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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엘 카미노 데 산티아고, 성 야고보, 산티아고, El Camino de Santiago

Jobs 9 2024. 10. 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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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카미노 데 산티아고
El Camino de Santiago

스페인의 유명한 성지순례길. 유럽의 여러 가지의 루트로 출발해서 최종 목적지인 스페인의 갈리시아 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위치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하는 도보순례이다. 순례길의 상징은 가리비와 노란 화살표.

성지 순례라고는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사실상 800km를 일주하는 관광 상품화되어 있어, 트레일과 흥미를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길의 본래 목적이 목적인 만큼 단순히 놀자판으로 오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세계 각국에서 이 길을 위해 온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같이 800km나 되는 길을 걸으며 친목을 다지고 내적인 평화를 찾는 느낌이 강하다. 현대에도 중세시대처럼 신앙적 목적을 가지고 순례하는 순례자들이 많은데 이들도 성지순례를 겸해 레저나 관광을 즐기기도 한다. 세속화의 영향으로 그리스도교적 관습(주일 미사 참례 등)에서 거의 벗어난 서구의 젊은 순례자들이라도, 가톨릭 문화가 깊은 서유럽이나 남미 출신이라면 이 기회에 철학적 사유나 영성적 탐구를 목표로 평소에 가지 않았던 성당에 한 번쯤 가보기도 한다.  

800km짜리 관광지이긴 하지만, 아주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례길 위의 알베르게라는 숙소를 이용하게 되는데, 기부만으로 운용되는 숙소부터 시작해서 시립, 국립 알베르게의 경우 꽤 괜찮은 시설을 보유함에도 불구하고 5~6 유로7~15유로(2020년대에 들어서부터 숙박비가 많이 올랐다) 정도의 가격을 자랑하기 때문. 작정하고 아끼기 시작하면 숙박까지 포함하여 하루 20~30 유로(!) 선에서도 예산을 잡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현지의 순례자 할인은 대부분 거짓이니 속지 말 것. 실례로 순례자 할인 가격에 파는 메뉴를 타 지역에서 같은 가격으로 먹을 수 있으며 그 지역 동네주민이 가는 곳은 순례자 할인이 없음에도 할인된 평균가격과 똑같은 가격을 받는다. 그래도 한국보단 훨씬 쌀 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을 통틀어서도 물가가 꽤 싼 편이기 때문에 저렴하면서도 특색있는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순례길의 역사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사도 성 대(大) 야고보가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직후, 그의 제자들이 야고보의 시신을 몰래 수습해 돌을 깎아 만든 배(石船)를 타고 이베리아 반도의 갈리시아 지방에 도착했으나 거기에서도 로마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고난을 받던 중, 이 지역을 다스리던 토착민들의 지배자인 루파가 던진 시험을 통과해 갈리시아 지방에 무사히 정착할 수 있게 되었고 거기서 제자들은 야고보의 유해를 제대로 매장하고 갖가지 이적을 행해 로마인들과 토착민들을 개종하는 데 힘을 쏟았다. 

세월이 흘러 8세기경, 지나가던 주민들이 밤길을 걷다가 밤하늘을 비추어야 할 별빛들이 구릉지의 들판을 맴돌면서 춤을 추는 것을 목격하였고 그곳을 조사하다 야고보의 무덤을 발견하면서 이 지역을 '빛나는 별 들판의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라 부르면서 성지로 추앙받게 되었다. 

레콩키스타 기간 동안 해당 성역과 성 야고보의 존재는 이교도인 무슬림들로부터 이베리아 반도를 수호하는 수호성인으로 섬겨지는 동시에 타 종교인 상대로는 편견과 학살을 부추기는 매개가 되어 버리기도 했다. 레콩키스타, 즉 재정복 이후로부터는 성역과 순례길 자체에 대한 관심과 믿음이 소멸되어가기 시작했고 20세기 중반까지는 신심 깊은 순례자들만 사용하는 순례길이 되어 버렸지만 요한 바오로 2세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방문하면서 순례길의 재흥이 시작되었다. 이후 해당 순례길은 199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순례길의 루트
여러 개의 루트가 많은데 그중에서 유명한 건 '프랑스 루트'. 프랑스 루트는 총 4개로 투르의 길, 리모주의 길, 르 퓌의 길, 툴루즈의 길이 있다. 거기서 출발한 4개의 길이 생장피에드포르(Saint-Jean-Pied-de-Port)에 합류한 다음 피레네 산맥을 넘어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한 다음에 바스크 주, 아라곤 주, 나바라 주를 거쳐 최종 목적지인 갈리시아 지방으로 나아가는 루트이다. 근래에는 이 길이 워낙 유명해서 조용한 순례는커녕 지나치게 상업화되어 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실제로 많은 스페인 주민들이 레저용으로 가기도 해서 공휴일이 많이 끼어 있는 4월에는 마을 하나에 숙박하는 순례자가 400명이 넘기도 한다.  

그 다음에 유명한 루트는 '스페인 루트'. 일단 첫 출발지인 푸엔테 라 레이나로 가는 임시 루트를 각각 아라곤의 길과 나바라의 길로 칭하며 푸엔테 라 레이나를 출발하여 스페인 북부를 횡단하는 루트이다. 

마드리드에서 출발하는 '마드리드 루트'도 존재한다. 북쪽으로 향해서 가다가 프랑스 루트 중 중간 정도 도시인 '사하군'에서 합류하는 길이다. 600km대의 루트이다. 그러나 알베르게, 식당 등 인프라가 적어서 순례객이 극히 드물다. 

