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화가(鳳仙花歌)
작자미상
작품해제
작자와 연대 미상인 내방 가사이다. 봉선화란 꽃 이름의 유래를 밝히고 꽃잎을 따서 손톱에 물들이던 고유한 풍속을 소재로 하여 여인의 아름다운 정서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대부분의 내방가사가 여성으로서 지켜야 할 수신 윤리와 규방에서의 한을 읊은데 비해 이 작품은 독특하게 비교적 밝은 분위기로 여성 고유의 섬세한 감정을 잘 드러내어 조선시대 여인들의 서정적 감성과 아울러 규방에 갇혀 화초를 벗삼던 여인의 생활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香閨(향규)의 일이 업셔 百花譜(백화보)를 혀쳐보니, 봉선화 이 일홈을 뉘라서 지어낸고. 眞游(진유)의 玉簫(옥소) 소 紫煙(자연)으로 후에, 閨中(규중)의 나믄 因緣(인연) 一枝花(일지화)의 머므르니, 柔弱(유약) 푸른 닙은 봉의 리 넘노 . 自若(자약)히 붉은 은 紫霞裙(자하군)을 헤쳣 듯.
구절 풀이
* 향규(香閨) : 부녀자의 방을 아름답게 부르는 명칭(名稱) * 백화보(百花譜) : 온갖 꽃에 대한 설명을 쓴 책 * 혀쳐 : 펼쳐, 헤쳐 * 진유(眞游) : 신선의 이름 * 자연(紫煙) : 보랏빛의 연기, 신선들이 사는 곳을 이름 * : 가 버린 * 규중(閨中) : 아녀자가 거처하는 방. 규방 * 일지화(一枝花) : 백화보의 봉선화 * 넘노 : 넘나들며 노는 듯 * 자약(自若)히 : 침착히 * 자하군(紫霞裙) : 신선의 옷
현대어 풀이
규방에 할 일이 없어 백화보를 펼쳐 보니, 봉선화 이 이름을 누가 지어냈는가. 진유의 옥피리 소리가 선경(仙境)으로 사라진 후에, 규방에 남은 인연이 한 가지 꽃에 머물렀으니, 연약한 푸른 잎은 봉의 꼬리가 넘노는 듯하며, 아름다운 붉은 꽃은 신선의 옷을 펼쳐 놓은 듯하다.
白玉(백옥)섬 조흔 흘게 종종이 심어내니, 春三月(춘삼월)이 지난 후에 香氣(향기) 업다 웃지 마소. 醉(취) 나븨 미친 벌이 올가 저허네. 貞靜(정정) 氣像(기상)을 녀자 밧긔 뉘 벗고.
구절 풀이
* 백옥(白玉) 섬 : 희고 고운 섬돌 * 조흔 : 깨끗한 * 종종이 : 한 그루 한 그루 * 취(醉) 나븨 미친 벌 : 방탕하고 경박스러운 남자를 비유 * 저허네 : 두려워하네 * 정정(貞靜) : 정숙하고 조용한
현대어 풀이
고운 섬돌 깨끗한 흙에 한 그루 한 그루 심어 내니, 봄 석 달이 지난 후에 향기가 없다고 비웃지 마오. 향기에 취한 나비와 미친 벌들이 따라올까 두려워서라네. 정숙하고 조용한 저 기상을 여자 외에 누가 벗하겠는가?
玉欄干(옥난간) 긴긴 날에 보아도 다 못보아, 紗窓(사창)을 半開(반개)고 叉鬟(차환)을 불너어, 다 픤 을 여다가 繡箱子(수상자)에 다마노코, 女工(여공)을 그친 후의 中堂(중당)에 밤이 깁고, 蠟燭(납촉)이 발갓을제 나음나음 고초 안자, 흰 구슬을 가라마아 氷玉(빙옥) 손 가온 爛漫(난만)이 개여여, 波斯國(파사국) 저 諸侯(제후)의 紅珊宮(홍산궁)을 혀쳣 , 深宮風流(심궁 풍류) 절고에 紅守宮(홍수궁)을 마아 , 纖纖(섬섬)한 十指上(십지상)에 수실로 가마니, 조희 우희 불근 물이 微微(미미)히 숨의 양, 佳人(가인)의 야튼 의 紅露(홍로)를 쳣 , 단단히 봉 모양 春羅玉字(춘나옥자) 一封書(일봉서)를 王母(왕모)에게 부쳣 .
