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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을 죽인 한겨레 김종구, 성한용

Jobs9 2022. 10. 5.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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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굴이냐, 고통이냐 / 김종구

지금 이 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에 출석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쓰고 있다. ‘잔인한 4월’의 마지막날, 추락하는 꽃잎은 초라하고 비장하다. 노 전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지금 어떤 상념이 스치고 지나갈까. 뒤늦은 자책과 회한인가, 아니면 분노와 결연한 의지인가. 그의 얼굴 표정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렵다.  
노 전 대통령의 앞날과 관련해 주목되는 여론의 흐름 하나는 불기소론이다. 법치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를 감옥에 보내지 말자는 일부 보수 논객들의 호소는 눈물겹다. 주된 근거는 국가의 위신이다. 나라의 품격이 떨어지는 것을 막고, 국가적 차원의 모욕감을 피하기 위해서란다. 그러나 국가의 위신 추락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정부에 불편한 글 좀 인터넷에 썼다는 이유로 미네르바를 구속해 국제적 웃음거리가 된 것만할까. 서울 한복판에서의 토끼몰이식 철거민 진압으로 죄 없는 목숨들이 죽어나간 사건보다 나라의 체면이 더 깎일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 사실은 모두 부질없는 말들이다. 
그럴 가능성이 없겠지만, 혹시 노 전 대통령이 불기소론자들의 아량과 은총에 감읍해 용기백배한다면 정말로 ‘바보’다. 맘껏 희롱하고 조롱한 뒤 아량을 베푸는 것처럼 잔인한 처사는 없다. 재기불능의 상태로 만들어놓고 목숨만 살려놓는 것이야말로 ‘적’에게 가하는 최대의 복수임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다. 
노 전 대통령의 가슴은 지금 검찰의 정치보복성 수사에 대한 울분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분명히 이번 수사에는 그런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 권력을 기쁘게 하려는 수사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자신의 대통령 재임기간에도 있었다. 검찰은 본래 그러하다. 죽은 권력에는 굶주린 하이에나요, 살아 있는 권력에는 순한 양의 속성은 세세연년 변치 않는다. 자신들의 떡값 의혹에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도 일반 하급공무원이 기백만원 받은 봉투에는 추상 같은 게 검찰이다. 그러니 너무 서러워하지도, 분노하지도 말았으면 한다. 그런 검찰을 대통령 재임 때 제대로 개혁하지 못한 원죄도 있으니 말이다. 
조금 매정하게 말하면, 노 전 대통령의 앞에는 비굴이냐, 고통이냐의 두 갈래 길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아프고 괴롭겠지만 지금의 운명을 긍정하고 고통의 길을 걸었으면 한다. 가령 노 전 대통령이 앞으로 기소를 면한다고 치자. 그래도 그의 무죄가 확인됐다고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와 박연차씨의 돈거래를 상부상조의 미담으로 여길 사람은 더욱 없어 보인다. 없었던 일을 있었다고 진술할 필요야 없지만, 피의자의 방어권을 내세워 구차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그럴수록 더욱 초라해질 뿐이다. 야속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봉하마을 집 주변에 가시나무 울타리를 치고 ‘위리안치’되는 신세나, 옥중에 갇히는 생활이나 오십보백보다. 
지금이야말로 그의 예전 장기였던 ‘사즉생 생즉사’의 자세가 필요한 때다. ‘나를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말고 깨끗이 목을 베라’고 일갈했던 옛 장수들의 기개를 한번 발휘해볼 일이다. 그가 한때 탐독했던 책이 마침 <칼의 노래>가 아니던가. ‘사즉생’을 말하는 것은 노 전 대통령 개인의 부활을 뜻하는 게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선언한 대로 그의 정치생명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하지만 그는 죽더라도 그의 시대가 추구했던 가치와 정책, 우리 사회에 던져진 의미 있는 의제들마저 ‘600만달러’의 흙탕물에 휩쓸려 ‘동반 사망’하는 비극은 막아야 한다. 그의 ‘마지막 승부수’는 아직도 남아 있다. 
김종구 논설위원 




한겨레 그리고 한겨레 편집국장 성한용

우리 사회에 진보가 보수에 비해 열세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론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의 존재 때문일 것입니다. 이념적 대립을 떠나 남북이 이미 전쟁을 치렀고 그 여파로 군사적 대치관계에 있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니까요.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평화와 공존의 모델을 빨리 정착시키는 것 이외 다른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북한의 존재를 제외한다면, 그럼 그다음엔 무슨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우리 사회 주류 진보들의 가지고 있는 낡은 시스템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보면 우리 사회 주류 진보들의 영역을 (정당을 떠나) 학계, 언론계, 문화계 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역 모두가 인력의 순환속도가 느립니다. 따라서 내부와 외부의 교신속도 차이가 발생합니다. 