그 밖에도 프랑스 남서부와 바스크 지방에서 출발하여 스페인 북부의 해안가를 횡단하는 '해안가 루트'와 영국 남부에서 배로 출발하여 페로르나 아 코르냐에 내려서 가는 '영국 루트', 스페인 남서부에서 출발하여 고대 로마의 도로의 흔적을 따라 북쪽으로 종단하는 '은 루트', 리스본 또는 포르투에서 출발하여 파티마를 거쳐 종단하는 '포르투갈 루트'가 있다. 

현재도 열혈 순례자(페레그리노·페레그리나/Peregrino·Peregrina)들에 의해 새로운 루트가 발견·조사 및 개발되어가는 중이다. 

 


포르투갈 길
프랑스길에 이어 두 번째로 유명한 루트이며,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에서 시작하여 코임브라, 포르투를 거쳐 스페인 갈리시아-포르투갈 국경을 넘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길이다. 포르투에서 폰테베드라까지 길이 두 갈래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 한 길은 포르투갈의 대서양 해안을 따라 걷는 해변길로 해변 풍경을 즐기기 좋다. 

카미노의 기원이 가톨릭 영성을 위한 순례길인 만큼 포르투갈의 유명한 성지인 파티마를 거쳐가는 코스도 있다. 파티마로 향하는 길은 카미노의 노란 화살표처럼 파란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다. 

 

은의 길(Via de la Plata)
고대 로마 제국의 히스파니아 속주 시절 주요 도시였던 에메리타 아우구스타와 살만티카, 아스투리카 아우구스타를 잇는 로마 가도에서 기원한다. 세비야에서 출발하여 사모라(Zamora) 이후 그랑하 데 모레루엘라(Granja de Moreruela)에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하나는 아스토르가로 향하여 카미노 프란세스에 합류하는 길, 또 하나는 사나브리아 산악지대와 온천 휴양지인 갈리시아 오우렌세(Ourense) 시를 지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시에 도착하는 사나브리아 길(Camino Sanabres)이 있다.  

파생된 루트로는 안달루시아 주 알메리아, 그라나다, 코르도바를 지나 메리다에서 합류하는 모사라베 길(Camino Mozárabe), 항구도시 카디스(Cádiz)에서 세비야까지 구간을 더 걷는 아우구스타 길(Via Augusta) 등이 있다. 

기원이 고대 로마의 군사·무역로인 만큼 역사가 깊고 유적 등의 볼거리도 많다. 순례길의 시작점인 세비야는 말할 것도 없고, 메리다 시는 로마 극장, 수도교, 디아나 신전 등 유적이 유명하다. 또한 살라망카 대학교로 알려진 살라망카, 로마 성벽과 가우디 주교궁이 있는 아스토르가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대 야고보 사도에 관한 그리스도교 전승도 사도의 선교활동이 이 로마 가도를 따라 이루어졌다고 증언하고 있다. 역사가 오랜 길인 만큼 스페인 N630 국도가 이 은의 길을 따라 나 있어 순례 도중에 큰 도로를 자주 만날 수 있으므로 보행 중 차가 지나가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카미노 프리미티보(Camino Primitivo)

 

북쪽 길(Camino del Norte)
포르투갈 길에 이어 세 번째로 유명한 루트이며 가장 오래된 길이다. 9~10세기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맹위를 떨치던 무렵 순례자들이 이슬람 세력권을 벗어난 북쪽 해안을 따라서 순례하던 루트에서 유례한다고 알려져 있다.

프랑스 국경에 맞닿은 이룬에서 시작하여 해안을 따라 산세바스티안, 빌바오, 산탄데르, 오비에도, 히혼 등을 거친다. 이후 갈리시아로 진입하는 리바데오에서 내륙으로 틀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한다. 중간에 카미노 프리미티보로 갈라지는 분기가 있고 이쪽은 해안에서 벗어나는 시점이 조금 더 빠르다. 노르테를 쭉 걷는다면 산티아고가 지척인 알주아(Arzúa)에서야 프랑스 길과 만나게 된다. 

프랑스 길에 비하면 사람이 매우 적지만 더 마이너한 길(은의 길, 마드리드 길)과는 달리 이정표나 알베르게는 잘 마련되어 있다. 산길이 많고 포장된 도로변을 걷는 구간도 많아서 상당히 힘든 길이다. 고도(古道)라고는 하나 유적지나 역사적 가치도 12세기 이후 왕도로 정착된 지 오래인 프랑스 길에 비하면 많이 밀린다.

 

 

순례를 제대로 하고 싶다면?
일단 순례의 주요 증거물 중 하나인 순례여권을 사려면(대개 2~3유로 정도) 순례가 시작되는 지점의 성당이나 순례자 사무소에 가야 한다. 이게 있어야 공·사립으로 운영하는 순례자 숙소인 알베르게(Albergue)나 레푸히오(Refugio)[24]에 묵을 수 있으며, 각 숙소나 성당이나 사무소에서 세요(Sello)를 충실히 찍어 나중에 도착했을 때 순례의 증거를 입증할 수 있다.