구절 풀이
* 사창(紗窓) : 비단으로 바른 창. 여인 기거하는 방의 창 * 차환(叉鬟) : 가까이에서 심부름하는 젊은 여자 종 * 수상자(繡箱子) : 수놓는 도구 일체를 넣어두는 상자 * 여공(女工) : 여자가 하는 일, 곧 바느질 * 중당(中堂) : 집 안채 * 납촉(蠟燭) : 밀초. 밀촛불 * 나음나음 : 차츰차츰. 점점 * 흰 구슬 : 흰 구슬, 백반을 말함 * 가라마아 : 갈아 바수어 * 빙옥(氷玉) : 여인의 깨끗하고 예쁜 손을 가리킴 * 난만(爛漫)이 : 흠뻑 * 파사국(波斯國) : 페르시아 * 홍산궁(紅珊宮) : 붉은 산호 궁궐 * 심궁 풍류(深宮風流) : 깊은 궁궐의 풍류 * 절고 : 절구 * 홍수궁(紅守宮) : 붉은 도마뱀. 한나라 무제가 단옷날 도마뱀에게 주사를 먹여 붉은 도마뱀을 만들었다 함 * 섬섬(纖纖)한 : 가늘고 고운 * 조희 : 종이 * 숨의 : 스며드는 * 야튼 : 얕은 뺨 * 홍로(紅露) : 붉은 이슬 * 춘나옥자(春羅玉字) : 비단에 옥으로 박은 글씨 * 일봉서(一封書) : 한 통의 편지 * 왕모(王母) : 서왕모. 요지(瑤地: 신선이 산다는 곤륜산)에 사는 선녀
현대어 풀이
옥난간에서 긴긴 날 아무리 보아도 다 못 보아, 창문을 반쯤 열고 계집종을 불러내어, 다 핀 봉선화를 캐어다가 수상자에 담아 놓고, 바느질을 마친 후 안채에 밤이 깊고 촛불이 밝혀져 있을 때, 천천히 자세를 세우고 앉아 흰 백반을 갈아 바수어, 옥같이 고운 손 가운데 흠뻑 개어 내니, 페르시아 제후가 좋아하는 붉은 산호궁을 헤쳐 놓은 듯하며, 깊은 궁궐에서 절구에 붉은 도마뱀을 빻아 놓은 듯하다. 가늘고 고운 열 손가락에 수실로 감아 내니, 종이 위에 붉은 물은 희미하게 스며드는 듯하고, 미인의 고운 뺨 위에 붉은 이슬을 뿌린 듯하며, 단단히 묶은 모양은 비단에 옥으로 쓴 편지를 서왕모에게 부치는 듯하다.
春眠(춘면)을 느초 여 차례로 풀어 노코, 玉鏡臺(옥경대)를 대여서 八字眉(팔자미)를 그리래니, 난데 업는 불근 이 가지에 부텃 . 손로 우희랴니 紛紛(분분)이 흣터지고, 입으로 불랴 니 석긴 안개 가리왓다. 女伴(여반) 서로 불러 朗朗(낭랑)이 자랑고, 압희 나아가서 두 빗흘 比較(비교)니, 닙희 푸른믈이 의여서 푸르단말 이 아니 오를손가.
구절 풀이
* 느초 : 늦게 * 옥경대(玉鏡臺) : 옥으로 만든 거울을 받치는 대(臺) * 팔자미(八字眉) : 팔자 모양의 아름다운 눈썹 * 불근 : 손톱에 붉은 물이 든 것을 가리킴 * 우희랴니 : 움켜잡으려 하니 * 분분(紛紛)이 : 어지러이 * 석긴 안개 : 입김이 거울에 서린 것을 가리킴 * 여반(女伴) : 여자 친구 * 낭랑(朗朗)이 : 명랑한 마음으로 즐거이 * 닙희 ~ 푸르단 말 : 쪽 잎에서 나온 푸른 물이 쪽빛보다 푸르다는 말. 청출어람이청어람(靑出於藍而靑於藍)
현대어 풀이
봄잠을 늦게 깨어 열 손가락을 차례로 풀어놓고, 옥거울을 앞에서 대하고 눈썹을 그리려니, 난데없이 붉은 꽃이 가지에 붙어 있는 듯, 손으로 움키려 하니 어지럽게 흩어지고 입으로 불려하니 거울에 안개가 끼어 가리는구나. 동무를 서로 불러 즐겁게 자랑하고, 쪽 잎 앞에 나아가서 푸른색과 비교하니, 쪽 잎에서 나온 푸른 물이 쪽빛보다 푸르단 말이 어찌 아니 옳겠는가?