결국 구성원 자체의 소통보다는 일부 리더나 기득권의 발언이 강화되고 상당히 독선적이며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경영권이 집중화되어 있는 재벌기업의 행태와 비슷합니다. 다만 기업의 경우는 시장에서 생존의 본능 때문에 인력수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반면 이들 세 영역은 그런 공포가 적어 인력수급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게 차이점이겠죠 

 

***

 
주류 진보세력이 운영하는 조직을 보면 묘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마치 조직을 학교, 또는 동문회, 또는 군대처럼 운영한다는 것입니다. 조직에 들어서는 순서대로 서열을 나누고 서열대로 선배와 후배를 가릅니다. 그 뒤 선배는 후배를 가르치고 후배는 선배의 지침을 따릅니다.
 

교수와 대학원생의 모습이 그렇고, 영화판의 모습이 그렇고 언론사의 구조가 그렇습니다. 아랫단에 있는 사람들은 진입 장벽도 높고 엄청난 저임금과 중노동을 강요받지만 선배가 가르쳐주는 노하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걸 그대로 감수합니다. 10년, 20년 이른바 따까리를 하면 비로소 입봉(자기역할)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이들의 시스템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식의 도제 시스템, 연공서열 시스템은 이젠 기업에서조차 사라진 시스템입니다. 그러나 진보들이 모여 있는 학계 언론계 문화계 등은 여전히 이런 낡은 시스템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니 진보가 보수에 비해서 열세적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요?
 

한겨레 신문 22년사를 보면 단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기자들이 편집권을 독립시키고 경영에도 참여한다고 자화자찬을 하지만 실상 기자 시스템 내부에는 경쟁이 전혀 없습니다. 물론 이것은 비단 한겨레만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사 전체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경험으로 보면 보수신문에 비해서 진보신문은 그 상황이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습니다.
 

기자들은 기자라는 집단에서만 힘을 발휘합니다. 독립된 기자로서 자기 이름을 걸었을 때는 그 존재감이 미미합니다. 이러다 보니 기자가 오히려 편집권의 참호에 기대어 비겁한 총질을 하는 상황이 나오는 것입니다. 최근 한겨레의 1면 사과보도는 이런 현실이 바탕이 된 것이라고 봅니다.
 

기자가 기자와 경쟁하고 비판하고 이를 통해 실력과 능력을 뽐내는 시스템이 한겨레에는 없었습니다. 이러니 젊고 유능한 기자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한겨레의 내부에 들어가는 일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사 그런 시도가 있다손 쳐도 조직에 흡수되면 금세 “선배는 가르치고 후배는 배운다”라는 시스템에 동화되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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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의 많은 경험을 후배가 배워서 옳게 계승한다는 의미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조직의 문화와 비전으로 해결할 부분이지 선배-후배라는 일대일 라인으로 해결할 부분이 아닙니다. 선배와 후배는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선의의 경쟁자입니다. 경쟁하는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능력과 결과이지 연고주의가 아닌 것입니다

뛰어난 후배가 있다면 선배라도 그걸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게 살아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고 조직의 미래를 발전시키는 훌륭한 태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보세력은 과연 학계, 언론계, 문화계에서 그런 식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을까요?. 감히 말하건대 전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프로야구 예를 들어보죠

두산베어스 김현수 선수는 이제 풀타임 4년 차에 불과합니다. 올해 기대치에 비해 약간 부진하기는 하나 스윙궤적이나 밸런스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타자라고 하는데 손색이 없습니다. 김현수보다 연차가 높은 다른 선배 선수들이 김현수의 밸런스를 배우고 따라 합니다. 물론 김현수 역시 선배들의 위기극복 마인드 등은 배우기도 합니다.