순례길을 지나오면서 각 지역의 역사나 축제 등등을 잘 이해할 수도 있지만, 현지의 기상 상황에 맞추어서 걸어가야 악천후로 인한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웬만하면 혼자 걷는 것을 추천한다. 동행인이 있더라도 1명 정도로. 만약 3~4명 이상의 사람들과 동행할 경우 순례길이 상당히 피곤해질 수 있다. 이유는 숙소 때문인데, 공립 알베르게는 예약 없이 오직 선착순으로 운영된다. 만약 당신이 당신을 포함한 5명과 같이 걸어서 숙소에 도착했을 때, 공립 알베르게에 자리가 2개 내지 3개밖에 없다고 가정해보자. 참 난감해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숙소 잡겠다고 새벽에 일어나서 정신 없이 걸어대면 여러 볼거리들을 놓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사실 순례길을 걸을 이유가 없다. 사립숙소를 예약을 해서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안 그래도 공립숙소에 비해 3~5유로 비싼 사립숙소에 예약을 하려면 추가로 1~2유로의 돈을 더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즉 팀으로 오면 혼자 올 때보다 숙소비용이 2~3배는 더 들 수 있다는 것. 돈 문제만이 아니다. 팀으로 다닐 때 팀원 중 1명이라도 아프면 팀 전체가 순례를 진행할 수 없게 된다. 즉 강제로 하루 내지 이틀 동안 꼼짝 못하게 되는 것이다. 되도록이면 혼자 와서 여러 볼거리들을 여유롭게 구경하며 걷는 것을 추천한다.

숙소의 경우에는 목욕이 가능하고 편히 잘 수 있는 곳을 엄선하여 묵자. 가능한 내부의 청결이 좋은 곳에 숙박하는 것이 좋다. 한국과 달리 '베드 버그(bed bug)'로 불리는 빈대와 벼룩이 흔하며, 순례자들을 따라 각 숙소로 퍼지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에 가려움증에 시달리고 싶지 않다면 숙소의 청결여부에 신경을 쓰도록 하자.

식사의 경우 숙소에서 제공되기도 하나, 그렇지 않더라도 대부분 그 지역의 바 또는 레스토랑에서 순례자용 할인 메뉴를 판매하고 있다. 이 경우 보통 순례여권을 보여달라 하니,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고생을 하지 않도록 미리미리 챙겨두도록 하자. 이것마저도 여의치 않는 상황에서는 마을의 구멍가게나 편의점에서 간단한 음식 또는 요리 재료를 사야 한다. 대다수의 숙소가 주방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사 먹는 것보다는 간단한 취사를 통해 요리하여 먹는 것을 추천한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와 식재료 가격이 비슷하다. 단, 지역 차이가 있어 스페인에서 저렴한 식재료와 비싼 식재료가 나뉜다. 스페인이 파에야를 비롯한 쌀 요리를 즐기는 나라라서 웬만한 티엔다나 슈퍼에서는 쌀을 1kg 단위로 판매하고 있으니, 쌀 걱정은 안 해도 좋다. 다만, 들고 다니는 게 부담스러울 순 있다 여행 전에 파스타나 필라프, 리소토 등의 조리법을 익히고 갈 것을 추천한다.

대부분의 알베르게엔 전 순례자들이 놔두고 가거나 구비해 둔 식재료가 있기 마련이지만, 어디까지나 운에 맡겨야 하므로 염두에만 두자. 식용유의 경우 대형 슈퍼마켓에서 아주 작은 병 단위로 묶음판매하고 있으니 사 두면 편하다.

각 알베르게 주방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가는 그때그때 다르다. 알베르게 특성상 물건이 망가지거나 사라질 때마다 바로바로 보충해 두진 않기 때문. 오히려 순례자들이 사비를 털어 구입해 쓴 후 놓고 가는 경우가 훨씬 많다.

갈리시아 주 수도인 루고와 대도시인 산티아고의 경우 모든 조리도구가 완벽해서, 이에 비춰보면 오 세브리오에 조리도구가 없는 것은 단순히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비치해 두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의 공립 알베르게의 호스틸리어는 대부분 지역 주민으로 보이는데 알베르게 취침시간 이후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며, 조리기구의 경우 냄비 정도는 빌려주기도 한다.(2018년 4월 기준 호스틸리어 왈, 그냥 조리해 먹지 말라고 한다. 전자렌지만 사용하라고 한다.) 

순례 도중 한국 음식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면 모든 대도시나 거점도시의 중국인 식료품점에서 컵라면, 라면, 고추장, 새우깡, 김치 등 다양한 한국 음식을 판매하고, 포르토마린(Portomarín) 가는 길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에서도 다양한 한국 음식을 판매한다. 하지만 알베르게의 공용 주방 사용시엔 제발 김치 같은 냄새 나는 음식은 참아주세요. 밑의 주의점 문단에 하술하겠지만, 다시 안 올 곳이고 안 볼 사람들이니까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마인드의 한국인 순례객들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

아주 간혹 한국어 간판으로 된 한국 음식점도 있다. 보통 아주 구석진 곳에 있으며 현지인들만 가기 때문에 발견하기가 어렵다.

비야프랑카(Villafranca)에서 오 세브레이로로 가는 길에 자리한 트라바델로(Trabadelo)라는 마을 초입의 네덜란드인이 운영하는 숙소에서는 한국 봉지라면을 끓여서 판다. 심지어 김치까지 직접(!) 담가서 소량 반찬으로 내주기도 했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름. 부르고스 시내에 라면 파는 걸로 유명한 레스토랑보다 가격대비 만족도는 조금 높다. 단, 비수기에는 운영을 하지 않으므로 주의.(운 좋으면 비수기라도 라면 구입만은 가능하다) 가격은 따지지 않기로 하자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면, 그간의 혹사한 몸을 푼 뒤에 순례자 사무소에서 순례여권을 보여주고 순례 증명서(콤포스텔라/Compostela)를 받아갈 수 있다.

