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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정치사, 붕당 계보, 붕당정치 전개

Jobs9 2024. 10. 21.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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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정치사                                                               

 

※ 붕당의 계보

o 동인(이황, 서경덕, 조식) ┏ 북인 : 서경덕(이지함), 조식계열(이산해, 정인홍)
┗ 남인 ┏경기남인: 허목, 윤휴, 윤선도, 유형원, 정약용 ⇨ 탈주자학 흐름
┗경상남인
o 서인(이이, 성혼) ┏ 소론(성흔 → 윤증, 박세당, 정제두, 유수원) ⇨ 탈주자학 흐름
┗ 노론(이이, 김장생 → 송시열, 송준길, 김집) : 주자성리학 ┏ 호론(권상하, 한원진)
┗ 낙론(이간) ⇨ 북학파(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사도세자 죽고난후(임오화변) ┏ (남인)시파 : 주로 남인+일부 노론
┗ (노론)벽파 : 주로 노론

 

 ※ 붕당정치의 전개

※ 성립기
선조 을해당론
(1575.8년)
ο 배경 : 이조전랑직을 둘러싼 대립이 발생(을해당론.1575). 심의겸 동생 심충겸(명종비 동생으로 외척임)의 이조전랑 추천에 대해,
훈구척신출신은 절대 안된다라는 입장(김효원 파; 동인) vs 척신에게도 사림의 요소가 있다며 긍정하는 입장(심의겸 파; 서인) 대립
o 경과 : ┏ 서인쪽 세력은 이미 중앙정계에 진출해 있던 선배사림들(심의겸 등)
┗ 동인쪽 세력은 새로 중앙정계에 진출한 후배사류들임(이황·조식 문인들, 서경덕 문인도 가담)
※이이는 붕당 발생 막고자 함. → 그러나 결국은 서인쪽 붕당에 가입(당시는 서인이 약세. 이로써 서인도 학연성을 확보하게 됨)
o 결과 : 동·서 붕당 발생
정여립 모반사건(기축옥사;1589.왜란이전) : 원래 이이제자(서인)→동인 이적하여 난→동인 큰 피해(특히 조식계, 서경덕계)
정철의 건저의 사건(1591) o 배경 : 세자책봉을 왕에게 건의한 사건 → 이에 대한 처벌을 둘러싸고 동인 내부에서 남·북으로 분열.
o 경과 : ┏ (1) 북인(서경덕, 조식 계열) : 강경파(이발. 이산해 등). 남인보다 우세
* 북인은 동인 가운데 이황 계열을 제외한 모든 계열을 포함(다양한 흐름이 존재함) →∴일단 집권하자 여러 갈래로 분열함
┗ (2) 남인(이황계열) : 온건파(유성룡, 이원익 등)
o 결과 : 남·북 붕당 발생
임란 발생(1592~1597~1598)
광해군 북인정권 수립 임란시 북인들 의병활동 등 전쟁에 적극참여
실책 ① 회퇴변척(1611) : 정인홍이 이언적·이황을 문묘에서 삭제함 → 사림의 지지기반 상실
② 계축옥사(1613) : 대북파가 영창대군과 소북파 제거 살해함. * 그리고 곧 이어 임해군제거, 인목대비 유폐 → 유교적 명분상실
➂ 중립정책 : ‘대명의리 위반’
1. 붕당정치의 이념적 구현 - 견제와 균형의 원리. 공존
인조 o 인조반정 발생(1623) : 서인(+남인일부참여)
o 서인정권 수립 · 서인과 남인의 공존 ⇨ 이후 서인과 남인간에 북벌논쟁. 예송논쟁이 발생함.
· 공신견제위해 인조는 남인도 등용함.
o 산림직 설치
효종 o 북벌론의 최고조기(어영청이 북벌의 핵심군영이 됨)
⇨ 나선정벌로 귀결됨(청의 요청으로 러시아 군대와의 전투에 참여해 조선포수병의 실력을 입증함)
현종 기해예송
(1659,현종즉위)
o 배경 : 효종이 죽으면서 자의대비 복상 몇 년 입어야 되는지가 문제됨(남인이 시작)
o 경과 : 왕사동례(서인.1년주장) vs 왕사부동례(남인.3년주장)