원래 김현수 선수는 지명을 받지 못한 신고선수 출신입니다. 그러나 5년 만에 최고의 타자가 되었고 모두가 이를 인정합니다. 이렇게 결과가 공정한 경쟁에 의해서 명확하게 드러날 때 발전의 동력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각자의 역할이 다시 재배치되어 소통이 되고 또다시 경쟁의 선순환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팀은 강팀이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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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와 언론사와 같으냐구요? 물론 하는 일은 다르겠죠. 그러나 구조는 똑같은 거 아닙니까? 한겨레 22년 동안 과연 독자들의 기억에 생생한 기억을 주는 기자가 몇 명이나 있습니까? (물론 좋은 의미로 말입니다.) 10명 이상 떠올려지지 않는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후배는 선배의 지도를 따라야 하고 그를 통해 경쟁력을 입증받아야 하는 현재의 주류 진보진영 시스템에서는 대중이 원하는 스타플레이어는 나올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진보세력이 소홀한 게 바로 이점입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연고주의로 흐르게 되고 결국 내부, 외부 교신능력을 떨어뜨려 결정적인 순간 오판을 하게 만들게 합니다.

앞으로 한겨레가 살아남으려면 편집권 자체를 경영에 독립된 가치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기자 커뮤니티 내부의 경쟁의 뿌리로 생각하는 관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편집권은 기자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것이고 이를 위해 기자들이 상호 선의의 경쟁을 한다는 현상이 벌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 없이 조직논리에 충실하고 침묵한다면 한겨레는 차라리 당장 망하는 게 여러 사람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론계는 물론 영화판, 대학판 다 마찬가지입니다. 선배와 후배는 전통을 잇는 소통의 연결고리일 뿐 본질은 상호 경쟁자입니다. 경쟁구도를 인정하고 그 경쟁이 공정하고 명확하게 이어지도록 구조를 바꾸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진보진영에서 스타플레이어들이 다량으로 배출될 것입니다. 그럼 대중은 그 스타플레이어들의 능력과 결과물을 믿고 진보의 대세를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



그런데 최근 변화의 조짐도 있습니다.

민노당이 그렇습니다. 이정희 의원이 당 대표 경선에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강기갑 대표가 이정희 의원의 능력과 대중적 소통 가능성을 인정하고 대표직 경선에 불참을 통보했더군요. 과거 민노당의 당내경선과 비교해보면 이건 경천동지할 일입니다. 저는 이번 민노당의 당 대표 경선이 앞으로 진보진영에 엄청난 폭풍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이런 변화가 진보진영이 아우르고 있는 학계, 언론계, 문화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쳐 선순환의 흐름을 만들어내었으면 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한국사회에서 진보진영은 보수세력을 누르고 당당한 주류세력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마케터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73267


르몽드, 한겨레, 데일리서프라이즈의 공통점
(서프라이즈 / 개곰 / 2010-06-16)


이른바 편집 독립성이 보장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기자들이 신문의 주인 노릇을 했다는 점이다.

만성적인 경영난을 겪다가 최근 다시 투자자 물색에 나선 르몽드는 기자들이 사장도 뽑고 편집국장도 뽑는다. 신문사 사정이 어려우면 내용을 확 뜯어고친다든가 허리띠를 졸라맨다든가 하는 자구 노력이 필요한데 르몽드는 기자들이 모든 걸 틀어쥐고 있으니 그럴 수가 없었다. 르몽드 경영진은 돌파구를 열기 위해 온라인판에 투자를 늘렸지만 기자들은 이것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르몽드의 주인은 종이신문 기자들이라는 텃세 의식이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르몽드 기자들도 물러서지 않을 수가 없다. 당장 6월달 월급을 못 받게 생겼기 때문이다. 르몽드 기자들은 새로운 투자자에게 사장 선임권을 넘긴다는 조건을 제시하면서 투자자를 물색하고 있다. 그러나 정리해고는 곤란하며 편집권 독립을 보장해야 한다는 단서는 어김없이 달았다.