산티아고 알베르게들은 가격 대비 만족도가 엄청 떨어지니 각자 알아서 주의하자. 특히 공립 알베르게는 저 멀리 구석에 박혀 있다. 그런데 알베르게의 서비스 품질에 연연할 생각이라면 차라리 호텔을 가는 게 좋다. 관광을 온 건지 순례를 온 건지 마음가짐을 분명히 하는 게 본인은 물론 본인을 맞이할 알베르게 관리인 서로의 정신건강에 좋다. 하술되지만 편안하게 관광을 즐기고 싶은 관광객 마인드로 순례길에 오르면 본인은 본인대로 만족하지 못해 욕이 나오고 외국인들은 외국인들대로 한국인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이 생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서 매일 정오에 열리는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에 참례하는 것도 좋다. 미사 도중에 순례를 완수한 사람들을 호명하는 파트가 있기 때문. 혹은 순례자 사무소에서 하는 영어 미사에 참여해도 재밌다. 그나마 알아먹을 수 있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미사에는 얼마든지 참례할 수 있다. 다만 미사 중에 영성체, 즉 흰 전병을 받아먹는 예식은 신자만 할 수 있으므로 주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산티아고 순례길에 가겠답시고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나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로 가는 경우가 없어야 한다.

 

순례시 주의점
인종차별은 매우 흔하다. 그나마 겉으로라도 친절한 척하며 음습하게 인종차별하는 영미권과는 달리 남유럽은 노골적으로 면전에서 개무시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니 유의할 것. 인종차별을 당해 본 경험이 거의 없는 한국인들이 인종차별을 당하고도 자기가 당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본 문서에도 기재되어 있는 내용 중 '순례길에서는 영어가 잘 안 통하니 스페인어를 알아야 한다'거나, '무개념 한국인 여행자들 때문에 한국인들을 거절하는 곳이 많다'는 내용처럼 불친절을 당한 것이 한국인이기 때문이라는 식의 반응은 남유럽식의 노골적인 인종차별에 익숙하지 않아 인지부조화를 일으킨 경우가 많다. 2000년이 된 지도 수십 년이 지나 전 세계가 유튜브를 보는 세상인데, 철학 토론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길을 묻거나 가격을 흥정하는 정도에 불과한 뻔한 순례객의 영어대화조차 못 알아들을 정도로 영어를 못 하는 현지인은 드물다. 이들은 백인이 영어로 말을 걸면 기가 막히게 알아듣는다. 인종차별을 할 뿐 순례길 자체에서 동양인을 상대로 도를 넘는 범죄행위가 일어나는 경우는 비교적 많지 않다. 범죄라도 일어났다간 순례길이 텅 비는 것은 시간문제이니 지방정부에서 사력을 다해 관리하고 있다.  
한국인 순례자가 증가하면서 민폐를 끼치는 한국인들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 여러 명이 몰려다니면서 알베르게의 주방을 아침과 저녁 시간 내내 독차지하는 것도 모자라 냄새가 심한 김치찌개와 삼겹살을 구워 먹기까지 하는데 외국인들이 그만 양보해달라고 하면 특정 한국인들이 이걸 먹으라며 선심 쓰듯이 김치찌개를 들이밀기도 한다. 밤 늦도록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으며 흐드러진 술판을 벌여서 다른 외국인 순례자들의 수면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침 식사 때 주방을 또 독차지하려고 새벽에 일어나 부산을 떨어 다시 수면을 방해한다. 이뿐만 아니라 이 난리를 쳐놓고 프라이팬이나 냄비의 설거지를 안 한다. 이 밖에도 세면대에서 세탁이 금지되었는데도 세탁을 한다든지, 침대 위에서 음식을 먹어 시트를 더럽히는 등 다른 여행자와 알베르게 관리인의 혈압을 돋운다. 더 어이없는 건 저딴 짓을 해놓고 서비스 정신이 없다느니 개소리를 지껄이는 인간들을 각종 SNS나 여행 사이트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인 숙박을 사절하는 알베르게까지 생겼다. 논조가 극단적으로 다른 언론사들조차 공통적으로 한국인의 민폐를 지적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이를 두고 한국인에게 부채 의식을 씌우고 기를 죽이려 한다, 왜 한국인만 해외에서 눈치를 봐야 하냐고 악을 쓰는 사람도 있는데 일부 외국인들이 공중 도덕을 안 지킨다고 한국인도 따라서 지키지 않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6~8 유로를 받고 알베르게에서 알베르게로 짐을 보내주는 화물 운송 서비스를 '동키 서비스' 혹은 '모칠라 서비스'라고 한다. 초기에는 순례 도중 발생한 환자나 노약자들을 위한 서비스로 시작했는데, 현재는 여러 운송 업체가 있어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우체국 PAQ MOCHILA, JACO trans, TRANS JES 등 다양한 업체가 있으니 미리 알아보고 가는 것이 좋다.
순례길 이정표나 기물에 한글 낙서를 휘갈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자기 딴에는 추억을 남기거나 글귀를 휘갈겨서 현지인들의 혐오감 조장은 물론 양식 있는 한국인 순례자들을 기겁하게 만들고 있다.