o 결과 : 1년설(기년설) 승리(서인승리). 남인 실각(윤선도유배) → 서인의 위세가 지속
갑인예송
(1674,현종15)
o 배경 : 효종비가 죽으면서 자의대비 북상 몇 년 입어야 되는지가 문제됨
o 경과 : 양반과 예가 같다(서인. 9개월주장) vs 다르다(남인. 1년주장)
o 결과 : 1년설(기년설) 승리(남인승리) →송시열 유배
※ 훈련별대 신설(1669;남인 군사력) ⇒ 이시기는 남인들이 북벌론을 제기(마침 청에서도 오삼계의 난[삼번의 난.1673-81] 일어나 정세혼란)
2. 붕당정치의 변질 - 환국정치, 상대세력의 존재를 인정 않는 일당 전제의 추세 나타나기 시작
숙종 ※ 환국정치 : 국왕이 주도하는 붕당과 견제하는 붕당을 서로 교체함으로써 정국을 급격하게 전환해 나가는 정치행태.
※ 숙종代도 탕평정치를 실시하나 명목상만 탕평임. 실제는 왕이 정국을 바꿔나가는 환국정치 함.
경신대출척
(1680,숙종6)
o 배경 : 서인이 훈련별대 강화 등을 근거로 남인들이 역모를 꾸민다고 모함함.
o 경과 : 서인의 집권 ⇨ 남인 철저한 탄압(허적, 윤휴(‘사문난적’) 등 사형)
o 결과 : <노론, 소론 분열> ┌ ① 노론(강경파) - 송시열→대의명분 중시
- 남인 처벌과정에서(1683) └ ② 소론(온건파) - 윤증. 박세당, 정제두, 유수원 → 실체·실지증시 ⇒탈주자학 흐름
기사환국 o 배경 : 장희빈 소생 세자 책봉문제
o 경과 : 남인이 집권 ⇨ 송시열등 제거하면서 보복(송시열 사사)
갑술환국 o 배경 : 폐비민씨 복위문제 * 서인들은 이때 상인자금을 이용하기도 함(서얼. 역관. 노비 등과도 연결)
o 경과 : 서인(소론)이 집권 ⇨ 이후 노론·소론의 대결구도
o 결과 : 남인 실각후 대거 낙향 → 지방에 서원 난립(서원발달의 배경), 학문적 기반과 무관한 가족을 제향하는 사우도 남설됨
병신처분 o 노론집권(소론제거)
경종 ※ 경종즉위(1720~1724) : 소론주도+남인일부참여. 장희빈 소생
신임사화
(1721~1722)
o 배경 : 즉위다음해, 노론4대신(김창집,이건명,이이명,조태채)이 중심이 되어 연잉군(영조)을 왕세자로 책봉하자고 주장&대리청정까지 주장.
o 경과 : 소론의 노론 견제 ⇨ 노론 4대신 사사
o 결과 : 壬寅의 옥이라고도 함. “신임의리” 문제의 발생
3. 탕평정치기 - ‘붕당타파’의 시도
영조 ※ 영조즉위(1724~1776) : 노론의 힘으로 집권(“신임의리” 문제 발생→영조 집권내내 발목을 잡음)
※ ‘타파붕당’의 기치를 내걸음 ┌ 탕평책시행(완론탕평(조제보합) → ‘탕평당’을 또 하나 만든 것에 불과하다 비판받음)
└ 서원의 제한·혁파 * 탕평과 시행·탕평비 건립(성균관)·동색불혼
※ 남인 등용, 서얼 등용
이인좌의 난
(1728,영조4)
o 배경 : ‘경종독살설’, 노론 독주에 대한 반격 → 소론세력(+남인)의 봉기
o 경과 : 청주성 점령 → 서울로 진격중 안성에서 진압 당함 ⇨ 소론몰락
나주 괘서사건
(1755)
o 결과 : ⇨ 소론몰락
임오화변
(1762)
ο 사도세자 죽음 ⇨ <노론 시파·벽파로 분열> ┏ ① 시파 : 주로 남인·소론 계통. 일부노론 → 동정
┗ ② 벽파 : 주로 노론 강경파 → 사도세자 죽음 수긍
정조 ※ 정조즉위(1776~1800) : 사도세자 복권
※ 준론탕평 : 시시비비가 분명한 이들을 등용해 정국 운영
※ 남인 등용, 서얼 등용(규장각 검서관: 서이수,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 무과 실시해 서얼 채용)
신해통공
(1871)
· 노론과 결탁한 시전상인에 대한 제재 → ‘노론의 경제력 약화’로 이해
문체반정운동
 
· 북학파의 신체문(박지원 일파의 패관문체) 비판 → 정통고문으로의 복귀 명령
· ‘노론 일파에 대한 견제’ 시도로 이해
4. 붕당정치의 파탄 - 세도정치기(한 가문이 정국을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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