한겨레도 사장을 직원들이 뽑는다. 지금은 임명동의제로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편집국장까지 기자들이 뽑았다. 얼핏 들으면 편집 독립권을 보장하는 민주적 제도 같다. 그런데 질문을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무엇을 위한, 어떤 신문을 만들기 위해 편집 독립권을 보장받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편집권 독립은 어디까지나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노무현이라면 이를 가는 텃세 진보 기자와 복잡한 경제를 신자유주의라는 단일 개념으로 환원하여 까대는 가분수 진보 기자가 다수인 한겨레에게 편집권 독립을 보장해주었더니 어떻게 되었나? 보시다시피다.

데일리서프라이즈는 같은 경우다. 서영석 사장은 신문 편집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 데 자긍심을 가졌던 듯하다. 편집국장에게 일체 압력을 넣지 않는 신문사 사주였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한국의 천박한 진보 문화와 저급한 기자 문화에 찌든 일부 경력 기자들이 기사를 이상하게 써 갈겨대기 시작했다. 기자들의 편집권을 보장해줘서 좋은 신문이 나왔는가? 망했다.

신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편집권 독립이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려는 정신이다. 편집권 독립은 그 정신을 구현하는 수단일 뿐이다. 기자들이 주인 노릇을 하는 신문은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망한다. 영국 가디언지의 사장은 기자들이 뽑지 않는다. “의견은 자유롭게 펼치되 사실은 하늘처럼 떠받들라”는 가디언의 창간 정신을 지키기 위해 설립된 가디언재단이 임명한다.

한겨레의 리모델링이 가능할까?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주식을 모아서 이사회에서 더이상 자기들 멋대로 굴지 못하도록, 눈치를 보도록 만드는 일은 할 수 있겠고 또 그것만도 중요한 일이지만, 텃세 진보와 가분수 진보를 편집국에서 싸그리 몰아내지 않는 한 걸레는 빨아도 삶아도 그저 걸레일 뿐이다.

르몽드가 그래도 투자자의 관심을 아직도 받는 것은 고집과 자존심을 내세울지언정 르몽드를 만드는 기자들의 날카로운 분석력과 취재력을 사람들이 알아주기 때문이다. 한겨레 기자들에게 그런 능력이 있던가? 우리도 천안함 사건은 국방부가 내놓는 자료에 기댈 수밖에 없거든요 씨부리면서 킥킥거리는 인간이 기자라고 설치는 신문에 뭘 기대하겠는가.

진보를 말아먹은 건 노무현과 참여정부가 아니라 한겨레다. 텃세 진보와 가분수 진보가 장악한 한겨레다. 수건이 없다고 걸레로 얼굴을 닦을까. 걸레는 빨아도 걸레다. 결정적 순간에는 걸레는 늘 본색을 드러낸다. 작더라도 내 수건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남의 걸레에게 우리 얼굴 좀 닦아달라고 사정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내 얼굴은 남의 걸레가 아니라 내 수건으로 닦아야 한다. 작더라도 내 수건을 만들어야 한다.

개곰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73084
 

한겨레 편집국장  성한용에 대한 글. -  인물비평 2007/12/28 03:53


성한용 기자는 엊그제 칼럼에서 ‘이명박 당선자를 도와야 한다.’고 말해 독자들의 반감을 산 것으로 안다. 그렇다고 해서 성 기자가 이명박 후보를 내심 지지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직 특검이라는 옵션이 걸려 있는 당선자를 도와야 한다고 한다면 오해를 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요즘 성한용 기자의 글들은 대부분 근거 없는 ‘카더라’ 방송의 수준이다
 

한나라당의 경선 후보인 박근혜 전 대표는 귀티가 난다. 화사한 웃음 뒤에 슬픔이 엿보인다. 언제나 차분함을 잃지 않는다...... 여성 대통령 괜찮을까? 괜찮다.(성한용 칼럼, 여성 대통령 괜찮을까)

http://blog.hani.co.kr/kimlector/10334  글 중에서...

딴나라당 출입기자를 했었던 성한용,,,

혹시 성한용 편집국장 당신때문에 한겨레가 더욱 병들어가는것은 아닐까?
 