인종차별이나 기타 불쾌한 경험은 주로 현지인들에게 당한다. 순례자들이야 세계 각국에서 순례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니 민폐짓만 안 한다면 욕먹을 일이 없지만, 현지인들 특히 중반부의 낙후된 시골 지역 사람들은 다분히 인종차별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떼지어 몰려다니며 민폐짓 해서 그렇지"라고 할 수도 없는 게, 지나가던 동네 건달이 난데없이 눈 찢기 제스처를 날리면서 '치노! 치노!'거리며 조롱하는 건 혼자서 조용히 다닐 때 더 심하다. 오히려 민폐 여부와 상관 없이 떼지어 몰려다니는 사람들에겐 가만히 있는 경우가 많다. 그저 만만해 보이면 건드리는 것. 하지만 인종차별적 분위기가 깔려 있는 시골 같은 작은 사회, 더군다나 외국에서는 경찰의 도움을 받기도 힘들다 보니 관광객이라 환대 받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버리고, 박해 받던 초기 기독교도의 삶을 간접 체험한다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고 가는 것을 추천.
처음 순례를 떠나고자 할 때 자신이 가고자 할 날짜 이전에 스페인 현지의 계절과 날씨를 잘 숙지해야 한다. 특히 스페인의 여름은 대한민국의 여름과 비교하면 장난이 아닌 데다가, 대다수의 순례길은 그늘조차 없는 평야와 구릉지를 지나야 하고, 이 시기에 순례자들이 많이 지나가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에서는 탈진하거나 지나가는 알베르게마다 다 만원이라든가 하는 상황이 쉽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아침 7시 전후에 순례를 시작하여 오후 2시 전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형태로 걷는 일이 많다. 너무 이르면 해가 뜨지 않아 날이 어둡고, 너무 늦어지면 대낮의 감당할 수 없이 뜨거운 햇볕과 알베르게가 만원으로 가득 차서 원하는 곳에 묵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체력 안배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가고자 할 날짜가 정해졌으면 도보로 여행해야 할지 자전거로 여행해야 할지 정한 다음에 걸어야 할 날을 살짝 계산해서 쉬운 순례길부터 시작한다. 억지로 가려다 쉽게 탈이 날 위험이 생길 수 있기 때문. 상황이 여의치 않는다면 특정 지점에서 순례를 중단한 후, 본국에서 다시금 채비를 갖추어 그곳에서 순례를 이을 수 있다. 도보순례의 경우 가장 유명한 프랑스의 Saint-Jean-Pied-de-Port에서 출발하는 기준으로 하루 25~30km 일정으로 33일 내외의 일정이 가장 일반 적이며, 개인차나 동행자의 건강에 따라 1~2개월에서 3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짐은 개인의 상황과 스페인의 계절 및 기온에 맞추어서 최소한의 옷이나 짐을 넣는 것이 좋다. 동행자와 함께 갈 경우에는 짐을 조금씩 나누어서 각자 소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는 방법이다. 가방의 경우에는 등산용 배낭을 추천한다.
도보로 순례할 때에는 발에 무리가 되지 않는 나름의 방법을 최대한 마련해야 한다. 이를테면 한 시간에 한 번은 반드시 신발을 벗고 휴식을 취한다든지, 하루마다 걸을 거리를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정하는 것. 발바닥에 물집이 잡힐 경우 일정을 이어나가는 데 굉장한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특히 장기간의 도보여행이니만큼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많고 무릎과 발목의 부담을 줄여주는 등산용 스틱이나 지팡이를 챙겨 가는 것이 좋다.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순례자들이 가장 필수적인 장비로 꼽는 것 중 하나다. 
물집을 예방하는 데는 바셀린이 최고다. 바셀린만 꾸준히 발라줘도 한달 내내 물집을 볼 일이 없을 정도다.그냥 군대에서 행군했을때 처럼만 하면 된다
사전에 순례에 관련된 정보나 현지의 정보는 미리 챙겨야 한다. 왜냐하면 순례할 때 어떠한 트러블이 발생하면 최악의 상황으로 순례 자체를 그만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순례길이지만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호구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므로 다양한 사기꾼도 존재한다. 특히 유명한 사람은 오 세브레이로에서 하산하는 도중에 있는 폰프리아(Fonfria) 마을의 밀전병(크레페) 할머니. 길에서 순례자들에게 설탕을 뿌린 식어빠진 밀전병을 내미는데, 순진한 순례자들은 순례길에서 자주 만나는 고마운 분들 중 한 사람인 줄 알지만 실상은 먹고 길을 떠나려 하면 "도나티보!(Donativo)"라고 외치면서 돈을 요구한다. 심지어 액수가 적거나 일행 중 한 사람이 대표로 돈을 내면, 다른 사람은 왜 돈 안 내냐며 붙잡는다. 외국에서 발행되는 카미노 가이드북에도 실릴 정도로 유명하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가 더 이상 종교적 목적으로만 찾는 길이 아니다 보니, 순례길의 목적이 사람마다 저마다 매우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으로 올 수 있지만 또 어떤 사람은 홀로 묵상하며 고요히 길을 걷고자 온 사람도 있다. 하루마다 순례길을 나선 사람들의 스타일이 상당히 달라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산맥을 우습게 보지 마라. 