생각이 많으면 잠깐 잠을 청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잠을 자면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담, 밤에 잠자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만 자야 합니다. 밤에는 생각이 더 활개를 치곤 하니, 밤에 잘 때는 생각을 놓아두시기 바랍니다.
이밖에도 생각이 날 때 산책을 한다든가, 체조를 한다든가, 장소를 바꾼다든가 하는 것이 생각을 줄이고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런 모든 시도가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은 경우나, 노력했으나 실패했을 때는 약을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부정적인 생각을 너무 많이 해와서 자신의 힘으로는 생각을 다스리는 건전한 노력을 할 수 없습니다. 불안한 생각 때문에 아주 힘들었던 어떤 환자는 약을 먹으면 생각이 나긴 나지만 둔하게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약을 먹지 않을 때는 날카롭게 느껴지던 것이 둔하게 느껴지면서 영향을 적게 받는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약을 통해 부정적인 생각의 영향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다음, 현재로 돌아오는 연습을 꾸준히 병행하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