한겨레 성한용 국장 “정권, 타도 대상 아니다”

 

"정권은 타도의 대상이 아니다. 재벌도 해체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1등 기업’ 삼성의 존재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오는 11일 중간평가를 앞두고 있는 성한용 한겨레 편집국장이 지난 8일 편집국 기자들에게 이메일로 보낸 소견발표문에서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성 국장은 이 글에서 창간 초기, 한겨레에서 정권은 타도 대상이었고 재벌은 해체 대상이었지만 경영난을 겪으며 삼성과 현대가 한겨레 최대의 광고주가 됐다며 “한겨레 22년은 변절의 역사인가”라고 물었다
 

성 국장은 “한겨레 주주와 독자들은 우리에게 정권 타도의 임무를 부여하지 않았고” “비타협 노선을 걷다가 장렬히 전사하라고 주문하지도 않았다”며 “(경영 문제에 있어서도 )일정 부분 현실적인 타협을 하더라도 한겨레가 존립하며 창간정신을 구현하는 보도를 계속 해 달라는 것이 주주 독자들의 뜻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성 국장은 이어 “대한민국엔 한나라당 정권을 지지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정치적 의사를 우리는 존중해야 한다”며 “정권은 타도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재벌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는 “우리는 삼성의 부당한 1인 지배구조,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 무노조 방침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피해 등을 비판할 수 있을 뿐”이라며 “(삼성 임원들이 한겨레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듯) 한겨레도 삼성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성 국장은 특히 “삼성의 광고재개에 즈음해 우리가 감시자 역할을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겸임조합의 문제제기가 지극히 온당하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문제제기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 내부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가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본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성 국장은 “지난해 3월 삼성이 광고를 중단한 상태에서 편집국장이 됐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삼성 관련 기사를 연계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었다”며 “나는 그런 원칙을 충실히 지켰다”고 주장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 광고 논란과 관련해서는 “내가 알기로는 사회평론이라는 출판사와 우리 광고국의 대화 과정에서 충돌과 감정대립, 그리고 오해가 있었다”며 “나는 사회평론의 태도를 바로 잡기 위해 처음에는 ‘광고단가’를 높게 불렀지만 협상을 거쳐 광고를 실을 예정이었다는 광고국 간부들의 설명이 사실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86456

 

한겨레 신문에 실리지 못한 천안함 광고



한겨레신문에 내기로 한 평통사 천안함 광고가 한겨레 신문사의 부당한 일처리로 결국 실리지 못하게 되었다.  

평통사는 이명박 정권의 천안함 사건 짜맞추기 조사 발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6월 1일자 한겨레신문 맨 뒷면에 전면광고를 내기로 했다. 한겨레신문 광고국은 평통사와 광고가 실리는 면과 가격에 대해 합의하고 광고 문안에 대한 선거법 위반 여부를 판단한 다음 편집 작업을 마쳤다. 그래서 가장 먼저 인쇄되는 제주도판에는 예정대로 광고가 실렸다.

 

그런데 잠시 후 한겨레신문 광고국은 내부의 문제제기가 있다면서 평통사 광고를 맨 뒷면이 아니라 중간면으로 옮기자고 제안했다. 천안함 문제가 민감한 주제라는 것과 선거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평통사는 한겨레신문에 당초 합의대로 맨 뒷면에 광고를 실어줄 것을 다시 요구했고 그러지 않으면 광고를 취소하겠다고 통보했다. 선거법 위반 문제는 한겨레 광고국이 이미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여 일부 지방판의 인쇄까지 마친 뒤여서 구실에 불과하며, 오로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눈치보기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광고 효과를 최소하려는 한겨레신문사의 광고 면 조정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한겨레신문은 기다렸다는 듯이 평통사의 천안함 광고를 빼버렸다.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uid=173184&table=seoprise_12&level_gubun=best

 

 

 

썩어빠진 한걸레 새끼들의 특권 의식의 실체!

 

한걸레 이 새끼들 사과를 해도 지저분하게 할 것으로 예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그대로다.

"(놈현이란 표현은) 핍박받던 노 전 대통령을 상징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참 가지가지 한다.
그러니까 그 세 놈과 기자와 편집장 새끼가 그렇게 노통의 핍박과 죽음이 애통해서 슬픔의 이바구를 한거구나? 핍박받던 노통이 불쌍해서 함께 모여서 희희낙낙 담배 꼬라피워가면서, 씩씩 웃다가 껄껄대다 슬픔의 잡설을 늘어 놓은 거였구나? 참 너희들은 슬픔을 회상하는 방식도 겁나게 거시기하구나.