프랑스에서부터 시작한 사람이면 필시 피레네 산맥을, 그렇지 않더라도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갈 때 피레네와 비슷한 규모의 산을(각각 1400m, 1500m) 넘어가게 될 것이다. 매년 두 구간에서 조난당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만약 숙소가 산맥 내부에 있을 경우 자신의 체력 상태와 현재 시간을 잘 확인한 뒤 걷도록 하자. 일몰이 늦는 여름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겨울일 경우 오후 5시 반 정도만 되어도 가로등 하나 없는 산 속은 순식간에 암흑으로 뒤덮인다. 특히 겨울은 사람들도 많이 찾지 않는 계절이기에 빛이 하나도 없는 어두운 산맥을 손전등 불빛 하나로 홀로 걷는다는 것은 곧바로 조난, 심하면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영어와 프랑스어는 둘째치고, 기본적인 스페인어 회화는 필수다. 이건 너무 당연한 사실인 게, 순례길을 종주하면 거의 약 한 달 이상의 시간을 스페인의 노지에서 보내게 되는데 스페인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이 간다는 건 그저 걷기 운동 하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다. 게다가 알베르게가 외진 곳에 많은 데다가 트러블이 발생했을 때 영어조차 모르는 현지 주민과 회화함으로써 트러블의 해결이나 지나가는 지역의 역사와 순례에 관련된 정보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거 다 떠나서 일단 숫자라도 스페인어로 제대로 익혀서 가길 바란다. 대부분의 스페인인들은 영어를 하지 못하며, 특히 가게 등지를 갈 때 계산을 위해서라도 숫자를 아는 건 필수다. 스페인어를 배우지 않아도 상관없으나, 순례길 자체가 장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만큼 자칫 순례가 지루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어에 자신이 없는 사람에게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친구를 사귀면 된다.
순례의 종착지쯤에서 한 번 숙소에 들어가서 그간의 짐을 정리하고 옷과 배낭을 세탁하고 목욕재계는 반드시 해야 한다. 위생 상태를 청결히 유지하는 것은 본인의 건강을 위해서도 중요하거니와,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에 참례할 때나 순례증을 받으러 사무소에 갈 때 그간의 땀 냄새가 타인을 자극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순례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는 일종의 성년(聖年) 기간이 있어 이 기간 동안 순례자들의 수가 일시적으로 많아진다. 그 외에도 매년 7월 25일은 '성 야고보 축일'과 '갈리시아인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는데, 순례자들과 더불어 스페인 전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참석한다. 하지만 2013년의 경우, 동년 7월 24일에 크나큰 철도 참사가 나는 바람에 행사가 죄다 중지된 적이 있었다.
코에이의 대항해시대 3에서는 사실성을 중시하는 작품답게 이 성지순례 루트를 차례대로 따라가는 연속발견 이벤트가 있어서 무턱대고 라코루냐에 기항해서 교회를 들어가려고 하면 성지순례자만 들어갈 수 있다면서 콤포스텔라 성당을 발견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게임상에서는 앞에서도 언급한 프랑스 루트를 재현해 놓았기 때문에 먼저 투르에서 생 마르탱 성당을 발견한 다음 툴루즈의 생 세르냉 교회를 거쳐야 이 순례길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되며 최종적으로 라 코루냐에 도착해서 콤포스텔라 성당에서 순례 기념품으로 십자가를 발견할 수 있다.
2018년 1월 16일부터 인천교구 상동본당의 주임신부였던 이찬우 요셉 신부께서 은퇴 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서 상주하며 순례길에 나선 한국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봉사를 시작하셨으나 (은퇴 후 산티아고 봉사 자청한 이찬우 신부) 현지의 비협조로 인해 2018년 2월 4일 도로 귀국하였다.
2016년 5월 성 베네딕토회 왜관수도원 인영균 끌레멘스 신부가 라바날 델 카미노 성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파견되어 한국인 순례자들에게 봉사하고 있다.
god 멤버들이 데뷔 20주년을 맞아 순례길을 걷는 예능 프로그램인 '같이 걸을까'가 2018년 10월부터 12월까지 방영되었다.
2019년 2월경에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마을의 '산 니콜라스 엘 레알 알베르게' 자리에서 알베르게를 운영하며 지나가는 한국인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숙박과 식사를 제공하는 컨셉의 예능인 스페인 하숙의 촬영을 하였다. 예전에 스페인의 가라치코에서 촬영한 윤식당2를 통해 해당 지역의 경제가 활성화되었던 전례가 있던 터라 해당 지역 주민들은 방송이 나간 이후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거라 기대하는 중이라고 한다.