은근이 풀을 매고 돌아와 누었더니, 綠衣紅裳(녹의 홍상) 一女子(일여자)가 飄然(표연)이 앞희 와서, 웃 기 謝禮(사례) 下直(하직) , 朦朧(몽롱)이 잠을 여 丁寧(정녕)이 각니, 아마도 귀신이 내게와 下直(하직)다. 繡戶(수호)를 급히 열고 수풀을 점검니, 우희 불근 이 가득히 수노핫다. 黯黯(암암)이 슬허고 낫낫티 주어담아, 다려 말 부치 그 恨(한)티 마소. 歲歲(세세) 年年(연년)의 빗은 依舊(의구)니, 허믈며 그 자최 내 손에 머믈럿지. 東園(동원)의 桃李花(도리화) 片時春(편시춘)을 자랑 마소. 二十番(이십번) 람의 寂寞(적막)히 러진 뉘라서 슬허고. 閨中(규중)에 남은 因緣(인연) 그 몸 이로세. 鳳仙花(봉선화) 이 일홈을 뉘라서 지어고 일로야 지어서라.
구절 풀이
* 녹의홍상(綠衣紅裳) : 푸른 저고리와 붉은 치마. 곧 봉선화를 가리킴 * 표연(飄然) : 훌쩍 나타나거나 떠나는 모양 * 기 : 찡그리는 듯 * 사례(謝禮) : 감사해 하는 듯 * 몽롱(朦朧)이 : 어렴풋이 * 정녕(丁寧)이 : 곰곰이, 진지하게 * 수호(繡戶) : 수(繡)놓은 창문 * 점검니 : 살펴보니 * 소노핫다 : 수(繡)를 놓았다 * 암암(黯黯) : 마음이 상하여 시무룩한 모양 * 세세년년(歲歲年年) : 해마다 * 의구(依舊) : 옛날과 다름없음 * 동원(東園) : 동산 * 도리화(桃李花) : 복숭아꽃과 오얏꽃 * 편시춘(片時春) : 잠깐 지나가는 봄 * 이십번(二十番) : ‘이십사번화신풍(二十四番花信風: 5일마다 꽃바람이 분다는 소한에서 곡우까지를 위해 5일마다 한 가지의 꽃을 배당)’을 말한 듯함 * 일로야 : 이것으로 하여. 이렇게 해서
현대어 풀이
은근히 풀을 매고 돌아와서 누웠더니 녹의홍상(綠衣紅裳)을 입은 한 여자가 홀연히 내 앞에 와서, 웃는 듯, 찡그리는 듯, 사례하는 듯, 하직하는 듯하구나. 어렴풋이 잠을 깨어 곰곰이 생각하니, 아마도 꽃 귀신이 내게 와서 하직을 고함이로다. 창문을 급히 열고 꽃밭을 살펴보니, 땅 위에 붉은 꽃이 가뜩 떨어져서 수를 놓은 듯하구나. 마음이 울적하여 슬퍼서 낱낱이 주워 담으며 꽃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한스러워 마소. 해마다 꽃빛은 옛날과 같으며, 더구나 그대의 자취가 내 손톱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동산의 복숭아꽃과 오얏꽃은 잠시 지나는 봄을 자랑 마소. 이십사 번 꽃바람에 쓸쓸하게 떨어진들, 그 누가 슬퍼하리오. 규방에 남은 인연은 오직 그대 봉선화뿐일세. 봉선화 이 이름을 그 누가 지었던고? 이리하여 지었노라!
핵심정리
갈래: 내방 가사
주제: 봉선화에 어린 조선 여인네의 아름다운 정서
해설
봉선화 꽃 이름의 유래를 밝히고 꽃잎을 따서 손톱에 물들이던 고유한 풍속을 소재로 하여 여인의 아름다운 정서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정일당잡지(貞一堂雜誌)에 실려 있어, 지은이가 조선 헌종 때의 정일당 남씨(南氏)라는 설도 있고, 허난설헌의 한시 <염지봉선화가(染指鳳仙花歌)>를 비롯한 기타의 다른 작품들과 구절이나 시상이 매우 흡사하여 허난설헌의 작품으로 보기도 한다.
내용은 봉선화라는 이름의 유래와 신선과 봉선화와의 인연, 춘삼월에 봉선화를 심는 일 등을 언급하고, 길쌈을 끝낸 여름밤에 하녀와 함께 손톱에 꽃물을 들인 일과 꽃물 든 손톱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꿈에 한 여인이 작별을 하니 곧 꽃 귀신임을 알아채고 밖에 나가보니 봉선화 꽃잎이 땅에 떨어져 있어 이를 애석하게 여긴다. 대부분의 내방 가사가 여성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언급한 교술적인 계녀가 계통 아니면, 규방에서의 한을 읊은 것인데 비하여, 이 작품은 비교적 밝은 분위기로 여성 고유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정서를 노래하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율격은 4·4조보다는 4·3조가 많이 나타나며 가끔 6음보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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