이제 장사 그만하고 문닫자 응?

서팡에게 다시 한번 이 놈들의 만행의 근원과 뿌리가 무엇인지를 상기시키고자 과거 <초모룽마>님이 올린 글의 일부를 갈무리해서 올린다.

글을 읽어 보면 바로 한걸레 놈들과 그 기자 새끼들의 특권 의식은 조중동과 근원을 같이한다는 것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실 폐쇄를 조중동과 한패가 되어 앞장 서서 반대한 새끼들이기도 하다. 초모룽마가 폭로한 이 글을 보면 왜 이 놈들이 기자실 폐쇄를 개거품을 물고 반대했는지도 다 보인다.


초모룽마의 글 제목은 "노무현 죽이기, 한겨레와 경향이 더 광분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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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이 의료단은 그때까지 유일하게 이 방어선을 돌파한 - 그것도 주변 촛불들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어렵게 통과한 - 사람들이다. 그러나 단 몇 마디로 이 철벽같던 방어망을 유유히 빠져나간 사람이 있다. 맞춰보시라. 그게 누굴까?
기자 양반 나으리다. 이 기자는 처음부터 다른 평범한 촛불 또는 비 촛불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기자 : “야, 비켜. 나 기자야”
견찰 : “....”
기자 : “야 새끼들아, 빨리 비켜. 나 기자라니깐!”
견찰 : “(약간 당황하면서도) ....”
기자 : “이 새끼들이 진짜...내가 누군 줄 몰라? 기자라구 기자. 당장 안 비켜?”
견찰 : “(앞줄의 쫄다구 견찰 자꾸 뒤에 있는 ‘상부’를 돌아보면서도) 그게 저...”
기자 : “(기자증 꺼내 흔들면서) 진짜, 이 새끼들이 죽을라구 환장했나? 나 ×××일보(신문) 사회부 ××× 기자야!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정식으로 취재허가 받고 나왔어. 여기 책임자 새끼 누구야. 니들 오늘 다 죽었어” 
견찰 : “(당황하는 기미가 역력)...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조치 중입니다”
기자 : “당장 못 비켜!”
견찰 : (재빨리 길을 터주며) “통과하십시오”
기자 : (진작 그럴 것이지, 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한마디 더 한다) “에이, 그지같은 새끼들..”

기자는 견찰의 벽 사이로 유유히 사라지고 여전히 가도오도 못하는 촛불들은 그 모습을 부러운 듯(?)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 기자가 실제로 견찰들을 다 죽여 놨는지 어떤지 필자는 알지 못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평범한 촛불들에게는 거대한 벽으로 느껴졌던 견찰의 그 두터운 포위망을 기자는 혼자 힘으로 가뿐하게 뚫었다는 점이다. 어떤 신문의 기자일까? 한겨레다.

그 기자가 큰소리치며 막말해댄 이유는 뭘까

자기도 촛불 편이고 그래서 견찰들이 미워서? 그건 분명 아니다.

<중략>...

앞의 대화를 잘 새겨보면 그 기자가 견찰에게 요구한 것은 ‘취재의 자유’가 아니다. 그가 요구한 것은 기자로서의 ‘특권’이다. 어떤 특권? 일반 촛불들과 특별히 구별되어 대접받아야 할 특권, 가장 목 좋은 곳을 기자‘님’실로 특별히 배당받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취재원에 들락거릴 수 있는 특권, 큰소리치는 권력으로 대접받아야 할 특권, 삼류 소설을 써서 비열하게 보복하더라도 ‘언론자유’라는 미명아래 숨을 수 있는 그 성스러운 특권 말이다. 이 특권 요구에는 물론 좌, 우를 가리지 않는다.

‘진보’와 조중동 찌라시들이 연일 신나게 사이좋게 ‘노무현 죽이기’에 몰빵하는 것은 노무현이 그 특권을 해체시키려 했다는 것, 바로 그 때문이다. 노무현은 조중동을 “찌라시”라 불러서 근엄한 밤의 대통령들을 혼비백산케 했다. 한겨레와 경향에는? 노무현은 그들만이 주장할 자격을 가져야 하는, 그렇게 할 때에만 그들의 권력이 유지되는, 진보적 가치의 독점을 와해시켰다.