 

 

 

 

야곱(Jacob : 히브리어 야켑'aqeb'은 "뒤꿈치"라는 뜻)은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이다. 아브라함의 손자이자, 이삭의 둘째 아들로서 기록

산티아고 순례길, 야고보 동상

성경을 보면 일반적으로 야고보라고 불리우며 라틴어로는 야코부스(Iacobus)이고 야고(Iago), 티아고(Tiago), 산티아고(santus Iacobus)라는 이름들이 유래되었다. 제베데오의 산티아고(Santiago de Zebedeo, 제베데오의 아들이란 의미) 또는 대 (大)산티아고라도 칭하며 예수의 죽음과 피흘림을 함께 했던 사도 중 하나이다. 어부 가족의 일원이며, 예수는 동생 요한과 야고보의 타고난 과격한 성격을 빗대어 보아네르게스 (Boanergues, 천둥의 아들이라는 의미)라는 별칭을 지어주었다. 야고보 성인은 예수와 가장 가까웠던 세 명의 사도 중 한 명이며, 예수의 구세주적인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던, 타보르 산에서 그리스도의 변모와 올리브산에서 기도를 올릴 때 예수와 함께 있었을 뿐 아니라, 예수의 마지막 기적과 부활 후 갈릴레아 강가에서의 알현을 목격한 증인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후, 열정적이고 패기가 넘쳤던 야고보는 예루살렘에 카톨릭 교회의 초기 그룹의 일원으로서 복음 전파를 시작하였으며, 중세 문헌에 따르면 스페인 반도, 구체적으로 북동쪽 지역으로 당시 가야에시아(Gallaecia)라는 지역까지 왔다고 한다. 일부 이론에 따르면 스페인 수호 성인인 산티아고는 포루투갈의 사람들이 살지 않았던 해안가를 따라 북유럽으로 갔다고 한다. 그러나 또 다른 이론에 따르면, 산티아고는 에브로 분지와 칸타브리아 지방의 로마의 길을 따랐다고 하며, 일부에서는 산티아고가 현 카르타헤나(Cartagena)를 통해 스페인 반도로 들어왔으며, 그의 스페인 내의 여행길은 동쪽 남부에서 서쪽의 북부 모서리까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7명의 제자를 모은 다음, 베드로 성인은 로마에서 이들을 주교로 임명하며 히스파니아에 복음 전파 임무를 맡긴다. 경외 성서에 따르면, 산티아고 사도는 예수의 다른 사도들과 함께 성녀 마리아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유대인 왕인 헤로데스 아그리파 1세의 명으로 기원 후 42년에 고문 후 참수형을 당한다. 증명되지 않은 문헌들에 따르면, 부활한 예수는 성녀 마리아의 죽음 이전에 찾아가 생의 마지막 시간을 세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사도들과 함께 보내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예수는 기적의 출현을 통해 마리아가 직접 사도들을 불러 모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따라서 마리아는 산티아고와 7명의 사도 앞에 있던  싸라고싸(Zaragoza)의 한 기둥 표면에 나타났고, 이 내용은 필라르 성모 대성당 관련 일화이자 숭배의 대상이기도 하다.

전설에 따르면, 일곱 사도들은 어둠이 내린 밤에 산티아고 사도의 시신을 배에 싣고 갈리시아까지 이동해 이리아 플라비아(Iria Flavia) (현재 파드론Padró) 항구에 도착했다고 한다. 사도들은 당시에 현 콤포스텔라 지역을 통치했던 다신교 여왕인 루파(Lupa)를 찾아가 산티아고 사도의 장사를 지낼 수 있도록 요청하기 위해, 스승의 시신을 바위 속에 넣었고 결국은 사체가 석관으로 변했다고 한다. 루파 여왕은 막 도착한 사도들에게 오만하다고 꾸짖으며 이웃 왕국의 왕인 두요스 (Duyos)에게로 보냈으며, 그리스도교의 적이었던 두요스 왕은 이들을 감옥에 가둔다. 전설에 따르면 천사가 나타나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반짝이는 불빛이 나타나) 갇혀있던 사도들을 풀어주었고 도망을 가던 중 이를 쫓던 병사들이 다리를 건너는 동안 기적이 일어나 모두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외에도 일곱 사도들이 겪은 뜻밖의 사고들은 또 있다. 루파 여왕이 산티아고 사도의 시신 이동할 마차를 끌 황소들을 주었는데 이 야생 황소들이 여행길에서 기적적으로 스스로 길이 들었다고 한다. 이 모든 일화를 들은 루파 여왕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사도들을 받아들였으며, 여왕 또한 카톨릭 신자가 되었고, 모든 켈트 족의 숭배 장소를 없애버리고 자신의 궁전 안에 산티아고의 시신을 안치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이 장소에 오늘날의 산티아고 대성당이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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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후인 813년, 파요 (Paio)라고 불리던 성당지기가 이리아 플라비아의 주교인 테오도미로(Teodomiro)에게 리브레돈 (Libredón, 콤포스텔라의 기원이 되는 장소이자 “별들의 대지”라는 의미)산에서 기이하고도 강렬하게 반짝이는 불빛을 보았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무성한 잡초 아래, 떡갈나무 옆에서 돌 제단을 발견했으며 그 안에는 3개의 유물이 있었다. 그 중 하나에는 팔 아래 머리가 있는 참수형 시신이 있었으며, 그 옆에는 “여기 제베데오와 살로메의 아들인 산티아고가 잠들어있다”라는 표기가 있었다. 주교는 신의 계시에 따라, 유골이 산티아고, 테오도로, 안타나시오라는  (산티아고와 그의 두 제자들) 결론을 내리고 이 발견 내용을 당시 갈리시아와 아스투리아스 지방의 왕이었던 알폰소 2세, 즉 카스토 (Casto)에게 전하며, 왕은 발견 장소를 방문한 후 산티아고 사도를 왕국의 수호 성인으로 지정하고 그의 명예를 위해 성당을 건설할 것을 명한다. 이어서, 유럽 전역에 갈리시아 성인과 산티아고 성인의 유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퍼졌고 이는 스페인 국토회복운동에 큰 상징이 된다. 아스투리아스의 왕은 이후에 파도 같이 일어난 순례 행렬의 최초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야곱(Jacob : 히브리어 야켑'aqeb'은 "뒤꿈치"라는 뜻)은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이다. 아브라함의 손자이자, 이삭의 둘째 아들로서 기록

산티아고 순례길, 야고보 동상

 

성경을 보면 일반적으로 야고보라고 불리우며 라틴어로는 야코부스(Iacobus)이고 야고(Iago), 티아고(Tiago), 산티아고(santus Iacobus)라는 이름들이 유래되었다. 제베데오의 산티아고(Santiago de Zebedeo, 제베데오의 아들이란 의미) 또는 대 (大)산티아고라도 칭하며 예수의 죽음과 피흘림을 함께 했던 사도 중 하나이다. 어부 가족의 일원이며, 예수는 동생 요한과 야고보의 타고난 과격한 성격을 빗대어 보아네르게스 (Boanergues, 천둥의 아들이라는 의미)라는 별칭을 지어주었다. 야고보 성인은 예수와 가장 가까웠던 세 명의 사도 중 한 명이며, 예수의 구세주적인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던, 타보르 산에서 그리스도의 변모와 올리브산에서 기도를 올릴 때 예수와 함께 있었을 뿐 아니라, 예수의 마지막 기적과 부활 후 갈릴레아 강가에서의 알현을 목격한 증인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후, 열정적이고 패기가 넘쳤던 야고보는 예루살렘에 카톨릭 교회의 초기 그룹의 일원으로서 복음 전파를 시작하였으며, 중세 문헌에 따르면 스페인 반도, 구체적으로 북동쪽 지역으로 당시 가야에시아(Gallaecia)라는 지역까지 왔다고 한다. 일부 이론에 따르면 스페인 수호 성인인 산티아고는 포루투갈의 사람들이 살지 않았던 해안가를 따라 북유럽으로 갔다고 한다. 그러나 또 다른 이론에 따르면, 산티아고는 에브로 분지와 칸타브리아 지방의 로마의 길을 따랐다고 하며, 일부에서는 산티아고가 현 카르타헤나(Cartagena)를 통해 스페인 반도로 들어왔으며, 그의 스페인 내의 여행길은 동쪽 남부에서 서쪽의 북부 모서리까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7명의 제자를 모은 다음, 베드로 성인은 로마에서 이들을 주교로 임명하며 히스파니아에 복음 전파 임무를 맡긴다. 경외 성서에 따르면, 산티아고 사도는 예수의 다른 사도들과 함께 성녀 마리아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유대인 왕인 헤로데스 아그리파 1세의 명으로 기원 후 42년에 고문 후 참수형을 당한다. 증명되지 않은 문헌들에 따르면, 부활한 예수는 성녀 마리아의 죽음 이전에 찾아가 생의 마지막 시간을 세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사도들과 함께 보내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예수는 기적의 출현을 통해 마리아가 직접 사도들을 불러 모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따라서 마리아는 산티아고와 7명의 사도 앞에 있던  싸라고싸(Zaragoza)의 한 기둥 표면에 나타났고, 이 내용은 필라르 성모 대성당 관련 일화이자 숭배의 대상이기도 하다.

전설에 따르면, 일곱 사도들은 어둠이 내린 밤에 산티아고 사도의 시신을 배에 싣고 갈리시아까지 이동해 이리아 플라비아(Iria Flavia) (현재 파드론Padró) 항구에 도착했다고 한다. 사도들은 당시에 현 콤포스텔라 지역을 통치했던 다신교 여왕인 루파(Lupa)를 찾아가 산티아고 사도의 장사를 지낼 수 있도록 요청하기 위해, 스승의 시신을 바위 속에 넣었고 결국은 사체가 석관으로 변했다고 한다. 루파 여왕은 막 도착한 사도들에게 오만하다고 꾸짖으며 이웃 왕국의 왕인 두요스 (Duyos)에게로 보냈으며, 그리스도교의 적이었던 두요스 왕은 이들을 감옥에 가둔다. 전설에 따르면 천사가 나타나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반짝이는 불빛이 나타나) 갇혀있던 사도들을 풀어주었고 도망을 가던 중 이를 쫓던 병사들이 다리를 건너는 동안 기적이 일어나 모두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외에도 일곱 사도들이 겪은 뜻밖의 사고들은 또 있다. 루파 여왕이 산티아고 사도의 시신 이동할 마차를 끌 황소들을 주었는데 이 야생 황소들이 여행길에서 기적적으로 스스로 길이 들었다고 한다. 이 모든 일화를 들은 루파 여왕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사도들을 받아들였으며, 여왕 또한 카톨릭 신자가 되었고, 모든 켈트 족의 숭배 장소를 없애버리고 자신의 궁전 안에 산티아고의 시신을 안치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이 장소에 오늘날의 산티아고 대성당이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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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후인 813년, 파요 (Paio)라고 불리던 성당지기가 이리아 플라비아의 주교인 테오도미로(Teodomiro)에게 리브레돈 (Libredón, 콤포스텔라의 기원이 되는 장소이자 “별들의 대지”라는 의미)산에서 기이하고도 강렬하게 반짝이는 불빛을 보았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무성한 잡초 아래, 떡갈나무 옆에서 돌 제단을 발견했으며 그 안에는 3개의 유물이 있었다. 그 중 하나에는 팔 아래 머리가 있는 참수형 시신이 있었으며, 그 옆에는 “여기 제베데오와 살로메의 아들인 산티아고가 잠들어있다”라는 표기가 있었다. 주교는 신의 계시에 따라, 유골이 산티아고, 테오도로, 안타나시오라는  (산티아고와 그의 두 제자들) 결론을 내리고 이 발견 내용을 당시 갈리시아와 아스투리아스 지방의 왕이었던 알폰소 2세, 즉 카스토 (Casto)에게 전하며, 왕은 발견 장소를 방문한 후 산티아고 사도를 왕국의 수호 성인으로 지정하고 그의 명예를 위해 성당을 건설할 것을 명한다. 이어서, 유럽 전역에 갈리시아 성인과 산티아고 성인의 유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퍼졌고 이는 스페인 국토회복운동에 큰 상징이 된다. 아스투리아스의 왕은 이후에 파도 같이 일어난 순례 행렬의 최초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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