<이하 생략...>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상 초로룽마의 글의 일부였다 ______

바로 이것이 진보 귀족 얼치기 기자들인 바로 한걸레 기자들의 정체다. 그런 한걸레까지도 포함된 한국 언론의 기자들의 특,특,특별한 특권을 노무현 대통령이 없애버리려했으니, 자신들 보다 한참 위에서 초월적 특권을 누리는 조중동-한나라당-삼성과 한패거리가 되어 노무현을 죽여 자신들의 하위 특권을 유지하려 한 것이다.

그리고...

다름아닌 그들의 그 특권 의식이 바로 이번 한걸레의 문제의 기사에서 그대로 표출된 것이다.

커밍아웃 한거다. 그리고 그 커밍아웃은 실수가 아니라, 고의다. 거기엔 배짱도 들어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똥배짱에 반응해야하고, 결론은 한걸레는 폐간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놈들은

진보의 특권층에서 군림하는 상왕인양 착각하고 있으니까. 그 놈들에게 착각도 유분수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쉽게 말해 본때를 보여줘야하는 거다. 그건 시늉이 아니라, 진짜 응징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오늘 달랑 그런 사과문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이번 사과문은 사과문이 아닌 우리를 우롱하는 궤변이다.
“놈현이란 표현은 핍박받던 노 전 대통령을 상징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나에겐 이 말은 "나 폐간시키시오"라는 최후 통보로 들린다.
원하는대로 해주자 그냥.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72631

 
 
놈현 관정치를 넘어라
한겨레 너희들은 한걸레 소리를 들어도 싸다.

놈현, 관정치라....

DJ 는 유훈정치이고....노무현 대통령은 놈현이고, 관정치란 말인가?

천박한 그 입 다물라.

 

한겨레 신문지
(서프라이즈 / 개곰 / 2010-06-12)


영국에서 가장 많이 나가는 신문은 <선> 지다. 하루에 300만 부 이상이 팔린다. 공짜로 넣어주고 자전거까지 끼워주는 그런 신문이 아니다. 한 부 한 부를 독자가 돈을 내고 사보는 신문이다.

당연히 영향력이 엄청나다. 토니 블레어가 총선에서 내리 세 번 압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선>의 지지를 등에 업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고든 브라운이 이끄는 노동당이 패배한 것도 <선>이 보수당도 돌아섰다는 사실이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유독 <선>이 맥을 못 추는 도시가 있다. 리버풀이다. 리버풀 시민은 <선>을 갖다놓는 가게에는 발길을 끊는다. 리버풀 시민은 <선>은 공짜로 주어도 안 본다. 리버풀 시민은 술집에서 <선>을 읽는 사람이 눈에 띄면 신문을 빼앗아 그 앞에서 좍좍 찢어발긴다.

1989년 셰필드에서는 리버풀과 버밍엄의 FA 4강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교통체증으로 늦게 경기장에 도착한 리버풀 팬들이 한꺼번에 입장하다가 96명이 압사당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그런데 <선>은 사고 며칠 뒤 리버풀 팬들이 사망자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훔쳤고 경찰관에게 소변을 갈겼다는 내용의 기사를 대문짝만 하게 실었다.

리버풀 시민은 분개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선>을 용서하지 않는다. 20여 년 전 55,000부였던 리버풀 지역의 <선> 판매 부수가 지금은 12,000부로 떨어졌다. <선>이 인구 45만의 리버풀이라는 도시 한 곳을 모독했기에 망정이지 영국 국민 전체를 모독했다면 진작에 문을 닫았을 것이다.

<한겨레> 신문지가 <놈현> 관 장사를 집어치우라면서 국민참여당한테 침을 뱉었다. 국민참여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창당 4개월 만에 6.8퍼센트의 지지를 얻었다. 138만 명의 지지를 얻은 당이다. <한겨레> 신문지는 국민참여당을 지지한 138만 명의 유권자를 모독했다. 500만 조문객을 모독했다.

민주주의는 기억을 먹고 산다. 영국 민주주의의 보루는 <선>을 결코 용서하지 않은 리버풀 시민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보루는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는 노무현을 팔아 장사를 해먹더니 나중에는 노무현의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시민이 모인 정당더러 <놈현> 관 장사를 때려치우라고 악을 쓰는 <한겨레> 신문지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소비자다. 의인을 죽인 신문지를 찢어발길 줄 아는 소비자다.

개곰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71246

 

슬픈 한겨레
(서프라이즈 / 이민재 / 2010-06-15)


지긋지긋하다. 한겨레의 닭짓도 그러하려니와 먹물들의 훈장질까지, 그것이 담론입네 표현의 자유입네, 그래 아직도 그 버릇을 못 버리고 노무현을 팔아야 쓰겠나?

이것이 진보의 문제인가? 이것이 보수의 문제인가? 이것이 비단 표현의 자유에 관한 문제인가? 경우의 문제이다. 염치에 문제이다. 인간성에 대한 문제이다. 양심에 대한 문제이다.

 

직설이라? 그래 나도 이제부터 직설이다.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주문하신 건 참 간단한 얘기이다. 언론은 언론답게 대통령도 대통령답게 국회는 국회답게 검찰도 검찰답게 국민도 국민답게… 그냥 스스로 주어진 책임과 권리를 가지고 민주주의라는 제도 아래 서로 할 일 똑바로 하자는 얘기였다.

 

한겨레가 왜 썩었는가? 언론답지 못하니까 썩은 거다. 사실을 하늘같이 섬겨야 언론이다. 추측하지 말고 이유없이 가십거리 만들지 말고 그 같잖은 노선놀음 하지 말고 고상한 척 시건방 떨지 말고, 사실에 입각해 옳은 건 옳다 그른 건 그르다, 이런 것이 바로 언론이다.

 

공자 왈 맹자 왈 어디 듣도 보도 못한 동서양 철학자 등장시켜 어떻게든 노무현을 ‘놈현’으로 만들겠다는 그 천박한 허영, 곧 죽어도 고졸출신은 안 되고 비주류는 안되기에 이단이라 낙인찍는 이 미쳐버린 지식사회.

 

이런 쓰레기 같은 특권적 문화권력에 빌붙어 정신 줄 놓는 매체, 왜 살려야 하나?

누가 편들어 달라고 그랬나? 누가 대통령에게 충성하라고 그랬나? 누가 잘못한 거 눈 감으라 그랬나? 개인이 뭐라 지껄이든 말든 신경을 안 쓴다. 지 꼴리는 대로 사는 세상 지 꼴리는 대로 하겠다는 거 말리지 않는다.

 

언론이니까 문제다. 공신력이 있으니 욕 처먹어야 한다. 쓰레기 같은 타이틀을 달면 그 쓰레기 같은 타이틀을 올리는 언론사의 공신력이 문제 되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 피의자의 권리도 보호받지 못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왜 사죄 안 하느냐? 너도나도 뭉쳐서 한 사람 등 뒤에 칼 꽂았으면서 대한민국 그 잘난 언론사 어느 한 군데, 죄송하다는 자성의 목소리 왜 없는가?

 

언론이니까? 성역이니까? 그래서 사람 또 죽이려고? 그 더럽고 가증스러운 펜으로 수많은 사람들 가슴속에 또 대못 박으려고?

노빠들이 노무현을 죽였나? 인간 노무현을 지지하던 그들이 벼랑으로 밀었나?

칼 들이민 그대들은 대체 누구였기에……
그 잘난 입 다물고, 침묵하던 당신들은 누구였기에……
아직 마르지 않던 무덤 파헤쳐 장사하시는 고급 톨레랑스들이 어느 분들이시기에……

무엇을 뛰어넘고 무엇을 넘어서라는 말인가?

 

지식의 오만을 버려야 한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절대적인 문화권력에 파생된 지적 권위의 방종이다. 지성이 피폐화된 편견의 연장이며, 아직도 사그라지지 않아 지워지지 않는 노무현 길들이기다.

 

정명(正名)이 바로 서야 정론(正論)이 선다.

언론이 언론답지 못하면 그에 맞는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 매 맞아야 한다. 그것이 노짱님의 피 맺힌 절규이며 우리들이 만들어 나가는 정치다.

님은 실패하지 않았다.
우리들은 아직 좌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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